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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영수 尹英秀
1952년 서울 출생. 1990년 『현대소설』로 등단.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없이』 『착한 사람 문성현』 『소설 쓰는 밤』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내 안의 황무지』 등이 있음. yeongsuyoon@hanmail.net
철학잉어
공짜
“확실히 해라. 돈 벌기가 쉬운 게 아니다. 기술자가 세상에 너밖에 없는 줄 아냐?”
사람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확실히 해! 운전기사가 세상에 아저씨밖에 없는 줄 알아? 중학교 때 자기 집 운전기사에게 함부로 해대던 말투를 녀석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은 따돌림을 당했다. 담임선생님의 티나는 보호가 아니었으면 폭력조직뿐 아니라 주위의 평범한 친구들에게서도 봉변을 당했을 밥맛없는 녀석이었다.
건물 밖 보도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계약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라는 구호가 저렁저렁 건물을 흔들어댔다. 안에서 일하는 직원뿐 아니라 써비스쎈터를 찾은 손님들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녀석 혼자 태평했다. 살은 또 왜 그렇게 쪘는지 알 수 없었다. 중학 때에도 마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몸피보다 두배는 불은 듯했다. 조그만 눈코입이 살에 파묻혀 웃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공짜로 고쳐주는 거지? 그까짓 것 몇푼 한다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녀석이 또 지절거렸다.
“그러게. 그까짓 것 얼마 한다고 공짜 타령이냐? 재벌집 도련님 윤석형이.”
윤석형. 육중한 외제 승용차를 타고 등교하며 온갖 거드름을 피우던 녀석. 그런데 지금 녀석의 휴대폰은 녀석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먹통이 되어 액정화면이 켜지지도 않는 그의 휴대폰은 7년 전 출시되어 이미 단종된 제품이었다. 휴대폰 시장에서 7년이면 아버지 할아버지도 아니고 증조할아버지뻘이다. 써비스기록을 보니 그는 4년 전 이 휴대폰의 깨진 액정화면을 고쳤고 배터리를 교체했다. 사용자가 강력히 요구했지만 메모리를 복원하지 못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다. 녀석의 집이 망했다는 소문은 다른 친구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공장에 원인 모를 불이 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쓰러져 삼촌이 회사를 독식했다고 했다. 아무리 그런들 휴대폰 수리비를 아끼려고 까마득한 중학 동창을 찾았겠는가.
“정규직이라 좋겠네. 띠 두르고 목 쉬어가며 시위할 일도 없고. 잘 풀렸다고 재지 마라. 회사 오너도 아니면서. 내일이라도 잘리면 개털이다.”
비용이야 어찌 되든 메인보드를 교체하면 간단하겠는데 재고부품이 전혀 없었다. 아예 최신형 휴대폰으로 바꿔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휴대폰 임대약정으로 전환해주면 서로 간단한 일이었다. 마음이라도 읽듯 녀석이 또 한마디 했다.
“딴 건 필요 없다니까. 봐, 나 지금 쓰는 휴대폰도 있어.”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다른 휴대폰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전의 것을 고쳐서 앞으로 계속 쓸 거라니까. 환갑까지만 쓰면 골동품이다. 이런 게 이를테면 역사전통이요 관록이지.”
“골동품 되면 큰돈 벌겠네. 부자들은 참 가지가지로 돈 버는구나.”
내 이기죽거림에도 녀석은 흔들림이 없었다.
“월급 많이 받지? 나라 경제를 쥐고 흔드는 대기업의 능력사원이니 어련하시겠어.”
“많이 받는다. 헌 휴대폰 미련 없이 폐기하고 새 휴대폰 살 만큼은 충분히 받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써비스업체를 대기업의 일부라고 알고 있다. 휴대폰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우리 써비스업체는 겉으로나 한 로고를 쓸 뿐 별개 사업체다. 대기업으로서는 하청을 떼어주었으니 제품 하자나 써비스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고, 하청업체인 우리 입장으로서는 대기업의 일부인 척해서 손해날 것 없으니 그런 척 장단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외장을 뜯고 보니 의외로 사소한 하자였다. 배터리 불량과 화면으로 이어지는 선의 납땜이 두군데 떨어져 있었다. 먼지나 습기에도 그리 노출되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다. 간단한 수리로 화면이 켜졌다. 전화번호만 이어주면 당장이라도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 심각하게 손봐야 하는 척 상자에 담긴 부품들을 뒤적거렸다. 그랬다. 녀석의 근황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었다.
“시간 좀 걸리겠네. 저쪽 가서 커피 마셔라. 공짜야.”
나는 창가 쪽의 커피대를 가리켰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곰이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중학 동창 황주의 전화가 과장이 아니었다.
-길에서 석형이를 봤거든. 손을 잡고 흔들어대는데, 와아, 나는 무슨 곰한테 잡힌 줄 알았다. 네 연락처를 묻더라고. 모른다고 잡아뗄 수가 있어야지.
저장된 전화번호 11개. 총 11개? 갯수를 잘못 보았나 다시 한번 확인했다. 통화기록이 2007년 10월로 끝난 것을 보면 1년 반쯤 전에 고장이 났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그 이전의 기록이…… 별로 없었다. 10월 14일, 그 이전은 10월 11일, 10월 3일에 두 통화. 9월에도 비슷했다. 자동저장된 100개의 전화내역 중 가장 오래된 것이 2005년 8월이었다. 2년여 동안 주고받은 전화가 100통뿐이라는 말이었다. 희한했다. 전화를 주고받는 일에 서툰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의 휴대폰을 보는 느낌이었다.
“요새 기술자들 참 후지네. 본점 팀장이 이 모양이니 아랫것들은 오죽하겠냐.”
어느새 커피를 들고 온 석형이 또 이기죽거렸다. 10년은 되어 보이는 후줄근한 옷에 비해 입담은 생생하여 손을 벨 지경이었다.
“황주랑 만났다며? 그동안 연락하고 지냈어?”
휴대폰 내부를 들여다보며 내가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석형이 키득거렸다.
“연락은 무슨. 황주 그놈,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내 손을 놔줘야 말이지. 이놈의 시들지 않는 인기라니. 그런데 너흰 아직도 만나냐? 두놈 더 있잖아. 다람쥐하고 잽이. 다람쥐 걔는 아직도 앞이빨만 크냐?”
