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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인류는 녹아내리고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 Mike Davis
1946년 캘리포니아주 출생. 민권운동·반전운동에 참여한 사회비평가. UC어바인 역사학과 교수 역임.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 『조류독감』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 『슬럼, 지구를 뒤덮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등이 있음. ⓒ Mike Davis 2008 / 한국어판 ⓒ (주)창비 2008
*이 글은 미국의 진보적 독립언론 탐 디스패치(www.tomdispatch.com) 2008년 6월 26일자에 게재된 “Living on the Ice Shelf: Humanity’s Meltdown”을 번역한 것이며, 각주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붙였다-편집자.
1. 홀로세여 안녕
우리의 세계, 지금까지 1만 2천년 동안 거주했던 우리의 구(舊)세계는 끝이 났다. 북미나 유럽의 어떤 신문도 아직껏 그에 대한 과학적인 부음을 지면에 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올 2월, 고공크레인이 두바이타워-곧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두배 높이가 될-의 141층에 클래딩(cladding, 건물 바깥부분을 둘러싸는 단열재)을 끌어올리는 동안 런던 지질학회의 지층학위원회는 지질학 기고란에 강도 높은 최신 소식을 덧붙이고 있었다.
런던 학회는 1807년에 창립된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지구과학자들의 연합이고, 그 위원회는 지질학적 시기구분을 판결하는 데 추기경 모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층학자들은 침적층에 보존된 지구의 역사를 잘라내어 차례대로 누대(eon), 대(era), 기(period), 세(epoch)의 네 단위로 나누는데, 이는 대량 멸종이나 종(種) 분화 사건 그리고 대기화학의 갑작스러운 변화라는‘황금 스파이크’(golden spikes)1에 따라 지정된다.
생물학이나 역사에서처럼 지질학에서도 시기구분은 복잡하고도 논란이 많은 기술이어서, 19세기 영국 과학계에서 가장 치열했던 논쟁-아직도‘데본기를 둘러싼 대논쟁’으로 알려져 있는-은 대단할 것 없는 웨일즈 지방의 경사암(硬沙巖)과 영국의 구적색사암(舊赤色沙巖)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최근에는 지난 280만년에 걸친 빙하기의 변동을 지층학적으로 어떻게 시기구분을 할 것인가를 두고 지질학자들이 격렬히 싸운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온난한 간빙기-홀로세(Holocene, 충적세沖積世)-가 문명의 역사를 포괄하므로 그 자체를 하나의‘세’(epoch)로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일부에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지층학자들은 어떤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구분을 최종적으로 판결하는 데 유난히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았다.‘인류세’(Anthropocene)-지질학상의 변수가 되는 도시 산업사회의 출현으로 정의되는 세-라는 개념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음에도 지층학자들은 그 출현을 증명하는 설득력있는 증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런던 학회만큼은 이제 그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인류세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21명의 위원회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홀로세-이례적으로 안정된 기후를 보여서 농업과 도시문명의 빠른 진화가 가능했던 간빙기-가 이제 끝나고, 지구가 “지난 수백만년 동안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지층학적 기간”에 들어섰다는 확고한 증거를 든다. 지층학자들이 드는 증거는 온실가스의 축적을 비롯하여 “규모 면에서 이제 〔연간〕 자연 침전물 생산을 능가하는” 인간환경의 변화와 대양의 불길한 산성화, 생물군의 무자비한 파괴이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새로운 시대는 온난화 경향(이에 비견할 가장 가까운 예는 5600만년 전 팔레오세-에오세 최대온도Paleocene Eocene Thermal Maximum라고 알려진 재난일 것이다)과 예상할 수 있는 미래 환경의 극단적인 불안정으로 정의된다. “멸종, 종의 전지구적 이주, 식물의 자연스런 성장이 농업이라는 단일재배에 의해 전면적으로 대체된 사실 등이 어우러져 현재 아주 분명한 생물층서학적(biostratigraphic)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후의 진화는 거기서 생존하는(그리고 종종 인류 작용에 의해 재배치된) 군체로부터 일어날 것이므로 그 영향은 영원히 지속되는 셈”이라고 그들은 암울한 말투로 경고한다. 다시 말해 진화 자체가 새로운 궤도에 들어서게끔 강제되었다는 것이다.
2. 자발적인 탄소 제거?
