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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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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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등이 있음. silverpaperbox@gmail.com

 

 

 장편연재 2

태연한 인생

 

 

제2부 그들 각자의 극장

 

 

1. 고통과 고독의 세계

 

류는 부모가 유학한 나라의 시민권자로 태어났다. 류가 자란 도시에서는 일년의 절반 동안 비가 내렸다. 우기를 알리는 차가운 빗방울과 함께 가을이 시작되면 비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여름이 끝나갈 때 사람들은 뒷마당에 있던 피크닉 테이블과 해먹을 차고로 집어넣었다. 잔디깎이와 자전거와 낚싯대도 함께 차고 구석으로 들어갔고 굳게 닫힌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비는 온종일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길고 지루한 시간을 예고했다.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린 채 느릿느릿 걸어 지나갈 뿐 거리는 텅 비기 시작했다. 점점 일조량이 부족해졌고 우울증 환자가 병원 대기실을 채웠다.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내버려둔 빈집에 홈리스들이 숨어들어 어둠속에서 겨울을 났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도시는 그 시기에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독서율과 자살률을 기록했다. 모든 일이 봄이 온 뒤로 미뤄진 탓에 삶은 무력했고 그것은 도시 전체를 웅크린 회색 동굴처럼 음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비가 그쳤다. 동물원 앞 언덕길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서 저 멀리 이루 말할 수 없는 푸른빛의 바다에 금화살 같은 햇살이 가득 고이는 날이 왔고 모두가 일제히 반바지 차림에 썬크림을 바르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것은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바라보며 긴 겨울을 지내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시린 찬란이었다.

그 도시의 봄은 크레파스의 색깔 같았다. 마치 난생처음 크레파스를 선물받은 아이가 상자에서 이것저것 아무거나 꺼내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에 아낌없이 색칠을 해놓은 것 같았다. 숲과 잔디와 바다와 꽃과 하늘과 산과 호수가 맨 처음 이름 붙여진 그대로의 초록과 연두와 노랑과 파랑과 하늘색으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푸르름 속을 한차례의 핑크빛 벚꽃 축제가 흔들고 지나간 뒤에는 호수에 뜬 요트의 흰 돛과 언덕 위를 달리는 자전거의 은빛 바퀴살이 하루 종일 햇빛을 튕겨냈다.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는 마치 거대한 아이스크림이 스쿠프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허공에서 얼어붙은 모양으로 도시의 짙푸른 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뒷마당의 잔디밭에는 다시 파라솔이 펼쳐지고 고양이를 약올리기에 바쁜 다람쥐가 삼나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튤립과 수선화가 피고 스프링클러가 하늘 높이 물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눈부신 봄날 중 어느 하루 류의 가족도 분주하게 피크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린 류는 주방에서 짐을 꾸리는 어머니를 도와 심부름을 했다. 어머니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큰 아이스박스에 바비큐용 고기와 쌜러드 야채와 안주거리 들이 든 밀폐통을 넣으면서 류에게는 작은 아이스박스를 챙기게 했다. 거기에는 캔맥주와 음료수와 과일이 채워졌다. 후식으로 구워먹을 감자와 옥수수와 마시멜로우와 칩 봉지는 따로 비닐백에 챙겨져 있었다. 수영복과 세면도구가 든 옷가방은 이미 캠핑 도구와 함께 아버지가 차에 실어놓았다.

류의 가족은 일주일간 야영을 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 바다를 일주할 계획이었다. 이웃의 세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지난겨울 카드놀이를 하면서 이 여행을 생각해낸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그날 카드놀이의 판돈은 세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밴을 렌트하는 데 쓰였다. 류의 가족을 빼고 다른 두 집에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12인승이면 충분했다.

드라이브웨이에 세워진 밴 주변에는 이미 반바지와 쌘들 차림의 이웃 아저씨들이 모여 서서 들뜬 목소리로 여행지와 날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류의 아버지는 말은 많지 않았지만 웃음소리만은 거기 있는 누구보다 컸다.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류는 드라이브웨이를 향해 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도 좋고 피크닉도 캠핑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와 일주일 동안이나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류가 한번 더 들뜬 표정으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어머니는 더이상 도울 게 없으니 아버지에게 가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류는 어머니 곁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 작년에 학교에 들어간 류는 주방에서 어머니를 돕는 것이 더 어른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와 주방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웃집 아줌마들이 도착해서 짐을 싣고 있다며 구석에 챙겨놓은 아이스박스와 가방을 들었다. 작은 아이스박스까지 한꺼번에 옆구리에 끼려고 하자 어머니는 자신이 들 테니 두고 가라고 말했다.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짐을 들고 나가면서 아버지는 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 얼굴 그대로 어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어머니는 아버지 뒤쪽에 조금 열려 있던 현관문으로 다가가 그것을 활짝 열어젖혔다.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었지만 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단속을 한 다음 식탁 의자에 걸려 있던 류의 피크닉 모자를 건네주고 욕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보는 것으로 어머니의 출발 준비는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현관에서 실내화를 쌘들로 갈아신던 어머니는 잠깐 동작을 멈추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인 챙기는 걸 잊었던 것이다. 류는 이미 현관문 밖으로 한걸음 나가 있었다. 어머니는 류에게 차에 먼저 가 있으라고 말한 뒤 쌘들을 신은 채 지하계단으로 통하는 복도로 몸을 돌렸다. 류는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밴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세 집의 짐을 모두 실은 아저씨들이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밴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은 뒤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가 가볍게 경적을 울렸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아저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 일이야말로 자기 몫이라고 생각한 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열려 있던 차문으로 나오자마자 드라이브웨이의 자갈을 밟으며 집을 향해 달려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부산했던 기운과 여행 짐이 모두 빠져나가 어쩐지 텅 비어 보이는 실내가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뭔지 모를 서늘한 정적이 류의 몸을 감쌌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류의 발밑에 어머니가 벗어놓은 실내화가 밟혔다. 한쪽 무릎이 현관에 내놓여 있던 와인 박스를 건드렸는지 병 주둥이가 가볍게 쨍강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주방 벽에 붙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거친 말을 하고 있는 게 막연히 느껴졌다. 어머니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고 집 안으로 들어온 류를 전혀 깨닫지 못한 것 같았으므로 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어머니가 조용히 전화기를 제자리에 올려놓을 때까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식탁 의자에 앉는 어머니의 씰루엣이 보였다. 어머니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쪽 손은 마치 조의를 표하듯 왼쪽 가슴 위에 사선으로 올려놓은 채였다. 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으로 금방이라도 오줌을 쌀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불현듯 류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류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의자에서 일어났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류의 곁을 지나쳐 천천히 와인 박스 쪽으로 걸어가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그것을 들었다.

아버지는 막 차 밖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류와 어머니가 차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이웃들이 한마디씩 쾌활하게 인사를 던졌다. 모두 여행을 앞두고 들떠 있었다. 누군가 멋진 써니 데이이니 어머니가 꾸물거린 것쯤 용서해주겠다며 농담을 던졌고 그런 싱거운 말 한마디만으로도 차 안에는 한바탕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트렁크에 와인 박스를 실어놓고 뒤에 들어온 아버지가 피크닉 준비를 온통 떠맡았다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꾸물거린다가 되느냐고 싱거운 농담을 거들었다. 어머니는 차 안의 모두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여름 내내 써니 데이가 계속될 테니 자신을 용서해줄 날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대꾸하기도 했다. 그러나 옆에 앉은 아버지가 안전띠를 매주기 위해 어머니 쪽으로 몸을 기울였을 때 류는 보았다. 아버지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백화점 쇼윈도우의 디스플레이 인형에 박힌 유리 눈알처럼 차가웠다. 철컥 소리와 함께 버클이 채워진 뒤 아버지는 고개를 들었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차 안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져나왔기 때문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의 오른쪽 손은 아까부터 왼쪽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안전띠를 붙잡는 것처럼 보였지만 손가락 끝이 마치 골절된 뼈를 누르듯 구부러져 있었다. 그 여행에 대한 류의 기억은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며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상할 만큼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기억에 남을 만큼 즐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은 여행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 여행 내내 자연스럽지 않거나 특별한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날 어머니가 받은 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류는 훗날 그 전화를 건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어 알게 되었다.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일주일간 만날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떠나기 전날 밤 당시의 애인을 만났고 가족여행이란 말에 질투에 사로잡힌 여자가 어머니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밝히며 여행을 훼방하려 했던 것이다. 자신의 가정이 있었던 그 여자는 결혼을 깨려는 의도까지는 없었다. 여행을 망치는 작은 수확만으로도 무례한 침입을 행사할 만큼 급하고 천박한 여자였고 자신이 남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악의의 권력적 측면에 도취해 있었다. 자신이 품은 악의가 아니면 절대로 남에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종류의 여자였다.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여자가 매물로 내놓은 류의 집을 둘러보러 왔을 때 어머니는 외출중이었다. 류는 하이스쿨 동급생의 엄마이기도 한 그 여자를 형식적으로 집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녀가 식탁에 앉아 류가 내온 차를 마시며 십여년 전 봄날 여행을 환기시킨 것은 어이없게도 한때 류의 가족 중 한 사람과 연인이었다는 것을 친분관계로 암시하여 부동산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속셈에서였다. 그 여자의 십여년 전 애인이 누구였으며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는 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때 부모는 이혼해 있었고 열여덟살인 류는 이미 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의 말을 듣자 류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 봄날 지금 여자가 앉은 것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씰루엣이었다.

