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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해진

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가 있음. glala95@hanmail.net

 

 

 

북쪽 도시에 갔었어

 

 

1

 

늘 죽음을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연속된 시간을 산다기보다는 분절된 현재만을 향유한다. 그들에게 과거는 추억이 되지 못한 채 덤덤하게 시선의 바깥을 스쳐가고 미래란 흑백의 필터로 찍은 현재의 모사본에 지나지 않는다. 너에겐, 너의 연인이었던 칼 박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칼을 만나던 당시의 네가 감당해야 했던 초조와 불안은 시한폭탄의 재깍거리는 소음을 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지품처럼 셔츠 안에 들어 있던 그 초조와 불안을 너는 자주 너 자신의 심장박동과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밤중, 잠결에 칼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던 너의 어린 연인이 있었다. 희미한 조명을 내뿜는 냉장고 안을 마치 우주 저편처럼, 혹은 생의 뒤편처럼 건너다보던 연인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그날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너는 생각하기도 했다. 재깍재깍, 의지와 상관없이 부지런히 박동소리를 내던 자신의 불수의근을 혐오하면서. 가끔은, 너에게도 위로받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토론토의 겨울은 일찍 왔다.‘칼 박’으로 불렸지만‘영훈’이란 또다른 이름을 오른쪽 어깨 뒤편에 문신으로 새기고 다녔던 너의 연인은, 겨울이 시작되는 10월부터 겨울이 끝나는 이듬해 4월까지 도저히 숙면을 취할 수 없게 하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매번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던 악몽을 꾼 날이면 그는 뜨겁게 젖은 얼굴로 너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겨우 일곱살이었는데, 한번도 영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다들 영어도 못하는 칭크(chink)1는 꺼지라고 했어. 피가 막 났어, 너무 많이 났어. 칼 박 혹은 박영훈이 온몸을 떨며 잠결에 속삭이던 그런 말들은 그를 향한 너의 맹목적인 연민이 변하지 않도록 이끄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때의 너에게도 쎅스가 너의 모든 것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달콤함이었느냐고,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묻지는 못했다.

서울의 겨울은 토론토보다 한달 늦게 오고 두달 일찍 끝난다. 그해 가장 심한 황사가 불던 3월 중순의 이른 아침, 겨울은 그저 불어오는 바람 끝에만 간신히 얹혀 있던 그 완연한 봄날, 막 셔터를 올린 내 쌘드위치 가게에 들어서던 너를 본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때때로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에 대해서, 아니 그런 관계를 아주 긴 시간 동안 되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벌 같은 날들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아니다. 그런 것들을 미리 알고 계산하여 피해가는 요령까지 터득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때 네 앞에서 쌘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사람의 역할만을 하고 있어야 했다. 한줌의 웃음도, 단 하나의 단어도, 그리고 서로를 거의 완벽하게 끌어당겼던 시선의 마주침조차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도 미스터 파아크인가요? 너의 부탁대로 베이컨 쌘드위치와 드립커피 한잔을 포장하여 건네자 너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내 가게의 상표를 가리키며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물었다.‘파아크’라는 낯선 발음 때문에 조금 웃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럴걸요. <PARK’s Sandwiches & Coffee>의 직원은 저뿐이니까요. 내가 어눌한 영어로 그렇게 대답했을 때, 우리는 이미 시간이 정지된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가 서로를 고요히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한순간. 누구 하나 입술로 말하진 않았으나 그때 우린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주머니에서 온갖 지폐와 동전을 꺼내 골똘하게 셈을 하는 너를 보며 나는 또 한번 웃었다. 누군가를 만나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두번이나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며 소리내어 웃어본 것이 나에겐 아주 오랜만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날 이후, 네가 내 가게의 단골손님이 된 데에는‘박’이라는 내 성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는 것 역시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다. 너를 처음 본 순간 내가 품었던 그 많은 상념들을, 그러나 너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미스터 파아크, 네가 그렇게 나를 부를 때 네 가슴속에서 재깍재깍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초조와 불안을 내가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때때로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와 그런 관계를 되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날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지하게도, 혹은 어리석게도 아무런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2

 

