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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시선

 

보편적 복지주의, 약인가 독인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기획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신동면 김대호

 

 

이제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내세우자

신동면(申東勉)│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이 2010년 한국정치에서 복지국가라는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는 진보세력이 내세우는 정치적 목표지만, 작금의 복지국가 의제는 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지 않다. 보수진영의 싱크탱크를 자임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성장과 복지의 공생적 발전모델’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 박근혜 전 대표는 기존에 자신이 내세우던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기)’ 대신에 ‘행복한 복지국가 건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은 최근 뉴민주당 플랜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려는 복지모델은 낡은 서구모델이 아니라 복지에 대한 투자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보수와 제1야당이 국가발전 모델로 ‘복지국가’를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정치에서 처음으로 복지정치를 위한 권력자원 동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나 유보되어온 사회적 권리(social right), 곧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누리기 위해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를 선택할지 요구받게 될 것이다.

박근혜의 ‘행복한 복지국가’가 아직까지 구체적 내용과 논리를 밝히지 않은 정치적 수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성장과 복지의 공생적 발전모델’은 사회써비스 확대를 통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한다. 공공의 돌봄써비스를 확충하고, 정부의 교육·의료·주거, 근로복지 부담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가치재 투자 확충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사회써비스의 시장화를 제기해온 보수의 주장과 다르며, 오히려 공공 사회써비스의 대대적 확충을 추구해온 진보의 주장과 일치한다. ‘성장과 복지의 공생적 발전모델’이 능동적·잔여적·선별적 복지를 강조해온 한나라당의 정치적 입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제시하는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는 재분배를 통한 정의의 확대보다 인적자원 개발을 통한 기회의 확대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현재 법률적 차원에서 포괄성을 지닌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과정에서는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다. 비정규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대다수는 소득유지를 위한 1차적 사회안전망인 사회보험의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다. 사회보험에 가입되어도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소득수준으로 인해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급여수준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이들은 시장임금에서 소외되고, 소득재분배를 위한 사회임금에서도 소외되는 ‘이중소외’ 상태에 처해 있다. 게다가 국민생활 최저선을 유지하기 위한 2차적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인구도 410만명이 넘는다.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1차, 2차 사회안전망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도 고용이 늘지 않고, 일자리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사회복지의 우선적 과제는 인적자원의 개발을 통한 기회의 확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사회적 기본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보장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민주당의 ‘사회투자형 복지국가’가 지닌 논리와 전략의 부재에 실망한 필자에게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은 한국정치에서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걸고 복지연합을 형성할 수 있는 논리와 전략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가져온 5대 불안(일자리, 보육 및 교육, 주거, 노후, 건강)으로 진단한다.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은 ‘존엄, 연대, 정의’의 3대 가치와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4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밈 2010). 보편적 복지체계를 확립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아동수당, 실업수당, 상병급여, 연금 등)를 빈틈없이 법제화하고,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과정에 걸쳐 각종 사회써비스(건강 및 의료, 보육, 교육, 주거, 고용, 요양 및 복지)를 보편적으로 제공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법제화할 것을 제안한다(57~58면). 이처럼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은 한국의 잔여적·선별적 복지제도와는 궤를 달리하는 복지제도의 발전을 추구한다. 경제성장 우선주의에 억눌려 지체된 사회적 영역을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주의적 사회정책을 시행하며,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조화와 조정을 도모한다.

물론, 공공부조 수급자 선정에서 보는 것처럼 선별주의는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운영원리이다. 그럼에도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에서 보편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편주의 원리에 따르는 사회복지 급여와 써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복지 제공은 국가가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가족, 비영리집단 등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한국은 국가부문이 저발전되었기 때문에 시장과 가족이 복지 공급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럼에도 국가, 시장, 가족, 비영리집단 등이 제공하는 복지 총량이 서구 복지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사회복지 제공에서 국가는 연대를, 시장은 교환을, 가족은 재생산을, 비영리집단은 상호부조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각 공급주체가 기능적 등가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기능적 차이를 고려하여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국가복지의 확대를 주장한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비합리성을 과장해서 지적해온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복지의 확대에 대해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진보세력들은 보편주의 복지담론을 제기하기보다는 수세적으로 생산적 복지, 사회투자적 복지, 참여적 복지를 주장해왔고,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를 요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복지를 위한 증세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지지 또는 인정하는 제반 세력이 연합하여 대안적 정치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동수당이나 무상급식 같은 보편주의 복지급여와 복지써비스가 시행된다면 사회복지를 위한 증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기여하고 보편주의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복지국가 논의에서 놓치는 것들

김대호(金大鎬)│사회디자인연구소장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중병에 대한 처방전이다. 이에 따르면 그 병의 이름은 ‘민생불안’ 및 ‘양극화’이고, 원인은 ‘승자독식의 삭막한 경쟁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와 복지결핍’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처방 내용을 집에 비유하곤 하는데, 3대 가치(존엄, 연대, 정의)가 지붕이라면 4대 원칙(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은 기둥이다. 물론 나는 이 처방전에 담긴 중병에 대한 정의, 원인진단, 처방이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오류의 핵심은 한국사회의 독특한 이중구조에 대한 몰이해다.

