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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남북한 대운하에 대한 비판적 평가
황진태 黃鎭台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논저로 『이명박시대의 대한민국』(공저), 「지역주도의 개발주의 관성에 관한 검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공저) 등이 있음. dchjt@snu.ac.kr
1. 들어가며
2008년을 전후로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추진은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화두였다. 그 와중에 『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에서 김석철(金錫澈) 교수는‘한반도 대운하’와는 다른‘남북한 대운하’구상을 내놓았다. 당시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해 대다수 진보개혁세력이 반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석철의 구상은 대선을 앞두고 진보개혁언론으로부터 “친환경적”“탈냉전적”“이런 구상을 한낱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드는 것은 대선후보를 비롯한 우리가 시대적 기운을 얼마나 절실히 느끼고 있는지에 달렸다”1 등의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김석철은 남북한 대운하가 “21세기 한반도의 남북도시축에 서해와 동해를 잇는 동서축을 이룸으로써, 서울·평양 통일수도권을 21세기 메트로폴리스로 만드는 동시에 경부·경의선축에 편중된 불균형을 시정하는 한반도 지속가능발전의 초석이 될”2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후 2008년 9월 세교연구소 주최 심포지엄‘기울어진 분단체제, 대안을 만들 때다’에서 김석철은‘남북연합 건설기의 공동인프라 만들기’란 주제로 남북한 대운하 구상을 다시 발표하고 그에 대한 토론이 붙여진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론에 가려져서인지 이 문제는 더이상 공론화되지 못했다.
현재 본질적으로 한반도 대운하와 다를 바 없는‘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김석철의 남북한 대운하 구상을 논의하는 것은 현정권의 대운하 계획에 대한 대응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운하 기획을 검토함으로써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운하를 바라보는 과잉된 정치성을 걷어내고 이념적 색채에서 벗어나 보다 이성적인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김석철의 남북한 대운하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유의미하다.
이 글에서는 남북한 대운하가 과연‘한반도 지속가능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논의는 그간 다양하게 제기되어왔지만, 여기서는 경제-환경-사회의 관계를 상호의존적으로 보고, 이 삼각구도가 상호 발전과 보호를 증진시킨다는 수준에서 받아들이고자 한다. 따라서 각 절은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범주화한 경제-환경-사회의 측면에서 남북한 대운하를 검토하며, 보론적으로 한반도 지속가능발전의 공간전략을 간략히 논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글은 제한된 자료를 토대로 하는 논의이며, 김석철의 구상이 이후 어떻게 수정 보완되어가는 중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이 논의가 한반도 공간전략에 대한 우리사회의 공론을 모으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동-서해를 관통하는 운하 루트는 천혜의 조건인가
우선 남북한 대운하의 구상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하자. 김석철에 따르면 남북한 대운하는 “동해안의 원산·안변 일대를 임진강과 한강 하구까지 연결하는 사업이다. 즉 북한에서 이미 완성해놓은 금강산댐의 수자원과 인프라를 활용하여 천혜의 조건을 갖춘 추가령구조곡에 에너지와 물과 인간의 흐름을 집합한 운하도시들을 만들고 이를 임진강으로 연결하여 한강에, 그리고 안변을 거쳐 원산에 닿게 함으로써 서해와 동해를 연결하려는 구상”이다(426면).
