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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연수

김연수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장편연재 2

바다 쪽으로 세 걸음

 

 

7

 

어머니는 그날 저녁, 지방의 친척이 인편으로 보내온 떡과 말린 전복과 닭다리를 소주와 함께 아버지와 천재시인에게 내놓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같은 상에 앉기는커녕 사랑채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못했을 텐데, 그날만은 웬일로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들까지 모두 상에 앉히고는 함께 먹자고 아버지가 권했다. 아마도 천재시인과 아버지 두분만 드시면, 혼자 남게 될 초희가 외로움을 탈까봐 그런 배려를 하신 모양이었다. 형과 나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지만, 어머니만은 따로 먹으면 된다며 한사코 사양하시다가 천재시인이 술 한잔만 드시고 가라고 청하자, 그 말에는 고분고분 잔을 받았다. 하얀 사기잔에 투명한 소주가 채워지자,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내 처음 시집 왔을 때, 그 댁 형님께서 문지방이 닳도록 저 양반을 찾아와서는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음식이며 청주며 내가 갖다 대느라 솥뚜껑이라도 내다팔아야 할 형편이었답니다. 내가 속으로 그리 미워하는 줄 알았는지 몰랐는지 상을 봐서 들어가면 술 한잔 하라며 잡아끄는데 그 손은 또 얼마나 맵던지. 그래서 내가 그 댁 형님 술잔을 받아본 일이 한번도 없어요. 그런데 어느 해인가 우리 규가 태어나기 한해 전이었으니까 기묘년 9월인가 봐요. 그 댁 형님이 찾아와 또 밤새 저 양반과 술을 마시더니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아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오후도 아주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가 다 되어 방에서 나오더니 어느 틈엔가 안채까지 들어와 나더러 잠깐 보여줄 게 있으니 사랑방으로 좀 같이 가자고 하더이다.”

“그런 일이 있었소?”

아버지가 짐짓 처음 듣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 그건 우리 아버지의 가공할 만한 처세술이어서 그 시절에 우리도 얼마나 당했는지 모른다. 그 재주는 고스란히 내가 물려받았다. 형은 어머니를 좀 닮았는데, 어머니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왜, 더한 일도 많았지요.”

어머니가 바로 받아쳤다.

“어쨌든 따라오라고 해서 제가 따라갔습니다. 마루에 올라서더니 나더러 문을 한번 열어보라고 해요. 밤새 손님이 묵은 방을 왜 나더러 열어보라는 말인가 싶어서 자못 불쾌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하도 진지한 표정으로 권하기에 피할 방법이 없어 일단 어찌될지 몰라 부엌에 있던 찬모까지 오라고 해서 지켜보게 한 다음에 문을 열어봤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

어머니는 방 한쪽에 걸린 족자를 가리켰다. 족자 안의 그림에는 기암괴석에 백화만발한,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봉우리 아래로 금방이라도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계곡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려서 나는 늘 그 그림 속의 산이 삼각산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가져가서 쌀이나 팔아오라고 그린 그림이었다는데, 보는 순간에 어찌나 마음이 탁 트이던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그 그림을 보니 마음속에 품었던 미움이 눈 녹듯 사라지더군요. 하룻밤 새 방안에 삼각산을 들일 만큼 재주가 뛰어난 분이었는데, 결국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변방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쓰렸습니다. 그 소식 듣고 옛날 생각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술 한잔 마셔보라던 그 말, 매정하게 뿌리친 게 생각나더군요. 해서 이 잔은 제가 받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는 술을 들이켰다. 어머니가 술을 드시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삼년 유배를 떠난 시절에도 일절 술 같은 건 입에 대지 않은 분이었고, 집에서 두분이 겸상으로 술을 드신 적도 없으니 아마도 처음 혼례를 올릴 때를 제외하면 그렇게 마주 앉아 술을 드신 것 역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잔을 비운 어머니는 그만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문을 여니 초이틀 칠흑처럼 캄캄한 밤이 내다보였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장차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여기 그림 옆에 적힌 시를 보게나. 이렇게 멋지게 삼각산을 그려놓고는 자네 형님이 떠오르는 대로 쓴 시라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잔을 들고, 그 족자로 다가가 한자 한자 읽어나갔다. 일리춘우에 행화잔하고, 처처인경백수간이라…… 손가락으로 족자를 더듬는 아버지의 얼굴이 불빛을 받아 환했고, 그 그림자는 온 방안을 가득 메우고 너울거렸다.

“누구의 시인지 알겠는가?”

“주계군(朱溪君 李深源)의‘즉사(卽事)’로군요.”

식은 죽을 먹는 게 더 힘들 것이라는 듯 천재시인이 말했다.

“그렇지.”

아버지는 형에게 그 시를 큰 소리로 읊어보라고 말했다. 자기 아들도 나름 천재라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형이 고개를 들었다.

 

한줄기 봄비에 살구꽃 지고 나니

여기저기 농부들은 무논을 가느라 분주한데

바다처럼 아득하고 푸른 강에 나 홀로 서니

슬프고 원망스런 마음에 삼각산을 못 보겠네

(一犁春雨杏花殘 處處人耕白水間 獨立蒼茫江海上 不勝搤望三山)

 

족자를 바라보며 시를 읽고 그 뜻을 푸는 형의 모습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그러니 초희는 오죽했겠는가! 약이 올랐지만 그 상황에서 “처언하아초온거언처언”이라거나 “오오지이아안수우하안”이라고 말하다가는 더 큰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아버지는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올해 이제 겨우 아홉살이라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가 형을 칭찬했다. 초희는 그런 형을 바라봤다. 하도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반해도 단단히 반했구나는 생각에 낙담하고 있던 차에 초희가 말했다.

“그럼 저보다 오라버니시네요. 저라면 세번째 구를 다르게 풀 거예요.”

아버지가 초희를 바라봤다.

“얘는 올해 일곱살입니다.”

천재시인이 말했다.

“어떻게?”

