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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구병모1

구병모 具竝模

1976년 서울 출생.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음. 

 

 

 

학문의 힘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순도 높고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서 한 개체의 구조와 그 유지 및 변형 사이에 존재하는 역학관계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며 각 관계를 잇는 긴장과 탄력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힘을 가하여 작용이나 반작용을 일으키는 데 적절한 타이밍이 필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여자는 차가운 플라스틱 시트에 앉아 출혈과 고통을 가능한 줄이고 볼일은 효과적으로 마칠 최적의 순간을 노리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오늘 아침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힘이, 필요하다던.

여자도 지금 이 순간 힘이 필요하다. 통증을 견디고, 이 우중충한 건물 화장실 변기에서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물때로 미끈거리는 타일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지 않을 수 있는. 두 층 아래에 있는 ‘만인기획’의 작은 사무실까지 난간을 잡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남편이 밖에서 얻기를 기대하는 힘과는 품위부터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녀는 오늘 회원권의 파격 할인가를 강조하는 헬스클럽 전단지 시안만 넘기고 조퇴할 것이다. 남편이 일곱시에 손님 열여섯명을 모시고 올 예정이며, 그전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보아야 한다.

 

여자가 처음 자기 몸에서 꼬리를 발견한 것은 닷새 전, 사거리 건너편에 새로 생긴 병원의 명함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그전에도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 종종 휴지에 붉은 피가 찢긴 꽃잎처럼 묻어 나오는 등 몇몇 전조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 실장님, 우리 휴지 좀 좋은 걸로 바꾸면 안되나요.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실장이 외출을 나가 그녀 혼자 있었고, 사무실 창은 열려 있었으며, 거대한 누브지(紙) 뭉치를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들이 피워올린 황사 먼지며 꽃가루가 폭풍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녀가 창을 닫다 만성 비염이 도져 재채기를 연거푸 하는 순간, 엉덩이 사이에 화약을 치고 불을 댕긴 것처럼 기습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아찔하고 외설적인 통증을 간신히 수습하고 정신을 차리자 그 자리에 꼬리가 느껴졌다. 퇴화와 함께 사라진 태곳적 흔적기관의 갑작스러운 출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살펴볼 만한 것을 찾아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으나 목 높이에 걸린 벽면거울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꼬리는 간헐적인 통증과 더불어 그 어떤 말로도 에두를 수 없는 아득한 냄새를 계속 몰고 왔다. 사무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창을 다시 열자, 바로 아래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콧구멍으로 오장이 쏟아질 듯이 재채기를 연타로 해댔다. 허리 아래로는 자기 몸이 아닌 것 같은 총체적 이물감이 느껴졌고, 설상가상으로 그새 꼬리는 더욱 길어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엉덩이를 양쪽으로 움직이며 자리를 좀 정돈해보았고, 여의치 않자 결국 옷 속에 손가락을 넣어 이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 같은 녀석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쯤 하자, 녀석은 곤충을 잡기 위해 날카롭게 촉수를 뻗은 식충식물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침 떼는 모양으로 천천히 제자리에 돌아가 몸속에 장착되었다.

여자는 그때 마침 통과된 시안을 출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 이름은 ‘21세기 학문외과’였다.

처음 시안을 작업하면서 그녀는 물었다. 실장님 이거 오타 아니에요? 실장은 마침 가래를 뱉으려던 참에 그녀의 말을 듣고는 도로 삼키고 제풀에 기침을 했다. 미스 유는 상식도 쎈스도 그렇게 부족해서야 어떻게 이 일을 하겠어. 그녀는 자신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감만 가지고 기계적으로 만들어온 수많은 나이트클럽 광고지와 학생회 리플릿 들이 쎈스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짐작건대 특정 신체부위의 이름이 주는 혐오감과 불쾌감을 완화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 건가 싶었다. 그러나 실장의 설명은 뜻밖이었다. 의료법 43조에 따르면 병원 간판에 표기할 수 있는 진료과목이 가정의학과나 비뇨기과 재활의학과를 비롯한 총 25개 과목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간판에는 항문외과라고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 왜, 그래서 길거리 가다 보면 항외과나 항사랑닷컴 그런 거 많잖아. 그런 줄 알고 그대로 시안 보내줘.

여자는 출력한 명함 가운데 한장을 집어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뭐니뭐니 해도 아무 소리 말고 네가 잘해야 한다. 여자의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저 안사람이 잘하면 가방끈 긴 서방의 교수자리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여자는 한숨인지 코웃음인지 모를 신음소리를 내고는 대답했다. 엄마 때랑은 달라서 요즘은 위에 똥차가 빨리 안 빠지거든요. 마흔 되기 전에 ‘2년 계약직 강의전담 조교수’ 같은 귀걸이인지 코걸이인지 모를 해괴한 타이틀이라도 달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어. 티오는 없지, 줄은 줄대로 섰지, 만약 잘 풀리더라도 그 2년 뒤에는? 나는 저 사람 교수 되는 건 이미 기대 안해. 엄마는 여자의 어깨를 두어번 쥐어박았다. 그러니까 네가 관리를 잘하라는 거잖아. 좋은 교수한테 줄도 좀 잘 서게 도와주고.