위원회가 인류세를 즉위시킨 일은 작년에 발행된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의 4차 평가보고서를 둘러싸고 점증된 과학적 논쟁과 시기상 일치한다. IPCC는 지구온난화 완화 노력을 국제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한 과학적 기본정책을 수립하는 임무를 띠지만, 지금 그 분야의 몇몇 탁월한 연구자들은 그 기본 씨나리오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아예 그림의 떡과 같은 생각이라며 그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의 씨나리오는 과학기술적·경제적 발전을 비롯하여 인구증가와 관련된 서로 다른 “내용전개”를 근거로 미래의 전지구적 배출의 기본 입안을 마련하기 위해 2000년 IPCC가 채택한 것이다. IPCC의 주요 씨나리오 중 일부는 정책 입안자들과 온실효과 활동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전문연구자집단의 외부에서 이 훌륭한 청사진, 특히 미래에 경제가 발전하면 그에 따라 더 큰 에너지 효율성이 “자동적으로” 생겨날 것이라는 IPCC의 확신을 실제로 읽어보거나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평상시와 같을 때”의 변수까지 포함한 모든 씨나리오에서, 미래 탄소 감소의 적어도 60%는 온실효과 완화조처와 무관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한다.
사실상 IPCC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탄소 이후의 세계경제로 나아가는 시장논리 주도의 경향에 농장 정도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걸었다.2 그러한 이행은 높은 에너지 가격에서 나온 부(富)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재생에너지(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반으로 줄이려면 45조달러가 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쪽으로 흘러갈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자발적인 탄소 제거와 각 씨나리오가 요구하는 배출목표치 사이에 생겨나는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는 쿄오또(京都)의정서 유형의 합의와 탄소시장이 케인즈식‘경기부양책’에 버금가는 규모로 설정된다. 아주 뜻하지 않은 행운처럼 이것은 지구온난화 완화비용을 낮추어, 2006년 영국의 『기후변화의 경제학에 대한 스턴 리뷰』(Stern Review on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나 다른 유사한 보고서들이 상술한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에 맞출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판자들에 의하면 이는 온실가스 증가를 완화하려 할 때 드는 경제적 비용과 그에 따르는 기술적 장애들 및 사회적 변화를 매우 과소평가하는 엄청난 신념의 비약을 의미한다. 예컨대 그토록 찬사를 받은 2005년 유럽연합의 배출총량거래제(cap-and-trade system) 도입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탄소배출량은 여전히 증가추세이며 몇몇 분야에서는 그 증가세가 현저하다. 마찬가지로 IPCC씨나리오의 필수조건인 에너지 효율성이 자동적으로 진척되고 있다는 최근의 증거는 거의 없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특이하게도 애써 다른 견해를 보이려 하지만, 대부분의 에너지 연구자들은 실제로 2000년 이후 에너지 원단위(energy intensity)3가 증가해왔다고 믿는다. 즉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에너지 사용량과 보조를 맞춰왔거나 심지어 그보다 약간 더 빨리 증가했다는 것이다.
19세기가 다시 돌아와 21세기를 떠돌면서 특히 석탄 생산은 획기적인 부흥기를 맞고 있다. 지금 수십만의 광부들은 찰스 디킨즈(Charles Dickens)가 대경실색할 만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중국에 매주 두개의 새 화력발전소를 열 수 있는 분량의 더러운 광물을 캐낸다. 그사이에 국제적으로 석유 수출량이 두배가 되면서 화석연료의 총소비량은 다음세대에 걸쳐 적어도 5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목표를 자체적으로 연구해온 유엔개발계획(UNDP)은 온난화가 급속히 심화되는 위험지대(보통 금세기의 섭씨 2도 증가보다 증가폭이 더 클 때로 정의되는)로 인류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2050년에는 전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0%는 줄여야 할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국제에너지기구는 사실상 이 기간 내에 그 배출량이 100% 가까이 증가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예측한다. 그 정도면 우리가 위기 전환점을 몇번이나 넘겨야 할 만큼의 온실가스이다.