천재시인의 말을 무시하며 아버지가 초희에게 물었다. 눈썹이 짙은 초희는 눈을 크게 뜨고 족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 시인은 배에 올라타서 고개를 숙이고 강변에서 논을 가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잖아요. 고개를 들면 삼각산이 보일 텐데, 그게 보기 싫어서요. 슬프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대궐 쪽은 바라보지도 못하는 거죠. 왜냐하면 임금의 미움을 받아 지금 가기 싫은데도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고 있으니까. 저라면‘바다처럼 아득하고 푸른 강에 나 홀로 서니’라고 풀기보다는‘바다처럼 아득하고 푸른 강 나 홀로 건너가니’라고 풀겠어요. 그래야 서울을 떠난다는 숨은 뜻이 살겠지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그처럼 움직이지 않는 글자 속에서 숨은 움직임까지도 다 꿰뚫어보니 너야말로 참으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로구나.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 너라면 네 큰오빠가 그때 무슨 마음으로 이런 시를 여기다 적고 갔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지나고 나니 사소한 이런 일들까지도 남은 사람들에게는 모두 중요해지는구나. 그러니 살아가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너희에게는 앞으로의 인생이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길게 느껴지겠지만, 그 모든 일들의 의미를 알기에 사람의 한평생은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건 늘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기만 하던 아버지의 말들 중에서 유일한 칭찬처럼 들려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렇다면 그날 밤의 일들도 내게는 그렇게 그냥 지나간 일이겠다. 그 밤에 우리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며 차마 삼각산을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봄 논을 가는 농부들을 바라보는 한 시인을 봤고, 또 그 시인이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삼각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봤다. 그리고 술을 입안에 머금고 옛 일을 생각하던 어머니를, 등불을 들고 족자 속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던 아버지를, 먼저 죽은 형이 남긴 운(韻)에 맞춰 새롭게 시를 지으며 문득 눈물을 흘리던 천재시인을, 하지만 그런 오빠의 옆에서 또랑또랑 눈을 뜨고 어둠속의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보던 초희를 봤다.

술에 취한 천재시인이 누군가를, 그게 형을 변방으로 유배 보낸 임금이든 그 일을 부추긴 형의 정적(政敵)이든 그 누군가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혹은 사람이 사는 세상의 덧없는 일들에 대한 부처의 말들을 얘기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의 차고 넘치는 말들이 문지방을 넘어갈까봐 겁을 내는 사람처럼 다그치고 윽박질러 그 입을 막긴 했지만, 결국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줬다. 아마도 이 세상에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 그는 큰 위로를 받았으리라. 속 깊이 아픈 자들에게 위로란 아무런 내용도 없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그런 텅 빈 말들이 실제로 그들을 달랜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바다 위에 웅장하게 솟아 무지갯빛을 발하던 광상산(廣桑山)의 눈부신 절경과 날아오르는 학이며 떠다니는 공작의 호위를 받으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그 누이의 모습을 형용한 내 헛된 말들에 실제로 누이를 잃은 그가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그날은 구월의 초이튿날이었고, 젊은 그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분노와 절망과 원한과 복수심을 얘기하는 동안, 형과 초희와 나는 사랑방에서 나와 하얗게 반짝이는,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과 그 주위의 뭇별들을 바라보며 안채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형은 손을 들어 별을 가리키며 초희에게 자미성(紫微星)을 아느냐고 물었고, 초희는 안다고, 그 별의 주인이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게 어떤 세상인지 알지 못했지만, 초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의 운명을 관장하는 거대한 손 같은 걸 떠올렸다. 그 손의 주인은 모든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 또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아들과 딸은 몇이나 낳을 것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지 불행한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밤은 부쩍 길어졌고 바람은 서늘해졌다. 그때 누군가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뛰기 시작했다. 어둠속을. 제일 먼저 형이. 그 다음으로 초희가. 그리고 내가. 곳간에서는 나귀가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겨울이 지나면 나도 솔잎노인에게 글을 배우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졸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8

 

짐작했겠지만, 솔잎노인에게서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자니, 예수회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오랑캐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이상한 모습의 형이 외던 문장들이 떠오른다.

 

In Primmis Dominum Deum diligere ex toto corde, tota anima, tota virtute.

제일 먼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Deinde proximum tamquam seipsum.

그 다음으로 이웃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

 

나라면 그런 허망한 말들을 믿느니 차라리 은화를 믿겠다마는 내가 침대 밑에 묻어둔 단지에 여러 나라의 은화를 모아두듯이, 여러 경전의 말들을 외는 건 우리 형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공자와 주자의 말들을, 그 다음에는 석가모니의 말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의 말들을. 그 다음은‘Deinde non occidere’였다.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그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었던 형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예수회에 들어가 도오주꾸(同宿)가 되려면 성 베네딕도(우리보다 천년 먼저 살았던 이 사람은 어린 시절 옆집에서 빌려온 채를 실수로 깨뜨린 유모가 울음을 터뜨리자, 기도로 그 채를 원상복구시킨 소박한 기적을 행한 사람이었다)가 갓 수도원에 입문하는 수사들을 위해 나열한‘착한 일들의 도구’를 외워야만 했다.‘Deinde non occidere’, 그건‘그 다음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형이나 나나 웃지도, 울지도 못할 수밖에.

그 당시에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착한 일들의 도구’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 형?”) 어린 시절에 내가 행한 기적이라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뿐이다. 이 정도면 역시 소박한 기적인가? 아니면 나도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 저 일본인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도 시간이 조금 남는다면, 나는 책상에 앉아‘착한 일들의 도구’가 아니라‘우리 죽음의 연대기’를 쓰고 싶다. 죽은 날짜와 죽을 당시의 나이와 이름만 쓴다고 하더라도 아주 많은 종이가 필요할 게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이런 글들이 있겠지. 제일 먼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이웃을…… 살인하라. 그가 너의 가족을 죽이기 전에 그를 먼저 살인하라. 오오오, 이 세상에는 창의적인 이웃 살해법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결국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니 그게 신이든 뭐든, 노예상인이든 바꾸후든 우리에게 더이상 뭔가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정의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다시 이야기로, 그러니까 그 죽음의 연대기로 돌아가야만 하겠다. 그 연대기의 맨 앞에 와야 할 사람은 솔잎노인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태어난 순서대로 우리가 죽을 수 있다면, 나는 감히 거기를 천국이라고 부르겠다. 죽는 순서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솔잎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솔잎노인은 늘 장담했던 대로 책력(冊曆)을 뒤적여가며 죽을 날짜를 고른 뒤, 죽는다는 게 그저 사당의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듯이 형에게 그해 10월하고도 보름에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일러줬다. 노인은 참으로 슬픈 얼굴로 “끝내 내가 너희를 도와주지 못하고 저승길에 오르니 늙은이로서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다만 네게 이르고 싶은 건 본디 지란(芝蘭)은 무성하지 않으나 잡초는 쉬 무성해지는 법이니, 너희가 불행에 빠져 일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고 해도 덕(德)의 찬란한 빛을 의지 삼아 전심을 쏟으면 하늘도 너희를 아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밤에 형과 나란히 누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노인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노인은 관 속에 누운 뒤에야 위로할 수 없을 테니 미리 그렇게 형을 위로한 다음, 형과 하인에게 초가와 그 주위를 깨끗하게 정리하게 했다. 노인은 자신이 쓴 글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한 뒤에 버릴 것들을 모아 불에 태웠다. 검은 재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노인의 몸도 그 재들처럼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산에서 내려왔는데, 엉겁결에 솔잎노인의 마지막 제자가 된 형은 노인의 책을 싼 책보를 등에 짊어지고 저 어른이 죽는다는 게 진짜 맞는 것인지 상당히 의심하면서 산길을 속보로 내려가는 노인을 따라 헐레벌떡 발길을 재촉했다. 마르내 집으로 들어간 노인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서서히 신주와 위패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조상들의 세계로 들어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평생 해오던 훈장질이 노인의 몸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아 형은 매일 노인의 집으로 가서 글을 배웠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가르치는 쪽에서도 예전처럼 신바람이 날 리 없었고, 배우는 쪽에서는 곧 죽는다니 언제 갑자기 숨을 거둘지 몰라 늘 긴장해야만 했기 때문에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더구나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가르침과 달리 노인은 부쩍 죽음과 영계에 대한 말을 많이 늘어놓아 그즈음 애어른이 다 되어가던 형을 걱정스럽게 했다.

