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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사회, 대안은 있다

 

위기 이후의 대안, ‘한반도경제’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저서로 『개방화 속의 동아시아』 『동북아시대의 한국경제 발전전략』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ilee@hanshin.ac.kr

 

 

1. 대안은 있는가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세계경제는 격변 속에 놓여 있다. 1980년대말 이후 레이거노믹스의 등장으로 보수적이고 통화주의적인 경제정책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시장경제의 회복을 위해 재정정책을 옹호하던 케인즈(J.M. Keynes)마저도 경제학 교과서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상황은 일변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전세계적으로 당분간은 복지·조세정책에 의한 조정과 개입의 필요성에 대해 컨쎈써스가 이루어질 것이다.1

전세계적으로도 시장만능주의가 한계에 직면했고, 국내에서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후 실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세력이 뚜렷이 부각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한 중에 눈에 띄는 논의가 있다면, 사회민주주의 대안과 진보적 자유주의 대안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민주노동운동에 기초한 진보정당 실험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사회민주주의가 지식인운동의 한 흐름으로 등장했다. 또하나의 흐름은 진보적 자유주의인데,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과 그 대안에 대한 논의가 여러 갈래에서 진행중이다.

자주파 대 평등파라는 구태의연한 대립구도에 비하면 사회민주주의 대 진보적 자유주의의 대안 경쟁은 진일보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 구도 역시 결국은 “국가인가 시장인가” 하는 과거의 프레임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는 우리가 처한 분단과 냉전의 현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없고, 새로운 대중과 운동의 지향성을 따라잡기도 어렵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매우 복합적이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자본·국가·세계시장 같은 차원의 일반적이고 근대와 관련된 문제도 있지만, 한편에는 분단 극복이라는 특수한 과제가, 또다른 한편에는 지역 형성이라는 포스트모던한 과제가 있다. 자유주의라든지 사회민주주의라는 틀로는 이러한 삼중의 과제에 도저히 맞설 수 없다. 새로운 세계에는 새롭게 대응해야 한다. 이에 필자는 세계적·동아시아적·한반도 차원의 이행기에 적용되는‘한반도경제’라는 대안을 생각해본다. 그것은 국가, 지역, 다양한 경제조직의 세 바퀴로 굴러가는 세발자전거(tricycle)이다.2

 

 

2. 세계체제의 재편

 

먼저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는 기본환경의 변화를 살펴보자. 20세기말 세계는 미국 주도하에 폭발적인 금융적 팽창을 경험했는데, 금융시장에서의 경쟁격화는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금융적 지배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2008년의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대불황으로 미국이 금융자본주의에 기초하여 행사하는 세계경제에서의 헤게모니는 사실상 붕괴하고 말았다.

미국이 주도한 금융팽창의 주인공은 투자은행이었다.3 투자은행은 흔히 증권회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영국에서 이식되어 19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투자은행은 보통 법인을 상대로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을 돕는데, 20세기 초에 이르러 상업은행 업무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1930년대 뉴딜정책의 핵심은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한 거대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은행업과 증권업을 분리하도록 한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이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말까지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소규모로 존재했다.

투자은행들이 대형화하고 자본시장 업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대규모 금융거래가 손쉬워졌으며, 특히 소매거래의 경우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였는데, 이는 대형 투자은행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이에 따라 이전의 파트너십 형태가 해체되고 기업공개가 이루어졌으며 인수·합병이 진행되었다. 규모 확대를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투자은행들의 자금조달구조는 악화되었다. 통화당국의 정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투자은행은 대차대조표를 최대한 확대하여 자산규모를 극대화했다.