우리는 곧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빠져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 연인들이었고 실제로 그리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상대방에게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암묵적인 요구를 했고 그 암묵적인 요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조금은 이상한 연인들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지나간 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심장에, 머릿속과 손끝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갈수록 우리의 심장이 아프게 조이고 머릿속이 순간순간 깜깜해지는 것을, 그리고 손끝에 새겨진 그들의 체온이 날아가는 것을 고통스럽게 감지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과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작별인사도 없이, 그림자조차 거두어간 연인을 두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떠난 연인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은 사뭇 달랐다. 내가 자포자기한 상태로 K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을 반반씩 섞은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스스로를 마모시키고 있었을 때, 너는 몇개의 단서들을 품에 안고는 지리 시간에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국이라는 나라를 찾아왔다. 사실 나는 네가 왜 그토록 칼을 찾고 싶어하는지보다 멀리서도 너의 열정을 조종할 수 있었던, 토론토에 남겨져 있을 너와 칼의 추억이 더 궁금했다.

당시 너는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세번씩 서울 시내의 영어학원에서 임시 강사로 강의를 하기도 했고, 강의가 없는 날엔 한국에 와 있을지도 모를 칼의 행방을 찾으러 다녔다. 너는 칼 박의 한국 이름이 박영훈이라는 것과 그가 가족과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 전 살았던 곳이 서울의 영등포구 문래동이라는 사실을 마치 모험가의 은밀한 열쇠처럼 품속에서 하나씩 꺼내어 그를 찾는 데 차례차례 이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네가 갖고 있던 그 열쇠들은 칼 박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그 어떤 문도 열어주지 못했다. 이제는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무허가 판잣집이 즐비했다던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칼이 살던 집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이름이나 가족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한국의 여러 공공기관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이방인의 얼굴로, 이방의 언어를 사용하는 너에겐 모든 정보가 너무 무겁거나 너무 허술했다. 어쩌면 다시는 칼을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날, 너는 이태원의 지하 바에서 밤늦도록 혼자 브랜디를 마셨다고 했다. 새벽 두시쯤 바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택시에 올라탔을 때는 이미 녹다운이 된 후였다. 그날, 너는 어렴풋이 떠올리지 않았을까. 사라지기 전 칼이 자주 보내곤 했던 무언의 메씨지를, 끝까지 네가 외면하고 싶어했던 그의 본심을, 고향에 돌아갈 거라고 버릇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너에게서 떠나기 위해 그가 미리 짜놓은 각본일 수도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그토록 취했음에도 호텔 침대에 엎드려 귀를 틀어막은 채 너는 조금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아 제발, 칼. 낯선 호텔방에서 잠들기 직전 그렇게 나직이 속삭였을 너의 목소리가 상상되면 나는 문득 모든 걸 멈추고 몇초 정도 숨을 골라야 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석달 후, 우리는 만나게 된다. 나와 만나면서 너는 칼과의 재회를 운명 혹은 우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수긍하게 되었고 나의 오피스텔로 짐을 옮겨놓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산 이후 처음 한달 동안, 나는 되도록 여섯시 이전에 쌘드위치 가게의 문을 닫았고 그후엔 언제나 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토론토에서 칼 박은 소금에 절인 양배추에 액즙으로 된 생강과 마늘, 잘게 자른 부추와 고춧가루를 넣어 김치를 만들어준 날이 많았기에 너는 다른 외국인들보다는 한국 음식에 익숙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해준 음식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아니, 먹는다는 것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호밀빵이나 맥도널드 포테이토 같은 걸 사와서는 소파에 구겨져 앉은 채 우적우적 씹어먹는 너를 볼 때마다 나는 먹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있는 힘껏 혐오하고 싶어하는 너의 또다른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너 역시 그런 시간을 통과하면서 너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인정해야 했을 것이다. 그건, 자신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연민을 위장하는 자들의 나약함이었다. 이봐 어처. 그런 날이면 나는 너를 불렀다. 왜? 하는 얼굴로 네가 나를 돌아보면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럴 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가령,

