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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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소설가 특집

 

5001

이반장 裵明勳

1982년 인천 출생. 경희대 디지털콘텐츠학과 재학중. 200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libanjang@gmail.com

 

 

 

납작쿵

 

 

가깝고도 먼 옛날.

고양이가 내 앞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그 아이에게는 아무 미련도 없는 듯 보였다. 납작하게 납작하게, 두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길바닥에 납작한 그 아이는 그 일부나 다름없었다. 불현듯, 그 아이는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째서 이제야 눈치챈 걸까. 자문해보아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위안이나마 필요했다. 어쩌면 내 깊숙한 곳 어디선가는, 사실 알고 있었을 거라는 위안.

내 앞 길바닥에 납작해진 그 아이를 한때 고양이라고 알았다. 하지만 이제 얇게 펴진 그 아이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최대한 가볍게 얄팍해졌다. 나는 기억했다. 그 아이가 내 옆에, 이 거리에, 세상에 차지하고 있던 딱 그 정도를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그 아이와 기억 속 그 아이는 결코 겹쳐지지 않았다. 그 아이가 차지하던 딱 그 정도는, 납작하게 바람이 빠져 볼썽사나웠다. 그 아이가 차지하던 딱 그 정도는, 이제 누구의 것이 되었을까.

내 곁을 오가는 이들은 길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내가 거치적거리는 모양이었다. 거치적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발에 차이고 무릎에 찍혔다. 어머나 어이쿠 하는 탄성과 함께 내려다봤다. 내가 어디서 피어올랐는지 의문 가득 휘둥그레. 고개 꺾어 올려다보자 그들의 세부는 태양의 후광에 씹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부셨다. 눈물이 고였다. 윤곽, 검은 형체에 불과한 그들이 내 곁을, 앞뒤로 흘렀다. 사람들은 언제나 바닥에 납작한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을 태연자약하게 밟고 지나갔다. 젖은 흙이 묻은, 끈적한 기름이 차진, 단단한 보도에 거칠게 마모된, 발발발 구두굽이 다채로운 문양을 얼룩을 바닥에 납작한 그들 위에 저벅저벅 찍어놓았다. 눈물로 씻어보려 했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보도가 젖어 있다. 어제 아주 잠시 소나기가 내렸다. 빗물을 머금은 포석은 거뭇하게 타들어갔다. 내 손등에서 그 위로 뚝뚝, 피가 꽃을 피웠다. 납작해진 고양이를 보도에서 긁어내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찰싹 달라붙은 그대로였다. 손톱 밑에 작은 돌조각이 끼었다. 살짝, 벌어졌다.

 

그리고 오늘,

아저씨가 내 앞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

 

덜커덩.

차를 타고 달리는데 차도에 토끼가 납작했다. 차는 방금 그 위를 지났다.

엄마 저것 좀 봐, 하며 재촉했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지도를 살피기 바빴다. 여행 중에 길을 잃었다. 엄마 아빠는 헤매는 내내 입을 꾹 다물게 했다. 토끼는 어느덧 시야 밖으로 흘렀다. 아쉬운 마음에 안전띠를 풀고 뒤돌아 창밖으로 토끼의 행방을 좇았다. 보이지 않았다. 길을 찾아 헤매는 자동차의 분란 속에, 납작해진 토끼 따위를 위한 여유는 없었다. 어렵게 마련된 휴가였고, 그것이 자동차 기름과 함께 물 새듯 낭비되는 지금 엄마 아빠는 바짝 날이 섰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빨리 안전띠 매지 못해? 엄마가 소리쳤다.

나는 대꾸 없이 그에 따랐다.

 

그날 종일, 토끼는 가슴에 납작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고속도로변 숙소의 침대에 누워 먹먹한 가슴을 아무리 달래보아도 소용없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토끼를 느꼈다. 토끼는 내 안 어딘가에 달라붙었다. 토끼가 도로 복판에 그토록 납작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느닷없이 가려운 손등, 그 위에 선한 오랜 흉터를 벅벅 긁으며 생각해봤다. 자동차나 그와 비슷한 것에 치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빠 차가 그랬듯, 다른 모두 역시 그 위를 거듭 지나간 것이다. 무심결에, 무지에, 무신경에, 그렇게, 덜커덩 덜컹.

그리고 다음날,

나는 도로에 납작한 사슴을 보았다.

 

*

 

있잖아. 방학 때 엄마 아빠랑 차 타고 가는데, 길에 토끼 죽은 거 봤다.

아 그래? 반 친구가 답했다. 그러고는 무심한 듯 숙제에만 눈길을 주었다.

완전 납작하게 쭈욱 눌렸더라. 근데 있지, 다음날엔 막 사슴도 보고 멧돼지도 있고 쥐 같은 것도 잔뜩 납작한 거야.

아 그래? 하고, 반 친구가 답했다. 친구는 내 숙제를 자신의 공책에 옮기기 바빴다. 나는 더는 친구를 방해하지 않았다.

교실 창밖을 내다보니 교문은 동년배들로 득실거렸다. 그들 틈에 문득 뭔가가 환히 부각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교실 문을 향했다.

야 어디 가? 다음 껀? 반 친구가 불렀다.

가방 안!

교문 쪽으로 달렸다. 학교 현관은 교문과 마찬가지였다. 선후배들과 동기들이 득실거렸다. 좁다란 현관이 꽉꽉 빈틈없이 들어찼다. 그 흐름에 홀로 반하는 나는 이리 차이고 저리 밀쳐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뭐야, 하는 얼굴. 재차 흘기는 짜증스런 눈빛. 그들은 그대로 나를 짓밟고 갈 기세였다. 교문에 도착해 교실 창밖으로 본 그것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잠시 떨어져 기다리기로 했다.

