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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화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 희망은 없는가

 

 

권태선 權台仙

언론인,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편집국장과 교육혁신위 산하 2008 대학입시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이범

교육평론가, 곰TV이사. 학원계의 대표적 스타강사로 2004년부터 무료 인터넷강의를 시작했다.

 

채은숙 蔡銀淑

상문고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 고등학생, 중학생 두 자녀의 학부모 자격으로 대화에 참석했다.

 

ⓒ이영균

ⓒ이영균

 

권태선(사회) 반갑습니다. 저는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으로 일하는 권태선입니다. 이범 선생님은 요즘 워낙 활발히 활동하시는 교육전문가이니까 특별한 소개가 필요 없을 것 같고요, 채은숙 선생님은 강남의 학부모 자격으로 모셨는데 상문고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우리나라는 「강남 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정도로 사교육 열풍이 심한데, 한분은 사교육 중심지로 지목되는 강남의 학부모이시고, 다른 한분은 사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오셨고 또한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오신 터라 우리 교육의 쟁점들을 다루기에 좋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먼저 사교육 현황부터 이야기해볼까 싶어요. 통계청에서 조사한 2007년 사교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중등학생의 77%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그 전체 규모가 20조원이 넘는다고 해요. 2006년에는 공식적으로 15조원,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30조원이라고 얘기했으니까, 현재 공식 통계로 잡히는 20조원은 실제로 40조원쯤 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범 이제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초과할지 모르겠네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용도 있을 거고요. 저 수치는 아마 소비자들을 조사해서 나온 것일 텐데, 학원비의 경우는 업계에서 조사하면 신고하지 않는 사례가 꽤 되니까요.

채은숙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못 견뎌 아이들을 유학 보낸 경우까지 합한다면 훨씬 초과하겠죠. 유학 가서도 사교육을 시키니까요.

 

아이 장래는 엄마 하기 나름?

 

권태선 강남 학부모들이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지출할 것 같은데, 그 실상은 어떤가요?

채은숙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의존하는 게 일반적이고요, 외고 준비하려면 내신을 관리해야 하니까 중학교 때 국영수는 기본이고 팀을 짜서 음악, 미술, 체육까지 하는 게 보통이에요. 고등학교 가서는 입시와 연결되니까 사교육 비중이 더욱 커지죠. 언수외(언어 수리 외국어)는 수능형과 내신형 이중으로 시키고, 아울러 사회탐구 과학탐구까지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죠.

권태선 채선생님댁 아이들은 어떠세요?

채은숙 저도 강남의‘독수리엄마’들처럼 교육열에는 유난했었어요. 지금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이가 있는데 좀 일찍부터 조기교육을 시작했어요. 일산에 살다가 강남에 입성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큰아이를 사교육 현장으로 밀어넣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말쯤에 제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애들 교육비 지출이 가계수입을 넘어갔거든요.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독립시키기 시작했죠. 그동안 기초를 닦아놓아서 지금은 기본적인 영어 수학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인터넷강의 듣고 스스로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손을 떼고 격려하기 시작한 뒤로 아이와 사이도 더 좋아지더라구요.(웃음)

이범 훌륭하게 리모델링하셨네요.(웃음) 우리나라 가계소득을 보면, 자녀가 중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에 정점에 올랐다가 이후에는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지출을 보면 대학입학 이후에 자녀들에게 더 많은 돈이 들어가요. 등록금에다 어학연수다 뭐다 해서 그후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고, 결혼할 때가 되면 목돈이 들어요. 그런데 학부모들이 자녀를 대학 문턱 안에만 집어넣으면 될 거라 착각하고 아낌없이 쏟아붓는 경우가 많죠. 그런 점에서 채선생님은 상당히 훌륭하게 리모델링하신 겁니다. 제가 강연할 때 모범사례로 언급해야겠어요.(웃음) 저런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아요.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권태선 채선생님이 아까 교육비 지출이 가계수입을 초과한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럼 모자란 부분은 어떻게 충당하셨나요?(웃음) 직접 말씀하시기 뭣하시면 다른 강남 엄마들의 경우라도 말씀해주시죠?

채은숙 애아빠들이 사교육 비용을 이해 못하기 때문에 사실대로 이야기 못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어요. 저도 그랬구요.(웃음) 저희 집에서는 애들 아빠 수입에 한계가 있으니까 나름 재테크도 하고 아이들 어릴 때 저축해둔 적금으로 사교육비를 해결했어요. 다른 어머니들은 재테크를 하기도 하고, 부모님 신세를 지는 분들도 있고, 자신에게 쓸 돈을 아껴 아이들 사교육에 쓰고 있어요. 소문에 강남 엄마들은 아이들 학교 보낸 다음에 오전엔 운동화 갈아신고 부동산, 증권사를 다니며 재테크를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 간식 먹여서 학원 픽업을 하며 학원테크를 한다죠.

권태선 재테크를 한다면 어떤 것인가요, 주로 부동산인가요?(웃음)

채은숙 부동산을 하는 엄마들도 있고, 주식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좀 예외지만 대체로는 끝까지 가죠. 자신의 생활수준을 넘어서까지요.

권태선 이렇게 학부모들이 많은 돈을 들여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잖아요. 교육전문가로서 그 사교육이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보시나요?

 

사교육의 효과와 역효과

 

이범 최근에는 과잉 사교육의 역효과를 우려해야 할 지경이에요. 제가 보기에, 중학교 때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느냐 아니면 전적으로 학원에 의존해서 공부하게 되느냐로,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형이 나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채선생님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리모델링하셨으니까 때를 놓치지 않아 성공하신 거죠. 그러지 않으면 전적으로 학원에 의존하다가 결국 자기 주도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돼요. 그런 아이들이 결국 대학 가서도 사교육을 받죠. 요즘 대학생들은 별의별 것을 다 배우러 학원에 다니는데, 초중고 시절부터 그렇게 길들여져왔다고 봐야 해요.

권태선 사교육의 효과가 있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이범 주입식으로 단기간에 점수를 올리는 데는 아무래도 효과적이죠.(웃음)

권태선 채선생님은 사교육을 시키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그만두셨다고 했잖아요. 그때 경제적인 이유 외에 또 어떤 게 있었나요?