개새끼들은 꺼져라.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나와 K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그날, 스물여섯살의 나는 서른두살의 K를 내가 머물고 있던 고시원으로 데려갔었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K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밀폐된 방 하나뿐이었지만 손에 닿는 현실적인 공간을 우린 소유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쌘드위치 가게를 개업한 나에겐 방 한칸 마련할 여분의 돈이 없었고 두 아이로부터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으며 살던 K에겐 은밀한 사적 공간이 없었다. 그와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고작 모텔뿐이었는데 K는 모텔 로비에서 방값을 계산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마주보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못 견뎌했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K를 고시원으로 데려간 건 오직 그 때문이었다. 모텔보다는 확실히 마음이 편했지만 고시원의 얇은 베니어판이 두 남자의 격정에 찬 신음소리를 정성스럽게 보듬어주진 못했다. K를 바래다 주고 새벽 늦게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온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다가 내 방문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거칠게 씌어진 그 문장을 보았다. 개새끼들은 꺼져라. 감히 방문을 열지도 못하고 나는 그대로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도망쳐왔다고 믿었는데 내 머리와 내 성기, 내 존재 자체를 철저하게 죄악의 표본으로 삼던 세계로부터 미친 듯이 악을 쓰며 도망쳐왔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내가 겨우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이 고작‘개새끼’들의 한뼘 공간이라는 것이 나를 울부짖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미 K와 한번 헤어진 건지도 몰라. 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쩌면 이 문장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고통이 더 커 보인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라 불러선 안된다는 문장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그 긴 이야기를. 하지만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은 언제나 내 안에서 미리 차단되었고 사라져갔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너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나는 너와는 너무도 다른 공간에, 그러나 너의 생각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에 혼자 서 있었다.

 

 

3

 

너는 너의 어린 연인의 눈에서 늘 죽음을 생각하는 자의 초조한 강박을 보았겠지만 나는 K에게서 자기도 모르게 죽음 근처를 서성이는 자의 위험한 무심함을 보았다. 그것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의식과 뒤엉켜 구분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의 삶을 채워갔다. 죽고 싶어, 그는 단 한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밥맛이 없어, 여행을 가고 싶어, 아이들이 자꾸 커가는 게 무섭고 신기해,라는 말을 K에게서 들은 날이면 나는 불안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해주고 싶은 연애감정을 나는 K를 만나면서 처음 느꼈을 것이다.

- 미스터 파아크, 그런데 너와 너의 애인은 왜 헤어졌던 거지?

그리고 어느날, 너는 내게 묻는다.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너는 내가 보던 신문이 어디 있지?와 같은 질문을 던질 때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나는 한 5초 정도 물끄러미 너를 마주 바라봤다. 어떻게 그를 만났지? 누가 먼저 접근했던 거야? 너희에게도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 식의 질문이었다면 조금이라도 할 말이 있었을까. 아니다. K에 관한 거라면 그 어떤 질문에도 내 안에 해답은 없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너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소파에 더 깊숙이 몸을 기댔다.

- 스케이트장이었어.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다. 너는 그렇게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는 아주 먼 곳에서 시작된 듯 희미해져 있었다.

- 토론토 시청 앞에는 겨울이면 무료 야외 스케이트장이 개설되지. 11월말부터는 점등축제도 하고 말이야. 사실 그때 나와 칼은 혼자가 아니었어. 각자 당시 만나던 애인과 거기에 갔던 거지. 유명한 데이트 코스니까.

상상할 수 있었다. 은빛의 빙판, 그 빙판에 비치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오색의 조명, 하얀 입김을 불어대며 손을 맞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연인들과 아이들…… 볼륨을 높이자 여자들의 하이톤 웃음소리와 엉덩방아를 찧고는 엄마를 외쳐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빙판을 스치는 스케이트날의‘슥슥’하는 매끄러운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함께 온 가족이나 애인에게 편하게 몸의 한 부분을 맡겨놓았기에 아무도 분리의 고통 따위는 몰라도 되었던 그곳, 그곳의 밤하늘은 태초의 시간과 맞닿을 듯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을 것이고 그런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삶은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착각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 멋진 곳에, 그리고 스물여덟살의 네가 있었다. 아하하, 소년처럼 웃으며 우아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너에게로 줌인(zoom-in).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적의 너는 그때나, 그때를 떠올려보는 지금이나 내겐 익숙하지 않다. 너는 당시의 애인과 함께 그곳에 갔었고 음료수를 사기 위해 스케이트장을 내려오다가 발을 한번 삐끗하기도 했었다. 곧 자신에게 닥칠 생의 어떤 전환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느긋하게 자판기 쪽으로 걸어가던 너의 뒷모습은 편안해 보인다. 스케이트화의 끈을 매고 있던 스무살의 칼을 발견했을 때, 그러나 편안해 보이던 너의 등은 순식간에 경직되고 만다.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혼이 빠진 듯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지만 그 순간의 감정이 통증에 가까운 황홀함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너는 깨닫지 못했다. 종종 그 장면을 되돌려 생각하며 네가 그 감정을 투시하게 된 건 또 한참이 지난 후였다.

