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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21세기에 ‘동아시아 공동체’가 갖는 의미

 

 

사까모또 요시까즈 坂本義和

토오꾜오대 명예교수.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이자 평화이론가로, 1970년대부터 일본 전쟁책임과 과거사 청산, 미일안보조약 개정, 대북관계 개선 등에 대해 발언과 연구를 해왔다. 저서로 『地球時代の國際政治』 『地球時代に生きる日本』 『相對化の時代』 등이 있다.

 

*이 글은 2009년 9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서남 이양구 회장 20주기 추모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의 재발견’의 기조발표문 「21世紀に‘東アジア共同體’ガもつ意味はなにか」를 본지의 요청에 따라 필자가 수정 보완하고 덧글을 붙인 것이다. 원고 게재를 수락해준 필자와 서남재단에 감사드린다-편집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21세기’라고 부르는 데는 적어도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더이상‘20세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 다시 말해‘세계전쟁’의 시대가 끝나고‘미국의 세기’혹은‘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불리던 일극(一極)지배도 막을 내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세기의 전환이다. 둘째로, 그렇다면‘21세기’란 어떤 시대인가. 전쟁이 국지화됨에 따라 세계는‘전쟁지역’과‘평화지역’으로 분리된다. 국한된 내전은‘평화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방치된 채 망각되기 일쑤이고, 그곳에서 흘러나온 난민들은 각지에서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다. 반면 원래는‘극소전쟁’(micro-war)인 테러리즘이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연결되면서 최악의 사태로 번질 위험이 세계 각지에, 언뜻‘평화지역’으로 보이는 사회를 포함하여 잠재해 있다. 이러한 사태를 맞아 이미‘일극지배’가 아닌 다각적(multilateral) 국제관계에 입각한‘다극화’체제가 나타나고 있으나, 그것이 국제협조를 강화해갈지 아니면 세계의 무질서(anarchy)화 경향이 재현될지, 21세기는 불투명한 새로운 도전과 더불어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21세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도대체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갈까를 생각해야 하는, 당면 문제에 대해서도‘세기’즉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의 시야를 갖고 대응해야 하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레토릭으로서가 아닌‘21세기’가 갖는 의미이다.

 

21세기의 도전

이같이 21세기를 생각할 때 한가지 분명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글로벌화’라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인 동력이다.‘글로벌화’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으며,‘반(反)글로벌리즘’의 움직임도 생활세계의 많은 차원에서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반글로벌리즘’이나‘로컬리즘’자체가 글로벌한 정보네트워크와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화의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글로벌한 관계와 영향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경향을, 좋든 싫든 촉진하든 저항하든지에 관계없이 강화해가고 있음은 확실한 듯하다.

문제는 그것을 비인간적인 글로벌화(dehumanized globalization)가 아니라 인간성을 제고하는 글로벌화(humanized globalization)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이다.

제1의 조건은 평화의 글로벌화이다.‘평화’라 하면, 보통은 정온(靜穩) 또는 안온(安穩)한 상태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도 썼듯이,‘평화’란 실은 무서운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예언자 무함마드도 석가도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지만, 그것은 그때까지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유혈이 반복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남겨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평화’의 배후에는 산더미 같은 시체의 무수한 묘비가 서 있는 것이다.‘평화’란 이 비참한 역사를 가진 세계를 인간성 가득한 세계(humane world)로 다시 만들어가는 싸움의 과정과 다름없다.

제2의 조건은 모든 인간이 기아나 빈곤에서 해방되어 격차 없는 공정한 자원배분을 달성하는 것이다. 절대적·상대적 빈곤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인간은 〔연약한〕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빠스깔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인간은 동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동물이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동물이다.’이는 근본적으로 공정과 정의 실현의 추구를 말한 것이다.

