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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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李謹華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redcentre@freechal.com

 

 

 

박춘근氏 밑에서 일하기

 

 

아저씨는 형이상학적인 웃음소리를 냈어요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라는 이름을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춘근이 아저씨의 목젖을 보는 것 같았어요

검은 창자가 흘러나온 것처럼 생겼지만

입은 박춘근氏에게 중요한 기관입니다

 

백만인의 가족사를 단 한마디로 요약하는 능력을 가졌죠

제가 박춘근氏에게 처음 들은 말도 바로 그거였어요

제때 밥은 먹어야지, 하고 단 일초 만에 딴말을 했지만요

정오의 닭의 뱃속에는 가시 같은 것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데올로기를 가진 흑발이었어요 박아저씨는

염색 후에 상자에 붙은 여자들을 오리면서 진지해졌지요

춘근이 아저씨의 연애사는 가위질과 도배질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드를 불면 튀어나오는 환상처럼 벽이 울퉁불퉁해졌어요

 

명자야 명자야, 하며 잠꼬대를 했습니다 아저씨가

꿈속을 막무가내로 훔쳐보는 심보가 틀렸다면서, 내 머리통을 쳤어요

입속에서 콩 같은 것이 툭 튀어나오려 했지만, 박춘근式으로.

子字 이름을 가진 여자들은 개명을 해요

개명은 낡은 유행이죠,라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죽기 전에 명자 아줌마가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요

진, 숙, 연 등의 이름을 가지고 오면 오면, 정말 고민이죠

방구석에 차라리 마네킹을 세워두었으면 좋겠어요

화려한 팬티와 커다란 브라를 입힌 여자로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의 일은 숨겨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상은 뻥 뚫린 벽 같은 것인지도 모르죠

바람 같은 손이 불쑥 나타나겠지만, 고요해진 날에는

파트너십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아저씨 건배.

 

사방에서 튀어나온 꽃들이 전속력으로 벽지 위에 도로 박힙니다

암술과 수술처럼, 우리는 독자적으로 아름다워지겠죠

멋진 아들딸들은 펜과 망치를 들고 슬프게 슬프게 울겠지만요

 

 

 

나의 사랑 김철수

 

 

철수가 보면 어쩌죠?

이렇게 말해버렸다고

화를 내겠지요

자기가 진짜 김철수인데

김철수가 사랑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사랑을 믿겠느냐고

나는 철수의 사랑으로서

얼마나 손해겠어요

하지만 김철수 나의 사랑

철수도 어쩔 수 없죠

철수가 봐도

철수도 나도 괜찮아요

영호 같은

세상의 많은 철수를

두루 사랑하는 영희로서

나는 순희 같은

사랑을 한 거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나는 김철수뿐입니다

많은 김철수의 마음속에

나는 빛나는 영희로서

내 사랑은 김철수로서

순희 같은

영자 같은

미숙이 경숙이 같은

철수가 오늘은 말이 없어요

정말 화가 났나봐요

내 사랑이 자기인 줄도 모르고

어른 김철수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