이내 군중이 흩어졌다. 한둘만이 간간이 교문을 지났다. 그 틈에 교실 창밖으로 본 그것을 찾아 살폈다. 보도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학교 앞 차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자동차, 승합차, 화물차 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한여름 더위에 숨구멍이 거칠게 타들어갔다. 인중의 땀을 훔쳤다. 그것이 보였다.

까마귀였다.

여행 때 차창 밖으로 본 토끼와 사슴만큼이나 납작한 까마귀. 검디검은 까마귀.

까마귀라고 알아본 것 자체가 기적일 따름이었다. 까마귀는 차도에 발린 한겹 색감에 불과했다. 납작해진 지 한참 된 게 분명했다. 곁을 스치는 차가 일으키는 돌풍마다, 바삭한 까마귀의 일부가 비늘처럼 얇게 들어올려졌다. 일부는 먼지가 되어 풀풀 날렸다. 근처 화단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까마귀를 긁어댔다. 하지만 워낙 납작 달라붙어 있어 까마귀는 떨어질 줄 몰랐다. 거친 포장재만 긁힐 뿐.

거기 뭐 해. 문 닫는다. 빨리 안 오면 지각이야. 교문에서 수위 아저씨가 외쳤다.

나뭇가지를 놓고 교문으로 달렸다. 흘끔 뒤돌아본 차도에 까마귀 위로 자동차가 덜커덩 덜컹. 나는 그저 손등만 벅벅, 긁적긁적.

 

수업 내내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칠판에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꾸중도 안중에 없었다. 청소차가 차도 위를 지났다. 세제를 뿌리며 크고 거친 솔로 차도를 닦았다. 하교길에 까마귀가 납작해진 곳을 찾아갔다. 까마귀는 너절한 일부만 남긴 채 지워졌다.

 

*

 

우리 가족이 사는 집 지하창고에는 아저씨가 살았다. 아저씨는 먼 땅에서 이곳으로 왔다. 여행, 같은 것은 아니었고—아저씨는 그런 이유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장탄식을 했다—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향에 딸 둘과 아들 셋, 아내를 두고 이곳으로 왔다. 광야 한복판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는 거기서 선대가 그랬듯 평생 돌을 깎아 만든 집에 살면서 고지대에서 소를 기르며 보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찾아와 마을에 많은 걸 가져다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이었다. 그때까지 보아온 무엇보다 딱딱하고 날카롭고 요란스러운 것들이었다. 아저씨는 처음에는 두려움마저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져 시간이 지나자 그것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리 말하는 아저씨의 눈에는 뜻 모를 먹빛이 스쳤다.

시간이 지나 마을에 그 물건들을 새로 들여야 했지만, 그럴 돈이 아저씨는 물론, 다른 사람들한테도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챘다. 그리고 아저씨들도 가슴 한편이 허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을 들이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그런 것 없이 살아온 마을에 이제 와 솟아날 리 없었다. 마을은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해왔다. 마을에는 장인들이 있어 옷가지며 가구, 식기 등의 생필품을 만들었다. 먹을거리는 밭과 소와 고지대의 초원에서 얻었다. 부족한 게 생기면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다. 그런 그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고심 끝에 마을의 아저씨들은 외부로 흩어졌다.

 

엄마 아빠는 아저씨를 못마땅해했다. 이 땅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유별난 외모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아저씨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외모는 내 눈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냄새는 글쎄,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생선내장과 비늘조각 틈에서 자랐음에도 여전히 비린내라는 게 생소할 만큼. 다만 아저씨 주변에 냄새, 혹은 그처럼 특유의 공기가 맴도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저씨는 그의 고향 전통음식이라는 걸 늘 지니고 다녔다. 그게 바로 냄새의 출처였다. 아저씨는 울적하거나 고향이 그리워질 때, 혹은 기념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걸 조금씩 맛본다고 했다. 누렇고 시큼한 양념에 야채를 버무려 발효시킨 그 음식의 유통기한은 길었다. 냄새 역시 만만찮게 검질겼다. 아저씨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내내 그걸 지니고 다녔다. 엄마 아빠는 아저씨의 고향 음식 앞에 만면을 찌푸렸다.

우리 집에 오던 날, 아저씨는 자신을 받아준 엄마 아빠에게 감사 표시로 그 음식을 대접했다. 그 냄새에 질겁한 엄마가 아저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과 손이 순간 맞닿고, 아저씨는 화들짝 놀라 병을 떨어뜨렸다. 병은 다행히 융단 위에 떨어져, 안에 든 것이 엎질러졌을 뿐 깨지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호들갑스럽게 사과하며 황망히 음식을 주워담았다. 엄마는 다음날 융단을 내다버렸다. 결국 아저씨의 고향 음식을 맛본 건 나 하나였다. 아삭아삭, 톡 쏘듯 시큼한 맛. 아저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런 내게 감격한 눈치였다. 엄마 아빠는 한동안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엄마 아빠는 아저씨를 받아주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돈이 부족했다. 아빠가 운영하는 해산물 식당의 생선요리에서 철조각이 나온 뒤, 가게는 텅 비었다. 아빠는 철조각을 삼킨 생선이 운 나쁘게 걸렸을 뿐이라고 항변했고, 음식에는 하자가 없다며 언성을 높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뱃속에 철을 넣은 생선을 판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오랫동안 조리되지 못한 생선들은 결국 망연자실 둥둥 떠버렸다.