- 헐렁한 쿨워싱 청바지에 회색의 풀오버 코트를 입고 있었어. 아주 날렵한 모양의 검은색 비니를 쓰고 말이야. 한 손엔 담배를 들고 무성의하게 스케이트화 끈을 매고 있더군. 다가가서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그렇게 허술하게 맸다가는 금방 넘어지고 말 거라고 점잖게 타이르고 싶었지. 하지만 내가 그에게 다가가 막상 한 말은 다음주 토요일에 시간 있느냐는 뻔한 질문이었어.

너는 문득 말을 멈추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칼은, 혹시 죽은 걸까? 고개를 돌린 너에게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내 마음은 금세 어두워졌지만 그 어떤 마음도 언어가 되진 못했다. 그 대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나는 너를 불렀다. 어처. 이봐, 어처. 너는 흠칫 놀란 얼굴로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 나는 파아크가 아니야. 파아크는 한국어로 공원일 뿐이지. 나는 박이야, 박.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해줄까? 칼은 한국에서는 주방에서 사용하는 나이프야. 물론 무사의 장검도 칼이지.

내 싱거운 농담에 너는 웃지 않았고, 자신이 한 말을 수습하지 못한 채 여전히 놀란 얼굴로 뚫어지게 나를 보고 있었다. 바로 그 얼굴이 우리가 헤어진 후 너를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리라는 걸, 나는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나는 럭키 가이라고 할 수 있군. 이 세상 어디에도 나이프를 만나다가 공원의 집에서 살게 된 인간은 없을 테니까.

한참 후에야 너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너의 그 말에 우리는 어쩌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우리는 자정까지 와인을 마셨고 술 때문이었는지 너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나는 고르게 숨을 내쉬는 너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K와 나는 헤어진 게 아냐. 그저, 추방된 거야. 내 말을 잠꼬대라고 생각했는지 너는 잠결에 돌아누워 나를 꼭 안아주었다. 너도 나쁜 꿈을 꾸니? 네가 안으로 깊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너의 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낯설지 않은, 기분을 좋게 하는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 바람의 결이 낯익었다.

오래전, K와 등을 맞대고 앉아 있을 때면 우리 사이에 작은 세계 하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럴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음음음, 음음음, 허밍을 하며 K의 손에 얹힌 내 손바닥에 힘을 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심어진 나무 위로 올라가 바람을 맞는다면 꼭 그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K와 함께였을 때는 정의내릴 수 없었던 그 감정을 그날 밤, 나는 너의 품속에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4

 