높은 에너지 가격 때문에 SUV가 단종될 정도로 사양길에 들어서고 투기자본이 점점 더 재생에너지로 몰려드는 와중에도, 그 때문에 또한 캐나다의 유사(油砂)와 베네수엘라의 중유(重油)에서‘원유 중에서도 불순물 가득한 원유’(the crudes of crude oil)를 생산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한 영국 과학자가 경고했듯이,‘에너지 독립’이라는 잘못된 구호 아래 우리가 결코 바라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탄화수소 생산영역을 새롭게 개척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수 있는 인류의 능력”은 향상시키고 “비탄소 혹은 고정된 탄소 에너지 순환”으로의 절박한 이행은 늦추는 일이다.
3. 말세의 벼락경기
기존의 에너지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혹은 예컨대 군비 지출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투자를 재분배할 수 있는 시장의 능력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셰브런(Chevron)이나 파이저(Pfizer),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같은 거대기업들이 저탄소 연료나 새로운 백신 그리고 가뭄에 강한 농작물 등을 만들기 위한 연구조사에 이윤을 재투자함으로써 지구를 구하는 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선전을 (특히 공영방송에서) 끝없이 보고 듣는다. 오늘날 1억톤의 곡물을 인간의 음식물이 아니라 주로 미국의 자동차 엔진을 위해 전용하는 옥수수에서 나오는 에탄올연료 붐이 섬뜩하게 보여주듯이,‘바이오연료’란 부자에게 돌아가는 보조금이자 가난한 자들의 굶주림에 대한 미사여구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후보(그는 에탄올연료를 옹호하기도 하는데)의 열렬한 보증에도 불구하고, 현재‘무공해 석탄’은 그저 거대한 사기극일 뿐이다.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가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면 몇십년은 더 있어야 할”것으로 간주한 잠정적 기술을 광고하고 로비하는 데 4천만달러를 들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에너지기업과 공익사업체들이 탄소포집과 대안에너지 기술 개발에 기울이던 공적인 노력에서 점차 손을 떼고 있다는 불안한 조짐도 있다. 석탄산업 쪽이 공공과 민간분야‘합자사업’중 자신들이 맡은 몫의 지불을 거부한 후, 부시 행정부의‘전시행정 프로젝트’인 퓨처젠(Future Gen)은 올해 계약이 파기되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최근 대부분의 미국 민간분야 탄소격리 발의가 취소되었다. 그 시기 영국에서는 셸(Shell)사가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 계획인 런던 어레이(London Array)를 철회했다. 광고는 엄청나게 해대지만 사실 에너지기업들은 제약회사들이 그러듯이‘공유지’를 과잉사용하며, 진작에 이뤄졌어야 하는 긴급한 연구를 실행할 때마다 비용은 기업이윤이 아니라 세금으로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높은 에너지 가격에서 생겨나는 경제적 이득은 계속해서 부동산과 고층건물, 금융자산으로 흘러들어간다. 우리가 사실상 허버트 정점(Hubbert’s Peak)4-그 오일 정점의 순간-의 꼭대기에 있든 그렇지 않든, 유가 거품이 결국 꺼지든 그렇지 않든, 아마도 지금 목격하는 것은 근현대사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는 부(富)의 이전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저명한 계시자인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McKinsey Global Institute)는 원유가가 배럴당 1백달러 이상-현재는 배럴당 140달러에 근접하고 있다-에서 유지된다면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에서만 “거둬들이는 굴러들어온 돈의 액수가 2020년까지 거의 9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1970년대에 그랬듯이, 지난 3년 만에 국내총생산이 두배가 된 사우디아라비아와 페르시아만의 이웃 국가들은 유동자산으로 넘쳐난다.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평가에 따르면, 은행과 투자기금에 있는 돈만 해도 2조 4천억달러에 이른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예측으로는, 가격추세와 상관없이 “더욱 많은 석유가 점점 더 극소수의 나라에서, 주로 중동지방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에서 나올 것이다.”
석유에서 나오는 자체 소득이 거의 없는 두바이는 이 엄청난 부의 저수지에서 지역적인 금융 중추가 되었고, 종국에는 월스트리트와 런던에 맞먹겠다는 야심을 내보인다. 1970년대 제1차 오일쇼크 당시 OPEC의 잉여자본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에서 군사장비를 구입함으로써 환류되거나 외국 은행에 집결되어 결국 라틴아메리카를 파탄에 빠뜨린‘써브프라임’대출이 되었다. 9·11테러의 결과로 걸프국들은 미국처럼 종교적 광신도들이 지배하는 나라에 자신들의 자산을 맡기는 데 훨씬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은 이제 외국 금융기관에서 좀더 적극적인 지분을 획득하기 위해‘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s)5를 조성하고, 동시에 아라비아의 사막을 환상적 규격의 도시와 쇼핑천국 그리고 영국 록스타와 러시아 갱들을 위한 사유지 섬으로 바꿔놓는 데 석유수익 중 터무니없는 액수를 쏟아붓고 있다.
