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0대 얘기, 들어는 봤어?
청년세대의 문화와 정치
김사과
소설가.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가 있음.
한윤형
인터넷논객, 저서로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 『뉴라이트 사용후기』가 있음.
정다혜
연세대 제47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사학과 재학중.
정소영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기자.
정소영(사회) 안녕하세요, 저는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기자 정소영입니다. 창비의 이번호 대화는 ‘20대 청년세대의 문화와 정치’라는 주제로 마련됐습니다. 그동안 20대라는 집단에 대해서 보수화되었다, 냉소적이다 하는 식으로 가치평가가 많이 내려졌잖아요, 그런데 정작 20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늘은 소설가 김사과씨, 인터넷논객으로 활약중인 한윤형씨, 연세대 제47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정다혜씨, 이렇게 20대 세분을 모시고 속시원히 얘기 나눠볼까 합니다. 저도 20대고요.(웃음) 꼭 정답이 아니어도 솔직한 얘기들을 나누는 이 자리를 통해서 발전적인 지향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각자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와, 또 20대로서 자신의 정체성, 좀더 구체화한다면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계기를 포함해서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20대, 나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김사과 저는 소설가로 불리는 김사과인데요, 개인적으로 꼭 소설가라기보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여러 분야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일단 IMF를 꼽을 수 있긴 한데, 그것은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정치적 각성을 일으킨 일은 고등학교 자퇴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편이 아니라서 저도 비슷하게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자라긴 했는데 한국현대사라든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아는 게 없었거든요. 쉽게 말하자면 광주민주화항쟁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은 아는데 몇년에 일어났는지 몰라서 전체적인 틀을 잡지 못하는 식이에요. TV에서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가 나오면 광주사건이 저때 일어난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때 탈(脫)학교 모임이라는 게 생기면서 한국 공교육 실태가 옳지 않다 생각해서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나타났고, 거기 관심이 있는 친구가 저한테 그것과 관련된 대안교육 잡지를 알려줬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전에도 제가 받아온 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까, 아 그렇게 다른 길도 존재할 수 있구나,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큰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학교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거기에 있는 대안학교 관련 친구들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사안에 계속 연결이 됐어요. 그러면서 예전에 갖고 있던 모호한 인상들이 구체적으로 잡히면서 진보정당이라든지 반전운동 같은 데 관심을 갖게 됐고요.
정소영 자퇴라는 개인적인 사건이 사회적인 차원의 이슈로 전환시켜주는 계기가 됐네요. 한국사회에서 역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교육인 것 같습니다. 윤형씨도 말씀해주시겠어요?
한윤형 저는 소위 ‘인터넷논객’인데요. 실제로 인터넷에서 정치참여를 하고 정치를 배웠다고 할까, 그런 케이스거든요.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무렵에 고등학생이었는데, 게시판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하고, 강준만과 진중권의 글을 읽고,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요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책이,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안티조선운동사’ 정도인데요, 이게 지난 10년간의 얘기잖아요. 그런데 그 얘기를 하다보면 당시의 정치적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계속 과거가 호출되거든요. 그렇게 한국정치와 현대사 전반으로 계속 관심이 확장된 거죠.
흔히 20대에 대해 얘기할 때 IMF를 많이 거론하잖아요. 그런데 IMF를 20대가 공유할 만한 사건으로 꼽는 것은 다소 단편적인 비평인 것 같아요. 구제금융 사건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전후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느냐가 중요한 문제예요. 그리고 제가 스물여덟이니까 20대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축인데, 중2 때 IMF를 겪었으니까 잘 모르죠. 교수님들도 이렇게 얘기를 해요. 강의를 하다보면, 자기들한테는 IMF가 아주 가까운 과거로 기억되는데 학생들은 잘 모른다는 거예요. 몇년에 일어났는지도. 다시 말해서 IMF 이전의 한국사회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20대 초반 같은 경우에는 이런 경쟁적인 룰에 의해 세상이 돌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다혜 저도 말씀드릴게요. 고등학교 때까지 저는 지방의 일반고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거든요. 일반적인 목회를 하시다가 전두환 호헌조치 이후에 민중목회로 전환하셨어요. 그러면서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을 하시고, 연말엔 ‘민중과 함께하는 성탄절 예배’ 같은 걸 열었어요. 기억을 돌이켜보면, 뭔지도 모르면서 집회 같은 데 많이 따라갔던 것 같아요. 어린시절 부평에서 미군부대 이전 운동이 일었을 때 집회행렬 뒤에서 풍선을 들고 쫓아다녔던 기억도 나요. 그렇게 보고 듣고 생각했던 것들이 제 정체성 형성의 기본을 마련한 것 같아요.
2006년 대학에 들어와서 바라본 광경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막 입학했더니 학교에서 등록금을 12%나 올렸고, 4월말 5월초에는 평택 미군기지 사태가 벌어졌거든요. 국가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든가, 한편으로 미국이라는 강자에 무기력한 정부의 모습이라든가, 혹은 주민들을 고립시킨 채로 행정집행이라며 초등학교를 부수고 그랬는데 방송에서는 “평화롭게 진압되었다”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역사책에서 보던 과거의 말도 안되는 세상과 다를 게 없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20대 세대담론, 문제 있다
김사과 제가 20대라는 세대규정을 처음 겪은 건 ‘88만원세대’라는 말이 나오기 전이에요. 데뷔할 때 쯤인데, 한국 문단에서 20대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담론들이 있었어요. 저는 전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말이 되려면 정말 20대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작가들이 많이 나타나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위에서 뭔가 규정을 내리고 내려다보면서 분석하기 위해서 이름지은 거라고 느꼈어요. 아니면 사람을 나이로 판단하는 한국사회 특유의 안 좋은 습성 때문이거나,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이 사람들을 용도별로 잘 상품화해서 팔아보려는 걸로 보여서 의심했어요. 그러다가 『88만원 세대』를 알게 됐죠. 그 책에 대해서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책에서 말했던 20대 담론이 지금은 상당히 속류화된 것 같아요.
