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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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文泰俊

1970년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등이 있음. tjpmoon@hanmail.net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1

 

개망초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바람은 일고 개망초꽃이 꽃의 영혼이 혜성이 돈다

 

개망초가 하얗게 피었다

잠자리가 날 때이다

너풀너풀 잠자리가 멀리 왼편에서 바른편으로 혹은

거꾸로

강이 흐르듯 누워서 누워서

 

 

2

 

오늘 다섯살 아이에게 수두가 지나가고, 나는 생각한다, 만발하는 것에 대하여 수두처럼 지나가는 꽃에 대하여 하늘에 푸른 액정화면에 편편하게 날아가는 여름 잠자리에 대하여 내 생각에 홍반처럼 돋다 사그라드는 것에 대하여

그리하여 나는 지금 앓고 있는 사람이다

 

 

3

 

그리고 나는 본다, 한 집의 굴뚝에서 너풀너풀 연기가 번져나오는 것을 그 얼룩을

그리고 나는 안다, 이 뜨거운 환장할 대낮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한 여인을 그 얼룩을

에미가 황해도 무당이었고 남편은 함경도 어디가 고향이고 여인은 한때 소를 한때 묵뫼를 사랑했고 올여름 연기를 지독히 사랑했고 불을 때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그 얼룩을

 

연기는 아주 굼뜨고, 연기는 무학자이고, 연기는 나부이고, 연기는 풀이 무성한 묵밭이고

연기는 아궁이 앞에 퍼질러앉은 그 여인이고, 갈라진 흙벽의 정신이고, 미친 사람이고

 

나는 아니 보아도 안다, 벌써 스무 해 넘게 미쳐 지내온 저 여인이 어떤 표정으로 지금 앉아 있는지를

무얼 끓이느냐 무얼 삶느냐 물어도 여인은 손사래쳐 무심히 불만 밀어넣을 것이라는 것을

몇통의 물을 다만 끓이고 끓이고 있다는 것을

내 눈과 마주치곤 까르르 까르르 웃던 그 검은 얼굴을

 

 

4

 

하늘의 밭에는 개망초가 잠자리가 연기가 수두처럼 지나가고 있다 더듬더듬거리며 옮겨가고 있다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그래야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오오 이런!

 

 

나의 집에는 묵은 오리 한 마리가 있다 암컷이다 알을 많이 낳아 뒤가

청동주발 같다 항우울제를 먹고살고 자두가 익는 오늘 황혼에

눈에 늪이 괴어 있었다 눈초리로 늪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구리 털이 뽑히고 살이 갉혔다 그때

오리 곁으로 쥐 한 마리가 기어왔다 땅구멍을 뚫어 오리 곁으로

왔다 번들번들했다 곁말 거는 척 도리반거리다 오리 곁으로

바싹 기어왔다 更紙를 갉는 소리가 났다 조금 후 구멍에서

익사한 몸처럼 부푼 쥐와 새끼쥐가 기어나왔다 새끼쥐는

눈망울이 또랑또랑했다 一家였다 나와 오리와 세 마리 쥐가

눈이 마주쳤다 오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