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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숨

김숨

1974년 울산 출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 장편소설로 『백치들』이 있음. maricella@hanmail.net

 

 

모일, 저녁

 

 

1

 

모월 모일, 신탄진 집에서 하루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부모님은 삼십여년째 신탄진에서 살고 있었다. 틀니와도 같은 창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빌라가 부모님 집이었다. 어머니는 간혹 틀니 밖으로 두터운 솜이불이나 무청 따위를 널어놓았다. 아버지는 틈틈이 틀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는 한라산이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한라산밖에 피우지 않았다.

십팔년 전, 막 지어진 그 빌라를 사기 위해 아버지는 은행에 이천만원이나 되는 빚을 져야 했다. 아버지가 당신 명의로 집을 가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빚과 그 빚으로 인한 이자를 다 갚은 게 불과 팔년 전이었다. 빚을 다 갚고 나자 어머니의 무릎 관절염이 도졌다. 대학병원에서 양쪽 무릎을 수술하느라 은행에 또 얼마의 빚을 져야 했다. 그 빚을 다 갚고 나자 남동생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다니던 대학교에 복학을 했다. 남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대느라 은행에 또 얼마의 빚을 져야 했다. 은행 빚을 다 갚던 날,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왔다. 어머니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 끝에 빚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은행에 한푼의 빚도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부모님은 신탄진에서 그럭저럭 소리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재개발이 될 때까지 빌라를 떠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빌라를 떠난다고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재개발이 곧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장 재개발이 된다고 해도 실평수가 기껏해야 열일곱평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은행에 또 빚을 져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부모님은 죽을 때까지 은행에 진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빌라 앞 태극제과에서 롤케이크를 한덩이 샀다. 롤케이크는 아버지가 곰보빵 다음으로 좋아하는 빵이었다. 아버지는 딸기잼을 듬뿍 바른 곰보빵을 세상의 모든 빵들 중에 가장 맛있어했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다니러 가며 이천원밖에 하지 않는 곰보빵을 사들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 집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육개월도 더 전이었다. 나는 천밀리리터 우유도 한개 샀다.

부모님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상우삼촌이 살고 있었다. 나와 두살 터울인 남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년 전부터 전주에 내려가 살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 아버지는 베란다에서 연탄불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연탄에 불을 붙이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가지를 썰고 있었다. 어머니 또한 나를 흘끔 바라보기만 할 뿐 가지만 열심히 썰었다. 식탁 위에는 두부, 양파, 대파, 오이, 밀가루 봉지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제과점에서 사온 롤케이크와 우유를 식탁 한쪽에 조용히 놓아두었다.

“전어를 구우려고 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버지는 전어가 다섯 마리나 된다고 했다. 연탄에 불이 잘 붙지 않는지 매캐한 연기가 났다. 아버지는 기침을 하면서도 연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네가 먹을 복이 있는가 보다.”

“네 아버지는 그깟 전어 가지고 먹을 복은 찾고 그런다니……”

어머니가 가지를 썰며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베란다는 석양빛으로 충만했다. 베란다가 서쪽으로 앉아 있어서 늦은 오후가 되면 베란다뿐만 아니라 거실과 부엌에까지 석양빛이 비쳐들었다.

“얼마나 맛있게 굽겠다고 저 난리법석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안했다.

베란다는 겨우 일인용 침대 넓이였지만 아버지는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베란다에서 아버지는 흑염소를 키운 적도 있었다. 닭을 두마리나 키운 적도 있었다. 연탄불을 피워 전어를 굽는 것은, 흑염소나 닭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수월한 일일 것이다.

연탄에 불이 붙으며 연기가 거실로 들이쳤다. 아버지가 거실 쪽으로 등을 돌리고는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어서 나는 연탄에 불이 붙는 걸 보지 못했다. 현관문은 내가 집에 오기 전부터 활짝 열려 있었다. 전어가 구워지면 그 냄새가 부모님 집뿐만 아니라 빌라 전체에 진동할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지를 다 썰고, 미리 까놓은 양파를 듬성듬성 썰었다. 세숫대야만큼 크고 검은 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식용유를 둘렀다. 썬 양파를 프라이팬에 넣고 볶았다.

베란다 빨래건조대에는 수건들이 널려 있었다. 전어가 구워지기 시작하면 그 냄새와 연기가 수건들에 고스란히 밸 텐데도 어머니는 걷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수건들을 걷으려다가 관두었다. 아버지가 아예 거실 쪽으로 등을 돌리고는 베란다를 떡하니 가로막고 앉아 있던 것이다.

“소주가 있나?”

연탄에 만족스럽게 불이 붙었는지 아버지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여태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식용유에 양파가 볶이는 냄새와 뒤섞여 전어 굽는 냄새가 희미하게나마 풍겼다. 아버지가 전어를 굽기는 굽는 모양이었다.

“소주가 있냐고 묻잖아!”

“없을까 봐요. 있겠지요.”

어머니가 건성으로 대꾸했다.

“소주가 얼마나 있나……?”

“반병 남은 게 있을 거예요.”

“있어?”

