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이명박시대의 반환점, 거버넌스의 위기

 

 

교육 위기와 학교혁신의 전략

 

 

성열관 成烈冠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저서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시대의 교육』, 역서로 『미국 교육개혁, 옳은 길로 가고 있나: 학교교육의 시장화와 교육과정의 보수화 비판』 등이 있음. youlkwansung@hanmail.net

 

 

 

1. ‘교육감 효과’

 

사회과학자로서 나는 주변의 많은 이들이 김상곤(金相坤) 경기도 교육감이 일으킨 이른바 ‘교육감 효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지켜봤다. 사회과학에서는 변화의 양이 어느 정도이고 그것이 어떤 변인에 의해 얼마나 설명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변화의 질적 속성에 따라 측정가능성과 정확도에 있어 차이가 있으나, 이에 대한 분석은 중요한 연구과제다. 경기도에서 교육감이라는 변인 하나에 의해 교육의 담론, 학교 분위기, 교육청 권력구조, 의제 제시(무상급식 등), 모범의 창출과 확산(혁신학교 등), 학교 거버넌스 구조(평교사 대상 교장공모제 등) 같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물론 성과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인구 천만에 달하는 경기도의 규모를 고려하면, 일선 교사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2지방선거의 결과만으로도 ‘교육감 효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교육감 효과’ 가운데 주목받는 것 하나가 ‘혁신학교’이며, 이는 교육거버넌스 차원에서도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혁신학교가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구조적・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한 학교를 뜻한다. 경기도만 해도 이미 33개의 혁신학교가 지정되어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 이른바 진보 교육감의 약진으로 인해 이들의 주요 공약이던 ‘학교혁신’과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물론 이미 10여년 전부터 혁신학교에 대한 실천적 지식과 성공사례가 축적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혁신의 경험을 확산해가는 데 한계가 있었던 그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혁신학교에 대한 희망을 다시금 환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혁신학교에 대한 희망은 변화에 대한 갈망과 같은 것이다. 그동안 이명박정부에서 강화되어온 자립형사립고 등의 특권교육, 일제고사, 학교별 성적 공시, 교원평가제 같은 실효성 없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감이 교육감선거라는 기회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그 반감은 이제 이명박정부 식이 아닌 다른 식의 대안을 보여달라는 갈망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혁신학교에 한층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감선거에서 많은 후보들이 혁신학교를 중요한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유 또한 약 15년간 계속되어온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패러다임에 대한 실망의 징후를 충분히 포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와는 철저히 다른 방식으로, 다른 버전의 학교상을 제시해야 했으며, 그 전망을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호소한 것이다.

 

 

2. 혁신학교에 대한 도전

 

혁신학교는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교육을 경쟁의 도구로 보는 학부모들의 욕망, 이를 활용하는 정치적 계산과 경쟁이념의 과잉, 일부 혁신적이지 않은 교육주체들과 혁신학교의 상을 공유해야 하는 과제, 해오던 것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관행 등이 그것이다.

혁신학교는 무엇보다도 현정부의 교육정책과 호환되기 어렵다.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이 과도한 경쟁이념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자율형사립고 등에 보낼 경제적 여유가 있고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정치행위를 하며, 일부 정치가들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반면 경제적 여유도 없거니와 특화된 고교에 대한 접근기회마저 차단된 집단에서는 이러한 불평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우리 사회는 거주지 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적으로 분화되고 신분적으로 위계화된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그것이 교육에 있어서도 고등학교 서열화를 통해 투영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일부 정치가들은 반공・성장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저소득층을 회유하는 등 과도한 이념지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혁신학교와 공동체적 사회비전을 연결짓는 데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경쟁이념의 시대에 학교혁신이 성공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혁신학교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거센지를 상기시킨다.

