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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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악공(樂工)은 미래의 음악을 살고 있는가

신동옥 시집『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함돈균 咸燉均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이 시대의 혁명, 이 시대의 니힐리즘」「안티고네의 노래」등이 있음. husaing@naver.com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불행하다. 그는‘지금, 여기’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다만 불확실한 미래의 사랑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사랑이 과거의 어떤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 불행은 좀더 심각해진다. 사랑은 반복될 수 없는 과거로 끊임없이 소환되어, 새롭게 도래할 미래적인 것으로도 실현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음악(소리)’에 사로잡힌 한 악공(樂工)이 있다. 그의 신세가 이와 비슷하다. 그는 “일현금을 타는 먼 나라의 악공”인‘당신’과 교접하여 육신과 영혼의 공명(共鳴)을 구하거나(75면), 스스로 “맞춤한 일현금을 얻고자 하는 금객(琴客)”이다(70면). “세 개의 유방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들”에게서‘음경’대신‘우퍼’(woofer)를 선사받은 그는, “관상동맥의 길을 따라 걸어들 때 온몸에 스미는 현(絃)”의 소리가 육신의 경로를 거쳐 영혼과 공명하고, “헤모글로빈 음파를 뿜는 태양 스피커”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102~103면). 궁극적으로 그것은 “철새의 이동 경로와 같고, 꿈의 다리를 건너는 기차의 경적 소리와 같다”(같은 곳). 육신의 박동과 흐름을 음악적인 것에 일치시키고, 소리의 미세한 파동이 영혼의 심연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갈구하며, 이 소리가 궁극적으로 우주적인 어떤 섭리와 공명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이 악공의 갈구는 19세기 상징주의자들의 원(願)을 거의 그대로 닮았다. 물론‘일현금’을 희구하는 이 악공의 세계는 거북이 등뼈에 우주의 어떤 섭리가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 저 까마득한 『시경(詩經)』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이 악공의 음악에 대한 갈구 역시 존재와 언어가 분리되지 않았던 전근대의 저 운문적 세계, 말라르메(S. Mallarmé)의‘대문자 시’의 세계를 향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상징주의의‘시적 실패’에서 보듯, 이러한 운문적 세계는 근대의 산문적 삶의 조건에 의해 파산을 고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견해일 터이다. 물론 이‘시적 실패’는 기념비적인 것이다. 실패 자체를 통해 시인이 희구하는‘음악-대문자 시’와 현실 사이의 크나큰 격차를 보여줌으로써, 존재론적 차원의 시적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리얼’하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현대시는 바로 이러한 시적 아이러니에 대한 정직한 승인에서 출발할 일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시에서 운문적 세계에 대한 추구나‘대문자 시’의 추구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주어진 역사적 조건간의 차이를 잘 알고 있는 시인이 취해야 할 시적 전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이다. 선험적 원리나 개인의 의지로 환원할 수 없는 문학적 현실은, 소설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에도 존재한다. 적어도 이를 인식한 시인이라면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 이데올로기적 현실태와 시적 잠재태를 구분하고, 후자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용기있는 일일 터이다. 신동옥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랜덤하우스 2008)의 주인공인 악공은‘Rock공’으로서 해금의 활 대신 드럼 채를 들었고, 거문고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쥐었으며, 앤디와 지미를 친구로 두고 모리슨호텔에 묵으며, 죽어서는‘Electric Lady Land’로 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 모든 수사는‘악공의 칠현금’의 세계로 다시 수렴된다. 다시 말해 그에게서‘Rock공’은 고대의‘악공’이다. 물론 이 둘이 희구하는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징주의자들에게 음악이 현실세계‘너머’를 보기 위한 방편이었듯이, 히피의 상징이었던 락과 마약과 쎅스 또한 그런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악공에 의해 넌지시 암시되는‘너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밤이면 수화기 끝에 계신 Electric Lady께서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늑한 공명통 같은 나라. 천지사방에서 흑요석과 자수정이 빛나는 나라, 내 사랑 Electric Lady와 무지개 줄넘기하는 아침.