한윤형 저는 20대가 공통으로 체험한 사건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마땅한 답이 안 떠올라요. 물론 공통 경험이 중요한 문제죠. 예전에는 다같이 읽은 문학작품이나 사회과학서, 또 영화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의 20대는 그런 것이 없지 않느냐고 얘기들을 하시죠. 맞는 말이긴 한데, 공통적인 것이 없다는 단정은 실은 대단히 관념적인 말이거든요.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할 텐데,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겠죠. 지금은 곰곰이 생각해봐도 제 또래 남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같은 정도 말고는 찾을 수가 없어요. 20대가 같은 20대를 바라보는 것도 워낙 규정이 안돼 있고, 여하튼 20대 세대담론이란 미지의 영역이랄까 그런 느낌이에요.
정다혜 후배들이랑 『88만원 세대』나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같은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지금의 대학생들에 대해서 다른 세대가 비판을 많이 하잖아요. 예전처럼 거리에 나오지도 않고 집단화되어 있지도 않고, 보기에 따라 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공부시켜놨더니 취업은 안되고, 하나같이 고시공부만 하고, 직장 들어가서도 일 못한다는 소리나 듣고…… 이런 얘기에 가려진 20대의 맥락을 그 책들에서는 지금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서 설명해줬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지금의 20대는 이전 세대와 다른 특수성이 있지만 몇가지 선입견으로 단순화된다면 20대들이 지닌 다른 가능성마저도 묻혀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정소영 과도한 세대담론에 대해 공통적으로 거부감을 표하고 계신데, 그렇다면 그런 담론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 걸까요?
한윤형 저 같은 경우에는, 20대나 세대론이라는 키워드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요. 그러면 저는 오히려 그런 규정을 허무는 글을 쓰게 되거든요. 20대와 다문화주의에 관한 청탁이 오면 20대가 왜 다문화주의와 상관없는지를 쓰는 식으로요. 무슨 얘기냐면, 세대담론은 한국사회에서 계속 동원되어온 것인데, 대개는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젊은 축들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투사하는 수단으로 기능해온 거죠. 그런데 지금의 20대론은, 그런 차원도 있겠지만 거꾸로 사회문제를 전가하는 기제가 됐어요. 가령 저희 부모세대 같은 경우에는 경제문제를 전가하죠. 너희가 눈높이를 낮추지 않아서 외국인노동자가 100만명이라고 생각하는 식이에요. 386세대는 너희가 운동을 안해서 이명박정부가 이렇게…라고 말하죠. 20대가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형국인데, 이 자체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막연히 세대론에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운동을 하라고 하면서도 뭘 해야 할지 자기들도 잘 모를 거란 말이에요. ‘청년 이그나이트’라는 단체가 있는데, 거기서 설문을 했더니 의외로 운동이 필요하다고 한 20대가 꽤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무슨 운동이 되어야 하는지 그들 역시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거죠. 그건 윗세대가 볼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20대에게 투사되는 여러 비판들이 현재 정치 자체의 무기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다혜 20대의 정치의식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지금의 3,40대에 비해 20대가 어떤지를 묻는 건지, 예전의 20대에 비해서 지금의 20대에 대해 얘기하라는 건지 모호해요. 겉으론 전자인 것 같지만 본질은 후자인 경우가 많거든요. 80년대의 20대에 비해서는 달라졌을 수 있겠죠. 사회에 대한 관심도 그때에 비하면 약화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까지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예전처럼 모든 정치문제에 관심을 갖고 표출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표출하지 않는다고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집단적인 표출의 형태가 많이 줄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수가 모여서 끊임없이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모순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생활이 너무 바쁘고, 취업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고요. 가끔 정치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사치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요즘의 대학 총학생회에서는 전반적으로 학외 사안보다는 학내 복지에 관심이 높은 편인데요. 저희 총학생회에서 이번에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고, 당연한 것인데 여태 제기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는 사안인 등록금, 주거, 밥값, 취업 등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거든요. 그래서 일명 ‘생존권 학생회’라고도 하는데,(웃음) 그런 ‘기본권’들에 대해서 그동안 한번도 정면으로 문제제기해본 적이 없다, 등록금 비싸다는 얘기만 했지 등록금 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학내외로 발언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를 반성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런 점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등록금 문제는 당연한 것이고, 그밖의 사안들에 대해서도 단지 복지 차원에서만 풀려고 하거나 무턱대고 대정부투쟁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20대를 대변하는 학생회, 그 안에서 20대의 정치세력화도 고민하는 총학생회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건 결국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요즘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
정소영 그런데 8,9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분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우리를 타자화하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그들을 타자화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운동권’의 경직성이나 엄숙주의 같은 표상이 그런 예일 텐데, 윗세대는 “우리도 재밌었다, 재미가 없으면 학생운동을 왜 했겠느냐”고 얘기하거든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계속 끌고나간다면, 자기 세대의 문제를 사회의 진보와 연결시킬 수 있는 최초의 세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좀 과도기라는 생각도 드네요.
한윤형 이를테면 김용민 교수 같은 분의 논리가, 386들은 20대에 투쟁을 하고도 이렇게 무력하게 발목 잡혀 있는데 너희처럼 젊을 때부터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는 건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사회에 진출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질 수 있고요. 계기들이 남아 있다고 보거든요. 그분들은 대학 때 운동을 하다가 교수가 되는 것을 표준적 삶으로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삶의 정답에 대해 생각이 다르니까요. 지금처럼 팍팍한 세상에서는, 오히려 회사에 입사해서 몇년 다니다가 이직이나 퇴직한 후에 정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뒤늦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분들이 많더라고요.
정소영 윤형씨가 느끼는 대학사회의 실감은 어떠세요? 학교에 오래 다니신 걸로 아는데요. 입학하던 2001년에 비해 2010년은 또 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한윤형 아직도 다니고 있습니다.(웃음) 지금은 휴학중인데, 어쨌든 대학사회의 변화는 학번 낮아지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아예 1학년부터 ‘전투준비’를 하고 온다고 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취업이나 그에 유리한 쪽으로 전과할 생각을 하고 입학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정다혜 올해 2010년부터 많은 학교들이 다시 학과제로 바뀌게 돼요. 예전에는 광역학부제를 해야 정부에서 대학에 지원금을 줬어요. 그래서 다들 광역학부제를 했는데 너무 문제가 많으니까 학교들이 나서서 학과제로 다시 돌리고 있거든요.