지역발전 이데올로기도 혁신학교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지역의 자치단체장들과 정치인들은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자율형사립고를 경쟁적으로 유치함으로써 특권화한 학교에 대한 접근기회가 높아짐은 물론 부동산 상승효과 등이 뒤따를 것이라고 은연중에 유포한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은 이에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같은 지역에서도 개인들이 속한 계급과 그에 따른 형편이 다양한데도 그 차이가 지역발전 논리 앞에서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 동조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편 교육의 계급・계층화 문제에 저항해야 할 당사자들은 자녀문제에 대한 ‘이기적 의사결정자’로 파편화되기도 한다.

일제고사와 시험경쟁의 강화 또한 매우 도전적인 환경의 일부다.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들에게 시험경쟁 압력이 강화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특권화한 고교의 정원이 증가하면서 그 인원 총수가 서울 소재 대학 입학정원과 비슷해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되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유형의 고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결과가 된다. 이는 고교입시의 부활과 다를 바 없으며 초등학생 학부모들까지도 벌써부터 염려해야 할 사안이 된다. 그러므로 혁신학교에 대한 선호가 있다 해도 결국 시험준비 교육에 대한 요구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지막으로 관행과 무력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애요인이다. 학부모의 욕망이나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타성과 관행에 의해 혁신이 어려운 상황도 있다. 관행과 무력감은 역사적으로 고착된 학교문화의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혁신은 자발성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껏 승진가산점이 없는 어떤 혁신모델도 학교에서 이행된 적이 없다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또한 혁신 마인드를 공유하고 이에 대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습득될 수 있는지도 아직 명확히 정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혁신 마인드의 공유 방법과, 혁신 전문성의 확산 방향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3. 혁신학교의 상: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 공동체

 

혁신학교는 상대적으로 신개념의 정책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像)과 기대는 상이하다. 혁신학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학교란 교육과정, 수업, 학생지도, 학급운영 같은 핵심적 교육활동 외에도 돌봄, 급식, 건강, 안전, 시설, 방과후 활동 등 다양한 관련업무가 이루어지는 종합공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교가 위치한 지역과 환경(농・산・어촌, 도시, 도심, 도시 외곽 등)에 따라 혁신학교의 운영방식은 달라진다.

그러나 특정 교육정책이 추구하는 학교의 상은 교사, 학부모, 시민들에게 명확히 인지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를 핵심 키워드로 표현해보면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 공동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학교가 배움(learning)과 돌봄(caring)의 공동체로 정의되면 교육활동의 역량도 학생들이 ‘잘 배우고, 잘 돌봐지는’ 데 집중된다. 이런 배움과 돌봄이란 단지 화려한 수업기술을 구사한다거나 학교가 보육시설 같은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는 뜻을 초월한다. 혁신학교의 배움과 돌봄 개념은 근본적으로 기존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을 지향한다.

배움과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사또오 마나부(佐藤學) 토오꾜오대 교수가 일본 학교교육의 혁신과정에서 도출한 것으로 일본과 비슷한 교육문제를 가진 한국에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한편 배움과 돌봄은 세계 교육학의 흐름이 최근 수렴되고 있는 핵심영역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돌봄을 ‘교육복지’ 차원으로 확장시켜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혁신학교의 역사가 짧고 여전히 그것이 구성적 개념임을 고려할 때, 배움과 돌봄의 의미는 한국적인 맥락에서, 한국적 고민을 해결해가는 가운데 진화될 필요가 있다.

 

(1) 배움

먼저 학생들이 ‘잘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혁신학교는 교수기술 차원에서 잘 가르치는 학교라기보다 학생들이 잘 배우도록 하는 학교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수업에서 소외되는 것을 극복하는 교육활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어떻게 교육에서 소외되어왔는가? 수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거나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 점수로 표현된 것 외의 중요한 교육목표들(민주적 시민성, 인권, 배려, 심미성, 고등사고능력, 창조성 등)을 달성할 기회를 갖지 못할 때, 배운 것의 가치를 오직 상급학교 진학기회와 교환하고자 하는 경우, 절대적 기준으로는 잘 배웠다고 볼 수 있으나 상대적 서열에 의해 열패감을 느끼는 상황,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탈락하는 사례, 학생의 통찰력이나 인권의식이 학교구성원의 평균보다 높아 기존 학교에서 적응할 수 없는 경우 등 다양한 양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외양상은 여러 원인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잘 배우게 하기 위한 노력도 그에 맞게 다양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학생들을 배움이라는 교육활동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이 토론이나 체험활동에 참가하는 것만이 온전한 의미의 배움과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사의 강의형식으로 진행되더라도 학생이 교육내용을 자신에게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참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히 중등교육에서 대부분 일제식, 획일적 수업이 이루어져 많은 학생들이 소외되고 있다. 그러므로 토론, 탐구, 봉사, 체험, 소통, 발표, 창작, 감상,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방식의 참여수업을 통해 교육에서의 소외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돌봄