여자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나 학교 떠난 지가 언젠데 나더러 치맛바람 휘두르라고 그래요. 그런 짓 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뿐더러 줄이라면 이미 석사 때 다들 알아서 섰어.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줄 알아. 줄 바꾸는 사람은 그걸로 학문 인생 끝이야. 그러나 여자의 엄마는 세상을 움직이는 남자와 그 남자를 움직이는 여자의 신화를 굳게 믿고 있었으며, 가끔 서방이 바쁘면 네가 가서 교수 책상도 좀 닦아놓고 화병 물도 갈아놓으라 했다. 여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회사 다녀요. 더구나 교수회관에 외부인이랑 잡상인 못 들어가거든! 엄마는 불가해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외부인이냐, 엄연히 졸업생인데. 게다가 그 회사, 뭐? 그게 어디 회사 같기라도 해야 네가 바쁜 줄 알지. 대학 나와서 전공 살려 할 게 없어서 명함이나 찌라시 따위 파주는 데를.

엄마의 신념을 귀찮아하면서도 여자는 명절이나 무슨 날이 돌아올 때마다 대형마트에 들어가 남자보다 앞장서서 카트를 밀었으며,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와인이나 잡화를 골랐고, 그러면서도 반드시 쿠폰을 쓰는 쎈스나 덤 챙기기를 잊지 않았으며, 선물 포장을 요청하기 전에 학교에 상주하는 교수들의 머릿수를 세었다. 부부동반 신년회 따위가 있을 적마다 여자는 가급적 비싸 보이지도 구차해 보이지도 않는 적당히 세련된 옷을 골라 입었으며, 그 적당히라는 말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과 위태로운 균형감을 고민하는 한편, 자리에 가서는 모든 이들에게 다소곳하게 술을 따르고 내내 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 거기 있는 교수와 강사와 기타 조교들은 얼마 가지 않아 여자의 얼굴과 함께 여자의 이름이 아닌 누구의 부인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서적 한계에 도전하는 이 노동을 나름 참을성있게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여자의 엄마는 종종 이런 소리로 산통을 깨놓곤 했다. 네가 하는 게 뭐 있냐, 내 친구 딸은 교수네 집에 가서 거기 사모님하고 김장도 같이 한다더라. 많이 배운 네 눈에는 고리타분해 보이고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지. 사람이 말이다, 아무리 시시해 보여도 자기한테 사소한 거 신경 써주는 사람 한번 더 돌아보게 돼 있어. 특히 나이 먹은 사람들은 더 그래.

 

지옥에서 온 전기해파리처럼 생긴 당면 한무더기가 허공으로 솟구치다가 프라이팬에 떨어진다. 끓는 기름에 닿아 칙 하고 올올이 비명을 지르는 당면 다발은 투명하게 반들거린다. 곧 간이 밴 쇠고기, 버섯, 당근, 시금치와 뒤엉켜 숨이 죽어 들어간다. 올리브유에 진간장 1큰술과 참깨.

여자는 수첩을 펼치고 쌜러드와 구절판, 불고기, 모듬전, 후식으로 내놓을 식혜에 이르기까지 적어둔 음식 이름들에 붉은 줄을 두개씩 긋는다. 가스레인지 불을 1단으로 낮추고 장을 보아온 비닐봉지를 뒤적거린다. 식혜와 함께 내놓을 과일의 종류와 갯수를 확인한 다음, 횟집에 전화를 걸어 광어 한마리를 주문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재료비가 얼추 10만원이 들었음을 확인한다. 그때 기름 끓는 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 여자는 흠칫 놀란다. 서둘러 불을 끄고 잡채 더미를 뒤적거린다. 2년 사이에 끝이 뭉툭하게 닳아버린 나무주걱을 씽크대로 던져넣는다.

남편은 6년 사이에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는 몇몇 학회에서 간사인지 총무인지를 도맡곤 했다. 어느 때는 동시에 2개 학회에 속했던 적도 있다. 그는 자기 또래에 학교에 남아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남자였고, 어느 학회에 속하든 거기서는 막내였다. 곧 있으면 서른다섯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의 후배인 남자 대학원생들은 우여곡절 끝에 석사학위를 받고 떠난 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되거나 증권사의 신입사원이 되거나 했으며, 그들이 버려놓고 간 행정업무들을 남편이 종종 수습하곤 했다. 그는 학회를 유지하는 잡다한 시중에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활동이 다양한 학문적 경력으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여자는 그가 하는 일 가운데 무엇이 학문적인지 알 수 없었다. 학회지에 실을 원고를 제때 주지 않는 필자들에게 전화로 사정하는 일이? 원고가 반려된 필자들의 타오르는 분노와 번지수 틀린 화풀이 앞에 총알받이가 되는 일이? 또는 회의 장소와 숙소를 섭외하고 명단을 재확인해 참가를 독려하는 일이? 이도저도 아니면 단상에서 조명을 받는 누군가를 위한 꽃을 주문하거나 박수부대를 모으는 일이?