“오늘 스승님께서 꿈에 영계를 다녀온 말씀을 하시던데 말이야.”

어느날, 등잔불을 끄고 둘이서 누웠는데 형이 말했다. 계곡을 지나는 바람이 가을의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던 밤이었다. 그런 밤에는 영계 같은 이야기라면 절대 사양하고 싶었지만, 죽는 날짜도 알아맞히는 재주를 지닌 스승의 아주 특별한 제자여서 내 힘으로는 그 입을 막을 수 없었다.

“돌아가셔서 영계에 올라갔더니 어떤 산이 나오더란다. 시절은 아름다운 봄이라 무지갯빛 구름이 하늘을 떠다니고 오색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소리치는 학과 깃털이 울긋불긋한 난새〔鸞〕들이 날아다니느라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고 하더라.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구슬과 옥으로 만든 눈부신 봉우리가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데. 그 말씀을 하시면서 스승님께서‘어떠냐, 내 말이? 신기하지 않느냐?’라고 물으시는데,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했겠니?”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봐라, 너라면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있겠지.”

생각해보나마나.

“거기는 광상산인데.”

“맞다.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광상산이더라. 그게 무슨 뜻이겠니? 스승님의 총기가 점점 사라진다는 소리지. 광상산 같은 이야기는 너처럼 옛날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늘 망상에 젖어 사는 애들이나 지어내는 이야기인데, 스승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걱정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해.”

형이 몸을 뒤척이면서 말했다.

“오늘 스승님에게 배운 건 광상산 이야기가 다다. 뭐, 워낙에 소학도 나 혼자 뗐으니,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혼자서 책을 펼쳐 공부하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더라.‘이른바 아주 어리석은 자에는 두가지가 있으니, 스스로 학대하는 사람과 스스로 버리는 사람이다(所謂下愚有二焉, 自暴也自棄也).’꼭 우리 둘을 두고 하는 말 같지 않냐? 어떻게 생각하니?”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 어리석은 거 말고 좀 똑똑하고 그런 거.”

내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형은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나는 스스로 학대하는 사람이고 너는 스스로 버리는 사람이야.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해. 그러니 이제는 아버지가 자꾸 시킨다고 해도 광상산 같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너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이겠지만, 너의 꿈 얘기를 듣던 그 남매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시피 어떤 이들에게는 그게 삶과 죽음의 문제처럼 절실한 것이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면 안된다. 알겠다면 약속해라.”

나는 앞으로는 거짓말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까나,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 내 꿈속에 들어와본 적도 없으면서. 가만히 누워 있다가 내가 말했다.

“그런데 스승님, 정말 돌아가시기는 돌아가시는 걸까?”

“왜?”

“아니, 그냥. 더 오래 사셨으면 해서. 아직 가르칠 사람도 많을 텐데.”

“곡기를 끊으신 지 벌써 여러 날이라 창자가 모두 비셨어.”

졸린 목소리로 형이 말했다.

“창자가? 정말이야?”

창자가 모두 비었다는 말이 곡간이 다 비었다는 소리처럼 끔찍하게 들려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형이 좀 못마땅한 듯 신음소리로 화답했다.

“그런데 어차피 지금까지도 솔잎만 드신 거 아닌가?”

내가 소리를 낮춰 물었다.

“솔잎을 드신 건 마음을 비워 정신을 기르시려는 뜻이었고, 그 솔잎마저도 드시지 않겠다는 건 창자를 비워 슬픔과 근심을 없애시겠다는 뜻이지. 삶이란 슬픔과 근심이 늘 함께 있는 것이니 슬픔과 근심을 없애시려는 건 이 세상을 버리시겠다는 뜻이야. 이제 잘 테니까 말 걸지 마.”

그 말을 끝으로 형은 모로 돌아누웠다. 나는 잠들지 못하고 어둠속을 바라봤다. 한쪽에 희끄무레한 문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을 빼고는 완벽한 어둠이었다. 문득 외로웠다. 한참을 바라보니 내 모든 존재가 그 바라보는 시선에만 있는 것 같았다. 옆에 누운 형은 고사하고, 내 몸의 팔다리도, 몸통도, 얼굴도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하나의 검은 점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아, 하고 입술을 움직여 소리를 내보았다.

“뭐라고?”

선잠이 들었던 형이 물었다. 뭐라고 달리 할 말이 없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

“그러게 진작 고기에 쌀밥 드셨다면 슬픔도 근심도 없으셨을 텐데.”

지금까지 한번도 말은 안했지만, 대개 내가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을 때는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러니까 차마 그 마음을 다 말할 수 없을 때.