어머니는 함께 여행을 떠나기 직전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 남편 곁에서 꼼짝없이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차 안에서 여행지에서 그리고 텐트 안에서. 그 여행은 부부들끼리의 휴가였다. 이웃 부부들이 그렇듯 커플 게임에서 아버지와 한팀이 되어 호흡을 맞춰야 하고 옆에 붙어앉아서 술잔을 부딪쳐야 하고 아버지가 운전을 맡을 때는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펼치고 의견을 나눠가며 함께 길을 찾아야 했다. 그 여행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부정과의 여행이었으며 그것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어머니의 눈앞에서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도록 각본이 짜여진 셈이었다. 전화를 끊고 어머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행들은 한껏 들뜬 경적소리로 출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머니는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을 잡은 다음 천천히 무대로 걸어나갔다.

 

고통의 서사

어머니의 결혼생활에서 류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점이었다. 어머니는 그 봄날의 피크닉처럼 많은 순간 자신을 배우로 바꿔서 고통 속을 통과해나가려 했다.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것을 밝히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어떤 변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거의 혼자 힘으로 지켜나가던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힘은 어머니 편이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여 아버지라는 가장을 각성하게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류에게 아버지를 비난하는 일도 없었으므로 류와 아버지 관계의 독자성은 지켜졌다. 류의 집에는 사소한 일상의 갈등과 반목은 있었지만 격렬한 다툼 후에야 도래하는 화해와 용서의 감동적이고 뜨거운 서사 같은 것은 없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어머니는 그 여자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묻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라고 무시해버렸나? 그러기에는 그 소식은 전혀 터무니없지가 않았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뜨겁게 반응해야 했다. 만약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고 또 믿지도 않게 되었다면 왜 떠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것도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어머니의 합리적이고 깔끔한 성격과 맞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책임감이나 헌신, 도덕적 우월감, 자존심이나 위악, 사회적 평판 그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었다. 그런 소모적 감정이나 공허한 명분 때문에 고통을 참아내면서 인생을 낭비할 만큼 어머니는 어리석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가 믿지 않게 된 것은 아버지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한 타자로서의 모든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 어차피 같은 세계였고 천국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아버지 방에는 책과 음반이 많았다. 그 취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요구했다. 집에 있는 동안에 아버지는 자기의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있곤 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아했다. 취향이 맞는 흥미로운 새 친구를 만나 흥분하곤 했지만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별로 없었다. 새 친구들과 만나고 작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고 새로운 기능에 심취했지만 그것들 모두는 이내 새롭지 않게 되었다. 그런 라이프스타일과 교제 패턴에는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그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가계의 많은 부분을 어머니가 맡고 있어 조건이 좋은 편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조건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그 안에서 다른 방식과 규모로 자기의 세계를 만들었다. 때로 그 세계엔 어머니와 공유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황당함과 치졸, 뻔뻔스러움이 있었으나 아버지는 그것을 어머니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아무런 주저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간혹 불편하거나 난처해 보이긴 했지만 고통스러워 보인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늘 바빴다. 공부를 하거나 식탁을 차리거나 옷장을 정리하거나 파티를 준비하거나 류의 숙제를 도와주거나 세차를 하거나 마당의 민들레를 뽑거나 수표책을 주문하거나 학생들의 과제물에 점수를 매기거나 이웃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각종 고지서를 처리하거나, 언제나 동시에 두가지 이상의 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현듯 그 모든 걸 덮어버리고 차에 시동을 걸어 극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류를 혼자 집에 남겨두어야 할 상황에는 옆자리에 태우고 함께 나갔다.

극장에서 어머니는 스크린에 몰두했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음 상영시각을 기다려 두번씩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극장에 도착해서 무엇이든 가장 빨리 상영되는 영화를 택하는데도 그런 태도는 언제나 똑같았다.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 의자에 앉는 순간 침묵이 지나쳐 숨소리까지 죽였으며 옆에 앉은 류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류는 잠들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는 왼팔을 들어 시계를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작은 기척이 잠든 류를 깨우곤 했다. 류는 지루했지만 어머니가 바빠 보이지 않는 게 왠지 좋았으므로 투정하지 않았다. 때로 류가 잠들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까지도 한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을 떼지 않았다. 류와 달리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류는 어른들이 어린애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언젠가 류는 유난히 재미없는 영화를 만나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중간쯤 깼는데 그 이후로 다시 잠들지 못해 어머니와 함께 영화 후반부를 보게 되었다.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어머니가 손목시계를 보려고 팔을 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류는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에서 반사되는 빛이 시곗바늘과 어머니의 얼굴을 동시에 비췄다. 어머니의 얼굴은 영화에 몰두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무표정했고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류의 시선이 불현듯 어머니의 오른팔에서 멈춰졌다. 그것은 어머니의 왼쪽 가슴 위에 사선으로 얹혀 있었는데 손끝이 쇄골 근처를 파고들듯 구부려진 채 무엇인가를 꾹 누르고 있었다.

류는 어머니의 방문을 불쑥 열었을 때 어머니가 그런 자세로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있는 것을 몇번 본 적이 있었다.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씽크 모서리에 기대서서, 그리고 류를 태우고 운전을 하던 중에 차를 길 한쪽에 세우고 그렇게 잠시 앉아 있는 것도 보았다. 특히 언젠가 저녁 공원을 산책하면서는 몇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이었다. 다친 게 아닌지 류가 물었을 때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래전 다친 곳이 갑자기 아플 때가 있어. 괜찮아. 소독을 하면 돼, 류. 차갑고 따갑지만 소독을 하면 병균이 잠든단다. 병균은 깨우면 안되니까 가만히 있는 것뿐이야. 류가 어린애다운 과격함과 정의감에 차서 병균을 죽여버리라고 주장했고 어머니는 병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어두운 극장의 구석자리에 앉아 어머니가 보고 있었던 것은 영화가 아니라 스크린일 뿐이었다. 영사기가 돌며 보여주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어머니의 왼쪽 가슴 아래에서는 자기 삶에서 고통을 추출하는 원심분리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때로 영화상영 1회분의 시간을 더 설정해야 했지만 매번 어머니는 영화가 끝난 뒤 고통이라는 침전물이 담긴 자신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환한 극장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몫의 인생 속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 침전물이 고통이 아니라 고독이었다는 걸 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이 외국인의 입주가정부가 되어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어떤 여름 오후. 스러지는 햇빛 아래 나무의 긴 그림자가 자신의 인생의 퇴락처럼 힘겹게 빛과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래가던 날, 어머니는 자기 앞에 다가와 있는 상실의 세계를 보아버렸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알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동의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따라야 한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왔다가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두운 극장의 의자에 앉아 모든 것이 흘러가고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고통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전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심분리기 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추출되고 있는 부유물은 고통으로 보이는 고독이었다. 그 봄날의 피크닉처럼 그것들은 오랜 우기 끝에 찾아온 찬란 뒤에 그 불길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고독, 불연속선

조의를 표하는 듯한 어머니의 그 몸짓이 다시 떠오른 것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직장에서 첫번째 여름휴가를 받아 유럽으로 떠나던 비행기 안에서였다. 여행의 일정은 모두 K가 짠 것이었다. K와는 대학 졸업반 때 만나 3년을 사귀어온 사이지만 서로의 일이 바빠서 휴가를 함께 떠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비행기 옆좌석이 아니라면 언제 그렇게 오랜 시간 류를 자기 곁에 묶어놓을 수 있겠느냐며 되도록 비행시간이 긴 나라를 택했다고 농담을 했다. 떠나기 전날 밤에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류의 스튜디오에서였다. 친구들이 허니문 예행연습이라고 놀리며 차례로 술을 권하는 바람에 류는 다른 날보다 훨씬 많이 마셨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업무를 다 처리하느라고 몹시 지쳐 있어 금방 취한 것이기도 했다. 몸이 아래로 처지면서 졸음이 쏟아졌고 속이 메스껍다는 느낌 속에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멀어지면서 한순간 기억이 끊기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스튜디오 안은 난장판이었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으며 비행기 출발시각은 두시간 뒤였다. 욕실과 옷장과 신발장을 뛰어다니며 눈에 띄는 대로 아무거나 급히 가방에 쑤셔넣고 택시를 잡아탄 류보다도 K는 더 늦게 도착했다. 류보다 더 서둘러야 했던지 머리카락은 마구 엉켜 있고 잠이 깨지 않은 듯 어리둥절한 표정에 옷도 어제 입은 그대로였다. 24시간 할인마트에서 급히 사기라도 한 것처럼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지만 다행히 여행가방만은 무사히 손에 들려 있었다. 류는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있었다.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억나지 않는 악몽 탓이었다. 몹시 고통스럽고 불길하고 두려운 꿈이었다.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꿈이 불러일으킨 감정들은 고스란히 남아 류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회사일 때문이었을까. 오랜만의 여행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에는 낯선 상황에 대한 긴장도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온갖 상상을 하던 어린시절처럼. 아니면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가벼운 말다툼이 있었는데 기억을 못해서, 그래서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걸까. 류는 옆에서 걷고 있는 K에게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꼭 붙잡았다. K가 팔에 힘을 주어 류의 손을 겨드랑이 가까이 끌어가며 웃음 띤 얼굴로 류를 바라보았으므로 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들은 숙취와 무거운 다리를 끌고 나란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했다.