10월이 되면서 나는 예전처럼 밤 아홉시나 되어서야 쌘드위치 가게의 문을 닫기 시작했고 너를 위한 저녁 식탁에 대한 고심도 그만두게 되었다. 인터넷창을 띄워놓고 캐나다의 뉴스나 날씨를 검색하는 너를 볼 때면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오랫동안 이를 닦았다. 너는 한국에 동성애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까페가 거의 없다며 자주 화를 냈고 캐나다보다 한 템포 빨리 흘러가는 서울의 시간을 못 견뎌했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시선에 포착되지도 않을, 길에서 마주친 여러 장면들을 주의깊게 지켜본 후 자못 진지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내게 그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하는 할아버지를 봤어. 일주일 전엔 가로수를 붙잡고 한국식 레슬링을 하는 청년을 보았는데 그때처럼 참 기이했어.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여자들은 일렬로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거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막 파란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스포츠 스타처럼 뛰어서 건너가는 여자들만큼이나 이해되지 않았어. 비가 오는 날, 서울은 더 우울해져. 건물들이 땅에서 10쎈티미터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너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너의 본심을 나는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감히 말하진 못했지만 사실 우리는 점점 확실해지는 어떤 예감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건 물론, 칼 박이 서울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1년 후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너는, 그때는 진정 마지막 포커게임에서 로열 스트레이트를 쥐고 있는 상대를 만난 기분이었노라고 쓰기도 했다. 더이상 한국에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너는 날마다 속수무책으로 소모되는 시간 앞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중국 레스또랑에서 외식을 하던 날, 조만간 캐나다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네가 말했을 때 나는 덤덤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으므로 충격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나와 함께 갈래?라는 너의 질문 앞에서 허둥댔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사념 없이 너를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나는 너의 흔들리는 눈빛에서‘No’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고 말았다. 후식으로 커피가 나올 때까지 침묵은 고통스럽게 이어졌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근처엔 두 남자가 후룩후룩 커피를 마시는 소리만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너의 귀국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영어학원에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붙박이장에 처박아놓았던 먼지 쌓인 두개의 슈트케이스를 꺼내놓기도 했다. 토론토에서 새로 집을 얻기 전에 머물 만한 저렴한 호텔에 장기투숙 예약을 하거나, 예전 회사동료에게 전화하여 경력자 구인에 대한 정보를 얻는 너를 본 적도 있었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노라고 네가 통보한 날은 내가 새벽 늦게까지 혼자 술을 마시다 돌아온 날이었다. 잔뜩 취해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조금 감상적인 상태였다.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비틀비틀 너에게 다가가 나는 물었다. 날 좀, 데려가 줄래? 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너는 그저 괜찮으냐고만 되물었었지. 괜찮아? 파아크, 정말 괜찮아? 그래, 나는 괜찮아. 나는 언제나 오케이야. 노 프라블럼, 올웨이즈 오케이! 침대 쪽으로 걸어가 그대로 쓰러져 쿠션에 얼굴을 묻으며 나는 온 힘을 다해 웃었다. 곧이어, 내 등을 어루만지는 너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새벽, 목이 말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걷다가 나는 소파에서 불편하게 잠이 든 너를 보았다. 가만히 멈춰서서 너를 지켜보는데 어떤 장면 하나가 믿을 수 없도록 선명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네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고 나 역시 그저 상상만 할 수 있는 1년 후의 어느 하루란 걸 알 수 있었다. 헤어졌음에도 그때도 우리는 서로에게 암묵적으로 거리감을 요구하며 현재의 모사본에 지나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을까. 아마, 그럴 터였다.

1년 후의 그날, 너는 연말의 토론토 시청앞 광장을 지나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된다. 전등이 일제히 켜지고 하늘엔 폭죽이 터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와와, 함성을 지르며 언젠가 추억으로 포장될 그 밤의 아름다움을 지켜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멈춰선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곳엔 방금 칼을 보았다는 확신과 그 사람이 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중 무엇이 사실에 가까운 건지 판단하지 못하는 네가 서 있다. 판단도 못한 채 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으며 정신없이 뛰어갔지만 칼은 이미 찾을 수 없다. 뒤늦게 너를 따라온 너의 새 애인이 무슨 일이야? 묻자 너는 파아크를 찾고 있었어,라고 대답한다. 너의 등을 치며 소리내어 웃는 너의 새 애인에게 줌인을 하고 싶지만 그의 모습만은 내 상상의 범위에 미치지 못한다. 세상에, 파아크라는 이름도 있어? 너의 새 애인이 묻는다. 조금은 고음인, 앳된 소년 같은 음성이라면 어떨까. 너는 뒤를 돌아보며 새 애인을 향해 멋쩍게 웃어준다. 1년 사이 부쩍 나이 든 모습, 스물여덟의 너만큼이나 내겐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이봐, 파아크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야. 그런데 세상에는 파아크라는 성만 있는 게 아니더군. 나이프라는 이름도 있지. 너의 새 애인은 또 한번 큰 소리로 웃고 너는 다시 길을 걷는다. 파아크를 외치며 찾았던 이가 칼이었는지, 서울에 남아 있는 미스터 파아크였는지 혼란스러워하며. 나아가 칼을 목격했다고 믿었던 그 순간 왜 칼의 얼굴이 아니라 서울에서 쌘드위치를 팔고 있을 또다른 파아크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난 건지 스스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그날 밤, 너는 나를 떠난 후 1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이메일 한통을 보낸다. 마지막 포커게임에서 로열 스트레이트를 쥐고 있는 상대를 만난 기분이었다는 문장이 들어 있던, 첫번째 이메일이었다.

 

 

5

 

태초의 인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한몸이었고 그들은 네개의 건강한 발로 광활한 세상을 거닐었다. 네개의 눈이 있었기에 거대한 산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고 밤이 되면 하나의 머리 안에 들어 있는 두개의 얼굴이 서로를 마주보며 고요히 사랑을 나누었다. 인간의 방종에 분노한 신이 번개를 내리쳐 분리되기 전까지 그들에게 사랑은 언제나 손끝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분리된 후에야, 그들은 사랑을 찾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잊는 과정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거울은 늘 금이 간 상태로 우리 곁에 남겨지게 되었고, 나 역시 내가 남들과 조금은 다른 인간임을 알게 된 열두살 이후로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한 거울을 단 한번도 소유해본 적이 없다.