“반병 남은 게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전어까지 굽는데 그걸로 될까?”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기라도 하려고요?”

“소주라도 마셔야 뱀장어를 잡지.”

“오늘 저녁에도 일을 가시게요?”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디 오늘 저녁뿐이냐. 요즘은 노는 날도 없이 뱀장어를 잡으러 다닌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아버지는 뱀장어 잡는 일을 했다.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는 일이 아니라, 뱀장어 구이를 파는 식당에서 뱀장어를 잡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꿈틀꿈틀 살아 있는 뱀장어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뿐만 아니라, 대가리를 쳐내고 굽기 좋도록 두 쪽으로 배를 가르는 일까지 한다고 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파란 방수천으로 만든 앞치마를 두르고, 뱀장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흰 면장갑을 낀 손으로. 뱀장어를 잡다 보면 앞치마와 면장갑이 피로 범벅이 된다고 했다. 처음 뱀장어 잡는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삼일밖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니 매일같이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건 넉달 전이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해듣던 날 밤, 나는 아버지가 뱀장어들로 득실거리는 수족관 속에 들어가 허전하게 웃고 있는 꿈을 꾸었다. 뱀장어들이 아버지의 사지를 친친 감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했으면 했지만, 아버지가 할 만한 딱히 다른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올해로 예순세살이었다.

“저녁 여덟시부터 새벽 두시까지는 꼬박 뱀장어를 잡는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저녁과 밤 시간들을 뱀장어를 잡으며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는 식당은 대청댐 근처에 있었다. 뱀장어 구이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었는데, 식당에서 운행하는 승합차가 빌라 앞까지 아버지를 태우러 오고 태워다 준다고 했다.

“하룻밤에 몇마리나 잡으세요?”

“백마리 조금 못되게 잡을 때도 있지만 열심히 잡으면 백마리까지는 잡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백마리나요?”

아버지가 하룻밤에 뱀장어를 백마리나 잡는다는 사실이 나는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백마리가 아니라 열마리라고 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백마리는 잡아야 일당이 떨어진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아버지가 뱀장어를 백마리까지 잡기는 잡는 모양이었다.

“한마리라도 더 잡으면 좋겠다만……”

“일당이 얼마나 하는데요?”

“한마리 잡으면 사백원이 떨어진다.”

나는 사백원이 뱀장어 한마리를 잡는 데 대한 적당한 댓가인지 아닌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뱀장어 잡는 일은 곰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일과도, 호떡이나 붕어빵을 굽는 일과도 다를 것이었다.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찌 됐든 하룻밤에 못해도 백마리는 잡는다고 했으니 일당으로 사만원은 떨어지는 셈이었다.

“라면 한봉지 값도 안되는 사백원하고 뱀장어 목숨하고 맞바꾸는 꼴이지 뭐냐.”

어머니는 양파를 볶던 프라이팬에 썰어놓은 가지를 섞어 넣고 숟가락으로 뒤적거리며 볶았다.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장을 붓고 들들 볶아주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내가 신탄진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어머니는 가지나 시래기를 볶았다. 저녁 밥상에는 연탄불에 구운 전어뿐만 아니라 가지볶음도 올려질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 가지를 많이 볶아놓았다.

“다른 게 무서운 게 아니다……”

“……?”

“사람들이 뱀장어를 어찌나 먹어대는지……”

아버지가 일을 다니는 식당에는 뱀장어를 잡는 사람이 네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 네명 중에는 육년째 그 일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서른여섯살밖에 안 먹은 사람도 있고, 예순네살이나 먹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많이 잡는 사람은 하루에 백오십마리까지도 잡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잡아본 게 백여섯마리라고 했다. 뱀장어를 백여섯마리까지 잡던 날 밤 아버지는 꿈에서도 뱀장어만 죽어라고 잡았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밤 아버지가 잡을 뱀장어들을 생각하며 아버지의 웅크린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빌라 담 너머에는 먼지에 찌든 시내버스 몇대가 팔려가는 코끼리들처럼 정차해 있었다. 빌라 담 너머는 버스 차고지였다. 빌라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던 오래된 차고지였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신탄진과 대전을 왕복하는 버스들이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차고지로 돌아왔다. 나는 어쩌다 신탄진 집에서 하루저녁을 보내는 날이면, 베란다에 나가 텅 빈 버스들이 차고지로 돌아오는 광경을 구경하다 잠들고는 했다. 어쩌다 한두 사람이 유령처럼 버스에 타고 있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일년 전 상우삼촌도 유령처럼,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나는 전어가 다 구워지면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가, 버스들이 차고지로 돌아오는 광경이나 구경할 생각이었다. 마지막 회송버스가 차고지로 무사히 돌아오면 그제야 잠자리에 들 작정이었다.

전어가 잘 구워지고 있는지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는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바쁜 일이 있다고 하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다. 전어들이 다 구워지기 전에…… 터미널로 가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면 늦어도 밤 열시까지는 자취방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남의 집에서 전어가 구워지기만을 눈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손님처럼 나는 불편하고 답답했다.