투자은행이 주도한 금융팽창은 내리막길에 있던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회복시켰다. 2차대전 후 황금기를 구가하던 미국은 1960년대말에서 70년대초에 들어서 위기국면에 봉착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후퇴하면서 위신이 추락하자 당시의 경제위기는 제3세계 국가에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 투자은행이 추동한 금융시장에서의 경쟁격화는 미국의 지배력을 다시 강화했다. 경쟁에 따른 막대한 자금 흡수는 제3세계와 사회주의권으로의 자금공급을 고갈시켰다. 결국 구소련은 해체되었으며, 미국만이 군사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독점체제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미국 투자은행들의 과도한 위험인수는 2008년에 파탄에 직면했다. 투자은행들은 부동산 관련 담보대출의 증권화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 증권화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은행에 예탁되어 있던 자산의 인출요구가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지불능력의 한계에 부딪힌 투자은행들은 파산하거나 매수되어 상업은행체제로 재편되었다. 그러자 위기는 상업은행과 산업에까지 확대되었고, 결국 미국정부는 금융과 산업의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다.4

대규모 공적자금 지원과 경기부양책 마련, 그리고 사회보장 개혁을 추진한다고 해도 미국경제가 종래와 같은 위상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국가재정이다. 미국이 2040년 안에 재정균형을 달성하려면 다음 세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연방지출을 60% 감축하거나, 연방조세를 현재의 2배로 인상하거나, 실질GDP가 75년간 매년 두자리수 백분율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5

미국경제의 근원적인 문제는 과잉소비와 과잉투자에 의존하는 기존의 씨스템이다. 이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막대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조절해야 한다. 이는 매우 고통스런 구조조정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국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할 능력이 있는지, 미국민들이 이를 추진하는 국가의 역할에 계속 신뢰를 보낼지는 의문이다. 당장 2010년 후반부터는 중간선거를 겨냥하여 공화당이 시장주의의 반격을 조직화할 것이다. 앞으로‘국가’와‘시장’양측의 지지자들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재연되고, 이러한 세계관의 충돌이 미국의 새로운 발전모델 수립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하강은 분명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면 위기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자본주의 붕괴로 인식하는 단순논법은 현실과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현재의 금융자본을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신호로 보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다.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생애(장기지속)를 분할하고 금융적 팽창을 주요 자본주의 발전의 종결국면으로 파악한 바 있다.6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4번의 체제적 축적순환을 경과했고, 각 체제에는 제노바,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집적된 자본주의 권력(국가와 자본의 독특한 융합)이 있었다. 그리고 네번째 순환, 즉‘장기 20세기’는, ① 19세기말~20세기초의 금융적 팽창(미국체제의 탄생), ② 1950~60년대의 실물적 팽창(미국체제의 우위), ③ 1980년대 이후의 금융적 팽창(미국체제의 파괴)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금융적 팽창은 또한 새로운 체제의 탄생이 준비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리기는 이를 체제의 근본적 재편과정으로 본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는 눈덩이처럼 구르는 연쇄적인 경제‘기적’이 발생했다. 이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군사적 파워와 경제적 파워가 분기(分岐)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변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7

이어서 향후의 세계체제 전개에 대한 3개의 씨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는 세계제국이다. 만약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동아시아로부터 보호에 대한 비용을 뽑아낼 수 있다면 사상 최초로 전지구적인 제국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계시장사회이다. 이는 동아시아가 군사력이 아니라 문화·문명의 상호존중에 의해 지탱되는 세계체제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다. 셋째는 카오스이다. 이는 “냉전 세계질서의 청산이 수반한 폭력의 확대라는 공포(또는 영광) 속에서 인류애는 불타 없어질 것”이라는 씨나리오이다.

 

 

3. 분단체제의 향방

 

새로운 세계체제는 미국의 군사적·금융적 우위와 중국의 실물경제에서의 우위가 경쟁하거나 조화를 도모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반도에는 어떤 가능성이 주어져 있을까?

2차대전 후 형성된 미국중심의 세계체제는 동북아 차원에서는 냉전체제로, 한반도에서는 분단체제로 구체화된 바 있다. 분단체제는 하나의 체제이면서 그 하위에 남북한 각각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세계체제는 분단체제에, 분단체제는 남북한 각 체제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상위의 체제가 하위의 체제를 기계적으로 또는 동일한 정도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위체제가 상위체제와 부조응할 때 하위체제에는 불안정 요인이 내재화된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동북아 냉전체제와 잘 조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세계화에 따라 분단체제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상위체제는 해소되었다. 또 남한에서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북한에서는 제한적이지만 시장화가 진전되는 등 남북한 각각에서 분단체제와 조응하기 어려운 변화를 겪고 있다. 분단체제는 새로운 변화와 적응을 거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현시점에서 분단체제는 외형적으로는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세계체제나 남북한 각 체제의 변화 추세와 요인에 의해 그 지반이 약화될 것이다.