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자리에 앉으니 두통도 알 수 없는 불안도 약간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슬리퍼로 갈아신고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중간중간 기내식을 먹고 잠을 자고 쉬기만 하면 되었다. 무엇보다 곁에는 K가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사소한 일까지도 즐겁고 편안할 것이며 무슨 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남들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이었다. 어린시절엔 비행기에 나쁜 사람이 타서 그 사람을 벌주기 위해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류 자신처럼 나쁜 사람이 세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는 않기를 바랐던 사춘기 이후 비행기 사고에 대한 불길한 생각은 떠올리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K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류의 시선은 선반에 가방을 올리고 있는 그의 가슴께에 머물렀다. 재킷이 벌어져 안에 입은 셔츠의 주머니가 드러났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귀고리가 분명했다. 순간 류는 자기가 어떤 악몽을 꾸었는지 생각났다. 류는 자기의 스튜디오에서 잠들어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한번 눈이 떠졌는데 그때 아마 악몽이 시작되었던 것 같았다. 주변은 온통 어두웠다. 술병과 접시가 어지럽게 놓인 탁자 근처에만 희미한 빛이 키스하는 남녀를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류의 대학 동기였고 남자는 등을 돌리고 있어 누군지 보이지 않았다. 푸른 줄이 들어간 얇은 여름 셔츠가 눈에 익었다. 여자의 귀고리 한짝이 벗겨져 어깨 위로 떨어지자 여자의 등을 껴안고 있던 남자의 한 손이 그것을 집었다. 사소한 일로 키스가 중단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여자의 입술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남자는 오므린 손으로 여자의 등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다음이 궁금했지만 류는 졸음이 밀려와 더이상은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K는 재킷을 벗어 선반에 올려둔 가방 옆에 놓고 덮개를 닫은 뒤 자리에 앉았다. 류는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K의 입김에 섞인 것인지 자기 입에서 나는 것인지 술냄새가 역겨웠다. K가 류 쪽으로 몸을 구부리고 팔을 길게 뻗어 안전띠를 매주려고 했을 때 입을 막았던 류의 손바닥에 세게 힘이 들어갔다. 토할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눈을 돌려 K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류의 얼굴에는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의 두려움과 고통이 떠올라 있었다. 그 악몽은 류를 허공의 고문대에 묶어놓은 채 9시간 동안 계속될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기 위해 K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을 때 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며 이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의 출구는 K라는 절망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봄날 밴의 창가 자리에 앉았던 어머니의 몸짓이 떠올랐던 것이다. 류는 독을 삼키고 잠들고 싶었다. 만약 죽음의 사자가 도착하기 전 비행기가 착륙해 다시 땅을 밟게 된다면 곧바로 낯선 나라의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어두운 극장의 구석자리에 앉아 스크린 위에 빛이 흘러가는 걸 바라보며 시간을 빨리빨리 흘려보내고 싶었다. 인생이라는 필름은 조금도 심각하지 않답니다. 자, 다시 한번 돌려볼까요. 그 나라의 극장에서는 그런 안내방송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라도 그 낯선 나라에 류를 고독과 고통의 세계로 끌고 가기 위해 기다리는 인생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낯선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만이 그 상황에서 류의 단 하나 출구였다. 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었다. 류의 감은 눈이 찡그려졌다.

그러나 류는 다시 눈을 떴다. 다른 패턴의 인생이 시작된 것뿐이야. 진짜와 가짜라는 건 없어. 그냥 다른 것이야. 다른 시간과 다른 층위의 방식이 섞이며 흘러가는 것뿐이야. 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너그러운 적국에 들어가 살게 된 포로 같았다.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했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았고 세계가 동일한 적국이었으므로 삶의 부역자일 수밖에 없었다. 류는 창밖을 바라보며 어머니 삶의 해피엔딩에 대해 생각했다. 구름층을 뚫고 올라온 비행기는 비가 내리지 않는 차원의 창공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구역질이 가라앉았으므로 류는 입에서 손을 떼고 K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비행기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2. 나쁜 남자들은 패턴과 싸운다

 

다음날도 요셉은 비슷한 시각에 눈을 떴다. 창밖에 어김없이 하루분의 시간이 밝아 있었다. 까치는 요셉의 경멸에도 아랑곳없이 더욱 유려한 포물선 그리기에 성공한 것 같았다. 요셉은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해보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순간처럼 어딘가 먼 곳에서 갑자기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숙취 때문일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탁자 위의 크리스털 잔 하나와 내용물이 반쯤 남은 위스키 병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도경이 선물한 비싼 물건들이었다.

13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지난밤의 비에 깨끗이 씻겨 있었다. 검은 구름이 빠르게 이동중이었지만 그 틈으로 푸른 하늘이 아른아른 비쳤다.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여느 날처럼 요셉은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찬물을 마신 뒤 쏘파에 앉아 휴대폰을 켜고 그날 일정을 확인했다.

출판사에서 제정한 젊은 작가상 시상식과 에쎄이를 주로 싣는 문예지의 필자 모임이 있었다. 둘 다 내키지 않는 자리였다. 평론가까지 포함해서 요즘 젊은 작가들은 작가보다는 주인공으로서의 자의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정상과 최고봉에 의미를 두었던 선배 세대와 달리 개인주의자들끼리의 배타적 친밀이라는 묘한 연대를 형성하여 서로를 사이좋게 견제하면서 공존하는 법도 터득하고 있었다. 그들이 의자를 길게 붙이고 앉아서 텔레비전 광고나 최신 예능 프로그램의 어법을 써가며 저마다 공허한 재치의 각축을 벌이는 시끌벅적한 오락시간에 요셉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란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물론 그쪽에서도 거의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요셉의 생각에 그것은 무례가 아니라 엄연한 무식이었다. 그렇다고 중견작가들이 모여앉아서 익히 알고 있는 원로작가의 자기 자랑을 들어줘야 하는 모임이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되풀이되었을 뿐 아니라 거기 보탤 새로운 자랑거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데 대한 어떤 자각도 없기 때문에 더욱 지겨웠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일이 다 그런 식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두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요셉은 둘 중 어느 자리에도 가지 않음으로써 무조건 오답을 택하게 돼 있는 부조리한 씨스템에 저항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게다가 그는 꼭 참석하기를 바라는 작가에게는 편집자가 하루 전쯤 확인전화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전화를 받은 지 꽤 오래된 요셉으로서는 최소한 그들의 관리대상 리스트 따위에는 끼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얼굴을 내비치면 안되었다. 어쨌든 요셉은 이제부터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요셉의 경우 아침형 인간이란 아침부터 비관적인 인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날 첫번째 할 일은 까페를 고르는 일이었다. 요셉의 머릿속에 8시에 문을 여는 그저 그런 까페가 다섯군데쯤 떠올랐다. A까페는 따뜻한 쌘드위치가 있고 커피맛이 괜찮았지만 가요방송을 틀어놓기 때문에 거슬렸다. 요셉은 말을 싫어했다. 그가 클래식 연주음악을 반기는 것은 단지 가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팝송의 가사를 무심히 흘려들을 수 있다는 것에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보람을 느끼곤 했다. B까페는 음악은 거슬리지 않지만 아침 시간에 마주치곤 하는 중년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는 그들은 개를 한마리씩 데리고 있었다. 무릎에 앉힌 채 입에 빵부스러기를 넣어주고 기다란 털에 코를 처박고 부비기 일쑤였다. 개는 개대로 더러운 혀를 부산스럽게 낼름거리며 주인의 뺨과 입술을 핥았다. 요셉은 언젠가 그들이 신문에 실린 유기견 관련 기사에 흥분하는 걸 보았다. 그런 인간은 개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동물을 사랑하는 인격체와 그렇지 않은 야만 생명체로 분류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이기적으로 살아가도록 돼 있는 생태계의 권리를 왜곡하는 관점이었을 뿐 아니라 특히 종 우월론자인 요셉을 자극했다. 자신이 심심해서 키우는 것이면서 동물애호가를 자처하는 건 자기 자식을 키우면서 인류애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C까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아프리카’라는 상호대로 싸파리 같은 분위기를 내려고 그랬는지 그곳 입구에는 커다란 사자와 기린 모양의 봉제인형이 세워져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아침 문을 열던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그 인형들을 내동댕이치듯 함부로 던지는 것을 본 이후 요셉은 그 집에 발길을 끊었다. 보일 준비가 돼 있는 것만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소비자로서 노동의 이면을 본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예쁘게 진화된 여자들이 인류의 기대를 저버리고 유인원처럼 무신경한 모습을 보일 때 요셉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대학교 구내매점의 좁은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는 인조 속눈썹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북까페의 책상마다 비치된 펜꽂이 속의 손거울을 보았을 때 요셉은 재색겸비에 대한 여성들의 각성을 감지하고 그 수혜자로서 크게 환호했었던 것이다.