부모님은 어째서 삼십년이 넘도록 신탄진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신탄진에 아버지가 평생 다닐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신탄진에서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살아왔다. 더구나 아버지는 고향이 여수였고 어머니는 광주였다. 하필이면 대전 중심에서도 멀리 떨어진 신탄진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아버지는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천안이나 수원 쪽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더 북쪽으로 올라가 서울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우 좀 깨워라.”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뜬금없이 상우삼촌을 깨우라니…… 전어를 굽느라 신이 나서 실없이 해보는 소리일까. 나는 아버지가 그냥 해본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데려가려고요?”

어머니가 베란다 쪽을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도 안 데려가면 그것도 장담 못해. 뱀장어 잡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구. 어떻게든 따라나서게 해야 하는데……”

“잘도 따라나서겠어요.”

어머니가 압력밥솥 안의 불려놓은 쌀에 은행을 한 주먹 넣으며 말했다.

“오늘은 어떻게든 해봐야지.”

어머니는 압력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며 빌라 앞 도로에서 주워온 은행이라고 알려주었다. 도로까지 나가 은행을 줍다가 타이어를 한가득 실은 트럭에 치일 뻔했다고 했다. 빌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타이어 공장이 있어서 타이어를 실은 트럭이 수시로 빌라 앞 도로를 지나다녔다. 가을 내내 어머니는 은행을 주우러 다니는 게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뿐만 아니라 무주구천동 쪽으로 버섯을 따러 다니기도 했다. 옅은 보랏빛의 싸리비처럼 생긴 싸리버섯을 따다가 염장을 해놓고 일년 내내 먹었다. 운이 좋으면 국더덕이라고 불리는 검은 버섯을 따오기도 했다.

“전어가 다섯마리니까 한 사람당 한마리씩 먹어도 한마리가 남겠어.”

“한마리 남는 건 당신이 드시면 되겠네요.”

“상우한테 먹여야지. 오늘은 어떻게든…… 그나저나 상우 좀 깨워라.”

나는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무심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부모님 집에는 현관문까지 합쳐서 모두 다섯개의 문이 있었다. 단 한개의 문만 빼놓고 다른 문들은 전부 열려 있었다. 심지어는 욕실 문까지 활짝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볶아놓은 가지를 손으로 한점 집어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씹으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단 하나의 꼭 닫혀 있는 문 앞에 섰다. 문 손잡이를 슬쩍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그 문 너머에는 상우삼촌이 있었다. 거기에서 상우삼촌이 뭘 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문에는 쇠못 여섯개가 무질서하게 박혀 있었다. 지난번 다니러 왔을 때보다 못 한개가 더 늘어나 있었다. 아버지가 망치로 박아넣은 못들이었다. 이태 전 나는 오늘처럼 신탄진 집에 다니러 왔다가 아버지가 그 문에 못을 박아넣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상우삼촌의 심장에 박아넣기라도 하듯 그 문 한가운데에 쇠못을 탕 탕 탕 박아넣고 있었다. 쇠못이 박히며 천장과 벽, 빌라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데도 그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설사 못투성이가 된다 해도 저 문은 꿈쩍하지 않겠지. 잠들어 있지 않다면 상우삼촌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았을 것이었다.

회송버스를 타고 아버지를 찾아오던 날 밤, 상우삼촌은 그 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치 문 밖으로 걸어나가기라도 하듯 저벅저벅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벌써 칠년째였다. 그 칠년 동안 나는 상우삼촌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상우삼촌이 귀신이나 도둑처럼 다들 잠든 뒤에야 기어나와 밥을 찾아 먹고 머리를 감고 똥오줌을 싼다고 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도통 상우삼촌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밤사이에 아버지가 사다 놓은 담배나 소주가 없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겨우 다섯마리를 구우면서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나겠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아버지가 연탄불까지 피워가며 전어를 굽는 것이 맞갖잖은 듯했다. 아버지는 못 들은 듯 아무 말도 없었다. 아버지가 거실 쪽으로 고개를 전혀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웅크린 몸이 거실과 베란다를 가로막고 있어서 전어가 구워지는 것 또한 구경할 수 없었다. 나는 전어가 잘 구워지고 있는지 한번쯤 베란다를 내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전어 굽는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고 있어서인지 괜히 무관심해지고 싶어졌다. 내가 기껏 사온 롤케이크와 우유는 식탁 한쪽에 팽개치듯 던져져 있었다.

칠년 전 회송버스를 타고 아버지를 찾아오기 전까지 상우삼촌은 서울 신림동 고시원촌을 전전했다. 상우삼촌은 십오년 동안을 사법고시생으로 살았다. 상우삼촌의 고시원비를 대기 위해 어머니는 대학교 구내식당에 일을 다니기도 했다. 어머니의 무릎이 망가진 것은 그때였다. 상우삼촌이 아버지를 찾아오고 얼마 안 있어 나는 신탄진 집을 떠났다. 나는 서울로 올라갔고 상우삼촌이 십오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고시원을 전전했다. 갈색 금강제화 구두를 잃어버린 것은 이대역 쪽에 있는 고시원에서였다.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삼촌은 우편으로 오만원권 금강제화 구두상품권을 한장 보내왔다. 나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다. 그리고 부모님 모르게 상품권으로 구두를 한 켤레 사 신었다.