놀라웠다. 이십여년 전 나랑 어울리던 친구들을 녀석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엿한 약사가 된 기헌과 대학강사를 하는 안경잡이 윤수의 별명이 그러했다. 기헌과 윤수, 황주와 나는 한동네 출신이었다. 버스로 두세 정거장 떨어진 중학교에 배정된 우리는 늘 등하교를 같이 했다. 툭하면 마주치는 폭력학생들에게 혼자 당하지 않으려는 자구책이었다. 그애들이 몇번 내가 속한 반에 들락거렸으니 짝이었던 석형이 그들을 보기야 했겠지만, 자기와 가깝지도 않던 내 친구들을 지금껏 기억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휴대폰을 넘겨주며 하릴없이 한마디했다.
“다음에 또 이것 가져오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너나 들어가라.”
녀석이 웃었다. 불거진 볼 밑으로 힘겹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정말 만화 속 백곰 같았다.
곰
집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엠피쓰리를 귀에 꽂았다. 중국어 회화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띠 두를 필요도 목 쉴 일도 없는 정규직’에 ‘써비스 팀장’이라는 직함이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였다. 평직원 스무명에 팀장 열한명. 팀장이란 호칭은 창구에 앉아 고객을 직접 대하는 5년 이상 경력사원에게 치레로 붙여준 이름에 불과했다. 회사가 작으니 승진도 거의 없었다. 팀장 위에 부지점장, 하늘의 별따기로 지점장이 되면 그뿐, 마흔이면 이 직장도 끝이라고 봐야 했다. 실력 좋은 엔지니어가 쌓인 판국에 나이들고 느려터진, 게다가 퇴직금이나 쌓여가는 고참들은 회사로서야 얼른 정리할수록 이익이었다. 월급쟁이 생활을 계속하려면 중국이나 동남아의 공장 기술자로 자원하는 방법이 있었다. 휴대폰 생산업체인 대기업 소유의 공장이지만 한국에서 자원하는 사람이 적어 그나마 우리에게까지 순번이 오는 셈이었다. 그들 말에 의하면 적어도 10년, 실적에 따라 60세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이국땅의 생활이 어떠할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쌍둥이 상원이와 상민이의 교육도 걱정이었다.
‘꼭 가야 된다면 가지 뭐. 일부러 외국유학도 보내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내 역시 중국어회화 책을 보고는 기가 죽는 모양이었다.
요행히 버스의 좌석을 차지했는데 앉고 보니 바로 앞에 앉은 이의 등덜미에 눈이 꽂혔다. 미색의 평범한 티셔츠에 글자가 씌어 있었다.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 곰 같은 몸피의 석형이 떠올랐다. 오늘은 뚱뚱하지만 내일부터는 살을 빼겠다고?
석형의 소식을 들은 것은 4, 5년 전 약사인 기헌을 통해서였다. 기헌의 장모가 꽤 큰 미장원을 경영하는데 그곳에 드나들던 석형의 이모로부터 흘러나온 얘기였다.
중3 때 미국유학을 떠났던 석형은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부는커녕 흑인들과 어울려 마약까지 복용하게 되자 아버지가 석형을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빼어든 카드는 군입대였다. 군대에 보내 ‘사람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석형은 과체중으로 복무를 면제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번에는 중국으로 석형을 쫓아냈다. 미국보다는 마약 접촉기회가 적은데다 마침 중국에 지사가 있어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은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였다. 우울증으로 병원신세를 지던 그의 어머니는 잠깐 집으로 퇴원한 동안 마당의 나무에 목을 맸다. 결혼 초부터 불거진 남편의 바람기에 상처를 입은 그의 어머니는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았다. 친지들이 집이나 병원에 찾아가도 말 한마디 없고 자신이 낳은 외아들 석형에 대해서도 애착이 없었다고 했다.
석형 어머니가 죽고 한달 만에 회사의 모기업이던 화학공장에 불이 났다. 화재소식을 접한 그의 아버지가 혈압으로 쓰러져 그날부터 눈뜬 시체가 되어버렸다. 주위에서는 조강지처를 홀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고 수군거렸다. 회사의 명의는 석형의 삼촌에게 넘어갔고, 회장 비서 출신으로 일찌감치 안주인 노릇을 해온 석형의 새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남매 앞으로 재산을 모두 돌려놓았다고 했다.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 티셔츠가 갑자기 솟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뒷문으로 향한 티셔츠의 주인은 곰과는 전혀 관계없는, 체구가 자그마한 젊은 학생이었다. 셔츠 앞자락에는 곰이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모습이 무척 순하고 한가로운 곰이었다.
집에 돌아온 시각은 아홉시,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잠들어 있었다. 천방지축 뛰어대는 아이들 때문에 아래층 아줌마에게 된 시집살이를 하는 아내는 저녁밥만 먹이면 아이들을 재우느라 바빴다. 옷을 벗으며 나는 아내에게 버스에서 본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에 대해 얘기했다.
“마늘 선전인가? 곰이 마늘을 먹어야 인간이 된다잖아. 요새 광고들이 워낙 세련되어서 말이지.”
“자기는 어쩜 그렇게 시사에 약해?”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는 거 아냐. 지금은 북극곰이 죽지만 머지않아 우리 인간도 무사하지 못하다, 요새 환경단체 구호 아냐.”
그러면…… 티셔츠 앞자락에 비스듬히 누웠던 곰은 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중이었던가. 인간들 스스로가 자초한 무한경쟁, 부익부 빈익빈의 덫 외에, 지구의 문명과 모든 생물의 목숨을 위협하는 환경재앙이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었던가. 출연자들이 몰려다니며 생고생을 사서 하는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을 켜놓고 나는 괜히 힘이 빠졌다. 아마도 나는 천지 분간 못하는 곰 신세가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동료를 딛고 올라설 일도, 자식 키울 걱정도 할 필요 없는 곰. 자연을 따라 살다가 평화로이 스러져가는 곰.
어울림
며칠째 건물 앞이 한적했다.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자 계약직 사원들이 잠시 시위를 접은 것이었다. 옳은 판단이었다. 전국민의 눈과 귀가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만 쏠려 있었다. 언론이나 방송매체도 얍삽한 구석이 있었다. 첫날에는 ‘타고난 승부사’ 운운하며 그의 자살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더니 애도의 물결이 거세지자 어느새 누구보다도 슬프고 곡진한 자세로 납죽 엎드려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건물을 나서는데 웬일로 석형이 서 있었다.
“점심이나 사라. 오랜만인데.”
나는 석형을 순대국집으로 데려갔다. 평상시에 잘 들르는 집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고급음식에 길들었을 녀석에게 본때를 보이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오였다.
“야, 내가 순대국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냐? 곱빼기 시켜도 되지?”
어이없었다.
