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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남익 趙南翼
1935년 충남 부여 출생. 196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산바람소리』『풀피리』『나들이의 땅』『짐의 연가』『푸른 하늘』등이 있음.
대밭이 바람에 흔들릴 때
키가 큰 대나무는
바람 잘 날 없어도
바람 타는 하늘에서
용솟음치는 깃발이 있다.
대나무는 일직선으로 큰다.
욕망의 내장은 아예 털어내고
뿌리털의 콘크리트에서 솟아오른다.
마음 비운 몸은 키만 큰다.
대밭이 바람에 흔들릴 때
깊숙이 휘며 바람 먹고
허리 세우며 바람 뱉는다.
꺼질 듯 하이얀 숨소리의 휘파람.
나, 대밭에서 왔으리
나, 대밭에서 보냈으리
대밭이 바람에 흔들릴 때
하늘에 뜨는 울부짖음
흩어지고 뭉치는 바람속이 터지면
비로소 눈 뜨는 바다로 간다.
절망은 소스라쳐 놀라 절망을 깨고
짐짓 앉은뱅인 양 다시 돌이 된다.
비무장지대
독수리떼
남의 땅 사냥하는 곳
무모한 지뢰밭
아주 깊은 잠이 들었어.
태평양보다 머언 평양
비무장지대 철책에 나부끼는
녹슨 구호들
날 선 발톱이 숨겨져 있다.
하늘로 가는 길을
사람의 손으로 막아놓고
비무장지대의 밤이 깊었다.
나는 작은 도마뱀이었고, 산뽕 먹는 누에였다.
두터운 뿌리의 기층에서
살아 있는 씨앗을 먹고 나는 산다.
아시아의 끝에 가서 떨어지는 물소리
비무장지대에서는
반딧불이 송곳니로 반짝인다.
울창한 아카시아꽃 속에서
겁먹은 꿀벌들이
터지도록 비비는
손바닥의 부끄러운 죄
불로 가고 물로 오라
흔들리며 춤추며
벼랑에 추락하는 시간이 날카롭다.
아무도 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