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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경숙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4(마지막회)

엄마를 부탁해

 

 

제4장 아무도 모른다

 

소나무가 울창하구나.

어떻게 이 도시에 이런 마을이 있다냐? 참, 꼭꼭 숨어 있구나. 엊그제 눈이 왔냐? 나무에 흰 눈이 소복하구나. 네 집 앞에 어디 보자 소나무가 세그루나 있네. 내가 앉기 좋으라고 꼭 그 사람이 옮겨 심어놓은 것 같구나. 내가 그 사람 얘기를 꺼내다니. 그래도 나는 너를 만나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갈 것 같어. 그럴 게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 형제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며 오피스텔들은 내 눈엔 다 똑같이 보여. 어느 집이 어느 집인지 혼란스럽고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어째 그리 똑같은 공간에서들 살재? 각자 다르게 생긴 집에서들 사는 게 좋을 것 같어. 헛간도 있고, 다락방도 있음 좋지 않을거나. 아이들이 숨을 데가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거나. 니가 걸핏하면 심부름을 시키려 드는 손위 오빠들을 피해 그 집의 다락방에 숨었듯이. 이젠 시골에도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이 불쑥불쑥 생겼고나.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봤냐? 거기서 읍내에 새로 생긴 고층아파트들이 다 보이재. 네가 자랄 때만 해도 버스조차 다니지 않던 마을이었는데. 시골도 그런디 사람 많은 여기서야 뭐라겠냐. 그냥 똑같이만 안 생겼으면 좋겄어. 너무나 똑같이 생겨서 나는 도무지 어디도 찾아갈 수가 없어. 네 오라비 집도, 네 언니 오피스텔도 나는 못 찾아가. 그것은 내 사정이다. 내 눈엔 너무나 다 똑같이 생긴 입구, 다 똑같이 생긴 문들인데 사람들은 한밤중에도 자기 집을 잘 찾아가네. 하물며 아이들조차도.

너는 용케도 여기 살고 있네.

여기가 어디다냐?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여기가 종로구란 말이냐? 종로구… 종로구… 아, 종로구! 그 옛날 니 큰오라비가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 주소의 시작이 종로구였다. 종로구 동숭동이었재. 어머니, 여기가 종로구예요, 그랬재. 주소를 쓸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종로는 이 서울의 중심이거든요. 근데 거기에 내가 살고 있잖아요. 시골 촌놈이 드디어 종로에 입성한 거예요, 그랬어. 그때도 서울의 중심 종로구라는데 내 기억엔 낙산이라던가 하는 가파른 산자락에 다닥다닥 위험하게 붙어 있는 연립주택이었어. 거기까지 올라가는데 어찌나 숨이 차던지. 그때도 아이구, 이 도시에 어찌 이런 곳이 있는고, 우리 시골보다 아주 더 시골이네, 생각했었고나. 그런데 여기가 그러네. 그때와 똑같은 생각이 드네. 어찌 이 도시에 이런 곳이 있다니.

작년에 네 가족들이 삼년 남짓 되었던 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 전세도 못 얻게 되었다고 실망하더니 이런 마을을 찾아낸 모양이로구나. 여긴 완전히 시골마을여. 커피집도 있고 미술관도 있긴 하나 방앗간도 있더구나. 방앗간에선 흰 가래떡을 뽑고 있더구나. 옛날 생각이 나서 한참 구경을 했구나. 설이 다가오는가. 방앗간에서 흰 떡을 뽑는 사람들이 꽤 있던걸. 아직도 설이라고 흰 떡을 뽑는 그런 마을이 이 도시에도 있구나. 설 때가 되면 쌀을 한말이나 리어카에 실고 떡을 뽑으러 방앗간에 가곤 했었재. 차례를 기다리느라 언 손을 호호 불곤 했었는데.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살기에는 불편하겠네. 사위가 선릉까지 출근하려면 먼 길이기도 하겠고나. 주변에 시장은 있는 게야?

- 마트에 한번 다녀오면 무엇을 많이 산 것 같은데도 금방 먹고 없어. 요플레를 하나씩만 먹일래두 세개 사야 하잖아. 사흘치 사려면 그것만도 아홉개야, 엄마! 무서워 죽겠어요. 이만큼 샀는데 금방 없어진다니까!

너는 팔을 크게 벌리며 이만큼을 강조했었재. 아이가 셋이니 당연한 일이재.

 

뺨이 붉게 물든 네 첫째가 타고 온 자전거를 대문 앞에 세워두려다가 흠칫 놀라네. 첫째가 엄마! 너를 부르며 황급히 대문을 밀고 들어가는구나. 잿빛 카디건을 걸친 네가 셋째를 가슴에 안은 채 왜?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밀창 문을 밀며 나오네.

- 엄마! 새가!

- 새?

- 응, 대문 앞에!

- 무슨 새?

첫째가 대답을 않고 손가락으로 대문을 가리키네. 네가 안고 있는 셋째아이가 추울세라 윗옷에 달린 모자를 잡아당겨 얼굴에 씌우고 대문께로 나가보는구나. 몸 전체가 잿빛을 띤 흰 새가 대문 앞에 널브러져 있네. 머릿등부터 날개까지 검은 점무늬가 박혀 있네. 날개가 꽁꽁 얼었구나. 새를 바라보는 너의 눈이 흔들리네. 내 생각을 하고 있군. 그런데 얘야, 네 집 주위는 온통 새투성이네. 웬 새들이 이리 많어? 겨울새들이 소리도 내지 않고 네 집 위를 맴돌고 있구나.

며칠 전에 네 집 모과나무 밑에 까치가 앉아서 떨고 있는 걸 보고 배가 고프겠지, 싶어 너는 집으로 들어가 아이가 먹다 남긴 빵을 부스러뜨려 모과나무 밑에 뿌려주었재. 그때도 너는 이 에미 생각을 했어. 겨울철이면 앙상한 감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 먹으라고 묵은쌀을 한 됫박 퍼와 감나무 아래에 뿌려주었던 나를. 네가 빵부스러기를 뿌려준 저녁때에 모과나무 아래로 스무마리도 넘는 새들이 날아들었재. 날개가 네 손바닥만한 새도 있었어. 그날부터 너는 날마다 배고픈 겨울새들을 위해 빵부스러기를 모과나무 아래에 뿌려두곤 했재. 그런데 모과나무 아래도 아니고 대문 앞에 널브러져 있는 새라니. 그 새 이름은 내가 알고 있다. 개꿩이야. 이상도 하네. 혼자 다니는 새가 아닌데 왜 여기에 있다니? 해안가에나 있어야 할 새인데. 그 사람이 사는 곰소에서 봤던 새야. 썰물 질 때에 거기 갯벌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개꿩들을 봤어.

네가 가만 서 있자, 큰애가 네 팔을 잡고 흔든다.

- 엄마!

- ……

- 죽었어?

큰애가 물어도 너는 입을 다물고 있다. 얼굴이 굳어지며 그저 가만 새를 보고 있다.

- 엄마! 새가 죽었어?

바깥의 소란에 튀어나온 둘째가 다가와 물어도 셋째를 안은 채 너는 말이 없다.

 

전화벨이 울리네.

- 엄마, 이모!

큰딸이 전화를 한 모양이군. 네가 둘째에게서 수화기를 건네받는다. 수화기를 받아든 네 얼굴이 또 굳는다.

- 언니가 가면 어떡해?

큰딸애가 또 비행기를 탈 모양이군. 네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입술이 떨리는 것도 같네. 갑자기 네가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얘야, 너는 그런 애가 아니잖어. 왜 언니에게 소리를 지른다냐.

- 다들 너무해… 다들 너무해!

수화기를 쾅 내려놓아버리기까지 하네. 그건 네 언니가 너한테 그리고 나한테 하는 짓인데. 곧바로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수화기를 한참 바라보고만 있더니 벨소리가 멈추지 않자 네가 수화기를 든다.

- 미안해, 언니.

그사이 목소리가 침착하게 돌아와 있네. 너는 수화기 저편에서 네 언니가 하는 말을 가만 듣고 있네. 그러다가 다시 얼굴이 붉어지네. 갑자기 소리를 팩 지르네.

- 뭐? 싼띠아고? 한달이나?

네 얼굴이 더욱 붉어지네.

- 지금 가도 되냐구 나한테 묻는 거야? 이미 가기로 다 결정해놓고 묻긴 왜 물어! 그럴 수 있어?

수화기를 들고 있는 네 손이 떨리고 있네.

- 대문 앞에 새가 죽어 있었어. 기분이 나빠.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단 말야! 왜 여태 엄말 못 찾아! 왜! 그리군 어딜 간다구? 모두들 왜 그래? 언니까지 그럴 거야? 이 추운 날에 엄마가 어딨는 줄도 모르는데 그렇게 다들 제 할일 다 하구 그럴 거냐구!

얘야, 진정해라. 언니 마음도 이해해야지. 지난 세 계절 동안 네 언니 꼴을 보고도 하는 소리냐.

- 뭐? 나한테 엄마를? 나한테! 내가 애들 셋을 데리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도망치는 거지? 죽겠으니까 도망치는 거지? 언닌 늘 그랬어.

얘야, 괜찮아진 거 같더니 왜 또 그러냐. 수화기를 또 쾅 내려놓고 엉엉 울기까지 하네. 셋째가 따라 우네. 셋째 코가 금방 빨개지네. 이마까지 빨개지는구나. 둘째가 덩달아 우네. 첫째가 방문을 열고 나오다가 우는 세 사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네. 전화벨이 또 울리네. 울던 네가 얼른 수화기를 든다.

- 언니…

네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 가지 마! 가지 마! 언니!

결국 큰딸애가 너를 달래고 있네. 달래다 안되니 큰딸애가 네 집으로 오겠다고 하네. 수화기를 내려놓고 너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네. 셋째가 네 무릎 위에 올라앉는다. 네가 셋째를 품에 안는다. 둘째가 다가와 네 뺨을 어루만진다. 네가 손을 뻗어 둘째의 등을 토닥여준다. 첫째가 너를 기쁘게 해주려고 네 앞에 엎드려 수학문제를 푼다. 네가 첫째 머리를 쓰다듬는다. 열린 대문을 밀고 큰딸애가 들어오네. 아이구, 윤아! 큰딸애가 밀창문을 열어주는 네게서 셋째를 받아 안는다. 아직 낯가림이 심한 셋째가 이모인 큰딸애 품에서 엄마인 너에게 가려고 손을 뻗으며 버둥대네.

- 잠깐만 있어보렴.