“재벌집 도련님이라는 게 근 이십년 만에 불쑥 나타나서는 없는 놈 주머니나 털고. 이게 무슨 횡액인지 모르겠다.”
“이십년은 아니지. 작년에 광화문에서 봤잖아. 네 마누라랑 아이들도 같이.”
“광화문? 내가 언제?”
그러고 보니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작년 봄 촛불집회 때였다. 이 나라의 정치가 어때야 하는지,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 수입에 대해 국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했는지 확고한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나라의 주인이 권력을 잡은 사람,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이며, 바로 그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음을 현 정권에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집회에 참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쌍둥이 아들들을 다 데려갔다. 카메라 플래시까지 터뜨려가며 가족사진을 찍은 이유는 커가는 아들들에게 우리 모두가 역사의 현장에 섰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군중 한가운데서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언뜻 본 인상으로 눈매와 콧날이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윤석형인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석형이 그렇게 뚱뚱할 리도, 특히 군중들에 섞여 구호를 외치리라고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석형을 알아보았더라도…… 서로 안부를 챙기며 반가워할 만한 우정이 우리 사이에 있었던가는 또다른 문제였다.
“구닥다리 휴대폰에 촛불집회라니, 하는 짓마다 너랑 안 어울린다.”
“어울리는 짓도 한다. 나는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아니, 이혼 당했다. 어울리지?”
그가 순대국을 퍼먹기 시작했다.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음식점 손님들의 시선은 벽에 매달린 텔레비전에 쏠려 있었다. 전직 대통령을 조문하려는 국민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존경받던 추기경이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잘 죽었지 뭐. 이꼴 저꼴 안 보고. 누군들 한번 안 죽나. 그래도 조문객이 저리 많잖아. 생각해보면 안됐어. 저게 다 자기 설움이라니까?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마침 뺨 때려준 거라니까? 칵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옆 테이블에는 낮 술잔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랑 안 어울리는 게 또 있다.”
얼굴에 번질거리는 땀을 식탁휴지로 닦으며 석형이 입을 떼었다.
“나는 장례식에 안 어울린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 있기 싫어서 바깥 벤치에 나가 있다가 외삼촌에게 된통 혼났지.”
“어머님 돌아가셨구나?”
나는 그제야 조심스레 아는 척했다. 그리 친하게 지내지도 않은 듯한데 어찌된 일인지 중학교 때 그의 집에 놀러간 기억이 있었다. 넓은 마당에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서 있고 한쪽에는 큰 연못도 있었다. 연못 가운데로 길이 나 있어 잉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연못가에 그의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우리를 보고도 별 말도 별다른 표정도 없었다. 석형이 외롭다거나 자기 어머니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때로서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의 어머니가 어딘가 남달랐던 것이 확실했다.
“너희 어머님이 연못의 잉어를 내려다보고 계시던 거 생각난다.”
“연못도? 잉어도? 이것 봐! 내 이럴 줄 알았지. 좀팽이 네놈은 기억할 줄 알았어.”
녀석이 얼굴까지 붉히며 큰 소리로 웃는 바람에 다른 손님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뭐가 그리 좋은데?”
녀석은 제 말만 계속했다.
“엄마 장례식이 끝나고 중국으로 되돌아가려는데 연못에 잉어가 있는 거야. 수십마리 중에 겨우 두마리 남았더라고. 어항을 사서 그것들을 담았는데, 비행기에 태워줘야 말이지. 그깟 시멘트 연못 대신 황허에 풀어주고 싶었는데. 하기야 거기 풀어놓았으면 벌써 중국 사람들 뱃속으로 들어갔겠지만. 중국 사람들 잉어 좋아한다. 잉어 아가미가 아직 펄떡거리는데 눈도 깜짝 않고 살점을 집어먹는다.”
나는 석형에게 이번 주말에 황주와 기헌, 윤수와의 모임에 오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절대 그 인간 데려오지 말라’는 황주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석형의 휴대폰에 있던 11개의 전화번호가 어른거렸다. 석형이 자꾸 물어대는 황주와 기헌, 윤수의 전화번호를 넣기만 해도 명부는 14개로 늘어날 수 있을 터였다.
소통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도 역시 제일 큰 화제는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었다. 대단한 논평이나 하듯 전직 대통령과 현 정치에 대한 온갖 소문들을 주고받은 뒤 초점은 자연스레 윤석형에게 맞춰졌다.
“그놈 아직도 버릇 못 고쳤구나. 휴대폰 고칠 데가 너밖에 없나. 중학교 때도 너를 개 부리듯 부리더니.”
황주가 흥분했다. 기헌과 윤수가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들에게 녀석의 휴대폰을 공짜로 고쳐주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이삼일 전에도 찾아와 내가 점심을 샀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석형에 대한 추억들이 우스꽝스레 펼쳐졌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던 둔함. 걸핏하면 운전기사를 시켜 식당 음식을 교실까지 끌어들이던 녀석의 후안무치. 공부건 운동이건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면서 끝없이 부려대던 행짜.
“네가 인마, 워낙 착해서 아무 말도 안하니까 그놈이 너를 짝으로 점찍었잖아.”
별 대꾸를 하지 않는 내 눈치가 보였던지 황주가 내게 소주잔을 넘겼다. 잔을 비우고 황주에게 다시 넘겼다. 담임선생님의 명령으로 1년 내내 지겹게 녀석의 짝을 해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손해 본 것도 없었다. 녀석은 입으로 거들먹거리기만 했지 입만큼 거센 놈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녀석과 짝을 하느라 나까지 담임선생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 폭력학생들에게 덜 시달린 것이 사실이었다.
기헌이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길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는데 검사 결과 체내 중금속 수치가 너무 높아 그대로 입원했다고 했다. 야채주의자에 음식도 최소한의 가공을 고집하던 ‘웰빙’ 식습관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의 주요역할 중 하나가 몸에 쌓이는 중금속을 바깥으로 배출하는 일’이라는 게 약사인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내가 초등학생 때 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신을 잃을 듯한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병원치료를 거부했다. ‘이왕지사 죽을 목숨, 돈 쓸 필요 없다’는 것이 처자식을 두고 먼저 가는 미안함의 표현이었다.
황주는 도우미아줌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황주와 그의 아내는 증권사 사내 커플이었다. 아이를 낳아 도우미아줌마를 두었는데 아이를 볼모로 맡긴 셈이니 아내의 월급을 다 주고도 불평도 한마디 못하고 전전긍긍 속으로만 앓는다고 했다. 나는 또 내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남의 집 도우미를 하며 삼남매의 학비를 댔다. 요즈음이야 자식들도 장성하고 먹고살 걱정은 없지만 엄마는 ‘심심하기도 하니 애보개로 취직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동생의 아이에 이어 쌍둥이 내 아이들을 작년까지 봐주었으니 아이를 돌보는 일만큼은 베테랑인 셈이었다.