흔들리는 분단체제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 앞서 본 대로 세계체제의 변화 방향에는 세가지 씨나리오, 즉 미국중심의 군사적 질서, 중국중심의 경제적 질서, 카오스가 있을 수 있다. 이들 씨나리오 모두에서 남북한 각 체제는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다. 질서를 추구한다면, 속도와 비율의 문제가 있을 뿐,‘혼합적 질서’로의 이행은 불가피하다. 기초를 새로이하고 낡은 집을 고쳐 외부의 충격에 대응해야 한다. 누적적 변화를 차분히 진행할 경우 비교적 순조롭게 점진적 이행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버티고 있다가는 집이 무너지고 만다. 적응을 거부할 경우 파국적 위기를 거쳐 급진적 이행이 이루어질 것이다.8

한반도 차원의 새로운 집은 남북한 각 체제의 점진적 이행과 남북간 타협이 그 기초가 될 것이다. 기초를 단단히하면 세계체제의 환경 변화에서 받을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분단체제를 남북연합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설령 세계체제가 혼돈에 빠지더라도 점진적 이행 속에서 남북간 평화와 연합의 질서가 마련되어 있다면 혼란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남북대결 속에서 급진적 이행이 이루어질 경우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충돌을 피한다 하더라도 흡수통일의 막대한 비용을 치르거나 남북통합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9

물론 바람직한 상황은 안정적인 세계체제의 형성, 북한체제의 점진적 이행과 남북연합이 결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적 요소의 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체제가 카오스에 빠질 경우 분단체제의 관성하에서 남북간에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남북연합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어쨌든 틀림없는 사실은 급진적 이행이 진행되면 감당해야 할 위험은 엄청나게 커진다는 점이다. 비록 세계체제가 협력적 질서를 형성하고 있더라도 급진적 이행은 분단체제를 파국적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표 참조).

 

1

 

 

4. 새로운 경제모델의 모색

 

분단체제 이후의 경로는 남북연합, 충돌과 흡수, 새로운 분단·고립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씨나리오가 실현되든지 남북한 각 체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발전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분단체제 이후의 모델로 적용 가능하고 또 적절한가?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선호하는 모델 중 하나로 사회민주주의 대안이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와 결별하고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며 보편적 복지와 의회·참여 민주주의의 확산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적 기획이다.10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조건과 한국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지적이 있다. 복지국가 내부에는 연대임금에 의한 임금격차 축소, 동질적인 산업구조, 잘 조직된 사업자조직과 노동조합, 사회적 타협 등이 내장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시장도 국가도 잘 작동하지 않으며 독과점, 불공정거래, 소비자와 하청기업에 대한 약탈, 공공부문의 이익집단화가 횡행하는 사회이다. 사회민주주의로는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11

또한 사회민주주의 기획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복지국가 모델의 딜레마는 제도운용의 유연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임금협약의 수혜범위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실업자에게 투입되는 재정수요가 커진다. 정부는 재정을 감안해 이민자에게는 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남북한 경제통합 과정에서는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이주 흐름이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적용하면, 북한의 제도이행 및 남북한간 노동시장 및 사회보장제도 통합에 소요되는 재정부담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 이행과 사회민주주의는 잘 어울리기 어렵다.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의 형성과정의‘첫단계’를 보면, 여러 갈래의 흐름이 존재한다. 독일의 경우‘노동자형제단’(1848년 설립된 독일 최초의 정치적 노동단체)의 자치행정 경험과 기대, 노동을 국가에 포섭하고자 한 비스마르크의 국가사회주의 기획,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서 이탈한 노동만의 독자적인 계급정당 등의 여러 줄기가 합하여‘사회민주주의’를 형성했다.12 이 중에서 국가사회주의나 고립전선 같은 요소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으로도 의회나 정당체제에서 잘 승인되지 않는다. 한반도 통합과정에서 흡수해야 할 것은 사회민주주의 전체가 아니라 옛 협동체로부터 물려받은 자치정신에 기반한 참여와 공동결정의 의제, 국가행정·중앙행정·관치행정에 대립하는 자치행정의 요소이다.

