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김용락 金龍洛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17인 신작시집『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 시집『푸른별』『기차소리를 듣고 싶다』등이 있음. yrk525@hanmail.net

 

 

 

시 같지 않은 시 3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경북 안동 조탑리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댓평 오두막에 막 도착했다

들판에 벼 낟가리가 쌓이고

조선무의 흰 잔등이 무청을

늦가을 푸른 하늘로 밀어올리며

턱턱 갈라진 흙 사이로 힘있게 솟구치는

어느날이었다

 

권선생님 왈

 

“사진 찍고 이칼라면 오지 마라 안 카디껴!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면 농사는 누가 짓니껴?

 

이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들을 마구 짓밟고 다니면

작은 생명들이 발에 밟혀 죽니더

인간들에게 생명평화인지 몰라도

미물에게는 뭐가 될리껴?

차라리 집 안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되레 생명평화 위하는 길 아이니껴?”

 

스님, 순례단원, 지역 시인, 카메라를 맨 기자는

묵묵부답 잠시 말을 잃었다

 

 

 

시 같지 않은 시 4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분과 함께,

두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텐데……”

 

* 권정생 선생은 모든 상을 거절하는데, 윤석중옹이 권선생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새싹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한 데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