윤수는 학교 근처로 이사한 이야기를 했다. 지방대학이기는 하나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전임이 되었으니 그도 이제 앞날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은 셈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고민이나 집안 형편을 늘어놓지 않았다. 대신 나는 티셔츠의 문구,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을 끄집어냈다.
“……마늘 광고인가 했더니 환경단체 구호더라고. 지구온난화 때문에 생물들이 다 죽어가는 중이라는 거야. 지금은 북극곰이 죽지만 머지않아 인간도 죽는다고.”
황주와 기헌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윤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것도 다른 시각이 있어. 사람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거지. 측정한 바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가 심했던 때마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했다는 거야. 그런 면에서 보면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을 백퍼센트 받아들일 수도 없지.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 배출이야 당연히 줄여야겠지만.”
황주와 기헌이 더욱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한국경제를 쥐고 흔드는 대기업의 안정적 사원’으로, 그들이 간혹 인사로 말해주는 ‘워낙 말수 없는 착한 친구’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하고 공고로 진학한 나는 일찌감치 그들과는 길이 달랐다. 한번 갈라진 길이 다시 붙기란 이 사회에서는 기적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이 불편하면서도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층층의 높이와 칸칸의 경계가 엄연한 이 사회에서 행여 미래의 어느 순간 부득이하게 그들에게 매달릴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씁쓸한 계산을 하기 때문일 터였다.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엠피쓰리를 귀에 꽂았다. 중국어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대신 황허에서 헤엄치는 잉어가 떠올랐다. 석형은 집 연못에 있던 그 잉어를 아직도 키운다고 했다.
‘잉어에게 먹이를 주지 않은 것이 내 불찰이기는 했어. 며칠 지나서 한마리가 비스듬히 눕는데 나는 또 그런가보다 했지. 다음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남은 한마리가 죽은 잉어의 살을 뜯어먹고 있더라고. 얼마나 끔찍하던지. 죽은 잉어를 걷어내고 나서 남은 잉어를 본체만체했어. 버리지는 못하고 죽기만 기다린 셈이지. 한달이 가고 두달이 지나는데도 죽지 않더라. 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른 후에 먹이를 주었어. 그때부터 이놈이…… 내 눈치를 보더라고. 그런 거야. 사람이나 동물이나 제 목숨이 걸려야 눈이라도 한번 찡긋하지.’
잉어
“잉어는 영물이다. 옛날얘기에도 있지 않냐. 어부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 ……파평 윤씨 말야, 그 조상이 잉어다. 그래서 잉어를 안 먹는다. 내가 바로 파평 윤씨잖냐. 돌고래나 물개가 똑똑하다고들 하지? 잉어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 머리가 있거든.”
석형과 포장마차에서 만났다가 밤늦게 그의 잉어를 보러 가게 된 이유는 술을 마신 탓도 있었지만 잉어 얘기가 아니면 할 말이 없는 석형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했다.
그의 집은 허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집 같지 않은, 커다란 물류창고가 여섯채나 있는 벌판의 한쪽 구석, 숙직실 용도로 쓴 듯한 낡은 건물이었다. 그의 집 앞에 매단 희미한 백열등보다 창고 앞뒤에 설치된 수은등이 훨씬 크고 환했다. 마당에 깔린 흰 들꽃이 수은 등불에 반짝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집의 자물쇠를 따며 그가 입을 열었다.
“생활비는 사촌형이 죽지 않을 만큼 준다. 이 땅이 원래 내 명의거든. 창고 임대료가 꽤 나오는데 내 몫은 별로 없어. 산소마스크 끼고 있는 우리 아버지 병원비에 이복동생들 생활비까지 이 임대료에서 해결해야 한다나. 한마디로 이 땅을 내게 못 주겠다는 얘기지.”
마루가 꽤 넓었다. 숙직실 용도뿐 아니라 사무실로도 쓰인 모양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석고보드 칸막이, 삼면을 돌아가며 철제 캐비닛과 철제 앵글선반이 놓여 있었다. 맞은편 벽에 낡은 쇠문이 있었다. 그가 또다른 열쇠로 문을 열었다. 컴컴한 방에 희미하게 비치는 것은…… 수조였다. 침대 크기는 될 만한 커다란 수조에서 누렇고 검은 얼룩의 비단잉어 한마리가 너울너울 움직이고 있었다. 수조 위에는 양쪽으로 기다란 형광등, 그리고 수조에 맞춰 커다란 산소주입봉이 세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잉어를 위한 살림살이는 수조만이 아니었다. 수조 속에 든 물풀과 비슷한 모양의 수초무늬 벽지, 방 한구석에 황토와 주먹 크기의 돌들이 쌓여 있어 방 전체가 또 하나의 커다란 수조를 연상시켰다.
“늙었어, 비늘도 떨어지고. 전에는 금빛이 꽤 그럴듯했지.”
석형이 봉지에서 먹이를 꺼내 몇톨 뿌려주었다. 잉어는 급한 것이 없었다. 천천히 입을 뻐끔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먹이를 한톨 주워 먹었을 뿐이었다.
“잘 안 먹네. 어디 아픈 거 아냐?”
잉어가 비쩍 마른 것이 안쓰러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꼬리 부분의 뼈가 약간 뒤틀려 있었다. 입가에 난 수염도 한쪽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아프기는? 성질부리는 거지. 저렇게 느긋한 척해도 속으로는 어지간히 긴장했다. 이 방에 손님을 맞은 게…… 정말 오랜만이거든.”
그러했다. 잉어는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움찔거리며 나를 주시했다. 기분이 묘했다. 튀어나온 두 눈 사이에 콧구멍과 입이 자리한 물고기의 정면을 마주보는 것은 나로서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몇마리 더 키우지 그래. 수조도 큰데.”
“……누구나 혼자 살아.”
나는 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사는 석형에게 잉어는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남은 유일한 부귀의 증거? 그와 함께 숨쉬는 단 하나의 가족?
“기대할 것 없어. 너랑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니까. ……커피 마실래?”
석형의 말을 곱씹어보니 앞부분의 말은 나한테가 아니라 잉어에게 한 것이었다. 석형이 가스레인지에 양은냄비를 올려놓았다. 머그잔 두개에 일회용 커피믹스를 부은 그는 익숙하게 양은냄비의 물을 따랐다. 커피를 마신 후 그가 수조 곁으로 다가섰다.