한윤형 현재 대학생의 정치적 파편화에는 학부제의 영향도 컸다고 생각하는데, 과의 선후배 관계가 전부 무너져버리거든요. 2001년, 2002년부터 같이 모일 수 있는 공간들이 없어졌어요. 지금은 강사인 고학번 선배들의 얘기를 들으면, 예전에는 학과마다 그 자체로 동아리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과방 가면 서로 통성명하고 인사해야 하거든요. 이런 상황이 되니까 학교에서 혼자 다니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그런 식으로 원자화되는 것이 변화의 핵심인 것 같아요. 정치의식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없어진 것은 사실인데, 그걸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가 문제겠죠. 내 삶의 고민이 곧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엮어내는 틀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20대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민주화 이후에, 자기 삶의 문제들을 규정하는 데 정치가 필요하다는 의식 형성에 실패한 것이죠. 모든 학번이 자기가 입학했을 때 운동권이 끝물이었다고 얘기하긴 합니다만, 제가 입학하던 2001년에도 학생운동은 망해가는 과정이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몰랐다고 봐야죠. 정치투쟁을 해야 할지, 등록금투쟁을 할지를요. 당시에는 등록금투쟁이 그 자체로 정치라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등록금투쟁을 통해 학생들의 신망을 얻어 집권하고 나서, 그 다음에 정치를 펼쳐보자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생활과 정치가 괴리되는 상황에서 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는데다 공통화제도 없고요. 기본적으로 커뮤니티가 있어야 발전이 가능한데, 커뮤니티 자체가 붕괴되어버린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남은 것은 인터넷상의 취미 커뮤니티밖에 없거든요.
김사과 제 경우에는, 예술대학이라서 일반대학과는 좀 달랐어요. 저희 학교 학생들은 일단 취직하려고 동아리를 만든다거나 리포트를 잘 써서 좋은 학점을 받으려는 쪽은 거의 없었거든요. 제가 영화과에 들어갔는데 수업에서 강조했던 게, 미학적 완성도의 중요성이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정치적인 것을 과도하게 싫어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돌아보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네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형식적으로 완성도있게 표현되면 그게 좋은 작품이다”라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거기에 동의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내용에 대한 토론을 하지 않는 거예요. 수업시간에도 항상 그것이 ‘어떻게’ 잘 되었는가, 스타일에 대한 토론만 하고요. 직접적으로 정치적 색채를 띠는 것을 좀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제가 한번은 굉장히 관념적인 것을 써갔는데, 선생님이 무슨 내용이냐고 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당혹스러워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반발심으로 더 그런 색채가 강한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게 된 면이 있어요.
그런데 정권 바뀌고 촛불집회와 학과 존립문제가 얽히면서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정치적인 문제를 예술의 형식으로 다뤄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사안에 어떻게 대처할지 힘들어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어요. 80년대 민중예술에서 하던 것을 반복하는 모습들도 있고요. 정치적인 관심을 과도하게 갖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해야 하나? 자기 작품이 정치적으로 비치는 것이 안 좋다고 여기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다들 정치적인 문제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지 않고 혼자 마음에 담아두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정다혜 학교마다 문제가 다르게 나타나겠죠. 저희 학교에서 요즘 큰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학생식당 밥값인데요. 식당이 리모델링되면서 2500원에서 3000원 하던 밥값이 4200원에서 4800원 정도로 올랐어요. 어떤 친구들은 인테리어가 근사해졌다고 좋아해요. 사실 맛도 있어요. 밖에서 파는 7,8천원짜리만큼은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사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잖아요. 거기서 팔던 저렴한 메뉴가 없어지면서 그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 내려가서 라면을 먹어야 하는 현실이 존재하는데, 새내기가 들어와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순간에도 그런 문제가 드러나요. 어떤 친구들은 과반에 애정을 갖고 있는데 후배들 밥 사줄 돈이 없어서 민망하니까 못 나와요. 회장단을 하라고 해도 돈 없으니까 부담스러워서 못하겠다고 하고요. 어떤 애들은 부모님께 한달에 100만원씩 용돈 받아서 패밀리 레스또랑 가서 친구들 밥 사주는데요.(웃음)
정소영 분리정책 같은 느낌이네요.
정다혜 학교에서는 고객만족도, 써비스, 품질 향상을 내세우고 다양화와 고급화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서, 식당 세곳 중에서 한곳만 그대로 유지하고 나머지 두곳은 차별화라는 명목으로 고급화하는 거죠. 일부 학생들은 그것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어요.
한윤형 계급이라는 말을 안 써서 그렇지, 지금의 20대 대학생이 계급문제를 가장 명료하게 지각하고 있을 거예요. 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였는데 지금은 80%가 넘잖아요. 그때는 농촌 출신 학생이라도 일단 들어오면 학생들끼리는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했고 졸업한 후에도 비슷한 조건으로 취직할 수 있었어요. 말하자면 대학 내에서 평등주의나 민중주의가 구현됐는데, 지금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녀도 구분이 돼요. 서울 학생과 지방 학생으로 나뉘기도 하고, 서울에서도 물론 강남 출신이 가장 조건이 좋죠. 거기는 과외자리도 부모들이 알음알음으로 마련해주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지방 학생들은 알선업체에 소개료 떼이면서 겨우 얻잖아요. 그런데 강남인 경우를 빼면 역설적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더 부유한 경우가 많아요. 등록금과 서울의 주거비용이 워낙에 비싸다 보니 지방에서는 좀 사는 집에서만 자녀를 서울로 올려보낼 수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은 또 자기들끼리 어울리죠.
그런데 방금 과외 얘기를 했는데, 그나마 과외자리라도 얻을 수 있는 건 일부 학교에만 국한된 거 같아요. 대다수 학교의 대다수 학생들은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데서 몸으로 때우는 알바를 할 수밖에 없어요.
정다혜 저는 외국어에서도 격차를 많이 느껴요. 가령 국제학부 학생들을 보면 5,6년씩 외국생활을 하다 온 친구들도 많고요. 그러니 기본적인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요. 한끼 밥값으로 적절한 금액이 얼만지 학생들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국제학부 쪽은 만원 정도를 생각하더라고요. 또 받아왔던 교육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경우 지방의 일반고에서 평범하게 공부했고 영어는 중학교 때 처음 배운 정도라면, 그 친구들은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식이죠.(웃음) 고등학교 때 300만원짜리 과외를 받던 사람도 있고요. 방학이면 외국에 나가는 게 자연스럽다거나, 교환학생 경험이 필수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고요.