시장의 역할은 중요하다.13 그러나 시장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리기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충격요법, 최소정부, 자기규제적 시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신조와는 무관한 것으로 재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스미스의‘시장에 기초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정부가 규칙의 수단으로서 시장을 사용하고 무역자유화에 있어 공공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점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14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개혁을 스미스적인 특징이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사례로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특정단계에 시장화가 집중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사회적 노동분업의 확대와 심화를 목표로 한 점진주의 개혁과 정부 행동, 교육의 거대한 팽창, 자본가 이익의 국가 이익에의 종속, 자본가들간 경쟁의 실질적 촉진 등도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중국의 개혁에서는 국내시장 형성과 농촌의 생활수준 개선이라는 목표도 중요하게 취급되었다.15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미국이 주도했던 시장주의 모델이 세계의 표준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새로운 역사적 대안, 종래의 헤게모니를 대신하는 질서있는 아나키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대안모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중국은 지금껏 미국의 대안이라기보다 오히려 미국의 파트너였다는 것이 적절한 평가이다.

그간 중국의 고도성장은 미국의 과잉소비에 의존한 것이었으며, 중국은 위안화를 달러가치에 묶어둠으로써 달러체제로부터 이익을 누렸다. 중국의 1일 외환거래량은 2007년 4월 기준 90억달러에 불과했는데 이는 전세계의 0.2%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당분간 달러체제에 도전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중국의 장기적 고도성장은 여타 후발국들이 성장의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를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려면 세계시장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중국의 수입품목은 수출을 위한 중간재가 대부분이었다.16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중국은‘더 압축된 동아시아 모델’이었다. 이는 원료·중간재와 시장을 외부에 의존하고 기업·노동·농업·국가의 효율을 개선하면서 기존의 정치체제를 지속시키는,‘중국 특색’의 동아시아 모델인 것이다.17 따라서 미국과 같은 외부의 시장이 존재할 때 지속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정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또한 중국은 동아시아형 고도성장을 더욱 압축함으로써 노동관계, 농민문제, 민주주의 등에서 내부적 모순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이제 동아시아 모델의‘개선’은 불가피하다. 중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개혁·개방에 의한 시장화 단계를 종료하고‘과학적 발전관’이라는 새로운 발전모델과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를 모색하고 있다. 그간 분단체제하에서 왜곡된 발전을 해온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모델로의 전환을 회피할 수 없다. 중국과 한반도에서 모두 새로운 모델의 핵심은 공공적 안정성을 유지하고 시장발전과 정부개입을 혼합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 기초한 발전’이 정부가 규칙의 수단으로서 시장을 사용하고 산업화·무역·투자의 기초로서 국내시장과 농업·농촌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간주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시장에 기초한 발전’을‘더 좋아진 동아시아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핵심은 시장과 공공적 안정성을, 개방적 국제환경과 사회적 연대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18

 

 

5. 지역의 형성과 발전

 

민족주의를 거절하고 남한 단독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분단체제의 장벽에 부딪혀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주의 혁명이론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만, 분단세력들은 끊임없이 적색공포를 조장하여 복지세력을 고립전선으로 몰아붙일 것이다. 분단체제하에서 복지의 향상을 복지‘국가’를 통해서 이루기는 어렵다. 분단체제를 지역간 협력체제 안에 용해시키고 지역 차원에서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 훨씬 유용한 전략이다.

지역 경제통합은 세계적 대세지만, 동아시아의 경제협력체 발전은 북미나 유럽에 비해 뒤떨어진 편이다. 그러나 세계체제의 재편은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미국 등지로의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전략의 한계는 명확해졌다. 자국통화의 저평가정책에 기반한 중상주의적 전략에 대한 반성의 기운도 뚜렷하다. 최근에는 외환위기 재발 방지를 위하여 800억달러 규모의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역내의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한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창설하자는 주장도 분출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의 결성도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다.