“좋은 책이 있으면 상우한테 부치고 그래라. 책 파는 곳이니 책 얻는 게 쉬울 것 아니냐.”

“책도 돈을 받고 파는 건데 공짜로 주겠어요?”

어머니가 한 소쿠리나 되는 꽈리고추의 꼭지를 따며 한소리 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 이년 가까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나 하다가 겨우 취직을 한 곳이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이었다. 서점에 취직하고 일년 반 만에 지긋한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고 원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봤자 보증금 오백만원에 다달이 이십오만원씩 내야 하는, 반지하 원룸이었다.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 며칠 뒤 부모님은 이불 한 채와 쌀 한 봉지, 고추장과 된장 한 병, 마늘 한 주먹, 들기름이 가득 담긴 박카스병 두개를 보내왔다. 마침 장마철이라 쌀은 구더기로 들끓었다. 구더기는 쌀 봉지 밖으로 기어나와 씽크대뿐만 아니라 이불에서도 들끓었다. 나방이 날아다녔다. 나는 쌀알만큼이나 수두룩한 구더기를 골라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쌀을 봉지째 버렸다. 부모님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 서울에 한번 온다 온다 하면서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올라왔다가도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내려가고는 했다. 막상 부모님이 올라온다고 해도 걱정이었다. 기껏해야 여섯평밖에 안되는 원룸은 상우삼촌에게 보내려고 챙겨놓은 책들 천지였다. 그 책들 대부분은 내가 돈을 주고 산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거금 사만원을 주고 구입한 책도 있었다. 나는 밤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가는 책들 속에 파묻혀 잠들었다.

어머니는 꼭지를 딴 꽈리고추를 씻어 소쿠리에 받쳤다. 물기가 빠지는 동안 어머니는 양념장을 만들었다. 조선간장에 청양고추와 대파를 송송 채썰어 넣고, 요리당과 들기름을 섞었다.

“순순히 따라나설까 몰라요.”

어머니가 꽈리고추에 밀가루를 입히며 중얼거렸다. 밀가루를 허옇게 뒤집어쓴 꽈리고추들을 찜통에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아버지는 연탄불에 전어를 굽느라, 어머니는 이것저것 반찬을 하느라 나와 눈 한번 마주칠 새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틈틈이 말을 주고받고, 부엌이 잔칫집만큼 어수선하고 분주한데도 집이 한없이 적막하게 느껴졌다. 빌라만큼이나 낡고 오래된 가구들이 유화물감을 덕지덕지 뒤집어쓴 채 단단히 굳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간혹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나 티브이 소리, 다른 집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빌라 마당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마저도 유화물감을 잔뜩 뒤집어쓴 채 굳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늘 밤 어쩐지 아버지가 닫힌 저 문에 못을 한개 더 박아넣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백마리의 뱀장어를 잡고 돌아와 엄지손가락만한 쇠못을 탕 탕 탕 박아넣을 것 같은……

 

“그 왜…… 전씨라고 있지 않냐……”

“전씨 아저씨요?”

“그래, 그래, 전광식 아저씨 말이다.”

“그 아저씨가 왜요?”

“뱀장어를 잡다가 죽었지 뭐냐.”

“……?”

“엊그제 낮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전씨 아저씨가요?”

전씨 아저씨라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로 늘그막에 아버지와 같이 뱀장어 잡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부모님이 지금껏 살고 있는 빌라 이층에서 살기도 했는데 십년도 더 전에 과감히 이곳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한 빌라에 살 때만 해도 아버지는 날마다 그와 붙어 다녔다. 아버지가 툭하면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 술을 마시는 바람에 어머니도, 나도 그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거구였던 그는 말술에다 골초였으며 난봉 기질까지 있었다. 그가 가고 난 뒤면 온 집 안이 술병 천지에다가 담배연기로 찌들어 있었다. 보일러공이기도 했던 그가 한 시절 바쁘게 일을 다닐 때 아버지는 간혹 일당을 받고 보조로 따라다니기도 했다. 별다른 기술이 없던 아버지는 장비를 나르고 시멘트를 개어 깨진 바닥이나 벽을 메우는 일을 했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해 겨울인가는 아버지가 그를 따라다니며 번 돈으로 먹고살기도 했다. 그 겨울 내내 어머니는 빌라 앞 옥천정육점에서 돼지 잡뼈를 사다가 푹 고아 밥상에 올렸다. 돼지 잡뼈 곤 물을 소금간만 해서 올리기도 했고, 들깻가루를 듬뿍 뿌려 올리기도 했으며, 시래기와 감자를 잔뜩 넣고 끓여 올리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나는 저녁마다 밥상에 둘러앉아 티브이를 보며 돼지 잡뼈를 뜯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씨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보일러 기술이라도 익히기를 바랐지만 하루아침에 그만 그 좋던 사이가 틀어졌다.