제3의 조건은 20세기에 문제의식이 생겨났지만 그 해결은 21세기로 넘겨진, 자연과의 환경친화적(ecological) 공생을 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환경친화적 공생이라는 이 과제가 인간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연환경의 지배가 불가결하며 또한 당연하다는 사상이 자유주의나 맑스주의 모두의 전제였다. 환경과 공생할 필요성은 자연이 전지구적으로 인간에게 저항하고 복수함으로써 처음으로 의식화된 것이다. 따라서 환경과의 공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근대적 가치로서 자명하게 여겨온 인간의‘자유’, 경제의‘성장·발전’이라는 관념을 근본부터 재고하고 생활양식을 변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제4의 조건은 타자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사상, 종교, 습속, 편견 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존엄한 주체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행위,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휴머니티’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문화적인 다양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존엄한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 생활방식의 다양성을 상호 존중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나는 21세기 글로벌한 도전에의 대응에 관해 언급했다. 그것이 이 회의의 주제인‘21세기 동아시아의 탐구와 창조’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아래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조건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이념이나 정책제언은 지금까지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중·일을 축으로 한‘동북아시아’의 협력조직과, ASEAN으로 대표되는‘동남아시아’의 지역조직화를 연결한 구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 한·중·일을 주축으로 하는‘동북아시아’의 협조에 역점을 두는 생각은, 그 자체로는 매우 건설적인 구상이지만, 의식적으로 혹은 사실상 북한의 참가를 뒤로 미룸으로써 현실에서는 종종 북한을 포위하는 체제를 만드는 기능이나 목적을 갖기 십상이다.

여기서 나는 역으로 북한문제를 중심에 두고 이를 어떻게 해결함으로써 21세기 동아시아를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반도의 남북분단은 20세기의 냉전이 21세기까지 이어진 유일한 사례이다. 미·소의‘차가운 전쟁’이자, 존 개디스(John Gaddis) 같은 이가 초강국 중심의 시점에서‘긴 평화’(long peace)라고 했던 대립이 이 땅에서는 피투성이 전투와 동족상잔에 의해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런만큼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곤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북한의 핵무장이다. 이는 분단 독일에도 분단 베트남에도 없었던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를 둘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핵 공동체

첫째는, 핵무기 그 자체의 반(反)인간성이다.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2발의 원자폭탄이 일본제국 붕괴의 결정타 중 하나가 되었고, 한반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환성을 올린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2발의 폭탄으로 그 순간 약 20만명이 죽고, 그후의 방사능 피해로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에 내몰린 현실은, 단순히 일본제국주의의 종말뿐 아니라 세계 인류의 종말을 예시하는 무시무시한‘핵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당시 희생자 중 압도적인 수가 이미 병력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던 일본 군인이 아니라 여성, 어린이, 노인 같은 비전투원이었다는 점이다. 식민지에서 연행되어 온 조선 노동자, 즉 식민지지배의 희생자도 수없이 죽었으며, 더구나 두 도시에 영국과 미국의 포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전은 수행되었다. 이 사건은 핵무기가 이미 일국의 국민을 넘어서 전인류를 살육할 수 있는 힘을 갖기에 이르렀다는 전조(前兆)였다.

일본의 유까와 히데끼(湯川秀樹)가 이를‘절대악’이라고 불렀고, 버트런드 러쎌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핵전쟁의 절대적 방지를 호소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이‘핵무기 없는 세계’를 목표로 한다고 선언한 것도, 핵무기의 악마적 파괴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든 어느 나라든 관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는 데 절대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하며, 그 점에서 적어도 한·일 양국 국민이 일치하여 협력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에‘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제1의 시금석이다.