지나치게 착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옆에 있는 누군가를 불안하게 또는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착함을 실행하는 사람과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코드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라도 하면 대박이었다. 남편은 돌쇠나 마당쇠나 벙어리 삼룡이처럼 누가 하라는 건 다 하고 기라면 기었으며, 자신의 이해와 무관하게 순수한 봉사정신을 필요로 하는 일에 부름을 받아도 좀체 거절할 줄 몰랐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는데, 그를 불러들인 사람들은 그를 쓰고 나면 버렸다가 다음에 급할 때 다시 부르곤 했다. 여자의 머릿속에는 오늘 올 손님들 가운데 누가 그를 자주 찾는지, 가끔 찾는지, 또는 버리다 줍다 하는지 데이터가 입력되어 있었다.

사람 좋은 남편은 제목도 모를 무슨 쎄미나가 있을 때나, 일행 중 누군가가 어느 학교에 내정이 되었다든가 하는 일이 있을 적마다 손님들을 집에 데려오곤 했다. 여자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자주 조퇴를 했다. 맘 같아서는 중국집에서 요리 몇가지를 배달시켜 상에 풀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과 혀는 예리했다. 그들의 감각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성의 없는 안주인이 될 터였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찾아오는 게 아니라, 여자의 노동의 결과물을 보고 평가하고 싶어서 오는 거였다. 대상 분야를 불문한 평가란 공부하는 자들의, 앞으로 공부하는 자들을 가르칠 자들의, 고질적인 습관이다.

실장은 조퇴하는 여자의 앞에 대고 종종 말했다. 우리 일 작다고 우습게 보지 마. 너 하나 대신할 사람은 을지로 바닥에 널리고 깔렸어. 미스 유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아서 하는 거야, 아니면 남편 졸업시키려고 하는 거야. 처음에 집들이를 하느라 월차를 냈을 때 실장은 열심히 잘해보고 사람들한테 점수 따라고 격려까지 해주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요즘 말하는 걸로 보자면 점점 여자더러 사무실을 그만두라고 부채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한 지도 6년째인데 아이는 갖지 않을 거냐든가, 미스 유 월급 감당하기 힘들어 젊고 싱싱한 참치 같은 아가씨를 모셔와야겠다든가. 여자는 후자에 대해서는 월급을 더이상 올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일갈했고, 전자에 대해서는 남편이 학위를 따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실장은 거기다 대고 꼭 한마디씩 보태곤 했다. 그때 되면 미스 유 마흔 넘지 않을까? 여자는 사실 마흔 아니라 쉰까지도 불안한 시선으로 전망하고 있었지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덧붙였다. 그럼 낳지 말죠 뭐. 애 뽑으려고 결혼했나.

여자는 무를 내려다본다. 연둣빛을 머금은 흰색 몸통이 늘씬하게 잘빠졌다. 일부러 두껍고 알차 보이는 무 대신 최대한 빈약하고 부실해 보이는 걸로 골라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마트 채소코너 앞에서 자신이 무를 자르다가 맞이할 불행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몸통에 칼날을 댄다. 한 손으로는 무를 누르고 다른 손목에 힘을 준다. 생각보다 단단한 무는 조금 갈라지려다 말고, 그녀의 예감은 적중하고 만다. 힘을 주자 꼬리가 스륵, 비어져 나온 것이다. 다시 엉덩이를 몸 안으로 끌어 모은다. 엉덩이끼리 압착하는 운동에 신경을 쓰다 보니 식칼을 쥔 손에 힘이 빠진다. 도마에 집중할 수가 없다. 윗몸 아랫몸이 힘을 주어야 할 대상이 서로 다르다 보니 위태위태한 균형은 결국 깨어져 잘리다 만 무 토막이 부러지면서 눈두덩을 가격하고 씽크대 위에 나동그라진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기는 했지만 이미 상당량의 무즙이 각막에 튄 다음이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급한 대로 손을 더듬자 마침 마른 행주가 닿는다. 그걸 집어 눈가를 닦는다. 그러자마자 여자는 방금 전에 도마 옆에 흘린 다진 마늘을 닦은 행주라는 걸 깨닫는다. 순식간에 안구를 훑은 통증은 쏟아진 탄산음료처럼 머릿속으로 퍼져나간다. 물을 틀려는데 거리감이 사라져 수도꼭지가 손에 닿지 않는다.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과 콧물을 방치한다. 아래로는 진화 덜 된 인간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꼬리가 개처럼 살랑거린다. 그녀는 육체의 문제 앞에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크게 걱정 안하셔도 돼요.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 누구나가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질병이에요.

창백한 얼굴로 21세기 학문외과에 들어서자마자 저한테 꼬리가 생겼다고 말하고 쓰러진 뒤 깨어난 여자에게, 의사가 말했다.

-꼬리는 무슨 꼬리.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 봐. 적어도 30분에 한번은 일어나서 체조해주시고 이틀에 한번은 뜨거운 물 받아서 밑물 좀 해주세요. 상태 좋아지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면 충분하고요. 오늘은 바르는 약만 처방해드렸어요.

-그러니까, 저, 꼬리를 자르는 수술을 해야 하나요.

몽롱한 상태로 여자는 아마 그렇게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꼬리 아니라니까요. 혼자 직립보행 이전으로 돌아가시게요. 다음주 이때 다시 오세요. 수술을 할지 말지는 그때 정밀검사 해보고 알려드릴게요.