그러던 중, 엄마는 안 쓰는 창고나 방을 세 주면 꽤 벌이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식당이 다시 정상궤도에 들어서기까지 그것만으로도 살림에 보탬이 될 거였다. 엄마는 당장 전단지를 만들어 내다 붙였다. 일 년에 한번 가족끼리 여행도 가능하게 된 걸 보면, 일정 부분 효력은 있었던 모양이다.

 

아저씨는 포대자루나 다름없는 가방 하나만 짊어지고 초인종을 눌렀다. 마침 엄마 아빠가 집에 없어 그를 맞이한 건 나였다. 아저씨를 집안에 들여도 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아 마당의 화단 곁에 앉혔다. 아저씨는 가방을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겨울이었고 제법 쌀쌀했다. 허름한 외투의 옷깃을 여미는 아저씨한테 차라도 한잔 갖다줘야겠다 싶었는데, 아무도 없는 마당에 두고 가자니 그 역시 꺼려졌다. 그래서 곁을 지켰다.

아저씨는 이 땅의 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건 간단한 일상회화 정도였다. 아저씨는 손짓발짓해가며 내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저씨가 이 땅의 말을 배운 건 고향마을에 신기한 물건을 갖다준 사람들에게서였다. 그들은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물건을 갖다주고, 말을 가르쳐줬다. 그들은 마을사람들을 돕고 싶어했다. 마을사람들의 병도 고쳐주었다. 그런 그들은 환대받았다. 그들은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떠난 그날까지도 연락은 없었다.

 

아저씨는 내가 사는 동네 인근의 공단을 전전했다. 아저씨는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지만 방세도 겨우 내는 형편이었다. 엄마는 파리채를 들고 코를 쥔 채 그런 아저씨를 타박하기 일쑤였다.

 

*

 

아침마다, 경적소리와 함께 기계장치들이 드륵드륵 이를 갈며 기지개를 켠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소란은 죽지 않는다. 여기서 태어나 평생 벗어난 적이 없는만큼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새벽마다 잠에서 깬다. 멀거니 눈을 비비며 휘장을 걷고 검게 짓무른 세상을 바라본다.

여명을 틈 타, 기계장치들은 주택가와 시내에, 무엇보다 인근 공단에 조잡하게 솟아 있다. 해마다 포자라도 날린 듯 여기저기 새롭게 돋아나 있다. 손을 갖다대면 벨 만큼 날카롭고 딱딱하고 요란스럽다. 하나같이 뒤틀려 제각기 차별화된 모습이지만, 그래봐야 붉고 누렇게 부식된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다. 강변의 집채만한 물레가 철가루와 기름을 뱉으며 영차, 모두를 일으켜 세운다. 거칠게 마모된 풍차들이 삐걱삐걱 재촉한다. 쿵쿵 울려대며 동력기의 추가 땅을 찧고, 붉은 녹가루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기계장치들이 각자 지레를 맞물려가며 힘차게 박동한다.

나는 그것들이 무얼 위한 건지 알지 못한다. 무얼 위해 해마다 그토록 솟아나는 걸까. 뭘 위해 그토록 분주히 움직이는 걸까. 엄마 아빠는 알까. 하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추측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

까마귀도 납작하고 강아지도 납작했다. 등하교길에서, 산책길에서 납작한 것들을 찾아 주위를 살폈다. 뜻 모를 이유에 가려운 손등, 거기 자리한 흉터를 벌게질 만큼 벅벅 긁으며 두리번거렸다. 바닥에 납작한 그들이 만개해 있었다. 보도에 차도에 도로포장재에 가득했다. 때로는 알아보지 못할 만큼 거뭇한 얼룩에 불과했다. 나는 바닥에 납작한 그들을 밟지 않았다. 금을 피하듯 예의주시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동차는 자전거는 화물차는 기계장치들은, 바닥에 납작한 그들 위로 지나가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어쩌면 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분명 무척 바빠 보였다.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다.

나는 나대로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해야 할 일로 가득했다. 학교에 가서 늦저녁까지 남아 공부를 하고 그사이에 밥도 먹고 씻고 숙제도 하고 벌서고 매맞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봐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쁨이고 그런 나의 바쁨 간간이 나는 바닥에 납작해져 있는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러지도 못할 지경에 이를 정도의 바쁨. 나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납작한 그들은 어디든 있었다. 주택가에 학교에 시내에, 심지어 지하도에 상점에 상가 복판에. 좁쌀만하거나 모기만하기도 하고 커다란 건 황소만큼이나 큰 덩치였다. 너무 검고 납작하기만 해 그것이 한때 무엇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것도 있지 않을까 싶어 높은 곳에 올랐다. 황소만한 얼룩은 겨우 시야에 들었다. 한눈에 담기엔 너무 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시내 백화점 옥상에 올랐다. 촘촘히 박힌 상가와 주택과 조잡한 기계장치들 속에, 어지럽게 얽힌 차도와 육교와 고가도로 틈에, 바글바글한 사람들과 자동차와 정거장에 길게 줄선 승합차, 이 모든 걸 꿈만 같이 얼싸안은 다채로운 형형색색 조명 아래, 검은 얼룩 바닥에 납작한 그들 중 큰 걸 찾아 살폈지만 이토록 멀리서 보니 전부 하나같이 넓디넓은 땅에 납작 퍼진 얼룩에 불과해 보였다.

