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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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현

배성현 裵星炫

1986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1학년.

chanel7c@hanmail.net

 

 

 

꽃잎이 뜨는 방

 

 

새벽안개 속에서 물살은 포복을 감행한다

그 집에 닿자마자 벽을 긁는 차가운 수면

오차 없이 불어난 강물의 발육을 기록한다

수몰 예정지구의 버려진 방안에 숨어, 오늘도

숨을 쉬는 남자, 크리넥스 휴지 한장을 집어

흰 꽃을 접는 일로 물안개 낀 뿌연 아침을 연다

남자의 얼굴에 원무과 수납계원이 새겨놓는 독촉의

입김은 마른 땅을 삼키는 강물의 이빨보다 사나웠다

치유를 거부하는 여자의 몸은 그래서 남자의

발목에 채워진 서늘한 수갑 같았다

강물 속으로 허공의 한 귀퉁이 꺼지는 소리

폐옥에 몰린 그들을 위협할 때마다 여자는 머리의

모공을 활짝 열어 죽음의 시간을 앞당긴다

여자의 머리에서 뽑힌 검은 모발이 가구의

흔적만 남은 남루한 장판을 어지럽히면 그림 속

연필 선을 집어올리듯 남자는 몸을 잃은 머리카락을

하나씩 쥐어 마른 입술 사이에 문다

여자의 몸속에서 호흡의 선율이 낮아지는 밤

수몰을 노리는 강물이 그들의 방을 포위한다

남자는 여자의 죽음이 두려워

입속에 문 머리카락을 천천히 실패에 감고

더이상 감을 것 없는 실패를 겨드랑이에 품고

휴지를 뽑아 계속 똑같은 꽃만 접는다

새벽녘, 수면이 뱉어내는 낮은 음성을

꽃잎의 감촉으로 견뎌내고

그들이 방 안에 들여놓은 유일한 비키니옷장 하나

허기진 뱃속을 마른 수의 대신 흰 꽃잎으로 채운다

문턱을 넘어서면 바로, 남자의 발등을

움켜쥐는 서늘한 물의 관절들이 있다

물에 잠긴 남자의 구두 속에 알을 털어낸 민물고기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몸을 흔들며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새로 품은 알의 부피만큼 더 큰 몰락의 기쁨을 핥아가는 강물은

문턱을 향해 가늘고 긴 손가락을 뻗는다

강물이 방안으로 밀려들어 여자의 몸을 축축하게 적신다

남자가 비키니옷장의 지퍼를 가르는 순간

방 안을 점령한 얕은 수면 위로 흰 꽃들이 터져나온다

자신의 낡은 혁대를 풀어 여자의 시신을 허리에 매다는 남자

물속에 발을 담그고 천천히 방문을 나선다

여자는 바람의 숨결에 접착된 봄나방처럼 방 안의 꽃잎을 이끌고

가볍고 부드럽게 물살에 떠가고

수면 아래 부력의 법칙을 배반하며 서로의

무게로 서서히 가라앉는 여자와 남자

그들의 부피를 품어 수위를 높인 강물은

폐옥을 넘어 어둠 속 달빛에 닿기 위해 손톱을 세운다

 

 

 

꽃살문

 

 

여자의 팔과 다리는 발육의 증거가 아니라

퇴화의 흔적이었다 그녀의 손발은 미친 여자의

자궁 속에서 태양의 흑점에 닿은 적이 있다

태양의 표면에서 꼿꼿이 직립하던 원시의 불꽃들

바람의 입김처럼 날아 그녀의 팔다리에 달라붙었다

접촉이 뜨거움이라는 것 아는 달팽이 촉수처럼

밖으로 내밀지 못한 만큼 몸속으로 파고든 그녀의 팔과 다리

그녀만 아는 내밀한 꽃길이 되어 몸 안에 열렸다

입속에 달을 물고 침만 흘리던 모자란 연수아재

그녀의 몸을 품고 들개처럼 후각을 열었다

꽃길을 찾아내어 수눅선 세운 발끝으로

사박사박 걸었다던 연수아재

두마리 새가 넝쿨로 서로의 부리를 묶어 시간의

태엽을 감는 동안 연수아재 입속에 고인 침이

원시림의 빗물처럼 흘러 그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 안의 꽃길은 물방울의 힘줄로 생성된 석회동굴처럼