며칠 전 D까페에서 겪은 일만 해도 그랬다. 가끔 마주치는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입구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아 노트와 참고서를 늘어놓고 필기를 해가며 공부를 했다. 미리 제과점에서 빵을 준비해 ‘오늘의 커피’만을 곁들이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아가씨였다. 음식 반입 금지 같은 규칙은 무시할 수 있는 주관도 갖고 있었다. 물론 옷차림이 세련되고 예쁘지 않았다면 그런 이유가 필사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들을 경멸해온 요셉의 호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조건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의 인기가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주변 남자들은 믿지 못했지만 요셉은 어떤 여자에게든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타고난 수줍음과 교양 탓이었다. 그날도 요셉은 그녀로부터 약간 먼 테이블에 랩톱을 올려놓고 작업을 하며 이따금 그쪽을 흘끔거리는 것을 휴식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휴대폰이 울림으로써 그의 아침 평화와 세계에 대한 순진한 낙관은 끝이 났다. 전화를 받는 그녀의 새된 목소리는 앙칼졌고 사용하는 단어는 존나와 쌩까와 뜯어먹자와 한번만 봐줘라와 배고파 디지겠어였다. 거친 말투를 싫어한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던 이미지가 벗겨져나가면서 대신 그 자리에 입혀지는 구체적 생활서사가 씁쓸했던 것이다. 그는 모든 서사가 남루한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자신의 비관적 해석이 옳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진 점은 있었다. 이런저런 신중하고 사려깊은 생각 끝에 요셉은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E까페로 마음을 정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직원이 지각을 했는지 그제야 허둥지둥 브런치 메뉴가 적힌 입간판을 밖으로 내놓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약속 안 지키는 걸 싫어하는 요셉이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업무 정상화를 기다려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결정 내리기가 쉽지 않을 때는 최상의 결과를 얻는 건 포기해야 한다. 무난한 걸 택하는 게 그나마 최악으로 가지 않는 방법이다. 요셉은 건너편에 있는 F 커피 체인점을 바라보았다. 정해진 매뉴얼을 잘 따르기로는 그 까페가 제일이었다. 그곳은 메뉴와 커피맛, 써비스, 분위기, 어느 하나 최고는 없었지만 최악도 없었다. 좋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지 않은 것이 없다는 조건이 많은 손님을 확보하게 만드는 것만 봐도 신도시의 이 거리가 얼마나 편리한 싸구려의 세계인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창가 자리에 부부로 보이는 운동복 차림의 사십대 남녀가 앉아 있을 뿐 까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요셉은 주문한 커피와 쌘드위치가 든 쟁반을 들고 그들과 대각선에 위치한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여자를 마주보는 방향이었다. 남자는 아이스커피에 쌘드위치를 여자는 뜨거운 커피에 베이글을 선택해 먹고 있었다. 요셉의 아내와는 다른 타입의 여자였다. 요셉의 아내는 뭔가 선택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했다. 누구와 사랑에 빠질지 누구와 결혼할지도 선택하기 어려워해서 요셉이 선택해준 남자와 결혼했을 정도였다. 자기 쪽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기보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면 그것을 주어진 조건으로 알고 성실하게 임하는 그녀가 자기 인생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은 그렇게 해서 같이하게 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필사적으로 믿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으려 하다니 그런 점에서라면 아내처럼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요셉은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천진한 낙관인 만큼 그리 어렵지 않게 깨져버렸다.

그들이 젊었던 한때 ‘불가능한 꿈’이라는 구호가 유행했는데 그녀가 거기 매료되었던 것 역시 자신의 낙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셉의 아내는 동아리방에서 혁명가들에 대해 학습했고 선배들에게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토론에 빠지지 않았고 대오에 앞장서지 못하는 걸 자책하면서 자신의 낙관을 실천했다. 반면 요셉이 동아리에서 가장 회의적이었던 것은 아마 자신의 낙관의 빛을 아내에게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 아내가 시력에 이상을 일으켜 주변의 구애자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요셉은 매번 예상 밖의 행동으로 놀라게 해서 아내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결혼한 뒤에도 변함없이 예상 밖의 남편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가끔 동아리 선배였던 사람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다 말고 자신의 낙관을 발휘해 요셉에게 말하곤 했다. 힘을 좀 갖더니 사람들이 다 이상해졌어. 여자애들은 혁명보다 혁명가를 좋아했다더니 남자애들은 정의보다 정의를 집행하는 힘에 빠졌었던 거야? 그래도 말야, 설치던 남자애들 중에 당신이 제일 순수해 보이더니, 그거 한가지는 내 생각이 맞았어. 아내는 자신의 낙관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비록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에 대해서도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했지만. 아마 그 역시 요셉이 결정해주어야 하는 것이었겠지만 그때 그는 그런 결정에 관여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내는 낙관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 순종적인 여자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요셉이 번번이 자신은 그녀가 원하는 행복을 줄 수 없으니 그건 다른 남자에게 부탁해보라고 충고했지만 그녀는 따르지 않는 눈치였다. 요셉이 가정에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군주제를 택한 덕분에 그녀는 자유롭고 시간이 많았으므로 열심히 돈을 벌었고 승진을 했고 환경단체와 유니쎄프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딸기잼을 입가에 묻힌 채로 베이글에 버터를 듬뿍 바르고 있는 맞은편 자리의 여자보다 열배는 미인이었으며 뒷모습만 보면 여대생으로 알겠다는 말을 불쾌하게 생각할 만큼 앞모습도 젊었다. 요셉의 생각에 그녀가 갖게 된 모든 것은 자신의 처복 덕분이었다. 어릴 때 요셉은 떠돌이 점쟁이로부터 외로울 고에 떠돌아다닐 역, 그리고 뒤집어엎는 파가 두개나 들어 있는 놀랍도록 바랄 것 없는 팔자이지만 처복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다는 점괘를 받았다. 어떤 여자든 요셉의 처가 되면 준비된 처복에 의해 행운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요셉의 처복을 마음껏 누렸으면서 패턴을 벗어나려고 하는 요셉의 예술적 자의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성애자에다가 친구도 많고 넓은 집을 갖고 자식을 좋은 학교에서 공부시키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고, 그런 식의 잘 갖춰진 삶은 다수의 이데올로기에 따랐다는 증거이다. 그런 삶을 꾸려가는 한편에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이 숙명인 예술적 성취를 꿈꾼다는 건 아무리 그것에 의존해왔다고는 하지만 아내로서도 지나친 낙관이었다.

요셉이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사십대 부부는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입구에서는 약간의 소란을 일으키며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유모차 속의 아기는 머리카락이 몇가닥 되지 않는 민머리에 레이스 머리띠를 하고 역시 같은 모양과 재질의 레이스가 잔뜩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막 울음을 그친 듯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였고 두 손 모두에 과자를 틀어쥐었다. 아빠가 브런치 메뉴를 주문하는 동안 엄마가 콧소리로 뭔가 찬사를 보내며 뺨을 간질이자 아기는 조금 전까지의 못마땅한 표정 그대로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아기 엄마는 까페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우연히 눈이 마주친 요셉에게 아기가 귀엽지 않느냐는 듯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미 요셉의 시선은 막 까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밤을 함께 보낸 커플만이 가질 수 있는 야릇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은 피곤하고 뿌듯하고 그만큼 어색하고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뭔가 미진하고 앞으로 관계가 어떻게 될지 신경이 쓰이고 상대가 만족했을지 궁금하기도 한, 바로 요셉이 좋아하는 달큰하고 애매한 분위기였다. 사랑의 진위나 쾌락의 값에 상관없이 그런 시기는 극히 짧게밖에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자신들이 지금 생애의 얼마나 눈부신 순간에 도달해 있는지 파악할 만큼 인생을 알지는 못하는 젊은 그들은 불편하다 못해 적대감을 띠고 요셉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지만 요셉으로서는 축복의 시선을 쏟아붓지 않을 수 없었다. 입가에 웃음까지 띤 것은 젊은 부부와 아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에게 자신들의 행복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요셉은 한사코 그들 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점점 까페에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한떼의 젊은 여자들이 들어오더니 아기를 발견하고는 귀엽다고 수선을 피웠다. 그들이 호들갑을 떨수록, 보아주기를 바라는 친사회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더 폭넓게 조명한 요셉에게 성취감을 주었다.