큰딸애가 얼굴을 비비려 드니 셋째가 와앙 울음을 터뜨리네. 큰딸애가 너에게 아이를 내민다. 엄마 품에 안겨서야 아이는 눈썹에 눈물을 매달고 이모를 향해 웃는다. 어이구! 큰딸애가 아이의 뺨을 문질러주네. 너희 자매는 말없이 앉아만 있네. 전화로 안되겠으니 이 눈길에 달려왔으련만 큰딸애는 아무 말이 없네.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퉁퉁 부어 그 큰 눈이 일자가 되어 있네. 오랫동안 잠을 숫제 못 잔 얼굴이야.

- 갈 거야?

오랜 침묵 끝에 네가 언니에게 묻는다.

- 안 갈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큰딸애가 소파에 쓰러지듯 엎드리네. 졸음에 떠밀려 몸을 가누지 못하네. 가엾은 것. 강한 척할 뿐 속은 물러터진 것. 몸을 그리 혹사해서 어쩌려고?

- … 언니! 자?

네가 언니의 어깨를 흔들어보다 손바닥으로 쓸어주네. 잠든 언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네. 어려서도 무슨 일로 거칠게 서로 항변하며 싸우다가도 너희는 금세 조용해지곤 했재. 야단을 치려고 보면 서로 손을 잡고 자고 있곤 했어. 네가 방 안으로 들어가 담요를 꺼내와 언니를 덮어주네. 큰딸애는 이마를 찡그리네. 부주의한 것. 그리 잠을 매단 채 운전을 하고 오다니.

- 미안해…

네가 웅얼거리자 큰딸애가 눈을 치떠 너를 보네.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네.

- 어제는 그 사람 어머니를 만났어. 결혼을 하면 내겐 시어머니 될 분이지. 그 사람 누나 집에 살고 계셨어. 그 사람 누나는 스위스라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어. 독신이야. 그 사람 어머니는 아주 작고 말갰어. 그 사람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어. 딸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면서. 그 사람 누나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우리 엄마 참 이쁘다 늘 그러니까 어느날부터 언니라고 불렀대. 그 사람 누나가 그러더라. 엄마 때문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거라면 걱정 말라고. 자기가 언니 노릇 하면서 엄마와 계속 살 거라고.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는 엄마를 요양원에 맡기고 여행을 가니까 자기가 없는 그때만 찾아 봐주면 된다고. 그 사람 누나는 레스토랑을 운영해 남은 돈으로 일년 중에 1월 한달간 여행을 다닌 지 20년 됐다고 했어. 엄마에게 언니라 불리며 사는데도 좋아 보였어. 그냥 스스럼없이 엄마가 여태 길러줬는데 이제 뭐 역할을 바꿨으니 셈이 맞는 거 아냐 하며 밝게 웃었어.

얘기를 멈추고 큰딸애가 가만히 너를 본다.

- 엄마 얘기 해봐.

- 엄마 얘기?

- 응… 너만 알고 있는 엄마 얘기.

- 이름: 박소녀.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 용모: 흰머리 많이 섞인 짧은 파마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지하철 서울역.

큰딸애가 너를 향해 실눈을 떴다가 졸음에 떠밀리며 다시 눈을 감네.

-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이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

 

이런,

내 이럴 줄 알았재. 이건 코미디에나 나올 장면이로구나. 아이구, 정신없어. 이런 판에 넌 웃음이 나오냐아? 네 아들 첫째가 저기서 모자를 쓰며 너에게 뭐라고 하고 있구나. 뭐라는 게야? 가만? 아, 스키장에 보내달라는군. 넌 안된다고 하네. 환경이 달라져 학교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지 않느냐고, 방학 끝나면 학교공부 따라갈 수 있게 이번 방학엔 아빠하고 함께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군.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힘들다고. 네가 말하는 사이에 식탁 밑에서 이제 걸음마을 배운 네 셋째가 밥알을 주워 먹으려 드네. 넌 손에 눈이 달렸냐? 눈은 첫째놈을 바라보고 말을 하면서 손은 셋째놈에게서 먼지 묻은 밥알을 뺏어내네. 셋째가 흐앙, 울음을 터뜨리려다 네 다리에 엉겨붙는구나. 네 손이 자연스럽게 넘어지려는 셋째 손을 붙잡네. 여전히 입으로는 첫째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네 말은 듣는지 마는지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던 첫째는, 나 다시 가고 싶어! 여기 싫어! 소리를 지르네. 방 안에서 네 딸 둘째가 너를 향해 엄마! 부르며 튀어나오네. 머리가 다 헝클어졌다고 투덜거리네. 조금 있다 학원 가야 한다고 빨리 머리를 땋아달라는구나. 네 손은 이제 딸아이 머리를 매만지고 있네. 입으론 계속 첫째에게 말을 하면서.

아, 세 아이가 한꺼번에 너에게 달라붙어 있네.

내 딸. 너는 세 아이 말을 동시에 듣고 있네. 네 몸은 세 아이에게 척척 잘 단련되어 있네. 너는 식탁의자에 둘째를 앉히고 머리를 빗기며 큰놈이 그래도 스키장에 가고 싶다고 하자 겨우 타협책으로 아빠하고 상의해보겠다고 말하다가 셋째가 넘어지자 얼른 빗을 내려놓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코를 문질러주고 다시 빗을 들어 둘째 머리를 빗기고 있네.

 

그러다가 네가 문득 창 바깥을 본다. 모과나무에 앉아 있는 나를 본다. 내 눈과 네 눈이 마주친다. 네가 웅얼거리네.

- 처음 보는 새네.

너의 세 아이들이 모두 네 시선을 따라간다.

- 대문 앞에 죽어 있던 새 식구인가 봐, 엄마!

둘째가 네 손을 잡는구나.

- 아냐… 그 새는 저렇게 안 생겼었어.

- 아니야, 맞어!

너희는 대문 앞에 죽어 있던 새를 이 모과나무 밑에 묻었재. 첫째가 땅을 팔 때 둘째가 나무십자가를 만들었어. 천방지축 셋째는 앙앙거리고. 네가 새를 집어 날개를 접고 첫째가 판 땅 속에 밀어넣을 때 둘째가 아멘! 그랬어. 새를 묻고 둘째는 사무실의 아빠에게 전화해 새를 묻은 이야기를 종알종알 옮기더군. 내가 십자가도 만들어줬어요, 아빠! 하면서.

 

바람결에 그 십자가가 쓰러져 있네.

 

네 아이들이 종알대는 소리를 들으며 네가 나를 잘 보기 위해 창가로 걸어오는구나. 네 아이들이 너를 따라 쪼로로 창쪽으로 몰려들어 나를 보네. 아이구, 그만 보렴. 난 너희들에게 미안해. 너희들이 태어날 때마다 너희들보다 네 에미 생각을 더 했재. 머리를 다 땋은 둘째가 빼꼼히 나를 보는군. 네가 태어났을 땐 네 엄마 젖이 말랐었지. 네 오빠 낳았을 땐 일주일도 안돼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너를 낳고 뒤끝이 좋지 않아서 네 엄만 한달도 넘게 병원에 있었단다. 그때 내가 네 어밀 돌봤어. 네 친할머니가 문안차 병원에 왔을 때다. 네가 울어대니 네 친할머니가 네 엄마보고 아기 운다고 빨리 젖을 물리라고 하더구나.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물리는 니 에미를 보며 내가 신생아인 널 향해 눈을 흘겼어. 네 친할머니를 얼른 돌려보내고 네 에미 품에서 너를 뺏듯이 안아들고 네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기까지 했재. 아기가 울면 친할머니는 아기 운다, 어서 젖 물려라, 하고, 외할머니는 저 애는 에미 힘들게 왜 저리 울어댄다냐… 한다더니 나도 다를 게 없었단다. 네가 그걸 알 리가 없건만 넌 이상하게 나보다는 네 친할머니를 더 따랐어. 나를 보면 할머니, 부르며 안녕하세요! 그랬지만 네 친할머니한텐 할머니이이- 부르며 달려가 푹 안기곤 했재. 그때마다 속으로 나는 그때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린 걸 니가 알고 있나 보네, 속으로 찔금했더란다.

참, 예쁘게 자랐어.

숱 많은 검은 머리 좀 보라지. 땋아내렸는데도 한주먹이네. 니 에미 어렸을 때와 똑같구나. 나는 니 에미 머리 한번 못 땋아주었네. 니 에민 머리를 기르고 싶어했는디 난 늘 네 에미 머리를 단발로 자르게 했고나.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빗겨줄 짬이 없었고나. 어려서 머리를 길러 땋고 다니고 싶었던 마음을 니 에민 너를 통해 푸는 모양이네. 눈은 나를 보면서도 손은 네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구나. 네 에미의 눈이 흐려지네. 저런, 또 나를 생각하는군.

 

얘야, 에미다. 이 북새통에 니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너에게 사과하려고 왔는데.

 

네가 셋째아이를 낳아 안고 돌아왔을 때 이 에미가 지었던 표정을 용서하렴. 네가 엄마! 하고 놀라서 내 얼굴을 빤히 보았던 그날이 늘 마음에 맺혀 있었고나. 무엇 때문이었냐? 너에게 세번째 아이가 생긴 게 계획에 없었던 일이어서였냐? 아니면 아직 결혼 안한 언니가 있는데 세번째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리는 게 민망해서였어? 셋째아이 생긴 걸 그 먼 땅에서 숨긴 채 혼자서 입덧하고 몸을 풀 때야 너는 셋째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걸 우리에게 알렸지. 저 어린 셋째를 낳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으면서도 아이를 안고 돌아온 너에게 내가 그랬어.

- 어쩌려구! 셋이나 어쩌려구!