온난한 공기를 품고 은밀하게 깊어져갔다

팔다리가 없어 발톱도 손톱도 없는 여자

그녀의 기쁨은 오직 머리카락으로만 자랐다

달만 알아 모욕과 구박의 설움만 훔치던 연수아재

꽃길과 이어진 내밀한 굴속에 숨어

그녀의 내부를 끌어안았다

바람이 새들의 저격을 노리고

새들의 부력으로 갈대가 눕는 겨울

그들은 무너진 암자로 갔다

떨어진 문짝에는 봄꽃만이 푸르렀으니

연수아재, 꽃살문의 안팎을 바꿔 달았다

팔다리 없는 그녀의 배는 먼지 낀 꽃밭에 누워

지구를 공전하는 태양의 둘레를 닮아가고

연수아재, 그녀의 긴 머리 잘라내어

겨우내 아기의 검은 배냇저고리만 짰다

그녀의 몸 안에 생성된 꽃굴 속에서

아이와 함께 자라나는 연수아재

꽃망울 속에 잎을 숨긴 성긴 겨드랑꽃눈이 되었다

화분(花粉)을 마치지 못한 봄날의 벌과 나비들이

꽃살문 바깥으로 달라붙어 밤새 날개를 태우고

말을 잃은 꽃들은 온몸을 흔들며 수화를 나누었다

꽃들의 묵음은 그렇게 향내가 되어 천천히

겨울의 차가운 폭설을 지우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호흡법

 

 

강물의 허리를 자르고 발끝을 세워 수심을 짚어가는 꽃제비들

그들의 남루한 옷 속에는 그들도 모르는 피부가 숨쉬고 있다

어둠을 찌르는 탄환 한발, 막 총구를 빠져나온

저 너머의 비명이 강물의 허공을 뒤흔든다

생생한 죽음의 육성을 들으며 두 눈을 감았다 뜨는 소년

골반에 고요한 수면을 걸친 채 온몸을 부르르

떨다 강물에 오줌을 섞는다

온기에 굶주렸던 담수어들 차가운 아가미를 벌려

소년의 사타구니 사이로 서서히 몰려든다

그림자를 흘리며 다가오는 것들

소년의 입속에 맺힌 물방울들 하나씩 지워가고

두려움에 눈뜬 꽃제비의 혓바닥은

마침내 단단하게 굳어 묵직한 사슬이 된다

입 밖에 낼 수 없어 딱딱한 혀끝을 삼킨 그들

위 속에 닿은 침묵의 결속이 풀릴 때까지

양서류의 피부를 벗을 수 없다

근시의 눈으로 앞서가는 형의 등허리에

촘촘한 시선을 박음질하는 소년

멈추지 않고 느릿느릿 강물을 건너다보면

발가락 사이로 물갈퀴 돋아나는 것도 모른다

국경선을 지우며 위태로운 강물을

횡단하기까지 허기는 초침이었던 것

굶주린 어머니가 소년의 메마른 허물을 물어뜯어

새로운 피부를 일깨울 때마다 그들은

피부호흡으로 지상의 마른 공기를 깨달아갔다

어둠을 떠가는 구름처럼 거부도 모른 채 입을 다문 소년들

하반신을 차가운 강물과 맞바꾼 채

비늘을 잃은 수십마리 물고기떼 거느리고

물속의 어둠을 휘적휘적 헤쳐 간다

혈관을 흐르는 슬픈 귀소본능으로

국경 너머 샛길을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꽃제비들

수도 없이 국경을 넘나들다 변종이 되어버린 그들은

하루의 절반을 음지 속 양서류의 마음으로 산다

 

 

 

시 | 심사평

 