서안해양성 기후로 연중 유량이 풍부하고 그 변동이 적은 유럽 지형과 대조적으로 한반도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이고 신생대 요곡운동에 의해 형성된 동고서저(東高西低)의 경동지형(傾動地形)인 지형적 특성, 여름 강수집중률이 높고 연중 유량이 적은 기후적 특성 때문에 운하 건설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러한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김석철은 추가령구조곡에 주목했다. 추가령구조곡은 서울에서 전곡, 평강, 추가령까지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발달된 저지대를 일컫는다. 백악기 혹은 제3기초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제4기에 임진강과 한탄강의 유로는 현무암 분출로 인하여 협곡지형과 현무암 대지가 만들어졌다. 김석철이 말했듯이 추가령구조곡은 단층지대로서 지형학적으로 안정적인 지질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평평한 지표면이 특징인 구조곡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원산에서 서울까지 철로(경원선)와 경원국도(3번국도)가 놓여 운행되기도 했었다. 따라서 한반도 동고서저의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리한 공학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추가령구조곡을 이용한다면 운하 건설이 용이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필자는 남북한 대운하 안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추가령구조곡이라는‘천혜의 조건’이라고 본다. 이는 김석철이 제시한 개념도(그림 1)에서도 이 지역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대운하 구상에서 추가령구조곡의 지형학적 잇점은 과잉해석된 측면이 있다. 실제 위성사진으로 본다면 서울에서 원산까지 추가령구조곡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지역이 곳곳에 보인다.
구글 어스(http://earth.google.com)를 이용해서 서울-원산 간 경로를 살펴보면, 구조곡을 따라서 운하 건설에 용이한 직강하천이 아닌 곡류하천(직선거리 약 20km)이 존재하며(그림 2), 추가령구조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해로 연결되는 임진강 또한 곡류하천이라는 사실에서 짧지 않은 구간(직선거리 약 50km)에 직강화 공사가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 물류든 사람이든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운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로의 확보와 함께 곡선 주행으로 인한 연료비 소모, 운항시간 지체 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며 따라서 직강화는 필수조건이다. 그렇기에 전세계의 많은 운하가 직강화 공사를 한 것이다. 만약 곡류를 보전하는 운하 만들기라면 단지 수변공간 개발이지 굳이 운하라는 표현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추가령구조곡에서도 곡류하천이 곳곳에 발견된다. 정확한 수로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구조곡을 따라서도 직강하천보다는 곡류하천이 다수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강과 낙동강 등 국내 대하천의 중상류인 백두대간에 형성되어 있는 곡류하천은 현재의 경동지형이 형성되기 전 한반도가 침식을 받아 평탄해진 상태에서 만들어진 곡류하천이 요곡융기를 받아서 형성된 지형이다.3 운하를 만들기 위해서 곡류하천의 직강화를 시도한다면 아름다운 경관이 파괴될 것이다. 또한 상류에서의 직강화로 인한 유속의 증가는 하류의 홍수위험을 고조시킨다.4
그림 3은 한반도 중부지방의 경사도를 나타낸다.5 이 지도를 통해서 추가령구조곡이 운하가 건설될 수 있는 평평한 지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테두리 안). 이곳은 추가령구조곡인 동시에 용암이 메워져서 지형이 더욱 평탄한 철원 용암대지이다. 이러한 평평한 지역은 철로를 놓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그러나 평탄한 용암대지에는 하천의 발달이 쉽지 않아 구조곡을 따라서 남북한 대운하를 만든다고 할 때 이곳을 관통하기 위해 수로를 새로 건설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남북한 대운하 구상이 동고서저에 따른 고도의 변화를 감안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구조곡의 특성상 비교적 지형이 평탄하지만 고도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운하가 예상되는 지점들의 해발고도를 살펴보면, 연천(64m)-철원(182m)-추가령(586m)-안변(51m)-원산(7.4m)임을 알 수 있다. 공학상으로 1개의 갑문이 극복해야 할 고도차는 약 12m이다.6 이를 적용하면 추가령구조곡에서 동고서저를 무시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백두대간 때문에 동해안 안변에서 추가령으로 넘어갈 때는 약 535m의 차이가 나서 갑문 건설이 아니라 리프트 설치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이다. 따라서 추가령구조곡의 지형적 잇점을 통해서 보(洑) 같은 인공건조물의 건설이 최소화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인공건조물이 운하 구간 곳곳에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지형적 요인과 더불어 기후적 특성까지 살펴보면 그 취약성은 더욱 심각하다. 한강 이북 연천 등의 임진강 유역은 결빙기간이 81일 정도이며 결빙이 끝나더라도 해빙기의 유빙이 하천 인공구조물에 상당한 위험요소가 된다.7
정리하면, 김석철이 말했듯이 “다행히 추가령구조곡의 존재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수로와 운하 건설에 따른 자연파괴를 최소화할”(428면) 것이라는 예측은 지형학적·기후학적 측면에서 재고가 필요하다.