 

 

9

 

곡기를 끊어 창자를 비운 지 오래라고도 했고, 또 그러므로 더이상 그 마음에는 슬픔과 근심이 남아 있지 않다고도 했지만, 솔잎노인은 여전히 건강해서 하인을 앞세우는 일 없이도 혼자 북촌의 친척집에 다녀올 정도였다. 활개를 치면서 그가 마르내 가파른 길을 걸어 내려갈 때면 심부름을 다니는 남부의 통인(通引) 애들이나 개울가에 빨래를 하러 나온 계집종들은 손가락으로 그 뒤를 가리키며 쑥덕거리곤 했다. 노인이 언제 죽을지 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형만 알고 있던 그 날짜가 어떻게 우리 동네에 쫙 퍼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본디 음흉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 뭘 마음속에 감춰두는 일일랑 잘 하지 못하는데, 그게 늘 탈이라는 말밖에. 할머니처럼 “호호호, 돌아가신 너희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그 양반이 자기 죽으면 무덤에 술이나 잔뜩 뿌려달라고 얼마나 신신당부했는지, 호호호”라며 자꾸 웃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일은 그해 가을 마르내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개중에 일삼아 도박하는 패거리들 중에서는 과연 솔잎노인이 자기가 말한 날짜에 숨을 거두는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돈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월 보름이라면 이제 한달도 남지 않았는데, 그날 죽기에 노인은 너무나 건강했던 것이다. 워낙에 솔잎만 먹던 양반이라 곡기를 끊는 것만으로는 그다지 효력이 없었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어쨌든 마르내를 중심으로 노인이 모월 모일 죽으리라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황천길로 떠나기 전에 노인을 만나보겠다고 그 집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에게서 글을 배운 뒤 알게모르게 그의 도움으로 관직에 나간 후학들이 적지 않았고, 을해년에 사림(士林)이 반으로 갈라진 뒤에는 한동안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던 세력의 영수로 떠받들어진 분이니 높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됐지만, 세상의 인심은 야박한 것이어서 이제 권력도 없는데다가 곧 죽을 것이라는 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라고는 노인이 맨정신으로 저승길에 오른다니 먼저 간 조상들에게 이런저런 소식을 꼭 전해달라는 양민과 노비들뿐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죽은 조상에게 전할 말을 노인에게 직접 얘기해야만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살아오는 동안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을 뿐 한번도 입밖에, 더군다나 양반 앞에서는 꺼내지 않은 것이었는데, 노인은 곧 죽는다니 아무 거리낌 없이 다들 꺼내놓았다. 대개는 상전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겠으니 귀신이 됐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놈과 처자식을 저승으로 데려가달라거나, 빌어먹을 세상에 노비의 자식으로 잘못 태어나 한평생 죽자고 일해도 결혼은커녕 제 한몸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우니 곧 죽어서 저승에 가면 부자(父子)의 인연이라도 가만두지 않겠다거나, 아무튼 기상천외한 사연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매일 노인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그 이야기를 듣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마루 밑에 누워 이제는 형제같이 정다워진 우리 쥐새끼들과 함께 노인을 만나러 온 한 남자의 사연을 듣고 있었다. 이 사람 역시 곧 죽을 노인 앞이니 그간 마음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하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우와, 그렇게 센 이야기를 할 줄은 예상도 못해서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다가 그만 머리를 마루에 부딪치고 말았다. 놀라기는 노인도 마찬가지였는지 얼른 내려가 중문을 닫으라고 형에게 얘기했다. 문을 닫고 돌아오던 형은 몸을 수그리고 마루 속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찾았다. 나는 들킬까봐 여러 쥐새끼들과 함께 슬금슬금 더 깊은 곳으로 물러났다.

“지금 뭐라고 말했느냐?”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죽어가는데도 하늘의 해가 어두워 백주에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실정이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임금 같지 않아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데, 백성이 그 임금을 사랑할 이치가 없지 않겠습니까? 맹자 진심편(盡心篇)에 이르기를,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 누구도 천자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가 대답했다.

“그래서 물이 흔들리니 배를 뒤집겠다는 소리냐? 기력도 쇠하는 터에 앞뒤 없는 말을 들으니 뼈마디가 다 쑤신다. 모함으로 파직당한 일로 네가 이런다는 건 내 잘 알겠으나 내리막이 있으면 다시 오르막이 있는 법인데, 순간의 모멸을 견디지 못해 성내어 발끈한 마음을 얼굴에 나타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세치 혀를 마구 놀리니 어찌 군자의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네가 방금 말한 진심편에도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을 행한 사람이 순 임금 같은 분이요,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利)를 추구한 자는 도척(盜碤) 같은 놈이라 했다. 사소한 원한으로 천하를 논하지 말아라.”

“몸은 죽어가도 할 말은 하는 게 정암(靜庵) 선생께서 우리에게 남긴 뜻이라는 말은 스승님께서 저희들에게 먼저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솔잎노인의 제자라는 걸 알게 됐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찾아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아버지와 천재시인을 제외하면 스승이 죽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많지 않은 제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지금 동평관(東平館)에 머무는 일본 사신들은 겉으로 통신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애당초 그들이 원한 건 우리 국왕의 복속과 입공(入貢)이라고 하며, 이것이 실현되지 않으면 곧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이 성안에 파다한데도 조정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지 않습니까? 물이 흔들리니 배를 뒤집겠다는 게 아니라 머지않아 태풍이 불면 저절로 배가 뒤집힐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의 위인됨을 아는데 어찌하여 역적의 무리를 자청하는 데까지 이르렀느냐?”

“백성과 사직을 먼저 구하고 임금을 그다음에 구하는 일이 역적의 무리를 자청하는 것이라면, 저는 반드시 역적이 되고야 말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허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반상의 귀천과 사농공상의 직업적 차별과 남녀의 구분 없이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어 앞날을 준비하려는 것이니 스승님께서는 큰 도가 행해져 천하가 만민의 것이 되는 뜻을 주상께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왕후장상에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아라는 말까지 나오겠구나.”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왕후장상에 영유종호리오까?”

가히. 솔잎노인의 예언 능력에 놀랄 수밖에. 그의 말에 솔잎노인은 장탄식을 내뱉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일찍 죽지 못해 오늘 너를 여기까지 불러들여 맹랑한 소리를 들은 일만은 저승에서도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지금부터 너를 내 문하에서 파문하니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그리고 옛 정을 생각해서 한마디 하자면, 다시는 그런 망령된 생각을 어디에서도 드러내지 않도록 해라.”

스승의 목소리가 변하자, 그도 잠시 말을 잊었다. 그러다가 다시 굵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건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쯤에서 스승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는지 그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자의 예를 갖춰 노인에게 절한 뒤 마루에서 내려와 떠나버렸다. 노인의 싸늘한 반응을 나도 들었기 때문인지 노란 초립을 쓴 그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그가 문을 닫고 집에서 나가자 노인은 형과 하인을 불렀다. 노인은 마루를 두들기며 나에게도 밖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나는 머리에 거미줄을 매달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갔다. 며칠새 부쩍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어 바라보기에도 민망하던 노인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니 백골이 우는 것 같았다. 노인은 목소리를 낮춰 우리에게 말했다.