여자는 이미 짧게나마 유체이탈의 순간마저 경험했는데 의사는 태연하게 별일 아니라고 말했다. 직장탈출이 심각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며, 출혈이 심하면 직장암을 의심해보겠으나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학문외과 환자 대기실에 쓰러졌던 그 잠깐 동안 꼬리가 점점 길게 자라 중력과 굴지성을 무시하더니 뒤에서 자기 목을 감아죄는 걸 보았다. 그것은 마디마디 굴곡이 있는 모양에다 붉고 미끈거리며 자체 분비되는 단백질 효소로 인해 점성을 띠었는데, 음식물이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들이 곳곳에 붙어 악취를 풍겼다. 그 악취가 이 세상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자는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도 질식감이 선연한데다 정신을 잃은 보람도 없이 통증이 선명했기에, 여자는 자기가 쓰러진 동안 엉덩이에 힘이 풀어져 꼬리가 밖으로 줄줄 풀려나온 거라고 믿었다. 이제는 주워 담아 억지로 장착할 수도 없을 만큼 속수무책으로. 눈을 떴을 때 꼬리가 꿈에서 본 모습과 달리 뭉툭하고 짧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스테인리스 볼에 무를 넣고 문질러 씻는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데 아래로는 꼬리가 비어져나온다. 오늘은 실장이 돌아오기 전에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와버렸으니 거의 무단 조퇴다. 여자는 업무를 하나만 마치고 빠져나왔기 때문에 실장은 어쩌면 여자가 출근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었고, 이제야말로 나이만 먹고 제멋대로에 쓸모없는 올드미스를 잘라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을지 모른다.(실장은 적어도 아이를 둘 이상 낳지 않은 여자란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까지나 올드미스일 뿐이라는 과격하고 도착적인 소신을 즐겨 밝히곤 했다.) 휴대전화 벨이 울리지 않는 걸로 보아 그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그전부터도 실장은 무책임한 말로 여자를 툭툭 건드리며 속을 긁곤 했다. 남편이 잘 풀리면 미스 유는 당연히 우리 사무실 그만두겠지. 그러나 그 어떤 말들도 엊그제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최대한 눈에 안 띄게 한다고 머그잔 모양의 필통 깊숙이에 꽂아놓은 연고를, 실장이 굳이 파헤치고 말았다. 결국 학문외과에 들락거리는 걸 들킨 건 둘째 치고, 실장은 걱정 대신 키득거리며 말하기를, 미스 유 혹시 애 가진 거 아냐. 우리 마누라도 애 갖고 걸렸다던데. 여자들 많이들 그런다던데 물어봐줄까. 그녀는 저 자식이 곱게 늙지 못하고 왜 자꾸 남의 가족계획에 간섭이야 싶었다. 어쩌면 실장은 그가 말한 곱고 참치 같은 여직원을 데려오고 싶어서 그녀에게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실장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 연고를 짜 넣어주고 싶은 충동을 참고 웃으며 손사래쳤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녀는 머릿속으로 마지막 생리 날짜가 언제였는지를 기억하려 애쓰며, 세상만사가 계획과 틀어진대도 그것만은 안될 일이라고 다짐했다. 그 작은 가능성만으로도 머리가 당겨오면서 뇌세포가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실장의 기원 또는 저주가 적중한다면, 여자는 그다음 일을 상상하기조차 주저했다. 다음으로 벌어질 일이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서다. 그녀는 더이상 이 사무실에 출근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재택 아르바이트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만 수입은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다. 그걸 보고 남편은 자신도 일주일에 세번 나가던 보습학원 강사자리를 다시 구할 것이며, 태어날 아이의 온존을 위한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15년 가까이 떠받쳐온 학문의 자리 또한 놓치지 않으려 분투할 것이다. 그러다 둘 중 누군가가 입을 벌리기라도 하면 생활과 학문의 균형은 깨어질 것이고, 남편은 어쩌면 아이를 위해 학문을 접겠다고 결심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결심은 너무 때늦은 것이어서, 경제적인 행위나 첨단의 그 무엇과는 인연이 없는 순수학문을 해온 그가, 서른다섯을 바라보는 마당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란-

더이상 아무런 가정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여자는 씽크대에 검정 비닐봉지를 벌려놓고 음식물 찌꺼기를 담기 시작했다. 채소를 다듬고 남은 부유물들로 배수구가 가득 차 희부연 물이 고여 빠지지 않았다. 그 빠지지 않는 탁한 물은 예상범위가 너무나 빤한 삶을 살게 될 자신의 시야를 닮았다.

 

학문이란 힘이나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네. 가슴으로 하는 거지. 논지를 펼칠 때는 단호하게 하되, 새로운 근거를 갖고 나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학문하는 자는 붙박인 바위나 달구어진 강철이 아니라 유연하게 흘러가는 물이어야 하네.

결혼 후 첫 집들이 때 남편의 술잔을 채워주던 한 교수가 그렇게 말한 걸 여자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는 그때 지금보다 젊었고 아주 조금 정신이 맑았기에 그의 상투적이기까지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작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면서 남편이 걷고 있는 길은 옳고 곧은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다음해 정년을 맞이한 그 교수가 석좌교수직을 물리치고 낙향하지 않았다면, 아마 여자의 믿음은 좀더 오래 지속되었을 터였다.