 

부전(不戰) 공동체

그러나 핵보유국들은 하나같이 핵무기는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억지(抑止)’를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둘째 문제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북한도 핵보유는‘억지’즉 전쟁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한쪽이 전쟁‘억지’를 위한 핵보유를 정당화하면 다른쪽도 똑같은 논리를 들고 나온다. 이처럼‘억지’전략은 핵무기의 확산을‘정당화’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한국과 일본 정부는‘전쟁억지를 위한 핵우산’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하고 폐지해야 하는 것은 핵무기 그 자체보다‘전쟁’이다. 우리가 전쟁을 방지할 수 있으면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은 사라지고 무기고에 보존되기만 할 것이다. 실제로 영국은 160발, 프랑스는 30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나, 지난 시절의 적국인 독일 국민 중에서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영국의 핵무기가 냉전시대처럼‘소련’즉 지금에서는 러시아에 대한‘전쟁억지력’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도 현재는 불확실하다. 2006년 영국은 핵무기를 적재한 트라이던트 잠수함이 노후하자 새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후속함을 만들지 여부를 의회에서 진지하게 논의했는데, 이는 틀림없이 러시아 등과의 전쟁 가능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극소화하여 제로로 만들고, 또 북한이 전쟁 가능성은 없다고 믿을 수 있는 정치상황을 조성하는 데 온힘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동북아시아 공동체’건설의 첫걸음이다.‘부전 공동체’(security community)의 형성이 선행되지 않으면‘동북아시아 공동체’같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의 이니셔티브

그러나 현실적으로 반세기 동안 북한은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바탕으로 동맹국 한국과 일본에 군사기지를 세우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체제에 의해‘봉쇄’되어왔으며, 이 비대칭적인 열세에서 조금이나마 탈피하여 공격받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길로서 핵무장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그 목적은 미국이나 한·일의 위협에 맞서‘국가의 안전보장’과‘체제의 안전보장’을 좀더 확실하게 하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측의 전쟁 공포를 가라앉히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비대칭적인 우위에 선 미국과 한·일이 먼저 긴장완화의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대개 비대칭적인 사회관계에서 약자는 굴종하거나 교활하고 불법적인 수단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으며, 관계개선의 이니셔티브는 강자가 먼저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미국은‘먼저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라, 그러면 휴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의 격상 등을 진전시켜 궁극적으로는 북미관계 정상화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듯하나, 이는 우선순위가 거꾸로 된 것이다. 먼저 미국이 북미관계 정상화나 평화협정 체결을 보장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용이하게 하고, 상호 군축을 진행하는 식의 길을 택해야 한다. 또 전쟁을 상정하여 연중행사처럼 실시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조속히 축소해야 한다.

그리고 한·일 양국은 미국이 이러한 정책을 펴도록 노력해야 하며, 북한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공동으로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노력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두 나라에‘동북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의지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제2의 시금석이다.

 

체제개혁의 이니셔티브

그럼으로써 북한의 국가적 안전보장은 좀더 확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북한의 현재 체제의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체제의 안전보장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이래의‘유지하기 위해 개혁한다’는 지혜, 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혁을 거듭한다는, 정권 지도자의 자기개혁의 지혜 없이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그러한 개혁을 촉진하고 조성하기 위해서, 또한 한국과 일본 자신의 개혁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도 있다. 20세기에 경제발전의 지도원리로 생각되던 자유시장경제 원리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모두 파탄난 것에서 시작한 21세기에는 어떠한 대안을 창출해갈 것인가? 먼저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서 새로운 구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여기서 세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것은 다음 두가지다.