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이 잘 돌보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돌봄의 대상 측면에서 보자면 모든 학생들이 잘 돌보아져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방과후 보육교실에서는 물론 정규수업에서도 그 필요성이 높다. 하지만 돌봄의 의미는 보육을 초월하는 개념으로 모든 학생들이 배려되고 인권을 존중받는 전면적 성장 기회의 보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환경요인에 의한 일체의 장애가 제거되어야 한다.

돌봄의 대상이 모든 학생인 것을 전제로 하되, 돌봄의 에너지는 가장 취약한 학생들에게 집중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취약학생들을 돌보는 것은 전통적으로 학교가 해야 할 일인 교육보다는 복지나 보육 분야의 일로 생각되어왔다. 그러나 이미 학교가 이 두가지의 과업을 모두 담당하는 공간으로 재개념화된 지 오래다. 이때 발생하는 한가지 오해는 이 모든 것을 교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학생을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일차적 책임은 교사에게 있으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나 상담사와 긴밀히 상의해야 한다. 특히 빈곤아동이나 위기청소년의 문제는 학교에 배치된 ‘지역사회전문가’(보통 사회복지사를 말함)와 협의하여 관련 전문가에게 의뢰하거나 지역기관에 위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혁신학교에는 이런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학교의 자원만으로는 학생들을 모두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지역과 네트워킹할 핵심인력이 학교 내에 상주할 필요가 있다.

 

(3) 혁신 마인드

이러한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을 실행하기 위한 혁신학교의 제일과제는 혁신 마인드를 공유하는 것이다. 책임교육은, 한명의 학생도 소외된 채로 남겨놓지 않겠다는 교육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각자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고, 최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을 받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소외의 양상을 극복할 수 있을 때에야 학생들은 전면적으로 성장할 조건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조건을 창출하려는 교사의 태도가 곧 혁신 마인드라 볼 수 있다.

일제식 교육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깨닫고 수업혁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와 전문성을 갖추는 것, 집중지원 학생들에게 애정어린 관심을 기울이는 것, 학교 및 학급 운영의 민주화를 위해 힘쓰는 것,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학생자치활동을 보장하는 것, 방과후 예술·문화·체육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자아효능감을 북돋아 학습부진을 개선하는 것 등, 학생의 소외를 극복하게 하고 전면적 성장을 책임지려는 적극적 자세가 요구된다.

 

 

4. 학교혁신의 비전과 버전

 