채은숙 이렇게 아이를 끌고 가다가는 평생 그래야겠다는 생각, 부모 밑에 있을 때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이 아이를 평생 마마보이로 만들고, 제가 독수리엄마처럼 아이를 지켜야 된다는 위기감이 생겼어요. 지금 체제에서는 엄마가 어떻게 코디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장래가 바뀌잖아요. 제가 코디하는 대로 아이가 잘 따라올 줄 알았는데 아이의 성향과 제 성향이 부딪친 점도 작용했어요. 그런데 저도 그 시점에 개인적으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까‘아, 공부는 스스로 다져나가야 결과물이 나오는데 내가 아이를 왜 이렇게 가르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계기였죠. 그래서 마음을 바꾸게 됐어요. 근데 정말 쉽지는 않아요. 중학교 때 우리 아이와 함께 공부하던 애들이 민사고(민족사관고), 특목고(특수목적고)에 갔어요. 우리 아이가 영어를 더 잘했는데, 그 애들이 3, 4개월 집중적으로 학원을 다니니까 확실히 점수가 올라가면서 실력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공부하는 걸 보니‘내가 잘했구나’느껴요.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길렀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는 장점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현체제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엄마들이 단계별로 사교육에 투입시키는 거예요.

권태선 제 경우에는 특파원 생활을 하느라고 큰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프랑스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 애가 수학을 잘 따라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내신에서는 100점을 받아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심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얘가 “엄마, 내가 수학을 얼마나 못하는데 학원도 안 보내주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점수도 잘 나오는데 왜 못한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는데, 바로 수능 얘기더라고요. 큰애가 지금 대학원에 다니는데, 올해 처음 화해했어요. “고등학교 때 수학을 따라갈 수 있도록 뒷받침을 안해줘서 너무 힘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혼자서 그것을 극복하느라 쉬는 시간에도 수학문제만 푸느라고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고 고등학교 생활이 엉망이었다고 해요. 그게 아이한테 상처로 남은 것 같더라고요.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한국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몰랐던 거죠. 결국 아이한테 엄마의 무지와 아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상처를 준 걸 사과했어요. 이런 경우도 있지만, 이선생님 말대로 사교육 과잉으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다고 여기는데요. 해마다 청소년 건강실태에 관한 조사를 해보면 초중등 학생들의 우울증이나 과잉행동장애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사교육의 쳇바퀴 속으로 계속 내몰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고민의 지점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강남 어머니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채은숙 가장 큰 요인은 자신의 아이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필요한 시기에 사교육을 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인 것 같아요. 권선생님 경우에도 따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필요한 시기에 수학과외를 시켰다면 따님이 좀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이렇게 아이가 엄마랑 함께 발맞춰가면 그래도 나은데, 엄마의 불안과 의욕이 앞설 경우 아이는 엄청 괴로운 거죠. 엄마랑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 그래도 좋은 결과를 낳는 것 같아요.

이범 실제로 조사해보면 부모와의 대화시간과 성적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어요. 사교육 성공에는 두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어요. 첫째는 실제 그 아이에게 알맞은 사교육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해주느냐인데, 그런 측면에서 아까 말씀하신 아이와의 대화가 중요하죠. 애가 뭘 어려워하고 뭘 필요로 하는지 대화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요. 또 하나는 학생 스스로 얼마나 자기 공부시간을 확보하느냐예요. 관성적으로 학원 보내는 학부모들은 학원만 다니면 뭔가 될 거라 생각하시는데, 그건 큰 착각이에요. 학교, 학원만 쳇바퀴 돌듯 다니고 자기 공부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죠.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몇시간이라고 하면 그에 맞춰서 학원 다니는 시간도 조정해야 되거든요. 이런 것들도 결국 자녀와의 대화로 조정할 수밖에 없죠.

 

선행학습과 줄세우기 시험에서 강점을 지닌 사교육

 

권태선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입시에서 더 경쟁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높은 수강료, 강력한 학원간 경쟁, 공식적 교육목표와 실제 교육목표의 일치, 낮은 교사 대 학생 비율, 더 나은 교육능력에 대한 강력한 화폐보상, 교육자의 잔무 제거 등 공교육이 가질 수 없는 잇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잇점과 무관하게 사교육 나름의 교육적 특장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범 그건 과목마다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영어는 한국 공교육에 맡겨서는 절대로 성공하기 어려워요. 학교교육만으로는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 자체가 너무 모자라는 거죠. 영어 사교육은 영어에 노출되는 전체 시간을 늘려주기 때문에,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는 그다음 차원이고, 분명히 효과가 있죠. 일반적으로는 초등학교보다 중학교, 중학교보다 고등학교의 사교육 효율이 더 높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영어를 제외하면 효과가 크지 않고, 대체할 만한 것들 이를테면 독서교육을 강화한다든가 하는 것이 많아요. 그런데 중학교, 특히 고등학교 때는 학교만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예를 들면 수능시험은 11월인데, 수학 진도가 7월, 8월에 끝나는 학교도 있어요. 그러니 학교 진도에 맞춰 공부해서는 현실적으로 수능에 제대로 대비하기 어렵죠. 결국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맞춤형 사교육이 성행하는 거죠.

권태선 프랑스에서 돌아왔을 때 작은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수학이 떨어져서 학원이나 과외팀에 넣어보려고 했었는데, 같은 학년에서 함께 공부할 아이를 구할 수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중3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1학년 공부를 하려고 하니 말이 안됐던 거죠. 그런데 정말 그렇게 선행학습을 하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나요? 그런 정도의 선행학습은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교실파괴를 가져오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이범 선행학습을 한 애들이 많으니까 학교 선생님들도 두가지 모습을 보여요. 아이들이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가르치기 난감해하는 면도 있지만, 일부 선생님들은 거기에 편승해 설렁설렁 넘어가기도 해요. 그렇게 되면 아직 못 배운 학생들, 학원 안 다닌 학생들은 피해를 보게 되죠. 그래서 선행학습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권태선 채선생님 아이가 고2라고 하셨죠? 그 아이는 지금 고3 수학을 다 뗐나요?

채은숙 그랬죠. 입시제도에서 한 문제로 아이들의 석차가 엄청나게 왔다갔다 하잖아요. 그래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반복학습이 필요하대요. 저는‘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여하튼 선행학습으로 아이가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면 효과가 굉장히 좋아요. 학원에서 선행학습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학교에서는 이미 다 배운 거라고 설렁설렁 넘어가면 그 부분에 대해서 끝까지 모르게 되더라고요.