“방금 저 사람은 내 제자이나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치광이가 됐다. 방금 한 이야기도 미쳐서 떠들어댄 헛소리이니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을 옮겨서는 안된다. 저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 자체가 없었던 일인 것이다. 알겠느냐?”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솔잎만 먹게 될 뿐 아니라 미치광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내게 노인이 다시 말했다.

“너는 왜 대답하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한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로 말해서는 안된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먹겠느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해라. 절대로 안된다. 절대로.”

노인이 다시 한번 말했다.

 

 

10

 

시월이 되자, 남아 있던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이따금 모래먼지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싸라기눈이 날렸고 조상에게 사연을 전하고자 솔잎노인의 집으로 몰려들었던 노비들은 모두 곤욕을 치렀다. 노비들이 하는 짓을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양옆에서 나졸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오자, 날 때부터 머리에 전립 쓴 작자들과는 손닿지 않을 정도로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는 게 신상에 좋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들은 하나둘 슬금슬금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졸들이 술 취한 망나니처럼 방망이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노비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비명에, 울부짖음에, 머리통이 깨지고 옷이 찢어지고, 코피에다가 눈물까지, 갖은 야단법석 끝에 노비들은 붉은 오랏줄에 묶여 포도청으로 끌려갔다. 어디를 보나 노비의 자식으로 보일 수 없는 나까지 엉덩이를 걷어차이면서 팔자에도 없는 우포도청을 구경할 정도였으니 당시 솔잎노인의 집 주위에 있던 것들 중 사람처럼 생긴 건 허수아비까지 끌려간 셈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체포되기는 임꺽정 무리가 도성 안까지 활개를 치고 다녀 포도청이 처음 만들어지던 명종 임금 시절 이후 처음이었으니 또 무슨 난리가 났나 해서 사람들이 놀라긴 꽤나 놀랐다.

“우리 꼬마 도련님께서는 막가외(莫可外, 마카오)에 가시면 졸도해서 뇌진탕 걸리시기 딱 좋겠습니다. 막가외에 가면 이런 포도청 같은 건 개집으로도 안 쳐준답니다. 막가외의 불랑기(佛狼機) 사람들이 사는 성은 얼마나 큰지 삼각산이 부럽지 않지요.”

얼떨결에 우포도청까지 끌려간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자, 옆에 있던 수염이 허연 남자 하나가 내게 말했다. 막가외? 울면서도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막가외라는 곳에 사는 개는, 흐흑,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큰 개집에서 산단 말이에요? 엉엉.”

“종놈이니 하대하셔도 무방합지요. 어디 저놈들은 덩치가 커서 이런 개집에 산단 말이우?”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그를 툭 치면서 말했다.

“이보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이젠 아주 순진한 꼬마 양반을 붙잡고 눈 뜨고 꿈꾸다가 막가외 다녀온 이야기를 다 하는가? 그럼 나는 간밤에 구름 타고 광상산 가서 팔선녀랑 밤새 놀다가 왔다네. 제기랄, 염병하고도 남을 이놈의 팔자야.”

“아저씨는 어떻게 광상산을 아나요? 흐흑.”

입은 옷으로 봐서 사연은 많아 보이지만 별로 노비처럼 보이지는 않는 그 남자를 향해 내가 여전히 울면서 물었다.

“내가 어려서 가갸거겨 언해를 깨친 몸이니, 닥치는 대로 이야기책을 읽다가 『태평광기(太平廣記)』도 즐겨 읽었단 말이지. 바다 건너 신선들이 사는 섬이라니 발가벗고 불알 두쪽 찬 채로 거기에 가면 어느 놈이 양반님이고 어느 놈이 종놈인지 알 방법이 있나? 빌어먹을.”

“그러게. 내가 배 타고 막가외 가다가 광상산에도 들러보았는데, 자네처럼 생긴 종놈이 부채질하느라 땀깨나 빼고 있더구먼. 이놈은 식자우환이니 제 명에 못 살 것입니다요.”

마지막 말은 내게 한 말이었다. 그는 계속 내게 말을 높였다.

