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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한류와 동아시아의 미래

백원담 『동아시아의 문화선택 한류』, 펜타그램 2005

 

 

이욱연 李旭淵

서강대 교수, 중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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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문화선택 한류』는 백원담(白元淡)이 최근 몇년간 심혈을 기울여 수행해온 한류의 현장 탐사보고서이자 한류 이론서이고, 한류 정책제안서이다. 한류가 무엇인지, 한류가 동아시아에서, 나아가 세계문화 지형도에서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지니는지를 거듭 역설하는 저자의 열정은 동아시아 어떤 한류 열기보다도 뜨겁다.

백원담은 진짜 한류, 진정한 한류, 새로운 한류 등의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현재 동아시아에 흐르고 있는 거대 문화자본들과 국가주의가 기획·조직하는 21세기형 문화산업버전으로서의 한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러한 한류를 넘어 진정한 한류, 진짜 한류를 기획한다. 그렇다고 문화산업 버전으로서의 한류를 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문화산업 버전의 한류라 할지라도 그것이 동아시아인들의 주체적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점을 강조하면서, 이병헌 팬클럽의 예에서 보듯이, 한류가 매개되어 동아시아인들이 유례없이 상호소통을 하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류가 자본의 논리를 따라가지만, 그것이 문화인 한 그 안에는 분명히 어떤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11면) 그 가능성이란 한류로 조성된 소통의 계기를 잘 살려서 참다운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한류의 동아시아적 회통’에는 ‘동아시아의 상호관계 지향의 고리들’ ‘새로운 관계성의 계기들’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 바탕을 둔 저자의 한류 기획의 핵심을 나름대로 간추리자면 이렇다. 문화산업 버전의 한류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여기에 「지하철 1호선」 같은 비판적·진보적 차원의 한류를 합쳐 진짜 한류, 진정한 한류를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러한 한류를 매개로 동아시아 상호소통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적 지역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백원담 한류론의 독특한 개성이다.

그런데 백원담의 이러한 거대한 한류 프로젝트를 따라가다보면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대관절 한류가 무엇이기에 동아시아 소통과 새로운 문화지역주의의 단초가 되고,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문화선택이 될 수 있는가. 일류(日流)나 화류(華流)는 왜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으며, 한류는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저자는 한류가 동아시아의 평등한 관계 형성의 고리가 되기를 염원하지만, 이 새로운 관계 형성을 한류를 매개로 하여 생각하는 한 한류문화의 일방적 발신자인 한국 중심주의, 또다른 차원의 한류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그럴 때 한류를 매개로 한 동아시아 지역의 다원적이고 평등한 상호소통과 대화가 가능한가.

이런 의문들에 대해 백원담은 한류가 지닌 ‘문화형질’때문에 그렇다고 답한다. 저자가 보기에 한류는 단순히 스타들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잘생겨서 생겨난 문화산업이 아니다.(112면) 한류가 동아시아에 흐르자, 많은 학자들이 한류에서 독특한 한국적인 그 무엇을 추출하기 위해, 한류의 문화형질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이어령(李御寧) 같은 경우 그것을 한국문화의 고유한 특징에서 찾았다. 한국문화에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접목되어 이루어진 독특한 문화적 DNA가 있기 때문에 한류가 유행한다고 보는 것이다. 백원담은 한류의 독특한 문화적 DNA를 한국 근현대사에서 추출한다. 한류에는 오랜 변방살이에서 비롯된 강한 비판성, 식민지와 분단·독재의 세월 속에서 일구어낸 빛나는 관계지향의 문화, 사회의 역동성, 인터넷 쌍방향문화, 역동적인 문화생산력, 서구문화를 중역(重譯)해낸 경험 등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39, 113, 180면) 한류는 “한국사회의 반주변부적 역동성이 만들어낸 발랄한 문화장력”이다(183면). 굴곡진 한국근현대사가 한류의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DNA를 형성시켰고, 그것이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동아시아에 한류의 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동아시아가 한류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도 한류가 지닌 이러한 특징과 관련이 있고, 이 특징은 한류에 앞서 동아시아를 휩쓸고 간 일본 대중문화나 홍콩, 대만 대중문화와도 구별된다는 주장이다. 이어령의 작업이 우리 사회에서 한류를 해석하는 보수관점을 대표한다면 백원담은 진보관점을 대표한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어령과 백원담이 겹쳐 보인다. 보수적 차원이든 진보적 차원이든 한류에 다른 동아시아 문화에는 없는, 한국문화와 관련된 우월하고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차원에서 한류의 문화적 형질을 추출하다보면, 한류를 동아시아 문화가 선택해야 할 문화적 모델로 절대화하고, 동아시아 문화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특권화할 수 있다. 그럴 때 한류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하나의 이념형이 되고, 이를 동아시아에 확산시키는 것은 더없이 위대한 동아시아 공동의 문화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간혹 저자에게 한류는 현재 동아시아의 문화적 선택이라는 현상기술의 차원과, 동아시아의 문화적 선택이 한류여야만 하고 ‘진짜 한류’가 ‘동아시아의 부박한 살이 속에 물처럼 스며 흐르게’해야 한다는 당위적 차원이 구분되지 않은 채 섞여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한류에 대한 높은 의미 부여를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진보적 기획이라 하더라도 또다른 한류민족주의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백원담이 “언제 우리가 이처럼 동아시아를 마음껏 휘돌아본 적이 있던가. (…) 언제 우리가 세계의 이목을 이처럼 집중시켜본 적이 있던가”(25면)라고 하면서 ‘한류의 감격’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솔직히,한류의 감격에서 자유로울 한국인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한류의 감격에 젖어 있다가 어느날 동아시아가 한류를 놓아버리면 대관절 어쩔 셈인가. 한류 줄기세포가 과장된 것으로 판명나면 그때는 어떡할 것인가. 나의 제안은, 한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불끈불끈 치솟는 민족적 자부심과 오만함을 죽을힘을 다해 억누르면서, 우리 모두 제발, 한류에 대해 오버하지 말자는 것이다. 한류의 의미와 몫에 대해 넘치지 않는 제 몫을 찾아주는 차원에서, 동아시아 문화의 미래에 대해 차분히 고민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