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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영민 高榮敏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악어』가 있음. amond000@hanmail.net
쌀이 울 때
마른 저녁길을 걸어와
천천히 옷 벗어 벽에 걸어두고
쌀통에서
한줌,
꼭 혼자 먹을 만큼의
쌀을 퍼
물에 담가놓으면
아느작, 아느작
쌀이 물 먹는 소리
어머니는 그 소리를 쌀이 운다고 했다
허밍, 허밍
해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논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질녘 통통통 경운기의 짐칸에 실려 가는
저 텅 빈 아낙들은 무엇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오는 저 굽은 불빛은 무엇인가
해질녘 주섬주섬 젖은 수저를 놓는
손〔手〕
수레국화 옆에서 흙 묻은 발목을 문지르는 저 고단함은
해질녘 내 이름 석 자를 적어 온
이 느닷없는 통곡은 무엇인가
해질녘, 해질녘엔
세상 어떤 것도 대답이 없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나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해질녘엔 그저 멀리 들려오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허밍, 허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