지금 교육체제하에서 상위권 아이들은 가르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선행학습이 되어 있고, 학교 선생님들은 중위권 아이들에 맞춰 수업하고 있어요. 그러면 하위권 아이들은 전혀 못 알아듣는 거죠. 아이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사교육을 하는데도 한 반의 3분의 1 정도는 수업시간에 졸거나 못 알아듣고 그저 졸업이 목표인 아이들이래요. 이러니 학교교육만 믿고 가면 아마 바라는 점수를 달성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 필요악으로 선행학습을 할 수밖에 없죠.

이범 선발고사가 존재하는 한, 선발고사가 정형화된 문제로 출제되는 한 선행학습 효과는 어느정도 있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서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거기에 의존하는 거죠.

권태선 결국 수능제도가 입시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학교교육을 왜곡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봐도 괜찮은가요?

 

수능과 내신, 이중고에 시달리는 학생들

 

이범 아니 꼭 수능제도만이 아니고 내신도 마찬가지죠. 오히려 내신시험이 수능시험보다 문제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출제하는 선생님마다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대체로 단순암기로 해결되는 문제가 많죠. 오류가 섞여서 잘못 출제되는 것도 곧잘 눈에 띄고요. 그리고 어차피 줄세우긴데요. 전국적으로 줄세우는 것과 몇십명 몇백명 줄세우는 것의 차이랄까…… 큰 집단에서 줄세우는 게 체감되는 경쟁강도가 더 낮으니까 오히려 내신이 더 치열하죠.

채은숙 제 아이 말도 수능 모의고사 성적에 비해 내신은 선생님들의 실력차도 있고, 선생님들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대요. 같은 답이라도 출제한 선생님이 선호하는 표현으로 쓰지 않으면 감점당하기도 해서 성적 받기가 더 힘들다고 하더군요.

권태선 수능이냐 내신이냐를 떠나서, 등수로 서열을 매겨 그 등수대로 어느 대학을 가느냐를 결정하는 게 문제로군요.

이범 정형화된 시험으로 서열화한다는 점에서 수능이나 내신이나 똑같아요. 오히려 내신이 아이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죠. 외고 입시에 내신이 반영되니까 중학교 때부터 전과목 내신학원에 아이들을 보내잖아요. 학원교육이 수능보다 오히려 내신에서 더 잘 통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이라는 분들은 왠지 수능보다 내신이 더 좋은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채은숙 맞아요. 그 점 때문에 아이들은 내신형, 수능형 사교육의 이중고를 치르고 있어요. 재미있는 얘기는 아이들 학교 시험기간이면 아파트 단지가 일제히 조용해진다는 거예요. 짜장면 배달만 바쁘죠. 엄마가 미리 아이들 시험과목을 요약해두고, 아이가 그걸 공부하는 동안 엄마는 또다른 과목을 준비하고…… 외출도 삼가고 식사준비도 전폐하고 아이들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거죠. 엄마마저 볼모로 잡히고 마는 거예요.(웃음)

권태선 문제가 정말 심각하군요. 제가 2002년 무렵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을 만드는 위원회에 들어가 있었어요. 당시 교육혁신위에서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과정평가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안을 내놓았어요. 아이들이 수업의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발달되어가는지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평가하자는 것이었지 수능 중심, 내신 중심이 논점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교육부와 관련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뒤얽혀서 적당히 타협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더 끔찍한 제도가 된 셈이죠.

위원회에 참석하면서 한국 대학들이 정말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각 대학 입학처장들이 참여했는데, 지방대학 입학처장들과 서울 명문대 입학처장들의 생각이 굉장히 다른 거예요. 우리가 수능등급제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 취지는 표본을 집단화해서 등급을 나눴을 때 같은 등급 안의 아이들은 거의 비슷한 능력을 가졌다는 전제하에서 그런 아이들을 잘 키우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었어요. 아까 채선생님 말씀대로, 한 문제 실수해서 아이들의 평생이 갈린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거 아니에요?

강릉대의 경우는 수능 중위권인 학생들이 가는데, 거기 전자공학과 선생님이 그런 아이들을 철저하게 가르쳐서 미국 명문대학의 대학원에 보내고 거기를 졸업한 사람들이 국내의 유수한 대기업에 입사해 유능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 걸 보면 기본적으로 능력 차이라는 게 그렇게 크지 않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계발할 수 있는 것인데, 서울대 연고대 같은 이른바 명문대들이 아주 안일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뽑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유능한 아이들을 뽑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대학입시제도의 왜곡과 굴절

 

이범 저도 대학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적 형평성이 어떻다는 둥 그런 것보다 아이들의 생활을 생각해보자는 거죠. 내신성적표에는 등급만 나오는 게 아니라 석차, 점수 다 나옵니다. 참여정부에서 수능은 등급화해놨지만, 내신은 아주 정교하게 서열화해놨단 말이에요.

권태선 그래서 당시에 내신도 5등급으로 하자고 얘기했었어요.

이범 그런데 그건 원안에서부터 왜곡됐죠. 나중에 대학이 왜곡시킨 게 아니라, 정부발표 원안부터 왜곡되었어요.

권태선 대학들이 그 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그랬던 거죠.

이범 그럼 대학들이 내신에서 성적이나 등수를 요구했단 말이에요?

권태선 그렇죠. 수능과 내신 등급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꼭 등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그것을 세분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또 교사들이 성적 이외의 전반적 학교생활에 대한 정성평가(定性評價)를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대학 쪽의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교육부가 현실론을 내세우며 대학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거죠. 그러니까 최초의 안이 완전히 이상하게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범 어쨌든 원안은 학생들을 내신의 굴레에 빠뜨리는 거거든요. 수능등급은 지원자격으로 활용하도록 하면서, 내신에서는 세세하게 점수와 석차가 다 나오니까요. 심지어 어느 여고 이과반은 한 학급이고, 학생 수가 30명밖에 안되는데 내신을 갖고 거기서 피터지게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수능의 경우는 이과라 해도 10만명이 넘으니까 자기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이 경쟁자로 인식되지 않는데, 내신은 그렇지 않아요. 일본 영화 「배틀 로얄」에서처럼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상황으로 애들을 몰아넣은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2005년에 고1 학생들이 중간고사 보고 자살하고 그랬죠.