“전씨가 말이다…… 두 손으로 뱀장어를 꽉 움켜쥔 채 바닥에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다들 손에 뱀장어를 한마리씩 움켜쥐고 멀뚱히 서서는 전씨가 죽어가는 것을 구경만 했지 뭐냐. 너무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서……”

“………”

“나무토막처럼 꼼짝 않는 전씨 몸뚱이 위에서 뱀장어가 얼마나 펄펄 날뛰던지……”

“오랜만에 온 애한테 사람 죽은 얘기는 뭐 하러 해요.”

개수대에서 수돗물을 틀어 도마를 씻으며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신 김치가 있는데 김치부침개라도 부쳐주랴?”

어머니가 내게 물어왔다. 수돗물 소리가 뚝 그쳤다.

“무서워서 아무도 손대지 못하고 있던 뱀장어를 누가 잡았는지 아느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리듯 들려왔다.

“그놈을 내가 잡았다.”

“전씨가 그렇게 죽을지 누가 알았겠냐.”

아버지가 여전히 나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겁에 질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겁에 질린 아버지의 얼굴이라면 신물이 나게 봐왔다. 아버지는 미간이 넓은데다가 두 눈이 튀어나오고 하관이 좁아 웃을 때마저도 잔뜩 겁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연탄불에 전어가 구워지는 냄새가 제법 그럴듯하게 풍기고 있었다. 나는 어서 전어들이 구워지고 밥상이 차려지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어서 뱀장어를 잡으러 가고 하루종일 신탄진과 대전을 왕복하던 버스들이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차고지로 돌아왔으면…… 신탄진 집에서의 하루저녁이 어서어서 지나갔으면……

“뱀장어 잡는 게 어디 쉬운 일인지 아느냐? 그것도 다 요령이 필요하다.”

“………”

“죽어라고 잡다 보면 저절로 터득되는 요령이지만 죽어라고 잡는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냐.”

“………”

“당뇨가 있었는데도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지 않았겠냐.”

“……?”

“전씨 말이다.”

“당뇨가 있었어요?”

“어디 당뇨뿐이냐. 그래도 세상천지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 어쩌겠냐. 뱀장어 잡는 일이라도 해서 먹고살아야지.”

나는 오늘 밤 아버지가 잡을 뱀장어들을 생각했다. 그랬더니 오늘 밤 아버지가 백마리보다 더 많이 잡았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이 되었다.

“소주가 있나?”

“있다고 했잖아요.”

어머니는 찜통을 올려놓은 가스레인지 불을 약간 줄이며 건성으로 말했다.

“있다고 해놓고 없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까 그러지.”

“어떻게 허구한 날 술이에요.”

“그놈의 뱀장어를 잡으려면 하는 수 없어.”

나는 아버지에게 전어가 다 구워지려면 아직 멀었는지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너도 그만 신탄진으로 내려오지 그러냐.”

“서울에서 잘 살고 있는 애한테 그런 소리는 쓸데없이 뭐 하러 해요.”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멀쩡한 집 놔두고 고생하는 게 안돼서 그러지.”

“내려오면 별 수가 있어요? 서울에서 살다가 웬만한 남자라도 있으면 결혼하는 게 낫지.”

“결혼을 하더라도 가까이 살면 좋을 것 아니야. 가끔 만나서 이렇게 전어도 구워먹고.”

“그깟 전어를 굽겠다고 연탄불까지 피우고 난리법석을 떠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말끝에 혀를 찼다.

“기왕 구울 거면 제대로 구워야지. 전어가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봐야 몇마리나 된다고요.”

“그러게 내가 몇마리 더 사자고 했잖아.”

“곗돈 낼 돈도 없다고 했잖아요.”

“곗돈이 몇푼이나 한다고.”

“총무라 점심도 사야 한다고 몇번을 말해요.”

어머니는 이 빌라에 들어와 살면서 빌라 이웃 몇몇과 친목계를 만들었는데, 계원 한두 사람만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깨지 않고 계속해오고 있었다. 한달에 한번꼴로 만나 곗돈을 붓고 친목을 다지고 곗돈이 어느정도 모아지면 순서를 정해서 타 갔다. 계모임을 가지며 기껏 사먹는 것이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자장면과 짬뽕이었다. 곗돈이라고 해봐야 웬만한 집의 한달 전기세밖에는 안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신탄진 집에 어쩌다 내려오면 계원들 소식을 들려주고는 했다. 계원 중 미숙 아줌마는 마흔살이 안되어 사별을 했고, 정미 아줌마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으며, 숙경 아줌마는 신탄진역 앞에서 전자대리점을 크게 하다가 망했다.

“요즘에도 만나면 자장면 사먹어요?”

꽈리고추가 삶아지는 냄새를 맡으며 내가 물었다.

“지난번 모임 때는 글쎄 오리고기를 다 사먹었다.”

어머니가 허탈하게 웃었다.

“잘했네요.”

“우리라고 주구장창 자장면만 사먹으라는 법 있냐? 자식새끼들 입밖에는 챙길 줄 모르던 여자들이 다들 늙어서인지 제 입들을 챙기려고 한다. 평생 먹을 오리고기를 그날 다 먹은 것 같다.”

“네 엄마가 요즘 나보다 더 잘 먹고 다닌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농담 섞인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생전 처음 사먹은 걸 가지고 저런다.”