 

*

 

 어느 주말, 아저씨가 내게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이거 방세. 주인아주머니 주어요.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아저씨의 고향 음식 냄새. 몇년 새 냄새가 제법 익었다. 아저씨 덕분에 나는 냄새를 아예 못 맡는 게 아니라, 단지 잘 맡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아빠도 제법 익숙해졌다는 투였다. 다만, 집을 찾는 손님들이 인상을 찡그리는 것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저씨한테 잘 전해주겠다고 답했다. 아무리 익숙해졌다 해도 엄마 아빠는 여전히 아저씨를 나병환자 피하듯 했다. 나는 그런 엄마 아빠와 아저씨 사이의 소통창구 역을 자처했다.

아저씨. 나는 지하창고로 향하는 그를 불러세웠다. 아저씨가 뒤돌아봤다. 그간 우리 가족이 사적인 용무로 말을 거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지라 눈동자에는 당혹감마저 스몄다. 그런 아저씨와 마주하고 나니, 대체 무엇 때문에 불러세웠나 까맣게 잊게 되었다.

내가 쭈뼛대며 말이 없자 아저씨는 힐끔 뒤돌아보더니 다시 지하로 향했다. 나는 봉투를 꼭 쥐고 한참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저씨를 불러세운 이유는 얼마 뒤, 엄마한테 방세를 건네주고서야 떠올랐다.

문득, 아저씨라면 바닥에 납작한 그들에 대해 알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책상에 가 엎드려 그 이유에 골몰했다. 냄새. 아저씨 고향음식 냄새지만 그것은 아저씨 냄새기도 했다. 활짝 열린 창밖으로 그것이 어렴풋이 진해졌다. 아저씨가 고향 음식을 꺼내든 모양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때 깨달았다.

바닥에 납작한 그들에게서도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 냄새와 달리 숨구멍을 찢고 숨을 뿌리째 뽑아갈 기세인, 다분히 호전적인 냄새였다.

눈을 꾹 감고 양팔에 머리를 묻었다.

갑자기 이게 뭐람. 그간 바닥에 납작한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이게 뭘까. 대체 뭘 말하려는 걸까. 뭘 보여주려는 걸까.

속으로 되뇌며, 아리는 손등을 쓸며, 한숨 푹 내쉬었다.

 

*

 

같은 반 아이 한명이 납작해졌다. 교실 칠판 앞 바닥에 달라붙어버렸다. 교복을 입은 채로 얇아졌다. 뭐가 그 아이를 밟고 지나간 걸까. 무엇이든, 상상도 못할 만큼 거칠고 사나운 것임에 분명했다. 그것은 아이를 가차없이 눌러놓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곳 어디에선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으리라.

부풀어 있을 당시 세부를 그대로 간직한 아이는 색감도 그대로였다. 팔, 다리, 몸, 머리가 어렴풋이 구별됐다. 그 속에 눈이며 입, 코, 귀도 비쳤다. 마치 총천연색 바닥화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 언젠가는 다른 눌린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검게 변해 얼룩에 불과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이다.

갓 납작해진 반 아이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피어났다. 내 눈에는 시큰하게 눈물이 고였다. 손등이 아렸다.

필통에서 칼을 꺼냈다.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반 아이를 긁어내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가장자리만 해어질 뿐, 아직 덜 말라서인지 젖은 채로 부서질 뿐이었다. 손등의 흉터가 점차 가렵더니 급기야 새된 통증에 이르렀다. 손이 저렸다. 칼을 놓쳤다.

뭐 하니 거기서. 빨리 제자리 가 앉지 않고. 담임이 교실에 들어왔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바닥에, 그러니까 그게, 누가 납작하게랄까요, 그렇게 눌려 있어요.

담임은 피식 웃었다. 나를 밀치며 교단에 섰다. 나는 묵묵히 제자리에 가 앉았다.

옆에 앉은 친구한테 바닥에 납작해진 아이에 대해 일러주었다. 친구는 내게 종일 말을 걸지 않았다.

 

반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교실 바닥에 납작한 아이를 개의치 않았다. 누구도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닥에 납작한 아이는 없었다. 그들의 무관심은, 신경 쓰지 않은 정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적어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테니까. 그 이유는 도통 모르겠지만, 나는 바닥에 납작한 반 아이가 무척 신경 쓰였다.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냄새는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두려웠다. 그 아이를 치고 지나간 것, 바닥에 납작하게 눌린 그들 모두를 치고 지나간 것,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납작해진 반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밟고 지나다녀 날이 갈수록 검게 때묻고 있었다.

 

*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마다 등교길에 마주쳐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그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엄마 요즘 아저씨 안 보여. 어디 아픈 거 아냐? 화장대 앞의 엄마는 그러냐, 심드렁하게 한마디 하고는 다시 치장에 열심이었다. 저녁때 아빠와 외출한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가고, 나는 곧장 아저씨 방으로 향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지하창고에 발을 들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어려서는 곧잘 여기서 놀곤 했다. 어둡고 꿉꿉했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어 포근히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매번 이야기책과 공책과 색연필을 들고 거기로 향했었다. 사방이 단단히 막힌 지하창고에는 세상의 다난한 수런거림이 일말도 스미지 않았다. 그런 나만의 놀이터에 세를 놓는다고 했을 때 크게 낙담했었다. 누구도 오지 않기를 빌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내다붙인 바로 다음날 아저씨가 찾아왔다. 한동안 그가 떠나기를 바랐다. 그걸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 생각들은 어딘가로 휩쓸려가버렸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한동안 그곳을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날부턴가 피해버린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망설이는 것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문고리를 쥔 채 얼어붙어버렸다. 하지만 아저씨의 상태를 확인해야겠다. 뜻 모를 망설임에 발목 잡힐 수는 없었다. 문을 살짝,

열었다.

방 안을 슬쩍 엿보았다.