권태선 이제 얘기가 자연스레 입시문제로 넘어왔는데요.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대학입시일 것입니다. 그것도 수도권 일부 명문대의 입시가 중등교육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개혁을 이야기할 때마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이 일과처럼 됐습니다. 한국의 입시 역사는 크게만 봐도 열여섯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사실 입시제도의 변화는 정책당국자 입장에서 보면 재정투자 없이 최소한의 제도변경을 통해서 큰 효과를 가져오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개선을 가져오는지는 확실치 않을 뿐 아니라 제도적 안정성을 해침으로써 관련 당사자들을 불안과 번잡한 적응노력으로 내모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사교육비 경감, 경쟁 완화, 교육정상화를 목표로 내걸지만, 오히려 입시제도가 바뀔 때마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사교육시장이 팽창하는 악순환을 겪어왔고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현행 입시제도가 문제점이 있다손치더라도 바꾸지 않고 지속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까요?

이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 건 바꿔야죠. 특히 어떤 제도로 뽑느냐에 따라 총 사교육비 규모가 분명히 달라지거든요. 다만 교육전문가라는 분들이 폐쇄적으로 이러쿵저러쿵 입시제도를 만들어내는 정책 결정과정이 문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사소통 부족은 이명박정부나 이전 정부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다 공유하고 있던 문제입니다. 대입제도를 기준으로 보면, 유럽대륙에서 많이 채택하는 대학평준화에 기반한 정책과 미국식의 성적 외 요인을 중시하는 정책이 있습니다. 미국식은 일반적으로 수능과 내신의 비중이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성적 이외의 요인에 대한 정성평가가 굉장히 중시됩니다. 특기, 특별활동, 과외활동, 거기서 드러나는 열정이나 리더십 등을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거지요. 또한 수업모델 자체가 주입식에서 벗어나 있어요. 주입식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사교육이 개입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미국에 SAT(대학입학자격시험)나 AP(대학학점인정시험) 학원은 대도시에 깔려 있지만 내신학원이 없는 것도 그 이유예요.

그런데 우리 정부가 채택한 모델은 일본형에 가까운 것 같아요. 주입식 교육을 유지하고 점수만큼 서열화하는 거죠. 사교육은 이런 학교교육을 그대로 복사해온 거구요. 주입식 교육은 학교보다 학원이 더 잘할 수 있죠. 저는 미국형만 돼도 훨씬 나아질 거라고 봐요. 굳이 유럽형까지는, 하면 좋겠지만, 꿈꿀 계제가 아닌 거 같아서요. 그러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수업모델이나 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의 특기나 과외활동 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노하우나 기준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입학사정관제(入學査定官制, 각 대학의 입시사정관이 수능·내신 등의 전형요소뿐 아니라 개인환경, 잠재력 및 발전가능성을 살펴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편집자) 논의도 그래서 나오게 된 거죠.

권태선 정성평가가 가능해지려면 그걸 받아들이는 신뢰가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선생님에 대해서도, 입시에 대해서도 신뢰가 없어서 입학사정관제가 잘 운영될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채은숙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입학사정관을 감시하는 제도가 또 생겨날 것 같은데요.(웃음) 제가 학부모로서 바라는 건, 대학이 가능성 있는 아이들에게 문을 여는 것이에요. 상위권 아이들은 먼저 시작해 많이 공부한 덕분에 성적이 좋은 것이고, 다른 아이들은 좀 늦게 시작했을 뿐인 거잖아요? 물론 아이큐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들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죠.

권태선 어떤 부분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고 보세요?

 

수능등급제는 서열화를 막을 수 있었나

 

채은숙 우선 543점은 무슨 대학 무슨 과, 542점이면 또 무슨 대학 무슨 과, 이렇게 점수에 따라 서열화된 대학의 좁은 문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학원에서 여는 입시설명회에 가봤는데, 입시전형이 너무나 복잡해서 도저히 제 머리로는 우리 아이 입시에 관여할 수 없겠더라고요.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진학지도를 해줘야 하는데, 선생님들도 잘 모르시고요.

이범 선생님들이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전형은 아닌 것 같고요, 좀 냉소적으로 표현하면, 그걸 몰라도 선생님으로서 생활하는 데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권태선 543점짜리는 어디 가고 542점짜리는 어디 가는 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문제를 개선해보고자 한 수능등급제에 불만을 표출하는 학부모들이 굉장히 많았잖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범 등급제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좀 있는데요, 2004년에 정부가 2008학년도 대입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때 수능을 등급화해서 지원자격으로 사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고 했어요. 그 안에 논술을 어느 정도 범위에서 반영하라든지 논술 반영비율의 상한이 얼마라든지 하는 가이드라인이 없었어요. 논술이 본고사화해서는 안된다는 건 나중에 발표했죠. 입시전문가 누구라도 대학이 논술을 가지고 뭔가 하겠구나 예상할 수 있었고 그게 현실화됐어요.

또한 수능등급을 지원자격으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고 했는데, 9등급에서 4%까지는 똑같으니까 60만명으로 치면 2만 4천명은 똑같은 거 아니냐고 하시지만, 이건 잘 모르는 분들 얘기고, 요즘은 총점 등급이 없어요. 과목별 등급이란 말이죠. 국영수에다 탐구과목까지 7과목 전부 1등급 받는 학생들은 0.1%밖에 없어요. 국영수만 따져보면 1% 내외 될 겁니다. 그러니까 등급으로 다시 서열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저는 대학이 수능등급을 분명히 서열화 요소로 삼을 거라고 전망했는데, 그대로 적중했죠.

그리고 등급으로 서열화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어요. 등급으로 서열화하니까 결국 총점이 낮은 아이들이 등급으로는 더 높은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전체 수험생의 3분의 1 정도가 그랬어요. 그래서 서열화를 용인한다면 당연히 뒷말이 없게 점수로 서열화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는 불만이 나온 거죠. 물론 여기에는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데 익숙하던 풍토가 작용했다고 보이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점수 이외의 선발요소를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대학 측도, 학생도, 학부모도, 일선 고등학교도 전혀 안되어 있었던 겁니다.