어머니는 밥을 푸듯 꽈리고추를 주걱으로 퍼 양푼에 담았다.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장을 숟가락으로 떠 꽈리고추 위에 골고루 뿌려가며 뒤적뒤적 버무렸다. 꽈리고추무침은 어머니가 가지볶음만큼이나 자주 밥상에 올리는 반찬이었다. 신탄진 집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좋아하는 반찬은 아니었는데 간혹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언젠가는 마트에서 꽈리고추를 한 봉지 사다가 고시원 취사실에서 요리해 먹기도 했다. 기어이 그걸 해먹겠다고 양은찜통까지 샀는데 꽈리고추에 입힌 밀가루가 덜 익어서 몇점 집어먹다 냉장고에 처박아두었다. 두서너달쯤 지나 버리려고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는 검푸른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

“언제 뱀장어나 실컷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머니가 한탄하듯 말했다.

“언제 내가 물리도록 먹게 해준대도.”

“퍽이나요.”

어머니는 꽈리고추무침을 끝내놓고 물에 담가두었던 고사리를 다듬었다. 고사리나물까지 볶아 저녁 밥상에 올릴 작정인가 했는데 물기를 꼭꼭 짜서는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서울 갈 때 고사리나 한 주먹 가져가라.”

“해먹지도 못할 텐데 가져가서 뭐 해요.”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베란다에 가득하던 석양빛은 어느새 물러가고 한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실과 부엌은 형광등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웠다.

“죽어라고 잡아도 하루에 백마리 이상은 못 잡겠다. 한마리라도 더 잡으면 좋겠다만……”

나는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찌개가 있나?”

“된장찌개나 끓이려고 해요.”

“어서 끓여. 전어도 거의 구워져간다고. 만날 먹어도 된장찌개만한 게 없어.”

어머니는 금방 된장찌개를 안쳤다. 맹물에 잘게 부순 멸치를 한 숟가락 넣고 끓이다가 된장을 풀어 넣었다. 끓어오르는 거품을 밥숟가락으로 걷어낸 뒤 신 총각무와 호박과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었다. 된장찌개에는 까만 멸치 눈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다섯마리나 된다는 전어는 도대체 언제쯤 다 구워질까. 아버지가 꼼짝 안하고 전어 굽는 일에만 매달리는 동안 어머니는 밥을 안치고 가지를 볶고 꽈리고추를 무치고 고사리를 다듬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신탄진 집에 내려오기 며칠 전 나는 구운 전어뿐만 아니라 전어회까지 배부르게 먹었다는 사실을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람이 지독하게 살더니 그렇게 죽을지 어떻게 알았겠냐.”

“………”

“전씨 말이다.”

“바닥에 누워 죽어 있는 전씨를 보면서도 서운했던 때 생각밖에는 나지 않더라. 벌써 오래전 얘기지만 백만원이 다급해서 빌리러 갔는데 그걸 안 빌려주더라.”

전씨 아저씨가 백만원을 빌려주지 않더라는 얘기는 벌써 스무번도 넘게 들었던 것이었다. 전씨 아저씨 얘기만 나오면 아버지는 백만원을 빌려주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함까지 기어이 토해놓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축축한 시멘트 바닥에 죽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목도하고도 그때의 서운한 감정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백만원은 왜 빌리려고 했는데요?”

나는 언젠가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잘난 네 삼촌 때문이 아니냐.”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세상천지 가장 잘난 네 삼촌 고시원비하고 학원비를 마련하느라고 그 밤중에 찾아가서는 그 창피를 당하고 오지 않았겠냐.”

“당장 필요한 걸 어떻게 해.”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삼촌한테 들어간 돈만 모았어도 조그만 아파트라도 하나 샀을 거다.”

상우삼촌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얘기가 고스란히 들릴 것이었다. 나는 어쩐지 상우삼촌이 깨어 있을 것만 같았다.

 

“101호에 사는 할머니 말이다……”

어머니는 기껏 말을 꺼내놓고는 김치를 한 포기 꺼내 썰었다. 기어이 김치부침개까지 부치려는지 송송 썰어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에 담고 있었다. 어머니는 청양고추 세개도 송송 썰어 담았다.

101호는 이 빌라 반지하였다. 그곳에는 늙은 부부가 단둘이, 내 부모님만큼이나 오래전부터 이 빌라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늙은 사람들이었다. 삼십여년 전 처음 봤을 때도 지금처럼 폭삭 늙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삼십년이 넘도록 죽지 않고 버젓이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언젠가 나는 서울 자취방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 그들이 그토록 오래 살아 있는 것을 두려워하며 몸서리쳤던 적도 있다. 나는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이 여태 살아 있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꼈었다. 어머니는 집에 제사가 있으면 그들에게 떡이나 탕국을 나누어주고는 했다. 나는 어머니가 챙겨준 음식을 들고 그들이 살고 있는 반지하로 여러번 찾아갔었다. 온종일 빛 한점 들지 않는 그들의 집에는 곳곳에 거울이 달려 있었다. 어머니 말로는 101호 할아버지가 버려진 거울만 보면 주워다가 집에 걸어놓는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챙겨준 제사 음식을 들고 101호를 찾아갈 때마다 벽 곳곳에 걸려 있는 거울들을 보면서도 공포를 느꼈었다. 그들이 마치 자신들을 꼭 닮은 수십개의 환영과 함께 반지하 음습한 어둠속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101호 할머니가 왜요?”