예심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이 공통으로 느낀 소회를 먼저 전한다. ‘시의 언어’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 생략된 채 무책임하게 남발되는 ‘산문의 언어’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러운 염려를 표하고자 한다. 최근 몇년간 워낙 시의 산문화 경향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올해 응모작들은 특히나, 내적 필연성에 의해 산문적 진술이 선택되었다기보다 응집된 시어를 향한 고투를 포기한 안이한 수준의 산문적 언어들이 남발되는 경향이 심했다. 당연히 언어의 긴장은 떨어지고 게다가 비속어와 비문들이 남발되는 경향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는 감정의 일방 배출구가 아님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언어를 함부로 배설하려는 경향은 시 창작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그가 쓰고자 하는 언어와 섬세하게 대결하고 그 언어로부터 사용 승인을 얻어야 하는 자이다. 쓰는 자가 자기 멋대로 언어를 지배하고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어를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언어로부터 자재자유함을 획득할 수 있음을 우리 문청들은 모두 유념했으면 좋겠다. 시는 문학의 모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엄격하게 ‘언어’ 자체에 대한 집중을 요하는 장르이고, 시인은 ‘말의 중압감’을 고민하며 평생을 걸고 이 중압감과 대결해나가야 하는 존재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자각과 대결의식이 있어야 이 부박한 반(反)문학적 속도전의 시대에 여전히 시가 태생적 이단으로서의 문학적 반(反)속도성을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응모작 전체를 거론했을 때 위와 같은 심각한 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역시 옥석들이 있었다. 예심 통과작 중 심사위원 두명 이상에게 중복 추천된 응모자를 중심으로 모두 다섯분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대산대학문학상은 완성도 높은 단 한편의 작품만 뽑는 신춘문예가 아니다. 도래할 시인의 삶을 견인할 수 있는 문학적 동력을 검증하는 의미가 큰 상이므로 응모작들 간의 편차가 심해서는 곤란하다. 하여, 좋은 시편을 포함하고 있으나 수준차가 심한 「입동」 외, 「21세기 라흐마니노프 정원사」 외, 「당신은 나를 좀더 알 필요가 있다」 외가 먼저 제외되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은 것은 「잎사귀가 건드린 하루」 외와 「꽃잎이 뜨는 방」 외였다. 두 응모자 모두 치열한 습작의 흔적이 드러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최후까지 경합했다. 「잎사귀가 건드린 하루」 외는 신선하고 유려한 감각적 표현들이 돋보이며 각 편의 완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단정하고 잘 만져진 소품의 느낌을 벗어나지 못해서 아쉬웠다. 신선하고 안정된 표현 능력 위에 세계인식의 확장 노력이 결부된다면 훨씬 좋은 시편들로 조만간 어느 지면에서건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진을 빌며 후일을 기대하기로 하였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려는 여자와 그녀의 시간을 붙들고자 하는 남자의 비극적 사연을 수몰 예정지구의 폐옥 풍경을 통해 보여주는 「꽃잎이 뜨는 방」은 곧 수몰될 병든 육체성을 비정한 사회 속에 아슬하게 위치시키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집 없이 떠돌며 구걸하는 탈북자 아이들을 일컫는 ‘꽃제비’를 피부호흡법을 터득해야 살 수 있는 양서류로 교차 직조하는 「그들의 피부호흡법」도 개인과 사회적 비극 사이에 아슬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 채 발현되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무겁고 비극적인 사건을 보여주면서도 서정적 언어의 질감을 유지하는 공력과, 감각적인 표현에 경도되지 않고 문학적 사유를 전진시키고자 노력하는 자세도 높이 평가했다. 단, 불필요한 과포화 상태의 호흡을 정리하여 좀더 긴장감있고 밀도있는 언어운용을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발화의 반복도 숙고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꽃잎이 뜨는 방」만 예로 들어보더라도 ‘강물의 발육’‘강물의 이빨’‘호흡의 선율’ 등 정제되지 못한 표현들이 눈에 많이 띈다. 좀더 정제가 필요한 시편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문청의 시답다’는 것, 개인의 상상력과 사회적 상상력의 길항 가능성, 언어 내용과 형식에 대한 치열한 고뇌가 느껴진다는 것, 무엇보다 이후로도 시를 밀고나갈 에너지의 내공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꽃잎이 뜨는 방」 외를 수상작으로 뽑는데 우리는 기꺼이 합의했다. 문청들에게 주는 대학문학상은 잘 만들어진 완제품보다 ‘미래가 궁금한 시’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더욱 정진하여 개성있는 시세계를 완성해나가길 바란다.