미안하다 얘야. 네 셋째에게 미안허구 너에게두. 네 인생인데, 그것도 너는 문제를 푸는 데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내 딸인데 아무렴 네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할까. 엄마가 잠시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구선 내뱉은 말이었고나. 외국에서 돌아온 후 널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짓던 표정들도 용서하렴. 너는 분주했어. 어쩌다 네 집에 가보면 너는 아이들 뒤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 옷가지를 치우랴, 밥해 먹이랴, 넘어진 놈 일으켜 세우랴, 학교에서 돌아온 놈 가방 받아주랴, 엄마! 부르며 네 품으로 뛰어드는 놈 배로 받아주랴… 자궁근종 때문에 수술 받으러 가면서도 너는 그 전날까지 아이들 밥거리를 챙기느라 부산했어. 네 아이들 봐주러 네 집에 갔다가 냉장고 문 열어보고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너는 모를 거다. 냉장고 안에 아이들에게 먹일 나흘분의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재. 나한테 엄마! 내일은 맨 윗칸에 있는 저거 먹이구, 모레는 그 아래 거 먹이구… 설명하는 네 눈꺼풀이 푹 꺼져 있었어. 너는 그런 사람이었어. 매사 네 손으로 뭐든 다 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단 말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네가 셋째아이를 낳아 왔을 때 어쩌려구! 했던 것이여. 그날 밤에 네가 샤워하러 세면장에 들어가느라 바깥에 벗어놓은 옷들을 집어 보았다. 소매 끝이 다 닳은 네 셔츠엔 자둣물이 방울방울 묻었고, 무릎이 벙벙하게 나온 바지는 솔기가 터져 있고, 언제 산 것인지 낡은 브래지어 끈엔 보푸라기가 무성하게 일어나 있고, 돌돌 말린 채 놓여 있는 팬티는 무늬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가 없더구나. 꽃이었는지 물방울이었는지 곰이었는지… 얼룩얼룩했다. 너는 네 언니와 달리 유난히 깔끔했던 아이였는데. 흰 운동화에 콩알만한 얼룩 하나만 져도 다시 빨아 신곤 하던 너였는데. 이리 살려고 공부를 그리 했나 싶은 게. 사랑하는 내 딸. 생각해보니 너는 어려서부터 네 언니랑 달리 어린애를 참 이뻐했재. 너는 먹고 싶은 걸 손에 들고 있다가도 마을 어린애가 그걸 먹고 싶어하는 거 같으면 망설임 없이 내주는 아이였어. 너는 아이였을 적에도 너 자신이 아이이면서 우는 아이를 만나면 가까이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그랬어. 그런 너인 것을 이 에미가 깜박 잊고 있었다. 일을 다시 할 생각도 안하고 낡은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그저 아이 키우는 일에 몰두한 채 분주한 너를 뒤에서 쳐다보는 일이 속상했다. 걸레를 빨아 방을 닦는 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 에미가 했던 말, 너 이렇게 사냐! 했던 말 말이다. 그 말도 용서해라. 하긴 그때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것 같더라만. 나는 종내는 네 집에 가지 않았지. 배울 만큼 배우고 남이 부러워하는 능력도 가진 네가 왜 그리 꼬질꼬질 살고 있는지 보고 싶지가 않았고나. 착한 내 딸! 너는 닥친 상황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네가 왜 그러고 사는지 때로 화가 날 때가 있었고나.

 

얘야,

너는 이 에미에게 항상 기쁨이었다는 것만 기억해. 너는 내 네번째 아이지. 한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엄밀히 셈하면 너는 다섯번째란다. 네 위로 태어나면서 저세상으로 가버린 아이가 하나 있었재. 고모가 아이를 받았지만, 사내아이라고 말해줬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눈도 뜨지 않았재. 사산이었어. 네 고모가 사람을 사서 죽은 아이를 묻어야겠다고 해서 내가 그만두라 했고나. 네 아버진 그때도 집에 없었고나. 죽은 아이와 함께 나흘을 방 안에 누워 있었어. 겨울이었다. 밤이 되면 마당에 눈 내리는 모습이 문풍지에 비쳤다. 닷새째 되던 날, 일어나서 죽은 아이를 독에 넣고 지고 가 산에 묻었재. 언 땅을 판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그 아이가 언 땅에 묻히지 않았으면 네겐 오빠가 셋일 텐데. 그러구선 나는 너를 혼자 낳았고나. 무슨 일이 있었냐구? 아니…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아. 내가 너를 혼자 낳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네 고모가 서운해할 지경이었재. 지금에야 말하지만 나는 혼자 아이를 낳는 거보다 또다시 죽은 아이가 나올까 봐 그것이 두려웠어.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나. 또다시 죽은 아이가 나오면 이젠 그 사람 도움도 받지 않고 내 손으로 묻고 나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생각했재. 산통이 왔을 때 네 고모에겐 알리지도 않고 물을 덥혀 방 안에 들여놓고 어린 네 언니를 내 머리맡에 앉혔단다. 죽은 아이가 나올까 봐 소리도 지르지 않았어. 그런데 내 안에서 꼬물꼬물하고 따뜻한 네가 나왔어. 젖은 걸 닦아주지도 않은 채 엉덩이를 때려주자 곧 울음을 터뜨렸재. 너를 보고 어린 네 언니도 웃음을 터뜨렸다. 아가- 하며 손바닥으로 네 말랑한 뺨을 문질러주었재. 네가 살아 있다는 거에 취해 난 아픈 줄도 몰랐어. 나중에 보니 내 혓바닥이 피투성이였고나. 너는 그렇게 태어났어. 또다시 죽은 아이를 낳을까 봐 슬픔과 공포에 사로잡힌 나를 위로하며 세상에 나온 아이가 너란다.

 

그리고 얘야.

너에게만큼은 다른 엄마들이 하는 일을 나도 양껏 해볼 수 있었재. 젖도 많이 나와서 팔개월이 넘도록 너에게 젖을 물릴 수가 있었재. 자식들 중 처음으로 너에겐 유치원이라는 곳도 보내봤고, 고무신이 아닌 운동화를 첫 신발로 사 신겨보았재. 그래, 초등학교 입학할 땐 네 이름표도 내가 만들었어. 네 이름은 내가 처음 써본 글자였어. 그걸 위해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손수건과 함께 내가 처음 써본 글자이기도 한 네 이름표를 가슴에 달아주고 학교 운동장까지도 내가 데리고 갔재.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구? 나한테는 대단한 일이재. 네 큰오빠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도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으니까. 글씨 쓸 일이 있을까 봐 이리저리 둘러대고 네 고모를 보냈단다. 그때 네 큰오빠가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왔는데 나만 고모가 왔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네. 네 둘째오빠 입학할 땐 형 손에 쥐여 보냈네. 네 언니도 오빠 손에 달려 보냈어. 시내에 나가 책가방이며 프릴 달린 원피스를 사 입혔던 것도 네게만 한 일이란다. 그렇게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나. 네겐 비록 밥상만한 것일 뿐이었지만 그 사람에게 부탁해 앉은뱅이 책상도 짜주었재. 네 언닌 책상이 없었고나. 지금도 가끔 말하잖어.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 하느라고 어깨가 넓어졌다고 말이다. 네가 거기 앉아 공부하고 책 읽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에미에겐 큰 기쁨이었고나. 입시공부 하는 네게 도시락도 싸주어보았지. 야간자습 마치고 돌아오는 너를 기다렸다가 데려오기도 했고. 너는 또 그만큼 기쁨을 주었어. 그 소읍에서 공부를 젤 잘하지 않었냐. 서울의 일류대학에 합격해서, 그것도 약대에 합격해서, 네가 다닌 여학교엔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어. 어짜믄 그리 똘똘한 딸내미를 두었느냐고 인사를 받을 때마다 아마도 내 입이 귀밑까지 벙싯거렸을 게여. 너는 모를 게야. 너를 생각하면 엄마로서 버젓한 기분이 들었던 내 마음을 말여. 아무리 자식이라도 뭔가 해줘야 할 일을 못해준 자식들에겐 그런 마음 안 들더라. 자식인데도 미안하고. 너는 그런 마음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해준 자식이었재. 니가 대학에 들어가 데모를 하고 다닐 적에도 니 오빠에게 했던 것처럼 간섭하지 않았어. 명동에 있다는 성당에서 단식투쟁을 벌일 때도 찾아가지 않았지. 최루탄 가루 때문인지 네 얼굴이 여드름 범벅이 되어 다녀도 그냥 두었어. 나는 정확히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할 만하니까 하겠지, 싶었네. 니가 니 친구들하고 시골집에 몰려 내려와 야학을 차렸을 때는 니들에게 밥을 해주기도 했네. 니 고모가 딸내미 저리 두다간 빨갱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도 나는 니가 하는 말과 너의 행동을 자유롭게 두었고나. 오빠들에겐 그러지 못했어. 서울로 밤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말렸고나. 타이르고 야단치고 끌고 왔고나. 네 오빠가 전경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허리를 다쳤을 때 소금을 달궈 허리에 얹어주다가 계속 이런 식이면 엄마가 죽어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고나. 그러면서도 네 오빠가 무식한 엄마라고 생각할까 봐 가슴 졸이기도 했재. 그때는 그랬어. 전쟁이나 난 것처럼 말이다. 멀쩡한 청년을 마구잡이로 끌고 가던 때였어. 그냥 네댓이 모여 있는 것조차 안되는 그런 때였잖어.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으니 변명 같지만 에미로서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나. 두고두고 그런 일들이 마음에 맺혔고나. 젊으니까 젊은 대로 해야 되는 일이 있는 것이었을 텐데 나는 힘껏 가로막았재. 너한테는 안 그랬다. 니가 변화시켜놓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어도 널 막지는 않았어. 네가 대학생이었던 어느해 유월에 너와 함께 장례행렬을 따라 시청앞도 가보지 않았냐. 그때 네 조카가 태어나 내가 서울에 있었을 때였재.

기억력도 좋다구? 그러게 말이다.

기억력이라기보다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재. 내게는 그날이 그런 날이었네. 너는 새벽에 집을 나서다가 나를 보더니 엄마도 함께 갈래요? 물었재.

- 어딜?

- 오빠가 다녔던 학교에!

- 거긴 왜? 니 학교도 아님서?

- 장례식이 있어, 엄마.

- 더구나… 그곳엘 이 에미가 왜 간다냐?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방문을 닫고 나가려던 네가 다시 들어왔어. 갓 태어난 손자의 기저귀를 개고 있는 내 손에서 기저귀를 뺏었어.

- 엄마도 함께 가아!

- 곧 아침을 먹어야 하는 시간여. 니 올케 멕일 미역국도 끓여야구.

미역국 하루 안 먹는다고 올케가 죽겠어요, 너는 너답지 않게 거칠게 말하더니 내게 강제로 외출복으로 갈아입게 했어.

-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함께 가!

그 말이 좋았고나. 대학생인 네가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안 가본 나에게 학교에 가자면서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했을 때의 네 말투의 높낮이도 기억하고 있고나.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나는 처음 보았네. 전쟁때 읍내 학교운동장에 인민재판소가 차려졌을 때도 그리 모이지 않았었재. 우리가 함께 살던 곳에서도 오월이면 동학제가 열렸잖어. 그 옛날 가수 남진이 왔을 때도 그리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었단다. 최루탄을 맞고 죽었다는 겨우 스무살밖에 안되었다는 그 젊은이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내가 몇번이나 물어봐서 네가 몇번이나 일러줬는데도 가물가물하고나. 그 젊은이가 누구였기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게냐? 혹시 성자였냐? 어찌 그리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꼬. 내 너를 따라서 시청앞까지 그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동안 혹여 너를 놓칠까 봐 네 손을 찾아 꼭 붙잡고 또 붙잡고 하는 걸 보고 네가 그랬재.