3. 운하를 이용한 가스관 건설은 타당한가
김석철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원산까지 배로 운송한 다음 운하 가스관을 통하여 수도권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동북아 국가들에서는 자원공급의 다변화 전략을 꾀하면서 러시아 천연가스에 주목하는 에너지의 정치지리가 첨예하게 형성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할린에서 바다를 경유하여 원산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김석철의 안보다는 러시아에서 북한 내륙을 관통하는 육상 가스관 설치가 더 많은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연지리적으로 사할린 지역은 “대형선박 접안시설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연간 5개월 이상 바다가 결빙되어 대형유조선이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8이며, 보통 3000km이내에서는 선박보다 육상 가스관이 경제적9이기 때문에 원산으로의 선박 경유는 비효율적이다.
분단체제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남북의 상호의존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이남주(李南周)는 남북경협이 “정치·군사적 환경변화의 종속변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 설계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남북경협의‘독자적 동력’이 생겼다고 평가하기도 한다.10 북한을 경유할 가스관도 정치적 이유로 인한 북한의 공급차단이 우려되지만 경제적 실익과 더불어 분단체제에서 남북의 긍정적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육로를 통한 가스관 건설 주장은 일찍이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에서 쎌리그 해리슨(Selig Harrison)이 “남한은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사할린산 가스를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은 운송관의 자국 영토 통과에 대한 댓가로 사용료를 받게 되는 한편, 그 운송관에서 가스를 끌어와 새 발전소나 비료공장의 연료로 공급할 수 있을 것”(34면)이라면서 당시 북핵위기의 타개책으로 가스관 건설을 제안한 바 있다. 2004년 창비에서 출간한 『21세기의 한반도 구상』에서 이수훈(李洙勳)과 이남주 역시 북한을 경유한 육상 가스관 건설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김석철의 대운하와 가스관 건설 구상에는 북한 내륙을 경유하는 육상 가스관 건설의 잇점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설사 원산과 수도권 간에 가스관을 놓는다 하더라도 운하와 가스관에 어떤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보다 설득력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볼 필요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2008년 7월 3일 천연가스(LNG) 제4인수기지 부지로 강원도 삼척을 확정했다.11 원산과 삼척 사이가 240km(직선거리)임을 감안하면 동해안에 굳이 두개의 가스인수기지를 건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향후 삼척 인수기지를 활용해서 북한으로의 공급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동북아의 에너지 정치지리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현재 러시아와 한국이 공동으로 가스관 건설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다.12 이미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건설된 삼척 인수기지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중복투자에 의한 낭비가 초래될 수 있지만, 한-러 공동조사를 통해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건설이 성사된다면 분단체제 속에서 생태적·경제적 측면과 더불어 남북의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13
4. 운하 주변에 건설될 수상도시에 대한 검토
이 절에서는 추가령구조곡 주변에 건설될‘산상의 수상도시’에 의한 창조인구 유입 주장에 대해서 검토한다. 창조인구 혹은 창조도시 논의는 현재 국내 지자체에서 유행처럼 추진중인 도시발전전략 중 하나다. 이 발상은 서구 도시들에서 산업화를 통한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자 기존에 치중하던 경제자본을 벗어나 문화자본과 인적자본에 주목하고 창조성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성장을 목표로 삼는 데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와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를 들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남북한 대운하에서 창조인구를 유입하기 위하여 수상도시를 만든다는 주장에 대한 문제점 두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기존의 창조도시론은 플로리다가 제시한 창조계층을 끌어오기 위한 세가지 요소인 기술·인재·관용적 분위기 등을 중시하면서 게이 지수나 보헤미안 지수 등을 도시의 창조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각 도시의 창조성이라는 것은 고유한 역사와 제도적 맥락에 바탕을 두어야만 성공이 가능하다. 미국의 도시들에서 도출된 지표들을 역사적 배경과 경로의존이 상이한 다른 국가의 도시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도리어 창조인구와 창조도시라는 구호가 신자유주의적 도시계획을 관철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는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14 김석철도 플로리다의 창조계층 논의와 유사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북한 인구를 지식산업사회에 맞는 높은 지능과 창조적 문화유전자를 가진 인적 자산으로 생각해야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함께 잘살 수 있다.”(428면)