요셉은 자신이 마음 깊이 원했던 여자와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한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보았다. 거기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기도 전에 요셉의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스를 하는 것보다 스 후에 함께 잠드는 것이 진짜라는 어느 소설 속 한 구절이었다. 요셉은 모든 점에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그 작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요셉이 쓰고 싶은 것을 모조리 먼저 써서 출판해버렸기 때문이다. 운 좋게 요셉보다 30년쯤 일찍 태어난 덕분에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돼 있었다. 그러나 그가 요셉의 생각에서 더 나아간 글을 쓰는 것은 보지 못했다. 요셉에게 그렇게 말해준 것은 류였다. 류처럼 요셉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었다. 요셉이 얘기하는 동안 그를 바라보는 커다란 갈색 눈동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물이 흘러가는 시간처럼 깊고 부드러운 그녀의 집중은 요셉으로 하여금 중요한 말을 했다고 믿게 만들었다. 류는 말수가 적었다.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화가 많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뜻을 헤아리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이야말로 모든 형태의 알려주는 말을 싫어하는 요셉이 원하는 대화 방식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류는 요셉을 칭송하지도 않고 도발도 하지 않았으며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초여름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장례식장의 뒷마당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류는 커다란 미루나무 아래 혼자 앉아 스러지는 저녁빛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요셉에게 그 씰루엣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고 평생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윽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그들은 죽음과 육체를 화제로 삼았다. 류가 요셉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즐겨 읽던 책의 작가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한마디 말했을 뿐인데 요셉은 이미 자신이 그녀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해 여름 요셉은 작가로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류와 함께 S시로 도망칠 때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세상의 끝을 향해 떠난 것이었다. 그러므로 류가 S시의 태양연립을 떠나기 전 공책에 써놓았던 마지막 말은 그 절망에 동반했던 사람의 주문이었다. 어서 와라. 꽉 막힌 머리를 벽장문처럼 드르륵 열고 활달하고 신선한 공기를 집어넣어줘. 굳어버린 내 입가를 봄 냇물처럼 녹여서 한바탕 크게 웃게 해주어. S시에서 돌아오고 몇달 뒤에 요셉은 남들이 대표작이라고 평가하는 세번째 장편을 탈고했다. 그때는 10년 뒤 지금과 같은 결정적인 절망이 다시 오리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독 다음에는 절대고독이 온다는 것을 말이다. 류는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니었다. 10년 전 류는 외국 문화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른일곱살이 된 지금 영화사를 갖고 있는 재벌회사 문화재단의 팀장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요셉은 이안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안의 전화를 기다리는 날이 오다니. 이안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생의 의외성의 발견이라 할 만한 사건이라고 요셉은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성이란 또한 타성 속에서만 발견되는 속성을 지닌 모양인지 이안이 눈치가 없는 건 여전했다. 만에 하나 요셉이 기다릴지도 모르므로 아침 일찍 전화를 해야 옳았다. 게다가 오늘은 요셉이 부조리한 씨스템에 저항하는 뜻으로 두가지나 되는 일정을 취소한 날이었다. 한마디로 심심한 날이었다. 내일만 해도 오후에 지역 도서관의 자문위원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그 관료적이고 비생산적인 자리가 끝나고 나면 비싼 안주 하나 없는 김빠진 회식이 이어질 것이며 얼마 안되는 회의비를 받기 위해 그런 한심한 명단에 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이안을 만나기 싫어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안이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였다면 당장 오늘 저녁이라도 영화제에 입상하여 상금을 받아서 류를 데리고 요셉의 오피스텔과 가장 가까운 술집으로 달려와야 옳았다.

그 생각을 하자 요셉은 우울해졌다. 10년 전에 비해 자신은 너무 멀리 와버렸고 게다가 그리 좋은 장소에 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도시의 오피스텔 건물 중에도 가장 작은 평수에 사는 사십대 후반의 독신남자였고 편집자가 모임에 꼭 나오라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는 잊혀진 작가였고 도경이 아니면 생선회도 먹지 못했다. 불현듯 배가 고파진 요셉은 휴대폰을 켜서 시계를 보았다. 독신이라는 형태를 결핍과 결손으로 간주하는 이 사회에서 혼자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은 많지 않았다. 고기를 구울 수도 없고 전골이나 점심정식도 일인분은 주문을 받지 않았으므로 음식을 선택하는 데에도 제약을 받았다. 요셉은 보통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보다 30분쯤 빨리 식당에 가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가까운 데에 제법 맛좋은 생선구이집이 있었지만 거기로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며칠 전 혼자 그 식당의 구석자리에서 고등어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뼈에서 신중하게 살을 발라내고 있던 요셉의 앞에 불룩한 배에도 아랑곳없이 꼭 달라붙는 검은색 복장을 맞춰입은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들이닥쳐 빨리 단체석을 만들어달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것은 혼자 4인석을 차지하고 있던 요셉을 몹시 불안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게다가 실컷 단체활동을 하고 난 뒤까지도 잠시라도 헤어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패거리의식을 요셉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하려면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는 이 나라의 삶 자체가 무식한 단체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물이 났다. 고등어구이와 갈치조림 사이에서 고민했던 요셉은 그들이 두가지를 모두 주문하여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언제부터인가 까페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광장에 모이지도 밀실에 숨어들지도 않았다. 주부들은 손님을 맞기 위해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은 친구를 잘 사귀라는 둥 만나서 게임만 하느냐는 둥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혼자 있어도 인터넷 쇼핑몰이나 인기 검색어를 들여다보면 얼마든지 시간이 유익하게 흘러갔다. 쾌적한 실내는 청소도 잘돼 있었고 음료도 준비돼 있었으며 참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 모두는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이라는 밀실에서 나왔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젊은 엄마들은 까페에 모여 큰 목소리로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두와 가족사를 공유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없으니 공부를 하거나 서류를 정리하는 일의 집중도도 높았다. 데이트하는 남녀 또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각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의 어플을 뒤적였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애인을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혼자 있다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거니와 집에 있을 때와 달라서 분명 혼자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독립적이었다. 심심할 수는 있었지만 고독해 보이진 않았다.

 

동네사람들

오후에는 상가의 주도로를 벗어난 뒤쪽의 조용한 까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씨가 흐려진 탓인지 체인점 커피가 아닌 맛좋은 드립커피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다. 요셉은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한 뒤에야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모임에서 몇번인가 마주친 적 있는 신진소설가 B였다. 인터넷 포털 싸이트를 통해 신간이 나왔다는 기사를 여러개 본 기억이 났다. 탁자 위에 놓인 녹음기를 보니 지금도 인터뷰 중인 것 같았다. 맞은편에 휑한 정수리를 보이고 앉은 남자는 기자가 틀림없었다. 부동산 가격이 수준에 맞다는 이유로 신도시로 너무 많은 작가들이 몰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평소 요셉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종업원이 이미 커피가 든 쟁반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요셉은 그대로 나가지 못하고 B와 등을 지도록 탁자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말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려왔다. 한국문학에 필요한 소설요? 글쎄요,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을 넓혀주는 게 문학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점이란 많으면 좋겠죠. 개성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담은 소설을 꾸준히 쓰고 싶어요. 평론가의 역할도 중요하죠. 최근 한국문학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젊은 평론가들이 많이 나와 문단의 목소리가 훨씬 다양해졌어요.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CD예요. C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해서 때로 질투가 나거든요. 반대로 D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기 때문에 선망하는 거죠. 추천할 만한 책이라, E의 초기 단편들과 F의 장편요. E는 단편을 쓸 때 가장 최적화되는 것 같아요. F의 장편은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그때 충격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해요. 그가 노벨상을 받지 말고 그냥 오래 살아서 인간에 대한 진실을 더 많이 밝혀주었으면 좋겠어요. 아,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라면, 글쎄요. 저는 어쩔 수 없이 휴머니스트예요. 인간의 선의에 어떤 매혹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의 눈으로 본 현대사회의 특성을 한마디로, 글쎄요, 광장과 밀실이 공존하는 사회?

요셉은 B의 소설을 딱 한권 읽어보았다. 독학자들이 그렇듯이 아는 걸 전부 다 써놓았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한 평론가가 그것을 가리켜 객관적 정보를 통해 주관적 서사를 창조하는 새로운 시도라는 표현을 만들어내자 스스로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자신이 한 작업의 진정한 의미를 깨치게 되었다고 말한 인터뷰도 본 적 있었다. 평론가가 가르쳐주어서 자기가 뭘 썼는지 알게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요셉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약삭빠름을 보았다. 요셉은 그의 소설 역시 흥행 요소와 애매함을 적당히 조합한 시의성 기획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쿨하다고 말해졌지만 단지 싸가지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포스트모던하다는 평가는 교묘하게 정면돌파를 피했다는 뜻일 뿐이었다. 요셉의 생각에 누가 문단에서 잘나가는가는 업계로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동의할 만한 작가가 평가를 받으면 질투가 날 뿐이지만 동의할 수 없는 작가가 승승장구하는 세상은 특히 요셉처럼 재능있는 수많은 작가들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요셉은 B가 사용하는 초기 단편이라거나 말년의 문제작이라는 식의 표현을 싫어했다. 종교가 무엇이냐는 단순한 질문에 굳이 자신에게는 초기 불교의 소승주의가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하는 종류의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거부감과 비슷했다. 그런 사람들은 왕의 파티에 가서 오줌을 참다가 방광이 터져 죽은 티코 브라헤 같은 특이한 이름을 외우고 다닌다.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자신이 여섯살 칠개월과 일곱살 석달 사이였을 때의 아버지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책도 잘 읽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이 생각하기에 한국문학에 필요한 소설은 바보들을 화나게 만들 수 있는, 그러니까 패턴을 벗어난 소설이었다. 바보들도 읽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요셉이 평론가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것은 잘나가는 작가들을 씹어줄 때 정도였다. 또한 추천할 만한 책을 고르라면 끝까지 읽은 책이 많지 않으니 추천할 만한 책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인용될 우려가 있는 남의 칭찬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게 요셉의 생각이었다. 남을 칭찬할 때마저 저도 모르게 멋진 문장을 사용하는 바람에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달리 누군가의 평판이 높아지는 데 도움을 주어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요셉은 자리를 뜨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급하게 마셔야 하는 자신이 B 때문에 이유 없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불쾌감이 치밀어올랐다. 그렇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그것대로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간만 연장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셉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창밖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요셉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과 달리 모두 우산을 갖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남자가 하나 있긴 했지만 물에 빠진 비루먹은 개의 모습이었고 먹다 버린 하찮은 뼈다귀 하나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뛰는 게 틀림없었다. 요셉의 시선은 무심히 그의 움직임을 따라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쫄딱 젖은 남자가 마침내 건너편 상가 입구에 당도해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상가의 차양 아래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여자에게 쫄딱 젖은 팔을 들어 알은척을 하기까지 했다. 여자도 한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요셉의 눈썹이 약간 찡그려졌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 특히 손을 들어 보일 때 긴 팔의 흔들림에 실어 손끝을 까딱거리는 몸짓은 요셉의 머릿속에 최근 입력된 모습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남자가 상가 안으로 사라지고 난 조금 뒤 여자는 담배를 끄고 상가의 유리문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네일 아트라는 핑크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채라는 이름으로 싸인을 해주었던 여자였다. 아마 조잡한 프릴이 달린 핑크색 에이프런을 입고 있어 금세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때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요셉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안이라는 이름을 보고 요셉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안의 번호를 저장했다는 게 너무 뜻밖이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안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이안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기억하는지 묻자 요셉은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고 대답했고 다시 만나 구체적인 계획을 상의하고 싶다는 말에도 생각은 해보겠지만 내키지 않는다며 선뜻 승낙하기를 피했다. 그랬더니 이안은 마침 주말 저녁에 스태프들과 B문화재단측과 미팅이 있는데 그 자리가 끝나면 뒤풀이가 이어질 것이고 요셉이 그 술자리에 나타나주기만 하면 출연 여부와 관계없이 싸인회를 방불케 하는 팬 미팅이 이어질 거라며 꼭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오는 거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요셉은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 류와의 재회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며 조금 전까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나 지겨웠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 감정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그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까지도 어딘가로 꺼져줬으면 싶었다.

