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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저탄소 정책의 좌절과 에너지 계획의 전망
MB정부와 참여정부의 비교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화학. 파시브하우스디자인연구소장. 저서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등이 있음. lprlso@gmail.com
우리는 지금 두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졌고, 에너지자원 고갈은 개인과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4년 전과 5년 전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4차 보고서와 ‘스턴 보고서’(Stern Review on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나왔고,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그나마 견딜 만한 2도 안으로 억제하는 것이 어려우리라는 우려의 소리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이러한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2006년의 380ppm에서 390ppm으로 증가했다. 산업화 초기의 280ppm에 비하면 40%나 증가한 셈이다.1)
에너지자원을 대표하는 석유도 공급과 가격 면에서 큰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고, 이는 미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2008년 여름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가까이 치솟은 후 미국에서 금융과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닥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1달러 상승하면 미국내 소비능력이 1400억달러 줄어든다. 그런데 2007년 마지막 4분기부터 2008년 가을까지 미국에서 바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고,2) 곧이어 금융위기가 왔다.3)
기후변화와 에너지자원 고갈은 모두 인류의 과도한 화석에너지 소비 때문에 일어났다. 현대문명을 가능하게 만든 석유와 석탄이 이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에너지는 인류의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의 핵심주제로 자리잡아야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적어도 기후변화와 관련해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 현대세계에서 다른 어떤 문제를 가지고도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20년 가까이 한해도 거르지 않고 회합한 일은 없었다.
인류가 두 위기에 직면해 있고, 위기의 근원은 에너지에 있으며, 따라서 에너지가 정치의 핵심주제여야 한다는 것은 한국의 에너지정책을 논할 때도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당연히 이명박정권과 노무현정권의 에너지정책을 평가할 때도 그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그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한국의 에너지 미래를 개척하여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는가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즉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놓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4)
핵폐기장 건설로 좌초한 참여정부 에너지정책
한국의 에너지정책에서 ‘정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관료의 관성적 정책집행과 대통령의 말이 무엇보다 앞선다. 특히 관료의 힘은 어떤 정치적 요구보다 강하다. 국민참여의 기치를 내건 노무현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노무현정부는 에너지정책 면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행정관료와 준관료인 공기업 엘리뜨에게 끌려갔다.
노무현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떠안은 에너지정책의 큰 과제는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이었다. 정부는 이 과제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고, 매우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출범한 지 수년 후 지역간 경합을 붙여 중저준위 핵폐기장 건설부지를 확정함으로써 과제를 완수한 것으로 정리했다. 당시에 이 과제를 진두지휘하여 ‘성공적으로’ 끝맺은 이해찬 총리가 그후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와 이를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내세웠고 노무현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국가적 미해결 과제를 자기 임기중에 마무리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이 핵폐기장 건설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했는지 알 수 있다.5)
그러나 노무현정부가 핵폐기장 건설을 자기 과제로 삼은 것은 큰 정치적 착오였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부안항쟁을 촉발시켰고, 임기 내내 그 뒷수습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너지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유산을 붙들고 씨름하는 형국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핵폐기장 건설 계획은 레임덕에 걸린 ‘국민의 정부’ 말기에 원자력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와 공기업 엘리뜨들이 입안해서 새 정부에 떠넘긴 것이었다.6) 그런데도 참여정부는 이들의 계획을 자기 임무로 받아들여 완수에 매진했고, 거센 반대에 부딪혔으며, 결국 원래의 계획을 포기할 때까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동안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정책을 검토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포기 후에도 거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임기말을 맞았다. 물론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그래도 핵폐기장 건설이라는 어려운 과제는 해결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관료들이 부안에 계획한 핵폐기장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시설은 사용후 핵연료와 고준위 폐기물의 저장시설이었지 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은 아니었다.7) 원자력산업계에서 건설계획 발표 당시 제시한 주된 근거도 원전에 쌓여가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가 2006년경부터 넘치기 때문에 안전한 저장시설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지, 원전 부지의 지상창고에 보관하는 중저준위 폐기물의 저장고 건설이 더 큰 과제라는 주장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경주 중저준위 핵폐기장 건설로써 이 과제를 해결한 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위안일 뿐이다.