자본주의가 미국형 한가지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경제통합은 지역별로 다양한 자본주의 유형을 형성하는 제도수렴 과정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북미의 NAFTA는 미국형 모델, 유럽의 EU는 유럽형 모델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기존의 일본형 모델과 근래 유력한 모델로 등장한 중국형 모델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새로운 모델,‘더 좋아진 동아시아 모델’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19 여기에 역내 국가들 모두의 지속성장과 국가간 격차 축소, 각국의 내부격차 해소 등‘동아시아 복지사회’의 의제가 포함되도록 노력하고, 동아시아 협력체제 안에서 분단체제를 남북연합의 협력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국가를 단위로 해서 새로운 지역행위자를 만드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또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실현된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절대적인 강자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패권이 아닌 문명적 관계가 형성될 것인가 하는 걱정도 있다. 동아시아 협력체제가 성립된다고 해도 한반도 분단체제의 대립·갈등 구조가 해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국가를 넘어선 지역 형성이 역내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러한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가지 계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각각의 국가를 단위로 하여 그 안에서의 정치력을 개선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가보다 작은 규모의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가지 계기는 상호보완적이다.

세계화의 진전, 경제조직의 재편, 혁신의 중요성 증대 등에 따라 자본주의가 기능하는 영토는 다양해졌다. 전통적인 농업이나 장인중심의 산업, 첨단 제조업과 써비스업 등에서, 한편으로는 혁신과 지식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공간의 집중화가 전개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통·통신수단의 발전과 기업조직 형태의 재편에 따른 공간의 분산화가 진행되었다. 신뢰와 협력의 구축을 위해서는 작은 공간이 적절한 반면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큰 공간이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중심 집적지’‘도시지역’‘광역지역’이다. 이는 단일한 지역이 아니라 다수의 인근 지역들간의 기능적 연계를 수반하는 지역 네트워크이다. 광역지역은 자생력 확보를 위해 권역을 넓힌 것이지만 그 본질은 지식·관계·동기 같은 국지적인(local)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20

세계화, 기술진보에 따라 국가는 초국가기구와 국가 내의 광역적인 지역기구에 더 많은 권력을 이양하거나 분산하게 되었다. 중앙정부가 더이상 다양하고 미묘한 지역발전의 문제들을 잘 다루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역 차원에서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다양한 거버넌스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21

농촌지역도 독자적·자생적 힘만으로는 발전하기 어렵다. 국가가 주도하여 농업을 보호하는 정책틀은 1930년대 농업공황 이래 형성된 것이다. 보호정책이 꼭 산업으로서의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아니며, 글로벌화된 무역조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여타 산업과 분리된 틀에서 집행되는 농업보조금 정책, 도시와 분리된 농촌 지역정책은 산업적·공간적으로 규제와 장벽을 쌓아 장기적으로는 농업과 농촌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다. 농촌지역이 새로운 자생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광역지역에 참여하여 도농복합체를 만들고 국제적 그물망에 연결되어야 한다.22

 

 

6. 국가와 혼합형 조직의 역할

 

경제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교환 또는 거래를 조직하는 전형적인 제도로‘시장’과‘기업’이 존재한다. 시장에서는 거래당사자가 수평적인 관계에 있지만, 기업 안에서는 위계적인 관계에 기초하여 명령경제가 행해진다. 이론적으로는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이 커지면 기업이라는 조직으로 대응한다. 거래비용이란, 쉽게 말해 교환을 위한 탐색·교섭·계약·집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한편 기업의 관리비용이 너무 커지면 조직을 해체하고 시장거래를 선택하게 된다. 국가는 관리적 결정에 의해 생산요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초대형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냉전체제와 분단체제 하에서 형성된 발전지상주의는 국가와 기업의 왜곡된 성장을 조장했다. 산업화 과정에서는 가격을 왜곡하는 거시정책과 통제적 관리체제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북한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일체화되어 위계의 원리가 지배적이었다. 남한의 경우 국가나 제도에 의해 보호되는 영역에서는 시장원리가 과소하게 적용되고, 그 영역 밖에서는 시장만능주의가 횡행했다.