- 엄마! 혹시 나를 잃어버리게 되면 왔다갔다 하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 서 있어. 그럼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

왜 그 말이 이제야 생각나는지 모르겠네. 지하철 서울역에서 네 아버지를 따라 열차에 올라타지 못했을 때 그때 떠올렸어야 했는데. 얘야, 너는 이처럼 내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사람이었다. 네가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부르는 노래를, 그 수많은 인파가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나는 알아들을 수도 따라하지도 못했다만 내가 광장이란 곳엘 나가본 게 그게 처음이었어. 나를 거기 데리고 간 네가 자랑스러웠고나. 거기서 너는 내 딸만이 아닌 것 같았재. 너는 집에서 볼 때와는 아주 달라 보였어. 너는 사나운 매 같았고나. 네 입술이 그리 단정하고 네 목소리가 그리 단호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네. 사랑하는 내 딸. 너는 그걸 시작으로 내가 서울에 올 때면 나를 식구들 속에서 빼내 극장에도 데리고 가고 능에도 데리고 갔재. 서점 안에 있는 음반 파는 곳에도 데리고 가 헤드폰을 내 귀에 대주기도 했재. 이 서울에 광화문이란 곳이 있다는 거, 시청앞이 있다는 거, 이 세상에 영화와 음악이 있다는 것을 너를 통해 알았고나. 엄마는 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고나. 니 형제들 중에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애가 너여서 뭐든 자유롭게 두자고 했을 뿐인데 그 자유로 내게 자주 딴 세상을 엿보게 했던 너여서 나는 네가 더 맘껏 자유로워지기를 바랐고나. 더 양껏 자유로워져 누구보다도 많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바랐고나.

 

… 나는 이제 갈란다.

 

그런데 저런,

셋째가 졸리나 보다. 입에 침을 흘리며 눈은 반이나 감겨 있네. 두 아이가 학교로 학원으로 나가니 그래도 집이 조용하구나. 그런데 이게 뭐냐! 아휴, 집이 아주 난장판이로구나. 내 원 참. 어질러져도 이렇게 어질러진 집은 처음 보네. 내가 좀 치워주고 싶어도… 이젠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아이를 재우다 내 딸이 잠이 드네. 그래, 고단도 하겠다. 내 새끼가 새끼를 품고 자고 있네. 겨울인데 무슨 땀을 이리 흘린다냐. 사랑하는 내 딸. 얼굴을 좀 펴봐라아. 이렇게 고단한 얼굴을 하고 잠을 자면 주름이 진다. 동안이던 네 얼굴은 사라지고 없구나. 초생달 같던 작은 네 눈이 더 작아졌어. 이젠 웃어도 어릴 때같이 귀여운 맛은 기대하기 어렵겠구나. 네 얼굴에 이리 주름이 질 정도로 내가 살았으면 내 명도 짧은 명이랄 순 없재. 그래도 얘야, 에미는 말이지. 네가 이렇게 새끼를 셋이나 품고서 살게 될 줄은 짐작 못했고나. 너는 화를 잘 내고 잘 울고 잘 토라지고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기가 넘어갈 만큼 감정적인 네 언니와는 달랐잖어. 시간표를 짜서 계획한 대로 실천하며 지내려고 애쓰는 게 너였잖어. 그런 네가 나도 몰랐네 엄마, 내가 애를 셋이나 낳을 줄은 몰랐어… 아이가 생겨버렸는데 낳아야지 그럼 어떡해요, 했을 때 난 참 네가 낯설었고나. 애를 낳아도 네 언니가 많이 낳을 줄 알었네. 너는 좀체로 화를 내는 법이 없지. 네 형제들 중 거칠게 화를 내는 사람 앞에서도 침착하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얘기할 줄 아는 이는 너뿐이야. 그래서 아이 낳는 일도 그렇게 이 현실과 따져서 하나만 낳을 줄 알았고나. 너는 오빠들처럼 책상을 갖게 해달라며 성질을 부리던 네 언니하고 달리 내게 한번도 떼를 쓴 적이 없어. 머리를 양 갈래로 묵고 방바닥에 엎드려 있어서 뭘 하고 있냐 물으면 수학 문제 풀고 있어요, 하곤 했다. 니 언니는 어려서부터 산수책은 들여다도 안 봤는데. 넌 아주 잘했재. 문제를 푸는 데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이가 너였어. 답이 나오면 헤, 하고 웃곤 했지. 그러나 엄마인 내가 왜 이리 되었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을 게다. 그래서 고통스러울 거야. 너는 네 세 아이들 때문에 나를 마음놓고 찾아다닐 수가 없었지. 해가 저물 때마다 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 오늘은 엄마 소식 없었어? 물을 수밖에 없는 이가 너였재. 아이들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고도 마음껏 찾아보지도 울어보지도 못한 게 너였어. 사랑하는 내 딸. 몸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았으나 정신이 맑을 땐 네 생각을 많이 했고나.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까지 세 아이를 길러야 할 너를, 네 인생을. 그럴 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김치를 담가 부쳐주는 거밖에 없다는 게 참 미련스럽게 느껴지곤 했다아. 네가 아이를 안고 시골집에 왔을 때, 신발을 벗으면서 어마, 내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네, 하고 웃을 적에 이 에민 가슴이 미어졌어야. 얼마나 정신없이 살면 그 깔끔하던 네가 양말도 제대로 짝 맞춰 신을 시간이 없나 싶어서. 간혹 정신이 맑아질 때면 너와 네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생각났어. 그때면 살아갈 의욕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이리 되었네. 내가 신고 있는 굽이 다 닳아버린 파란 슬리퍼를 벗고 싶어. 내가 입고 있는 먼지투성이인 여름옷도. 이제는 나도 이게 나인지 알아볼 수 없는 나의 몰골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어. 머리통이 깨지는 듯하고나. 자, 얘야. 머리를 들어보렴. 너를 안고 싶어.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난 이제 갈 거란다.

 

아, 당신이 여기 있네.

 

곰소의 당신 집을 찾아갔더니 빈집 된 지 한참 되었는지 해안을 향해 나 있는 나무 대문이 부서져 있고 방문엔 열쇠가 채워져 있습디다. 방문은 그리 꽉 잠가놓고 부엌문은 왜 열어뒀을까. 바닷바람이 그 부엌문을 얼매나 여닫았는지 나무 문이 반은 부서져 있습디다.

그런데 왜 병원에 있는 게요? 그리구 의사는 왜 저런다요? 치료는 안허고 부질없는 질문만 연달아 하네. 당신에게 당신의 이름을 자꾸만 물어보네. 왜 그런다요? 그리구 당신은 왜 당신 이름을 말하지 않으요? 김철이라고 말해버림 될 걸 그걸 말 안해서 저리 자꾸 되묻게 하오? 진짜 저 의사는 왜 저러까? 이젠 아이들이나 갖고 노는 모형 배를 들고 당신에게 이게 뭔지 아세요? 묻네. 장난하는 것도 아니구 배지 뭐긴 뭐람. 근데 진짜 이상한 건 당신이네. 왜 대답을 안허요? 어, 진짜 모르요? 당신 이름이 뭔지 잊었단 말이오? 저 모형 배가 진짜 뭔지 모른단 말이오?

의사가 또 묻네.

- 나이는?

- 백살!

- 그러지 마시고 나이 말씀해보세요!

- 이백살!

아주 심통이 나 있구려. 당신 나이가 왜 이백살이란 말요? 나보다 다섯이 밑이니 그럼 몇이더라. 의사가 다시 당신 이름을 묻네.

- 신구!

- 잘 생각해보세요!

- 주현!

주현? 탈랜트 주현 말이요? 내가 좋아하는 그 주현 말이우?

- 그러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시구 대답하세요.

당신이 훌쩍이네. 왜 그러시오? 당신이 왜 여기 있으며,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담. 지금 당신이 나이가 몇인데 고깟 것 대답을 못하고 훌쩍인단 말요. 신구와 주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그게 당신 이름이랬소? 당신의 눈물을 처음 보네. 울기는 늘 내가 울었재요. 당신은 내가 우는 것을 그리 많이 보았는데 나는 당신이 우는 것을 처음 보네.

- 자, 한번만 더 이름을 말해보세요!

- ……

- 한번만 말씀해보세요!

- 박소녀!

그건 당신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이요. 당신이 처음 내 이름을 물었던 날이 생각나네. 당신은 오래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 속의 자갈처럼, 흙 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줄 속의 거미줄처럼. 젊은 날이었네요. 사는 동안 어느 때도 이게 나의 젊은 날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디 당신을 처음 만나던 때를 생각해보니 젊은 내 얼굴이 떠오르네. 젊은 내가 방앗간에서 밀가루가 담긴 알루미늄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신작로를 걸어 집으로 가고 있네. 집에 돌아가 함지박 속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쑤어 자식들 저녁 먹일 양으로 젊은 내 발걸음이 바쁘네. 방앗간은 다리 너머 사오리는 되는 곳에 있었소이. 알루미늄 함지박에 가득 담긴 밀가루를 머리에 인 내 이마에 땀이 고이오. 그 신작로로 짐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당신이 저 앞에서 멈춰서 있다가 나를 부르네.

- 아주머니.

젊은 나는 앞만 보고 걷네. 몸뻬 위로 입은 저고리섶 사이로 가슴이 삐져나오려고 하네.

- 머리에 이고 있는 함지박 내려 나를 주오. 내가 자전거로 실어다 줄 테니.

- 지나가는 이를 어찌 믿고 이걸 준단 말이오?

말은 그러면서도 젊은 나의 발걸음이 느려졌소. 사실은 머리가 으깨져버릴 만큼 무거웠거든. 수건으로 똬리를 틀어 함지박 밑에 받쳤는데도 이마가 주저앉고 코가 내려앉는 것 같았소.

- 나는 어차피 빈 자전거로 가는 거 아니오. 어디 사시오?

- 저 다리 건너 마을에…

- 거기 초입에 가겟집 있지요? 그 집에 내려놓고 갈 테니 이리 내주고 가볍게 걸어오시오. 난 빈 자전거로 가는데 너무 무거워 보여 그러요. 그 함지박만 내려놓으먼 걸음도 빨라질 테니 집에도 더 빨리 가겠구먼.

젊은 내가 함지박 밑의 똬리 끝을 입에 문 채 짐자전거에서 내린 당신을 빤히 보네. 당신은 형철 아버지에 비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평범한 얼굴이오. 일이라곤 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희멀건 낯빛의 말상인 긴 얼굴에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와 있는 게 천상 잘생겼다고는 볼 수 없재. 짙은 눈썹이 일자로 뻗어 있는 게 정직해 보였소이. 입매도 단정해서 신뢰를 주었재. 가만히 쳐다보는 눈매는 어디서 본 듯도 하구 그랬소. 내가 선뜻 머리에 인 함지박을 내주지 않고 당신 얼굴을 살피자 당신은 도로 자전거에 올라타려 했소.

