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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세종시 논란에 가려진 것들

 

 

경인년(庚寅年)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해다. 2008년의 촛불항쟁, 2009년의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서거와 그에 대한 애도 등 지난 2년 동안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국민들의 위대한 힘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명박정부와 의석수 우위를 내세운 한나라당의 역주행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이제 국정의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6월 지방선거가 그것이다.

한편 새해 벽두부터 세종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 논란은 지난해 9월 정부가 2005년 여야합의로 통과된 행정복합도시(세종시)안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시작되었는데, 올해 1월 11일 수정안 발표로 한층 가열됐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민감한 쟁점에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이라는 요소까지 결합되니 국민들의 이목을 모은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정부의 무리한 일처리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면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려는 동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마음을 놓기는 이르지만 이제 세종시 논란에 가려진 것들을 생각할 때다.

여권이 세종시 논란을 야기함으로써 얻는 정치적 효과, 즉 그밖의 다른 실정(失政)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약화시키려는 또다른 노림수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통과가 어렵게 되더라도 이것이 국정운영에 대한 근본적 반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아니면 말고” 하며 넘어가거나 새로운 논란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그사이 다른 문제들은 더 심각한 상태로 전개되어 있을 것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여론의 강한 비판을 무시하고 작년 11월 첫삽을 뜬 4대강사업의 문제점이 표면에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와중에도 22조원 이상의 막대한 세금이 투입될 초대형 국토개조사업을 불과 5개월 만에 마스터플랜 작성과 환경평가까지 마무리하고 바로 수중보 건설공사에 나선 것 자체가 민주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지난 2월초 낙동강 달성보 건설현장에서 오염퇴적토가 발견되었다. 강바닥에 퇴적되어 있는 오염물질을 파헤쳐 옮기면 강은 수질오염으로, 육지는 토양오염으로 신음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4대강사업을 전반적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논란 차단을 위해 더 빨리 공사를 진척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책임한 정치인과 건설업자들이 함께하는 ‘최후의 만찬’으로 국토의 젖줄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4대강사업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보도도 어려운 언론환경을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날치기로 통과된 미디어법은 국회통과 절차의 문제점이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인정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여권은 아무런 해명과 후속조치 없이 미디어법을 종합편성채널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보수언론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계속 활용하고 있다. KBS와 YTN을 초토화시켰던 방송장악 시도도 이제 MBC에 화력을 집중하며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MBC 장악을 위해 동원한 수법은 편법, 탈법, 월권의 종합선물쎄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을 동원해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했으나,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청와대와 새로 임명된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회의 공공연한 엄기영 사장 퇴진 압박이 여의치 않아지자 방문진은 주요 임원 선임권을 요구하며 사실상 직할통치를 시도하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고 결국 사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이제 방송장악 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전면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문제가 어찌 이 두가지에 그치겠는가? 부자 감세는 그대로 둔 채 빈곤층 지원을 위한 복지예산은 축소하고, 사법부 판결에 이념공세를 가하는 것 등 결코 방관할 수 없는 사태들이 빈발하고 있다. 심각성이 더해가는 이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기댈 곳은 국민의 힘밖에 없다. 우선 4대강사업에 의한 국토파괴와 환경오염, 방송장악 음모, 반대세력 탄압 등 시급한 사안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공동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모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MB정부의 실정을 반드시 심판하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경우 앞으로 적어도 2년 동안은 지금까지의 상황이 반복될 것이며 그사이 한국사회가 얼마나 더 퇴행할지 모른다. 반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정부의 역주행을 저지하고 한국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시킬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명확하다.

따라서 진보개혁세력 내에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선거연합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치권이 더 분발할 것을 요청한다. 제1야당이자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민주당은 선거연합을 성사시켜야 하는 일차적 책임이 있다. 다른 정치세력들도 반MB연대와 지방선거 승리를 우회해서 어떤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되며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 선거연합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국민들의 뜻과 의지는 촛불항쟁 이후 여러 재보궐선거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지금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를 잘 헤아리고 받들어나갈 때이다. 이러한 노력에 국민들은 반드시 자신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답할 것이다.

 

‘3대 위기를 넘어, 3대위기론을 넘어’를 내건 이번호 특집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3대위기론은 현재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설명하는 프레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번 특집은 그 위기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근원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할 대안을 탐색함과 동시에 3대위기론 자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이론적 모색이다.