2년 전 유가가 지금 수준의 절반도 안되었을 때, 『파이낸셜 타임즈』(The Financial Times)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계획된 새로운 건설사업 비용이 이미 1조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그것은 1조 5천억달러에 육박할 텐데, 그 액수는 농업생산 분야 세계무역의 총가치보다 훨씬 많다. 대부분의 걸프 도시국가들은 환각적인 마천루를 짓고 있고, 그중에서 두바이는 두말할 나위 없는 슈퍼스타이다. 10년 조금 더 되는 기간에 5백개의 고층빌딩을 지었고 현재 전세계 고공크레인의 4분의 1을 빌려쓰고 있다.
유명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세계의 재구성’이라고 주장한, 이 잔뜩 충전된 걸프지역의 벼락경기 덕분에 두바이 개발업자들은 7성호텔과 사유지 섬,J급 요트로 대표되는‘최상의 생활양식’의 도래를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아랍에미리트연합과 그 이웃 나라들이 지구상에서 1인당 가장 큰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s)6을 가지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사이 석유에서 나오는 부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자들인 아랍 대중은 바그다드와 카이로, 암만과 하르툼의 분노에 찬 주거지에 구겨박힌 채, 유전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푼돈과 사우디에서 보조금을 받는 이슬람학교(madrassa) 외에 내세울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두바이에 있는 돛 모양의 유명 호텔 알아랍 타워(Burj Al-Arab)에서 손님들이 하룻밤에 5천달러짜리 방을 즐기고 있을 때, 카이로 노동계급은 감당할 수 없이 비싼 빵값 때문에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4. 시장이 빈민계층의 입지를 넓혀줄 수 있는가
물론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낙관론자들은 이런 어두운 전망을 웃어넘기며 다가오는 탄소무역의 기적을 환기시킨다. 그들이 도외시하는 것은, 화석연료의 총사용량을 실제로 줄이도록 강제하는 기제가 없는 한 탄소상쇄(carbon-offset)7 시장이 예상대로 여기저기 뻗어가더라도 전지구적인 탄소 대차대조표상으로는 겨우 최소한의 개선밖에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배출권 거래씨스템에 대한 대중적 토론에서 굴뚝을 나무로 오인하는 일은 흔히 벌어진다. 예를 들어 두바이와 마찬가지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가맹국인 부유한 석유도시 아부다비는 자신들이 1억 3천만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이 나무들이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사막에 조성된 이 인공숲은 또한 돈이 많이 드는 탈염(脫鹽)공장에서 생산되거나 재활용되는 엄청난 양의 관개용수를 소모한다. 그 나무들 덕택에 셰이크 아흐메드 빈 자예드(Sheik Ahmed bin Zayed, 아부다비투자청 이사)가 국제회의에서 후광을 발하고 다닐지는 몰라도, 적나라한 진실은 대부분의 이른바‘녹색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숲도 결국 에너지 집약적인 조경지역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물어나 보자. 탄소배출권과 오염상쇄권을 사고파는 일이 결국 자동 온도조절장치의 온도를 내리는 데 실패하면 어쩔 것인가? 그땐 도대체 무슨 동기로 정부와 전지구적 기업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규제와 과세로써 배출량을 줄이는 성전에 나서게 될 것인가?
쿄오또의정서 유형의 기후외교에서는 모든 주연배우들이, 일단 IPCC보고서의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치솟는 온실효과를 다잡아 규제하는 데 최우선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지구를 침략한 화성인들이 닥치는 대로 전인류를 절멸시키려 하는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이 아니다. 그 대신 기후변화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지역과 사회계급에 따라 말할 수 없이 불균등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정학적 불평등과 갈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다.