“이 오사리잡놈이 어느 어른더러 종놈이라나. 그러고 보니 시오 자네가 막가외 얘기하면서 저 꼬마 녀석을 홀리는 꼴을 보니 한입에 잡숫고는 양반놈한테 치도곤 맞은 독을 빼겠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그 말에 내가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날 노비들은 볼기짝을 얻어맞고 모두 풀려났으므로(어느 종사관이 사람들 틈에서 시오가 나를 홀려서 한입에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말에 겁에 질려 미친 듯이 울어대는 나를 곧장 풀어주지 않았다면, 이미 그 전날 나는 우포도청을 눈물로 침수시켰을 것이다) 사람들은 노비들이 잡혀온 이유가 의금부 당직청에 설치한 신문고의 권위를 약화시켰다거나, 혹은 조상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빙자해 유언과 비어를 퍼뜨린 혐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단 연행이 단순히 관에서 할 일을 다 죽어가는 노인이 했기 때문이라거나 곧 귀신이 될 사람을 통해 귀신들에게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노인이 죽고 난 뒤에야 알게 됐다. 이 연행사건으로 더이상 노비들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자, 세상을 살아갈 재미가 없어 크게 상심했다는 듯 솔잎노인은 그 다음날부터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꼬박 닷새를 누워 지내다가 시월 보름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죽 한그릇을 말끔하게 비우고 형을 시켜 깨끗한 수건으로 구석구석 몸을 닦게 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노인은 가족과 친지와 제자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들여 웃으며 손을 잡고 그 눈빛으로 마음에 남은 정을 모두 전한 뒤, 해질 무렵이 되어 졸립다며 자리에 눕더니 그 길로 노비들의 한 많은 사연만을 가슴에 품은 채 머나먼 저승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죽은 몸이야 말을 못하니 문상하는 일은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었던 원망이나 불평을 덜어내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더구나 옳든 그르든 솔잎노인처럼 말로써 다른 이들의 마음을 꽤나 아프게 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병풍 뒤에 말없이 누워 있는 걸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간 서운했던 감정을 씻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리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야 할 테니까. 그러므로 노인이 자기 죽을 날짜를 예고했다는 소문이 장안에 퍼질 때만 해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던 양반들이 노인의 부음이 전해지자 그 당(黨)의 같음과 다름의 구분 없이 서울 인근은 물론이거니와 하루는 족히 걸리는 충청도와 황해도에서까지 조문하러 찾아왔다. 평생 마르내에서 아버지의 친구로서, 또 친구의 아버지로서, 학문을 가르쳤던 스승의 제자로서, 나아가서는 자신이 몸담은 당의 어른으로서 솔잎노인을 모시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상주만큼이나 슬퍼하고 민망해하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 중에는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동구 밖에서부터 요란하게 곡소리 내면서 기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승사자 같은 얼굴로 찾아와서 관절염 걸린 사람처럼 엉거주춤 절하고 나서는 개성상인처럼 공과 과를 일일이 짚어가면서 고인의 일생을 결산하는 사람도 있었다. 솔잎노인이야 한명에 불과한데, 죽고 나서 사람에 따라 대접이 이렇게 차이가 난 까닭은 각자 속한 당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대대로 조선의 왕은 변덕쟁이가 많았다. 하지만 왕 노릇이 소꿉장난은 아니었으므로 왕이 한번 마음을 뒤집으면 양반들은 삼족이 멸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 속에 누운 시체마저 세상에 다시 나와 두번 죽어야 했다. 그래서 변덕으로 하는 왕 노릇에 맞서 양반 노릇은 본디 혈연과 지연과 학연으로 똘똘 뭉친 당파로 견디는 것이었다. 하니 상갓집에 와서까지 당색을 드러낸다고 해서 허물 삼을 일은 아니었다. 양반들이 예측 못할 변덕보다 일관된 편애를 더 높이 평가하는 건 다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데, 자기들끼리는 그걸 지조라고 불렀다. 지조라니, 개나 물어가라지.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그 다음날 벽제에서 올라온 한 선비에게 아버지가 보인 무례한 반응은 이해하지 못할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자,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솔잎노인을 데려가려는 저승사자라도 나타난 것처럼 얼굴을 찌푸린 뒤 두 눈이라도 깨끗한 물에 씻으러 나간다는 듯이 곧장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대사헌(大司憲)이었으면서도 도리어 탄핵받아 파직당한 뒤, 고향에 내려가 재기를 노리던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보다 늦게 알게 됐다.

위패에 절하고 난 뒤, 다시 마당으로 나온 그는 형을 불러 세웠다.

“네가 규나?”

“그렇습니다.”

형이 대답했다.

“부친께서 네가 총명하다고 자랑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어디까지 공부했느냐?”

“『근사록』을 읽고 있습니다.”

“부친을 닮아 네가 경서를 좋아하는구나. 벌써부터 『근사록』을 읽는다니, 너한테 잘 보이지 않으면 장차 내가 큰 욕을 보겠구나. 네 부친은 어디로 갔느냐?”

“모르겠습니다. 아마 집에 잠깐 다니러 가신 것 같습니다.”

“그럼 가서 부친더러 벽제 어른께서 긴히 나누실 말씀이 있으니 잠깐만 뵙자고 여쭤라.”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할 뿐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형이 그 말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잠시 수염을 매만지며 서 있던 그가 나를 불렀다.

“너는 누구냐?”

“동생입니다요.”

충효사상에 입각해서 나도 공손히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럼 너도 공부를 잘하겠구나. 요즘은 뭘 배웠느냐?”

나는 내가 배운 걸 생각했다. 쥐새끼가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하고, 이건 아니고.

“처언하아초온거언처언 오오지지아안수우하안. 제가 지은 시입니다요. 하늘 아래 마르내, 내 눈의 눈물 가무네.”

“오호라. 벌써 시를 짓다니, 너도 형만큼 똑똑하구나. 대신에 네 형은 경서를 파는데, 너는 시문에 밝구나. 네 아비는 걱정이 없겠네.”

내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갔다.

“다른 것도 압니다요.”

“또 뭐가 있느냐?”

내가 말했다.

“왕후장상에 영유종호아.”

그러자 그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물끄러미. 그때 집에 갔던 형이 혼자 돌아왔다.

“아버님께서는 나누실 말씀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시라고 이르셨습니다.”

그 말에 힐끔 형을 한번 쳐다본 뒤, 그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참 좋은 말이구나. 네가 가학(家學)으로 그런 좋은 말들을 배웠구나. 참으로 똑똑하구나.”

그는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형에게 알겠다고 말하고는 종을 앞세워 다시 대문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 우리를 지켜보고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침을 뱉었다. 대문 바깥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먹고나 죽어보세, 취해서나 죽어보세. 오늘은 마르내에, 내일은 북망산에. 어화둥둥 내 사랑아. 에라둥둥 한평생아. 그해 가을부터 도성 안 이름난 집안의 자제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부르던 노래였다. 그들은 미치광이 흉내를 내면서 춤을 췄으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는데, 그 꼴이 전에 없이 흉하고 놀라워서 사람들은 난리가 나고 나라가 망할 징조로 여겼다. 그날 저녁,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왜 포도청에서 솔잎노인의 집 앞에 모인 노비들을 보고 기겁했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됐다. 그건 지나간 시월 초이튿날, 황해감사가 안악군수, 재령군수, 신천군수 등이 고변한 역모사건의 전모를 밝힌 비밀 장계를 조정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11

 

