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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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金芝河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1969년 『시인』으로 등단.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유목과 은둔』 등이 있음.

 

 

 

꽃그늘

 

 

이제야 그늘 속에

 

핀다

 

꽃과 그늘 사이

언젯적부터인가

그 긴장은

 

이제야

짧은 행간에

웬 무늬 무늬 드러나

흰 무늬들

속의 속

흐드러진다

 

내 삶의

 

여기

청도 각북골에 와

엎드린 한 새벽에 흘러

흘러 넘치며 아롱거리는

샘물 속

 

그늘.

 

 

 

청도시편

 

 

1. 빈터

 

한반도에

아직도 이런

오지

사람 없는 널직널직한

빈터

남아

있음

 

놀랍다

그리고 내내

눈물난다.

 

 

2. 나무

 

새푸르르다

새 우짖고 새들

내려와

어깨 위에 깃든다

 

운문사

술 먹는 암솔 가까이 부지불식중

마음이 걷는다

 

나는

나무.

 

 

3. 돌

 

흐린

허공에 뜬

검은

기억

 

벼락 맞은 아비의

옛 몸

 

역사여

돌의 신음의 역사여

 

그 옛날

신라의

 

돌.

 

 

4. 겨울

 

평평하다

흘러도 끝내는 기어이

고르구나

 

끝내는

범하지 않고 깊이 깊이 범하는

그 사랑

 

겨울사랑

그리고 겨울의 대지의 쌔하얀

 

육체.

 

 

5. 고개

 

안개 속에

산 솟고

 

빗방울 빗방울

마음에 젖어든다

 

여기가 어디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둘러봐도

알 수 없다

 

검은 나무등걸

새파란 잎새 잎새들

그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

 

땅밑에서부터 부르는 소리

이월 중순

어느 비오는 아침

 

낯선

낯선

고개 너머

남녘 땅

그 어디에서부터인가 낯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