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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재보선 이후 진보진영의 전략적 과제

 

 

하승창 河勝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운영위원. 저서로 『하승창의 NGO이야기』 『스타벅스보다 아름다운 북카페』 등이 있음. chang@action.or.kr

 

 

1. 복합적 메씨지가 담긴 재보궐선거

 

4·29 재보선이 한나라당의 참패로 마감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맨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 메씨지는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명한 경고이다. 그간 재보선의 경우 낮은 투표율이 특징이었는데, 이번에는 지난 총선에 버금갈 정도로 적극적인 투표 양상을 보였다.

마침 다가온 촛불시위 1주년에 맞추어, 진보진영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승리와 한나라당의 재보선 패배에 힘입어 어느덧 훌쩍 100일을 넘겨버린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고 6월 국회에서 재격돌이 예상되는 미디어법 등‘MB악법’을 저지할 동력을 얻은 셈이다. 전멸에 가깝게 패배했음에도 이명박정부는 당장은 자기 노선을 수정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청와대의 반응도 지역선거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한나라당도 당 사무총장을 경질하는 선에서 선거패배의 책임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쩌면 몇달에 걸친 촛불시위를 겪고 나서도 변하지 않은 노선이 한번의 보궐선거 패배로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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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중앙선관위

 

민주당은 수도권의 부평(을) 국회의원 선거와 시흥시장 선거의 승리에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이번 선거의 승리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이 패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격전지인 수도권에서의 승리는 이명박정부에 대항할 집단으로 유권자들이 민주당이라는 제1야당을 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에서의 패배는 유권자들이 여전히 민주당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무투표당선 지역을 제외하고 민주당은 사실상 호남 전지역에서 패배를 기록했다. 현실적으로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소속과 민주노동당 후보의 당선은 현재의 민주당이 향후 한나라당의‘대안’으로서는 여전히 미덥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울산에서의 진보신당 승리에는 분열된 진보정당이 아니라 연합이든 통합이든 하나의 세력으로 나서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메씨지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또한 시흥시장 선거에 나선 민주노동당·진보신당·시민진영 연합후보의 패배는 현상태에서 민주당을 배제한 연합으로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해준 셈이다.

유권자들이 신뢰할 만한 대안이 없다는 메씨지를 던지면서도 한나라당에 전패를 안겨준 것은 앞으로 반이명박전선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또는 다른 진보세력에게 미래적 비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될 것임을 말해준다. 동시에 촛불에서 확인한 기존 정당과 정치집단에 대한 불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인 셈이다.

 

 

2. 중첩된 변화와 진보진영의 상태

 

결국 이번 선거 결과는 최근의 위기 앞에서 어느 세력에도 나라 다스리기의 책임을 맡길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메씨지라는 점에서 진보진영의 과제 또한 분명하게 해준 것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사회는 중첩된 변화의 시기에 있다. 첫째,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발전은 중세의 활자인쇄술의 발전에 비견할 만큼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고 있다. 이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며 여전히 그 끝을 알기 어렵다. 언론재단의‘2008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이미 정보를 취하는 주요한 수단이 구미디어에서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으며, 그 신뢰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1 정보 획득의 수단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 소통의 방식도 인터넷 기반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너무나 많은 에피쏘드가 확인해준 바이다. 중세의 활자인쇄술로 지배계층의 정보독점이 무너지고 일반대중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근대사상이 형성된 것처럼 인터넷의 발전으로 다시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 수준의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둘째, 지금의 세계적 금융위기는 브레튼우즈체제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중심의 체제가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체제로 재편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체제가 재편의 시기에 들어선 것만큼은 틀림없다. 레이건과 새처 이후 세계를 풍미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붕괴하고 있지만 실현가능한 대안적 비전이 무엇인지는 아직 떠오르고 있지 않다. 그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김영삼정부의 세계화 드라이브에서 시작해 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며 심화되어왔다. 물론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우에는 능동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지만, 김대중정부가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 김대중정부는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했으며, 이것이 노무현정부를 거치며 기초적인 사회안전망 제도가 자리잡는 성과도 있었다.2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이명박정부는 세계체제의 재편이라는 변화에 조응해 앞선 두 정부가 복지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유지 확장하기보다 오히려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밀어붙이고 있다. 4·29재보선의 와중에도 비록 한나라당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반쪽짜리가 되기는 했지만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은행법이 통과되었다. 한국은 브레튼우즈체제의 성립 시기와 다르게 이제 G20에 포함될 만큼 세계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그만큼 세계체제의 재편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강도높게 그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파급을 막고자 선진 각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내뱉고 있는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은 곧 이러한 변화과정에 한국사회가 제대로 조응하지 못할 것임을 말해준다.