정소영 계급문제를 일상에서 첨예하게 느낀다는 점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20대 가운데 서로 다른 계급끼리 문제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이 진짜 문제인데, 그걸 불가피한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어떤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김사과 20대에서 다른 계급 간에 서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문제는, 일단 가는 곳이 분리되니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예요. 예전에 비싼 영어학원을 한두달 정도 다녀봤는데, 학생들의 세계가 정말 달라요.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보면 스키 타고 왔다 그러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면 유학이나 해외 어학연수 준비중이라 그러고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는데 가난한 집안 출신이 끼어들면 대화가 전혀 안되는 거죠.(웃음)
한윤형 20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그러니까요. 표준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때쯤 취직을 하고, 이때쯤 결혼을 하고, 이때쯤 애 낳아야 한다는 기준이 자식들에게 압력으로 들어오죠. 부모와 자식 세대가 비슷한 패턴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사회가 됐어요.
정다혜 예전에는 ‘계급간 교류’라고 할 만한 장이 있었죠. 학회나 동아리라든가 생활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생활이 서로 너무 달라요. 수업 끝나면 알바하러 가기 바빠서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면 생활과 의식이 점점 더 달라지고요. 잘사는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할 게 많아요. 하다못해 영어학원에 가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일주일에 알바 네다섯개씩 하니까 여유가 없어요. 서로 다른 계층끼리 만나고 소통하고 공동의 무언가를 꾸려갈 계기가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아요.
너희의 부모를 착취하라?
정소영 대학 내에서 굉장히 암울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가족 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 20대는 형제가 한명 있거나 자기 혼자뿐이라 옛날보다 부모의 지원이 집중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과잉투자나 과도한 기대가 생겨난다고 하는데, 이것이 가족 내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지만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죠. 과도한 기대가 가정 내에서 20대에게 부담감이나 심하면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런 점에 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김사과 이 얘기는, 제가 봤을 때 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부모세대의 과도한 기대와 과잉투자는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예전엔 아이가 다섯명이면 한명만 대학을 보내고 나머지는 공장에 보내서 대학 다니는 형제를 지원하게끔 했다면, 지금은 여럿을 낳느니 애초에 한명을 낳아서 집중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정소영 양상이 다를 뿐 원래 과잉투자가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김사과 맞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좋은 결과를 내던 것이 갈수록 투자대비 효과가 줄어들면서 지금은 그런 전략이 와해되는 느낌이에요. 못사는 집에서 한명에게 집중투자한다 해도 좀더 괜찮은 집안의 한명을 따라가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이 개념이 붕괴되는 것 같거든요.
한윤형 이 문제는 현재 20대의 부모세대인 50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학벌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고요. 자기가 부모의 지원을 못 받아서 학교를 더 못 다녔기 때문에 인생이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자기 자식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좋은 학교에 보냈는데, 요샌 좋은 학교를 나와도 할 일이 없게 된 거죠. 부모들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에요. 자신은 삼류학교 나왔어도 지금 연봉 5000만원 받고 사는데 자식은 일류대 보냈는데도 왜 되는 게 없는지, 엄청난 간극이거든요.
정다혜 교육열을 통해서 사회적 계층이동을 해오던 것이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구조가 됐잖아요. 사회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이상,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더 심각해질 것 같아요. 한편 요즘 20대는 상황 자체가 부모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돼 있는데,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죠. 현실적으로 지금의 경제구조로는 20대가 자립할 수 없어요. 단적으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과외비가 똑같다잖아요. 그런데 연간 천만원 가까이 되는 등록금을 내야 하고, 집을 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는 상황이니까 부모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만큼 괴리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정소영 가능하다면 너희의 부모를 착취해라, 그런 말도 있던데요.(웃음)
한윤형 그게 나름대로 수완있는 태도지요. 부모를 뜯어먹을 능력이 되는 사람은 부모가 내세운 통금을 지키면서 쇼핑할 때 엄마랑 같이 가서 옷을 얻어내는 식으로 영리하게 실천하고 있고-
정다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삶의 방식은 확연히 달라요. 저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거의 아르바이트로 마련하는 편이거든요. 그랬을 때 부모는 자식이 대학을 언제 졸업하든, 어디에 취직하든 인정할 수밖에 없고 어떻게든 제 인생 잘살겠지 하고 말죠. 그런데 자식의 대학 등록금이 회사에서 4년 동안 나오면 4년 만에 반드시 졸업하길 바라거든요. 용돈을 주면서도 나중에 근사한 데 취직하길 바라고요.
한윤형 계층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부모가 아주 부자인 경우에는 자기 맘대로 살 수 있겠죠. 가난한 친구들은 다른 의미에서 그럴 수 있어요. 자기 이름으로 학자금이 빚으로 누적되고 있는데 부모님이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은 아닌 거죠. 그 중간이 문제인데, 압박을 가장 많이 받아요. 차마 여기서 제가 부모님한테 듣는 얘기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사실 저 같은 경우야말로……(웃음) 하여간 이렇게까지 자녀에게 몰빵으로 투자하는 것에서 문화지체가 생기는데, 아마 그 아래 세대는 좀 다를 것 같아요. 386세대 중에는 못사는 층은 아예 투자를 안하더라고요. 50대는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가르쳤거든요. 그 차이가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사실 이것이 공동전선이라서, 경악스럽긴 하지만 요즘은 학점관리도 부모님이 다 해주잖아요. 자녀의 주위를 뱅뱅 돌면서 다 챙겨준다고 헬리콥터 맘, 헬리콥터 파더, 그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수혜자인 20대 본인이 그걸 아주 당연하게 여겨요. 다시 말해서, 독립을 원하는 20대에게는 부모의 지원이 그들을 주눅들게 하는 요인일 텐데, 애초에 독립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고 부모와 자기가 한팀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공생구조인 거죠.
김사과 저는 부모에게 많은 지원을 받는 사람일수록 궁극적으로는 주눅든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봐요. 그들의 부의 원천을 부모가 쥐고 있잖아요. 얼마전 삼성 이건희 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딸들과 손잡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 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가족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거였어요. 나이도 많으신 분들이 아직도 아빠 손 잡고 그 딸의 자격으로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런 말 하면 웃겠지만, 내가 낫다 싶었거든요. 이런 식으로 상류층에서는 가족이 더욱 공고화되는 것 같아요. 이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요즘은 그런 식으로 지원해주는 부모라면 일단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런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상류층에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도 부모의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한윤형 학교에서 수업하는 강사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학생들한테 가족에 관해 페이퍼를 쓰게 하면, 자기들 생각에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이미지로 상정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래요.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크고, 집에서 내쫓지 않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더라는 거예요.