서구의 창조도시 논의가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생존전략으로 도출된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전국 지자체에서‘정책 레토릭’으로 사용되고 있다.15 기존 창조도시론은 도시 규모에 몰입한 나머지 상이한 국가나 지역 등 다양한 규모에서 창조적 동인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16 우리의 역사와 환경과 무관한 서구의 창조도시 논의를 이식해서 과연 남과 북이 함께 잘살 수 있을지 미지수다.
둘째, 김석철은 전문직종 같은 이른바 창조인력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수변공간 정비를 강조한다. “추가령구조곡 운하 주변에 북한과 남한의 창조적 인구가 모이는 산상의 수상도시를 만들 수 있다.”(428면) 이러한 주장은 서구의 창조도시 논의에서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사례들에서 수변공간을 강조한 것에 착안하여 남북한 대운하 논의에 끌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험적으로 창조도시와 수변공간의 상관성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17 이를 창조적 인구가 모이는 조건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서도 배가 떠다니고 관광객이 붐비며 세련된 건축물이 들어선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지만, 앞서 창조인구의 유입이 단순히 서구 창조도시론의 지표들을 끌어옴으로써 그 지역을 형성하는 다규모(multi-scalar)적 요인들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볼 때 이러한 조감도에서 지역의 구체적인 맥락들이 고려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한반도 지형에서 운하 주변에 수상도시를 만드는 것이 안전한지 점검해보자. 김석철의 논문에서는 수상도시의 예로 자신이 설계했던 중국 취푸(曲阜) 운하도시 조감도를 제시했다. 이 수상도시의 운하는 본래 강을 운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물을 끌어와서 수변공간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김석철은 이러한 인공수로를 통해서 도시경쟁력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볼티모어 항구의 선례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도시 쾌적성(amenity)을 고려한 수변공간 개발이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서 일리있는 주장이다.18 이어서 김석철은 “운하는 운하고 강은 강이다”(426면)라면서 운하와 강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렇다. 운하는 운하고 강은 강이다. 김석철이 제시한 중국의 운하도시처럼 수변공간과 도시간 인접이 가능한 것은 그 수로가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한 대운하 계획은 강을 운하로 바꾸는 것이다. 즉 운하도시의 운하처럼 하천망과 상관없는 게 아니라 하천망의 혈관들과 연결되어 있는 강에다 운하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내 하천의 하상계수(최소유량 대 최대유량의 비율)는 여름철 호우로 인해 한강 393, 낙동강 372 등 높은 편이다. 반면 운하 주변의 도시형성이 가능한 유럽의 경우는 독일 라인강 14, 영국 템즈강 8 정도로 안정적이다. 만약 하상계수가 적은 유럽이나 하천망으로부터 독립적인 중국의 운하도시처럼 남북한 운하 주변에 수상도시를 만든다면 수해 가능성을 어떻게 감소시킬지 의문이다.19
김석철이 말한 산상의 수상도시는 매혹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수변공간은 창조도시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 더구나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하천 주변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오히려 분단체제적 관점에서 대안을 만든다면 분단에 의해 보전된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그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고려한 발전전략이지 않을까?20
5.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김석철의 남북한 대운하 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김석철은 한반도의 지속가능발전의 초석으로 이 계획을 제안했다고 한다. 남북한 대운하는 추가령구조곡의 지형적 잇점에 근거한 획기적인 제안으로 보이지만 자연지리상의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그밖에 운하 가스관이나 산상의 수상도시 등의 하부계획에서도 경제적·사회적·생태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못한 계획이라고 판단된다.