우선, 한·일 각각이 사회경제적인 격차를 최소화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공산주의’같은 기계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존 롤스(John Rawls)의‘차등의 원리’(difference principle)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완전 제거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거기서 생겨나는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가능한 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일 양국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현재 실업과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의료·노인 부양·교육비 등의 분야에서의 약자 보호라는 절실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 물론 이것들은 각국의 과제이며 사회에 따라 사정이나 조건이 다르지만 점점 일국 단위로 대처할 수 없는 문제가 늘어나는 만큼 한·일이 협력하여 격차 없는 사회의 구상을 만들어내는 것은‘동북아시아 공동체’의 창조와 결속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어느 나라든 통상·통신 등으로써 다른 나라의 경험이나 제도를 직간접적으로 참고하고 도입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왔으므로(예컨대 미국모델이나 일본모델의 실패 이후 현재는 북유럽형이 주목받고 있다), 한·일이 협력하여 격차와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중장기적으로 북한 정부와 국민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약자 구제를 각각의 국내에서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인도적 지원’이라는 형태로 한·일 공동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제까지 일본의 행동은‘공동체’창조에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서 국교정상화에 따른‘경제협력’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성실한 협의’를 개시할 것을 약속했으면서도 전혀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또한 2007년 6자협의에서 한·미·중·러 4개국이 중유지원을 합의했음에도 일본만은 납치문제 미해결을 이유로 거부했다. 물론 이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대체에너지 지원이긴 하지만, 중유가 북한의 군사적인 면뿐 아니라 민생용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덧붙여 좀더 순수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의‘납치가족단체’가 북한에 지원되는 쌀이 군용으로 사용될 뿐이라며 정부에 지원중지를 요구했을 때, 필자는‘자신의 아이가 납치된 것을 비인도적이라고 분노한다면, 굶주리는 북한 아이들에게 일본에서 남는 쌀을 보내기를 거부하는 것은 비인도적이지 않은가’라고 강한 비판을 신문에 쓴 적이 있다. 그후 그들은 격렬한 비난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필자가 다시‘설령 보낸 쌀이 군용으로 사용된다고 해도 북한에 쌀을 보내지 않으면 군 이외의 어린이나 민간인에게 가야 할 쌀이 더 줄어들 뿐이지 않은가’라고 하자 더이상의 반론이 없었다.

이 사례는 일본에‘보편적인 휴머니티’관념이 극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환경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지구적’관심이 증가한 결과,‘에코 자동차’‘에코 쇼핑백’등‘에코’라는 말이 긍정적인 상징으로 유행하는 것은 확실히 환영할 만한 풍조이다. 한편, 북한에서도 호우·토사 붕괴, 가뭄 등 환경 변화와 자원 고갈, 에너지자원 부족 등이 심각한 문제로 의식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환경보전 분야에서도 한·일 양국의 공조 및 북한과의 협력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환경에 대한 관심은 지구온난화 규제에 대한 각국의 자국중심적 반응과 마찬가지로, 환경파괴가 자신에게 미치는 이해관계의 영향을 중시하는 자세가 뚜렷함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환경파괴가 이처럼 근시안적으로 취급되는 것만은 아니다. 한 예로, 중국에서 발생하는 산성비나 사막화를 억제하기 위해 일본정부와 민간의 원조가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인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사안이기 때문이지, 북한의 홍수나 가뭄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여기에‘동아시아 공동체’로서의 연대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동체’

이상으로 나는‘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말과 관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왜곡되어 있는지를 오늘날 동아시아가 직면한 위기의 중심인 북한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한·일 협력을 주제로 지적했다. 그러나 내가 한국과 일본의 연대를 논한 것은 두 나라의 협력만을 고려하려는 취지에서가 아니다. 게다가 일본정부가 역사문제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결여하고 있는 점 하나만 보더라도, 일본은 한·일 연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애매하게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일에 초점을 맞춘 것은, 두 나라만이라도‘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이는 나아가 양국 이외에 북한을 필두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향해‘공동체’를 넓혀나가는 작업에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화해를 한일 공동으로 촉진하고, 북한을 동아시아 공동체에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한일 공동체의 연대임에 다름없다. 물론 중국의 경우 한·일과는 다른 조건이 있기 때문에, 한일 공동체를 평면적으로 넓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한일 공동체가 먼저 중핵을 만들지 않으면 공동체의 확대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대개‘지역공동체’란 국가단위를 넘는, 국가의 경계선을 넘는 협력 행동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비로소 성립된다는 점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새로운‘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내가‘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평화, 복지, 정의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며 일국을 넘어서 공동행동을 하는 주체를 뜻한다.