혁신학교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려면 이에 대한 이론 및 실천 전략을 구체적인 수준에서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혁신학교의 성공 여부에 따라 민주・진보 교육세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좌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는 더욱 중요하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경우 ‘혁신학교 200개로 확대’(선거 당시 33개 지정)가 공약이었고, 곽노현(郭魯炫) 서울시 교육감 역시 ‘서울형 혁신학교 300 프로젝트’를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4년 후 진보 교육세력이 다시 시민들로부터 정치적 신임 또는 심판을 받을 때 혁신학교의 성패는 유권자의 주요 판단준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혁신학교의 비전과 전략이 공유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혁신학교가 무엇인가, 혁신학교의 교사들은 어떻게 다른가, 혁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 좀더 질 높은 교육을 받는가, 혁신학교의 학부모들은 왜 기존 학교에 비해 만족감이 높아지는가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 물론 그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으나, 착수단계에서부터 혁신학교의 정의, 목표, 핵심과제 및 세부 실천전략, 성과 평가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혁신학교에 대한 기대와 이미지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상태’로서의 혁신학교와 그 구체적인 ‘실현태’로서의 혁신학교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을 수 있다. 더욱이 만약 누군가가 “혁신학교로 지정되지 않은 학교에서는 학교혁신은 달성할 수 없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분명히 “가능하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학교혁신을 위한 과제와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학교혁신 비전(vision)을 인적, 물적, 제도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 몇가지 버전(version)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이는 학교혁신이, 진화하는 구성적 개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모범이 된 혁신학교는 주로 농촌이나 도시 근교 낙후지역의 초등학교들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몇몇 중학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대도시 지역에서 혁신학교가 정착하기는 어려웠다. 일부 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교육이 대학입시의 규정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촌이나 낙후지역에서 학교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단위로 하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높은 환경에서 학원 위주의 입시경쟁 체제가 아닌 교사들의 헌신적 보살핌에 기초한 배움, 즉 배려의 학습공동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평가받은 학교혁신 사례를 대도시의 일반학교에 적용하는 것은 혁신 사례의 확산 차원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도전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이 정책의 긍정성과 실현가능성, 두가지 요인을 면밀하게 따져보기 전에 혁신학교를 무턱대고 확산시킨다면 마치 1990년대 중반 이후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얼마 안 있어 퇴장한 ‘열린교육’과 운명을 같이할지도 모른다. 주입식 일제수업을 지양하고 학생 각자의 흥미와 발달속도에 따른 자기주도적 학습을 모토로 한 ‘열린교육’은 수업방식의 다양화에는 어느정도 기여했으나 수요자중심교육이나 수준별 이동수업 등으로 무분별하게 파급되어 전반적인 교육현장 개선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목표만이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는 ‘무조건 좋은 학교’ 또는 ‘진보교육의 이상이 실현되는 학교’ 심지어 ‘낙후지역 학생들을 위한 입시 명문학교’ 같은 다양한 이미지로 인지되고 있다. 한편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비판해온 민주・진보 교육세력은 대안적 교육에 대한 각기 다른 열망과 희구를 편의상 혁신학교라는 상으로 수렴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핀란드식 협동학습을 중심으로 한 책임교육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탈학교식 대안교육을 공교육으로 확장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어떤 이는 학부모들의 입시경쟁 정서를 감안하여 입시교육을 하되 인성교육 및 비(非)교과 활동도 강조하는 절충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어떤 이는 학교혁신은 초등학교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초등학교에 대한 집중과 선택을 중시하며, 어떤 이는 학부모들의 관심이 고등학교 단계에서 집중되는바, 고등학교 혁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같이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열망은 정리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학교・학급, 지역, 인적・물적 자원, 제도적 여건,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호, 지역 정치환경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정책의 ‘간결성’을 충족시킬 수 없다. 이에 학교혁신의 유형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최소한의 핵심단계를 모두 포함한 네가지 버전으로 나누어보려 한다.

 

(1) 학교혁신 1.0버전

혁신학교로 지정받지 못하면 학교혁신은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 혁신적 교사 개인 수준에서 실천하려는 의지와 전략이 있으면 일부라도 가능하다. 더욱이 일반 학교에서도 학교혁신을 위한 교사공동체를 만들고 체계적인 학습과 실천적 지식의 공유를 통해 혁신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 물론 인적・물적・제도적 지원이 없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교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성에 기초한 교사들의 헌신성과 전문성이다. 이에 학교혁신 1.0버전은 헌신적이고 능력있는 교사들이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학급에서부터 책임지고 혁신을 창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경우에도 교사 개인의 우수성(필자는 이것을 ‘히어로’ 모델이라 부른다)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평범한 교사도 학교혁신의 교육적 의의에 동조한다면 실천할 수 있는 매뉴얼이 개발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실천의 조직화가 가능해야 한다.