“지금부터 잉어 쇼를 보여드리지. 잉어! 올라와.”
말이라도 알아들은 것처럼 잉어가 수조 위쪽으로 올라왔다. 석형이 또 말했다.
“내려가.”
잉어가 바닥 쪽으로 내려갔다. 희한했다. 웃음이 나왔다.
“속임수지? 잉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네가 구령을 맞추는 거지?”
석형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뒤로. 뒤로 가.”
잉어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서는가 싶더니 조금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앞으로 와. 잉어가 또 앞으로 나왔다. 뒤로. 앞으로. 앞으로. 나는 감탄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잉어가 정확히 석형의 말에 따르는 중이었다.
“잉어, 사, 랑, 해.”
석형의 말에 잉어가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사, 랑, 해. 보통의 호흡과는 달랐다. 입을 벌린 상태에서 두번은 크게, 한번은 작게 입을 오므렸다. 사, 랑, 해. 누가 보아도 그것은 ‘사랑해’의 음절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잉어가 사랑한다고 말하잖아.”
내 감탄에 석형이 홱 돌아서며 코웃음을 쳤다.
“사랑은 무슨! 잉어 주제에 사랑이 뭔지나 아냐?”
석형은 한쪽 구석에 놓인 회전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의자가 한참동안 삐걱거렸다.
“저런 놈이 입을 뻐끔거리는 이유는 뻔하지. 먹을 것을 달라든지 아니면 살려달라든지. 두달을 굶긴 다음 저놈을 봤을 때 미친 듯이 내게 뻐끔거렸거든. 그걸 내가 ‘사랑해’로 훈련시켰지. 내가 ‘사랑해’라고 말한 다음 나처럼 입을 뻐끔거릴 때만 먹이를 줬거든. 먹이를 가지고 장난치면 누구나 그 정도는 따라해. 짐승이고 사람이고 제일 절박한 건 제 목숨이니까.”
“시킨다고 하는 게 어디냐? 잉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니 이건 기적이다.”
“못됐어. 조금만 틈을 보이면 독하게 성깔을 부리지. ……확실하게 통제하는 게 내 일이야. 그렇지 않냐? 산다는 게 원래, 누군가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속박받는 일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수조 속의 잉어가 대견하여 어린아이를 어르듯 몇번이고 사, 랑, 해, 사, 랑, 해,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때마다 잉어도 내게 말했다. 사, 랑, 해. 사, 랑, 해.
행복
아랫집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와 한바탕 화를 내고, 제 엄마에게 회초리까지 맞은 아이들은 입을 비죽이며 제 방에 틀어박혔다. 마침 휴일이었다. 나는 석형에게 전화했다. 마음대로 소리치고 발을 구르고 싶은 아이들에게 석형의 집과 벌판이 제격일 터였다.
-와서 나쁠 것은 없지. 필요하다면 쓰여드리지.
버릇처럼 그가 이기죽거렸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상원과 상민은 석형의 집 앞 벌판에서 떼굴떼굴 구르며 신나했다. 석형 또한 즐거워했다. 벌판 한쪽에 쌓아놓은 모랫더미를 가리키며 미끄럼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석형의 방에 들어가 잉어의 묘기를 본 아이들은 수조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잉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번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빠르고 활기차고 씩씩했다. 아이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쫓아가 받아먹는 잉어를 보며 석형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얼빠진 놈, 발정난 개가 따로 없군.”
어머나 큰 부자셨구나. 잉어가 옛날 석형의 집 연못에서 크던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내는 대단한 사람을 만났다는 듯 석형을 보고 또 보았다.
잠든 아이들을 힘겹게 들쳐업고 집 계단을 오를 때까지도 아내는 석형을 끝없이 부러워했다. 짜증이 났다.
“다 옛날 얘기야. 봤잖아, 집 한칸 없이 창고에서 지내는 거.”
아내가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한때라도 잘산 게 어디야? 평생 살면서 껌처럼 씹을 추억도 있고.”
그건 그랬다. 나는 이십여년 전의 88올림픽을 떠올렸다. 석형이 다이빙경기 입장권을 두장 가져와 둘이 함께 경기장에 간 적이 있었다. 국제규격의 커다란 수영장, 높은 다이빙대, 세계 최고의 선수들…… 그들이 한명씩 다이빙대에 오를 때마다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평생을 두고 ‘다이빙’이라 외칠 참이었다. 문제는 녀석이 경기 도중에 벌떡 일어난 데 있었다. ‘재미없어. 그만 가자니까!’ 그때처럼 녀석이 미운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녀석의 뒤를 따르면서 나는 스탠드 밑으로 녀석을 떨어뜨려 뒤통수라도 깨뜨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다음날, 다이빙의 금메달 후보 선수가 다이빙대에 뒤통수를 부딪쳐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가 경기장을 벗어나고 채 몇분 되지 않아 벌어진 사고였다. 석형에 대한 감정이 그 선수에게 전해진 것일까 나는 영 뒤숭숭했다. ‘경기가 딱 졸리더라니까? 그런 걸 뭐 하러 보고 앉았냐?’ 석형이 또 야죽거렸다. 중학생이던 나는 한동안 곱씹었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하고 싶은 일들을 언제나 할 수 있는 큰 부자들은 살아가면서 무엇을 재미있다고, 행복하다고 느낄까.
“그렇다고 내가 꼭 불행하다는 건 아냐. 말썽들은 피우지만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으니까. 석형씨는 혼자라 외롭겠어.”
곯아떨어진 아이들에게 이불을 다독여주며 아내가 내 속을 들여다본 듯 중얼거렸다.
노출
시위를 하던 계약직 사원들이 사장 딸의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알아내 그리로 몰려간 사건이 있었다. 결혼식은 근근이 치러졌지만 사장 이하 여러 임원들이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경찰조사까지 받게 된, 내가 아는 계약직 사원 두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하루종일 고객을 대하는 일은 또 왜 이리 고된지 답답하고 우울했다.
업무종료 후 지점 차원에서 회식 겸 대책회의를 한다는데 나는 어렵사리 불참의사를 밝혔다. 잉어, 석형의 잉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석형의 전화가 온 것이 사흘 전이었다. 수조에서 물이 새어 수족관 사람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희한한 재주’의 작가와 아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내심 놀라웠다. 석형의 자존심 강한 성격으로 보아 그의 현재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런 식의 노출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이 거기서 거기지. 출연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저놈이 좋아하더라고. 그럼 됐지.
석형은 의외로 담담했다.
“와, 잉어다!”