-「악공, Electic Lady Land」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공의 세계가 몇가지 점에서 위험한‘보수성’을 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첫째, 악공의‘현(絃) 위의 인생’은 상징주의의 시적 실패와 다르다. 상징주의의 시도가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에서 산문적 삶의 조건을 시적 육체로 돌파하려는‘무모한’시도였다는 점에서 실존을 건 존재론적 기투였던 데 반해, 이 시집의‘유려한 음악적 유토피아’는 시인이 우리 시대의 역사적 조건을 이미 충분히 자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반복되는 희구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예술적 모험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이미 이 시대를,‘태양’과‘음악’과‘세개의 유방을 가진 여인’이라는 존재론적 풍요의 표지가 상실된 시대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태양은 어디로 갔는가, 그 거대한 스피커는, 네 심장에

자리한 마지막 흑점은, 혀끝을 달구던 플라멩고들은?

(…)

세 개의 유방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악공, 우퍼소년과 태양스피커」 부분

 

그렇다면 이런 역사적 조건의 차이에 대한 인식하에서 출발하는 시적 기획은 다른 것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상징주의의‘대문자 시’가 우주적인 어떤 것을 희구하면서도 불확실한 잠재태에 몸을 던지는 시적 결단이었다는 점에서‘미래’와 관련되는 반면, 오히려 악공의‘Electric Lady Land’에서 복고주의적 나르씨씨즘의 혐의를 지울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이와 관련하여 시인의 모종의 시적 희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인용시 「악공, Electic Lady Land」의 이미지가, 다소 정적이며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상투적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이것은 이 유토피아가 여전히 상징체계의 이데올로기적 조작권 내에 있음을 암시하며, 이런 점에서 이 악공의‘현 위의 인생’은 결코‘미래’의 불확실성을 향해 내던져진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의 이데아를 직관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했던 베를렌느(P. Verlaine)에게서 음악은 일종의 정신착란의 방편이었으며, 이때 시의 이데아는 이 착란상황에서나 가까스로 힐끗 그림자만을 보이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가 이 착란상태에서 엿본 존재의 비의가 어떤 형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세계는 분명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다른 세계’였을 것이다. 보들레르(C. Baudelaire)가 예술을‘매춘’에 비유했을 때, 이 역시‘낯선 것’에 대한 존재론적 자기개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완강히 지속되고 있는‘대문자 시’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이‘비의적’세계는 한눈에 존재의 얼굴이 모두 파악되는 안온하고 정적인 빠르메니데스(Parmenides)적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의 모든 체험을 무화하고 주체의 정체성을 지우는 전적인 타자가 아닐까? 그러므로 시에서 음악은 주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를 수많은 파편들로 산산조각냄으로써 개별성을 한없이 분화하는 전적인 타자의 율동이어야 할 터이다. 또는 적어도 이것이‘미래의 시’가 지녀야 하는 음악이 아닐까?

그러므로 좋은 시에서 주체는 음악을 논하기보다는,‘이미’음악 위에서 흘러다니며 음악의 삶을 산다. 따라서 쎅스를‘설명’하는 이상(李箱)의 시와 소설이 의사(疑似) 쎅스만을 반복했던 것처럼,‘일현금-세개의 유방을 가진 여인들’과의 교합(交合)에 강박을 보이는 이 악공의 성교가, 유감스럽게도 “상상-몽정”(103면)과 “상상-임신”(104면)에 그치는 면이 있다는 지적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 대한 나의 질문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유물론적 차원의‘마음’(âme)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차원의‘영혼’(esprit)과 공명하려 하며, 과거로부터 소환된 음악적 세계를‘강설(講說)’하고 있는 이 악공의 목소리는, 과연 (미래의) 음악을‘살고’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