권태선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수능 비슷한 SAT점수를 활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많이 나오고 있던데요. 사교육을 통해서 SAT점수를 올리는 게 가능해지다 보니, 아이들의 장래성을 판단하는 데 장애요인이 된다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하더군요. 우리 대학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지요. 입학사정관제도 일반 시험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정성평가 등을 통해 찾아내려고 도입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의 입학사정관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고등학교 자체가 그런 정성평가 자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실제로 그런 인재를 발굴해낼 의지가 있는지조차 모르겠으니까요.

이범 제가 보기에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의 준비 부족 때문이 아니라, 대학이 아무리 준비를 잘한다고 해도 고등학교의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현실 때문에 정착하기 어렵다고 봐요.

채은숙 현 등급제에도 불만이 많은데 정성적인 평가는 근거가 정확히 제시되지 않으면 승복하기 힘들 것 같아요. 대학 가서까지도 부모가 교수님들에게 왜 우리 아이 성적이 B인지 묻는 전화를 건다고 해요. 심지어 입사면접에서도 우리 아이가 왜 떨어졌느냐고 따질 정도래요. 그런데 외국처럼 봉사활동이나 가능성들을 평가한다면, 점수가 낮은 학생의 부모는 왜 우리 아이가 그런 점수를 받았느냐고 항의하겠죠.

이범 사실 미국에서도 수십년간 엄청나게 많은 소송분쟁을 겪었어요. 결국은 대학이 거의 다 승소했죠. 미국에서도 이렇게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제도로 자리잡은 거고, 우리나라도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고 개선될 여지는 없어요. 제일 우려되는 건 입시부정이나 비리죠.

 

왜 학부모들은 공정택 교육감에게 표를 던졌나

 

권태선 입시제도 이야기는 이쯤 하고, 초중등교육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감선거 이야기를 해볼까요. 교육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교육감 선출이 주민 직선으로 바뀐 뒤 있었던 첫 선거였는데도, 극히 낮은 관심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럼에도 강남과 강북의 현격한 투표성향 차이, 전교조 후보 논란 등 많은 화제를 낳았는데요. 우선 강남 학부모들이 공정택 교육감에게 많이 투표했잖아요? 공교육감의 어떤 정책에 강남 학부모들이 지지를 표한 거라고 보세요? 선거 당시 일부 학생들이 투표권을 달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교육지방자치제의 성공을 위해 교육감 선출, 교육위원 선출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채은숙 사실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보다는 다음 교육감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고 기존에 하던 사람이 이끌면 덜 혼란스러울 거라 생각해서 기존의 교육감을 다시 뽑은 게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사람이 되거나 선거정치에 의해 입시제도가 자꾸 바뀌는 것보다는 하던 사람이 제도를 좀더 손질하고 보완해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인 거죠. 이번에 최초로 직접선거로 치러진 교육감선거는 투표율이 관건인 것 같아요. 학부모 이외의 계층은 교육감선거에 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평일이어서 그나마 참여율이 부족했거든요. 후보에 대한 홍보기간이 짧아 학교운영에 관심이 많은 저조차 후보들의 공약을 미리 검토하기에 부족했습니다. 교육에는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 교육감선거에는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서, 개인이 당면한 교육문제에는 관심이 많아도 공동의 문제에 참여해 정책아젠다를 형성해가야 하는 일에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범 자꾸 강남, 강남 하지만 공정택 후보가 강남 표만으로 당선된 건 아닙니다.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를 10% 이상 이긴 구는 세곳밖에 없어요. 나머지 구는 대부분 접전이었고, 여기에 더해 강남에서 몰표가 나와 공정택 후보가 이긴 거죠. 촛불정국 뒤에 벌어진 선거임을 감안하면 공정택 후보는 엄청나게 선전한 겁니다. 경쟁이나 점수를 중시하는 문화의 뿌리가 그만큼 넓고 깊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저는 교육감 직선제 자체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어쨌든 일반시민들이 교육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찬반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2년 뒤에 치러질 선거에서는 관심도 더 높아질 거라고 봅니다.

 

관료적 교육제도가 낳은 웰빙파와 승진파 교사들

 

권태선 공정택 교육감이 서울 시민의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는 국제중학교를 자신의 공약이라는 이유로 밀어부치는 것을 보고 학부모들은 교육현장에 끼치는 교육감의 영향력을 실감하시리라고 봅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 교육감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그 선출제도 역시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이 좀더 충실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개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야기를 바꿔 공교육 현장인 학교 이야기로 들어갔으면 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 초중등교육의 현실은 사교육의 비대와 공교육의 부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본격적 학습은 사교육에 의존하고 학교는 내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처럼 되어버렸고, 때문에 학부모들은 돈을, 학생들은 시간과 건강과 꿈을 낭비하고 있어요. 학교 현장을 지키고 계신 선생님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자긍심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원인 가운데 학교 선생님들의 질적 수준의 문제도 있다고 할 수 있나요?

이범 오늘 라디오뉴스에서 들었는데 경기지역 임용고시 평균 경쟁률이 25대 1이래요. 적어도 출발선에서는 학교 선생님들이 앞서 있다고 봐야 해요. 그런데 5~10년 정도 지나면 선생님들이 웰빙파와 승진파로 나뉜대요. 웰빙파는 웰빙파대로 학생을 방임하고, 승진파는 승진하기 위해 온갖 관료적인 요건들을 채우고 교장한테 잘 보이느라 아이들을 방기한다는 거죠. 아이들을 위해 일해야 할 어떤 동기부여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그것이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씨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통처럼 교육을 장악하고 있는 교육 마피아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으면 학교개혁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봐요. 교육 마피아의 정점은 일선 학교에서는 교장이고, 크게 보면 교총을 중심으로 한 교육관료와 그 보위부대인 사범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목 하나만 줄이려고 해도 그 기득권 싸움 때문에 못해요.