잉어가 화면에 잡히는 순간 우리 집에서는 마치 식구 중 한명이 출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나는 이내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찢어질 듯 품이 죄는 신사복에 나비넥타이를 졸라맨 석형의 몸피와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비해 잉어는 훌륭했다. 누런 몸체에 검은 얼룩무늬가 환한 조명을 받으니 더욱 당당하고 위엄있어 보였다.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잉어가 석형의 명령을 수행할 때마다 무대를 둘러싸고 앉은 방청객들이 크고작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아빠, ‘사랑해’는 왜 안하지?”
아이들이 물었다. 나 역시 알 수 없었다. 석형은 잉어에게 ‘사랑해’를 시키지 않았다.
-우리 집 연못에서 키우던 거예요. 물론 수십마리 있었죠. 이것 하나 키웠겠어요?
-우와, 그러셨군요. 어쩐지 부자 티가 나더라고요. 잉어에 황금칠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좀 모자라셨나 봐요? 검은 페인트로 때운 걸 보면.
개그맨 출신의 사회자가 방청객들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방청객들이 웃기 시작했다. 석형의 눈은 오로지 잉어의 움직임에 꽂혀 있었다.
잠자리에 눕고도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꺼림칙한 기분은 단지 회사 회식에 빠졌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잉어가 석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잉어의 기분을 지나치게 살피는 석형의 모습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 못하는 애완동물이니 주인 쪽에서 동물의 비위를 맞출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출연시간 내내 석형이 그 자리를 너무나 힘들어했음은 웬만한 시청자라면 어렵지 않게 느꼈을 터였다. 잉어를 위해 내키지 않는 텔레비전 출연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 이전에, 잉어는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석형에게 표현할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랑해’를 명령하지 않은 것도 그러했다. 석형이 긴장하여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어려운 기술이라 잉어가 힘들까봐? 그것도 아니면…… 잉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기가 쑥스러워서? 기분이 영 찝찝했다.
철학잉어
회사로 몇번 전화를 하던 아내는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을 떨어댔다. 석형의 잉어가 두번째로 텔레비전에 나온 날이었다. ‘희한한 재주’는 그 주의 일등으로 뽑힌 팀이 월말에 다시 나와 다른 팀과 재주를 겨루는 형식이었다.
“이구아나보다도 잉어가, 아니 석형씨가…… 석형씨 어떡하면 좋아.”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조련받은 이구아나와 잉어의 대결이었다.
-올라가.
조련사의 명령에 이구아나가 비스듬히 걸쳐놓은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가.
이구아나가 또 어슬렁거리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안녕’에는 꼬리를 흔들었고 ‘윙크’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눈을 감았다 떴다. 방청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구아나가 재롱을 피우는 동안 수조 속의 잉어는 너울너울 헤엄치고 있을 뿐이었다.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알기로 잉어에게는 ‘사랑해’가 있을 뿐 ‘안녕’도 ‘윙크’도 없었다. 이윽고 잉어의 차례였다. 석형이 첫번째로 명령한 것은 ‘사랑해’였다.
-사, 랑, 해. 사, 랑, 해.
바로 이런 것을 염려했었을까. 잉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가미로 호흡을 할 뿐 잉어는 석형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올라가.
마찬가지였다. 잉어는 꼼짝하지 않았다. 올라가. 내려가. 뒤로. 앞으로. 석형이 수없이 말했으나 헛일이었다.
-혹시 자는 것 아닐까요?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으니 잠을 자도 우리가 알아챌 수……
사회자의 말을 석형이 신경질적으로 잘랐다.
-다른 놈과 자기를 비교하는 게 기분 나쁜 거죠. 사람도 그렇잖습니까?
-아아, 그런 거였어요? 그럼…… 화내지 말라고 얘기 좀 해주시죠?
사회자가 두 손을 모아 과장되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잉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방청석을 향해 입을 뻐끔거리던 잉어는 가슴지느러미를 흔들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양쪽 가슴지느러미를 번갈아 흔드는 모습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몸짓이었다. 석형이 말했다.
-금방 만들었네요. ‘안녕’이라는 말에 제깐으로는 지느러미를 흔들기로 결정했어요.
-잉어가 ‘안녕’동작을 만들었다고요? 훈련받지도 않고? 그렇다면 ‘윙크’는요?
그때 잉어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수조 바닥에 누운 잉어는 몸통을 둥그렇게 구부렸다가 펴는 동작을 되풀이했다. 희한했다. 그것은 마치 하하하,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과도 같았다.
-웬만치 해! 사람들이 쳐다봐주는 게 그렇게 좋으냐? 밸도 없는 싸구려 같으니.
사람들이 웃기 시작한 것은 잉어 때문이 아니라 과도하게 화를 내는 석형 때문이었다.
-잉어보다도 주인이신 윤석형씨가 더 재미있으시네요. 잉어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시는군요. 그런데 잉어의 조금 전 동작들은 어쩌다 그렇게 움직인 것 아닐까요? ‘안녕’이나 ‘윙크’라는 말을 알아들었다는 증거가 없어서요.
석형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수조의 잉어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챈 사회자가 몸을 돌려 이구아나의 조련사에게 말했다.
-조련사님께 부탁드려볼까요? 잉어에게 명령해서 ‘안녕’이나 ‘윙크’에 반응하는지, 조금 전의 동작과 똑같이 움직인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구아나의 조련사가 수조 곁으로 다가섰다. 그가 잉어를 똑바로 바라보며 ‘안녕. 안녕’이라고 말했다. 잉어가 양쪽 가슴지느러미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머나! 알아듣네! 방청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다음 순간이었다. 잉어가 갑자기 바닥에 누워버렸다.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윙크. 윙크.’ 조련사의 말에 잉어는 다시 일어나 한바탕 가슴지느러미를 흔들었다. 그리고 또 바닥에 누워 몸통을 구부렸다. ‘안녕’의 동작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어떻게 보셨나요. 잉어가 말을 알아듣는 것 같으십니까?
잉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원을 그리며 수조를 휘젓고 다니다가 어느새 기절한 듯 바닥에 누워 뻐끔거리는 시늉을 반복했다. 석형이 벌컥 화를 냈다.
-뭐 하는 거야 대체! 너, 지금 나를 물먹이려는 거지? 나를 골탕먹이려고 일부러…… 그런다고 내가 까딱이나 할 것 같아!
석형의 격한 고함에 방청객들이 배를 잡았다. 사회자도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대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들의 볼거리는 더이상 잉어가 아니었다. 씩씩거리는 석형의 행동거지에 방청객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 그만 하면 오락프로그램으로서는 충분히 성공한 셈이었다. 이구아나의 조련사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잉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착하지 잉어야, 사랑해. 사랑해.