김종엽은 현 위기의 핵심을 민주적 법치국가의 위기로 파악하고, 이 위기가 도덕의 위기로 전화되고 도덕의 위기는 다시 민주적 복지국가로의 진전에 필요한 사회적 연대성을 파괴하는 메커니즘을 탐구한다. 그리고 민주적 법치국가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도덕의 위기를 막고 민주적 복지국가로의 진전을 보장하기 위한 실천임을 주장한다. 이남주는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연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정치연합이 진보개혁세력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며 이를 위해서 변혁적 중도주의의 정신과 지혜를 발휘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전병유는 현재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과 4대강사업이 위기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누적시키고 있음을 논증한다. 그는 민생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분배정책과 복지정책의 강화만으로는 어렵고 고용과 시장에서의 분배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복지영역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줄이는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백낙청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성과(포용정책 1.0)에 대한 여러 비판들(연방제 논란, 퍼주기 논란 등)을 매우 설득력있게 반박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포용정책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포용정책 2.0버전’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통일정책이자 민주개혁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분단체제극복을 위한 남북연합 건설을 분명하게 내걸고 통일과정에 시민참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인데, 이 글에서 그러한 필요성과 가능성이 상세히 설명된다.

이번호 ‘논단과 현장’도 다른 지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각과 논쟁을 선보인다. 김흥규는 지난해 가을호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근대문학 연구로 논쟁을 확대한다.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전개를 식민지시대의 종속적 회로 안에서만 보는 일련의 경향을 비판하고, 식민주의와 피식민지의 관계를 동태적으로 파악하는 담론틀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리베커 쏘울닛의 번역글은 아이띠에서 발생한 재난에 대한 미국 주류언론의 보도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러한 보도들이 한국정부가 아이띠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더욱 실감을 준다. 팔레스타인의 최근 사회 분위기와 현지 문학가들을 함께 스케치하는 김남일의 문학기행도 분쟁현장의 안팎을 포착해 생각거리와 읽는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한다. 아울러 본지는 2010년 ‘꺾어지는’ 해를 맞은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는 글을 연속기획 형태로 게재할 예정이다. 그 첫 순서인 정근식의 글은 경쟁과 대립의 관점으로 재생산되어온 한국전쟁의 기억을 전쟁사진이라는 매체 분석을 통해 미래지향적 소통과 이해의 관점으로 바꿀 가능성을 탐색한다. 다음호에 이어질 4·19, 5·18 등에 관한 후속기획도 기대해주시기 바란다.

이번호 대화는 소설가, 인터넷논객, 학생회장, 잡지사 편집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대들이 자기 세대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꾸몄다. 이들은 특히 외부에서 부여한 이러저러한 이미지들과 세대담론을 거부하고 청년세대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문학평론에서는 최근 연암 박지원에 대한 연구와 출판 열기를 계기로 연암 문학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와 그 번역서의 의의를 설득력있게 서술하는 송재소의 글과, 지난 1년간 문단의 가장 큰 관심거리로 자리잡은 ‘시와 정치’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신형철의 글이 실렸다. 신형철은 우리시대 시인들의 욕망과 비평의 임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비평이 텍스트의 미학적인 것뿐 아니라 정치학적인 것, 나아가 정치적인 것까지 읽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단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창비의 장편연재는 중견작가 공선옥이 이어받는다.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따스한 시선과 활달한 묘사가 강렬한 사회의식과 결합하며,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우리시대의 인간군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지난해 만해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해가는 공선옥의 이번 연재에 큰 성원을 부탁드린다. 박민규, 김유진, 구병모의 개성 강한 단편소설과 함께 중견과 신예가 어우러진 풍성한 시란도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이번호부터는 산문란이 신설되어 영화제작자이자 변호사인 조광희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이미 창비주간논평의 문화칼럼에서 매력적인 필치를 선보인 바 있는 필자가 내밀한 자기성찰과 예리한 사회비평을 한데 녹여 내놓는다. 

이번 계절 한국문학의 성취를 집중 조명하는 문학초점과 ‘시선과 시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화제작들을 이모저모 살펴보는 촌평의 재미도 여전하다. 대학생 문사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대산대학문학상의 제8회 수상작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당부드린다.

안팎의 시련과 고난 속에도 어김없이 새봄은 찾아온다. 독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하며 항상 함께하는 창비가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李南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