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임동원 회고록 『피스메이커』 중앙북스 2008

통일의 밑그림과 평화의 골격을 만들다

 

 

조성렬 趙成烈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joseon@inss.re.kr

 

 

조성렬_피스메이커오늘날 한국인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과제들이 있다. 해방 직후 강대국의 분할점령으로 야기된 민족분단,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초래한 정전체제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핵확산 등이 우리에게 통일, 평화, 비핵화라는 과제를 안겼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한반도문제(Korea Questions)라고 부른다. 이 문제들이 남북뿐 아니라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와도 얽혀 있어 한동안 한국인들은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한반도문제가 세계 차원의 냉전구도 속에 꽉 묶여 있어 우리로서는 자주적인 전략도 외교도 생각해볼 여지가 없었다.

세계 차원의 냉전이 끝나가면서 얼어붙었던 한반도에도 해빙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를 정확히 읽고 한반도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체제를 전환한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를 추진하는 북방외교를 펴고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남북대화를 이뤄냈다. 이 가운데 남북관계를 화해협력으로 이끈 주역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임동원(林東源) 전 통일부장관이다. 그는 젊은 시절 조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 바친 군인(피스키퍼Peace Keeper)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해빙 분위기를 맞아 그는 피스메이커로 변신한다. 이 책 『피스메이커-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은 지난 20년간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헌신한 한 인물이 들려주는 생생한 회고록이다.

한때 임동원은 한국군 최초의‘자주적 기본군사전략’을 마련했고, 장기 군사력 건설계획인‘율곡계획’을 기획하는 등 군사전략가로 이름을 날렸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해외에서 7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뒤, 노태우정부에 들어와 통일방안의 밑그림을 만든다. 그가 그린‘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되면서 군비통제와 외교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회담대표로 임명되어 탈냉전기 남북관계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피스메이커가 된 것이다. 임동원은 이후 남북회담을 통해‘남북기본합의서’와‘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합의·채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해냈다.

임동원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것은 당시 야당지도자였던 김대중과의 만남이다. 그는 김대중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아태평화재단의 초대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정책비전이었던‘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의‘남북연합→연방제→완전통일’3단계와 임동원의‘화해협력→남북연합→연방제통일’3단계 방안이 충돌하기도 했다(322면). 하지만 김대중정부가 출범한 후 임동원의 주장대로‘남북연합’에 앞서‘화해협력’단계가 설정되었다.‘햇볕정책’의 본명이‘화해협력정책’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임동원이 본격적으로 피스메이커로서 활약한 것은 김대중정부가 출범하고부터이다. 김대중정부 시절에 그는 외교안보수석,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한반도문제 해결의 전권을 위임받아 평화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 덕분에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성있게 추진되었다. 하지만 피스키퍼 역할이 주임무인 국정원장 경력은 피스메이커 임동원에게 개인적인 상처를 주기도 했다. 대북송금사건과 국정원 불법감청사건으로 그는 재판정에 서게 된다. 두 사건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이후 사면·복권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분단국가에서 피스키퍼가 피스메이커 역할까지 같이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교훈을 준 사건이었다.

흔히 모든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은 임동원의 증언을 통해 그간 있었던 남북관계사의 진실들과 재미있는 사실들을 밝혀 오해를 풀어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임동원과 김정일의 귓속말이‘김대통령이 금수산궁전에 안가도 된다’는 북측의 화답이었다는 점(125면),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시 북측이 NLL을 잠정적인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했다는 점(220면), 김영남(金永南) 상임위원장(북한헌법상 국가원수)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몸수색사건이 단순한 항공사 직원의 실수였다는 것(486~87면)이 밝혀졌다.

그밖에도 2001년 봄 김정일의 서울답방을 추진했다가 미국 부시 대통령 당선 때문에 성사되지 못하고(614면), 북한이 뿌찐 대통령과 사전협의하여 남북정상회담의 러시아 이르꾸쯔끄 개최를 수정 제의해왔다는 사실(636면), 서해교전이 김정일의 지시가 아닌 북한 해군의 독자적인 보복행위였다는 점(637면),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 군부강경파들이 반대했다는 사실(647면), 북한의 우라늄농축계획 의혹이 남북 및 북일관계 개선에 제동을 걸기 위한 미국의 정보조작으로 판단되었다는 점(668면) 등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저자 본인의 주장이나 해석을 담은‘회고록’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을 필요도 있다. 6·15남북공동선언에 나온 북측의‘낮은 단계 연방제’가 남측의‘연합제’와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이나, 김정일이 지위 변경을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했다는 증언은 여러 각도에서 추가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의 훈령조작사건은 임동원의 증언이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당사자인 이동복(李東馥) 전 안기부장 특보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숙소로 이동하던 중 차 안에서 나눈 대화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당시 국정원장의 위치에서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 중 하나가 노벨상 수상의 경과이다. 설사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역사의 기록이라는 차원에서라도 해명이 필요했던 부분이다.

냉전 해체기를 맞이하여 저자가 주도적으로 평화 만들기에 노력해왔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만큼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은 비단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냉전시기에 수많은 피스메이커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온몸을 바친 무명의 피스메이커들에게 맨 먼저 헌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