한국사회는 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으로 대표되는 ‘공공’이 사익집단에 휘둘리거나 스스로 몰염치한 사익집단이 되어 있다. 따라서 힘센 사익집단이 사는 곳에는 시장원리(소비자 선택권, 심판권)가 별로 통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독과점이나 각종 경쟁제한 장벽을 통해 자신의 기여와 부담에 비해 너무 많은 권리와 이익을 향유한다. 반면에 3非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과 하청중소기업으로 대표되는 힘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무한경쟁, 독과점과 불공정거래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든다. 사회안전망도 패자부활 씨스템도 취약하다. 바로 이 가혹하고 과도한 시장이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준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가혹하고 과도한 시장과 너무 온화하고 과소한 시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의 원인이다. 따라서 삭막한 경쟁지상주의와 복지결핍을 해결하려면 몰염치한 경쟁지양(止揚)주의와 시장결핍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마치 구부러진 동전을 펼 때는 볼록한 면을 눌러서 오목한 면을 펴는 것처럼.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에는 이런 인식이 없다. 오히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처럼, 시장과 경쟁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그 파괴적인 영향만 주목할 뿐, 그 건강한 힘을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 시장과 경쟁은 승자독식, 고용불안, 양극화의 원흉이자 신자유주의자들의 전유물이다.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질환의 정확한 병명은 총체적 조로증(早老症)이라고 할 수 있다. 힘있는 존재들이 후속세대와 전후방 가치생산 사슬이 가져가야 할 가치를 너무 많이 빨아먹으면서 가치생산 생태계 자체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대기업 공기업 생산현장의 고령화, 청년실업, 고시·공시(공무원시험) 열풍, 시간강사와 비정규직의 고통, 하청중소기업의 피폐, 과도한 대학진학률 등은 그 대표적 증상들이다. 원인은 정의의 결핍이자 공공의 결함(취약함)이다. 시장의 결핍과 복지의 결핍은 정의의 결핍의 한 측면이다. 시장만능주의와 복지결핍에서 핵심 문제를 찾는 것은 일면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병에 대한 진단이 일면적이라고 해서 처방이 다 틀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면 처방은 어떨까?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공정한 경제’는 20세기초 미국과 유럽 등에서 나타난 지독한 독점의 폐해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치세력도 부정하지 않는 원칙이다. ‘혁신적 경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 정책이 핵심 지주인데, 지식정보화시대에 요소투입형 성장이 한계에 달한 대부분의 문명국이 채택하는 원칙이다.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여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강화를 중시하는 ‘적극적 복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확실한 차별화 지점은 ‘보편적 복지’와 이를 위한 대대적인 증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에 더 많은 자원(세금, 인력 등)을 집중시켜 국가가 개인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의 강력한 재분배 기능을 통해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그랬듯이 뜻이 좋다고 반드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보편적 복지의 대전제인 조세 저변 확대와 조세 부담률 상향을 회의하게 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적게 부담하고 많은 혜택을 누릴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의 거대한 규모, 세원(稅源) 파악이 곤란한 두터운 자영업자층, 무엇보다도 공공부문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대표적이다. 대대적인 적자재정 등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한다 해도 자산 및 소득의 극심한 양극화 구조가 이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상층은 보편적 복지가 너무 저급해서 고급 써비스가 제공되는 해외를 넘나들려 하고, 하층은 기초생활보호제도가 보여주듯이 제공되는 국가복지가 복지병을 걱정할 정도로 너무 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격차 혹은 성과/행운에 따른 격차를 대폭 줄여야 보편적 복지제도가 안정화되는데, 한국의 문화, 지경학적 조건, 한국인의 성정(性情)상 이것이 쉽지 않다. 성과/행운에 따른 격차가 엄청나게 큰 중국과 미국이 지리적·심리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는 탓이다.

요컨대 한국의 경우 개인 및 가족이 짊어진 각종 위험(실업, 재해, 질환, 노령 등)과 부담(교육, 육아 등)을 국가와 사회가 더 많이 나눠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책임성을 더 높여나가야 한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일률성과 무차별성이 특징인 ‘보편적 복지’나 ‘국가복지’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국이 공유하는 상식은 돈(재정)이든 사람이든 권능이든 복지든, 자원을 가장 잘 배분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 선택권과 공급자 경쟁과 써비스 차별화가 특징인 시장이 그 자원을 가장 잘 배분하면 시장에, 써비스의 일률성과 무차별성과 안정성이 특징인 국가가 잘하면 국가에, 자발성과 호혜성이 특징인 시민사회가 잘하면 시민사회에 주면 되는 것이다. 시장, 국가, 시민사회 중 어느 한쪽에 자원 배분권을 몰아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 3자를 혼합하되 주된 배분기제는 있다는 것이다.

복지강화를 위한 대대적인 증세도 필연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증세가 필요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증세를 소리높여 부르짖기에는 재정구조와 공공부문에 불합리한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보편적 복지주의’를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면서 ‘대대적인 증세냐 아니냐’ ‘보편적 복지주의냐 선별적 복지주의냐’하는 엉뚱한 전선을 긋고 있다. 이는 복지강화를 위한 주 전선과 거리가 먼 전선이자, 결코 진보세력에도 개혁세력에도 유리하지 않은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혁명주의, 사회주의, 전투적 노조주의 등으로 무장한 시대착오적 좌파들의 담론에 비해서는 확실히 진일보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진보의 역사에 끊임없이 등장해온 ‘좌익맹동주의적’ 요소를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한국사회에 대한 일면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전투적 복지주의’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복지강화에 적극적이다. 또한 3대 가치, 4대 원칙과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분야의 정책논문이라는 일관되고 방대한 논리체계를 갖췄다. 진보세력에 그리 친숙하지 않은 ‘역동적 국가’라는 화두도 받아안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이념정책을 중심으로 학자, 시민운동가, 복지관료 출신, 정치가 들이 모였다. 그런 점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시대적 요구의 절반은 분명히 체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폭적 증세와 보편적 복지주의를 경직되게 구사하면서 복지강화-재정 및 공공부문 합리화-시장 및 경쟁 합리화의 전선을 교란한다면 절반 정도의 진보적 기여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