출국일 바로 전날, 너는 밤 열시가 넘을 때까지 내 오피스텔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해지되지 않은 너의 휴대폰에 수십통의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서른다섯번째 혹은 서른여섯번째 통화버튼을 눌렀을 때에야 너는 전화를 받았다.

너는 네가 일했던 영어학원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자동차 대리점에 있다고 했다. 모두 퇴근했어.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아직 비닐도 벗기지 않은 전시용 새 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너는 창문을 열고 말했다. 쇼윈도우를 향해 서 있는 새 차는 윤이 흐르는 검은색 쎄단이었다. 언뜻 보니 조수석에는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고 너의 얼굴은 취기에 조금 젖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물었을 것이다. 내 학생 중 한명이 여기 사장이야. 언젠가 강의실에 카드 하나를 흘리고 갔지. 지나가다 생각이 나서 카드 리더기에 그때 주운 카드를 갖다 대니 문이 열리더군. 너는 대답했겠지. 그러다가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어. 네가 타고 있는 이 차는 아직 판매되지도 않은 고급차잖아. 내가 조금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 걱정 마. 벌써 열번은 넘게 여기에 와봤지만 한번도 경찰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그리고 잊었나 본데 나는 내일 한국에 없어, 말하며 너는, 장난스럽게 와인병을 흔들어 보였을 터이다. 너는 어땠지? 내가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자마자, 그리고 너는 불쑥 그렇게 물었다. 뭘? 되묻자,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을 때 말이야, 좀 전보다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네가 대답했다. 나는 네가 건넨 와인병을 들고 병째로 몇모금 마셨다. 피곤한 하루였다. 피곤했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열두살 이후, 나는 나를 경멸하고 그 경멸의 양만큼 연민하는 힘으로 살아왔다. 마치 너처럼, 그리고 K처럼. 그게, 다였다.

- 나는 아홉살 때 처음 느꼈어. 조금 이른 편이었지. 삼일 정도 내 방에서 한걸음도 안 나갔어. 그 삼일 동안, 탈진하도록 춤을 췄고 너무 지치면 이온음료를 마셨지. 정말 긴 시간이었어.

나는 와인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너의 손을 잡았다. 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을 깨문다(se mordre les lèvres)는 건 프랑스어로 후회한다(regretter)는 의미라고 말해준 건 너였다. 후회하고 있니? 네가 다시 물어올까 봐, 나는 지레 놀란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다행히 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우리는 이내 쌘드위치 가게에서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고요하게 서로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정지된 시간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 곁으로 다가와서 단단한 막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일생이,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시간까지 섬세하게 교환되는 기분이었다. 그때, 폐쇄된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이 열리면서 뚜벅뚜벅, 누군가 걸어나와 우리를 지나쳐갔다. 푸른 눈의 아이였다. 몇번의 탈진을 반복했을 아이의 얼굴은 삼일 사이 청년의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밖에서 그애를 기다리고 있던 열두살의 깡마른 소년이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사이좋게 걸어가는 그들을 우리 역시 말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 말을 걸어 불러 세우지는 않았다.

그들이 아주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너는 손끝으로 내 뺨을 쓸어주었다. 언뜻 본 쎄단의 룸미러에서 우리의 몸은 겹쳐 보였다. 우리에겐 두개의 팔과 두개의 다리, 두개의 얼굴이 있었다. 이제 곧 다가올 분리의 고통을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듯 나는 풍요로운 너의 품에 더 깊이 안겼다. 두 몫의 숨이 하나가 되어 내 가슴속을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너에게 K가 나를 떠난 이유를, 아니 우리가 왜 추방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물론‘그곳’부터 말해야 했다. K와 내가‘숲의 끝’이라고 불렀던, 고가의 원목 가구들로 쎄팅된 침실과 거실이 있었던 그곳. 우리가 이름을 따온 고흐의 그림 「숲의 끝」은 무채색으로만 표현된 스산한 해질녘의 숲이었지만 우리의 진짜 그곳은 작은 장식품 하나에도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던 우아하고 따뜻한 세계였다는 말도.

