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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 시평
꺼지지 않는 ‘디지털 촛불’을 들자
YTN 공정방송 사수투쟁기
노종면 盧宗勉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 YTN보도국 프로듀서로 「돌발영상」 제작 책임자를 역임했다. 이명박정부의 구본홍 사장 낙하산 인사 반대투쟁을 벌이다 해직되었다. nodolbal@naver.com
“YTN불 꺼라”
촛불이 거리를 뒤덮었던 6월초, 수천명의 시위대는 숭례문에서 서울역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로변에 우뚝 선 YTN타워를 지나며 이렇게 외쳤다. “YTN불 꺼라!” 시위대를 취재하던 YTN카메라기자를 향해서도 외쳤다. “YTN찍지 마!” YTN의 보도가‘촛불’을 외면하고 있다는 시민, 아니 시청자들의 질타였다. 당시 YTN에서는 이른바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투쟁이 두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었고 촛불보도에 대한 내부 반성이 일고 있었지만, 두가지의 연결고리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넉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촛불보도가 제대로 됐을 리 만무함을 명백히 인식할 수 있다. 그때는 낙하산 사장 선임 반대투쟁이 미약했으므로 촛불보도 또한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투쟁의 본질이‘공정방송 사수’임을 좀더 구체적으로 인식했다면,‘공정방송 사수’가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좀더 체화되어 있었다면, 촛불보도에 대한 내부 반성이 좀더 치열했을 것이고 보도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좀더 가열찼으리라.
‘촛불’과 YTN의 투쟁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구본홍(具本弘)씨의 사장 내정설이 흘러나온 것은 올해 4월초였다. 정보도 막연했고 대응 또한 막연했다. 그러나 촛불이 타오르던 5월부터는 달랐다. 취재현장에서 기자들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날아드는 물통을 피해야 했고 삿대질을 감수해야 했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들은 하나같이‘촛불보도 똑바로 하라’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모색을 하던 시기, YTN사람들은‘촛불’이라는 이슈 앞에서‘공정방송’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비록 인식이 깊고 넓지 못했지만‘공정방송 사수’투쟁은 그렇게 막을 올리고 있었다.
투쟁이 시작되다
낙하산 사장 선임에 대한 우려는 5월 29일 구본홍씨가 이사회에서 사장후보로 추천되면서 본격화됐다. 이사회를 막기 위해 노조원들이 이사회장에 집결했다. 60여명이 모였다. 노조원 수 4백명. 방송 취재 인력과 지방 인력 빼고도 60여명이나 모인 건 예상 밖이었다. 장소를 옮겨 진행되는 바람에 이사회를 막지 못했지만 당시 모였던 60여명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때 이런 말이 나왔다. “촛불과 함께 6월투쟁을 전개하자.” 사실 당시 집행부는 임기를 다해 차기 집행부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6월을 집행부 교체시기로 상정하고 있었다.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만드는 주주총회가 7월 14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그전에 전열을 정비하고 주주총회 저지투쟁을 전개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6월투쟁’요구는 그러한 집행부 방침에 대한 사실상의 반기(反旗)였다. 6월은 내부적 정비의 기간이 아니라 투쟁에 나서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집행부는 차기 집행부 선거를 최대한 뒤로 미루고‘6월투쟁안’을 수용했다. 비로소 나도 노조원의 자격으로 투쟁의 대열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 나는 노조의‘6월투쟁’을 지지했다. 사실상 발의자 중 한명이었다. 촛불의 투쟁방식을 벤치마킹해서 우리의 요구를 상징화하고 그것을 지속적이고도 반복적으로 드러내자고 했다. 동력을 확인한 뒤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정에서 동력을 모으자고 했다. YTN사옥 앞에 촛불이 켜졌다. 공교롭게도 노조에서 촛불 점화를 결정하자마자 시민들도 촛불을 함께 켰다. 그때가 6월 9일이었다. 이후 YTN사옥 앞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
노조는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종이를 접으면 양 날개에‘공정방송’과‘방송독립’문구가 드러나는 비행기였다. 시민들과 함께 접었다. 시민들은 종이비행기 여백에 자신들의 소망을 적었다. 그리고 날렸다. 사옥 20층 꼭대기에서 이륙한 공정방송 비행기들은 시민들의 환호 속에 비행했다. 어떤 놈은 급전직하하기도 하고 어떤 놈은 끝없이 날아가기도 했다. 구둣발에 밟히고 차바퀴에 짓이겨졌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주워들어 거기 적힌 구호를, 깨알 같은 소망을 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YTN의 투쟁은 촛불을 켜고 종이비행기를 날림으로써 불특정 다수, 다시 말해 시민사회를 향해 작은 외침을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주주총회에 임박해 집행부가 교체되고, 7월 17일 수백명의 용역직원이 겹겹이 쌓은 이른바‘용역산성’의 호위 속에 날치기 주주총회가 치러졌다. 당일 조합원 1백여명이 주총이 열리는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 소액주주 자격으로 집결했으나 용역산성은 조합원들의 출입부터 봉쇄하고 있었다. 주주임을 확인받고 비표까지 발급받은 조합원들은 겹겹이 쌓인 용역산성 앞에서‘길을 터라’라는 말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총회 시작시간이 임박해 길이 트였다. 조합원들을 자극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총회장에 뒤늦게 입장한 조합원들 눈앞에는 더욱 견고한 용역산성이 구축돼 있었고 우리의 의견도, 주장도, 외침도, 눈물도 그 산성을 넘지 못했다. 주주총회가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0초, 제헌절 60주년 아침 낙하산 사장을 만들기 위해 법의 정신은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뒤이어 구본홍씨 출근저지 투쟁이 전개되고, 집행부 협상안이 부결돼 집행부가 다시 교체되는 과정을 거치며 YTN노조는 그야말로 뜨거운 여름을 관통했다. 나는 집행부 협상안을 앞장서 반대한 뒤 보궐선거에 출마해 YTN지부 지부장이 되었다.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투쟁이 진행되던 지난 10월초 사측은 나를 비롯해 6명의 조합원을 해임하는 등 33명에 대한 징계를 단행했다.