 

(2) 학교혁신 2.0버전

학교혁신이 1.0버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것이 교사 개인들의 일상적 실천운동을 넘어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수준에서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시・도 교육청에 의해 혁신학교로 지정된다면 학교혁신 2.0버전을 달성할 최소한의 여건은 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교육청이 설정한 혁신학교의 실천 영역은 ①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제한적 자율권 부여, ②수업방법의 개선, ③교과외 특별활동의 내실화, ④학생인권 및 자치활동 강화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기존의 전통적・획일적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자율적・창의적・협동적 교육활동을 신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만 보아서는 혁신학교 2.0버전은 교육을 정상화하는 활동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학교교육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가를 상기할 때, 위와 같은 과제도 그리 용이한 것만은 아니다. 경기도에서 엿볼 수 있는 혁신학교의 상은 앞서 말한 ‘배움의 공동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 학생인권 및 자치활동 등을 강조한다는 것에서 차별성이 있을 뿐 기존의 교육정상화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교육이 문화의 한 부분이고 현재의 문화는 과거 문화의 그림자임을 생각할 때, 입시경쟁 문화 속에서 기존의 것과 판이한 방식으로 혁신을 창출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교육을 정상화하는 일만도 쉽지 않은 과업이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은 애석하지만 사실이다.

학교혁신 2.0버전은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 공동체를 지향해 나가는 단계로서 적어도 돌봄의 과제를 학교내 씨스템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교육복지를 제도화하지 않고 개별 교사의 양식과 헌신성에만 의존할 경우, 사람이 떠나면 사업도 없어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나 다양한 학생의 위기요인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제도화가 필요하다. 위기요인에는 빈곤, 가정불화, 정서장애, 인지장애, 약물중독, 폭력 등 다양한 원인이 있으며 초・중・고 연령 단계별로 위기양태는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지역사회전문가를 통해 학교에서 개설해줄 수 있는 해당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며, 그것으로 불가능한 경우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가장 적절한 도움을 받도록 의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돌봄은 혁신학교가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교육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 영역이 된다.

서울의 경우 낙후지역 학교가 우선적으로 혁신학교로 선정된다면 대체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교복투) 학교가 그 후보가 될 공산이 크다(2010년 현재 105개). 이 학교들은 이미 연간 1억원 안팎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혁신학교는 교복투의 사업성과를 그 일부로 포함하면서 설계되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인 여건 면이나 원칙적인 이유에서도 그러하다. 배움과 돌봄에서 교육복지를 돌봄 영역의 주요 사업으로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교복투 학교의 경우 대략 1000명 중 150명에서 많게는 300여명까지 집중지원대상(기초생활수급권자가정, 차상위계층, 법정한부모가정 등) 학생들이 있다. 이 가운데서 사례관리대상은 10~15명 정도가 된다고 볼 수 있고 적어도 50명 정도는 지역사회전문가의 철저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학생들에 대한 돌봄은 크게 보아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아동, 위기청소년 등 취약계층의 학생을 집중지원대상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3) 학교혁신 2.5버전

필자는 혁신학교로 지정받아 제도적 수준에서 학교혁신을 실천하는 것을 2.0버전으로 보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학교혁신이 사회의 민주주의, 인권,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학교혁신 2.5버전으로 차별화해볼 수 있다. 이러한 차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다섯가지 영역에서의 학교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교육과정과 수업에서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외의 학교문화에서 벗어나 참여의 학교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둘째, 교육복지에서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특히 빈곤아동, 위기청소년에 대해 집중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학교운영의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사들이 자발성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넷째, 학생활동에서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치활동, 동아리활동, 방과후 문화・예술・체육 활동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다섯째, 학교를 인권 존중과 민주주의의 생활공간으로 만드는 일상적 혁신이 필요하다. 학교를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 만드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경기도의 경우 학교혁신 2.0버전에서 다소 진화하여 학교혁신과 민주주의 실현을 연결시키려는 의식적 흐름이 발견되기도 한다. 관료주의적 개혁이 아닌 학교현장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 집단지성의 실현 차원에서 학교혁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다행스럽다. 이렇듯 학교혁신이 사회개혁적 전망을 실현하는 일환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성패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경기도에서 이러한 버전의 학교혁신이 조금이나마 실현될 수 있었던 데는 몇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우선 교사들이 혁신의 전문성을 축적해왔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혁신학교의 아이디어와 전략은 수년간 계속되어온 교사들의 실천적 노력과 헌신에 기반을 둔 것이다. 예컨대 ‘스쿨디자인 21’과 ‘작은학교교육연대’가 그러한데, 이는 ‘교육감 효과’ 이전에 어떠한 준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스쿨디자인 21은 농어촌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폐교 직전인 남한산초등학교를 작은 학교의 특성을 살려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교사들의 학습조직이다. 이러한 성공 체험은 이후 거산초등학교, 삼우초등학교 등 전국적으로 공유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 학교들의 결속체로서 2005년 작은학교교육연대가 조직되어 농어촌 학교들의 학교혁신을 이끌고 있다.