핵폐기장 건설은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안면도와 굴업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실행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해당 주민의 대대적인 저항을 불러왔고, 정권에 상당한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관료에게 일을 맡긴 다음 이들을 지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참여정부가 부안항쟁을 불러온 핵폐기물 문제의 해결을 새로운 에너지정책의 수립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오직 처리장 건설 성사만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출범 초기 ‘지속가능위원회’의 개편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속가능위원회는 에너지문제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시민사회의 관심을 표출하는 통로로 기능해왔다. 위원진 구성에 앞서 임명된 위원장은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정책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과 새만금간척 반대운동이 본격화된 후 참여정부는 지속가능위원회에 갈등해소를 주요 임무로 부여하고, 이에 맞추어 위원수를 크게 늘리고 지역에 위원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고 말았다.8) 부안사태를 새로운 에너지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지 못했던 것이다. 에너지 미래에 대한 약간의 언급은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2006년 여름에 ‘에너지비전 2030’이라는 발표를 통해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구호의 재등장: 이명박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이명박정부는 참여정부 덕에 원자력발전에 관한 한 어떤 부담도 없이 출발했다. 핵폐기장 건설이란 중대한 과제가 겉으로는 해결된 것으로 포장되었고,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의 건설에 관한 관료와 준관료의 요구도 없었다. 또한 핵폐기장이라는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보는 대다수 국민은 원자력에 한국의 에너지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명박정부의 원전 확대정책과 수출정책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참여정부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 에너지정책의 골격은 취임후 1년 반이 지난 2008년 8월에 발표한 ‘에너지 2030’에 나와 있다. 건국 이래 최초의 20년 장기계획이라는 선전문구가 붙어 있는 이 계획은 참여정부의 에너지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가지 차이는 보여준다. 첫째, 분석과 예측보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둘째, 어떤 주저함도 없이 원자력의 대대적인 확대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셋째, 재생가능에너지가 성장동력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강조한다. 넷째, 저탄소 사회가 목표로 등장한다.
이명박정부의 세부 에너지정책은 이 기조 위에 수립되고 시행되고 있다. 그 내용은 분명히 참여정부의 에너지정책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정부가 건국 이래 최초의 장기정책을 수립한 것은 아니다. ‘에너지 2030’은 참여정부의 허술한 장기계획 ‘에너지비전 2030’의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다듬어 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라면 ‘에너지비전 2030’에서는 원자력에 대해 긴 변명적 분석을 곁들이면서 조심스러운 확대를 주장하고 수치상의 목표 제시가 몇개 없이 향후 추진과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에너지 2030’은 목표가 명확하고 실천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에너지 자주개발, 원자력기술 수출, ‘신・재생에너지’ 개발, 에너지빈곤층 제로 등의 내용은 모두 ‘에너지비전 2030’에 나와 있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명박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관료에 의해 수립된 참여정부의 에너지정책에 정권의 의지가 첨가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명박정부의 에너지정책에 정권의 의지가 들어 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박정희시대식 구호의 사용이 보편화된다는 것이다. ‘녹색’과 ‘저탄소’라는 구호를 연관된 일에는 모두 붙이도록 함으로써 이명박정부는 자신이 녹색의 확대와 이산화탄소 감소를 지향한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낸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각종 관공서, 교육기관, 기업, 군부대, 지자체에서도 앞에 붙이는 구호가 되었다(저탄소 녹색청사, 저탄소 녹색학교, 저탄소 녹색기업, 저탄소 녹색부대, 저탄소 녹색도시…… 심지어 원자력발전소에도 저탄소 녹색기업이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이 구호는 강력한 연상작용을 일으켜 일반국민에게는 현정부가 어찌됐건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새로운 에너지정책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외국을 향해서는 한국의 에너지정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참여정부는 이처럼 구호를 뿌려대지는 않았지만, 그런 성격을 지닌 것이 없지는 않았다. ‘수소경제’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말이 있었는데, 여기저기 붙을 만큼 매력있는 것이 아니었고 정권의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구호가 되지 못했다. 반면에 이명박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구호는 일견 시대적 요구에도 들어맞고 지구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원자력발전의 화려한 부상