잉어가 조련사에게 눈을 맞추었다. 석형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입 벌리지 마!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잉어가 조련사를 향해 차분히 입을 벌렸다. 크게 두번, 작게 한번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사, 랑, 해. 사, 랑, 해. 그것은 ‘사랑해’였다. 사회자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이런, 잉어가 변심했네요. 윤석형씨가 아니라 조련사님을 사랑하나봐요.
-알지 못하면 가만히 계시라니까! 저놈이 지금 내 약을 올리려고 일부러……
화면은 더이상 웃어대는 방청객들을 비추지 않았다. 석형도 비추지 않았다. 미친 듯이 수조를 도는 잉어를 한동안 비추다가 나무토막에 달라붙어 눈을 끔벅이는 이구아나를 다시 비추었다. 사람의 목소리 대신 신나는 만화영화 주제음악이 흘러나왔다. 미성숙한 출연자의 인격을 방송국 측에서 점잖게 감싸준다는, 그야말로 속이 뻔히 보이는 편집이었다.
잠시 후 사회자가 화면에 다시 나타났다.
-여러분, 이구아나에게 아직 보여주지 않은 특별한 재주가 있답니다. 보실까요?
조련사가 가느다란 막대기를 이구아나의 입에 대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코리아. 코리아.’ 이구아나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코…르…, 코…르.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들으셨습니까, 여러분? 말하는 이구아나입니다!
사회자의 주도에 방청객들이 손뼉을 쳐댔다.
-내 잉어도 말할 수 있어요!
갑자기 끼어든 석형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조금 전에 잉어가 말하는 것 보셨잖아요? ‘사랑해’ 말하는 것.
사회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꼬았다.
-이구아나처럼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입으로 뻥끗거리기는 했지요. 하기야 물속의 잉어가 이 정도면……
-내 잉어는 훈련된 말은 하지 않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사회자가 석형을 곁눈으로 흘깃 보았다. 이어 관중들을 둘러보며 호응을 끌어내었다.
-여러분, 잉어의 주인이신 윤석형씨는 잉어와 말을 나눈다고 합니다. 잉어는 대체 주인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
사회자가 짓궂을 정도로 석형을 노려보았다. 어떻게든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태도였다.
-이, 이를테면…… 사는 게 뭔가, 왜 살아야 하나 뭐 그런.
방청객의 웃음보가 새로 터진 것은 물론이었다. 사회자가 다시 물었다.
-윤석형씨,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갇혀 있는 거죠.
-갇혀요? 어디에?
-이 세상에, 가족에, 또 자신에게.
-철학을 하시는군요. 그래서 잉어도 철학적인 고민을, 잉어는 지금 어디에 갇혀 있나요.
석형이 수조 속의 잉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물이죠.
-물……이 아니라 혹시 그물은 아닐까요?
사회자가 수조 위에 쳐진 그물을 손으로 버쩍 들어올렸다. 석형이 버럭 화를 내었다.
-그물에 갇히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 잉어는 물에 갇혀 있다고요! 물을 싫어해요.
사회자의 얼굴에도 더이상 웃음기가 없었다. 그가 석형에게 물었다.
-혹시 이 거친 그물을 이용해서 잉어를 압박하신 것은 아닌가요?
어머나 그물! 잉어를 저렇게 혹독하게, 세상에. 방청객들의 웃음은 어느새 한탄과 비난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라니까! 이 그물이, 그물은, 저놈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려고, 그물로……
진행자는 노련했다. 석형의 말을 잘라버렸다.
-설마 그러실 리야 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잉어를 사랑하시는 분인데요. 자 여러분, 지금까지 훌륭한 묘기를 보여준 이구아나와 잉어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마무리
-석형이 텔레비전에 나온 거 진짜야? 두번이나 나왔다며? 야, 걔가 잉어 조련사가 되다니.
-집안에서도 난리가 났단다. 집안망신 시켰다고. 하필이면 그런 프로에.
황주와 기헌, 윤수의 전화가 연이어 걸려왔다. 기억도 나지 않는 또다른 중학 동창도 전화했다. 석형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며 이십여년 동안 품어온 석형의 흉을 늘어놓았다. 온세상 사람들이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석형에게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더욱 애가 탔다. 열번 넘게 전화와 메씨지를 남긴 후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야, 너 미쳤냐?
“아, 아니 그냥. 저, 점심이나 내려고. 오랜만이잖아.”
신경질적인 그의 말투에 나는 말까지 더듬었다.
-……너도 내가 잉어를 그물 따위로 협박했다고 생각하냐?
“그럴 리가 있니. 네가 얼마나 잉어를 아끼는지 내가 아는데.”
내가 얼른 말을 이었다.
“잉어한테 너무 매달리지 마라. 물고기잖아. 그야말로 매운탕 일인분일 뿐이잖아.”
-……죽는 게 싫어. 그뿐이야.
전화가 끊겼다. 누가 죽는 게 싫단 말인가. 잉어? 석형? 전화를 다시 걸 수는 없었다.
석형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그때부터 또 한달, 그에게 신경을 쓰던 나도 지쳐 될 대로 되라 포기했을 즈음이었다.
-내가 요구했어. 텔레비전에 나가야겠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창피를 당하고.”
-오늘 아침 열한시에 방송국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어. 마무리를 지어야지.
마무리? 불안했다. 더럭 겁이 났다. 동료인 서팀장에게 일을 부탁하고 방송국을 향해 뛰었다. 제발, 제발. 무언지 몰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말기를. 석형도 잉어도 무사히, 그저 예전처럼만 평온하게 살아가기를.
‘희한한 재주’ 담당자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방송국 뒤쪽 공터였다. 나지막한 철책 밖으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보도블록, 그 바깥으로 차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에어컨 실외기와 환기통이 이리저리 설치된 정돈되지 못한 공간 한가운데 수조가 놓여 있었다. 물이 새 납땜질을 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석형의 수조였다. 의외로 사람이 적었다. 자신을 보조피디라고 소개하는 텁수룩한 수염의 남자, 그리고 큼직한 어깨카메라를 멘 촬영기사 한 사람이 전부였다.
“사람이 적으면 어때? 올 사람만 오면 됐지.”
내가 올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석형이 말했다. 이윽고 그가 잉어에게 명령했다. 올라가. 내려가. 사랑해. 잉어는 꼼짝하지 않았다. 잠을 자듯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요전의 그 잉어 맞아요? 왜 이렇게 꼼짝 않지?”
보조피디가 귀찮은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석형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잉어…… 그래, 이제 끝을 내자.”