언젠가 남편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교수들이 하나씩 학교를 떠나고 그 자리를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강사들이 채우는 동안, 처음의 계산과 현재의 삶이 맞지 않게 되면서 그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혼 전 계산대로라면 남편이 박사를 수료하고 2년이 지난 지금쯤 논문이 통과되어 학위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 사람 저 사람, 간혹 이 단체 저 단체의 뒷수발을 들다가 논문이 계속 지체되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서울과 지방대학을 종횡무진하며 시간당 3만원 안팎의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줄곧 해왔다. 그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고학력 소지자답게 일견 품위있고 우아해 보이는 시간강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부르는 말로는 그냥 보따리장사였다.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남편이 그 보따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보따리장사조차도 경력이 되었다. 몇몇 학회지에 논문을 투고할 때 한줄이라도 이력사항을 더 쓸 수 있었다. 실낱만한 인맥도 가끔 기대해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비비고 누군가를 위해 구르는 그 모든 행위는 ‘계약직 강의전담 조교수’가 될 확률을 높여주는 길로 통했다. 그 이름을 얻더라도 당장 내일모레 뒷목 잡고 쓰러질 것만 같은 정교수와 부교수 군단이 빠지기 전까지는 ‘계약직 강의전담 조’라는 글자 또한 빠질 길이 요원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초반에 비빌 언덕의 크기와 높이 및 견고함을 판단하는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가장 중요한 일에 소질이 없었던 남편이 맡은 역할은 거의 언제나 재주넘는 곰이었다.

티오가 하나 나면 자격 요건을 갖춘 대기자는 열두명도 넘곤 했다. 그녀는 처음에 순진하게 생각하기를, 그 대기자들 가운데 티오를 오래 기다린 사람, 처자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차례차례 체제에 입고되는 줄 알았다. 머리로는 학문의 경력과 활동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으나, 실제론 어디까지나 연공서열이라는 한국적 인지상정에 그녀도 길들여져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둘 중 어느쪽도 아니었다. 모두가 열망하는 자리는 결과적으로 그들 중 언덕을 선별하는 감각과 본능이 좀더 예리하게 발달한 사람에게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면 세력구도의 물갈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이루어지며, 그건 곧 남편이 언제 어디에 자리를 잡으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뜻했다. 그런 복잡다단한 정황 속에서 여자들은 매번 끝으로 밀리는 처지라 교수들 가운데는 아예 까놓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성분들은 되도록 석사까지만 마치고 다른 살길을 찾는 게 서로 후회나 시간낭비가 없다고 봅니다. 비교문학에 관심을 갖고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다가 학기말에 마음을 바꿔먹은 여자는 그후로도 줄곧 자신의 선택을 현명하게 여겼다.

남편은 그동안 한학기씩 근근이 한과목이나마 강의를 맡아왔는데, 다음학기가 마지막이었다. 신규 박사수료자도 나오는 마당에 시간강사들 입장에서는 남편조차 제때 빠지지 않는 똥차와 같았다. 그 자리쯤 잃는대도 여자로서는 최소한 경제적 입장에서 아쉬울 일이 없었다. 지방대학까지 오가는 데 드는 차비와 여관비를 생각하면 그동안은 오히려 적자였다. 시간강사란 아직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남을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시위하기 위한 몸짓일 뿐, 그 자체로 생활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교수 무리가 관여하는 학계에 부지런히 얼굴을 디밀어, 다음번 티오가 나면 그때는 내 차례임을 잊지 마시라는 소박한 수단 가운데 하나인 셈이었다.

 

힘이 필요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침에 나선 남편은 그 전날 밤까지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학회 운영비 보고서에 ‘가라 영수증’을 만들어 첨부하고 있었다. 어느 술집에서 썼는지 모를 돈의 출처는 그의 신중하고 믿음직한 필체로 서점이나 간이 인쇄소 등에 분산되었다. 그가 그런 일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그의 두살 위 H선배는 D대학의 빈자리에 내정되었다. 오늘 모임은 명목상 H선배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모두가 입은 열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H선배는 분명 다른 박사들과 마찬가지로 충실하게 줄을 지켜 섰지만 결국 그를 구원한 숨은 패는, 그동안 충성을 바쳐온 본교 교수가 아니라 장인의 친척의 지인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앞으로 새로운 줄을 만들어 새로운 충성을 맹세할 터였다. 그에 비해 남편의 인맥은 맨땅에 헤딩하기 수준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H선배의 소식을 듣고 남편은 말없이 영수증을 끼워맞추는 일을 마쳤으나, 밤새도록 자신에게는 장인의 친척의 지인 같은 사람이 없는지 고민한 모양이었다. 자신이 누구의 힘이 될 수 있는지보다 누가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지를 생각하며 난세를 극복하는 요령을 터득해가는 시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였으나, 적어도 여자는 남편의 입에서 그런 노골적인 말이 나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와 동시에 힘있는 친척이나 지인을 갖지 못한 자신의 지지리도 평범한 부모 때문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축하주를 하자고 학문하는 자들을 불러모은 거였다. 그 모임이 체내에 들이부은 알코올처럼 분해되어 사라지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새로운 동아줄이 떨어질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여자는 언제나 말없이 그 자리를 차리고 안주인 노릇에 온힘을 다했다. 그 힘을 다하다가, 정작 자기 엉덩이에 힘이 풀려 꼬리가 탈출하기까지.