조정권 송찬호 김선우

 

 

 

시 | 수상소감

 

지독한 꿈이다. 축축한 낙엽 속을 포복하는 늦가을의 꽃뱀. 혀끝에 고여 있던 치명적인 독이 내 살갗을 뚫고 온몸에 퍼진다. 겨울의 혹한 속에서 몸은 계속 뜨겁다. 뼈 속에서 불길이 번진다.

 

눈썹을 밀고 깊게 문신을 새겨넣은 자리.

물색이 깊어진 겨울의 강물이 보인다. 무당의 눈썹은 어딘지 침울하고도 고혹적이다. 여자의 늑골 안에 갇힌 신의 도도한 음성이 귓속으로 스며든다. 눈그늘 위로 눈물이 달릴 때마다 찾아가던 무당이 있다. 그때마다 방석과 감주 한잔을 내주던 그녀. 한손엔 담배를 태우고 다른 한손으로 내 손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녀는 신을 끌어안고 사는 여자의 숙명에 대해 오래 토로했다. 끝맺음은 매번 당부였다. 산문에 머물지 말고 붓을 쥐라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 거짓 같은 ‘운명’을 차라리 지독하게 믿고 싶었다. 때론 완전한 허구나 믿음이 가끔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문장 하나가 몹시 두렵다. 모든 문장에서 지상의 법칙을 거부한 열망이나 눈물을 본다. 문장에서 돌아서면 내 안의 헛점만 남는다. 그래서 지금 이 기쁨은 내 몸에 가해지는 형벌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 사실이 날 안도케 한다. ‘더 많이’와 ‘더 쓰기’의 당위. 팽팽한 호흡이 살 속을 관통한다. 이 모든 것이 ‘시’라는 불편한 방석 위에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다.

 

다른 모든 걸 버리게 만든 ‘예대 그 자체’. 이광호 교수님. 박기동 교수님. 항상 고민하게 만드시는 정주아 교수님. 얼음공주 한유주 교수님.

채호기 교수님. 선생님의 독려와 따끔한 충고가 없었다면, 난 감히 시를 넘보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젊은 시절 시를 고민하셨다던 ‘새벽녘 텅 빈 책상’의 이미지는 매 순간 펜을 들게 한다. 지금도 그 푸른빛이 눈 속에 선연하다.

고교 은사님. 졸업 마지막 날, 육십 평생 못 이룬 꿈을 대필해달라고 당부하셨던 선생님 말씀. 그 말씀은 내 심장의 일부가 되었다.

유정숙과 박소희, 예대에서 진심으로 손잡아준 그녀들. 정진하. 미선이. 민정이. 인문형. 부산 앞바다의 정훈이, 목포 앞바다의 인서, L 선생님. 병윤형. 춘호누나. 천상병과 백석. 마음으로만 새기고 싶은 다른 수많은 이름들. 대산문화재단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아늑한 자궁을 공유한 형 도영과 동생 경희. 나의 기원, 어머니의 관능과 아버지의 왕성한 성욕. 단 한순간의 유예는 그저 등에 빚을 업는 일이다. 그러나 내 백팔배에는 ‘뉘우침’이 아니라 아직도 ‘바람’만 있다. 나는 여전히 소설로 아름다운 시 한편 쓰고 싶다. 용서도 받고 싶다. 내 하찮음에 손해를 입은 당신의 미문에. 숨죽인 변경의 시인에게. 모든 문장이 끝나면 다시 처음이다.

단 하나의 초점에서. 아주 멀리, 우주까지 가보고 싶다.

배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