부안의 반대운동을 경험한 참여정부의 원자력정책은 한마디로, 확대는 하지만 조심스럽게 한다는 것이었다. ‘에너지비전 2030’에서도 원자력에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나서 에너지수요와 수출용 기술개발을 위해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핵폐기장이나 대국민 설득에 대해 아무 부담이 없는 이명박정부는 거리낌없이 원자력을 한국의 에너지 미래와 경제를 책임질 원천으로 규정했다. 원자력을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기술로 여기고,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수출산업으로 놓았으며, 실제로 뒷말은 많지만 한국 최초로 원전 선진국 프랑스를 제치고 원전 플랜트 자체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전력공급의 약 40%를 담당하는 20기의 원전을 2030년까지 약 30기로 늘려 전력의 59%, 전체 에너지수요의 27%를 담당시키려 한다. 대신 화석연료의 비중은 현재의 83%에서 61%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현재의 약 2%에서 11%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59%라는 전력량은 한국에서 원자력으로 공급할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전력시장은 고립된 전력망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서 원자력은 기저부하(base load)만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만일 원자력의 비중을 더 높이면 불필요하게 많은 전기가 원전에서 생산되어 전기를 버리거나 원전을 정지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9) 원자력으로 가능한 한 많은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이 계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은 원자력이 이명박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 부실한 계획, 초라한 성과
참여정부의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태도는 양면적이었다. 겉으로는 확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관심이 없거나 확신이 없었다. 그 결과는 관료 주도의 재생가능에너지 부풀리기 계획으로 나타났다. 가장 단적인 예는 ‘국민의 정부’ 말기에 도입되고 참여정부 때 자리를 잡았다가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 폐기된 재생가능 전기의 고정가격 구매제도(발전차액 지원제도)이다. 이 제도는 2000년부터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그후 세계 각국에서 앞다투어 도입하여 현재 20여개 국가에서 시행중이다. 독일에서는 시민들의 10년 가까운 노력과 정치권의 상당한 논쟁을 거친 후 도입되었고, 이 제도를 통해 10년 만에 재생전기의 비율이 전체 전력 중 5.4%에서 16.1%로 증가하는 대단한 결실이 거두어졌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 곳이 많았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 이 제도는 특정 기업이 관료 대상 로비를 펼친 결과로 너무 ‘조용하게’ 도입되었다. 물론 그후 이 제도의 장점을 간파한 많은 기업과 개인이 스스로 발전소를 설치하여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상당한 성과가 나왔다. 그러나 관료들은 도입 초기부터 이 제도를 바꾸려 했고,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 대신 도입된 것은 재생가능에너지 의무할당제(renewable portfolio standard)이다.
관료들이 차액지원제를 없애고 의무할당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내건 이유는 재생가능에너지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과 재생가능전기 생산자들에게 국가가 많은 보조금을 지불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할당제하에서는 관료가 재생가능전기 시장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10) 사실 차액지원제는 기업과 개인이 재생가능 발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이다. 관료가 적극적으로 계획한다고 해서 더 많은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여는 이익이 얼마나 발생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반면에 의무할당제하에서는 대형 발전사업자가 할당량을 채워야 하고 그 할당량 부과와 감시를 관료가 하기 때문에 모든 권한은 관료가 쥐고 있는 셈이다.
정치의 관심이 부재한 가운데 관료의 재생가능에너지 목표 부풀리기와 이를 통한 예산과 권한 확대 꾀하기는 결국 부실한 결과를 낳았다. 실제 결과는 생산량이 목표에 훨씬 못 미친 것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12월에 나온 제2차 신・재생에너지 계획에서 제시된 목표는 2003년의 2%에서 2006년 3%, 2011년 5%로 늘리는 것이었다. 전력은 2003의 1.8%에서 2010년 5.4%, 2011년 7%로 높이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매우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2010년에도 1차에너지 비율이 2%대를 넘어서지 못했고, 전력은 오히려 감소하여 2003년의 1.5%대에서 2009년에는 1.0%대로 내려앉았다.11) 목표치가 터무니없게 높았음이 드러난 것인데, 그 영향으로 2007년에 나온 ‘에너지비전 2030’에서는 2030년의 목표가 9%로 크게 낮추어졌다.