 

일곱시부터 시작된 모임은 식상했다. H선배를 향한 가벼운 축하와 격려의 말이 오간 뒤, 요리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여자의 고정 레씨피에 등재된 진부한 식사가 이어졌다. 그러고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몇명의 교수가 진중하게 주도하자 사람들은 포커패를 펼치고 식탁에 판돈을 올려놓았다. 식탁은 붉은 국물이 말라붙은 수저와 전골냄비와 흘린 반찬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어서, 여자는 쾌적한 노름 환경을 위해 그릇을 치우고 상을 훔쳤다. 누군가는 일어서고 새로운 얼굴도 뒤늦게 나타나서 구성원은 계속 바뀌고 있었는데, 자정이 넘어가는데도 두명의 교수는 어디서 흰머리가 다시 검어진다는 수환동주라도 마시고 왔는지 꿋꿋이 남아 패를 돌렸다. 그쯤 되자 강사와 대학원생 두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슬그머니 베란다로 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응, 연락 받았지. 오늘 모임 안 올 거냐. 학원? 보강(補講)해, 보강.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여기 판 커졌으니까 얼른 뛰어와. 판돈도 넉넉히 뽑아오고. 나 보기엔 밤 새울 것 같다.

어, 엄마. 나 오늘 안 들어가. 응? 당연히 나야 포커 같은 거 할 줄 모르지. 자리나마 지키지 않으면 내 얼굴 기억도 못 할걸. 타교생 출신 신세가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몇통의 전화 통화가 있은 뒤 2시쯤 되자 대학원생 네댓명이 충혈된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이미 전작들도 있었던 모양이었고, 하나같이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는 과로사 직전의 회사원처럼 보였다. 그들의 참혹한 몰골을 보고서 양식있는 교수들은 판돈을 참가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한 다음 일어섰다. 여자는 마음속으로 환호를 올렸다. 머리 부분이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는 쉽게 김이 빠지기 마련이었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정리될 가능성이 있었다.

고조되던 분위기는 교수들의 뜻밖의 일탈에 흠칫거리다 흐지부지되기 직전이었다. 새로 합류한 대학원생들은 왜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는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핏발선 눈으로 서로를 흘끔거렸는데, 흰자위가 시뻘게져서 그런지 그 시선들은 사뭇 공격적이었고 조금 있으면 서로를 향해 칼부림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난감한 공기를 파악한 강사들 가운데 한사람이 남편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람들을 부추겼다.

다들 술 깼지. 판돈도 받았는데 2차 가자. 이 친구, 앞으로 수고 많이 할 텐데 술 좀 먹이고 격려도 좀 해줘야지.

여자는 그 강사가 어깨를 잡을 상대를 착각한 줄 알았다. 앞으로 타 대학에 가서 수고를 많이 할 사람은 줄 잘 타고 물 만난 H선배지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남편이 당황하여 말 꺼낸 강사를 가로막는 걸 보고 여자는 낌새를 챈다. 이럴 때 남편을 몰아붙이면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는 걸 알기에, 그녀는 옆에 둘러선 선배들에게 묻는다. 자기네끼리는 다 알고 있는 얘기라 토막토막 끊어 핵심어만 툭툭 던지고, 여자는 알아서 능력껏 그 말들을 주워 맞춘다.

그랬더니 요지가 나왔다. 남편은 이번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2년짜리 인문학 프로젝트에 행정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행정 실무란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잡무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중추 실무를 이루는 연구자들의 이름은 한명의 교수와 그 아래 세명의 강사들일 터이고, 박사학위가 없는 남편은 그 연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차례가 아직 아니며, 그것은 곧 이 프로젝트가 그의 이력에 효과적인 한줄을 더하지 못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여러번 생각할 일도 없이 학부생 시절부터 십오년 가까이 적지않은 교수들 밑에서 중세 길드의 새끼 도제공처럼 각종 문서수발과 허드렛일을 비롯한 몸 대주기를 생활화하여 사실상 교수실 전속비서라고 보아도 좋을 남편이 이번에도 물리지 못하고 받아안은 업무일 터였다. 여자는 절망적인 비명이 터져나오려는 걸 참는다. 그 프로젝트는 2년짜리로, 남편 본인의 초인적인 노력과 동시에 그의 고독하고 암울한 영혼에 ‘그분’이라도 강림하시지 않는 한 논문학기로부터 다시 2년이 멀어짐을 의미한다. 여자가 머릿속으로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지 표정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남편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딴전을 부린다.

경력에…… 들어가나요.

학문하는 사람은 으레 그래야 한다고 믿기에, (마음속으로는 뭐라든 간에) 지금껏 남편의 일에 대해 단 한번도 적나라한 손익계산서를 작성하여 사람들 앞에 내밀었던 적 없었던 여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여자를 바라보고, 질문을 받은 강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어? 아니 뭐, 어, 그럼. 들어가기는 하지. 완전히는 아니라도.

강사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른 강사들에게 도움을 구하듯이 둘러본다. 그러나 아무도 총대를 매려 하지 않는다.

무슨 대답이…… 들어가긴 하는데…… 완전히는 아니라뇨. 들어간다는 건가요, 아니라는 건가요. 이름 석자가 들어갈 자리에 앞의 두 글자만 들어가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저희 남편이 이 프로젝트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정확히 어딘가요.

