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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희성 鄭喜成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詩를 찾아서』 등이 있음. poetjhs@hanmail.net
몽유백령도(夢遊白翎圖)
풍경은 얼마쯤 낯설어야 풍경이고
시도 얼마쯤 낯설어야 시가 된다
이 섬의 이름은 원래 곡도(鵠島)
따오기 모양의 거대한 흰 날개를 가졌다는
이 섬의 아름다움은 기이하다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을 마치고
두무진(頭武津)으로 가 유람선을 탔다
아홉시 방향을 보라
선장의 말에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다
구멍 뻥 뚫린 바위 옆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똥이 하얗게 쌓인
촛대바위 뒤로는 병풍절벽 가까스로
절벽을 기어오른 덩굴식물 사이로 초소가 보이고
구멍 속에는 초병(哨兵)이 하나 서서
장산곶 하늘의 매를 감시하고 있다
아니, 그는 아마 눈먼 아비를 위해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에
연꽃이 언제 피는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가마우지가 몇번 자맥질을 하고
물개가 몇번이나 솟구쳐 휘파람을 불고
괭이갈매기는 또 몇번이나 울며 날았는지
하루 종일 심심풀이로 헤아렸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다 한가운데
병사를 세워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언젠가는 병사들도 심봉사처럼
눈뜰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화리(蓮花里)가 여기 있을 턱이 없지
그렇지 않고서야 심청각 옆에
탱크를 세워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 이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크기가 몇천리가 되는지 모르나
이것이 변해 붕(鵬)이란 새가 되었다
붕새는 얼마나 큰지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는 구름과 같았다
지금까지 바다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던 그 큰 새가
제 몸에 얹힌 온갖 것 훌훌 털고
크고 흰 날개 퍼득여 하늘로 오를 날
오기는 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백령도가 황해바다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겠는가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1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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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