셋째, 백낙청(白樂晴)이 이미‘흔들리는 분단체제’라 규정한 바 있지만, 냉전체제의 해소와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발전에 힘입어 남북간의 6·15선언과 10·4합의가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과거와는 완연히 다르게 동요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일시적으로 후퇴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분단체제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분단체제에 기초해 성장해왔던 한반도의 남과 북이 분단체제의 해체 정도에 조응해 재편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분단체제의 해체라는 방향에서 남북관계의 진전과 일시적 후퇴의 반복적 지속이 남북 양쪽 사회 모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일시적 후퇴기인 지금,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6·15선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남과 북의 주민들이 과거의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난 10년간의 진전이 결코 작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는 이미 당위와 가능성의 차원에서 현실성의 문제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3

이러한 중첩된 변화는 지금껏 한국사회를 규율해왔던‘87년체제’라는 시대적 흐름이 마감되고 다른 지형의 사회로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단지 어떻게 역주행하는 이명박정부를 멈춰 세울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한국사회를 재구성할 것인가이다.

이명박정부와 보수진영은 집권 1년 동안, 그 해법으로 내놓았던‘잃어버린 10년’의 회복이나‘비핵개방 3000’을 통한 남북관계개선, 한국사회 선진화 같은 대선시기의 슬로건을 뒷방에 조용히 내려놓으면서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를 헤치고 새로운 사회구성을 이루어낼 실력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이번 재보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진보진영이 흔히 내세우는 반이명박전선이라는‘안티’로서의 슬로건으로는 이 변화에 조응할 만한 비전을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일찌감치 드러난 것이지만 1987년 이후 형성된 지금의 진보진영에 우리사회의 변화를 헤쳐나갈 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신뢰를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은 합리적이지 못한 보수와 성찰적이지 못한 진보가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환경연합 사건이나 올해로 이어진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 역시 이런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 인식하에서는 대안 창출을 위한 담론이나 이론이 설 공간은 없어 보인다. 적지 않은 진보진영의 싱크탱크들이 마치 달력에 맞춘 듯 관습적으로 이명박정부를 비판하며 대안과 비전을 말하고 있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는 증좌(證左)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진보세력이 만들어낸 정책, 소통방식, 실행계획 등은 과거에는 민주주의의 진전과 사회변화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지만 현재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손석춘(孫錫春)은 곳곳에서 사회운동이 진보적 대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오히려 진보적 학자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4 하지만 그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대안들이 지금의 변화를 헤쳐나갈 만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번 재보선을 평가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치공학적 차원의 기획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접근으로는 지금의 사회적·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변화의 지점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창조적 구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 정당의 지체상태에 대해, 예컨대 최장집(崔章集)은 보수독점의 정치지형이 만들어지는 배경에 사회운동이 정당에 주목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가 제대로 된 정당을 가지려면 사회변화에 응전할 만한 능력을 갖춘 집단으로서의 자기 비전의 생산은 물론이거니와, 정보화시대 유권자들의 참여욕구가 수용될 수 있는 조직형태에 대한, 지금의 정당구조와는 다른 창조적 기획을 갖춰야만 한다. 말하자면 사회운동이 현재의 정당을 강화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지형과 구조를 그대로 둔 채‘강화’하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이제까지와 비슷한 정당을 만들거나 기존 정당구조에 편입해 활동하라는 것으로 결국 스스로 낡은 틀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87년체제의 균열과 분단체제의 해체, 세계체제의 재편이라는 변화를 맞아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와 있다. 기존의 인식틀로는 지금의 세계적 변화와 한반도의 변화에 조응해 한국사회를 재구성해갈 수 없다.5

 

 

3. 최근의 대응들

 