김석철의 남북한 대운하 안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남한과 북한이‘통(通)하는’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소통을 통해서 비로소 통일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분단체제하에서 남북협력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취지에 적극 동감한다. 앞으로 한반도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할 다양한 공간전략들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논했듯이 남북한 대운하는 경제-환경-사회적 측면에서 지속불가능하다는 게 필자의 평가다. 그렇다면 운하를 대신하여 무엇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 이미 북한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주장했듯이 운하에 앞서 통신·통관·통행의‘3통’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남북경협 차원에서도 기본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3통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까지도 그 진전은 더뎠다. 화불단행(禍不單行) 격으로‘불통(不通)’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등 3통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동해선 연결 같은 보여주기식 사업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개보수가 필요한 북한의 철로와 도로를 정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 남한의 도로와 철도를 대륙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운하 건설보다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물론 김석철의 운하론은‘남북연합 건설기’의 공동인프라 구축을 위한 중장기적 과제로 제출된 것으로, 당면한 3통의 과제와 시간적으로 배치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재검토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화려하지 않은 한반도 지속가능발전 공간전략의 첫 단추는 북한을 설득하여 제도를 수정하고 철도와 도로를 개보수해 3통을 실현하는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고민하는 한반도 공간전략은 국지적으로 추진되는 일회적 개발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나아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틀과 철학 안에서 수행되어야 지속가능발전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남한을 넘어서 북한과 함께하는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내다보는 큰 지도가 필요하다. 남북한 대운하 구상도 이런 차원의 일환으로 제출된 것으로 믿지만, 한반도 차원의 경제구상 작업은 이미 진보진영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에서 제시한‘한반도경제론’(『한반도경제론』, 창비 2007)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제시한‘새사연모델’(『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시대의창 2006)이 바로 그러한 훌륭한 한반도경제모델 연구의 성과들이다. 평소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언론에서조차‘진보는 대안은 없고, 비판만 할 줄 안다’는 냉소에 동참하기 바빴을 뿐 과연 이러한 대안모델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해왔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현정권이 추진하는 녹색성장이라는 지배담론에 대한 대항담론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한 나머지 진보진영에서의 고민의 성과들을 검토하고 확산시키는 작업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지배담론에 맞설 대항담론과 지배담론을 대체할 대안담론의 구성은 동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의제설정 능력의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정세에서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의 1단계로 의심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기는커녕 한가로이(?) 진보진영에서 나온 의제를 평가하는 것은 바로 앞서 말한 바들을 공론화하고 논리를 한층 벼리기 위한 취지에서다.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 덕택에 소통이 한국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필자의 남북한 대운하 비판에 대한 반론이든지 한반도 공간전략에 관한 논의든지 혼자만의 말놀이가 아니라 되먹임(feedback)이 있는 소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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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선 「김석철의‘남북한 대운하’구상」, 한겨레신문 2007.9.18.↩