너는 더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한 손으로 턱까지 괸 채 이윽하게 나를 바라보며 자못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내 허술한 고시원에서도 쫓겨난 K와 나는 일주일에 두번씩 그곳, K의 가구점에서 목마른 쎅스를 나눴다. 화요일과 금요일은 K의 아내가 아이들을 위해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다. 밤 열시, 가구점 문을 닫을 때쯤이면 K는 콘쏠 서랍에서 패브릭 원단을 꺼내 앤틱풍의 킹싸이즈 침대 위에 깔았다. 쌘드위치 가게의 뒷정리를 한 후 가구점 근처를 배회하다 시간에 맞춰 내가 들어가면 K는 셔터를 내리고 실내조명을 껐다. 이딸리아에서 직수입한 마호가니 침대는 언제나 아늑했다. K와 부둥켜안은 채 그곳에 누워 있노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지나온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지금의 나를 가슴 깊이 동정하고 있을 거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들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 침대에서 그런 꿈을 자주 꾸었다. 커밍아웃 이후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허리를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어머니, 내 사물함 안에 여성용 속옷을 넣어놓고 내가 보일 행동을 지켜보며 천박하게 웃던 고등학교 동창들이 어느새 하나둘 몰려와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어주는 꿈. 그런 꿈을 꾼 날이면 세상 전체가 따뜻한 혀가 되어 몇번이고 내 몸을 부드럽게 핥아주곤 했다.

그래서, 그토록 그 순간에 온 정신을 집중했기에, K의 아내가 가구점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K와 나는 어떤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도 절정에 다다랐던 그 순간을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 더더욱 서로에게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가구점 안의 실내조명이 켜지면서 나무들의 노랫소리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람들의 환영도 하얗게 부서졌다. 그와 나는 동시에 그의 아내 쪽을 쳐다봤다. 이상했다. 충격으로 격하게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은 분명 우리에게 수치심을 강요하고 있었는데 우린 서로에게서 몸을 떼지도 않았고, 부끄러운 맨몸을 가릴 수 있는 나무그늘 아래로 뛰어가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문이 열리면서 자동으로 셔터가 올라간 쇼윈도우 쪽으로 동시에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와 내가 갇혀 있었다. 알몸의 한 남자가 또다른 알몸의 한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싸구려 포르노잡지의 한 페이지처럼, 그곳에 온전히 갇혀 있었다. 간간이 지나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숲을 들여다봤다. 놀란 아이의 눈을 가리던 젊은 주부와 은근슬쩍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대던 여고생들, 끌끌 혀를 차던 몇명의 중년 사내들이 그렇게 쇼윈도우 너머에서 우리의 신성한 숲으로 경멸어린 시선을 막무가내로 밀어넣고 있었다. 뒤늦게, 보지 마! 소리치며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지만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낙원 밖을 보아버린 그의 눈은 두려움과 고통으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곧이어, 그의 아내가 가구점 안의 여러 장식품들을 우리 쪽으로 집어던지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녀가 감당해야 했을 분노와 배신감을 나는 감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그녀였고 우리는 그녀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놓은 파렴치한‘개새끼들’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어처, 이봐 어처.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어처?

내가 마지막으로 그렇게 물었을 때 너는 문득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나는 어미젖을 찾는 눈먼 새끼처럼 너의 얼굴을 입술로 더듬었다. 우리는 곧, 정신없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잘 봐. 아직 내 입 안에 들어와 있는 너의 혀가 말했다. 뭘? 쇼윈도우 밖을. 그제야 나는 너의 품에서 빠져나와 쇼윈도우 쪽을 건너다봤다. 아무도 없어. 그래. 너와 키스를 하면서도 나는 내내 쇼윈도우 밖을 보았지. 우리를 지켜보기 위해 걸음을 멈춘 사람은 한명도 없었어. 너의 말대로 쇼윈도우 밖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 삶의 화두를 좇아 무심하게 걷고 있을 뿐, 쇼윈도우 너머 자동차 안에서 서로를 깊이 끌어안고 있는 두명의 남자에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추방할 수 없어. 너는 말했고 나는 맹목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우리는 다시 키스에 몰두했고 미래의 그 어느 순간에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상상할 수 있었다. 토론토 시청앞 광장에서 스무살의 칼이 지은 표정을, 세상의 모든 조명을 암전시키며 자신에게만 온 정신을 집중하도록 했을 그의 매력적인 웃음을. 처음 만난 날로부터 다음주 토요일이 될 때까지 그들이 얼마나 애타게 그 시간을 기다렸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다음날 너는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내가 잠든 사이 내 오피스텔을 떠났다. 그리고 나의 예감대로,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6