하지만 국가는 본래 경계를 갖는 것을 특질로 하며, 생사를 걸고 경계선(국경)을 지키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틀을 넘는 것은, 국가만으로는 본래 한계가 있고,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이 국경을 넘어선 협력과 연대의 담당자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실제로 오늘날 아시아와 세계에서는 국가의 틀을 넘어선 시민의 교류와 협력이 일상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자립성을 갖기 어렵다고 이야기되는 중국에서도 환경오염을 둘러싼 민간의 자발적 활동은 이미 뿌리깊이 정착하고 있으며, 또 최근의 지진 재해를 계기로 시민의 자발적 협력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정체성

이처럼 국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작업을 국가를 초월한 시민사회나 NGO가 담당하는 것은 오늘날 상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북한과 중국, 한·일로 국한되지 않는‘동아시아’ 전체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제가 있다.

그것은 도대체‘동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보통의 대답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총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아시아’란 서양이 비서양의 일부,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는 식민지화의 대상으로 간주한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을 뿐 이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공통의 정체성이 본래 존재한 것은 아니다. 중화문명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친 것은 틀림없지만,‘화이(華夷)’질서는 근대국가를 기반으로 한‘공동체’와는 이질적이다. 그것에 더해 이 지역의 문화적 혹은 종교적 다양성은 두드러진다. 또한‘동남아시아’는 2차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이 전투지역을 분담하면서 영국군의 담당지역(theater)으로 이름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동아시아’‘동아(東亞)’같은 명칭은 산발적으로는 19세기말 이래의 역사를 갖고 있으나 유럽중심의‘극동(極東)’이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고,‘동아’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데는 일본에 의한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의‘동아신질서’‘대동아공영권’등의 슬로건이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동아시아’란 타자에 의한 전쟁과 식민지화의 자의적 산물이며, 타자에 의해 임의로 정의된 지역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공동체’는 전혀 아니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지만 그 때문에 서로 분쟁이나 침략을 계속해온 역사를 짊어지고 있다. 이 지역의 내셔널리즘은 서양에 대해서뿐 아니라‘아시아’내부에서 서로를 향한 전쟁이나 지배로서 전개되어온 것이다.