처음 조금 얼버무리는 듯했던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진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주어 감정을 싣는 동안 여자의 몸속에서 또다시 놈이 비어져나오려고 한다. 여자는 이제 혀에 힘을 빼고 대신 아랫도리에 준다. 벌써 나오면 곤란하다. 이렇게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라면 예민한 사람의 경우 틀림없이 재앙에 가까운 냄새를 감지할 수 있을 터다. 여자는 더이상 입을 놀려 그들을 집에 붙잡아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처음 말 꺼낸 강사도 사람들을 일으키며 나갈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자, 그런 골치 아픈 얘기는 나중에 둘이 있을 때 하고. 일단은 다 나가자. 제수씨도 같이 가자고. 응?

여자는 불기운과 기름기로 번진 초라한 메이크업을 정리할 새도 없이 번들거리는 얼굴을 대강 기름종이로 찍어내고 외투를 챙긴다. 여자의 동행 여부는 바깥 사람들이 남편을 판단하는 데 모호하지만 하나의 기준이다. 학문하는 남편이라는 잡지에 달린 별책부록 같은 여자. 말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그녀가 어떤 화제로 오르내리느냐도 남편의 위신과 신용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노래방에서 강사들이 권하는 술을 조금씩 받아마시며 여자는 구석에서 얌전히 탬버린을 두드린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며 당부하기를, 정밀검사 전까지 술은 절대로 입에 대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절대로 안되는 것의 크기는 이 술잔을 거부하는 쪽이 더하다. 한모금, 두모금 계속 들어가다가 어느덧 몇잔을 넘어선다. 남편은 세병째 양주를 주문한다. 이미 인사불성이 된 마흔네살 먹은 남자 시간강사가 멤버 평균연령 열일곱인 걸그룹의 노래를 부르며 온몸의 뼈마디를 절박하게 뒤틀고 있다. 여자는 알코올 효소의 공격으로 몸속에 가두고 있던 꼬리가 점점 형태를 갖추고 밖으로 돌출되는 게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기가 돌아올 때쯤 그 강사의 몸은 초현실적인 꼬임의 형태를 갖추고 쏘파에 널브러져 있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화장실 세번째 칸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 재킷 주머니에서 출근길에 샀던 테스터를 꺼내 개봉한다. 실장의 말을 듣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약국에서 사긴 했는데 음식을 장만하고 바쁘게 보내느라 미처 시험해보지 못했다. 약사는 정확한 결과를 위해 아침 첫 소변의 처음 줄기를 흘려보내고 중간부터 적시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마침 화장실에 온 김에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잊어버릴지 모르고, 내일 아침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술이 들어가 있을 게 틀림없으며, 꼬리가 더 자라 통증이 극심해진다면 검사할 경황이 없을 것이다.

스틱에 소변을 적시면서도 여자는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더이상 계획에 들어 있지 않은 이상기후나 변수를 허용하며 살 수 없다고 다짐하며 테스터의 뚜껑을 닫는다. 그때 타일을 밟는 구둣소리가 다가와 그녀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테스터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다. 문이 열려 있지도 않은데 뭘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이어서 들리는 두 여자의 목소리는 익숙한 소리라 하나는 박사, 다른 하나는 수료자라는 걸 금방 알아차린다. 그녀는 기침소리로 인기척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곧 그만둔다. 그들의 입에서 박사 내조자가 알아둘 필요 있는 정보가 흘러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깊이있는 이야기, 그러니까 누군가의 약점으로 잡아 활용할 만한 비리라든가 대학원 내부사정 같은 대화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옷이나 구두와 가방의 상표에 관한 얘기가 수돗물 소리에 섞여 오간다. 조금 더 발전하여 이번에 고향 집에 내려가기 싫다는 푸념, 시집가라는 집안의 성화, 맞선 얘기가 나온다. 그녀들은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하는 동안 삼십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니에요, 차라리 처녀귀신으로 늙고 말겠어, 공부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느니. 쟤 사는 모습 보면 딱 답이 나오는데요 뭘.

여자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쟤 지금 자기 남편 교수 되라고 저렇게 밀어주는데, 결국 저렇게 미적거리다가 나중에 나이 상한선 넘어버리고 말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저쪽이야 쟤가 일을 하니까 먹고는 살겠지. 제 코가 석 자라고요. 그 인간이 나더러 아직도 공부가 덜 끝났냐고 묻데요. 박사수료가 학위인 줄 알더라고.

아이고, 수료나 학위나. 우리 엄마는 옛날 분이셔서 박사 받으면 바로 교수 되는 줄 알아. 돌겠어. 저년이 박사 되더니 눈만 높아져서 시집을 안 간대 세상에, 남의 사정도 모르고.

여자는 그녀들이 눈치 못 채고 나가주기를 기다리며 한손으로 비어져나온 꼬리의 자리를 정돈한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꼬박꼬박 발랐으나 영 차도가 없다. 내일모레 다시 가면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꼬리를 몸속으로 도로 밀어넣는 수술이 될지, 불필요한 꼬리를 잘라버리는 수술이 될지 그녀는 짐작하기 힘들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몸이 몇날이 지나도록 꼬리에 친숙해지거나 통증과 자연스럽게 융화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고통의 원인에 어쩌면 알파이자 오메가일지도 모를, 학문과 그것을 둘러싼 이들의 음험한 신경전에도.

