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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옥순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푸른역사 2006

타자 표상의 지형도와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

 

 

권명아 權明娥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wildc9@hanmail.net

 

 

이옥순(李玉順)의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는 저자의 전작(前作)인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푸른역사 2002)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한국의 다양한 저작에서 나타난 인도의 이미지를 오리엔탈리즘의 측면에서 조명한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인도 표상의 역사적 차별성이나 균열보다는 동일한 구조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비해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는 192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까지(필자는 서문에서 1940년대까지 다루었다고 했지만 자료는 1930년대까지가 주종을 이룬다)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인도 표상의 역사적 특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전작의 한계를 넘어선 저작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는 주로 인도가 조선지식인들에게 “저항의 은유”로 표상된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주로 인도의 독립운동에 대한 조선지식인들의 담론을 토대로 분석된다. 이옥순은 인도의 독립에 대한 무수히 많은 글들은 인도가 조선독립의 희망이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여기에서 저자의 논의는 인도에 대한 조선지식인의 재현 방식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도 분리되고 동시에 일본의 아시아주의와도 분리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저자도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인도에 대한 ‘조선’의 상상과 인식에는 저항의 욕망과, 아시아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이 복잡하고 비균질적으로 얽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와 2부에서는 저자는 독립의 희망으로서의 인도에 대한 동경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나머지 희망과 절망, 저항과 타협, 동경과 동정의 불균질한 내면을 조금은 단순화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일본의 아시아주의와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 저자는 강력하게 부정하는데 그 근거는 아시아주의를 피력하는 방법으로서 인도에 대한 담론은 너무 우회적이라는 것이다. 즉 아시아주의를 피력하고자 한다면 인도라는 우회로보다는 좀더 직접적인 표현방식이 더욱 전략적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타자 표상, 특히 이른바 “약소민족”에 대한 조선지식인의 담론 구성 방식에서 아시아주의의 흔적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단지 이 담론들이 일본제국의 정책적 담론의 스피커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은 아니다. 즉 아시아주의는 일본제국의 식민주의정책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였지만, 이와 전혀 비대칭적이면서도 약소민족의 운명, 특히 서구제국의 식민지적 운명에 대한 조선지식인들의 내적 고민들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아시아주의, 혹은 인종주의적 사유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러한 측면을 너무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3부와 4부는 간디와 타고르에 대한 균열적인 판단기제와 인도문화에 대한 관심(부족)을 통해서 인도 표상에 얽힌 균열과 갈등에 좀더 촛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조선지식인들의 담론에서 나타나는 인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서구적 시선과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인도에 대한 부정적 재현 방식에서 종종 인도는 나약하고 여성적인 존재로 드러나지만 이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른 “인도인의 불행한 현재가 영국의 식민지배에 한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파”(193면)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서구적 시선과 차별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조선지식인들 내에서 이른바 “자생적인”아시아주의적 사유를 만들었다는 점을 이 책은 간과하고 있다.

한국의 타자 표상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단계에 있다. 이러한 연구는 자기동일성의 규정으로 주체화과정을 연구해온 그간의 학문적 규범을 넘어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른바 민족주의의 형성과 해체 및 제국주의로의 통합과정을 규명함에 있어서 식민지 조선에서 “인도, 비도, 애란, 에치오피아, 남방”이라는 타자에 대한 표상구조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도, 필리핀, 아일랜드’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이른바 “약소민족의 운명”을 전망하는 중요한 거울상이었다. 이는 저자가 조선지식인들에게 인도가 “같은 식민지로서의 동질성”을 가진다고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인도가 “저항의 싸이트”이자 “저항의 은유”이고 “은유된 정치투쟁의 몽상을 가능케 하”(82면)는장소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가 “비도, 애란”과 함께 약소민족의 운명을 전망하는 중요한 거울상이었다는 것은 이들 지역이 조선지식인들에게 단지 동일화의 장소로서만 기능했기 때문은 아니다. 또한 이들 지역에 대한 재현구조가 부정적 전유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도 이는 단지 오리엔탈리즘이나 아시아주의의 영향으로만 평가될 수 없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조선지식인들은 이들 지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거울상으로 조선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그려나갔다. 그것은 때로는 자치에 대한 탐색으로, 때로는 서구제국의 독립 약속의 공허함에 대한 통절한 자각으로, 또 때로는 무기력한 ‘약소민족의 운명’에 대한 ‘인종주의적 분노’와 자기연민으로도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타자 표상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힘들의 충돌,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거기에는 단지 독립에 대한 열망뿐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인식의 복잡한 내면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자에 대한 담론은 바로 조선지식인들의 내면의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면을 추적할 수 있는 좀더 섬세한 방법론적 모색이 요구된다. 이옥순의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는 이러한 연구를 한걸음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타자 표상의 복합성을 ‘조선독립’에 대한 열망이라는 차원에만 과도하게 촛점화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1920~30년대와 1940년대의 차별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함으로써 인도 담론의 역사적 특성과 차이가 잘 규명되지 못한 점 역시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새로운 연구에서 이러한 남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