- 김석철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 『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 430면(이하 이 글의 인용은 본문에 면수만 표시함).↩
- 권동희 『한국의 지형』, 한울아카데미 2006.↩
- 직강화 이후의 하천에서 유속은 2~3배 빨라지고 운동에너지는 4~9배로 커진다. 김창완 「’98 대홍수에서 드러난 도시하천관리의 문제점」, 『자연과 문명의 조화』 46(9), 대한토목학회 1998, 5~8면 참조.↩
- 명도가 짙어질수록 경사(1~89°)가 높아진다.↩
- 박창근 「실체가 없는 한반도 대운하」,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 토론회(2008.1.31) 자료집 26면.↩
- 부경생 외 『북한의 농업: 실상과 발전방향』, 서울대출판부 2006. 같은 책에 따르면 한강 이북에서 하천 결빙시 두께는 30~60mm, 함경도에서는 최고 1m에 달한다. 10mm면 사람이 걸을 수 있고, 20mm면 마차 통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 장덕준 「러시아와 동북아 지역협력: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22권 2호 206면, 경남대 국제문제연구소 2006.↩
- 「북한땅‘거쳐’러시아 천연가스 들여온다」 이데일리 2008.9.29.↩
- 이남주 「동북아시대 남북경협의 성격과 발전방향」, 백낙청 외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창비 2004, 265면.↩
- 강원발전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삼척 가스저장기지는 저장탱크 14기, 280만km규모로 2013년까지 1조 3000억원, 2019년까지 총 2조 3000억원이 투자될 계획이다. 김진기·진상헌 「삼척 LNG인수기지와 환동해 에너지벨트 전망」, 『정책브리프』 제35호, 강원발전연구원 2008 참조.↩
- 윤영미 「한·러 정상, 남·북·러 에너지 철도협력 합의」, 『통일한국』 2007년 11월호.↩
- 여기서‘생태적 측면’이라 함은 가스운송관 설치가 해상보다는 육상 경로가 생태적이라는 상대적 범위에 한정한다. 현재의 석유 중심의 국내 에너지체계를 바꾸려는 근본적인 노력 없이 천연가스에 의존하려는 미봉책은 반생태적인 조치다. 즉 천연가스의 활로 개척이 자칫 대안에너지 개발을 봉쇄하는 논리로 작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천연가스 확보와 더불어 석유중심 에너지체제로부터 탈(脫)석유중심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복합적 모색이 필요하다.↩
- 가까운 예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한강르네상스 플랜에는‘창의문화시정’이라는 당의정을 입혔지만 한강변에 초고층건물 등을 세움으로써 사회경제적 차별화를 낳을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황진태 「한강 르네상스, 도시계획적 문제와 개선방안」, 『한강르네상스, 한강의 미래인가 파괴인가?』, 서울환경연합 하천위원회 주관 한강르네상스 긴급토론회 2007.7.16, 자료집 참조.↩
- 김동완 「규모의 지리 측면에서 바라본 창조적 계급과 도시 창조성」, 『공간과 사회』 29호, 2008.↩
- 도시의 창조성이 다규모적으로 형성된다는 상세한 사례들은 김동완, 앞의 글 참조.↩
- 신성희 「창조계급 및 창조도시들의 분포특성과 창조적 도시조성 방안의 시사점」, 『공간과 사회』 25호, 2006.↩
- 황진태 「‘볼티모어 신드롬’에서 배워야 할 공공성의 중요성」, 『환경과 조경』 2008년 7월호.↩
-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서 수변에 취락을 만든다는 계획에 대해 “유럽은 우리나라의 지형과 월강수량, 강우강도가 판이함. 다른 나라의 자연환경 조건과 동일 비교하는 우를 범해선 절대 안될 것임. 우리나라 하천은 유럽의 하천과 홍수시의 stream power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임(특히 강우강도에 주목해야 함). 유럽처럼 운하 주변에 취락이 존재할 수 있는 자연여건을 갖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하천 주변 어디에도 없음”이라고 주장했다. 박종관 「경부운하 관련 자료 분석: Field를 왜곡하고 있는 허위과장성 비논리적 주장들」, 한국지형학회 주최‘한반도 대운하와 지형환경 심포지엄(Ⅱ): 한반도의 자연하천이 운하 건설에 과연 적합한가?’2008.4.5, 자료집 43면.↩
- 백낙청도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지내는 비무장지대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뜻밖의 성과 중 매우 이색적이면서도 어떤 의미로 극히 상징적인 예라 하겠다”(백낙청 「분단체제극복과 생태학적 상상력」,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비 1998, 141면)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