최근 들어‘동아시아’라는 이름의‘지역공동체’가 논의되는 것은 이 지역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관계가 밀접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좀더 큰 문맥에서 보자면 지구 도처에서, 특히 북반구(EU, NAFTA등)에서 국가의 경계를 넘는 밀접한 관계가 각 사회에 침투하여 세계 각지에서 이미 국가단위뿐 아니라‘지역화’(regionalization)라는 과정이 진행되어왔고, 그에 대한 반사적 행동으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동아시아 공동체’의 추구가 반사적이고 비주체적이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내가 제기하고 싶은 것은 어째서 그‘동아시아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북한을 포함시켜 구상되지 않는지, 또한 남북한의 통일이 민족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만약 그것이‘민족통일’이라는 새로운 국가와 경계선의 제정만을 목표로 한다면 거기서 만들어지는‘공동체’에는 무엇인가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것은‘동아시아’에 민족이나 국가, 체제를 넘어선‘인간’(humans)의 감각과 시점이 약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백낙청(白樂晴) 선생은‘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 6·15선언을 더욱 진전시켜‘남북간의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구상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남북한 사이에서뿐 아니라, 예를 들면 중국에서 (다른 50개의 소수민족은 별도로 하더라도) 적어도 5개 민족(한족, 만주족, 몽골족, 위구르족, 티베트족)에 대해 중국에 적합한 형태의 독자적인 연합 혹은 연방(federation)으로 확대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 전역를 포괄하는 국가연합(union)의 비전으로 확대하여,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핵의 하나로서 남북한의‘연합’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희망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우리는 100년 후의 동아시아를 지금부터 구상하여, 지금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가장 어려운 경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밖의 사회에 대해서도 국가를 넘어선 평등한‘인간’으로서의 감성을 기반으로 공유하지 않고서는‘공동체’의 형성이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21세기에서의‘글로벌화’로 되돌아간다. 21세기를 100년의 시간대에 놓고 생각한다면, 평화롭고 인간에게 적합한 경제생활이 가능한 동시에 자연환경과의 공생하에 모든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보편적으로 실현되어야 함은 불가결하다. 만약 우리가 이 목표 달성의 의지를 공유하는 데 실패한다면,‘다극화’라는 이름의 무질서(anarchy)에 빠진 지구가 전쟁과 테러, 양극화 및 차별, 환경파괴에 의해서 전례 없는 자기파괴에 빠질 가능성이 없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 군부는 환경파괴로 인해 토지나 자원을 둘러싼 격렬한 민족분쟁이 세계 각지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사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 파국을 막고 100년 후의 자손에게 더 나은 세계를 남기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고 존엄한 주체로서 서로 인정하는‘휴머니티’의 감성과 사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이는 처음에 강조했듯이 개인, 집단,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휴머니티’의 보편성을 근본적인 기초로 하는 것이기에,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또 그 다양성의 뒤섞임(hybrid) 속에서 더욱 풍성한 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동아시아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동아시아’에 이러한 보편적인‘휴머니티’사상의 역사적인 바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이다. 나의 좁은 지식으로는, 예를 들면 일본의 언어나 문화적 전통에‘인류’(humankind)라는 말은 있지만 이는 생물, 즉‘종(種)’으로서의 인간 전체(human species)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인간성’이라는 말은 종종‘인간의 약점이나 한계’를 가리키는 표현인 경우가 많고,‘인도(人道), 인륜(人倫)’이라는 윤리성 높은 말조차도 온정주의적이고 유교적 계층사회의 질서를 옹호하는 뜻이 강한 역사를 지닌다. 과연‘휴머니티’에 상당하는 감성이나 사상이 동아시아에 존재할까. (이와 관련해 최원식崔元植 교수로부터 유교의‘인仁’이나 불교의‘자비慈悲’가‘휴머니티’에 상당하지 않는가, 혹은 그것을 심화하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는‘신분차이와 성차性差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인권감각’‘전쟁의 비합법화’‘사형의 폐지’등으로 나타나는, 근대 이후의‘평등한 존엄의 주체로서 서로 인정하는 인간’이라는 세속화한 비종교적인 시민사상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가 더욱 연구해야 할 과제이므로 여기서는 더이상 서술하지 않겠다.)

일본에서의‘한류(韓流)’현상처럼 음악,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국가의 틀을 넘어선 감성의 교류가 전에 비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훨씬 진전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단 국제정치나 군사적 안전보장의 문제가 벌어지면 여전히 국가의 틀에 갇혀 국가의 언어로 말하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여기서 한가지를 깨닫게 된다.‘동아시아지역’이라고 하는‘지역’의 관념은, 암묵적으로‘동아시아’가 아닌 사회나 지역과의 경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점으로 보인다. 만약‘지역’이라는 관념이 다른‘지역’을 배제하고 때로 다른‘지역’과의 경쟁이나 다툼, 차별을 전제로 자기 이미지를 형성한다면, 또한 많은‘지역화’의 실례가 경계선의 강조나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자기방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면,‘휴머니티’의 감성이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동아시아의 정체성’이 보편적인‘휴머니티’를 기반으로 다양성의 보존과 창출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때,‘동아시아’는 세계를 향해 열린‘지역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동아시아의 정체성’은 역설적이지만‘동아시아’를 넘어서‘인간의 정체성’을 강화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며, 그 기반으로서‘트랜스리저널(trans-regional)’한 시민사회의 창출을 우선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참고할 수 있는 것이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nations, 동남아국가연합)이다. ASEAN은‘지역포럼’에서 한·중·일에 더해 북한, 미국, 인도 등에 대화의 장을 제공하며, 또한 EU와의 연대도 갖고 있다.‘동아시아 공동체’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미국을 포함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 EU와도 연대하며, 샹하이협력기구를 더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의 여러 나라와 연대하고, 더 나아가 중동 국가들과도 교류를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특히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아프리카다.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와 기업처럼 아프리카를 단지 석유나 희소금속 같은 자원의 수탈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서민들이 우리처럼 안전한 물을 마시고 굶주림에서 해방되며 의료와 교육 혜택을 받는 등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동아시아 공동체’의 국가와 시민이 이를 자신의 존엄의 문제로 여기고 나서야 한다. 이것이‘휴머니티’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동아시아 공동체’는 이처럼 밖을 향해 자기 자신을 열어놓음으로써‘동아시아’내부에서도 서로에게 열린 사회를 강화해갈 것이다.