언니, 그런데 여기 화장실 왜 이렇게 냄새가 심해. 빨리 가요.

그녀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여자는 숨을 길게 토해낸다. 칸막이에서 나와 오랫동안 손을 씻는다. 건물 구석에 양변기만 간신히 들여놓은 전형적인 상가 화장실이라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 세면대의 비눗갑은 비어 있다. 흐르는 찬물 아래 아무리 손을 맞잡고 문질러도 피비린내를 비롯하여 인간이 맨정신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감각의 범위를 벗어난 냄새가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여자는 남편의 학문적 위치를 기대하며 사장님이 미쳤어요(폭탄 쎄일)를 비롯한 신규 오픈, 사업 확장, 연예인 출연 등의 광고를 업주들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오는 동안 자신의 몸속은 조금씩 썩어들어 껍질만 남았는지 모른다. 몸 밖으로 돌출되는 꼬리는 그 부패의 결과이자, 역설적으로 부패가 남긴 얼룩이나 부패에서 비롯되는 가스를 피해 탈출하려는 집념을 지닌 자아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꼬리가 주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세를 유지한 채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주머니 속의 테스터를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꺼내볼 용기가 없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동안 8호실 문이 덜컥 열리며, 작위적인 기계음 반주와 따로 노는 절규어린 노랫소리가 홍수처럼 쏟아져나온다. 누군가가 여자의 손목을 잡고 방 안으로 홱 끌어당긴다. 여자는 어두운 홍수 한가운데 내던져진다. 간신히 몸속에 도로 삽입했던 꼬리가 불쑥, 큰 동작에 영향을 받아 통증 게이지는 폭발 직전까지 상승한다. 무대 중앙에서는 한 조교수가 마이크를 쥔 양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노래를 부르는지 구토를 하는지 모를 자세로 괴성을 지르고 있다. 그는 상당히 윗사람인 모양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다들 일어나 아연실색할 몸부림들을 치고 있다. 여자는 찡그렸던 눈살을 펴는데, 손목을 잡은 건 문뱃내를 뿜어내는 서른여덟 먹은 시간강사 선배다. 조교들은 탬버린을 두드리며 두 사람에게 야유를 보낸다.

어디 갔다 왔어, 제수씨. 춤! 그가 손목을 여전히 잡은 채로 말한다.

저, 저기요, 저는 춤 잘 못-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여자의 양손을 틀어쥐고 허공을 휘젓기 시작한다. 여자는 그가 이끄는 대로 이름도 스텝도 알 수 없는 춤을 춘다. 그러다 그가 팔을 넓게 벌린 채 힘주어 여자를 밀어붙이고, 박수로 박자를 맞추던 이들은 자리를 비켜준다. 여자의 등이 벽에 부딪치며 더이상 뒤로 물러날 데가 없어진다. 그의 가슴이 점점 밀착되어온다. 여자의 머리 위로 술냄새와 담뱃재는 둘째 치고 덩어리 진 비듬이 후드득 떨어진다.

저기, 이러시면- 여자는 그다음 말인 ‘안되는데요’를 입 밖에 내지 못한다.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어둠을 가르는 빨강 초록 불빛이 동심원을 그리며 흔들린다. 여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 아까 화장실에서 먼저 나갔을 것으로 짐작되는 박사들이 보인다. 음악소리에 묻혀 들리지는 않지만 그들의 찡그린 얼굴과 입 모양으로 ‘저 인간 또 시작이다’라고 말하는 걸 알 수 있다.

강사가 여자의 허리를 끌어당겼다가 팽이채를 내리치듯이 빙그르 돌린다. 여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이 난장판 속에 아무도 그걸 듣지 못한다. 이렇게 과격하게 움직였으니 주머니 속의 테스터는 흔들릴 대로 흔들려 검사 결과가 비정상적으로 표시될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고 안도 반 불안 반의 한숨을 가볍게 쉴 틈도 없이, 여자의 몸은 한바퀴 반을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기 무섭게 다시 강사의 팔에 안긴다. 강사가 여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과체중을 싣는다. 여자는 반쯤 가려진 시야 너머에 있는 남편을 본다. 남편은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면서 이쪽을 잠깐 보는 듯하더니, 이내 가사 자막을 출력하는 모니터 쪽으로 슬그머니 눈길을 돌린다.

혼자 직립보행 이전 시대로 돌아가시게요.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여자는 지금 그러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엉덩이 밑으로 뜨끈하고 흥건한 핏물이 느껴진다. 강사의 팔에 안겨 쓰러질 듯 쓰러질 듯하면서도 한쪽 손을 맞잡힌 채 노래방 홀 안을 빙글빙글 돈다.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주기까지 한다. 강사가 몸을 꺾는 대로 여자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천장에 매달려 돌아가던 신호등 같은 불빛들이 불규칙한 점멸을 거듭하며 눈동자에 떨어진다. 그 불빛이 주는 시각적 혼란 때문에 여자는 잠깐이나마 불온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탈출한 기다란 꼬리가 치마 밖으로 나와서, 탱탱한 탄력을 가지고 학문하는 자의 귀싸대기를 힘있게 양쪽으로 왕복하여 갈겨버리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