- 별 뜻 없소. 그저 너무 무거워 보여서 짐을 덜어주려던 것뿐이었재.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못하는 게지.

당신은 짐자전거에 달려 있는 튼튼해 보이는 페달 위로 다시 발을 올려놓았소. 나는 그제서야 얼른 당신을 향해 고맙다고 했구만. 걸음을 멈추고 내 머리 위의 함지박을 당신에게 내주었구만. 당신이 짐자전거 뒤칸에 매여 있던 굵은 고무줄을 풀고 함지박을 올려놓고 고무줄로 움직이지 않게 다시 고정시키는 걸 물끄러미 보구 있었구만.

- 그럼 가겟집에 맡겨놓고 가리다!

내 자식들에게 먹일 양식을 싣고 처음 만난 당신이 먼지 나는 신작로를 앞서서 달렸구만. 나는 머리에 쓴 수건을 풀어 내 몸뻬에 달라붙는 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그렇게 앞서서 사라지는 당신과 자전거를 뒤에서 보았네. 자꾸만 먼지가 풀썩여 당신과 짐자전거를 가리는 것을 손으로 눈을 비벼가며 보았네. 머리가 가벼워지자 살 것 같았지요. 팔을 살랑살랑 흔들어보며 신작로를 걸었소. 기분 좋은 바람이 옷섶으로 파고들었재.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머리에 아무것도 이지 않고, 등에 아무것도 업지 않고, 그렇게 홀로 되어 길을 걸어본 지가 언제적이었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녁 새도 보고, 어렸을 적에 어머니랑 함께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려도 보며 가겟집에 이르렀소. 내 눈은 멀리서부터 함지박을 찾았소. 가까이 다가가며 가겟집 문쪽을 바라보는데 문간에 놓여 있어야 마땅할 함지박이 보이지 않았소이. 한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네. 내 걸음이 빨라졌재요. 가겟집 여자에게 누가 함지박을 맡겨놓지 않았냐? 묻기가 겁이 났었소. 맡겨놓았다면 내 눈에 벌써 들어올 텐데, 보이지 않았소이. 가겟집 여자는 수건을 쥔 채 허겁지겁 달려오는 나를 뭔 일인가? 싶어 바라보기만 했소. 그때야 깨달았고만. 당신이 내게서 자식들의 저녁밥을 빼앗아가버렸다는 것을. 눈물이 핑 돌았소오. 내가 처음 보는 당신을 어째 믿고 다름도 아닌 자식들 밥이 담긴 함지박을 건네줬을까. 무엇에 홀렸단 말인가. 왜 그랬을까. 내 눈 속에서 당신의 짐자전거가 멀어져 안 보이게 되었을 때 잠깐 스치고 지나가던 불안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을 때 그 아득해지던 마음이 지금도 되살아나네. 그대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구만. 어쩌든 밀가루가 담긴 그 함지박을 찾아서 가야만 했소. 그날 아침밥을 지으려고 양식을 푸러 광에 갔다가 바가지에 빈 독이 싹 긁히는 소리가 떠올랐소. 그 함지박 속의 밀가루면 너끈히 열흘 양식은 되었을걸, 생각하니 더더욱 체념이 안되었소이. 그 가겟집을 지나 내처 달렸을 당신과 짐자전거를 찾아 그냥 걸어갔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이러한 사람 보았느냐고 물어보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네. 당신의 정체는 금방 들통이 났재요. 그만큼 당신은 허술했소이. 멀리 살지도 않았구만. 당신이 우리 마을에서 오리를 지나 읍내로 들어가기 전 초입, 기와집이 있는 마을에서 외떨어진 집에 사는 사람이란 것을 알아내자 난 달리기 선수처럼 당신을 향해 달려갔소이. 그 함지박 속의 밀가루를 당신이 써버리기 전에 당신을 만나야 고스란히 되가져올 수 있을 테니까. 마을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서 갈라져 다랑이논 사이의 언덕바지에 있는 낡은 집 앞에서 당신의 짐자전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아아아- 소리를 내지르며 곧장 당신 집으로 내질러 갔소이. 그러곤 봐버렸소. 낡은 마루에 퀭한 눈을 하고 앉아 있는 당신의 노모와 손가락을 쭉쭉 빨고 있는 세살배기 어린애와 난산중인 당신의 아내를. 도둑맞은 함지박을 찾으러 왔다가 나는 그 어둡고 좁은 부엌에서 벽에 걸린 솥을 내려 물을 붓고 덥혔소. 출산중인 아내 곁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당신을 밀치고 생전 처음 보는 당신 아내의 손을 잡고 힘내오! 힘을 내오!라고 외쳤소.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릴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리오. 미역 한가닥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집. 당신의 노모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재요. 게다가 이미 저세상 사람인 듯했소. 아이를 받아놓고 함지박에서 밀가루를 퍼내 반죽을 만들어 수제비를 끓여서는 몇그릇 퍼놓고 국물을 산모가 있는 방에 디밀어놓고… 함지박을 다시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던 그때가 몇십년 전인지. 그때 태어났던 그 아이가 저이인가? 당신의 손을 닦아주고 있네. 당신을 엎드리게 하고 등을 닦아주기도 하네. 세월이 흘렀구려. 당신의 반듯했던 목덜미가 쭈글쭈글하네. 숱 많았던 눈썹이 다 빠져 있고 단정했던 입매도 알아볼 수가 없네. 이제 의사 대신 당신 자식이 당신에게 아버지! 이름 대봐요! 이름이 뭔지 알아요? 묻고 있네.

- 박소녀.

글쎄, 그 이름은 내 이름이래두요.

- 박소녀가 누구예요? 아버지?

그건 나도 궁금하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요? 어떤 사람이요?

칠팔일 지나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미역가닥을 마련해 당신 집에 들렀을 땐 산모는 없고 갓난쟁이만 있었소이. 당신 아낸 아이를 낳고 사흘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 종내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소.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출산을 감당하지 못했을 거라 했소. 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의 눈먼 노모는 그때도 낡은 마루에 퀭한 눈을 하고 앉아 있었소. 세살배기와 함께. 어쩌면 당신 병상의 저이는 그때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세살배기일 수도 있겠네.

 

내가 당신에게 누구인지는, 무엇인지는,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내 인생의 동무였네. 내 자식들에게 먹일 밀가루가 담긴 함지박을 훔쳐가 눈앞을 캄캄하게 하던 이가 이리 오랜 동무가 될 줄이야. 우리들의 자식들은 우리를 이해 못할 거요. 당신과 나를 이해하느니 전쟁통에 수십만명의 사람이 죽은 일을 더 이해할 거요. 이미 산모가 이세상에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으나 그냥 나올 수가 없어 가져간 미역가닥을 물에 불렸소. 전날 내 함지박에서 퍼서 남겨놓은 밀가루를 또 반죽해서 미역을 넣어 수제비를 끓여 한그릇씩 퍼서 상 위에 올려주고 돌아서 나오려다가 방 안의 갓난쟁이에게 내 젖을 물렸소. 내 딸애에게 먹일 젖도 모자라던 때였네. 당신은 갓난아이를 안고 마을로 내려가 동냥젖을 얻어 먹이고 있었소. 목숨은 때로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두 어떤 목숨은 무서울 만큼 질기요. 큰딸이 그러는데 트랙터로 잡초를 베어내면 말이우. 베어지는 그 순간에도 잡초는 트랙터 바퀴에 매달려 번식하려고 씨앗을 흩뿌린다 합디다. 당신의 아이는 무섭게 젖을 빨았소. 어찌나 세차게 빨던지 내가 딸려들어갈 것 같아 아직 태열이 가시지 않아 붉은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기까지 했소이. 그래도 안되어 억지로 떼어놓았소.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아이는 본능적으로 젖만 물면 젖꼭지를 내놓으려고 하질 않았소. 아이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는데 그때 당신이 내게 물었소. 이름이 무엇이냐고. 결혼하고 그때까지 내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었네. 갑자기 수줍어져서 고개를 반쯤 숙였소.

- 박소녀.

그때 당신이 웃었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소. 나는 당신을 한번 더 웃게 해주고 싶었네. 그래, 당신이 묻지도 않았는데 언니 이름은 대녀(大女)라고 알려주었네. 당신은 한번 더 웃었소. 그제나 지금이나 당신은 웃는 모습이 젤 낫소. 그러니 의사 앞에서 그리 찡그리고 있지 말고 웃어보시오. 웃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아이가 삼칠일이 될 때까지 하루에 한번은 당신 집으로 건너가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려주고 왔소. 새벽일 때도 있었고, 한밤중일 때도 있었네. 그 일이 당신에게 족쇄가 되었으려나. 내가 당신에게 해준 건 그게 다인데 이후 나는 삼십년을 힘겨울 때마다 당신을 찾아갔으니. 자식들 삼촌이 그리 된 것이 내가 당신을 찾기 시작한 일의 시작이었던 거 같네. 그만 죽고 싶었으니까. 죽는 게 낫다 싶었으니까. 모두들 나를 힘들게 할 때 당신만은 나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소이. 견디라 했지요.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상처도 지나간다고 했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닥친 일을 차분히 하라 했소. 당신이 없었으면 그때 나는 어찌 되었을지 모르요. 정신이 혼미했었으니께. 내 뱃속에서 죽어 나온 넷째 아이를 산에 묻어준 것도 당신이었네. 그러고 보니 당신이 곰소로 이사를 간 게 혹시 그런 내가 힘겨워서였소이? 당신은 바닷가라든지 어부라든지 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소.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사람이 당신이었네. 당신은 땅이 없어 남의 땅을 일구는 사람이었네. 그런 당신이 곰소로 갔을 때 그 생각을 했어야 했는가 보네. 내가 힘겨워 곰소로 달아난 게 진실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 그러고 보면 난 당신에겐 참 나쁜 사람이었소.

그래, 처음 만남이 중요한가 보오.

나는 당신이 내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게 틀림없소이. 당신에게 그토록 내 마음대로 해버린 걸 보면 말이요. 짐자전거에 내 함지박을 실고 도망을 쳤어도 내가 찾아내버렸듯이 말도 하지 않고 당신이 곰소로 이사를 가버렸어도 난 당신을 찾아내버렸네. 당신은 곰소하고는 어울리지 않았소. 논이 아니라 바다 앞에 서 있는 당신은 참 어색하고 낯설었네. 해안가의 소금밭에서 당신이 짓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요. 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더니,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날 찾아내버렸나? 하는 거였나.

곰소는 당신 때문에 내게 잊지 못할 곳이 되었재요. 나는 늘 내가 감당하기 벅찬 일이 생겨야 당신을 찾았재. 그리고 내가 그만그만 평화로워졌을 땐 당신을 잊었소. 잊은 줄 알았소. 곰소로 찾아간 나를 보고 당신이 내게 했던 말도 무슨 일이요?였재.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 당신을 찾아갔던 건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오로지 당신을 찾기 위해 간 길이었네.