지난 한해 진보진영은 자신의 과제를 둘러싸고 나름의 치열한 논의를 전개해왔다. 지난해 민생민주국민회의(준)가 발족할 무렵 87년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를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이 민주연합론을 거론했으며 민주노총은 가장 적극적인 제안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87년의 국본은 정치권의 야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이 주축이었던 반면, 지난해에는 민생민주국민회의 내에 훌쩍 성장한 진보정당이 있어 제1야당과의 적극적인 결합이 쉽지 않았다. 한미FTA를 둘러싼 정책방향의 차이와 함께 특히 제1야당의 정치적 영향력과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운영구조는 민주당으로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87년 당시와 같은 민주연합은 애초부터 형성되기 어려웠던 셈이다.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여전히 준비위원회 상태이며 기존의 좌파세력과 시민단체 일부만 참여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제안되고 있는 것이 제 정파가 추구하는 가치에 기초한 뉴딜연합론이다. 87년 국본과 다르게 민주/반민주 구도를 넘어서 일정한 가치를 매개로 제 세력의 연합을 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이유로 제1야당의 참여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87년 국본처럼 범국민적 전선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그야말로 시도에 그치고 있다.

요컨대 새로운 비전이나 노선이 담긴 정치적 기획이 아니라 이명박정부에 대한 반대만을 매개로 기존 세력의 병렬적 결합 속에서 전략적 구심들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결국 한국사회의 새로운 진로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략적 구심들을 만들려는 시도와 다르게 일정한 전술적 공간을 형성하려는 기획으로서 백낙청의 거버넌스(governance) 재편론이 있다. 이 제안은 87년과는 달리 제각각 전략적 목표와 가치지향이 너무도 다른 세력들에 전선체 형태의 조직 구성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제 세력의 광범한 참여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상을 요구한다. 현재의 상황은 87년과 달리 정치적 지향의 분명한 차이로 인해 다수결구조를 갖는 전선체 성격의 연대조직 구성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거버넌스 재편론은 이명박정부와 보수진영의 역주행에 대한 반대의 선은 분명히 그으면서 어느 세력이든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의 창출을 통해 모두에게 정치적 구심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으로 보인다.6

이 제안에 대해 정상호(鄭相鎬)는 현재 진보진영의 과제는 거버넌스가 아니라 생활정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시민사회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거버넌스 재편이 실질적 의미가 없고 실현될 가능성도 없다는 그의 비판은 진보진영의 전략적인 방향에 관한 차원에서는 유의미하겠지만,7 전술적 공간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비판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 할 것이다. 오히려 현상태에서 백낙청의 거버넌스 제안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보수진영 일부가 이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것의 현실성 문제가 이 제안의 실현가능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4.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의 필요성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변화의 시기를 맞아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개념과 언어들은 이미 새로운 현실을 해석하고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진부해진 상태이다. 신영복(申榮福)은 지난해 YMCA후원의 밤 기념강연에서 진보진영이 자기가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자기 언어에 자기가 갇히는 참담함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에 걸맞은 혁신적인 사회세력의 구축이 지금의 진보진영이 거듭나고 새롭게 자기를 정립하는 길이 될 것이다. 몽떼스끼외의‘법의 정신’에 근거한 삼권분립이 미국에 가서 대통령제라는 새로운 정부형태를 생산해냈듯이 지금 우리의 도전은 그만큼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담론에 갇히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에 기반한 정책으로 사회운영의 대안을 생산하고 환경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운영할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

백낙청의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를 포함하는 줏대있는 중도의 구성이라는 전략은 이런 점에서 의미있는 제안이다.8 그러나 줏대있는 중도 혹은 변혁적 중도라는 그의 구상이 보수와 진보 사이의 공통분모 혹은 교집합 같은 산술적 계산으로 이해된다면 이 또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변혁적 중도 혹은 줏대있는 중도란 합리적 보수든 성찰적 진보든 지금의 변화를 인식한 누구나 지금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회세력의 구성에 나서야 함을 뜻할 때만 실천적 의미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적지않은 걸림돌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성찰적 진보’라 했을 때 지금 진보진영은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87년체제의 산물이며 촛불국면에서 드러난 것처럼 구각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본적인 성찰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정치적·사회적 기획을 수행할 동력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사회운동의 성찰과 자기혁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둘째로, 이 기획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독립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정당들은 운동적 에너지를 흡수할 상태가 아니며, 기존 구도에 합류하는 식으로는 새로운 세력을 창출하기보다 구세력에 흡수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른바 수혈론에 따라 움직였던 많은‘젊은 피’들이 결국 기존 정당 내에서 다른 정치적 블록으로조차 성장하지 못하고 있음이 이를 확인해준다.