“노망이 들었지 뭐냐.”

“노망이요?”

“어제저녁에는 할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네 아버지를 다 찾아오지 않았겠냐? 아흔이 넘은 노인이 먹고살 게 오죽 없으면 뱀장어 잡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겠냐.”

어머니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김치부침개 반죽을 한 국자 떠 넣었다.

“전어를 굽는데 김치부침개는 뭐 하러 부쳐.”

아버지가 버럭 짜증을 냈다. 압력밥솥에서 밥 뜸 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전어도 다 구워져가는데 상우 좀 깨우지 그러느냐.”

나는 아버지의 말을 마냥 무시하기 뭣해 한번 더 닫힌 문 앞에 가서 섰다. 나는 못들을 만지작거리다가 닫힌 문을 똑똑 두드려보았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괜히 애쓰지 말아요. 되지도 않을 일을 두고 애써봤자 늙기밖에 더해요.”

“식당 사장한테 말해놨다니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뭐 하러 해요. 신용만 나빠지게.”

“신용은 무슨!”

“깨우려거든 당신이 깨워요. 왜 오랜만에 집에 온 애한테 귀찮은 일을 시켜요.”

김치부침개 냄새가 퍼지며 기껏 혀에 감겨오던 전어 굽는 냄새가 희미해졌다.

“상우삼촌한테 뱀장어 잡는 일을 시키려고요?”

나는 짐작은 하고 있었으면서도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먹고살 수만 있다면 뭘 못하겠냐.”

“상우삼촌이 잘할 수 있을까……?”

“나보다 이십년이나 젊은데 설마 못할까 봐서 그러느냐……”

어머니는 그새 김치부침개를 한장 부쳤다. 밥이 뜸 들고 전어가 마저 구워지면 끝이었다. 나는 전어가 얼마나 구워졌는지 궁금했지만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우가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내가 말렸다.”

“……?”

“상우보다도 내가 더 욕심이 나지 않았겠냐.”

“………”

“제놈 쪽에서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내가 가만있었어야 했는데……”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알아서 하게 가만있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그렇게 쉽게 포기가 돼?”

“자식도 아니고 동생인데 변호사나 검사가 됐다고 해도 당신이 뭔 영화를 그렇게 봤겠어요. 그 공이 설마하니 당신한테 왔겠어요?”

“내가 영화를 바라서 그랬나! 눈곱만치라도 영화를 바라서 그랬다면 내가 천벌을 받지.”

아버지는 버럭 언성을 높이면서도 꿈쩍을 하지 않았다. 등을 돌리고 앉아서는 거실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당신도 사람인데 별 수 있어요.”

어머니가 벌건 김치부침개를 손으로 뜯어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어머니가 김치부침개를 한장 두장 부치는 동안 시간은 어느덧 일곱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일곱시 사십분이 되면 식당 승합차가 아버지를 태우러 올 것이었다. 아버지는 새벽 두시까지는 꼼짝없이 뱀장어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거실과 부엌 형광등을 켰다.

“너도 좀 먹어봐라.”

어머니가 부쳐놓은 김치부침개들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빛났다. 어머니는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손으로 김치부침개를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굽고 있는 전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김치부침개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전어는 약간 타게 구워야 맛있다.”

그렇지만 나는 구운 전어를 얻어먹자고 부모님 집에 들른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전어를 왜 저렇게 오래 굽는가, 어머니는 김치부침개를 왜 저리도 많이 부치는가, 하는 불만이 은근히 치밀어올랐다. 대전에서 결혼식을 보고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어머니는 김치부침개를 야금야금 두장이나 먹어치우고 식탁 위에 놓아둔 오이를 집어들었다.

“오이를 무쳐야겠다.”

“일곱시가 넘었어요.”

나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며 냉장고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워놓은 밥상을 폈다. 둥근 오동나무 밥상이었다. 밥상은 오래되어서 흠집투성이였다. 나는 행주로 밥상을 훔쳤다. 어머니는 오이를 반달 모양으로 썰어 양푼에 담고는 그 위에 고추장과 고춧가루와 물엿과 사과식초를 차례로 넣었다.

어머니가 비닐 위생장갑 낀 손으로 막 오이를 버무리려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내가 받으마.”

어머니가 기껏 낀 위생장갑을 벗어놓고 티브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티브이 장식대 밑에 놓아둔 쑥색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낚아채기라도 하듯 홱 집어들었다.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모들 중 한명일 수도, 계원들 중 한명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가 무치려다 만 오이에서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오이에 양념이 골고루 묻도록 숟가락을 뒤적거렸다. 어머니가 수화기를 꼭 움켜쥐고서 아예 벽 쪽으로 돌아앉는 것을 봐서 통화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전어가 마침맞게 구워졌구나.”