 

그때 한번 곰소로 도망친 거 빼놓고는 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주었네. 거기 있어줘서 고마웠소이. 그래서 내가 살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오.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당신을 찾아가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손도 잡지 못하게 해 미안했소.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 다가갔으면서 당신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으면 몰인정하게 굴었네. 생각해보면 참 나쁜 일이었네. 미안하구 미안허요.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랬고, 얼마 후엔 그래선 안될 것 같아 그랬고, 나중엔 내가 늙어 있었소이. 당신은 내게 죄였고 행복이었네. 난 당신 앞에선 기품있어 보이고 싶었네.

내가 가끔 당신에게 책에서 읽었다며 해준 이야기들은 내가 읽어서 해준 이야기들이 아니요이. 사실은 내 딸한테 물어서 해준 것들이오. 스페인인가 하는 나라에는 싼띠아고라는 곳이 있다 했던 거. 당신은 그 이름을 외우는 것도 힘들어해서 거기 어디라고 했소? 자꾸 물었소이. 거기에 순례자의 길이 있는데 33일 동안 걸어가는 길이라 합디다. 내 딸아인 거길 가고 싶어했소이. 그래서 가끔 내게 그곳 얘기를 해주곤 했는데 마치 그곳을 내가 가고 싶은 것처럼 당신에게 말한 적도 있었네. 그랬더니 당신이 그랬지라오. 그리 가고 싶으먼 언젠가 함께 가보자고 말이요. 어딘가를 함께 가보자고 했던 말을 당신에게서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소이. 내가 당신을 다시 찾아가지 않은 것은 그날 이후부턴가 보오. 사실은 나는 그곳이 어딘 줄도 모르고 가고 싶지도 않으요. 지나간 시간에 함께했던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지금 일어나는 일은 지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당신은 생각하오? 글쎄, 그럴까? 나는 가끔 내 손자들을 보면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 없이 어딘가에서 그냥 뚝 떨어져나온 아이들 같은디.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 없이 말이요.

처음 만났던 날 봤던 그 짐자전거도 훔친 거라는 거. 머리에 밀가루가 담긴 함지박을 이고 신작로를 걸어가고 있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훔친 짐자전거를 팔아 미역가닥이라도 사려던 당신 계획들도 어딘가에 스며 있을까? 당신이 결국 그 짐자전거를 팔지 못하고 다시 그 자전거가 있던 근처에 가져다 놓다가 주인한테 들켜 혼이 났던 그 일들도. 어쩌면 그 일들이 지나온 세월의 어느 갈피에 스며 있다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까?

내가 실종된 후 당신이 나를 찾아 헤매다닌 거 알고 있네. 서울에는 단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붙잡아 세웠던 것도 알고 있네. 혹여 내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내 집 근처를 수없이 왔다갔다 한 것두요. 내 자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했던 것두요. 그러다가 당신이 이리 아픈 것인가.

 

… 나는 이제 갈라요.

 

당신 이름은 김철이라오. 의사가 다시 이름을 물으면 박소녀,라 말고 김철이라고 말했으먼 좋겠네. 이젠 당신을 놔주리다.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다 가네요.

 

집이 꽁꽁 얼어 있네.

문은 왜 잠가놨을꼬. 동네 아이들이 들어와 놀기라도 하게 열어두지. 온기라곤 일체 없네. 얼음덩어리 같아. 눈이 이리 내렸는데 아무도 눈을 쓸어주지 않았구나. 마당 가득 흰 눈이네. 고드름이 매달릴 수 있는 곳엔 죄다 매달려 있네. 자식들이 자랄 때는 저 고드름들을 따서 칼싸움을 하곤 했었재. 내가 없다고 누구도 이 집을 들여다보지 않는 모양이네. 인기척이 끊긴 지 오래되었군. 형철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가 헛간에 세워져 있네. 이런, 꽝꽝 얼었네. 제발 오토바이 좀 타지 말았으면 하요. 어디, 그 나이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시우. 아직도 젊은 줄 아시우? 습관적인 나의 잔소리. 하긴,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형철 아버진 시골사람 같지 않은 멋이 있긴 있지. 젊은 날에,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가죽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형철 아버지가 마을에 들어서면 죄다들 쳐다보았재. 어디 그때 사진이 있을 것인데… 안방 문 위 사진틀 속 어디… 아, 저기 있네. 서른살도 안되었을 때 모습이지. 지금은 찾아볼 길이 없는 열기가 퍼져 있는 얼굴.

 

이 집을 지금처럼 새로 짓기 전에 살던 집이 환히 떠오르네. 나는 그 집을 무던히도 사랑했던 것 같소. 사랑이라고 말해놓고 보니 딱히 사랑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이 지상에 없는 그 집에서 우린 오십년을 살았네. 나는 언제나 그 집에 있었소. 언제나 있었재요. 형철 아버진 있기도 허고 없기도 했네. 영 오지 않을 사람처럼 소식이 끊겼다가 그래도 돌아오곤 했소. 그래서인가 보오. 나는 이 집을 새로 짓기 전의 그 집이 늘 눈앞에 환하네. 다 기억하고 있소이. 그 집서 생겼던 일들은 다. 아이들이 태어나던 해의 일들, 형철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잊었다가 미워하다가 다시 기다리다가 했던 일들 다. 지금은 집 혼자 남았네. 인기척은 없고 흰 눈만 마당을 지키고 있네.

집이란 참 이상하지. 모든 것은 사람 손을 타면 닳게 되어 있는데 때로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가면 사람 독이 전달되어오는 것 같기조차 한데 집은 그러지 않어. 좋은 집도 인기척이 끊기면 빠른 속도로 허물어져내려. 사람이 비비고 눙치고 뭉개야 집은 살아 있는 것 같어. 이 좀 봐. 눈이 쌓여 지붕 한쪽이 내려앉았네. 봄이 되면 지붕 고치는 이를 불러얄 텐데. 거실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서랍 안쪽에 해마다 봄이면 지붕 손봐주던 집 스티커가 붙어 있을 것인데 그걸 형철 아버지가 알고 있기나 한지 몰라. 거기다 전화하면 와서 봐줄 것인데. 겨우내 이리 집을 비워두면 안되는데. 사람이 안 살어도 가끔씩 보일러도 틀어주고 해야 되는데.

 

서울에 갔소? 거기서 나를 찾고 있소?

 

딸애가 일본에 가면서 내려보낸 책들이 쌓여 있는 방도 냉방이구려. 책들도 꽁꽁 얼어 있는 것 같소. 딸애가 이 책들을 이 집으로 보낸 후로 나는 이 방이 이 집에서 제일 좋았소. 머리가 아프려고 하면 이 방에 들어와 드러누워 있곤 했소. 처음 얼마 동안은 낫는 것 같았는디. 나는 내가 아픈 것을 형철 아버지 당신에게 알리기 싫었네. 종내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고통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해주었으면서도 당신 앞에선 환자로 있기 싫었소. 그것 때문에 외로운 적이 많았네. 그때도 딸이 내려보낸 책이 있는 방에 들어가 움직이지도 않고 드러누워 있었네. 어느날 아픈 머리를 감싸며 다짐을 하기도 했네. 딸이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는 딸이 쓴 책을 한권쯤은 읽어놔야겠다구 말이요. 그러려고 아픈 머리를 싸안고 글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소이. 계속 할 수가 없었네. 글을 배우러 다니면서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으니. 글을 배우러 다닌다고 당신한테 말할 수 없어 외롭기도 했네. 그런 말을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소. 글을 배우게 되면 딸이 쓴 책을 내 눈으로 읽는 거 말고 한가지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네. 내가 이리 되기 전에 식구들 모두에게 각각 작별편지를 쓰는 것.

 

바람이 엄청 부네. 마당의 눈이 바람에 돌돌 말려 쓸려 다니네.

 

이 마당에서 가장 좋았을 때는 여름밤에 화덕을 내놓고 찐빵을 찔 때였네. 형철이가 퇴비를 걷어다가 모깃불을 피워놓으면 아우들은 평상에 아무렇게나들 뻗대고 앉아서 화덕에 얹어놓은 솥에서 찐빵이 쪄지기를 기다렸재. 한 솥을 쪄 채반에 내놓으면 이손 저손이 금세 하나씩 집어가 없어지곤 했재. 솥에서 찐빵이 쪄지는 시간보다 자식들이 먹는 속도가 빨랐구만. 또 한 솥 쪄질 때까지 화덕에 불쏘시개를 넣고 평상에 서로 포개지듯 드러누워 있는 자식들을 바라보면 좀 무섭기도 했네. 어찌나 먹성들이 좋은지. 모깃불을 피워놓았어도 모기들은 끈덕지게 내 팔이며 허벅지에 침을 박고 피를 빨아대고 밤이 깊도록 찐빵을 쪄내도 쪄내도 다 먹어버리고 자식들은 또 기다리고 있으니. 찐빵이 또 쪄지기를 기다리다 한놈 두놈 포개져 잠이 들던 그런 여름밤이 있었네. 잠든 틈에 나머지 찐빵을 쪄내 밥바구니에 담아 뚜껑을 덮어 평상에 두고 자면 새벽이슬이 내려 밥바구니 속 찐빵 껍질만 살짝 굳었재. 눈뜨자마자 찐빵이 든 밥바구니를 앞에 놓고 또 한바탕씩 먹어들 댔재. 그래서 내 자식들은 아직도 껍질이 살짝 굳은 차가운 찐빵을 좋아하재. 그런 여름밤이 있었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던 그런 여름밤이. 길을 떠도는 동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이 뿌연데도 나는 여기를 무척 그리워하곤 했재. 여기, 이 집의 마당이며 마루 밑이며 꽃밭이며 우물 따위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헤매다가 길가에 주저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려보았던 곳이 이 집이었네. 대문을 그렸었다오, 꽃밭을 그렸었다오, 장 항아리를 그렸었다오, 마루를 그렸었다오.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데 이 집이, 이 집 이전의 집이, 이 지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그 집이, 재래식 부엌과 머위잎이 자라던 뒤란과 돼지막 옆의 헛간이 있던 그 집만이 선명히 떠올랐네.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두 짝으로 되어 있던 그 파란 양철대문. 왼쪽엔 샛문이 달려 있고 오른쪽엔 우편함이 달려 있던 그 집의 대문. 두 짝의 문을 다 열어야 하는 일은 일년에 서너번 있을까 말까였지만 나무 손잡이가 달린 샛문은 고샅 쪽을 향해 항상 열려 있었재. 문단속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네. 우리 식구가 없어도 마을 아이들은 그 파란 대문의 샛문으로 쑥 들어와서는 해가 저물도록 놀다 가곤 했네. 농번기 때면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딸애가 모두 들에 나가고 비어 있는 집 감나무 밑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에 올라가 페달을 굴리곤 했네. 들에서 돌아오면 딸애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다가 엄마! 하고 내 품으로 푹, 뛰어들었재. 둘째놈이 가출을 했을 땐 아랫목에 밥을 묻어놓고 대문 두 짝도 활짝 열어놓았네. 발끝에 채여 밥그릇이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놓곤 했네. 한밤중에 바람 소리에 잠이 깨면 그 바람에 문이 닫힐까 봐 방문을 열고 나가서 묵직한 돌을 괴어놓곤 했던 대문. 대문이 흔들리면 내 눈과 귀는 온통 그 기척을 살피곤 했었재.