전화를 끊은 뒤 요셉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요셉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김요셉 선생님 아니세요?라며 기자가 의자에 앉은 채로 등 뒤에서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던 것이다. 요셉도 아는 얼굴이었다. 저 진지하고 재미없는 인간이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다보니 아직도 문학담당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요셉은 재빨리 이안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뱉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성인물에 출연시켜준다면 옷도 벗을 수 있지만 소설가로 영화에 출연하는 건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농담했던 게 기억났다. 영화 출연하시나봐요? 기자는 요셉과 등을 맞댄 의자에서 말을 계속했다. 그의 앞자리에서 요셉을 바라보고 있던 B도 요셉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정말로 성인물이세요? 성인물은 아니시죠? 요셉이 픽 웃은 것은 기자가 성인물이라는 주어의 술어로 사용한 용언에 존칭 선어말어미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존칭을 사용한 그의 말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 B를 포함해 그 자리의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존경이 아니라 조롱이기 때문이었다. 시사회에 꼭 초대해주세요. 웃음 섞인 B의 말이 들려왔다. 기자는 요셉과 같은 학번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요셉에게 왜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 시대를 증언해야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것은 그 자신이 십수년 동안 써제끼는 경직되고 패턴화된 기사의 관점만으로 충분히 지겨웠다. 그가 속해 있는 것과 같은 매체에는 가끔 소수라는 사실을 도덕적 우월감으로 삼아 권력적이 되는 인간들이 있었다. 개를 키우는 게 곧바로 생태주의의 실천이 아니듯이 소수라는 것 자체가 곧바로 정당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관점과 철학에 주목하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지 소수라거나 소외된 사람의 의견이라서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르쳐줘봤자 못 알아들을 게 뻔하기 때문에 요셉은 빗방울이 약해진 것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연기를 한다

요셉은 단골을 싫어했다. 무조건 어느 한 장소로 가는 것도, 어쩐지 가줘야 할 것 같은 기분도 원치 않았다. 그나마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면 인도 음식점이었다. 인도 음식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사가 잘되지 않는 한산한 식당이라 혼자 시간을 보내기는 괜찮았다. 양념맛이 지나치게 강하고 반 이상이 꺼멓게 탄 채 바구니에 담겨 나오는 탄두리 치킨에다 병뚜껑을 딸 때마다 녹을 닦아내야 하는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을 그나마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은 전적으로 인도 뮤직비디오였다. 요란한 리듬과 화려한 색감, 격렬하고 일사불란한 군무. 그리고 육감적인 젊은 남녀가 온몸으로 연출하는 성적 환상.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요셉은 설정된 이야기의 통속성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익숙한 기승전결로 진행되었고 멋진 주연들만의 해피엔딩이란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으므로 정서와 논리에 거슬리는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요셉은 원색적 관능의 힘이 넘치는 화면을 감동에 차서 바라보며 혼자 맥주병을 비워갔다. 플라스틱 바구니 안의 치킨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요셉은 약간의 취기를 느꼈다. 단지 피로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 하루의 동선이 너무 짧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식당에서 나와 오피스텔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요셉은 낮시간을 보낸 까페에서 겨우 몇발자국 떨어진 인도를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신호등의 파란불이 점멸로 바뀌었다. 점멸이 반복될수록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걸음도 따라서 빨라지는 걸 요셉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의 무리에서 누군가 요셉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요셉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한 여자가 달려와 요셉의 팔을 붙잡는 것이었다. 요셉이 먼저 본 것은 그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일행인 듯한 젊은 여자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선생님, 브런치 먹으러 왜 안 오셨어요?라고 말하며 여자가 팔을 가볍게 흔들어서야 요셉은 이채라는 걸 알았다. 그녀가 상가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에는 핑크색 에이프런 때문에 얼른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없어서 또 생소했던 것이다. 이채는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온 젊은 여자들에게 요셉을 소개했다. 엄청 유명한 소설가세요. 나중에 내가 싸인받은 책 빌려드릴게요. 그제서야 여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풀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녀들의 얼굴에 떠오른 정중함과 호기심이 섞인 애매한 웃음이 웬일인지 요셉을 약간 불편하게 만들었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에요. 지금 퇴근하는 길인데 선생님은 어디 가는 길이세요? 요셉으로서는 이채가 동료들 앞에서 지나치게 친근하게 구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연출이 강한 이채가 요셉의 여주인공이라면 요셉은 그 이야기를 탄생시킨 작가인 것이다. 서사가 이어지고 있었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상투적 과정을 생략하는 스피디한 진행이야말로 요셉의 작업 스타일이기도 했다.

이채는 동료들과 헤어진 뒤 다시 요셉의 팔을 끼었다.

—선생님, 약속 없으시면 저랑 같이 가요.

—어디 가는데?

—언니네 까페요. 아시잖아요, 저희 언니.

코하고 눈밖에 안 고쳤다는 마스카라를 두텁게 칠한 긴 머리 여자를 요셉은 뒤늦게 기억해냈다. 장사가 잘 안되는 까페인 모양이었다. 무료한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이채에게 요셉의 존재를 알려주게 되었을 것이다.

—원래는 까페가 아니라 여행사였어요. 사장님이 언니네 학교 선배인데 인도 여행가거든요. 그래서 인도 여행 전문 여행사를 차렸는데 망했어요. 여행사 간판을 내리고 사무실을 까페로 만든 거예요. 원래 직원들이 다 술을 좋아해서 자기들만 마셔도 기본 매상은 올린다면서.

—여행사 직원들이 업종을 바꿔 까페 종업원이 됐다구?

요셉의 질문에 이채가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는 출판사였어요. 사장님이랑 언니랑 원래 전공이 그쪽이거든요.

—출판사를 하다가 망해서 여행사로 바꿨고 그것도 망하니까 술집으로 갔다는 이야기군.

이번에도 요셉은 줄거리를 먼저 정리했다.

—네 맞아요. 언니 말고 직원은 한명밖에 없어요. 그 언니도 원래부터 언니 친구예요. 두 여자가 출판사 편집자였다 여행사 직원이었다가 지금은 술집 종업원이죠. 같은 장소에서. 재밌죠?

—재밌네.

요셉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책을 만들다가 망해서 전화를 받다가 그것도 망해서 술을 써빙하게 된 여자들은 이를테면 여러 씨즌의 배역을 소화한 배우였다. 그만하면 자기 자신의 드라마를 가질 만했다. 강사 시절 요셉은 인도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을 가끔 보았다. 그들은 자의식이 강한 만큼 자기 상처에 과잉반응을 보이고 남의 탓을 잘했다. 배신당한 경험이 있고 세상을 믿지 않으면서도 치유를 위해 인도를 찾아가는 식이었다. 책과 여행, 인도까지 거친 뒤 지금 술집에 있다면 그 배우들은 틀림없이 요셉의 취향이었다.

—언니 친구는 짧은 머리에 자전거와 수영을 좋아하고 떼낄라를 즐겨 마시지 않나?

—그건 왜요?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언니같이 긴 스트레이트파마 머리구요. 좀 뚱뚱한 편이고 요리를 잘해요. 술이야 아무거나 잘 마시죠. 근데 선생님, 작가들은 다 그런 상상을 하는 거예요?

이채가 느낀 대로 요셉은 사람이든 사건이든 미리 짐작을 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대부분은 맞지 않았다. 강원도 어느 소읍의 찐빵집에서 팔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덩치 좋은 주인남자와 미인형 아내를 보았을 때 그는 순정에 빠진 지방 깡패가 개심하여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찐빵 기술을 익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었고 팔의 흉터는 한달 전 찐빵 솥에 덴 거였다.