김사과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어요. 다른 대학에서 교환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연극으로 이런저런 것을 만들어와야 했어요. 그런데 제일 반항심이 강할 거라고 짐작되는 19살, 그러니까 지금 갓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부모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는 연극을 만들어온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 그래서 우리를 보고 온순하다고 하는 것 같아요. 니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부모한테 반항해야 할 때다, 그런 거 있잖아요.(웃음)
청년세대는 어떻게 살고 소통하나
정소영 다들 비관적인 세태를 말씀해주셨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세분은 부모의 지원하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자립해서 꾸려나가는 삶의 방식이 더 줏대있다는 점을 강조하시네요.(웃음) 20대의 현실을 대학사회와 가족 내의 문제로 살펴봤는데, 지금부터는 20대가 어떤 새로운 감수성을 가졌는지에 대해 더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지금의 20대에 대해서는, 앞서 규정하기 어렵다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경제적 가치가 전부가 아니라고 느끼고 있지 않나요?
김사과 지금의 20대는 굉장히 개별적으로 존재하는데, 그들 간에 소통이 없다는 점에서 뭐랄까 일본사회처럼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칸막이 있는 스타벅스 같은 느낌 있잖아요. 개별적으로 있는 것은 좋은데, 그게 정말 혼자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다가가는 데 겁을 먹어서, 아니면 다른 사람과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다들 혼자 있으니까 혼자 있는 것 같아요.
한윤형 일본처럼 변해간다는 사과씨 말에 공감이 가는데요, 각자의 취미 단위로 분절되어 있어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끼리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는데 그것 바깥으로는 확장이 안되잖아요. 예전에는 어떤 분야가 됐든 뭔가 크게 유행하면 모두가 그것을 경험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미드 좋아하는 친구들은 또 그들끼리 어울리죠. 다같이 모일 계기가 없어요.
김사과 지금은 몇개의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는 소통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데, 그 커뮤니티들 간의 소통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어요. 커뮤니티마다 그들만의 특성이 있잖아요. 그것을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더라고요. 스스로는 많은 사람과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랑 비슷하고 균질적인 사람들과만 소통하려 하고 사람들은 단순하게만 반응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정소영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방법과 양상도 초기에 비해서 많이 달라졌죠?
한윤형 초기는 게시판 시대였기 때문에 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들 보게 되는 식으로 정치토론이 진행됐는데, 그후 포털과 블로그 시대가 되면서 그런 싸이트가 존속할 수 없게 됐죠.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면 자기 블로그에 글을 올리더라도 논쟁이 벌어지기 힘들어요. 논객이 ‘데뷔’할 공간 자체가 사라진 거죠. 그래서 오히려 취향 커뮤니티에서 정치 얘기를 나누게 되는 것 같아요. 그쪽이 차라리 더 재미있죠. 남자들은 게임 커뮤니티, 여자들은 성형 커뮤니티가 그나마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패션이나 다이어트 쪽도 규모가 크죠. 축구나 야구는 3,40대가 좋아하는 것 같고, 20대 남자들은 게임이 대세죠. 그런데 그 취미 내에서도 숙련도에 따라 위계가 있어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런 취미를 하나씩 가져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웃음) 저는 스타리그(온라인게임 스타크래프트 동호회)를 좋아하는데, 거기서는 다른 모든 이슈에 대해서도 게임을 잘 아는 순서대로 말빨이 서요. 지난 촛불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면 3,40대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를 평등주의 혹은 민주주의로 해석하는데 실제 커뮤니티 내부는 다분히 네임밸류랄까 그런 것에 지배되는 사회거든요. 발언권도 달라요.
김사과 제가 자주 가던 패션 까페를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도 큰 차이가 나요. 거기 ‘자랑방’이 있는데, 누구는 G마켓에서 산 옷을 올리는데 누구는 샤넬백을 수십개 올리는 식으로요. 그렇게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그나마 하나로 모아지는 이슈는, 기껏해야 일본 나쁘다, 김연아 예쁘다, 성폭행 형량 너무 낮다, 아이돌, 그 정도죠.
한윤형 커뮤니티 문화에 대한 오해는 제 생각엔 진짜 게으름의 문제예요. 지난 10년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떤 식으로 소통이 이뤄지는지 깊이 분석하지 않다가 촛불로 움직임이 가시화되니까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나서 다시 치워버리는 식 아닌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요새 쓰고 있는 책에 문학관련 논쟁이 나오는데, 거기 창비도 등장해요. 그렇게 악역으로 출연하는 것은 아닌데, 뭐랄까 대응이 계속 수세적이었어요. 따라가고 맞추고 관심을 끄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소통하는지 제대로 분석했다면 촛불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도 더 분명히 얘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칭찬밖에 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요. 촛불에서 인터넷까페들의 활동에 대해 과도한 칭찬을 한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이전까지를 통틀어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데서 중요한 부분인 인터넷문화를 제쳐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정다혜 저는 오프라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지금은 대학생들의 생활공간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인터넷의 출현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공간을 굳이 학생회나 동아리로 삼지 않아도 되게끔 하는 측면도 있잖아요. 저희 학교에서는 요즘 중앙도서관이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각 단과대마다 생활공간이 있고 단과대 안에 있는 독서실을 많이 이용했는데, 지금은 시험기간이 되면 다 중앙도서관에 가요. 일반적인 동선 자체도 그래요. 학교 정문→중도→강의실→중도→집이에요. 갈 데가 없으니까 중도 가서 앉아 있다가 수업 듣고 와서 멀티미디어실 가서 영화 한편 보고 집에 가는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요새 유행하는 ‘잉여’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데요. 어떤 사람이 진짜 심심해서 잉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실제로 ‘잉여’짓이 전혀 이로울 것이 없는데도 그렇게 되는 사람이 많아요. 이렇게 돼버리면 20대가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갖는다는 게 사치인 것 같아요. 점점 개인화되고, 온라인 공간이 부각되죠.