유엔개발계획이 작년 보고서에서 강조했듯이, 지구온난화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목소리를 전혀 혹은 거의 지니지 못한 두 유권자 계층”인 빈민층과 장차 태어날 후손들에게 위협이 된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전지구적 공동행동이 가능하려면 (IPCC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씨나리오이지만) 혁명적으로 그들이 정치적 권한을 부여받거나 혹은 부자나라와 부유층의 이기주의가 역사에 유례없는 계몽된‘연대’로 탈바꿈할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합리적 행위자의 시각으로 볼 때, 후자의 결과가 현실화되려면 특권계층이 마음에 드는 다른‘탈출구’를 선택할 여지가 없거나 국제 여론이 핵심국가에서의 정책결정을 몰아가거나 북반구 부유층의 삶의 기준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온실가스를 완화할 수 있음이 분명해져야 할 텐데, 그 어느 것도 그리 가능성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활력을 불어넣을 영웅적 혁신과 국제적 협동 대신에, 점증하는 환경적·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엘리뜨집단이 훨씬 더 광적으로 나머지 인류에서 떨어져나와 스스로를 벽으로 둘러치는 일에 나선다면 어쩔 것인가? 별로 탐구된 바는 없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은 이러한 씨나리오에서, 지구호의 1등석 여행객에 대한 선택적 편의에 더욱 많이 투자하기 위해서 전지구적 고통을 경감하는 일은 암묵적으로 포기(어느정도는 이미 포기되고 있듯이)된다. 그러니까 지구상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영원한 풍요로움의 녹색 오아씨스가 만들어지고 그밖의 나머지 지역은 모두 황폐해질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조약도 있고 탄소배출권이나 기아 구호, 박애주의 곡예도 있으며, 유럽의 도시나 작은 나라들이 전면적으로 대안에너지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전혀 배출하지 않는 생활방식으로 바꾸려면 거의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돈이 들 것이다. (영국에서 현재 무탄소의‘6레벨’친환경 주택을 지으려면 같은 지역의 표준적인 주택보다 20만달러가 더 든다.) 그리고 기후변화, 최대치에 달한 석유와 물에다 15억이 더 늘어난 지구상의 인구가 모두 함께 영향을 미쳐서 심각하게 성장을 억누르기 시작할 2030년 이후에 그 비용은 분명 훨씬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5. 북반구 선진국의 생태학적 채무
진짜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부자 나라들이 IPCC에서 정한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고, 그런 점에서 가난한 나라들이 이미 ‘떠맡은’ 불가피한 온난화의 몫-세계 대양의 순환을 타고 이제 우리 쪽으로 슬슬 다가오는-에 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정치적 의지와 경제적 자원을 과연 동원하기는 할 것인가?
좀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부자 나라의 유권자들이 담으로 둘러막은 국경과 현재의 편협함을 털어버리고, 마그레브(아프리카 북서부 지역)나 멕시코,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같은 가뭄과 사막화의 예견된 진원지로부터 피난민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1인당 해외원조액으로 봤을 때 가장 인색한 국민인 미국인들은 방글라데시처럼 인구가 밀집한 거대 삼각주지역에서 홍수로 집을 잃게 될 수백만의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일을 돕기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낼 것인가?
시장중심적인 낙관주의자들은 또다시‘청정개발기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같은 탄소상쇄 프로그램을 내세우며, 이를 통해 녹색자본이 제3세계로 흘러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마도 제3세계 대부분은 차라리 제1세계가 자신들이 환경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깨끗이 치우는 일을 책임지는 쪽을 원할 것이다. 탄소배출에 누구보다도 기여한 바가 없고 2백년간의 산업화에서 가장 적은 이익밖에 얻지 못한 사람들이 인류세(Anthropocene)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무거운 짐을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은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당하다.
최근 『〔미국〕국립과학원 연보』에 실린 냉철한 연구보고서에서, 연구팀은 1961년 이후 산림파괴와 기후변화, 남획, 오존층 파괴와 홍수림(mangrove) 변환, 농업의 확장 등으로 나타난 경제적 전지구화의 환경적 비용을 계산해보고자 했다. 상대적인 비용부담을 정산해보니, 가장 부유한 나라들은 자신들의 활동으로 전세계적인 환경악화의 42%를 유발했으면서도 그로 인한 비용의 단지 3%만을 떠맡았을 뿐이었다.