 

장롱도 꽁꽁 얼어 있군.

문조차 열리지 않네. 장롱은 비어 있을 것이네. 머리가 깨지게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그 사람에게 또 가고 싶었어. 그러면 나을 것도 같았재. 그러나 가지 않았어.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내 물건들을 정리했네. 내가 무감각해져 그 무엇도 알아보지 못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네. 내 손에 익은 것들을 내가 알아볼 수 있을 때 치워놓고 싶었재. 버리지 못하고 걸어두었던 옷가지들을 보자기에 싸 들에 가지고 나가 불태웠어. 형철이가 첫 월급을 받아 사주었던 내의는 상표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몇십년을 내 장롱 안에 있었재. 그것을 태울 때조차 내 머리는 으깨지는 것 같았네. 태울 수 있는 것은 다 태웠재. 자식들이 명절 때 이 집으로 내려와 자고 갈 적에 덮을 수 있는 이불과 베개만 남기고. 결혼할 때 어머니가 목화솜을 타서 만들어준 이불도 불태웠네. 오래오래 나와 함께 지냈던 세간들도 죄다 꺼내어 다시 봤네. 아끼느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 큰딸애가 결혼할 때 주려고 사 모았던 그릇들. 그런데 그애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다니. 작은딸애가 결혼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을 때까지 안할 줄 알았으면 작은딸애에게라도 줄 것을. 바보같이 큰딸애 주려고 했던 것이니 큰딸애에게 줘야 된다고 생각했네. 망설이다가 그것들도 들고 나가 깨부쉈재. 나는 알고 있었재. 내가 어느날인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러기 전에 내가 쓰던 것들을 내가 처리하고 싶었재. 남기고 가기도 싫었고. 찬장 아래칸들도 텅 비어 있을 것이네. 깨지는 것은 모두 깨뜨려 땅에 묻었으니.

저 얼어붙은 장롱을 열어봐도 겨울옷이라곤 언젠가 딸애가 사주었던 검은 밍크코트만 걸려 있을 것이네. 쉰다섯살이 되던 해 밥을 먹기도 싫고 바깥에 나가기도 싫었재. 얼굴이 뜯어지는 것같이 불쾌한 감정 속에 빠져 지냈재. 입을 열면 나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재. 열흘도 넘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네. 비관적인 생각을 쫓아내버리려고 애를 썼으나 날마다 슬픈 생각이 하나씩 더 따라붙곤 했재. 추운 겨울날인데 찬물에다 손을 담그고 닦고 닦기를 반복했어. 그러다 성당엘 나간 날이 있었네. 성당 뜰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췄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성모의 발치에 엎드렸네. 더는 견딜 수가 없다고 나를 비관 속에서 끌어내달라고 기도하려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러다가 그것도 멈췄어.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분에게 무엇을 더 원할 수 있나 싶어서. 미사를 보는 중에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입고 있는 검은 밍크코트를 보았재. 나도 모르게 그 보드라움에 이끌려 밍크코트에 슬며시 얼굴을 대어보았네. 봄바람결 같은 밍크가 내 늙은 얼굴을 포근히 감싸주었재.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나왔어. 내가 자꾸 내 머리를 밍크코트에 갖다대려고 하자 그 여자가 슬며시 옆으로 비켜났재. 집으로 돌아와 작은딸애에게 전화를 걸어 밍크코트를 사달라고 했어. 열흘 만에 처음 입을 여는 것이었재.

- 밍크코트라고 했어, 엄마?

- 그려, 밍크코트.

작은딸애가 침묵을 지켰재.

- 사줄 테여? 말 테여?

- 날씨 따뜻하잖어요. 밍크코트 입을 일이 있어요?

- 있어.

- 어디 가세요?

- 안 가.

내 무뚝뚝한 대답에 딸이 와하하, 웃었재.

- 서울에 오세요, 그럼. 함께 사러 가게.

백화점에 들어서면서도 밍크코트 전문매장 앞에서도 딸은 나를 물끄러미 보곤 했재. 나는 내가 얼굴을 묻어보았던, 그 여자가 입고 있었던 것보다 약간 짧은 밍크코트가 그렇게 비싼 옷인 줄은 몰랐재. 딸도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밍크코트를 사가지고 가니 며늘애의 눈이 휘둥그레졌재.

- 밍크코트네, 어머니!

- ……

- 좋으시겠다, 어머니는. 이렇게 비싼 옷을 척척 사주는 딸이 있구. 난 우리 어머니 여우목도리도 한장 못 사드렸는데. 밍크는 대물림하는 거래요. 돌아가실 때 제게 물려주세요.

- 엄마가 처음으로 내게 뭐 사달라고 했던 것이에요! 왜 그러세요!

작은딸이 화내듯이 며늘애에게 퉁박을 줬을 때야 알았재. 딸이 자꾸 가격표를 보고 또 보고 했던 이유를. 그리고 자꾸만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던 이유를. 그애는 그때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 약사실에 취직해 있을 때였네. 서울에서 돌아와 밍크코트를 들고 시내의 백화점에 들어가 비슷한 밍크코트 매장 아가씨에게 그게 얼마쯤이나 하는 것인지 물어보았재.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었재. 세상에나 옷 한벌 값이 그리 셀 줄이야! 전화를 걸어 다시 물리자 하니 딸이 그랬재. 엄마, 엄마는 그 옷 입을 자격 있어요. 그러니 입으세요.

 

이 고장은 겨울이 되어도 날이 따뜻해 밍크코트를 입을 일이 거의 없었재. 삼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적도 있으니까. 비관적인 생각이 들면 장롱을 열고 밍크코트에 얼굴을 묻어보곤 했재. 그러면서 생각했재. 죽을 땐 작은딸애에게 돌려주고 가야겠다고.

 

지금은 이리 얼어 있어도 봄이 되면 담장 쪽으로 밀어붙여진 꽃밭 근처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겠재. 옆집 배나무에서 배꽃들이 피었다가 또 분분히 날리겠재. 살색꽃이 피는 장미넝쿨들은 환호를 내지르며 가시를 돋구겠재. 담장 밑의 잡초들도 봄비 한번에 대번에 키를 키워 무성해지겠재. 읍내의 다리 밑에서 새끼 오리들을 서른마리쯤 사다가 마당에 풀어놓으면 새끼 오리들이 꽃밭으로 몰려가 꽃을 짓이겨버리곤 했재. 어미닭이 알을 품어 내놓은 병아리들과 함께 종종종 떼지어 다닐 때는 오리인지 병아리인지. 하여간 봄날 마당은 그것들로 인해 소란스러웠네. 꽃나무 밑에 거름을 주면 꽃이 많이 핀다며 장미나무 밑을 파헤치던 딸애가 흙 속에서 꿈틀대는 지렁이를 보고는 호미를 내던지고 방으로 뛰어가는 통에 그 호미에 병아리가 맞아 죽은 일도 이 마당에서 있었네. 여름날 갑자기 비가 쏟아져 마당에서 왔다갔다 하던 개와 닭과 오리들이 각각 닭장으로 담장 밑으로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나면 싸아, 하니 맡아지던 이 마당의 흙냄새. 갑자기 쏟아져내린 빗방울에 돌돌돌 말리던 흙방울들. 바람 부는 늦가을 밤이면 옆마당의 감나무 잎새들이 수수수 떨어져 이 마당을 휘저으며 날아다녔네. 밤새 마당에 낙엽들 쓸려 다니는 소리를 듣기도 했네. 눈 내리는 겨울밤에 바람이 불면 마당에 쌓인 눈이 마루까지 들이쳤네.

 

누가 대문을 열고 있네. 아! 고모!

자식들에게나 고모지 내게는 형님인데 난 한번도 형님이라 부르지를 못했소이. 형님이 아니라 시어머니 같아서요. 눈 오고 바람이 몰아치니 집을 살피러 왔구먼요. 난, 또 아무도 이 집을 건사하는 사람이 없는 줄 알었네. 고모가 있다는 것을 깜박하구선. 그런디 다리를 왜 저시오이? 그리 짱짱하던 분이. 고모도 나이를 먹는갑네. 눈길이오. 조심해야겠네.

- 누구 있는가?

목소리는 똑같이 짱짱하시네.

- 아무도 없재?

사람이 없는 줄 알면서 불러보는 것인가 보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마루 끝에 걸터앉으시네. 옷을 왜 그리 춥게 입고 오셨소? 감기 들겠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허시오? 넋이 나간 듯 마당의 눈을 보고만 있네.

- 어째 꼭 누가 온 것만 같은디…

반은 귀신이오.

- 이 추운 날 어디를 헤매고 다니는가 모리겄네.

나를 두고 하는 소리요?

-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네… 자네가 이리 무정한 사람인 줄 몰랐네. 이 집에 자네가 없으믄 어찌라고… 빈껍데기재. 여름옷 입고 나간 사람이 겨울이 되도락 오질 않으니… 이미 저쪽 세상 사람인가?

아직은 아니요. 이렇게 떠돌고 있소.

- 세상에 젤로 불쌍한 사람이 집 바깥에서 죽는 인간인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돌아오소.