정소영 개인화된다고는 하지만 블로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윤형 그런데 블로그에서는 토론이 이뤄지기 어려워요. 트랙백 몇번 왔다갔다하다가 어느 한쪽이 더이상 얘기하기 싫어져서 그만두고 그 위에 다른 포스팅을 올려버리면 토론이 끊기거든요. 블로그라는 것 자체가 다분히 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니까요. 다들 처음에는 블로그에 자기 얘기를 늘어놓죠. 그런데 몇년 하다보면 지겨워져요. 초기에는 메타블로그가 있어서 블로그들 간에 꽤 매개를 해준 셈인데 그것들도 지금은 잘 안돼요. 남의 블로그에 찾아 들어가는 건 네이버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됐죠. 이제 통로가 없는 거예요.
정소영 사과씨는 어떻게 느끼세요? 개인블로그도 운영하셨던 걸로 아는데요.
김사과 결국 닫았는데요, 내가 누군지 공개된 상태에서 예상보다 너무 많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된 채로 뭘 쓴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더라고요. 제 블로그에 분명 사람들이 꽤 많이 오는데 답글이 하나도 안 달린단 말이에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는 거잖아요. 제가 블로그를 하고 싶었던 것은 블로그를 통해 여러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였는데요, 계속 방문자가 늘어나기는 하는데 그게 진짜 소통으로는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가끔씩 달리는 댓글은 아 좋네, 이런 거고, 아니면 다짜고짜 욕을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2PM 박재범 사건 이후에 인터넷문화에 대해 큰 공포를 느꼈거든요. 진짜 강한 사람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겠다 싶은데, 전 그런 식으로 강해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게까지 악에 받쳐서 싸우면서 블로그 하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정소영 윤형씨는 잘 살아남고 계시네요?
한윤형 저는 2007년부터 실명으로 쓰고 있는데, 왜냐하면 글도 팔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실명이다 보니까 친척들도 다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사생활 얘기 절대 못해요.(웃음) 사실 정치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지만, 다 이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태를 바라보는 태도들이 점점 ‘좋아요, 싫어요’의 두 종류로 나뉘게 돼요. 인터넷은 신문과 달리 내 생각과 똑같은 것만 골라서 보기 쉽잖아요. 내 생각에 동의가 되는 것만 볼 수 있고, 자기에게 불편한 것은 지나가버리면 그만이에요. 인터넷 용어로는 ‘빠’와 ‘까’라고 하는데, 정말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사과 저는 특히 회의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요새 인터넷에 온갖 리뷰들을 많이 올리잖아요. 나 어제 뭐 봤다, 어제 뭐 했다 식으로요. 그런데 이게 ‘어제 뭐 샀다’와 전혀 분별되지 않아요. 어떤 깨달음도 없고요.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과 어떤 브랜드의 옷을 샀다는 것에 차이를 전혀 두지 않는다는 거예요. 촛불집회 이후 정치적으로 각성된 여성들이 블로그에 어제 산 비싼 옷에 대한 품평을 쓰다가 또 현대문명을 비판한 책의 독후감을 올리는데 이게 아무런 구별 없이 같은 선상에서 이뤄지는 거죠.
한윤형 생각이 다르면 논쟁을 해야 하는데 ‘싫어’ 하고는 지나가버리는 거죠. 그리고 아까 다혜씨가 잉여라고 말씀하신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예전에 루저나 잉여라고 말할 때는 영화 <비트>에서처럼 학벌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사람을 그렇게 불렀어요. 그런데 지금은 학벌사회 내에 있는 사람들이 잉여가 되거든요. 다들 비슷하게 대졸이라는 간판을 달고 나왔는데 할 게 없는 거죠. 사회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큰 것 같아요.
김사과 스스로 ‘잉여’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을 보면 비싼 옷도 잘 사고 직업도 전문직인 것 같고 영어도 잘하고 그러거든요.
정다혜 그게 잉여의 본질이에요. 잉여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윤형씨 말씀대로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도 할 게 없는 사람, 또 한편으로는 정말 힘든 처지에 놓여 있지는 않은 사람을 가리키죠. 힘들고 바쁘면 잉여가 될 수 없어요. 당장 돈 벌어야 하고 장학금 못 받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잉여롭게 산다는 것은 사치거든요.
새로운 취향과 감수성은 존재하는가
정소영 20대가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점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는데, 현실은 취미 커뮤니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거나 ‘잉여’가 되어버렸다거나 하는 것뿐인가요? 20대만의 차별화된 감수성은 어떤 것일지-
김사과 그 부분에서 제가 요즘 생각이 바뀌었는데요. 원래 20대만의 차별화된 감수성이 있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희망을 가졌는데 요새는 회의적이에요. 지금 젊고 새로운 감수성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무언가가 아니라, 상품을 늘어놓고 어떤 것이 더 예쁜가 판단하는 자본주의적인 취향에 머무른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진보에 대한 욕망이 내일 백화점에 가서 제일 예쁜 코트를 사겠어 하고 마음먹는 욕망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에요.
한윤형 일전에 20대와 다문화주의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제가 비판했던 것도 그런 지점이에요. 어른들 생각에는 20대가 뭔가 다문화주의적일 것 같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만 실은 상품화될 수 있는 차이만 변별하는 능력이에요. 20대가 취미를 안 가지면 자본주의가 안 돌아갈 것 아니에요? 다양성의 인정도 상품에 대해서만 가능해요. 시민단체 활동가로 생활하는 친구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아, 너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가졌구나 하고 존중해주지 않거든요. 현금화가 되는 취미만 취미가 되는 것 같아요.
정소영 사과씨의 이번 장편 『풀이 눕는다』에서는 각주를 달아서 팝음악들을 언급하는 시도를 보여줬는데, 이런 표현방식이 의도한 것은 어떤 건가요? 저것 역시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김사과 그건 제 또래의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싶어서 그런 건데요, 팝적인 느낌을 주고 사람들이 ‘갖고 싶게’ 만들려는 거였어요. 엄격하게 말하면 저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어떤 취미를 가져야 세련된 것인지가 고민되는 세상이니까요.