분단체제하 국가에서는 왜곡된 팽창이 진행되었고, 남북한 모두 냉전세력이 국가에 기생하거나 심지어는 지배력을 행사했다. 국가는 군사력, 경찰력, 기타 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시장거래를 회피할 능력이 있다. 국가는 재산을 징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어서 저비용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관리장치에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그 비용이 막대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국가에 의한 관리가 효율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지만, 다른 경우는 국가보다 시장이나 기업에 맡기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에서는 합리적 계산과 판단에 앞서 분단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국가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

분단체제 이후에는 국가의 역할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국가는 규칙의 수단으로서 시장을 이용하여 공공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한다. 다만 관료제가 직접 자원을 할당받아 직접 운영하는 방식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시장, 불완전한 장기계약, 기업, 법적 규제, 관료제 등의 여러 수단을 사려 깊게 비교한 후 행동하는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23

국가는 시장 실패와 씨스템 실패를 보정하고 전략적 권능부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쪽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지역간 불균형, 혁신사업의 과소공급 등은 시장원리로 해결되기 어렵다. 이러한 시장 실패에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복지 등 공공써비스 부문에서도 지배적인 직접 공급자로 나서는 데 신중해야 한다. 최근에는 여타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의 행위자가 필요한 써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이행기 경제에서 제도를 구축하는 데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동유럽의 경우 정치제도가 가장 빠르게 변화했으며 법체계도 비교적 신속하게 개선되었는데, 여기에는 정부기구가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제도 형성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제도가 하부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관리층, 특히 핵심에 있는 관료제는 매우 느리게 변화하고, 기업의 경계나 내부구조도 미미한 정도의 변화만 보였다. 충격요법에 의해 대중적 사유화를 진행하고 선진국의 지배구조를 이식해도 적정 기술은 이전되지 않았다.24

경제조직 차원에서는 점진적 이행이 불가피하다. 외부환경에 의해 구속되었던 시장경제가 작동하면 기업의 규모와 경계도 재구축되어야 하는데, 기업 내의 관료제가 일거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적절한 조직형태인지 탐색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따라서 시장과 기업 양극단의 중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제조직이 이행과정에서 등장하게 된다. 현실에서 경제조직은 시장과 기업이라는 두개의 극단적인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시장 안에 위계 요소들이, 위계 안에 시장 요소들이 혼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시장과 기업 사이에 존재하는 혼합적 조직형태들은 느슨한 클러스터에서 통합체에 가까운 파트너십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25

한반도 차원에서는 남북한 경제의 통합과정에서 효율화와 격차해소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북한에서는 인쎈티브 개혁, 지배구조 개혁, 소유제 개혁이 결합되어 이루어져야 하는데, 농업이나 써비스업, 일부 첨단산업에서는 혼합형 조직을 잘 이용하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격차문제, 빈곤문제, 환경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에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비영리조직 등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26

 

 

7. ‘아름다운 나라’의 기초, ‘한반도경제’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이 세계경제에 헤게모니를 행사하던 시대가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미국의 지배적 지위에서 갈라져 나온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경제적 상승세가 강화되는 세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20세기의 자식이었던 한반도 분단체제는 젖줄이 말라가고 있다.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카오스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공황, 실업, 빈곤, 난민, 전염병이 폭풍처럼 밀려오고 나아가 전쟁과 살육의 참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백범 김구는 분단의 카오스 속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아름다운 나라’의 꿈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어리고 연약한 신생 조국에 바치는 노투사의 꿈은 분단체제 이후 새로운 질서의 씨앗이 되었다.27

백범은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고 했다. 이는 노자가 말한 “작은 나라 적은 인민”(小國寡民)의 유토피아의 모습과 통한다. 또 맹자는 “어진 자라야 작은 것을 섬기고 지혜로운 자라야 큰 것을 섬긴다”는 사소(事小)와 사대(事大)의 결합을 주장했다. 최원식(崔元植)은 이를 “소국주의를 멀리 내다보며 대국과 소국이 함께 모이는 중형국가”로 말한다.28 중형국가는 국가주의를 반성하는 국가이며, 국가를 넘어서는‘지역’, 국가 아래에서 국가 바깥과 연결되는‘지역’에 의해 교정되는 국가이다.