Deinde non occidere. 나는 착한 일의 도구들을 중얼거리며 예수를 뜻하는 희랍문자의 첫 세 글자인 IHS와 십자가와 태양을 한데 섞어놓은 예수회의 문양이 박힌 자개상자의 자물쇠를 풀었다. 마닐라에 거주하던 꽝뚱(廣東) 출신 중국인 장인들이 솜씨좋게 만든 상자로 어둠속에서는 창백한 자개들이 아주 작은 빛만 비춰도 현란한 색깔을 뽐냈다. 이 상자를 만든 중국인들은 필리핀을 중국에게 빼앗길까봐 겁을 내던 스페인 연합군에 의해 모두 학살됐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의 참모습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상자 안에다가 그간 모은 칼들을 비단에 싸서 넣어뒀다. Deinde non occidere.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나는 칼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또 뭐가 있었더라. 그렇지. 죽은 이를 장사지내라. 시련중에 있는 사람을 도와라.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라. 당연한 말들. 지당한 말들. 엔리께에게 선물받은 칼은 자주색 비단에 싸여 있었다. 나는 비단을 풀었다. 원한을 오래 품어두지 말라. 간사스런 계교를 마음속에 품지 말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칼을 꺼내든 뒤에 나는 어둠을 향해서 몇번 휘둘렀다. 일단 휘두르면 자체의 무게로 더 깊이 박혀드는 좋은 칼이었다. 나는 그 묵직한 무게감이 마음에 들어서 잠시 허공에 들고 있다가 칼로 자개상자를 내리찍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칼이 상자에 찍히는 둔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나도 모르게 그 칼로 내 목을 찌를 뻔했다. 거기 바깥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누군가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그건 형의 목소리였다. Inimicos diligere. 원수를 사랑하라. Inimicos diligere. 형. 안돼. 형. 나는 간신히 숨을 몰아쉬었다. 안돼. 빗물이 내 얼굴로 쏟아져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해 시월의 나머지 보름은 지옥의 서곡이었다. 금부도사의 검거를 피해 자신의 은거지로 도망갔던 그 남자는 스스로 목에 칼을 찌르고 자결했다. 그 남자. 그러니까 내가 솔잎노인의 마루 밑에서 본, 그 노란 초립의 쓸쓸한 뒷모습. 임금은 그 시체를 서울까지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시체가 도착하던 날, 임금은 장안의 모든 사람들을 군기시(軍器寺) 앞의 저잣거리로 불러들인 뒤 몸소 처형 과정에 참석했다. 군졸들은 십자가 모양의 형틀에 묶은 시체를 들어올려 임금은 물론이거니와 정승에서 말단 관원까지, 사대부에서 노비까지, 노인에서 아이까지 모두 보게 한 뒤에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뒤에도 임금은 바로 집행하지 않고 모인 자들에게 자신의 교서를 들려주라고 명령했다. 그 교서의 내용은 준엄하고도 장황했으며, 지엄하고도 늘어졌다. 교서는 역적을 처단하는 이 기쁜 날을 맞이하여 모든 잡범들의 죄를 사면하고 관직에 오른 자들을 각각 한 급씩 올리겠다는 내용으로 끝났고, 그 다음에야 술에도 취하지 않은 망나니가 나와 큰 칼로 고기를 자르듯 그 시체의 목부터 내리쳤다. 망나니가 여러번 내리치고 나서야 머리통은 겨우 잘려나갔다. 망나니는 두 팔과 두 다리를 자르고 시신을 모두 여섯 조각으로 만들었다. 임금은 그 자리에 없던 서울 사람들도 모두 볼 수 있도록 머리는 장대 높이 매달고, 나머지 조각들은 바닥에 펼쳐놓은 채 며칠이 지날 때까지 전시한 뒤 각 조각을 팔도에 내려 보냈다.

그 다음날 아버지는 사직상소를 제출했다. 임금은 이를 만류하는 일 없이 아뢴 대로 체차(遞差)하라고 전교했다. 잔월은 완전히 이지러져 그 빛이 끊어지고, 밤은 동지(冬至)를 향해 한없이 길어졌다. 매일 밤 사랑채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밤을 도와 솔잎노인이 남긴 시·서·소(詩書疏)를 정리했다. 이따금 낮에 사랑채로 가보면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버지가 잠들어 있었다. 내년에는 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스승의 행장(行狀)을 작성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승정원 좌부승지를 지내던 동문 선배를 찾아갔다가 당분간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에게 몇년 전 대사헌을 지내다가 아버지의 거듭된 상소로 결국 파직돼 고향인 벽제에서 재기를 노리던, 한때의 동문 선배가 우의정으로 복직해 역모사건의 죄인들을 치죄하는 위관(委官)의 자리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채로 불러들여 등빛에 종이를 비춰가며 스승의 이름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의 조상은 어떤 분들이며, 그는 몇년에 어디에서 태어나 몇년에 어디에서 죽었는지를 중얼중얼 읽었다. 아버지는 출세를 위해 반대당으로 가서 한때의 스승을 탄핵하는 데 앞장서 대사헌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한 선배에 대해서 쓴 구절을 우리에게 읽어준 뒤, 혹시 자신의 글에 과장이나 억지가 있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형은 아무런 과장이나 억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나도 아무런 과장이나 억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대답에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그 다음날은 동지였고, 축일을 기뻐하는 듯 아침부터 눈이 소복소복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깨끗하게 비운 아버지는 입에 차가운 물을 머금었다가 마루 밖으로 내뱉은 뒤 “올해는 관상감(觀象監)의 달력을 얻지 못하겠구나”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왕의 특명을 받은 금부도사들에게 체포됐다.

 

 

12

 

그날은 정월 초닷새였는데도 갑자기 날이 풀리고 남산 너머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마치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그날 하루 동안에만 기러기들이 지나가듯이 수많은 소문들이 우리 귀를 스쳤다. 금부도사들이 압수한, 아버지가 쓴 솔잎노인의 행장을 보고 더욱 원한이 깊어진 우의정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고문해 이젠 더이상 아버지를 고문할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뒤이어 잡혀간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버지가 역적과 함께 공부한 것만은 죽어 마땅한 일이지만, 반역을 공모한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며, 설사 그 남편과 아들이 역적과 공모했다손 치더라도 이처럼 과하게 처벌하는 건 억울하다고 임금에게 말했다가 압슬형(壓膝刑)을 당했다고도 했다. 압슬형이란 사기그릇을 깐 널빤지 위에 무릎을 꿇게 한 뒤 자갈을 부어 몽둥이로 쑤셔 다져놓고는 그 위에 다시 널을 올려놓고 나장 서너 사람이 올라가 밟아대는 형벌이니 그 죄가 얼마나 막중한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우성을 치다가 두분 다 혼절했다고도 했다. 곧 우리도 의금부로 끌려갈 것이니 어서 도망가라고도 했다. 목소리들이. 성 안을 떠도는, 그 얼굴이 없는 목소리들이. 그런 소문들 뒤로 등등곡(登登曲)이 들렸다. 명년이면 온 팔도에 전쟁의 불 휩쓸 테고, 웃다가도 죽을 테고 울다가도 죽을 테니. 먹고나 죽어보세, 취해서나 죽어보세. 오늘은 마르내에, 내일은 북망산에. 어화둥둥 내 사랑아. 에라둥둥 한평생아.

“넌 집에 있어.”

형이 옷을 입으며 내게 말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디 가려고?”

“할머니와 부모님이 저대로 돌아가시면 나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야. 지금은 임금님께서도 역적들 때문에 아버지를 믿지 못하시나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 그 부당함을 말하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실 거야.”