남반구 개발도상국의 급진세력들은 또다른 빚도 당연히 지적한다. 30년 동안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은 위험천만한 속도로 성장해오면서 그에 상당하는 기반시설이나 주거, 공공의료 등에 대한 공적 투자를 하지 못했다. 이는 상당부분 독재자들이 끌어들인 외채의 결과이거나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상환이 강제되고 세계은행의‘구조조정’합의에 의해 공적 부문이 초토화된 결과였다.
이렇게 지구 전역에 걸친 기회와 사회적 정의가 결핍되어 있는 상황은, 유엔 인간정주위원회(Habitat)에 따르면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현재 슬럼에 살고 있고 2030년경에는 그 수가 두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에서 분명히 포착할 수 있다. 비공식 부문(대량실업을 제1세계에서 좋은 말로 이렇게 부르는)에서는 그만큼의 혹은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그 와중에 순수하게 인구통계학적 추세로 따지더라도 앞으로 40년 동안 세계의 도시인구는 30억으로 늘어날 텐데 그중 90%가 가난한 도시의 거주민일 것이다. 그래서 심화하는 식량과 에너지 위기 속에서, 기본적인 행복과 존엄을 향한 불가피한 열망은 차치하고라도 생물학적인 생존을 위해 이 슬럼투성이 행성이 어떻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정말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같은 얘기가 과도하게 종말론적이라고 느낀다면, 대부분의 기후모델에서 현재의 불평등한 지형을 기이하게도 더욱 강화시킬 영향력이 드러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지구온난화 경제학의 선구적 분석가 중 하나인 피터슨연구소의 윌리엄 클라인(William R. Cline) 연구원은 21세기 후반에 기후변화가 농업에 끼칠 법한 영향을 나라별로 연구한 결과를 최근에 발표했다. 가장 낙관적으로 가정했을 때도 파키스탄(현재 농업생산물의 20% 감소 예상)과 인도 북서부(30% 감소)의 농업구조는, 대부분의 중동지방과 마그레브, 사하라사막 주변의 초원지대, 남아프리카, 카리브해 지역, 멕시코 등과 함께 파탄날 가능성이 크다. 29개 개발도상국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현재 농업생산물의 20%나 그 이상의 손실을 보겠지만, 이미 부유한 북반구 선진국의 농업은 평균 잡아 8% 정도 상승할 것이다.
그러한 연구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품과 농경지에 대한 국제적인 투기에 의해 확대·심화되는, 에너지와 식량시장을 둘러싼 현재의 무자비한 경쟁은 자원고갈과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불평등, 기후변화가 모두 합쳐져 곧 기하급수적으로 심화될 혼란에 대한 아직은 대수롭지 않은 전조일 뿐이다. 진정한 위험이란 인간의 연대(連帶) 자체가 남극 서부의 빙붕(氷棚)처럼 갑자기 균열이 생기면서 수천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다.
번역: 정소영 / 용인대 영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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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질학적 시기의 시작과 끝은 연속된 퇴적물 이후 특정 생물의 화석이 나오기 시작하는 층으로 정해지는데, 이 지점을‘황금 스파이크’라고 부른다.↩
- ‘되든 말든 해보다’(bet the ranch)라는 표현을 이용하여 내기 건 것이 농장(ranch) 정도가 아니라 지구 전체(planet)임을 말하는 재담.↩
- GDP 1단위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 사용량의 비율. 에너지 효율이 높을수록 에너지 원단위는 낮다.↩
- 특정한 지역이나 전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시간에 따른 석유 생산이 종 모양의 곡선을 그린다는 미국 지질학자 허버트(M. King Hubbert)의 이론에서 최대치의 석유 생산에 이른 맨 위의 점을 오일 정점(peak oil)이라고 부른다.↩
- 정부가 직접 소유하고 운용하는 자산으로, 주식이나 채권, 그밖의 금융상품 등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다.↩
-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자원 생산과 배출 쓰레기 처리에 필요한 토지와 물의 양을 계산한 것으로,‘헥타르’등과 마찬가지로 토지를 측량하는 단위를 나타낸다. 그 지수가 높을수록 지구에 해로운 영향을 더 많이 끼치므로,‘생태 파괴지수’라 할 수 있다. 비슷한 것으로‘탄소 발자국’이 있다.↩
- 전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로, 에너지 사용을 피할 수 없을 때 직접 나무를 심거나 그런 사업에 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탄소배출권을 구입하여 자신의 배출량을 상쇄하는 방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