 

어떤 날은 K를 생각했고 또 어느날은 너를 떠올렸다. 길을 걷다가, 쌘드위치를 만들다가 혹은 소파에 구겨져 앉은 채 우적우적 빵을 씹어먹다가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재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그건, 초조나 불안이 아니라 시간을 앞질러가고 싶어하는 내 감정이 균열되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자주 식사를 걸렀으며 밤마다 욕실의 거울 앞에서 이를 닦으면서 추억을 방치하는 자의 유약함을 지켜보았다.

계획도 없이 토론토행 비행키 티켓을 예약하게 된 건 너의 이메일도 석달간 끊긴 후였다. 그리고, K의 아내로부터 무려 3년 만에 전화가 온 날이기도 했다. 그녀는 잔뜩 쉰 목소리로 K의 부음을 전했다. K의 시신은 산에서 발견됐노라고 했다. 몰랐는데, 나와 헤어진 후 K는 산으로 갔던 모양이다. 산에서 K는 무욕의 삶을 살았다. 사회적 관계를 포기했고 돈을 벌고 쓰는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났으며 나에게서 돌아누울 때마다 소리 죽여 지갑에서 꺼내 보던 아이들의 사진도 고통스럽게 외면했다. 영양실조에다가 동사(凍死)라는군요. K의 아내는 최대한 덤덤히 다시 말했다. 뚫어지게 정면만을 응시하며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순간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내 마음을 저버리기 위해 나 역시 그녀처럼 이를 악물어야 했다. 매정하도록 관용을 베풀지 않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며 날마다 새롭게 기억되고 있을 그날의 한 장면을 이제는 잊어버려야 한다는 되지도 않는 충고도 나는 온 힘을 다해 참았다. 그래도 그의 죽음 정도는 알려야 할 것 같아 전화했을 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장례식에는 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가 먼저 끊어준 덕에 다행히 나의 그런 멍청한 말들은 전화선을 타지 못했다.

토론토행 비행기를 타던 날은 마침 연말이었고 크리스마스 씨즌이었다. 열두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토론토 시청으로 가리라 다짐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다. 택시를 타고 시청앞을 지나가긴 했다. 너의 말대로, 눈부신 빛으로 물든 빙판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음음음, 음음음. 나도 모르게 허밍이 흘러나왔다. 기다렸지만, 나무의 잔가지를 흔들어놓던 그 부드러운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토론토는 생각보다 추웠고 내가 갔을 때는 사흘 내내 눈이 왔으므로 온 도시가 은백색이었다. 뚜렷한 계획 없이 토론토에 도착한 나는 사흘 동안 호텔방과 호텔 지하의 바에만 있었다. 마지막 날, 너에게 딱 한통의 전화를 걸긴 했다. 너의 새 전화번호가 적힌 이메일을 나는 여권 수첩 안에 넣어다니고 있었다.

너는 내 생각보다 훨씬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내 건강과 쌘드위치 가게의 안부를 물었고 서울은 여전히 그렇게 빠르고 쓸쓸하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내가 무척 건강하고 쌘드위치 가게도 그럭저럭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은 여전하다고 말해주었다. 너의 새로운 삶에 대해선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침묵이 조금 이어졌다. 즉흥적으로 전화를 한 것이었으므로 수화기 안쪽 어딘가에서 동전을 더 넣으라는 메씨지가 들려왔지만 내 주머니엔 여분의 동전이 없었다. 전화가 자동으로 끊기기 직전 내가 속삭였던가. 언젠가 이런 날에, 그러니까 너와 너무도 다른 공간에, 그러나 너의 생각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에 혼자 서서 속삭였을 거라 믿어왔던 그 이야기를 그 순간 내가 정말 너에게 하고 있었던 걸까. 확신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어느새 내가 온 힘을 다해 수화기를 움켜쥔 채 조금씩 울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뜻하지 않게도 그곳 북쪽 도시에서 나는,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사실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때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이제 더이상 내가 전화할 곳은 없었다. 통증에 가까운 황홀감을 되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벌 같은 날들이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아 있던 저녁이었다. 그러니까 어처, 이것도 꽤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첫 답장이 너무 길어져서 미안하다. 서울에서, 너의 사랑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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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시아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