이명박정부에서는 제2차 신・재생에너지 계획의 부실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2008년에 나온 제3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과 ‘에너지 2030’에서는 목표량을 2010년 3%, 2020년 6.1%, 2030년 11%로 잡았다. 물론 이 목표는 참여정부의 ‘에너지비전 2030’의 목표인 9%보다 높고, 이명박정부는 선진국 수준과 같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12) 그리고 세부계획에서 참여정부 때와 특별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다. 이미 2010년 생산량이 2%대로 목표량에 크게 미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절대량은 2003년부터 꾸준히 늘어왔고, 앞으로도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의 절대량이 늘어난다고 해도 비율은 계획대로 높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구색맞추기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MB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제적 평가와 전망
외국에서 이명박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보는 시선은 참여정부에 비해 호의적이다. 한국이 종종 녹색성장의 모범국가로 언급되기도 하고, 중립적인 기관에서 내린 기후정책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저먼워치(Germanwatch)라는 기구에서 2006년 초부터 57개 국가를 대상으로 매년 등급을 매겨서 발표하는 ‘기후보호 인덱스’에서 한국은 2006년에는 49위, 2008년 54위였지만 2009년에 41위, 2011년에는 34위로 올라갔다. 그 이유는 1차에너지 소비량이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에너지정책이 후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2008년의 평가까지 책임이 있는 노무현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13)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정부 때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이명박정부 때에 비해 더 크게 증가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정부 5년간 1차에너지 소비량은 연평균 약 2.3%씩 증가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3년간 연평균 약 3% 증가했다.14)
이명박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참여정부 때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에너지 소비는 2030년까지 계속 증가하고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어나는 것을 전제한다. 주요한 차이는 원자력의 확대, 신・재생에너지와 녹색성장의 결합, 목표달성 의지의 확고함에 대한 적극적인 국내외 홍보라는 점이다. 또한 참여정부 때의 관료주도형에 정권의 의지를 어느정도 덧붙였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에너지 2030’에서 발표한 원자력의 대대적인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11%라는 목표에 도달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고준위 핵폐기장만 확보되면 원자력발전소를 30기로 늘리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정책으로는 에너지 소비의 감소와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크게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원자력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기저부하 전력생산의 확대를 낳고 전력소비도 증가시키며, 이는 원자력으로 화석에너지원을 대체하기보다는 전체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15) 또한 우라늄 가격 상승으로 연료 확보가 어려워지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시도될 것인데, 이는 방사능 사고의 위험과 핵무기 개발의 유혹이라는 또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다. ‘에너지 2030’에 따르면 2030년의 에너지 소비는 2006년에 비해 최대 60% 증가한다. 그중에서 화석연료는 10%가량 증가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로 늘어난다. 최선의 씨나리오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는 30% 가까이 증가하고, 화석연료는 3.6% 정도 감소한다. 정부에서는 이 수치를 가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가 4%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실제로 11.5%로 늘어나야 달성될 수 있는데, 지난 10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원자력을 최대로 확대함으로써 발생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는데도 정부가 내세우는 ‘저탄소’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에게 장기 에너지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수십년 후까지 제대로 내다보는 계획이 나오려면 한반도의 분단상황이라는 특수성도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북한과의 통일이 달성되고 그동안 억눌렸던 북한주민의 화석연료 소비욕구가 분출하면, 현재의 에너지 계획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석유공급 중단으로 1990년경부터 급격히 줄어든 북한의 에너지소비량은 회복되지 않고 계속 감소해서 1980년대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통일을 준비한다면 이러한 점도 고려되어야 할 터인데, 이명박정부의 에너지 계획에는 북한이 빠져 있다. 저탄소도 실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한반도의 반쪽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장기 계획으로서는 수준미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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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rends in Atmospheric Carbon Dioxide,” http://www.esrl.noaa.gov/gmd/ccgg/trends/ 참조.
2) 2008년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2007년의 평균가격에 비해 5달러 상승했다. www.oilnergy.com 참조.
3) 석유가격 상승과 미국경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James D. Hamilton, “Oil Prices and the Economic Downturn,” Testimony Prepared for the Joint Economic Committee of the U.S. Congress, 2009.5.20; Andrew DeWit, “Get FIT: Public Policy, the Smart State and the Energy-Environmental Revolution,” http://japanfocus.org/articles/print_article/3300 참조.