잉어에게 연설문이라도 낭독하듯 크게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의 시선이 가 있는 곳은 잉어가 아니라 푸른 하늘이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 거야. 네가 툭하면 물 밖으로 뛰쳐나가 하는 수 없이 그물을 쳤던 거. 내가 외출이라도 하는 동안 튀어나오면 다시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에 대한 반항으로 더욱 튀어올랐던 것, 그물이 해지도록 튀고 또 튀어오른 것, 죽을 자유도 없다며 매일 매시간 나에게 화냈던 것, 그래, 다 모른 척했어. 지겨운 세월이었어. 네까짓 놈 눈치 보느라, 네 그 독한 성질머리랑 싸우느라 나도 힘들었어. 수조에 혼자 갇혀 사는 것이 싫었겠지.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너 같은 행동은 안해. 나는 적어도, 너를 두고 혼자 떠나는 짓은 안해.”
석형이 그물을 벗겨 바닥에 늘어뜨렸다.
“너는, 네가 멋있는 줄 알지? 네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내가 너를 놓지 못하는 줄 알지? 웃겨. 네 꼴을 봐. 비늘도 떨어지고, 수염도 망가지고, 게다가 툭하면 수조에서 튀어나와 꼬리까지 비뚤어졌지. 다른 사람 같으면 네까짓 것 벌써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어. 자, 가라. 너는 나를 기어코 꺾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네가 졌어. 여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어. 네가 나로부터 벗어나려면, 네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도 정확히 알아듣는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해야 해. 봐, 코너에 몰린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이 교활한 놈아.”
그의 말소리는 거의 고함이었다. 방송국 밖의 보도를 걷던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자, 떠나! 이왕이면 높이 튀어올라! 그리고 확실히 죽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또 나랑 살아야 해. 한가지만큼은 알아둬. 죽으면 끝이야. 다시는 못 본다고! 아무리 후회해도 끝이라고! 천하에 둘도 없는 이 독한…… 놈아!”
석형의 목소리가 마구 흔들렸지만 그는 울거나 주저앉지는 않았다. 똑바로 선 채로 주먹을 쥐고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기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잉어의 행동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석형이 눈을 뜰 때까지 잉어는 수조 안에서 그저 석형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석형이 눈을 뜨고 잉어를 바라보자 잉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그리고…… 입을 뻥긋거리기 시작했다. 두번은 크게 한번은 작게. 사, 랑, 해. 사, 랑, 해. 사, 랑, 해. 그리고 가슴지느러미를 끝없이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안녕. 안녕. 안녕. 나는 그 순간 잉어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눈꺼풀이 없는 잉어가 눈꺼풀을 껌벅이며 물 속에서 진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잉어가 수조의 바닥을 따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점점 빠르게, 회오리바람처럼, 그리고 한순간 높이 솟아올랐다. 5, 6미터. 아니 10미터. 영원처럼 오래 떠 있었다. 그러고는 떨어져 내렸다. 퍽, 그리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수조 모서리에 정확히 부딪친 잉어는 그가 올랐던 높이만큼이나 멀리 옆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보도블록 위에서 퍼덕이던 잉어는 이윽고 움직이지 않았다. 걸음을 뗀 사람은 석형 혼자뿐이었다. 그가 잉어를 두 손으로 받쳐 안았다.
삶
또다른 전직 대통령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참 뒤숭숭한 세월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허상인지 몰랐다. 권력을 잡은 사람, 돈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이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쓰기만 하면 사회가, 국민들의 생활이 훨씬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단지 믿고 싶은 열망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마른오징어 짓씹듯 씹어대어도 돌처럼 쇠처럼 강하다고 믿었던 그들도 다만 인간일 뿐이었다. 늙으면 병이 나고 결국은 죽는, 그리고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으면 아픔을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약하디약한 인간.
알지 못하는 전화번호가 떴다. 방송국의 보조피디였다. 석형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내가 방송국 로비에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씨디를 한장 보내드리려고요. 귀한 잉어를 우리 때문에 잃은 것 같아서 저희도 마음이 무겁네요. 방송용으로 쓸까 몇번 회의를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수조는 어떻게 할까요? 가져가시든지 아니면 저희가 임의로 처분하고요.
씨디에는 ‘철학잉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방송국 공터에서 벌어진 잉어의 마지막 순간들이었다. 수조 안에서 잉어가 석형을 바라보는 모습, ‘사, 랑, 해’ 뻐끔거리는, 가슴지느러미로 ‘안녕’ 인사하는 모습. 수조 안을 뱅글뱅글 돌다가 한순간에 하늘로 솟구치는, 그리고 정확히 수조 모서리로 떨어져내려 옆으로 튕겨나가는 순간들. 석형의 모습은 검은 씰루엣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보도블록에 떨어진 잉어를 두 손으로 받쳐 올리는 그의 참담한 슬픔을 나는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계약직 사원들의 시위는 기한도 없이 계속되었다. 쌍둥이 중 윗놈인 상원이 소파에서 뛰어내리다 팔을 부러뜨려 병원 응급실로 업고 뛰는 일이 있었다. 회사의 높은 분들은 소비자보호원으로부터 ‘써비스 불량 경고’를 받고 또 한번 경기를 일으켰다. 버스를 탈 때마다 나는 중국어 방송을 들었다. 중국에 가게 된다면 석형과 함께 가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옆에 앉은 서팀장은 죽어라죽어라 족대기는 이 뭣 같은 세상에 더이상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자고 했다. 나는 또 석형을 생각했다. 어딘가에 혼자 처박혔을 석형이 교회나 절에라도 찾아가 마음의 안정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한한 재주’ 결선에는 포크레인 기사와 오토바이 타는 사내가 맞붙었다. 장난삼아 시작했다는 포크레인 기사는 굴착삽으로 나무판자에 못을 박고, 촛불을 옮기고, 밧줄로 어설프나마 뜨개질을 하는 묘기를 보였다. 오토바이 사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오토바이의 쿠션을 올리고 타는 맛이 괜찮아 점점 올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7미터 높이에서 아슬아슬 서커스를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온종일 포크레인과 오토바이를 잡고 묘기에 골몰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부러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거기서 삶의 보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삶일 터였다.
꿈을 꾸었다. 잉어 한마리가 유유히 황허를 헤엄치는 꿈이었다. 추석을 쇠러 집에 온 엄마에게 할말도 없는 김에 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환히 웃었다.
“상원에미 임신했니? 또 아들이로구나. 아들 셋이면 어떠냐. 저 먹고 살 만큼은 다 갖고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