백범은 또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할 만하면 족하다”고 했다. 이는 성장지상주의를 넘어선 지속가능한 발전의 경제모델을 선구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새로운 경제모델은 미시경제상으로는 자본과 노동 중심의 생산자주의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혼합하는 모델이다. 거시경제상으로는 성장 일변도에서 탈피해 공공적 안정성을 함께 추구하는 혼합모델이다. 그리고 경제조직상으로는 극단화된 시장과 기업 모델의 중간에 다양한 혼합형 조직들이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반도경제’는‘아름다운 나라’의 기초이다. 그것은 국가와 함께‘지역’과‘지역’이 번영하는 나라, 시장과 기업 그리고 시장과 국가의 중간에 다양한 조직들이 공존하는 경제이다. 공자가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에서 동(同)은 지배·흡수·합병의 논리인 반면, 화(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며 공존과 평화의 원리다.29 한반도경제는 화(和)의 논리를 따르고, 평균값이나 최대치의 추상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것은 생명의 궁극적인 실체로서의 다양성과 변이에 초점을 맞추는‘풀하우스’(Full House) 모델이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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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지만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몰락했다고 할 수는 없다. 상품과 자본의 이동은 일시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지만,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국제무역이나 금융질서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임원혁 「신자유주의, 정말 끝났는가」,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 참조.
  2. 이일영 「혼합경제체제로 가는 세발자전거」, 『창비주간논평』 2008.12.24 및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한반도경제론: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서』, 창비 2007 참조.
  3. 전창환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금융자본의 재편」, 『동향과전망』 2009년 여름호 111~15면.
  4. 지금까지 미국정부가 약속한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 규모는 7.8조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명목GDP의 60%에 달하는 규모이다. 전창환, 같은 글 133면.
  5. 정건화 「미국의 경제위기와 오바마의 경제정책」, 『동향과전망』 2009년 여름호 94~96면.
  6. 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백승욱 옮김, 그린비 2009.
  7. 한국에서의 금융팽창은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 진행되었는데, 그 기원은 1980년대 이후 미국 중심의 금융팽창, 동아시아 주도의 실물팽창에 있다.
  8. 북한 핵실험은 카오스 단계로의 진입 위험을 높이는 효과를 유발한다. 따라서 한반도 민중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는 핵확산을 반대하고 단호하게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또한 충격과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압력과 제재가 적정선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9. 급진적 이행의 경우에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렇게 될 경우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 흡수통일을 주도할 정도로 남한의 흡수력이나 미국의 영향력이 높아지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남북한 당사자보다는 국제환경, 특히 중국의 영향력하에서 카오스를 관리하는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10. 최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복지국가SOCIETY정책위원회 『복지국가 혁명』, 밈 2007; 사민+복지 기획위원회 엮음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산책자 2008.
  11. 전병유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와 복지국가의 형성」, 정무권 엮음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II』, 인간과 복지 2009; 김대호 「북유럽산 사상이념의 오퍼상들의 잔치를 보고(1)」, 『좋은정치포럼』 뉴스레터 2009.1.21.
  12. 박근갑 『복지국가 만들기: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기원』, 문학과지성사 2009.
