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김근

1973년 전북 고창 출생.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뱀소년의 외출』이 있음. hartani@naver.com

 

 

 

땅강아지가 날았다

 

 

헤헤헤 우리 고추까기 놀이를 하자 침침한 방구석에서 벽지가 찢어진 벽처럼 웃기게 아랫도리를 벗고 팔다리도 모가지도 떼어버리고 몸통과 고추만 남겨 까다가 지치면 똥꼬도 까자 까진 똥꼬엔 바람을 불어넣어줘야 해 알았지?

 

친구가 새로 산 권총의 은빛 잔광이 골목을 뛰어다니던 날 난 인형을 선물받았어 인형의 분홍색 레이스치마는 내게도 잘 어울릴 거야 인형을 세발자전거에 태우고 골목을 쏘다니는데 땅강아지가 날았어 정말이야 땅강아지처럼 난 손톱이 못생겼거든

 

인형엔 고추가 없어 이건 여자인형이야 고추 달린 인형은 왜 없지? 그래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었어 남자인어는 고추가 달렸을까 한스는 죽고 말았잖아 불쌍한 한스는 고추를 까고 죽었을까 못 까고 죽었을까

 

한스가 죽었으니 대통령도 죽고 아빠는 사람을 치었어 엄마는 빽빽 우는 동생을 업고 유치장에 갔어 아빠의 오토바이에서 쏟아진 생닭들 꼬끼오— 하고 울었나 말았나 허여멀건하게 모가지 없이 우는 애는 나뿐일 거야 땅강아지가 나는 걸 본 애도

 

헤헤헤 우리 고추까기 놀이를 하자 침침한 방구석에서 벽지가 찢어진 벽처럼 웃기게 아랫도리를 벗고 팔다리도 모가지도 떼어버리고 몸통과 고추만 남겨 까다가 지치면…… 씨발 그만 좀 빨아 내 고추가 완전 새빨갛잖아 이 똥구멍에 털 난 아저씨야 그럼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정말이야?

 

꽃들이 날리지 않는 봄 땅강아지가 날았다 정말이다

 

 

 

드렝이 우는 저녁

 

 

무른 살갗 같은 논바닥 온통 구멍 내고 구멍마다 고갤 내밀어 드렝이 우는 저녁 애장터 돌무덤 헤치고 죽은 아기들 채 여물지도 못하고 썩어 짜부라든 제 샅을 조물락거리면서는 스적스적 산을 내려와 여태 산 채로 히히덕거리는 제 어미와 형제자매 혼 다 빠지게시리 뛰어다니며 삐익삑 휘파람을 불어쌓기도 하는 그런 저녁 산 계집아이 하나 마을 쪽으로 궁둥이 높이 쳐들고 엎디었것다 마을이랬자 산송장 같은 늙은네들이나 어슬렁어슬렁 고샅길에라도 시든 그림자 흘릴까 말까 하고 어린애들이야 갓 젖 떼었거나 좀 컸더라도 똥고에 푸른 반점조차 지워지지 않은 모양으로 걸핏하면 빽빽 울기나 해서 계집아이 궁둥이에 꽃 하나 꽂아줄 이 없던 것이었는데

계집아이 내력을 볼작시면 제 어미 폐병으로 누운 지 오래였어도 귀신이 들렸는지 죽지를 안하고 처녀귀신 같은 여자 하나 꿰차고 달아난 아비가 다른 오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오메 참말로 귀신 들려 씨 다른 언니는 어느 산골짝 떠도는지 처박혔는지도 모르거니와 계집아이의 어미 첩으로 맞았던 아비는 벌통깨나 짊어지고 떠돌다가는 계집아일 제 본부인에게 맡겨뒀다는데 그 본부인 하 모질어 엄동설한 계집아이 손에 죄 얼음 박여 오뉴월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졌더니 거참 쯔쯧 그 본부인 이듬해 풍 맞아 앉은뱅이로 사지육신 끌고 다니면서나 아다다 아다다만 안했간디 그 와중에도 생겨난 조무래기 동생 것들이야 입만 달고 태어난 아귀 같은 것들이라서 온 집안 다 먹어치울 기세로다 달라붙고 치대고 제 손윗누일 못 빨아먹어서 지랄발광했잖겠어 허허허

해도 시절은 또 시절대로 흘러를 가서 계집아이 익을 대로 익은 궁둥일 주체 못해 발정난 암캐 모양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요상하게 엎디어 몇날 몇밤 뻗대고 있었당만 그려 헌데 누가 그 계집아이 궁둥이에 개구락지 똥구멍에 보릿대 꽂아 불 듯이나 뜨겁고 드센 숨이라도 불어넣었는지 계집아이 배가 점점 불러오더라여 산골짝 마을에 무슨 돌라갈 것이 있어 밤손님이 다녀갔을 리 없고 필경 소나무 숲에 사는 바람의 짓거리라고 자발스런 늙은네들은 지껄여댔는데 시나브로 부푼 계집아이 어느날 더 팽팽 늘어날 살가죽이 모자랐는지 펑 하고 터져버렸대여 겨우 계집아이라거나 계집아이라고 할 수도 아예 없는 뻘건 살점들 사방팔방 흩어져버렸다잖은가

눈 씻고 다시 보니 그 자리에 탯줄 칭칭 감고 웬 핏덩이 하나 있는데 눈도 못 뜬 게 뽈락뽈락 숨도 안 쉬는 게 글쎄 삐익삑 휘파람만 잘도 불더라는 것이여 어찌 되긴 뭘 어찌 돼야 휘파람 소리 여름 땡볕 한줄금 소나기처럼이나 흠뻑 맞아버린 마을에선 난리 난리 났지 늙은네들은 죄다 고샅으로 기어들 나와 시도 때도 밤도 낮도 없이 밥도 물도 없이 매가리 히마리도 없는 마른 샅끼리 얼크러설크러져서리 흘레만 붙고 붙고 붙었다누만 벼들은 죄 알맹일 떨어뜨리고 시커멓게 타버리고 마을의 어린애들은 씨도 마르고 밭도 말라 구실도 못하게 컸더라는 말이시 아 나야 모르지 그때도 드렝이1가 울었는지 죽은 아기들 제 동무 찾아 미끄러지듯 또 산을 타내려왔는지는

 

 

__

  1. 드렝이: ‘드렁허리’의 전라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