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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승하 李昇夏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등이 있음. shpoem@lycos.co.kr
광대를 찾아서 1
白首狂夫
날새도록 술 마셨는가 영감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취하면 춤추고 싶고 떠벌리고 싶고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하겠지
만취한 백수광부 천하의 백수건달
술이 그대를 채워
그대 온세상 한순간에 얻었으니
그 세상 네 것이다 영원히 가져라
황천강 건너가듯 저 강을 건너가서
날이 밝아오고 있다 영감
호리병 술병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강가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추더니
어이구 저런, 물에 뛰어드는구나
천년의 눈물 모여 강으로 흐르고
천년의 술이 모여 바다로 흐르는데
어이구, 저 술이 저렇게 좋아서
환장하게 좋아서 황천강 건너가는데
저놈의 여편네는 왜 따라 죽는단 말인가
광대가 광대답게 잘 죽었는데.
광대를 찾아서 7
河寶鏡(1908~1997)
춤 잘 추고 놀기 좋아하는
밀양 멋쟁이 하보경이
어떻게 살다 갔는지 당신은 아시오?
윷판 노름판 어디어디 놀자판
씨름판 소씨름판 어디어디 놀이판
하보경이 없으면 살판나질 않았지
얼굴 잘생기고 키 훤칠하고
기생 잘 후리고 노름 도사고
뭐니뭐니 해도 그는 춤꾼이었어
야 이놈아 징을 쳐라 북 더욱 세게 쳐라
하보경이가 나타났다 다 늙어서도
백발이 성성한 저 머리로
도포만큼 하얀 수염 휘날리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조곰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랑 닥궁 스리랑 닥궁
아라리가 났네 밀양아리랑
아리랑 어절씨구 잘 넘어간다 밀양백중놀이
“내 손으로 벌어서 집안 살림에
한푼 보탠 일이 없어.
그 성질 때문에 이 고생을 했지.
고생을 해도 싼 인생이었소.”
하얀 부채 손에 들고 양반춤을 추거나
하얀 중의적삼 상투 꽂고 범부춤을 추거나
짚신 신고 큰북 메고 북춤을 추거나
춤추기 위해 태어난 그대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세상은 온통 놀이판 춤판이어서
잘 놀다 갔으니 하보경 영감!
지금은 황천 어디메서
누구 앞에서 춤추고 있나
꼴리면 꼴리는 대로 활갯짓을
내키면 내키는 대로 어깻짓을
발 내디디면 하늘이 확 열리고
팔 벌리면 강물이 쫙 펼쳐진다
활갯짓 우쭐우쭐 어깻짓 으쓱으쓱
되는대로, 제멋대로…… 아무렇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