또한 중범위 수준의 학교개혁에 초점을 맞춘 점도 긍정적 요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 탁월성과 헌신성에 의한 개혁은 확산에 한계가 있는 반면, 시・도 수준의 상명하복식 개혁은 학교에서의 흡수력이 적다. 이 모두를 감안하여 중범위 수준에 위치한 개별학교를 일차적 혁신단위로 보았던 것이 주효했다.

그리고 이는 인적・물적 지원의 현실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학급당 학생수를 25명 내외로 제한하고 교무보조인력, 상담전문교사, 사서교사를 배치하는 식의 지원 없이는 학교혁신의 내실화를 기할 수 없다는 요구를 제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빈곤지역의 학교에서 수준별 반편성에 따라 부가적으로 지원되는 영어교사 1인이 지역사회전문가나 청소년상담사 1인보다 과연 더 중요한 예산투입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학교를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로 본다면 인력충원을 위한 예산 배정의 판단 준거에 있어서도 혁신적 변화가 요구된다.

 

(4) 학교혁신 3.0버전의 조건

혁신학교에 대한 상이 있고 실천전략이 개발된다 해도 그것을 원안대로 실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여전히 제도적 제약과 장애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2.5버전까지는 시・도교육청 단위의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의 버전은 국가적 차원의 혁신이 필요한 사항이다. 따라서 학교제도와 교육문화의 중대한 변화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수준을 3.0버전으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혁신 3.0버전을 위해서는 몇가지 교육제도의 혁신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으나 핵심요건 네가지는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 석차(백분율) 표기를 없애 일제식 교육에서 탈피하는 것(이때 학교내 평가와 상급학교 입시자료 제공을 위한 평가는 구분이 필요하다),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도입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로 공부하게 하는 것, 교장승진제와 평교사가 응모할 수 있는 내부형 교장제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교육감의 권한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국가 수준에서의 변화가 요청되며, 이는 향후 어떤 정치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5. 나가며

 

혁신학교를 추진하는 교육감들에 대한 기대는 물론 이미 어느정도 입증된 ‘교육감 효과’ 또한 작지 않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앞으로 4년 동안 신자유주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교를 혁신하여 소외되던 학생들을 책임지고, 절망에 빠져 있던 교사들에게 그들이 꿈꿔온 교육을 실현할 장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최근 많은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대한 상을 공유하고, 주체적 동력을 형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습모임을 결성해 실천방안을 모색중이다. 교육감들은 이러한 열망에 화답하기 위해서라도 혁신학교를 관료적 통제 위주의 시범학교로 전락시켜서는 절대 안된다. 또한 혁신학교의 동력이 될 교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들이 갈망해왔던 교육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소수의 학교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나머지 학교들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다. 혁신학교는 전체 학교혁신의 촉매가 되어야 하며,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매개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감들은 전체 학교혁신에 대한 중요성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혁신학교가 과연 한국교육의 고질적 문제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로창출의 분기점이 될 것인가? 아직은 미지수다. 단, 이 과업을 혁신학교의 이름으로 수행하든 다른 형식을 취하든 한국교육은 반드시 경로를 전환해야 한다. 획일적 교육패러다임을 극복하고 모든 학생들의 전면적 성장을 도모하여, 그 결과 개인이 행복해지고, 행복한 개인들이 타인의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