4) 더 근본적으로 접근한다면 엘마 알트파터같이 에너지레짐의 전환과 이를 통한 사회 전체의 변혁을 평가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기준으로 삼는다. Elmar Altvater, “Das Ende vom fossilen Kapitalismus,” Jahrestagung ASPO-Deutschland, Berlin, 2010.5.18 발표문 참조.
5)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유시민 정리, 돌베개 2010, 226면.
6) 노 전 대통령은 이 사실을 몰랐거나 주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임기초에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나서서 전라북도 부안에 방폐장을 만들려고 하기에 믿고 맡겼다”(같은 면)라고 회고한다.
7) 이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오해라고 말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준위 폐기물을 그곳에 모으려는 계획이 서 있었고, 이 점이 주민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8) 참여정부 초기에 개편된 지속위의 본위원수는 기존 지속위의 10여명에서 서울 26명, 지방 51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9) 전력소비는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데, 원자력은 기저부하용이므로 전체 전력을 모두 공급할 수는 없다. 변화하는 전력수요는 석유, 가스 등의 전력원 혼합을 통해 충족시켜야 하며 이때 원자력의 최대 비율은 약 60%에 달할 것이다. 원자력이 차지하는 전력생산 비율이 약 75%이고 1차에너지 비율이 38.5%에 달하는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이렇게 높은 비율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 중 남는 것을 인접 국가에 판매할 수 있고 첨두부하(최대부하)용 전기는 사올 수 있기 때문이다.
10) 차액지원제에서는 예를 들어 태양광 전기의 구매가격(약 700원/kWh)과 전력거래소의 전력거래가격(약 100원/kWh)의 차액을 준조세 성격의 전력기반기금에서 지불한다. 따라서 태양광 발전설비가 늘어날수록 전력기반기금의 지출도 늘어난다. 혹자는 이러한 재정부담의 딜레마에 빠진 정부가 차액지원제를 폐기하고 할당제를 도입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분석으로 보인다. 김태은 「제도변화와 대체요인으로서 딜레마 대응에 관한 연구: 신・재생에너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중심으로」 『한국행정학보』 143권 4호, 179~208면 참조.
11) 전력거래소 사이트(www.kpx.or.kr) 참고. 계획의 실현을 위해 연구지원비만 1조 5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짰지만 7년 동안 거의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이 정도면 정치의 무관심 속에서 관료와 연구기관 엘리뜨의 ‘담합’에 의한 계획이라는 의심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12) 유럽연합의 2030년 목표는 최종에너지 기준 20%이고, 각국에는 의무량이 부과되어 있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독일은 18%, 영국은 15%, 프랑스는 23%의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2030년의 잠정적인 목표는 40%이다. 이명박정부의 목표값 11%의 4배인데, 그 11% 중에는 폐기물을 태워서 얻는 에너지의 양도 포함되어 있다. 이 양을 제외하면 순수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은 8%에도 못 미친다.
13) ‘기호보호 인덱스’의 평가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수준 30%, 배출추이 50%, 정책 20%의 점수가 주어진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자국의 비정부기구 전문가 190명이 수행한다. 2011년의 평가 결과 이명박정부의 에너지정책은 57개 국가 중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인덱스에서는 이 결과가 녹색성장과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설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의 배출추이 점수는 5개 등급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배출수준은 그 윗단계의 점수를 받았다. 그전과 다름없이 최악의 평가를 받은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Germanwatch, The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Results 2011, Dec. 2010. 한국이 정책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대통령의 코펜하겐 기후회의 참석과 연설, 온실가스 증가량이 아니라 배출량 자체를 줄이겠다는 녹색성장위의 계획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14) 2010년 증가율은 1월부터 9월까지의 소비량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2010년의 증가율은 7%가 넘는다.
15) 한국의 전력소비는 지난 5년간 1차에너지소비 증가율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연간 5% 가까이 증가했는데, 원자력의 확대를 통한 기저부하의 확대는 대대적인 전력소비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2004년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는 7379kWh로 독일의 7083kWh를 앞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