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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정욱 『나는 반대한다: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 느린걸음 2010
반대 말고는 답이 없다
조홍섭 趙弘燮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까지 환경기자 노릇을 하기는 쉬웠다. 김포공항에 내려앉는 여객기 창문을 통해 서울의 대기를 이불처럼 뒤덮은 매연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에 있다가 온 사람은 공기에서 매캐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한강에선 가끔 떼죽음한 물고기가 떠내려왔다. 물론 정보를 얻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서울의 대기오염도는 “북괴의 올림픽 저지책동에 악용된다”거나 “오염이 심한 곳의 주민들이 땅값 떨어진다고 항의한다”는 핑계로 일년에 한두번 서울 전지역의 평균값을 국회에 보고하면 끝이었다. 서울의 대기오염 측정자료를 수록한 ‘대외비’ 도장이 찍힌 보고서를 구하기만 해도 특종을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쉽고 단순한 문제는 더는 없었다. 과학조차도 판단을 내려주지 못한다. 전문가도 양쪽으로 갈린다. 낙지의 머리와 내장을 먹어도 되는지를 둘러싸고 식약청은 괜찮다고 하고 서울시는 안된다고 하는 상황이다. 플라스틱 젖병을 계속 써도 되는지, 아이에게 참치통조림을 먹여도 되는지, 과일을 껍질째 먹는 게 나은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광우병 걱정은 없는지, 아토피를 막기 위해 시골로 이사가야 하는지…… 모든 결단은 개인이 자기책임 아래 내려야 하는 위험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4대강사업이 닥쳤다. 한반도대운하에서 시작된 이 문제는 환경기자를 골치아픈 번민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적어도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4대강 정비든 살리기든 뭐라 이름붙이건 간에 예상되는 문제가 너무도 분명했고 그에 대비한 제반 절차는 엉망이었다. 환경문제는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보도지침에 막혀 눈에 뻔히 보이는 공해실태를 쓰지 못했던 1980년대처럼, 이제 일부 보수언론 기자들은 회사의 방침에 막혀 4대강사업의 명백한 문제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겨레』가 2008년 1월 ‘한반도대운하 이래서 안된다’는 제목의 파격적인 기획을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중립과 균형을 신조로 삼는 언론사에서 결론을 정해놓고 기사를 쓰는 것은 위험하고 전례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문제의 성격이 그런걸. 오히려 이렇게 명백한 문제를 놓고 균형을 잡는답시고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양비・양시론으로 흐른 『조선일보』의 4대강 논조가 더 이상해 보인다.
김정욱(金丁勖)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4대강사업을 다룬 이 책에 ‘나는 반대한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서문에서 “강을 죽이고 생명을 파괴하는 야만 앞에서는 반대 이외에는 답이 없다”(20면)고 적었다. 4대강사업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17면)라는 것이다. 4대강사업 반대에 2천여명의 교수가 참여하는 운하반대교수모임뿐 아니라 4대 종단이 적극 나서는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다. 그의 생각은 다음 문장에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지금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몇 사람이 마음대로 손을 대는가? 어떻게 사유물처럼 취급하는가? 4대강 토건공사는 실로 자연의 질서를 심각하게 모독하는 것이고, 많은 생명체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는 행위이다. 모든 걸 떠나서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국토는 대통령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정치가들, 건설업자들, 곡학아세하는 전문가들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국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국토를 마음대로 파괴해서는 안된다.”(98면)
강바닥을 깊게 파고 보(洑)로 막으면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 물그릇이 되고, 강변에 자전거도로와 여가시설을 많이 만들면 지역개발도 된다는 게 정부가 주장하는 4대강사업의 목적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조감도와 함께 제시되는 이런 장밋빛 구상만 있을 뿐 정부는 반대론자의 기본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홍수나 가뭄은 강 본류와는 거리가 먼 산골과 섬에서 발생하는데 강바닥을 파서 어쩌려는 것인지, 최상류에 댐으로 막은 호수에서도 부영양화가 발생하는데 온갖 오염물질이 모이는 강 본류에 보를 설치하면 수질오염을 막을 수 있는지, 오염원을 찾아준다는 로봇물고기 따위의 이른바 첨단기술로 기후변화시대의 가공할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건지, 결국 운하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강바닥을 수로처럼 깊고 넓게 파는지, 의문은 끝이 없는데 정부는 동문서답이다.
나는 반대한다는 국토개발과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란 부제에서 보듯이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근 정부는 4대강사업에 대한 문제제기에 ‘이미 보 공사 등 사업진행이 절반을 넘겼다’며 ‘이제 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오리발을 내민다. 저자의 답은 이렇다(106~108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공사가 99% 진행됐다 하더라도 되돌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4대강사업은 공사에 들어간 22조원 말고도 엄청난 유지비가 들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자연이 무상으로 관리해온 4대강을 인공시설로 만들자마자 관리책임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수로, 댐과 수문, 체육시설, 자전거도로, 자동차도로, 저류지, 슈퍼 제방 등 유지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이 사업을 마땅찮게 보는 언론이 내버려둘 리 없다. 저자는 유지관리비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고 본다. 보통 공사비의 7.5%를 유지관리비로 잡는데, 4대강사업에선 15%까지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종국에는 복원공사가 불가피할 것이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라도 4대강사업은 당장 멈춰야 한다.
저자는 40여년간 환경공학을 연구해왔고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해왔다. 그는 1980년대 온산병(溫山病, 울산시 온산 지역에서 발생한 공해병) 논란부터 영종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매립, 새만금사업 등 굵직한 환경문제마다 양심적 공학자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의 시야는 4대강사업 반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지속가능한 ‘마을 속에서 함께 살기’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할지, 자연과 인간에 오만하지 않은 과학기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는 자연의 원리에 대한 성찰까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