이명박정부가 지난 4월 15일에 학교자율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사실은 관료 즉 교육감과 교장에게 자율권을 준 것에 불과해요. 교육 현장의 교사나 학생에게 자율권을 준 게 아닌데, 사람들은 이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교육에 관해서는 이명박정부만 국민과 대화 안한 거 아니에요.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다 그랬어요. 교육관료들 손에서 지지고 볶고 자기 마음대로 했을 뿐이죠. 한때 어느 분파가 세지고 다른 때 또다른 분파가 세지고 했을 뿐, 정권이 바뀌어도 별로 변화는 없었어요. 그래서 가장 불쌍한 것은 학생이고, 그다음은 교사라고 할 수 있어요.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설령 의욕이 있어도, 자기 뜻대로 교재를 선정할 수도, 수업방식을 선택할 수도 없죠, 잡무는 많죠, 가지고 있던 의욕마저 점점 잃어버려요. 저는 궁극적으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게 하면, 부작용이 적은 나름의 최적화된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봐요.

채은숙 이범 선생님 말씀에 많이 동감하는데요, 저도 학교 선생님들이 사교육시장의 강사들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왜 그런 얘기를 듣느냐면, 학원강사들에 비해 경쟁체제에 놓여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평준화 교육이 부른 문제점 중 하나죠. 그리고 학원은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누어서 가르치잖아요? 맞춤교육이 가능하니까 좀더 효율적이죠.

권태선 학교에서도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많은데, 일반 학부모들이 우열반 편성에 반대하지 않았나요?

채은숙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지만 이제 수긍해나가는 단계 같아요. 그게 자기 아이들에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아신 거죠.

이범 저는 수준별 수업이 좋네 나쁘네 하는 것은 위험한 일반론이라고 봅니다. 교사와 학생에게 자율권을 줄 수 있는 제도가 뭐가 있을까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죠.

 

교원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권태선 우리 교육정책과 관련해 교사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도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단위학교나 일선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신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부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원평가제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교사들도 많은데요. 제대로 운신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이미 근무평정(근평)이 있는데 또다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지요. 현정부도 최근 사교육 대책으로 교원평가를 다시 들고 나왔는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범 굉장히 양면적이에요. 학생에 의한 평가와 학부모에 의한 평가, 동료교사에 의한 평가가 있을 텐데, 저는 학부모에 의한 평가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에요. 학생에 의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선생님들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어요. 지금 근평이라고 해서 윗사람한테 잘 보이고 챙길 거 잘 챙겨서 관료적으로 점수 따서 승진하는 제도가 있고, 성과급제가 있고, 교원평가제가 거기에 혹처럼 붙는 것이거든요. 기존의 근평과 성과급제도가 관료적인 형태로 존속되어 학생들에게 시간과 정열을 쏟는 것을 방해하는 와중에, 교원평가를 혹처럼 붙이니까 나름대로 양심적이고 의식있는 선생님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거예요.

권태선 그렇다고 근평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범 근평을 없애려면 거의 준혁명적 상황이 필요할지도 몰라요.(웃음) 그것이 교육 마피아가 가진 기득권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어쨌든 제 주장의 요지는, 교원평가를 받아들이고 아울러 근평에 근거한 교사승진제와 교장임용제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자는 겁니다. 이전처럼 관료적으로 윗사람에게 점수 잘 받아서 승진하는 제도는 이미 사회적 효력을 잃었고, 그런 식으로 승진 트랙 밟아서 교장이 되는 교장임용제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분들은 아래에 있는 학생이나 학부형의 눈높이를 맞춰 교장이 된 게 아니니까 절대로 눈높이가 아래로 안 내려와요.

채은숙 저는 교원평가는 인기에 영합할 우려가 있어서 우리 현실에서는 요원한 일일 거 같아요. 아이들의 평가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평가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으면 선생님들도 수긍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권태선 하지만 학생들이야말로 좋은 선생님을 알아본다는 말도 있어요. 정말 이 선생님은 진정성을 가지고 애들을 대하는지 아닌지, 차별하는지 아닌지를요.

채은숙 그렇긴 해요. 학생들은 좋은 선생님을 귀신같이 알아보더라고요.

권태선 그래서 교원평가에서는 오히려 동료평가가 더 문제될 거라고 우려하는 선생님도 있어요. 아까 웰빙족 얘기하셨지만,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교사들을 두고 괜히 일 벌려서 귀찮게 한다고 나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비슷한 취지에서 저는 학교 현장을 변화시키는 데에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노조의 입장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전교조를 공공의 적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는데, 애초에 참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전교조가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기에 비판받고 있는지, 실제로 학부모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전교조, 다시 학교 현장의 개혁에서 시작할 때

 

채은숙 어떤 조직이든 목적이 분명해야만 튼튼한 조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전교조는 애초의 목적인 참교육 정신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조직이 유지되기 위한 발언들을 함으로써 전교조 내에서도 찬반이 나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수의 전교조 선생님들을 지켜보면 교육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분명히 있어요. 어떤 전교조 선생님은 참교육을 위해 승진을 포기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왜냐하면 근평에서 전교조라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여하튼 앞으로 전교조가 다시 참교육을 위한 조직으로 재탄생하려면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을 좀 받아들이고, 서로가 협의하에 교육의 방향을 잘 잡아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권태선 이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떤 것 같으세요? 전교조가 사회적으로 비판받고 있는데, 어떤 점이 잘못됐고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범 전교조는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일반적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2년에 한번씩 하는 위원장선거에서 전교조 내부의 어떤 정파도 교사들을 귀찮게 하거나 업무부담을 지우는 정책을 내걸지 않아요. 그리고 결국은 의도했든 안했든 가장 선명한 전투성을 인정받는 쪽이 당선되는데, 거기서 인정받는 전투성이란 게 사회적으로 봤을 때 기득권의 보호라는 면이 있어요. 전교조는 특히 2000년대 이후에 주로 반대투쟁만 했어요. 반대가 아닌 뭘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순간 소속원 중 적어도 일부는 상당히 불편해지거나 이전보다 불안해질 수 있거든요. 뭘 하자고 한 건 학벌사회 철폐, 고교평준화 유지 정도였어요. 그건 초·중·고등학교의 직접적 변화와는 거리가 있거든요. 정작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선 학교의 개혁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정책이 없었어요.