아버지가 마침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쭈그려 앉아 있어서인지 입고 있는 갈색 면바지 곳곳이 주름투성이였다. 아버지가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들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아버지는 내가 지난번에 다니러 왔을 때보다 몸집이 더 줄어든 것 같았다. 베란다 쪽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몸집이 줄어든 것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었다. 나는 아버지가 저렇게 작은 몸으로 저녁마다 뱀장어를 잡는다는 사실이, 그것도 백마리에 가까운 뱀장어를 잡는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생각되었다. 기적이란 그런 게 아닐까. 삼십여년째 신탄진에 살고 있는 예순세살의 남자가 밤마다 백마리의 뱀장어를 잡는 것이.

“연탄불도 거의 꺼져가니까 그대로 두었다가 밥상에 올리면 될 것 같다.”

나는 아버지가 나를 흘끔이라도 바라봐주기를 바랐지만 일부러 피하기라도 하는 듯 내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부엌 쪽으로 걸어가더니 씽크대를 뒤졌다.

“담배하고 소주 좀 사러 다녀와야겠다.”

아버지가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소주가 없어요?”

“반병은커녕 한잔도 못 되게 남았다.”

“제가 사올게요.”

“됐다. 너는 상우나 깨워라.”

아버지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운동화를 꿰어 신었다. 아버지는 오늘 저녁 기어이 상우삼촌을 데려갈 작정인가. 나는 아버지가 상우삼촌을 방 밖으로 불러내는 것을 온전히 나한테 떠넘기는 것만 같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나는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상우삼촌이 뱀장어 잡는 모습 또한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계란으로 바위라도 치는 심정으로 닫힌 문을 똑똑 두드려보았다. 그러나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뭔가 기척이 느껴져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웬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가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가만히 보니 101호 할머니였다.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찾아오기라도 한 듯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노망이 들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구운 전어 한마리를 얻어먹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듯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101호 할머니를 보고도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나는 닫힌 문을 똑똑 두드리며 조금 울먹거렸다.

나는 소주와 담배를 사러 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밥상을 차렸다. 가지볶음과 꽈리고추무침을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렸다. 김치부침개 두장도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리고, 신 갓김치와 오이무침도 밥상에 올렸다. 수저도 네 벌을 놓았다. 밥도 네 그릇을 푸고 된장찌개도 밥상에 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상우삼촌과 나. 그렇게 네명이 둘러앉기에는 밥상이 조금 작았다. 어머니는 아예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진녹색 전화선이 어머니의 목을 조르기라도 하듯 친친 감겨 있었다.

이제 아버지가 열심히 구운 전어들만 밥상에 올리면 되었다. 나는 구운전어를 담을 접시를 챙겨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연탄불 위의 석쇠를 나는 한참이나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석쇠 위에서는 전어 대가리들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몸뚱이는 온데간데없고 순 대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모두 다섯개였다. 아버지가 전어를 구우며 대가리만 남겨두고 몸뚱이를 야금야금 먹어치운 것은 아닐까. 혼자서 홀딱 먹어치운 것은 아닐까. 어쩌면 처음부터 대가리들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몸통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대가리들뿐이었는지도. 갈치 대가리보다 조금 작은 전어 대가리들은 하도 구워져 숫제 숯덩이였다. 젓가락으로 슬쩍 건드리자 재가 일었다.

나는 전어 대가리들을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접시에 옮겨 담았다. 내가 다섯개의 전어 대가리를 접시에 옮겨담는 사이에 101호 할머니가 현관 안까지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빤히 바라보다가 전어 대가리들이 담긴 접시를 밥상 한가운데에 놓았다.

담배와 소주를 사러 나간 지 삼십분이나 지나도록 아버지는 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밥상 앞에 앉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 입으로 가져갔다. 가지볶음도 먹고 꽈리고추무침도 먹었으며 김치부침개도 뜯어먹었다. 까만 멸치 눈알이 떠다니는 된장찌개도 두어 숟가락 떠먹었다. 속이 노랗게 익은 은행을 천천히 씹으며, 은행을 줍다 트럭에 치일 뻔했다던 어머니의 말도 곰곰 되새겨보았다. 내가 은행을 씹는 동안 101호 할머니는 앉은걸음으로 밥상 앞에까지 와 있었다.

밥상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가 고양이처럼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무서워요.”

할머니가 나를 향해 입을 해죽 벌리고 웃었다.

“무서워 죽을 것 같아요.”

할머니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할머니가 전어 대가리 한개를 손으로 덥석 집어들었다.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2

 

모월 모일도 다 가고 어느새 하루의 운행을 무사히 끝마친 버스들이 차고지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전화선을 목에 친친 감은 채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송수화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빌라 담 너머 버스 차고지를 바라보았다. 버스들이 전조등을 밝히고 차고지로 돌아오는 광경을 구경했다. 아버지는 담배와 소주를 사러 갔다가 곧장 뱀장어를 잡으러 간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쯤 뱀장어를 쉰마리가량 잡았을 테지…… 내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버지가 오늘 밤 다른 밤들보다 더 많은 뱀장어를 잡았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한마리의 뱀장어라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