정소영 세련된 것에 대한 취향 때문에 외면받고 있는 주제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분단문제는 어떨까요? 지금은 남북관계나 통일 같은 이야기는 젊은이들 대화에서 보이지 않게 돼버렸잖아요. 실제로 분단이라는 상황이 끼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큰데도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다혜 저는 조금 다르게 보는데요. 남북관계나 통일에 왜 관심을 갖지 않느냐 하면, 그 주제가 세련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에 맞닿아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20대 대학생들이 분단문제를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군대 들어갈 때 말고는 없잖아요. 저도 통일문제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거기에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좁다고 느껴요.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작은 활동이라도 할 수 있고 그것이 모여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친다면 충분히 행동이 가능할 것 같은데,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기 때문에 통일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김사과 세련됨의 문제와 분단문제는 이렇게 보면 엮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촌스럽고 세련된 것에 꽤 민감한 편이에요. 제 주변의 예술분야 전공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그들이 느낀 격렬한 감정을 한마디로 옮기자면 너무 촌스럽다는 거예요. 삽을 들고 뭘 한다든가, 시장에 나가서 오뎅을 먹는다든가 하는 것이 모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거예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당연히 있지만 일단은 촌스러움에 대한 분노가 굉장히 커요.
그런데 분단문제에 대해 제가 얘기하면 일단 그 주제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촌스러워서 귀 기울이기가 힘들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봤는데, 웃기다고 느끼는 게 뭐냐면, 우리나라를 기본적으로 촌스럽게 만드는 것은 결국 국가보안법의 존재, 아직 전쟁중이라는 것이잖아요. 휴전상태긴 해도요. 아무리 세련된 옷을 입고 세련된 클럽에 가서 놀아도 급진적인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당장 감옥에 끌려갈 수 있단 말이에요. 만약 사람들이 세련됨에 대해서 정말로 소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촌스러워 참을 수가 없어서 뭐라도 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윤형 세련됨의 문제를 떠나서, 저는 비판이나 비평활동 같은 데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남북문제 같은 것이 젊은 세대의 논의의 맥락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우리가 하루하루 살지만 자기 삶에 대해 객관화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비평이라는 것은 자기 삶을 객관화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젊은 층이 현재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비평을 하면서 비평의 필요성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정치의 대안을 어디서 찾을까
정소영 그러면 논의 방향을 좀 돌려서, 좀더 구체적인 정치문제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스무살 이후로 처음 맞이한 본격 보수정부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각자 이명박정권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말씀해주시죠.
한윤형 20대에게 이명박정부는 취향적으로 전혀 맞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정서에 영합하려는 선거전략으로는 박근혜를, 한나라당을 막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좋아요, 싫어요의 구분을 넘어 윤리문제로 넘어가야 정치의 영역이 시작되는 건데, 다들 그걸 돌파 못하잖아요. 이명박은 세련되지 못해서 20대 취향에 안 맞는 건데, 가령 박근혜도 똑같을 거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보수화된 20대가 MB 당선의 제1원인은 아닌 것 같아요. 20대들은 이명박을 많이 찍었다기보다는 정동영을 많이 안 찍었어요. 해놓은 게 없다고 봤기 때문일 거예요. 반면에 문국현이나 권영길에 대한 투표는 20대가 다른 세대보다 높았어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은 다른 세대에 비해 컸던 거죠.
정다혜 지난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이 낮았던 건, 자기를 대변할 세력 자체가 없었다고 느꼈던 것이 더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찍을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 이명박정부에 대한 평가를 내려본다면, 예상보다 더한 정부다, 이 정도? 남북관계 퇴조나 신자유주의 시장정책은 예상했지만, 촛불집회 강경진압, 용산참사와 이후 대응, 이건희 특별사면 같은 것을 보면서 점점 실망하게 돼요. CEO 출신 경제 대통령에게 기대도 있었을 텐데, 그것마저도 이번 경제위기에서 무리한 지출로 경기를 부양하려 들거나,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거나, 등록금 인상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눈앞의 수치나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비전을 갖춘 정부인가 의심이 들었어요. 이제 이명박정부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자가 20대 중에 얼마나 있을까 싶네요.
한윤형 민주화세력의 역량을 다시 조직하고 꾸려나가는 것이 문제일 텐데, 그런 노력 없이 20대가 보수화돼서 권력을 뺏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 자체를 계속 회피하려는 얘기 같아요.
정소영 그럼 이명박정부의 반대편에 있는 진보개혁적인 정당들에게 각각, 혹은 합쳐서 얘기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요?
한윤형 일단 진보신당에 대해서는, 노회찬이 아이폰에만 신경쓰는 듯한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아요. 정체성과 전략의 부재를 뉴미디어 전략을 통해 때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런 얼리어답터들은, 사실 친노무현 성향이 강한 층이거든요. 그들이 노회찬의 아이폰 활용을 보고 좋아하기는 하겠지만 표가 오느냐는 다른 얘기죠. 진보신당은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심상정 두 스타정치인의 행보를 통해서 부족한 내용을 채워넣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정다혜 가장 중요한 건, 각 계층·계급들과 함께 정책을 만드는 일 같아요. 당사자들과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좀더 적극적으로 가시화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 정당을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는 그런 노력이 적었고, 진보적인 이미지만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SSM(기업형 슈퍼마켓) 사례를 보더라도 생활에 맞닿아 있는 문제에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시도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당사자들과 집회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데서부터 다시 진보정당들이 정책적으로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통로들을 많이 열었으면 합니다. 20대들과 함께 의제를 정책으로 만들어가고 20대들이 정책자문을 하고 그러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윤형 그런데 정당뿐 아니라 담론을 만드는 언론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가령 오마이뉴스에서 20대 특집을 하면 어른이 보기에 좀 특이하게 사는 20대만 인터뷰를 하고 희망이 없네 있네 한단 말이에요. 대다수의 20대가 어떻게 무슨 고민을 하는지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없거든요. 이를테면 공무원시험 준비생 특집을 해보자는 거죠. 하나하나 얘기를 해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봐야 하는데, 자료 자체가 없어요. 아무도 그런 자료를 더 상세히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렇게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고 20대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져요.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다가갈 수 있겠어요. 20대 특집이라고 나오는 얘기들이 20대에 대해 알게 하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소비되는 실정이라고 생각해요. 진보정당들은 자신이 살아남기에도 바쁘니까 20대에게 관심을 가진다 해도 제스처 이상은 아니에요. 진보신당 내에 20대가 모여서 강연회 같은 것을 열려고 하니 예산을 달라고 하면, 선거 때 운동원으로 동원되는 일이 적은 20대에게는 그런 투자를 하고 싶지 않아하는 거예요.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지만 어떻게 씨도 안 뿌려놓고 추수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소영 그럼 민주당에 대해서는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묻고 싶네요.