사실 참교육 담론은 2000년대 이후에 쇠퇴하기 시작했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학벌사회화, 대학서열화 담론이 중심이 되었죠. 물론 문제제기는 정당한데, 그로 인해 일선 학교의 개혁의제가 뒤로 후퇴했던 것 같아요. 전교조는 출범할 때의 정신 자체가‘노조 이상의 노조’였는데, 그 의미는 교육은 국가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공공써비스이고, 그들에게 좀더 지지받을 수 있는 정책들을 과감히 실천하겠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저는 전교조가 왜 두발자유화에 관해서 선명하게 그리고 의욕적으로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두발은 요즘 학생들에게는 자기 몸인데, 자기 몸을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은 21세기 우리나라의 사회적 인식과도 안 맞는 거죠. 이런 학생 인권문제부터 시작해서,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것들이 다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권태선 우리 사회에서 전교조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 가운데는 지나친 점이 없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때로는 일부 언론이나 우파단체들이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간 측면도 있고요. 그럼에도 전교조가 내세웠던 참교육운동이 퇴색하고, 교사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익단체가 되어버린 게 아니냐는 비판에는 귀기울일 대목이 없지 않습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교육 현장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선제적으로 전개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를 우군으로 만들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한국교육에 대한 위기감이 정점으로 치닫는 지금이야말로, 전교조가 면모를 일신하고 다시 옛날의 참교육 정신으로 돌아갈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현장에서 새로운 교육의 모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교원평가만 해도, 반대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교원평가의 모형을 제시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면, 반대만 하는 이익단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교조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고교평준화의 한계로 많이 지적되는 수월성 문제로 넘어가보기로 하죠. 공교육으로는 수월성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핀란드식 교육모델에서는 수월성과 형평성 두가지가 다 제대로 실현된다고 합니다. 우리 공교육 현장에서 수월성 교육이 제대로 안된다고 하는 것 역시 학교 현장에 선생님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까요?

 

한국사회의 수월성 개념에 대한 착각

 

이범 수월성은 영어로 excellence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영수 잘하는 것을 수월성 교육인 것처럼 잘못 쓰고 있는데, 사실은 그 학생이 가진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교육이 수월성 교육이에요. 그게 글쓰기가 됐건 수학문제 푸는 능력이 됐건 목공이나 만들기가 됐건요. 수월성 교육은 공부를 얼마나 많이 시키느냐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다양하면서도 특정 분야에서 더 깊이있는 교육기회를 주느냐와 연관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다양하지 않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 문과 이과 선택하는 것, 수능에서 몇과목 선택하는 것뿐이죠.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가 무학년제예요. 중학교 때 이미 교육과정의 20% 정도가 선택과목으로 채워지죠. 외국어, 예체능 과목이 다 선택과목인 거죠. 미국도 선택과목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어서, 특정 과목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으면 우수반(honor class)이나 최고급 과정(AP)에 들어가면 돼요. 한국처럼 별도 학교를 만들지 않고 일반학교 내에서 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수월성 교육을 막고 있는 것은 교육 마피아예요. 수월성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학교 교육과정을 다 뜯어고쳐야 하거든요. 그러면 제일 많이 반발하는 데가 기득권층, 즉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좌지우지해온 일부 교육관료들과 교수들이고, 부차적으로 교사들도 불안해할 수 있죠. 자기 과목에 대한 수요가 달라지면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으니까요. 이러니 결국 개혁을 못하는 거죠. 이명박정부가 수능을 왕창 줄이겠다고 하더니 결국 한과목 줄인다잖아요?

채은숙 저는 수월성 교육이 일반학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사실 국제중학교가 생기면 거기에는 우수한 아이들이 가잖아요? 그 반면에 좀 떨어지는 아이들이 가는, 입시준비가 아닌 직업교육을 맡을 수 있는 학교가 생기면서 서로 분화되어 발전할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면서 일반학교에는 비슷한 아이들이 남아 좀더 질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거죠. 즉 우등생을 위한 학교가 생기면 반대로 열등생을 위한 학교도 생겨서 열등생들도 포용해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일반학교 내에서 특성화 교육이 이루어지면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이고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교육받을 수 있어 좋은 점이 많겠군요.

이범 저와 채선생님 얘기가 공통으로 맞닿는 지점은 어쨌든 지금 교육이 너무 획일적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개성이나 의욕을 살릴 수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채선생님은 다양화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유형의 학교를 세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시고, 저는 그 학교들이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사교육을 조장할 거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만 해도 한 학교 내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우수반이나 최고급 과정이 일반학교에서 다 시행되고 있죠.

권태선 프랑스의 경우도 대학이 그랑제꼴을 제외하고는 평준화되어 있지만, 노벨상은 그랑제꼴 출신이 아니라 평준화된 대학에서 폭넓게 공부한 사람들이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일찍부터 직업교육과 취업교육을 분리해온 독일에서도, 최근에는 자신들의 교육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고 해요. 국제중이니 뭐니 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학교들을 자꾸 만들어 분리하는 대신, 일반학교들 속에서 통합적 교육을 가능하게 하되 학교 내에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더 나은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국제중학교 설립과 학교선택제

 

채은숙 저도 얘기 나누면서 그런 방법도 있구나 했어요. 청심 국제중학교 같은 학교를 신설하는 것도 과도기 과정이고, 이범 선생님 말씀대로 학교 내에서 선별적인 수준별 교육과 특성화 교육이 생겨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하튼 평준화되고 획일화된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말 글로벌한 인재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어서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우리나라 교육정책자들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수준 높은 교육에 대한 욕구를 빨리 현실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국제중학교 같은 것들도 아이들을 나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경쟁력 있는 선생님들을 모셔와서 그런 학교를 자꾸 발전시키면 유학가는 학생들도 줄어들고 역으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올 수도 있잖아요?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데 유학으로 인한 외화 유출도 막고 오히려 외화를 벌어들이는 좋은 제도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더불어 일반학교들도 경쟁하면서 함께 공교육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돼요.