이처럼 북한을 포함하는‘동아시아 공동체’란 분쟁이나 대립이 도처에서 발생하는 세계에서‘인간’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선구적인 사명을 띤 시민적 연대의 공동체여야 하며, 나는 이 회의가 21세기에 동아시아를 넘어선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귀중한 초석이 되리라고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제까지 서술한 것을 두고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머리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21세기라는 100년의 시야에서 생각한다면, 내가 그려본‘동아시아 공동체’는 현실, 그것도 이미 지나간 현실이 되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덧글│

이제까지 일본정부는‘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진지한 사죄 없이 애매한 상태로 지속해왔기 때문에,‘동아시아 공동체’를 목표로 내세울 자격을 결여했다. 하지만 2009년 8월말 중의원 선거로 반세기 만에‘일당지배’가 끝나고 본격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이제까지 야당의 일부와 NGO가 제창할 뿐이던, 동아시아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 여당의 이념으로서 무게를 가지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전후 반세기, 자유민주당이라는 이름의 보수정당은 반공·반소(반중)의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비굴하기까지 한 대미의존을 마치 옛‘천황제’를 대신하는 불가침의‘국체(國體)’인 양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구조를 타성적으로 지속해왔다. 반면 아시아에 대해서는 은밀한 우월감을 품고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서구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구실로 침략을 정당화하고, 아시아 인민에 대한 전쟁책임을 회피한 채 일본근대사의 그림자를 지우고 성공담으로 묘사하면서 새로운 국가주의를 그 바탕에 숨겨왔다.

이에 대해 하또야마(鳩山) 수상은‘역사를 직시한다’고 선언하며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에 참배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이제껏 일본이‘미국에 너무 의존해왔음’을 인정하고‘미국과의 대등한 동맹’을 제창하는 한편,‘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을 정책목표로 내걸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방향 전환의 자세가 엿보이고, 일본에도 시민이 정권을 바꾼다는,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당연한 움직임이 비정상적으로 늦긴 했지만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코이즈미(小泉) 정권 이후‘글로벌(즉 미국) 스탠더드’에 동조한‘신자유주의’가 일본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 격차를 심화하며 인간의 연대를 곳곳에서 찢어놓은 데 대한 시민적 저항이 존재하고, 그것이 어느정도‘미국 이탈’을 촉진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변화가 즉각적으로‘동아시아 공동체’의 지향으로 열매맺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또야마 정권이 이념뿐 아니라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지 보지 않고는 단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동아시아 공동체’의 첫걸음으로서 경제 및 통화 협력과 더불어 지구환경문제에서의 협력이 불가피해짐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동아시아 비핵화’를 말하면서 북한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만나갈 것인가라는, 앞서 내가 시금석으로 제기했던 물음에 대한 대응은 아직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이 막대한 고난과 희생 위에서 자력의 민주화를 달성한 뒤를 좇아 일본이 다행히도 평화롭게 정권의 민주적 변혁의 길을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점은 동북아시아 공동체, 특히 그 중심이 되는 한일 공동체의 창조에 지금까지보다 더 큰 희망을 품게 하는 행보임에는 틀림없다.

번역: 강태웅·강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