이남주(李南周)는 기존 정당들이 새로운 운동적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9 민주당의 경우에는 다른 진보정당들에 비해 넓은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지지기반의 확장이 벽에 부딪혀 있다. 현재 그들의 역량만으로 우리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며 다른 진보정당들이 이 공간을 메우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진보정당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정치적 역학에 대한 주관적 판단, 권력관계의 변화에 개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부재 등으로 초기의 기대와 달리 주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존 정당들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을 만들어가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치적 기획의 경우 이들 정당과 시민사회운동을 제외하면 사실상 그만한 동력을 가진 집단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이다.

셋째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문제이다. 중립 테제는 90년대 시민운동의 성장에 어느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정치에 대한 방관자적 태도를 불러왔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정당정치 발전의 동력을 약화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참여의 방식을 개별적인 정치권 수혈로 한정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허물었다는 도덕적 비판에 노출되었다. 이를 통해 중립에 대한 강박관념은 점차 정치 냉소주의로 귀결되기도 했다.

현재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는 정당이든 사회운동이든 자신의 활동과 총체적 차원의 변화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갖고 있지 못한 점이다. 그간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말로 대변되어왔듯이, 노선과 비전의 부재에 대한 고통이 사회운동 전반을 억눌러왔다. 이를 돌파하지 않고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 지금까지의 운동적 노선과 비전을 전복적으로 재검토하고 창조적인 사회발전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그러한 과정 자체가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과 일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적 에너지를 정당이라는 형식으로 모으는 방식은 기존의 다양한 개혁 작업이나 진보정당들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새롭게 정당을 만들 만한 사회적 역량이 확인되지 않으며, 역량이 따라주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주변화하거나 분열의 요인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남주가 제기하듯이 그간 운동과 정치가 서로를 배제하거나 부분적으로 흡수하는 형태로 교류해온 것에서 벗어나 운동과 정치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10 이러한 선순환구조 속에서 새로운 정치연합을 모색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사회 재구성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기획을 실행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의‘공간’들이 조직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가치들에 기초한 의제와 정책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신뢰받을 수 있는 대안적 세력으로 성장해갈 공간을 조직하고 이를 매개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기반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비전과 세력, 새로운 정치와 사회조직, 새로운 미디어 등 우리사회를 재구성할 여러 수단들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진보진영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다른 모습으로 거듭날 때 단지 진보진영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의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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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론수용자들이 꼽은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는 KBS(31.6%) MBC(21.8%) 네이버(17.3%) 다음(4.1%) 조선일보(4.0%) 등이며, 신뢰하는 매체 역시 KBS(30.1%)에 이어 MBC(21.3%) 네이버(13.7%) 조선일보(5.2%) 다음(3.3%)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29세 이하 층에서 신뢰하는 매체는 네이버(27.5%) MBC(20.3%) KBS(19.8%) 기타(6.2%) 다음(5.2%) 조선일보(2.9%) SBS(3.0%) 순으로 나타나 젊은층일수록 인터넷에서 획득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가 높음을 알 수 있다.‘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한국언론재단.
  2. 노무현정부의 복지정책에 관해서는 전병유, 양재진의 글 참조.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노무현시대의 좌절』, 창비 2008.
  3. 보수진영조차 최근 통일을 현실적인 사안으로 보기 시작했다.‘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은 실패한 햇볕정책 대신 압박과 지원을 통해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유도한 후 주민 삶의 질 개선과 자유민주통일을 실현할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의 21세기 새로운 대북정책 패러다임 발표 기자회견, 2007.2.5.
  4. 손석춘 「촛불항쟁과 한국 진보의 과제」, 경향신문 심포지엄‘촛불1년, 한국은 어디로’, 2009.4.30.
  5. 앞의 심포지엄에서 김형수 시인의 “기존의 인식틀로는 국민을 재공동체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새겨둘 만하다. 김형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되고」, 2009.4.30.
  6. 이남주는 거버넌스 재편론이 현정부에 대한 기대에서 제안된 것이 아니며, 정책적 논의가 진보개혁진영의 자족적 논의에 그쳐서는 안되고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여 국민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정책협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남주 「거버넌스 개편과 시민사회 역량강화, 대립하지 않는다」, 『창비주간논평』 2009.4.1.
  7. 정상호 「대안은 거버넌스가 아니라 생활정치다」, 『창비주간논평』 2009.3.25.
  8. 백낙청 「2009년 분단현실의 한 성찰」, 제11회 한겨레통일문화상 기념강연, 2009.4.15.
  9. 이남주 「촛불, 사회운동, 민주주의」, 앞의 심포지엄.
  10. 이남주, 앞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