  13. 시장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브로델은 경제를 삼층구조로 인식했는데, 가장 아래에 기초적이고 자급자족적인‘물질생활’이, 그 위에 수요와 공급과 가격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시장경제’가, 그 옆이나 위에 가장 약삭빠르고 강력한 자가 지배하는 반(反)시장의‘자본주의’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14. 애덤 스미스의 시대에는 시장에 의한 조절만 말할 수는 없었다. 스미스는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았는데, 정부 역할은 자본가들간의 경쟁 촉진, 생산단위들간의 노동분업 장려, 노동인구의 지적 수준 하락을 제어하기 위한 교육 투자 등이었다. 또한 정부는 국내시장과 농업 발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이것이 폭력과 침략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국가의 제1과제와 충돌할 경우, 산업과 외국무역에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G. Arrighi, Adam Smith in Beijing: 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Verso 2007, 42~44면, 358면.
  15. Arrighi, 같은 책, 361면.
  16. 중국의 수입 중에서 소비재의 비중은 2007년에 3.6%에 불과했다. 지만수 「세계경제위기 속의 중국경제」, 목요중국포럼 2009.5.22.
  17. 이일영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폴리테이아 2007, 에필로그 참조.
  18. 동아시아 모델에서 핵심적인 것은, 국가가‘발전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자원배분에 개입’하는 정책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나친 발전지향성과 국가개입의 방식에 대한 반성이 동아시아 모델‘개선’의 골자이다. 그러나 발전지향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분단체제 이후의 북한지역에 대해서는 압축성장의 시간과 공간을 일정하게 용인해야 한다.
  19. 바람직한 동아시아 제도수렴 협력의 기본원칙으로는 조정시장경제 체제, 격차문제 해결에 유능한 체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체제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최태욱 「동아시아의 지역간 협력체제 추진을 제창한다」,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
  20. 미국 씰리콘밸리, 네덜란드 란트스타트, 일본 칸사이(關西) 등이 이러한 네트워크형 공간구조를 갖추고 있다. 정준호 「광역경제권 전략의 배경과 추진과제」, 『도시문제』 2008년 4월호, 12~18면.
  21. 이명박정부는 광역경제권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중앙과 지방의 지배·종속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중앙정부 주도로 기존 행정구역을 공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면, 지역자치의 수준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다. 광역지역화의 의미는 지역의 자립성을 높이는 데 있다. 광역화된 지역은 중앙정부와의 수평적 분업관계, 광역지역 내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체계를 구비해야 한다.
  22. 이일영 외 『21세기형 농업·농촌을 위한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 한국노동연구원 2007, 제2장.
  23. 국가의 역할을 사전적으로 신뢰하지도 불신하지도 않은 로널드 코즈의 다음과 같은 입장을 참고하자. “내 믿음은 경제학자, 정책결정자들이 일반적으로 정부규제의 잇점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정당하다고 해도 정부규제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 믿음이 경계선이 어디에 그어져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다루어진 실제 결과를 구체적으로 조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경제분석의 도움으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Ronald H. Coase, “The Problem of Social Cost,” Journal of Lawand Economics 3, October 1960.
  24. Peter Murrell, “Institutions and Firms in Transition Economies,” Claude Ménard and Mary Shirley eds., Handbook of New Institutional Economics, Springer 2005.
  25. 시장은 가장 분권화된 조직형태이고 기업(위계)은 내부에서의 조정·통제 정도가 가장 강한 조직형태이다. 시장과 기업의 사이에 집권화의 정도가 강해지는 순서로, 트러스트-관계적 네트워크-리더십-공식적 통치기구 등의 조직형식이 존재한다. 이일영 「하이브리드 조직 모델의 수정과 응용: 격차 문제에의 대응을 위하여」, 『동향과전망』 2009년 여름호.
  26. 협동조합은 기업형태에 비해 통제의 정도는 낮고 당사자간 높은 신뢰를 추구하는 혼합형 조직의 한 형태이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과 조직구조는 동일하지만 이윤극대화 대신 사회적 혜택 우선의 원칙으로 운영된다. 비영리조직(NPO)은 본질적으로 교환의 순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다르다. 이일영, 앞의 글.
  27. 이일영 「아름다운 나라」, 한국일보 2009.6.29.
  28. 최원식 「대국과 소국의 상호진화」,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
  29.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160~64면.
  30.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하면, “(생물 진화의) 교훈은 다양성과 변이를 그 자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수성은 특정한 점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차이들이다. 우리는 변화로 가득 찬 각각의 자리에서 우수해지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2, 321~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