그러자 텅 비고 그늘진 방 복판,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보였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 문이 열린 순간 고개를 휙 틀더니 내게 눈을 번뜩였다.

다리가 경직되었다. 흉터가 자리한 손이 송곳에 꿰뚫린 듯 마비되었다. 눈을 꾹 감았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에 집중하며 숨을 골랐다.

이내, 떴다.

다행히 고양이가 아니었다.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방구석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아 침을 삼키고 최악을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다행스럽게도 이불이 아주 약간씩 들썩이는 게 보였다.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정결하게 잘 정돈되었다. 애초에 어지럽힐 만큼 가진 게 많은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상자 가득 짐을 들여놨다 하더라도 분명 깔끔하게 정돈해두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려고 문고리를 쥐었다. 임무는 완료되었으니 여기서 나가야 했다. 방문 앞에서 닥친 동요가 점차 내 안에 똬리를 틀었다.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다.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깼다. 나는 화들짝 놀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저씨가 크게 염려할 게 빤했다. 아저씨는 공포에 질린 낯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저씨한테 허겁지겁 떠듬떠듬, 별일 아니고 그저 요즘 안 보여서, 혹시 아픈 게 아닌가 해서 와봤다고 변명했다. 그러고는 즉시 방에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나를 불러세웠다.

 

아저씨는 저녁은 먹었냐며 먹을거리를 차려주었다. 고향 음식을 한껏 내놓았다. 아저씨가 보물처럼 아끼던 것. 이렇게나 많이 받아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활짝 웃으며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가슴으로 침점하는 불안은 감추고 그 기묘한 누런빛 야채절임을 감사히 삼켰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톡 쏘는 시큼함이 일품이었다. 입과 목, 그리고 머릿속까지 잠잠히 퍼지는 진한 향은 익숙해지니 세상에 또 그런 맛이 없었다. 바짝 굳었던 몸이 살살 누그러졌다. 아저씨는 손짓발짓 더해가며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무척 맛있다고 답했다. 아저씨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저씨와 말을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여전히 이 땅의 말에 익숙하지 않았다. 겨우 알아들은 것에 따르면, 아저씨는 며칠간 아팠지만 병이 난 건 아니라고 했다.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되었다고 했다. 수중에 돈은 없었다. 그는 매달 겨우 방세만 마련했다. 남는 돈은 얼마 없었다. 아저씨는 가슴을 치며 며칠간 그 때문에 아팠다고 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제때 방세를 내지 못할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며칠간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쫓겨나면 근처에서 다른 방을 또 구할 수 있을지, 계속 이 땅에 머물 수 있을지 불안하다며 울먹였다. 아저씨는 그간 고향에 보낸 것도 없는데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저씨의 말을 다 듣고,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가 한참 말이 없자 아저씨는 눈물을 훔치며 먹을 걸 더 권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 그리고 어째서일까, 바닥에 납작해진 그들에 대해 물었다. 무심코 튀어나왔다. 아저씨는 내 말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며, 알고 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 바닥. 동네 여기저기. 아주 많아요. 여기서도 그런 사람, 자주 봅니다. 그런 사람. 고향서도 보았어요.

며칠 뒤, 의욕을 되찾은 아저씨는 새 일터를 찾아나섰다. 나는 다시 바닥에 납작한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간 눈이 멀었던 걸까. 아니면 차양막이라도 드리웠던 걸까. 거리 여기저기 바닥에 납작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때론 막 납작해진 듯 알록달록. 때론 그을음에 불과한 듯 번진 채로, 빛을 잃은 모습들.

근처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졸고 있던 경찰 아저씨가 내가 들어서자 화들짝 깼다. 내 말을 듣더니 알겠다며 귀찮다는 듯 내쫓았다. 자세한 걸 알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아저씨한테서는 그 뒤로 쭉 소식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전화번호를 건넨 적도 없었던 것이다.

 

다들 처음 들었던 거예요. 아저씨가 말했다. 다들, 마을사람들, 시끄러워 잠 못 자요. 아이들, 처음엔 울어요. 그 사람들 가져다준 거, 물건, 너무너무 시끄러워요. 딱딱하고 뾰족하고 시끄러워요. 드르륵드르륵, 시끄러워요. 소가 산으로 달아나요. 새들도 더 오지 않아요. 하지만 모두 일 안해도 돼요. 매일 편히 누워도 밥 먹어요. 집도 몸도 깨끗이 해요. 그리고 재밌고요, 그 사람들 갖다준 물건 있으면, 함께 웃고 놀아요. 사람들, 익숙해져요. 이웃들, 다들 집에 하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못 버려요. 아무도 못 버려요. 버려도 다음날 다시 있어요. 버려도 버려도 집안에 또 있어요. 부서지면 다른 집 거 가져다놔요. 소리치고 싸워요. 피나요. 그런데 어느날 보아요. 마을 길바닥, 아이가 납작한 거 보아요. 그 물건들처럼 드르륵드르륵 소리 나고 아이가 납작한 거예요. 냄새나요. 모두 피해요. 아이 위에 흙을 덮어요. 그리고 잊어요. 하지만 점점 마을사람, 사라져요.

그 사람들, 어떻게 된 걸까요? 아저씨한테 물었다.

아저씨는 공포가 침잠한 눈, 위태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무서워요. 매일, 소리 들어요. 빽빽 큰 소리 나고, 드르륵드르륵 다녀요.

뭐가요? 그 물건들요?

아저씨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하지만 들어요. 그 소리가 들어요. 귀가 아파요. 냄새나요. 그리고 사람들, 마을도 여기도 매일 사라져요. 납작해요.