“그럼 나도 갈래.”

“너는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라해야만 해.”

형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내 눈을 들여다봤다.

“내가 저기에 위패와 신주를 챙겨놓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패물과 아버지가 쓰신 글도 함께 갈무리해놓았어. 윤아가 사람을 하나 불렀다. 저 물건들은 그 사람이 짊어지고 갈 거야. 너는 지금 당장 그 사람과 함께 흥인문 밖 개운사 근처에 사는 최생원을 찾아가라. 지난번에 초희라는 계집애와 우리 집에 찾아온 분 기억나지? 그분이 거기 살고 있다. 사정을 말하면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 나는 이따가 밤이 깊어지면 그리로 갈 것이니까 너는 먼저 거기에 가 있거라. 내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해야만 해. 알았니?”

“나도 형 따라갈 거야.”

내가 울면서 말했다.

“형, 나도 따라갈 거야.”

형은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문갑을 뒤져 아버지가 준 패도를 꺼내 허리춤에 찼다.

“그건 또 왜, 형? 그 칼은 왜?”

“시끄러워, 소리내지 마. 이제 더이상 울지 마라.”

형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다 나 때문이야, 형. 모두 나 때문이야.”

형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소리니?”

“그때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때, 벽제에서 온 그분이 요새 무슨 글을 배웠냐고 해서……”

눈물이 쏟아져서 나는 더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왕후장상에 영유종호아라고 내가 말해서……”

형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겁에 질린 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형을 안았다. 형은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다가 내 두 팔을 자기 몸에서 떼어냈다.

“우리 임금님께서 너처럼 글자도 모르는 아이가 한 말 때문에 충신을 죽이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 네가 한 말 때문에 그러시는 게 아닐 거야. 너는 지금 윤아가 데려온 사람과 개운사로 가거라.”

그리고 형은 윤아를 불렀다. 노복인 윤아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우포도청에 끌려갔을 때 만난, 수염이 허옇던 그 시오란 이름의 종이었는데 처음에 나는 그를 알아볼 정신도 없었다. 형은 시오에게 나를 데려가라고 말했다. 내가 몸부림을 치면서 발광하자 짐을 짊어진 시오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형에게 달려갔지만 시오가 다시 나를 잡아끌었다. 내 손을 끌고 집을 빠져나가며 시오는 내게 모든 건 곧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꿈과 같은 것이어서 한잠 실컷 자고 나면 다 깰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그 우악스런 손을 뿌리치고 집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울면서 달려오는 걸 보더니 형이 대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닫힌 문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다 나 때문이라고, 내가 그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죽어도 내가 죽어야만 한다고.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시오와 함께 개운사 아래 최생원이 사는 초가까지 갔을 때, 그는 없고 초희와 찬모만 있었다. 찬모는 최생원이 성 안에 들어갔다며 저녁이 되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쯤에는 딸꾹질만 나올 뿐, 울음도 잦아들었다. 나는 해가 저물 때까지 마루에 앉아서 서울 쪽만 바라봤다.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거무룩했다. 초희가 나를 찾아와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초희는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시오는 마루 한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주절주절 자신의 집안은 대대로 나주의 문중 땅을 경작하는 우리 집안의 외거노비였다가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땅 한마지기 없이 양민으로 사는 건 노비로 사는 일보다 더 힘들었기 때문에 어린 그는 일찌감치 배를 탔다. 그때부터 바람 따라 물길 따라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만 세찬 풍랑에 휩쓸려 유구(琉球)까지 표류했고, 거기서 조선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유구인의 배를 타고 막가외와 여송국(如松國, 필리핀)까지 가게 됐다고 말했다. 거기 막가외에서 그는 이름을 시오라고 바꿨다. 나는 바다 건너 눈이 파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시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처지가. 우리 가족의 처지가. 시오의 말처럼 자고 나면 모든 게 다 꿈으로 밝혀지고 마르내 우리 집 안방일 것 같았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연신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고 형이 경서를 외는 소리가 들려오는. 나는 옆으로 엎드려 잠이 들었다. 마치 봄이 온 것만 같았다. 정월에 어떻게 그리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나는 흥인문 밖 천재시인의 초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겨울인데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 최생원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느냐고 해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참을성있게 끝까지 다 듣고 난 뒤 그는 내게 그건 아닐 것이라고, 내가 한 말 때문에 임금이 아버지를 잡아간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버지가 진짜 역적이어서 잡아간 것이냐고 내가 되물었다. 최생원은 내 눈을 피했다. 그는 내게 형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형은 부모님과 할머니를 구해달라고 임금님께 간청하려고 갔다고 내가 말하니, 그가 혀를 찼다. 소용이 없다고. 애당초 그런 간청을 들을 임금이 아니라고. 아무런 말이 없으면 죄를 승복하는 것이라고 해서 죽이고, 말대꾸를 하면 역적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고 죽인다고. 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어머니와 할머니도 이미 어제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고. 이제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빗속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오가 그런 나를 따라왔다.

이미 성문이 닫힌 시각이어서 흥인문에 이르러 우왕좌왕하는 나를 시오가 낙산의 얕은 성벽으로 이끌었다. 거기서 얼음처럼 차갑고 미끄럽던 성벽에 매달려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내려서인지 번(番)을 서는 순라군도 많지 않았다. 우리는 뒷골목의 어둠만을 밟으며 종루까지 걸어갔다. 마루 밑에서 개가 짖는 소리와 다듬이질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서 들렸다. 비가 쏟아지고 고인 물이 튀어올라 온몸이 다 젖었다. 마침내 의금부 앞까지 갔을 때, 거기 어둠속에 귀신처럼 형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걸음을 멈추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겨울비를 고스란히 다 맞고 앉아 있는 형을 바라봤다. 그게 우리 형이었다. 우리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뭔가를 향해, 임금도 아닌 권력도 아닌, 종묘사직이나 조상들도 아닌, 뭔가를 향해,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고통과 눈물의 사연들에 무심하고도 둔감한, 크고도 광활한 어떤 위대한 존재를 향해 비는 듯한 자세로. 마치 자신에게는 더 많은 고통과 더 많은 슬픔과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는 듯이,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뒤에 형은 허리춤에서 패도를 꺼냈다. 형. 안돼. 형. 내가 달려가 말리기도 전에,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니, 입을 벌리기도 전에 형은 그 칼로 자기 목을 깊숙하게 찔렀다. 안돼. 형. 생각보다 말은 더 늦게 터졌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