새로운 투쟁의 상징, YTN
YTN노조의 투쟁은 해를 넘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무도 YTN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간부들에 의해 분열과 고립작전이 시도되면서 노조는 철저히 외롭게 싸웠다. 그러나 주주총회 저지,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생방송 피케팅, 인사불복종, 파업결의, 집단해고,‘블랙투쟁’(검은색 옷 입기 투쟁),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서 YTN사태는 YTN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왜 노조원 4백명에 불과한 YTN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는 것일까? 상징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를 상징하고, 구본홍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드러나는 정권의 폭력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받는 상징은‘희망’이다.
5월 점화되어 6, 7월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은 8월에 이르러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러나 뒤늦게 점화된 YTN의 촛불은 아직도 꿋꿋하다. 오히려 불길이 더 세졌다. 많은 이들이 YTN의 투쟁사례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일부는 촛불의 재점화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촛불이 꺼져갈 때 시민사회단체들은 광우병 쇠고기를 대체할 새로운 이슈를 모색했다. 그때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가능성이 있다. YTN이 버텨내며 주목도를 높여가고 있고, KBS와 MBC등도 내부적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형국이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신문법 개정, 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도입 등 각 언론사, 특히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이‘손대면 톡 하고 터질 듯’잠복해 있다. 관련된 방송사 중 어느 한곳만이라도 추가로 전면에 나선다면 정권과 언론계 간의 선명한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방송에서‘2차 촛불’이 점화된다면‘1차 촛불’때와는 달리 구심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또한 그 구심점이 절대적인 파급력을 가진 방송이기 때문에 정권으로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앞서 많은 이들이 YTN의 투쟁에서 희망의 상징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그 희망은 결국‘2차 촛불’의 점화이다. 다시 말해 YTN이‘2차 촛불’의 도화선이 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2차 촛불’이 점화된다면 우리는 이길 수 있을까? 만약 방송이 중심이 되어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에 맞서는 촛불이 점화된다면 매우 강력한 촛불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구심이 강력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심이 강한 반면, 먹을거리가 문제였던 1차 촛불처럼 저변을 넓히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공정한 방송은 먹을거리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방송이 장악되면 나쁜 먹을거리도 좋은 먹을거리로 둔갑한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사실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선 이를 해결해야 한다. YTN사태에서‘돌발영상 죽이기’를 읽어내고, KBS사태에서‘윤도현 죽이기’를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그래도 광우병 쇠고기만 하겠는가? 따라서 2차 촛불은 활활 타오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활활 타오르기 전에 정권이 꺼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디지털 촛불’의 중요성이 포착된다. 불어도 꺼지지 않는 촛불을 나는 디지털 촛불이라 규정한다. 꺼지지 않고 버티면서 하나둘 점화해간다면 시간이 걸릴지언정 촛불의 장관(壯觀)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촛불의 점화를 위해
이런저런 집회현장에 가보면 배터리로 불을 켜는‘전자 촛불’을 볼수 있다. 시위도구의 단순한 진화라 할 수 있지만, 여기에 무한복제 개념을 부가한다면‘디지털 촛불’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촛불은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 촛불 시민들은 스스로를‘몸빵’이라 부른다. 일하랴 촛불 켜랴, 성과와 보람을 얻지 못한다면 지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 명분에 공감한다면 모여서 노래한들 어떠랴. 명분에 공감하게 할 수 있다면 모여서 춤춘들 어떠랴. 촛불 시민들이 물대포에 맞서거나 방패에 찍히는 부담을 갖지 않는다면 촛불의 복제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촛불을 모아 그 힘으로 정권을 당장 불태울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지속적으로 촛불의 대오에 남아 선거 때 한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투쟁방식의 복제도 중요하다. 사실 촛불을 켜는 행위 자체가 복제성을 지닌다. 그러나 고립되어 있다. 집결해야만 촛불을 켤 수 있다. YTN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었던 것처럼 시공을 벗어나 그 행위가 복제되도록 투쟁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해 명분이나 투쟁문화, 투쟁방식이 복제된다면 이른바 디지털 촛불은 부족하나마 틀을 갖출 것이라 믿는다.
YTN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투쟁현장 가운데 한곳일 뿐이다. 그러나 디지털 촛불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단 한곳이다. YTN의 집회는 밝고 경쾌하다. 명망가나 한자리 하시는 분들이 젠체할 수 없는 곳이다. 공정방송의 의지를 담아 종이비행기를 접고, 집단해고라는 폭력에 맞서‘블랙투쟁’을 전개한다. 이를 혼자 하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한다. 아이도, 어른도, 단체도, 개인도 종이비행기를 접어와 날려달라고 한다. 가수, 배우, 영화감독들이 검은 옷을 입고 블랙투쟁 동참을 선언하더니 SBS앵커들도, MBC기자들도 검은 옷을 입고 방송에 나섰다.
YTN을 왜 지켜야 하는가? 공정방송을 지키는 보루이기 때문에? 정권의 폭력에 맞서는 최전선이기 때문에? 노조원 4백명으로 정권에 맞서 반년 넘게 싸워온 것이 기특해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YTN은 디지털 촛불의 점화 가능성을 보여준 투쟁의 현장이며 그 전진기지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반드시 이기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