아저씨의 몸 마디마디가 일제히 바들거렸다.

모두 무서워 떨려요. 하지만 아무 말 안해 요말하 면, 언 제올지 모몰 라요. 죽기는 싫어요. 아무 말 안 해요죽 기는싫 어요싫어요.

 

*

 

학교에서는 모두, 한때 그들과 다름없었지만 이젠 교실 바닥에 납작할 뿐인 반 아이에 대해 침묵했다. 아이는 빛이 바랬다. 냄새도 한층 옅어졌다. 나는 최대한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청소시간에 책상을 앞뒤로 밀 때조차 핑계를 대고 밖에 달아났다. 나는 납작한 그들에게 서서히 지쳐갔다.

같은 반 아이만이 아니었다. 길거리만큼은 아니어도 학교 곳곳, 바닥에 납작한 그들.

그중에는 한때 선생님이었던 걸로 보이는 얼룩도 있었다. 그 선생님 중 일부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우리 반에도 들어왔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나 역시, 지금 모두가 바닥에 납작한 반 아이를 모르듯, 바닥에 납작한 선생님의 행방에 대해 몰랐던 것이다.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선생님을 기억해보았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일말의 단편조차. 그는 어떤 과목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대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쳤던 걸까.

같은 반 아이 역시 떠올려보고자 했다.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어디에 앉았었는지조차. 아무것도.

 

아저씨의 언급대로라면 바닥에 납작한 그들을 짓누른 건 지금도 어딘가를 어슬렁대는 것이다. 아저씨는 그게 오면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드르륵드르륵,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롭게 질러댄다고 했다. 대체 무엇인지,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처음에는 그저 뜻 모를 충동에 바닥에 납작한 그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최대한 눈을 감았다. 그들이 눈에 띄기 이전의 세상만 보고 싶었다. 그들을 눈구석 한곳에 최대한 몰아넣었다. 그러자 기분 탓일까, 바닥에 납작한 그들이 발견되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

한시름 놓았다.

 

*

 

아저씨는 언제나 그랬듯 내게 월급봉투를 맡겼다.

하교길이었다. 아저씨와 길에서 마주쳤다. 아저씨는 새 일터의 동료들과 잠시 어디에 들렀다 오겠다고 했다. 내게 지난달 방세를 맡기며, 엄마한테 늦어 죄송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 신신당부했다. 지하창고에서의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내게 여전히 납작해진 그들을 보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왜 저희들에게만 보이는 걸까요?

그러자 아저씬 고개를 저었다.

모두 봐요. 모두 보여요. 그저, 보지 않을 뿐예요.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울렸다.

모두가 보고 있다. 하지만 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나를 가리킨 것에 다름아니었다. 보지 않으려 하자, 바닥에 납작한 그들의 수는 분명 눈에 띄게 줄었다. 엄마 아빠도, 선생님들도, 교실의 아이들도, 거리의 모든 사람들도, 보이지만 보지 않으려 한 것뿐일까.

지금 내가 그러듯.

그리고 그날, 가깝고도 먼 옛날, 바닥에 납작한 그들 중 하나를 처음 봤을 때, 손등에 상처가 새겨졌을 당시 또한 내가 그랬듯.

아저씨가 일한다는 공장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아저씨는 그곳에 바닥에 납작한 그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그들을 똑똑히 봐둬야겠다는 충동이 작게 파문을 일으켰다.

 

*

 

처음 언제 본 건가요? 지하실을 찾아간 날, 아저씨가 물었다. 얼마 안돼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는 지하실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앉자 허벅지에 푸근한 덩어리가 얹힌 듯 나른해졌다. 손등의 가려움도 가라앉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덩어리는 내 몸과 하나인 듯 익숙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대보고 쓸어보아도,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몇년간, 지하실을 찾지 않게 된 그날부터 몇년 동안 쭉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바닥에 납작한 그들 중 하나를 보게 된 날부터,

쭉 없었던 것이다.

 

한때, 우리 집 지하창고에는 작은 고양이가 살았다. 밤의 정령처럼 까맣던 그 아이가 어디서 나타나 여길 찾았는지 몰랐다. 고양이는 그냥 어느날부턴가 창고를 지키고 있었다. 모서리가 살짝 깨진 창문 틈새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거리낌없이 다가왔다. 공책을 펼친 내 곁을 야옹거리며 비비고 맴돌았다. 어디가 아픈지 뒷다리를 절룩이며 한발짝 디딜 때마다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물을 떠다주고 마른 멸치를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내가 지하창고를 찾을 때면 내 허벅지며 등이며 어깨 위에 올라 내려올 줄 몰랐다. 엄마는 털투성이 내 옷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재채기를 해댔다. 엄마가 뭐라 소리쳤지만 고양이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었다. 내쫓을 게 분명했다.

 

고양이는 점점 자라 제법 커졌다. 창문의 틈은 좁아서 더이상 쓰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달리 밖에 나가는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지하실에 앉아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그 아이를 생각해 거의 매일 시간을 내 지하창고를 찾았다. 엄마 몰래 먹을 걸 갖다놓았다. 하지만 고양이의 절룩거리는 다리는 여전했다. 고양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투로 나만 기다렸다.

나는 나대로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까지 바빠야 할 일들로 가득했다. 학교에 가고 밥 먹고 씻고 숙제하고 애들과 놀고 벌서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봐야 했다. 다달이 바빠야 할 일들만 늘었다. 그런 나의 바쁨 속에 고양이를 위한 자리는 점차 작아져만 갔다. 그런 나는 생각지도 않고 고양이는 내가 돌봐주기만을 바랐다.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고양이의 눈은 명백하게 그리 말했다.