요셉과 이채는 택시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정류장 앞에 와 있었다. 이채가 맨 앞의 택시로 뛰어갔고 요셉이 어정쩡하게 그 뒤를 따랐다. 자신이 일러준 행선지로 택시가 출발하자 이채는 뭔가 안심이라는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머리를 댔다. 그러더니 요셉을 향해 몸을 돌리고 빠른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선생님, 저는 목소리 갖고 그런 상상을 잘해요. 부자일 것 같다거나 잘생겼을 것 같다거나 매너가 좋을 것 같다거나. 전 그런 남자는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아요. 저 텔레마케터도 했었어요. 아르바이트는 진짜 여러가지 했고. 근데 운이 별로 없나봐요. 월급도 떼이고 남자운도 별로 없어요. 실은요, 운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거든요. 사회에도 보탬이 되고 뭔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명품 같은 거 실컷 사게 돈도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가끔은요, 나 자신이 위선자 같아요. 진짜 얼굴하고 가짜 얼굴이 따로 있는 것 같거든요. 죄송해요. 선생님은 작가시고, 저 이런 얘기 할 사람이 없거든요.

—그건 위선이 아니지. 위선자들은 진짜 얼굴과 가짜 얼굴 하나씩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돈도 쓰고 싶은 건 둘 다 진짜 얼굴이니까.

—맞아요, 선생님! 제 고민이 바로 그거예요. 다 진짜이긴 한데, 너무 다르니까, 아무튼 그걸 모르겠어요.

—젊은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

—정말요?

—아직 미완성인데 세상은 어른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지. 그래서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유행하는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거야.

—선생님 진짜 대단하세요. 그게 딱 제 마음이에요.

—내가 아니라 다른 작가가 한 말이야.

—그 작가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책 다 읽으면 그분 책도 꼭 읽어볼게요.

요셉은 입을 다문 채 그 소설의 다른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채의 가방 안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이채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한 뒤 답장을 보냈다.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요셉에게 말했다.

—참, 선생님, 언니 친구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언니하고 그 언니하고 무슨 영화제 때 선생님을 만났다고 하던데요.

—영화제?

—씨네마 투데이인가, 투게더인가? 선생님하고 함께 영화 보는 이벤트에서요. 팬들이 하도 많다보니 기억도 못하시겠죠?

몇년 전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런 행사가 있긴 했다. 독자와 작가가 팀을 이루어 함께 영화를 보게 만드는 일종의 영화제 흥행용 행사였다. 영화를 본 다음에는 물론 토론을 구실로 밤새 술자리가 이어졌다. 요셉은 그 행사에 대해 특별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의욕적으로 매달렸던 새 장편에 대한 반응이 시들해서 몹시 의기소침했던 시절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채를 잠시 바라보던 요셉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에 고여 있던 옛 시간들이 묵은 기억을 담고 다시 흘러오는 것일까. 지겨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어쩐지 무료하고 심란한 기분이 드는 것은 주말에 있다는 이안의 저녁 술자리에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인도 식당에서 끊이지 않는 북소리와 화려하고 농밀한 춤과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과 그리고 재회로 이어지는 뮤직비디오를 보며 요셉이 계속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에피쏘드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서였다.

에피쏘드에는 속편이 없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회성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쳐가는 수많은 버스들과 비슷하다. 한순간 내 앞에 머무르지만 나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에피쏘드로 채워져 있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작가는 최대한 에피쏘드를 배제한다. 인과관계가 없는 우연은 이야기를 끌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플롯의 고리를 느슨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세계, 그 세계를 구현하지 않는 에피쏘드는 여지없이 퇴출된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모두에게 자기 인생의 작가라는 권능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피쏘드의 형태로 등장하여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버스 가운데 어떤 것이 의미 없는 우연이며 어떤 것이 내 인생의 플롯으로 가는 노선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포착하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할까.

이야기의 세계에서 에피쏘드는 뇌관이 제거된 지뢰와 같다. 그것들 대부분은 등장인물의 인생에서 영원히 폭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가장 하찮은 지뢰 하나가 터져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결국 사람의 인생은 하찮은 우연의 복수가 수없이 잠복해 있는 불길하고 의외적인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요셉은 이미 지뢰가 터져 두 다리를 잃었고 이제 그 사실을 탄식하기 위해 머리를 감싸안으려면 남은 두 팔이나마 잃지 않아야 했다. 이안과 문화재단측이 모이는 술자리에 가는 것은 지뢰 근처를 배회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인도 뮤직비디오 속의 통속이 요셉에게 가르쳐준 전통적이고 위대한 교훈이었다. 그러나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실은 끊으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듯이, 삶은 아는 대로만 살게 되어 있지 않다. 아는 대로 산다면 요셉이 늦은 밤 택시를 타고 또 하나의 지뢰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술집을 향해 강변도로를 달려갈 리가 없는 것이다.

 

 

3. 「위기의 작가들」

 

제목: 위기의 작가들

지원자: 이안

 

기획의도

현대는 단자화된 개인의 세계이다. 공동체는 와해되고 가족은 파괴되었다. 예술은 극히 개인적인 고독과 고통의 서사로 전락하고 있다. 사랑은 계약이거나 불감으로 판명난 지 오래이다. 이런 사회에서 현대인은 어디에서 구원을 찾을 것인가. 이 영화는 한 예술가의 위선과 욕망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이기심과 혼란이 일으키는 희비극을 포착함으로써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지한 질문을 담고 있지만 애정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유머와 풍자로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위선적인 인물의 사생활을 폭로함으로써 영화 본연의 카타르시스 기능에 충실함과 함께 복수와 파국을 통해 반전의 효과를 살리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관객의 도덕의식을 자극하기 위해 스와 불륜이라는 극적 장치를 사용한다. 즉 내용은 진지한 질문을 담고 있으되 스크린은 상업영화를 지향한다.

 

트리트먼트

“민아가 대학문학상에 당선되었다. 비록 가작이긴 하지만. 민아를 축하해주기 위해 수희와 나, 경섭, 유리, 혜연, 그리고 K선생이 모였다. 장소는 늘 가는 학교 앞 술집 ‘작가들’이다.”

(늦은 시각, 손님이 거의 없는 술집 구석자리에 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일곱사람. K가 한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민아와 혜연, 앞에는 유리가 앉아 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경섭, 오른쪽에는 영준(나)과 그리고 수희 순서이다. 탁자 위에는 파전과 번데기와 동태찌개가 놓여 있고 사이사이 맥주와 소주병이 보인다. 모두들 조금 취한 얼굴이다. 카메라가 한사람씩 얼굴을 비추면. 민아는 들떠 있고, 혜연과 경섭은 민아의 기분을 맞춰주고 있다. 유리는 탁자 밑에서 휴대폰 문자를 보내는 중. 수희 혼자 술을 연거푸 마신다. 그런 수희가 신경쓰이는 영준, 빈 잔을 채워주는 표정이 좋지 않다. K가 잔을 들고 축하의 건배를 하자고 말한다. 모두들 잔을 든다.)

 

“오늘도 K선생의 지겨운 독설과 궤변을 들어줘야 하는 모양이다.”

(영준과 수희를 빼고 모두 K 쪽으로 몸을 숙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수희는 생각에 잠겨 있고 영준은 젓가락으로 번데기를 집는다. K의 목소리가 커진다.)

—음악은 스승한테 배우고 미술은 친구들하고 하는 거지. 문학은 철저히 혼자야. 가르쳐줄 수가 없는 세계거든. 이제 민아도 이 세계에 발을 디뎠으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고독하고 친해지는 거다. 그리고 연애는 반드시 나쁜 남자하고 해.

—그건 왜요?

—너희들, 인간이 왜 나쁜 사랑에 그렇게 매혹되는 줄 알아?

—어리석은 존재라서?

—절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지.

(K가 술잔을 들어 마신다. 내려놓은 잔을 손에 쥔 채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 약간 뜸을 들인 뒤 시큰둥하게 덧붙인다.)

—카슨 매컬러스의 말이야.

 

“K선생은 저런 식으로 듣는 사람을 두번 무식하게 만들어 주변을 제압한다. 특히 여자들. 아마 수희도 그렇게 마음을 열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랑을 기승전결의 패턴에 넣는다고 생각해봐. 그런 사랑에는 매혹이 없어. 패턴을 깨야지. 이 세상은 모두 틀, 그러니까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패턴에 따르기만 하면 인생은 편하겠지. 복제품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돼 있어. 자기 인생이 의미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전쟁까지 벌이는 게 인간이니까. 그런 개인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서 예술이 존재하는 거지. 예술이 하는 일은 한마디로 패턴을 깨는 것이야. 과격할수록 혁명적이라고 칭찬받는 세계야. 근데 현실에서는 보통 그것을 나쁜 짓이라고 부른단 말야. 혁명을 행동으로 옮기면 나쁜 남자가 되고. 결과적으로 모든 나쁜 남자들은 세상의 패턴과 성스러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지.

—패턴을 깨기 때문에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라는 거네요? 반전이 있다, 그런 건가요?