권태선 국제중 같은 학교를 만든다고 해서 한국교육이 바뀔 수 있을까요? 공교육 자체가 변화해서 공교육 내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채은숙 학교선택제가 2010년부터 시행되잖아요? 저희 학교도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비인기학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들이 노력하시는 거 같아요. 특히 이번에 준공된 급식실과 방과후에 학생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꾸며진 독서실은 학교의 자랑거리죠. 이렇게 학교를 선택하는 기회를 줬을 때 훨씬 더 발전이 있을 거 같아요. 학교간의 자율경쟁을 통해 좋은 학교들이 생겨나면 그 학교가 벤치마킹되고, 나머지 학교들도 발전되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범 제가 학교선택제를 옹호하는 이유는, 학교다양화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에요. 적어도 지금의 선택제는 성적순 선발은 아니죠. 선지원 추첨제로 선발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학교다양화를 위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가 싶어요. 구체적으로 나아지리라고 보는 분야는 예체능계예요. 우리나라 대학정원 중에 예체능계가 15% 정도 되는데요. 15%면 거의 10만명에 육박해요. 그런데 현재 예체능계열 고등학교 정원은 1.5% 정도밖에 안돼요. 나머지 학생들은 거의 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죠. 학교선택제를 하면, 예를 들어 어느 학교는 우리는 세 반을 디자인 특별반으로 운영하겠다, 이렇게 나올 수 있어요. 지금 체제에서는 불가능하죠. 학교 입장에서도 유능한 교장, 유능한 리더들이 있으면, 그런 것들을 분명히 노릴 겁니다. 그러면 예체능계 학생들 고생이 훨씬 줄죠.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요. 예체능계 학교도 서열화되어 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처럼 말도 안되는 불합리한 일들은 좀 줄일 수 있죠.

권태선 미국에서 보면 마그넷 스쿨(magnet school)이라고 특성화된 학교가 있어서, 관내 다른 학교의 학생도 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줘요. 우리나라도 그런 식으로 학교가 자신만의 특장을 살릴 수 있게 되면 가능하리라 생각돼요. 그런데 외부에서 새로운 유형의 학교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과 내부에 자율을 줘서 내부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 사이의 균형점이 필요할 거 같아요. 외부화하는 씨스템은 우리 같은 사회에서 사교육을 부풀리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국제중 설립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이 학교 진학을 위한 사교육시장이 얼마나 팽창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아까 국제중 등을 통해서 글로벌 리더로 키우고 싶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릴 때 해외로 유학가거나 외국 소재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 많이 있어요. 강남에는 굉장히 두드러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채은숙 많게는 한 반에서 일년에 대여섯명씩 사라지죠.

권태선 해외유학이 얼마나 성공적이라고 학부모들은 평가하고 있나요?

채은숙 통계를 안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피성 유학이 아니라 한국의 교육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간 부모님들은 거기가 천국이래요. 그리고 아이들도 선진 교육제도에 만족하구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외국에서 계속 살게 되면 문제가 줄어드는데, 학위 받은 후 국내로 돌아와 정착하려고 하면 텃세나 학연, 지연 때문에 여러가지로 참 힘들대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게 되니까 국가로서는 유학으로 인해 외화를 낭비하고 그 인재를 제대로 고용하지 못해 또 한번 비용을 치르는 셈이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은 불가능한가

 

이범 미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학업활동과 과외활동에 시간을 50:50 정도로 배분하는데, 한국 교포학생들은 75:25로 배분한다고 해요. 75:25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치죠. 미국 등과 비교해서 우리 학생들이 제일 불쌍한 것 한가지만 꼽으라면 칭찬을 못 받는 거예요. 우리나라식 성적평가에서는 최상위권에 있는 일부만 칭찬받을 수 있지, 나머지는 다 주눅들어 있어요. 제가 학부모들을 많이 상담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 집의 경제력도 알게 돼요. 어머님들이 솔직하게 다 말씀하시니까요. 그중에는 제가 조기유학 보내라고 하는 집도 있어요. 어떤 경우냐면 애가 그리 머리는 좋지 않은데 착하고 성실해요. 그런 애들이 외국에서 제일 성공해요. 착하고 성실하니까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데다, 한국에서는 뛰어나지 않더라도 외국 가면 한국에서 하던 기본실력이 있으니까 수학은 잘한다는 얘기를 듣거든요. 거기서 기가 확 살고 애가 행복해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를 펼 수가 없거든요. 그런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조기유학이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저도 내년이면 첫애가 초등학교 올라가는데, 제일 안타까운 게 그겁니다. 우리 애가 공부를 얼마나 잘할까 못할까가 아니라 칭찬도 별로 못 받고, 칭찬을 못 받으면 자긍심도 없고 자기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기도 어렵고요. 그래야 제대로 된 의미의 수월성 교육이 가능한데, 그렇지 않으니 그게 제일 걱정스럽죠.

권태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듣고서 마칠까 합니다. 채선생님부터 마무리 발언을 해주시죠.

채은숙 교육의 변화는 먼저 교육의 공급자들이 수요자에게 맞춤써비스를 하려고 할 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주체들이 함께 의논하고 공동의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들이 모아질 때 커다란 정책적 변화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국가의 미래이자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경우는 국가의 경쟁력이기 때문이에요. 두번째는 교육에 대한 의식의 전환입니다. 입시 위주의 진학교육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선진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전인교육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인간은 소중하다는 인간존중의 정신을 먼저 가르치고, 그다음 자신이 타고난 잠재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각자의 특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고, 개별성에 맞는 교육을 실행해야 할 거예요.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행복하게 여기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교육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이범 제가 이런저런 자리에서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지만, 노무현정부나 김대중정부도 그리 잘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명박정부가 황당한 일을 더 많이 해서 그렇지 본질적으로 바뀐 건 없어요. 저는 원포인트 교육개혁을 한다면, 교사승진제와 교장임용제를 뜯어고친다든가 무학년 학점제로 중고등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적 비용을 그리 들이지 않으면서 효과가 클 수 있는 것들이죠. 교육감 직선제를 통해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넓어진 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논의하면서 시민들이 교육개혁에 전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권태선 한국의 교육을 질식시킬 정도로 어렵게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요소는 학벌사회와 학교 현장에 대한 관료적 억압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학벌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부모와 학생 모두 서열화된 대학의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교육의 공공성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사교육 광풍 속에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명박정부는 일제고사다 자율학교다 하며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더욱 경쟁지상체제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우리 교육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립니다. 이제야말로 교육의 각 주체가 교육의 본령을 찾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내야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교사와 학부모들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이런 불행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은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현장의 자율을 회복하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을 학부모들이 믿고 지원해줄 때, 선생님들의 자긍심이 되살아나고 학교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가꾸는 장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학부모로서 교육운동가로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그 개선방향을 고민하고 계신 두 분을 모시고 유익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것으로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0월 21일, 세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