 

어느날.

고양이를 번쩍 집어들고 지하창고를 나왔다. 대문 밖을 지나 거리로 나섰다. 고양이는 돌처럼 굳은 채 내게 찰싹 붙어버렸다. 발톱을 바짝 세우고 옷을 찢을 것처럼 달라붙었다. 차도에 승용차가 화물차가 승합차가 지날 때마다 고양이는 더욱 내게 단단히 붙었다. 뭔가 목을 옥죄기라도 한 듯 발버둥쳤다. 하지만 아무리 숨고 싶어도 거기가 세상이고 피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확신했다. 그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게 최선이었다.

 

*

 

공장지대는 집이 자리한 주택가에서 멀지 않았다. 위태롭게 버티고 선 다리 건너, 거품을 문 하천 너머, 그가 자리했다. 해질녘의 어스름한 자줏빛에 젖은 하늘을 뒤로, 무지근하게 회색으로 탈색된 공장지대가 사납게 일어섰다. 그가 지난밤 꾼 악몽의 잔재처럼 검게 뒤틀린 기계장치들이 곳곳에 솟았다. 한창 가동중인 공장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아래 잔뜩 움츠린 땅이 뒤척이고 주변 공기가 동요했다. 폐건축자재들이 거칠게 솟은 논밭을 지났다. 그 위에 부서진 유리파편이 마치 먼 미지의 천체도처럼 날카롭게 광채를 발했다. 거의 무너져내린 한 농가의 기둥에 삐쩍 마른 개 한마리가 묶여 있었다. 나는 목에 걸린 밧줄을 풀어주었다. 개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대기에 서서히, 냄새가 짙게 배었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맡을 수 있는 냄새, 그 둘 중 하나. 그리고 지금, 아저씨의 고향 음식은 나와 한참 먼 곳에 있었다.

납작해진 그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폐허가 된 농가에도, 검은 기름이 낀 논두렁에도, 공장과 공장 사이를 잇는 진창길에도. 급기야 그들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해졌다. 마치 세상이 납작해진 그들로 이루어진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 내다보았다. 세상은 바닥에 납작한 그들의 형형한 색감 속에서 구역질나는 빛을 발했다. 일부는 검게 지워지고 일부는 갓 납작해진 듯한 원색이었다. 모두, 사방 곳곳에 뾰족하게 돋아난 기계장치에 박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을 오래 보고 있으니 눈이 시렸다. 숨이 막혔다. 냄새는 일대의 공기조차 내몰아버렸다. 목을 움켜쥐고 겨우 입을 벌렸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날카로운 경적.

그뒤, 소리를 들었다.

 

드르륵드르륵

 

공장지대의 으르렁거림조차 그 앞에 숨을 죽였다. 마른 억새가 스산하게 퍼석거렸다. 수백마리 새떼가 하늘을 뒤덮었다. 들쥐떼가 한 방향으로 황망히 내달렸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드르륵드르륵

 

성난 듯 온몸의 뼈마디를 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소리는 사방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머릿속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식은땀에 옷이 젖었다. 달려야겠는데, 발이 땅에 붙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내 발목을 옭아맸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납작 눌러놓고자.

빳빳한 고개를 돌려 그것을 찾았다. 목뼈가 마디마디 우그러지듯 아우성이었다.

 

드르륵드르륵

 

 

소리는 심장을 꿰뚫을 듯 날카롭게 솟았다. 고막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귀를 막고 싶었지만 손이 들어올릴 수조차 없을 만큼 저릿거리고 아팠다. 나는 고개를 위로 꺾었다.

그리고 눈을 찡그리고 간신히 그것을 보았다.

 

*

 

고양이는 내 앞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한없이 납작해져버렸다. 누구 잘못이었을까. 그 아이를 팽개치듯 길바닥에 던진 내 잘못이었을까. 내 손등을 할퀴고 손을 물어버린 그 아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누구든 무엇이든, 그 아이를 짓누른 그것의 잘못이었을까.

어찌되었든 고양이는 내 앞 길바닥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손등에 커다란 상처가 피어났다. 피가 흘러 그 아이를 적셨다. 그 아이를 밟고 지나간 것이 누구든 무엇이든, 이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별 중요치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차들이 끊임없이 태연자약하게 밟고 지나갔다.

바닥에 납작한 그 아이를.

그리고 어쩌면, 그때 또한 소리를 들었던 게 아닐까.

 

드르륵드르륵

드르륵드르륵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롭게 파고드는 소리. 숨을 뿌리째 뽑을 듯 지독한 냄새.

 

*

 

소리가 멈추고서야 겨우 나는 차가워진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사위가 어둑했다.

밤. 다행히 만월의 인도 아래 그럭저럭 귀가길을 밟을 수 있었다. 귀가 축축했다. 만져보았다. 손끝이 촉촉이 젖었다.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끈적끈적 푸석한 걸 보니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집으로 향했다. 도시 쪽으로 사라진 그것은 더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보고 기겁했고 아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는 아저씨를 내쫓았다. 약속한 날짜에 방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런 주제에 술이나 퍼마시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울며불며 항변했지만 뭔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아저씨는 아직, 이 땅의 말에 익숙지 않았으니까. 주머니 속의 월급봉투를 꼭 쥐었다. 엄마 아빠는 새파랗게 질린 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 내 눈가에 피가 번졌다. 몇줄기 볼을 타고 흐른 자국이 선했다. 귓가에도 피가 엉겨붙었다. 통증은 없었다. 핏자국을 유심히 바라보고 꾹꾹 눌러보기도 했지만, 거기서 어떤 의미가 솟을 것 같진 않았다. 미지근한 물로 세수를 했다. 엄마 아빠가 욕실 문을 열었다.