한윤형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해서 제가 특별히 덧붙일 말은 없지만, 저는 민주당이 집권 야심이 있다면 자유+노동 동거형의 미국 민주당 모델로 가자는 주대환 사민주의연대 공동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민주당이 그런 야망이 있을 리 없으니 그 주장의 현실성이 아쉽죠. 정치인 개개인의 욕망만 있고 집단으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차원의 고민이 없어요. 민주당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이란 정치세력 전체의 이익을 조정하는 기구가 작동을 안하는 거죠. 그게 있다면 미국 민주당 모델까진 아니라도, ‘반MB연대’ 같은 것에 있어서도 몇군데에서 통 크게 양보하고, 그걸로 진보정당들이 꼼짝달싹 못하고 단일화안을 받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사실 민주대연합 성공의 키는 민주당에게 있는 것 아닌가요?
김사과 민주당이 지금까지 중요한 국면에서 한나라당과 어떤 차이를 보여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명박은 안되니까 민주당 뽑아달라고, 진보신당은 될 리 없으니까 민주당을 뽑아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져요.
정다혜 사실 20대가 모인 이 자리에서 정당정치의 현황이나 비전에 대해 얼마만큼 얘기할 수 있으랴 싶긴 한데요, 저는 20대에게 선거가 지금까지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선거를 비롯해서 지금까지의 정치문화가 좀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선거기간에 후보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책자료보다는 후보자 사진이랑 이름 박힌 명함이에요. 정당이나 정치인의 기존 이미지 외에 새로 얻게 되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거든요. 사실 지방선거는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거잖아요. 당연히 지역민들의 요구나 의제가 선거 속에서 표출돼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한 것 같고요. 이번에 저희 총학생회에서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마련하겠다고 했을 때는 언론에서도 꽤 주목했거든요. 그만큼 판도를 바꿀 만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윤형 2000년대 초반에는 그나마 정책선거로 가는 듯했죠. 시민들도 정책 리플릿을 열심히 보고 그랬지만, 지난 대선에 와서는 이명박 같은 경우에 TV토론을 계속 피했으면서도 당선이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어요. 진보정당이든 시민세력이든 저는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어쨌든 추후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하면 한국사회를 지탱해왔던 룰에 대해 사람들이 이것은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시점이 한번은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로 그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누가 준비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후보단일화는, 해서 확연히 이득을 보는 상황이라면 정몽준과 노무현이 단일화했듯이 안 시켜도 하려고 들겠죠. 그런데 실은 단일화가 목적이 아니라 단일화 논의를 해서 소수정당들을 고사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서 난감해요. 민주당 입장에선 단일화를 위한 노력은 안하고 단일화 얘기만 계속 해서 다른 야당들 후보를 갉아먹는 것이 제일 간편하잖아요. 상황이 그런데도 지식인들이 무작정 단일화를 외치는 건 민주당이 다른 정당 지지율에 빨대를 꽂는 데 힘을 보태주는 것밖에 안될 거예요. 문제가 무척 어렵습니다.
정소영 단일화에 대한 지식인과 시민사회세력의 주장이 무작정 그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번 지방선거가 현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작은 차이를 놓고 적전 분열의 양상을 보이지 말고 대연합을 이뤄야 한다는 절박성이 크다고 보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민주당이라는 가장 큰 원내세력이 어쨌든 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힘을 모으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그만큼 민주당은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서 사람들의 이런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면 안되겠죠. 그리고 그런 걸 강제하는 게 시민사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하여튼 저는 이번 선거가 그만큼 기대되기도 하네요. 20대가 냉소를 넘어서서 줏대를 가지고 현실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도 될 거고요.
마지막으로 각자 올해 개인적인 목표나 계획을 말씀해주시면서 좌담을 마칠까 합니다. 우선 신임 총학생회장님의 각오부터 듣고 싶네요.
정다혜 올해 총학생회를 하겠다고 결심한 만큼 거기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되겠죠. 이번에는 지방선거도 있으니, 저희는 20대와 대학생에 대한 관념들, 운동권과 비운동권에 대한 틀에 박힌 이미지나 시선을 깨보는 계기를 차근히 마련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우리 세대의 요구가 사회적으로 의제화되는 가능성을 열어가고 싶고요. 대학생 주거권도 그중의 중요한 하나고요. 이것은 총학생회장으로서의 목표이고, 개인적으로는 학생회 활동을 끝내고 나서도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교포박’, 교수 포기한 박사라고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학문환경에서 과연 내가 공부를 하면서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고민도 들어요. 무엇을 하든 시장중심의 무한경쟁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그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교육의 기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 아플 때 치료받고 인간적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들은 시장논리로 치환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사과 저는, 올해 계획대로 느긋하게 작업했으면 좋겠어요. 하반기에는 많이 놀고 싶은데요, 그런 다음에 지금 제가 가진 문제의식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공부했으면 해요. 그런데 공부할 정도로 제가 각오가 서 있는지 모르겠어요. 느끼는 불만들은 있는데 아는 게 부족하다 보니까 표현이 안되고, 그래서 그 불만들을 정교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소설 쓰는 일은 여태까지 어찌저찌 잘 풀려왔는데 이제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고 싶어요. 좀더 깊이있게 멀리 보면서 가려고 합니다. 하반기에는 여행을 떠날 생각인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해외에서 에너지 충전하고 거기서 보고 들은 걸로 한국에서 돈 벌고 그러는 게 싫어졌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앞으로 우리나라가 조금 벌고 많이 놀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돈을 적게 쓰고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한윤형 지난번 책 『뉴라이트 사용후기』 판매량 등으로 짐작해보니까 제 독자가 1500명쯤인데, 이래서야 도저히 글 써서 먹고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올해는 3권 정도 쓸 계획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굉장히 빨리 쓰는 편이긴 한데도요. 그리고 올해 진보신당이 위기라고 보고 있어서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그 문제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지난 총선까지는 대변인실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이제는 외곽에서 싸우는 것이 낫겠다고 당에서도 판단하더라고요. 어쨌든 형편을 계속 만들어가면서 제 공부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여러가지 실험을 해봐야 하겠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읽어줄 수 있을까 늘 궁리해요. 책 낼 때마다 조금씩은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웃음)
정소영 모든 분들 계획 잘 이뤄나가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네요. 우리 사회가 한결 더 나아지기도 함께 기대해보고요. 그러자면 20대가 할 일이 많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좌담 마칠게요. 감사합니다.(2010년 1월 19일, 서교동 ‘즐거운 북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