우는 것이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으로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는 고모의 눈가가 젖어드네. 고모가 그리 나오니 그 눈도 안 무섭네. 어찌나 늘 매섭게만 느껴지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고모의 그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굴을 바로 보지 않은 때가 많았었네. 그런디 고모는 그냥 짱짱할 때가 나은 거 같네. 그리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 있으니 고모 안 같으요. 살아생전 고모한테 좋은 소리 한번 못 듣고 살았는디 이제사 내가 왜 고모의 그 축 처진 모습을 봐야 한단 말이오이. 고모의 나약한 모습을 보니 내 맘이 안 좋네. 나는 고모를 오로지 무서워한 것만은 아니요.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고모라면 어쨌을까나? 생각하고 고모라면 이리했겠지, 생각되는 쪽으로 택할 때가 많았어라오. 그렇게 고모는 내 본이 되기도 했어라오. 나도 성격이 있잖으요. 동서처럼 살갑게 구는 사람도 못 되고요. 세상의 모든 관계는 쌍방이지 한쪽서 결정하는 것만도 아니고요. 인자 어차피 고모는 혼자 남은 형철 아버지를 자주 살펴야 할 것 아니요. 내 맘도 좋지 않소이. 그래도 고모가 형철 아버지 곁에 있으니 나로서는 좀 낫네. 사는 동안도 고모가 혼자 몸으로 형철 아버지를 얼마나 의지하고 사는 줄 빤히 아는 처지로 매사를 다 비틀어 생각하고 서운해하고 그러지는 않았소. 집안의 무서운 어른으로 그리 생각했소. 어머니같이 느껴져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만큼. 그런디 고모. 나는 몇해 전에 세워놓은 선산의 가묘로는 안 갈라요. 그리론 안 가고 싶네. 이 집서 살 때 혼미한 정신에서 깨어나게 되면 혼자서 걸어 걸어 가묘를 찾아가보았소. 죽어서 갈 곳인데 정 붙여놔야지 싶어서. 햇볕도 잘 들고 거기 휘어진 채로 또 우뚝 서 있는 소나무도 맘에 들기는 하는디 죽어서도 이 집 사람으로 있는 것은 벅차고 힘에 겹네. 마음을 달래보려 노래를 부르며 풀도 뽑아주고 자리를 펴고 해가 저물 때까지 앉아 있어보기도 하고 그랬는디 마음이 안 붙어라오. 오십년 다 되게 이 집서 살았응게 인자는 날 쫌 놔주시오. 그때 가묘 세울 때 동서가 내 아래에 자리잡으라 하니 눈을 흘기며 아이구 내가 죽어서도 형님 심부름 하게요, 하더만 지금 그 말이 생각나네. 서운케 생각 마요, 고모. 오래 생각했지만 복잡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요. 그냥 나는 내 집으로 갈라네요. 가서 쉬겠소.

 

헛간 문이 열려 있네.

바람이 헛간 문을 부술 듯이 몰아치네. 내가 즐겨 앉던 나무평상 위에 살얼음이 끼어 있네. 모르고 앉았다간 쭉 미끄러지겠네. 이 헛간에서 딸애는 책을 읽곤 했지. 벼룩에 물려가며. 양편에 돼지막과 잿간을 사이에 둔 헛간에 딸애가 책을 들고 숨어드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네. 그애를 찾지 않았네. 지 오빠가 동생이 어디 갔는지 아느냐 물으면 모른다고 했재. 나는 딸애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좋았으니까.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돼지막 위를 덮어놓은 널판자 위엔 짚더미가 수북했네. 그 한쪽을 차지하고 닭이 밑알을 품고 알을 낳고 있었을 테지. 그 사이에 끼어 짚더미 위에 앉아 벼룩에 물린 자리에 침을 발라가며 책을 읽고 있는 애를 무슨 수로 찾아낼까? 오빠가 저를 찾느라고 방문을 열어젖히고, 부엌문을 밀어붙이는 소리를 다 들으며 거기 숨어 책 읽는 재미는 어떤 것이었을까나. 닭은 또 얼마나 까탈스러웠나. 돼지막 위의 짚더미에서 밑알을 품고 있던 닭이 딸애가 책장 넘기는 소리에 신경질을 내곤 했재. 밑알을 안 놓아주면 알도 안 낳는 닭이 헛간에서 부시럭거리는 딸애의 기척에 예민해져서는 꼬꼬거리는 통에 딸애가 지 오빠한테 들킨 적도 있었네. 옆에서는 돼지가 꿀꿀거리고 그 위에서는 알 낳는 닭이 꼬꼬거리고 괭이며 쇠스랑이며 삽이며 온갖 농기구와 짚더미가 놓여 있는 헛간에 숨죽이고 숨어서 읽던 책은 무슨 책이었을까나. 봄이 오면 우리 식구의 겨울 신이 멋대로 흩어져 있던 마루 밑엔 새끼를 낳은 어미개가 늘 으르렁거리고 누워 있었네.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따위를 듣곤 했네. 그 순한 개는 왜 새끼만 낳으면 그렇게 사나워졌는고. 식구가 아니면 누구도 근처에 얼씬도 못했재. 그래, 이 집의 개가 새끼 낳고 나면 그 파란 대문에 늘상 써 있는 개조심이란 글자를 형철이가 다시 진하게 색칠을 하곤 했재. 어미개가 저녁밥을 먹고 잠든 사이에 마루 밑에서 새끼 강아지 한마리를 꺼내 바구니에 담고 보자기로 덮고도 눈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고모네로 데려다준 적도 있었네.

- 이렇게 깜깜한데 왜 눈까지 가려서 데려가, 엄마?

딸애가 뒤를 졸졸 따라오며 물었재. 그리 데려가지 않으면 집으로 도로 찾아온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곤 했었재.

- 이렇게 깜깜한데?

- 그래, 이렇게 칠흑이라두!

새끼가 없어진 걸 안 어미개가 끙끙 몸을 앓으며 밥을 먹지 않았재. 밥을 먹어야 젖이 생기고 젖을 먹어야 새끼가 자라는데. 그대로 뒀다간 죽게 생겼다고, 눈을 가려 데려간 새끼 강아지를 다시 데려다 젖 밑에 밀어넣어주니 그때서야 어미개가 밥을 먹었재. 그런 어미개가 그 마루 밑에 살았었네.

 

아, 봄날 새싹들처럼 정신없이 솟아나는 이 기억들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겠네. 잊혀졌던 온갖 것들이 다 몰려오네. 부엌 살강에 엎어져 있던 밥그릇이며 장꽝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며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다란 나무계단이며, 흙담 밑에서 태어나 담장을 타고 무성히 뻗어나가던 호박넝쿨들까지.

 

집을 이렇게 꽁꽁 얼게 두지 말아요.

힘겨우면 작은며늘애에게 도움을 청해보던지라오. 갸는 지 집도 아니고 세 얻은 집도 항상 정성스럽게 고쳐놓지 않습디까. 눈썰미가 있고 꼼꼼하고 따뜻한 사람이요. 출근하는 사람인데도 남의 손도 빌리지 않고 하는 살림살이가 항상 반짝반짝 윤이 났재요. 집 관리하기 힘이 들먼 작은며늘애와 말을 터보시오이. 갸의 손길을 타면 낡은것이 새것으로 바뀐다니께요. 언젠가도 보시오. 재개발지구의 주인 마음이 다 떠난 벽돌집을 세 얻어 살면서도 시멘트까지 제 손으로 이겨가며 손을 보아놓는 사람이 그 사람이요. 집이란 인기척에 따라서 살고 있는 사람의 손길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참 좋은 집이 되었다가 참 이상한 집이 되었다가 그러는 것 같습디다. 봄이 오면 마당에 꽃도 심어주고 마룻장도 어루만져주고 눈 때문에 무너진 지붕도 고쳐주고 그러오.

 

형철 아버지 당신은 몇해 전 취해 있을 때 누군가 집이 어디냐 물으니 역촌동 그럽디다. 형철이네가 그 역촌동에서 떠난 지 20년이 지났는데요. 내 머릿속에서조차 역촌동이란 동네가 가물가물해졌는디.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별로 내색을 안하는 당신이긴 했소. 형철이가 서울에서 역촌동에 첫 집을 가졌을 때도 그저 묵묵히 있더니 당신 마음에도 무척이나 대견했던 게지라오. 그래서 취중에 이 집은 잊어버리고 기껏 일년에 많아야 서너번 손님처럼 들러서 하루나 길어야 이틀 자고 왔었던 그 집을 댔겠재요. 이 집을 그리 여겨주먼 좋겠네. 이 집의 마당 귀퉁이나 뒤란 쪽은 새로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자잘한 꽃들이 매년 그냥저냥 피어나 어여쁘게 제 시절을 살다가 지곤 했소이. 마당은 마당대로 마루 밑은 마루 밑대로 헛간은 헛간대로 뒤란은 뒤란대로 뭣인가가 모이고 가고 나고 죽고 했소이. 빨랫줄에도 새들이 날아 앉아 지가 무슨 말하는 빨래인 것처럼 지지배배 떠들며 놀았었재요. 아무래도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이랑 닮아지는 것 같습디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집에 살던 오리가 그저 마당을 떼지어 다니다가 아무데나 알을 퐁퐁 낳았을까나. 그러지 않고서야 햇볕 좋은 날이면 자연스레 무말랭이나 삶은 토란대가 채반에 담겨 흙담 위에 오르곤 했던 정경이 이리도 선명히 떠오를까. 딸애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하얀 운동화짝 같은 것이 햇볕 아래 말라가던 풍경이 이리 아른아른거릴까나. 딸애가 저 우물에 담긴 하늘을 보길 좋아했네. 물을 긷다가 우물가에 턱을 고이고 있던 모습이 저기 서 있는 것만 같네.

 

잘 있어요… 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라요.

 

지난여름 지하철 서울역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내겐 세살 적 일만 기억났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걸을 수밖에 없었네.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 걷고 또 걸었어. 모든 게 다 뿌옜었네. 세살 때 내가 뛰어놀던 그 마당이 선명히 떠올랐네. 금 캐러도 다니고 석탄을 캐러도 다녔다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그 세살 때. 나는 걸을 수 있는껏 걸었네. 아파트 사이를, 풀숲 언덕길을, 축구장을 걷고 또 걸었네. 그렇게 걸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였나. 세살 때에 뛰어놀던 그 마당이었을까. 아버지는 돌아와 아침마다 십리를 걸어 새로 짓는 역사(驛舍)로 일을 나갔네. 아버지가 당한 사고는 무슨 사고였을까나. 무슨 사고였기에 그리 목숨을 놔버렸을까나. 동네 사람들이 엄마에게 아버지 사고를 알리러 왔을 때 세살이었던 나는 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네. 엄마가 누렇게 뜬 얼굴로 비칠거리며 이웃들의 부축을 받으며 사고 난 곳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놀았어. 내가 웃으며 놀고 있으니 지나가던 누군가가 아비가 죽은 줄도 모르고 웃는구나, 철떼기 없는 것, 하며 내 엉덩이를 때렸네. 그 기억만을 품고 나는 지쳐서 주저앉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네.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날 때 할머니가 꿈을 꾸었다네. 누런 털이 빛나는 암소가 막 무릎을 펴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네. 소가 힘을 쓰며 막 일어서려는 참에 태어난 아이이니 얼마나 기운이 넘치겠냐며 이 아이 때문에 웃을 일이 많을 것이니 잘 거두라 했다네.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 발을 엄마의 무릎 위에 끌어올리네. 엄마의 무릎에 등을 눕히고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내가 웅얼거리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