아저씨 언제 떠났어? 내가 물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훔쳤다. 옅은 핏자국이 가면처럼 찍혔다.

오자마자 쫓아냈어. 오늘까지 안 내면 나가라고 분명 말했는데. 가진 것도 없어 짐 싸는 데 일분도 안 걸리더라. 그런데 너 정말 괜—

잠깐 나갔다 올게.

지하창고로 향했다. 텅 비었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병 말고는.

 

*

 

아저씨는 내 앞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그에게는 아무 미련도 없는 듯 보였다. 납작하게, 납작하게, 두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길바닥에 납작한 그는 그 일부나 다름없었다. 불현듯, 그는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째서 이제야 눈치챈 걸까. 자문해보아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위안이나마 필요했다. 어쩌면 내 깊숙한 곳 어디선가는, 사실 알고 있었을 거라는 위안.

내 앞 길바닥에 납작한 그를 한때 아저씨라고 알았다. 하지만 이제 얇게 펴진 그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가볍게 얄팍해졌다. 나는 기억했다. 그가 내 옆에, 이 거리에, 세상에 차지하고 있던 딱 그 정도를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그와 기억 속의 그는 결코 겹쳐지지 않았다. 아저씨가 차지하던 딱 그 정도는, 납작하게 바람 빠져 볼썽사나웠다. 아저씨가 차지하던 딱 그 정도는, 이제 누구 것이 되었을까.

내 곁을 오가는 이들은 길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내가 거치적거리는 듯했다. 그들의 발에 차이고 무릎에 찍혔다. 어머나 어이쿠 하는 탄성과 함께 내려다봤다. 내가 어디서 피어올랐는지 의문 가득 휘둥그레. 고개 꺾어 올려다보자 그들의 세부는 태양의 후광에 씹혀 잘 보이지 않았다. 눈부셨다. 눈물이 고였다. 윤곽. 검은 형체에 불과한 그들이 내 곁을, 앞뒤로 흘렀다. 사람들은 언제나 바닥에 납작한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을 태연자약하게 밟고 지나갔다. 젖은 흙이 묻은, 끈적한 기름이 차진, 단단한 보도에 거칠게 마모된, 발발발 구두굽이 다채로운 문양을 얼룩을 바닥에 납작한 그들 위에 저벅저벅 찍어놓았다. 눈물로 씻어보려 했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보도가 차가웠다. 어제 아주 잠깐 눈이 내렸다. 눈이 녹아 포석에 스몄다. 납작해진 아저씨를 보도에서 긁어내보았다. 하지만 그는 찰싹 달라붙어 그대로였다. 손톱 밑에 작은 돌조각이 끼었다. 살짝, 벌어졌다.

 

*

 

새로 셋방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 아빠는 나날이 초조해했다. 하루하루, 다달이, 집안 사정은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아빠의 음식점도 문을 닫았다. 날이 갈수록 손님은 줄기만 했다. 쇠를 먹인 물고기를 팔았다는 낙인은 끝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아빠는 더이상 운영은 힘들리라 판단했다.

 

드르륵드르륵

 

이제는 매일 소리를 들었다. 경적소리와 함께 그것이 지평선에 보였다. 하늘을 향해 검게 이를 드러낸 공단과 기계장치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그들의 조잡한 왕께서 행차하셨다. 자신의 비만하게 부패한 왕좌, 이 세계 위를 거니는 기계화된 절름발이 신께서, 몸소. 그것이 지나간 길에 바닥에 납작한 그들이 새로 질퍽했다. 알록달록 병적인 원색으로 꽃피어 있었다. 역사 앞 긴 의자에 누워 지내던 아저씨도. 수레를 끌며 폐가구와 쓰레기 틈에서 삶을 찾아 헤매던 아줌마도. 학교 앞 골목의 누추한 구멍가게 할머니. 하천의 다리 아래 복작복작 판자와 종이로 은신처를 꾸린 아저씨 아주머니 아이들 모두.

모두모두, 납작납작.

아저씨의 고향 음식을 깨작깨작 씹으며, 피나도록 손등을 긁어대며, 그들을 찾아다녔다. 병은 이제 거의 비었다. 사람들은 더는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덕분에 길을 걷기 한층 수월했다.

 

아삭아삭.

 

학교엔 가지 않았다. 나가봤자 무엇하랴 싶었다. 엄마 아빠는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어 개의치 않는 듯했다. 엄마 아빠는 다른 곳으로 이사갈 준비에 바빴다. 집을 팔고 우리 집 사정에 걸맞은 작은 곳을 찾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뭔가 불안한 듯 쫓기듯, 끝없이 서성거렸다. 손톱을 깨물었다. 미간을 찌그리고 동그랗게 눈을 떴다. 식은땀을 흘렸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이제, 엄마 아빠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 그리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긴 바닥에 납작해져 있는 그들.

하지만 나는

 

아삭아삭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슬슬,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이제껏 봐온 바로는, 이제 곧, 이제 곧.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드르륵

 

대기에 지독한 냄새가 번졌다. 숨통을 조이듯, 다분히 호전적이었다.

며칠간 다급히 찾았지만 우리 가족이 갈 곳은 사실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럴 때만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저 고양이한테도. 단지 아저씨한테도. 마냥 내게도. 누구한테든. 어디로든.

 

드르륵드르륵

드르륵드르륵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것.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

 

아삭아삭.

 

그것이 다가왔다. 바로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