—나쁜 짓이란 창의적인 거니까.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해야 그것이 크리에이티브한 거지, 다 있는 걸 또 상상하면 그건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 즉 무식밖에 더 돼?

—설마 모든 패턴을 다 깨라는 건 아니시죠? 그건 카오스잖아요. 도덕적 타락이에요.

(영준이 K선생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 영준이 같은 순수한 젊은이들이 패턴을 지키느라 애써주면, 나쁜 남자들이야 고맙지.

 

“일단 논쟁을 피하는 것 같지만 이쯤에서 물러날 K선생이 아니다. 소심한 사람답게 늘 뒤끝이 있다.”

—근데 말야, 신도시 모텔에서 아침 10시에 젊은 남자를 만나는 새댁들이, 할 일 많은 아침시간에 왜 그러고 있는 것 같아? 퇴근 뒤에 집에 안 가고 강남의 단골 스탠드바에서 저녁도 굶고 마담이랑 술을 마시는 가장들, 그 사람들은 또 왜 그렇다고 생각해? 그들이 무슨 욕정이나 권태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자기의 창의성을 주체하지 못해서야. 개인이 되고 싶어서 고통받는 거라구.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살고 싶은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 개인이 되는 것, 그게 왜 중요하냐면, 어떤 식으로 살든 스스로 선택한 고유한 개인의 삶은 품위가 있거든. 그런 게 없으면 자발적 홈리스나 히피 같은 걸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어. 그런데 그런 고유성에 대한 욕망을 도덕적 타락이라고 해석한다, 그건 그야말로 패턴으로만 사고하는 거지. 그래갖고는 절대 작가가 될 수 없어.

—모든 작가가 개인의 이야기만 쓰는 건 아니잖아요. 뛰어난 작가들은 개인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적어도 제가 본 작가들은 그러던데요. 선생님 말씀은 이상하네요.

—본 것이 적을수록 이상한 것도 많아지는 법이야. 사물은 이상할 게 없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공연히 제가 화를 내고 한가지만 자기가 아는 것과 달라도 만물을 온통 의심하지. 이거, 내 말이 아니고 박지원이야.

(영준은 눈을 내리깔고 술을 들이켠다. K선생은 다시 얘기를 계속한다.)

—지금 같은 시대에 왜 더욱 개인이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야. 인간은 공산품이 아니라구. 패턴에 의해서 획일화될 수 없거든. 의외성과 배신, 그런 것들이 사실은 그 인간의 고유성과 도덕적 숭고함을 증명해주지. 나쁜 남자야말로 그걸 실천하는 가장 선량하고 건전한 사람이고. 생각해봐라. 인생이 얼마나 힘든 거야.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억울하고. 나쁜 짓을 좀 해야 억울함을 해소시켜서 건전해질 수 있거든. 실은 착한 남자가 더 위험해.

—왜요?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안전하긴 할 것 같은데.

—아니지. 그들은 패턴에 의지하기 때문에 보수적이 되거든. 게을러지고. 게으른 사람 중에 착한 남자가 많잖아. 근데 보수성에다 게으른 성향이 합해지면 순간적으로 폭력성을 띠게 돼. 깊게 생각하거나 치밀하게 행동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야.

—그럼 선생님, 여자들은요? 여자도 역시 나쁜 여자가 더 건전해요?

 

“경섭이 K선생의 말에 장단을 맞추려 하고 있다. 경섭의 질문을 받자 K선생은 옆에 앉은 민아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민아는 생글거리며 똑바로 K선생과 눈을 맞춘다. 앉아 있는 자세도 K선생과 유난히 밀착돼 있다. 소문이 맞는 것 같다.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는 수희가 신경쓰여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착한 여자들은 말야, 패턴을 강요해. 그것처럼 남자를 지겹게 만드는 건 없을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변하잖아. 당연하지. 안 죽었으니까.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변하는 거거든. 변한 사람을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 것 아냐? 깨끗한 물을 물병에 담아놓았다고 며칠 지난 뒤에 그걸 마실 순 없잖아. 물론 변하긴 변했는데 더 좋게 변했다, 그럼 좋겠지. 근데 그런 건 없어. 여자들은 모두가 시간과 짜고 지겨운 여자로 변신하는 기술이 있으니까. 특히 헌신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현모양처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버티는 오래된 애인들. 작가한테는 적이야. 그들은 작가를 틀에 가두어 건전하게 만들려고 하거든. 생활인으로서 성실과 노력이라는 패턴 속에 갇혀 있으면 모든 사람과 똑같아질 테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이야기밖에 상상하지 못할 텐데, 그런 여자는 작가한테는 그야말로 재앙이지.

 

“K선생은 두 여자를 모욕하고 있다. 그의 아내와 수희. 두 사람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나쁜 남자들은 나쁜 여자들만 찾아다니는 건가요?

 

“갑자기 수희가 질문을 던져서 나도 놀랐다. 모두가 수희 쪽을 바라보고 이어서 K선생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K선생이 이마를 찡그린다.”

—틀에 박힌 사람들은 은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니까.

 

“말꼬리를 잡혔을 때 은유를 들먹이는 건 K선생의 버릇이다. 차가운 눈빛으로 수희를 바라보며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 당선된 민아 소설 읽었어? 합평회 때 같은 조 아니었나?

—맞아요. 수희 언니랑 저랑 같은 조예요. 언니가 많이 지적해줬었어요.

(수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민아가 대신 대답한다.)

—민아의 그 소설에는 독기가 있어. 날이 서 있거든. 그런 게 나쁜 여자가 쓴 소설이지. 패턴을 깨야 개성이 살아나고 매력도 생겨나. 부조리함도 갖추게 되고. 그게 사랑의 속성이야. 자신이 갖지 않은 어떤 것을 그것을 원치 않는 누군가에게 주는 거거든.

—야, 그거 진짜 부조리다.

—근데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선생님.

—라깡이 한 말이야.

(수희가 다시 술잔을 들어 기울인다. 입술을 깨물며 말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던 영준이 마침내 결심한 듯 K를 향해 입을 연다.)

—선생님, 저도 소설 좀 써보려고요.

—그래? 조교 마치고 대학에 자리잡으려는 거 아니었어?

—바뀌었어요. 인간의 타락과 구원에 대한 소설을 좀 쓰고 싶어요.

—관둬. 그건 도스또옙스끼랑 카잔차키스 이런 촌스러운 사람들이 다 했어. 그리고 이제 그런 건 화제가 뻔하고 결론 낼 필요 없는 일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지루한 사람들 있지? 그런 사람들이나 쓰는 거야. 읽는 사람은 물론 없지.

 

“나는 K선생의 이런 속물근성과 이중성에 신물이 나 있는 것이다.”

—타락한 기득권의 세계가 청춘의 상실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그런 얘기를 한번 써보려고요. 요즘 작가들은 위기라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소비적이고 말초적인 이야기만 다루거나 지나치게 씨니컬해요. 인간 구원 같은 큰 주제와 감동적인 서사가 없잖아요. 이런 식이라면 문학은 끝장이에요.

—괜찮아, 민아가 살려낼 거야. 민아는 패턴을 깼다기보다 아예 없는 거라고 볼 수 있지. 그래서 가벼울 수 있어. 그 나이니까 쓸 수 있는 소설이야. 자, 앞으로 계속 그렇게만 써. 건배.

—선생님, 저 필명 하나 지어주세요. 이민아는 너무 평범한 것 같아요.

—그런가? 난 이민아가 좋은데? 어딘지 디아스포라적인 어감이 풍기잖아.

(수희가 일어나서 나간다.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수희의 모습을 영준의 시선이 따라간다.)

 

“작년 합평회 때마다 K선생은 수희의 작품을 칭찬했다. 수희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예술대학에 들어왔다. 사회경험에서 우러난 통찰이 작품 속에 엿보인다고 K선생이 추켜세우곤 했다. 그 무렵 수희는 나에게 우리가 친구 사이라는 걸 여러번 강조했다. 몇달 전 수희가 울면서 털어놓기 전까지 나는 수희의 그 말이 K선생과 관련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술잔이 돌기 시작한다. 모두가 건배를 한다. 말소리가 시끄럽게 얽힌다. 유리와 혜연이 노래를 부르며 앉은자리에서 마주보고 장난스럽게 춤을 춘다. 술병이 쓰러져 술이 엎질러진다. 걸레를 들고 나타난 술집 주인에게 유리가 춤을 춰도 되느냐고 묻는다. 곧이어 음악소리가 커지고 유리가 옆자리에 앉은 경섭의 손을 끌고 술집 한가운데로 나가 춤을 춘다. 혜연이 민아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하고, 일어나려는 민아의 손을 끌어당겨 앉히는 K. 혜연 혼자 나가 유리와 경섭에게 합류한다. 귀청을 때리는 음악. K가 민아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그 말을 들은 민아가 깔깔 웃는다.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흘끗 바라보는 K.)

(유리와 혜연과 경섭은 번갈아가며 자리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는 다시 춤을 추러 나간다. 민아와 K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 영준과 수희가 나란히 들어온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K, 자리에 앉으려는 영준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영준이 K의 자리로 다가가자 뺨을 때린다.)

—너희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뭐 했어?

(뺨을 맞고 놀란 영준은 다음 순간 화가 치밀어오른다. 대답을 하려고 몸을 내미는 순간 다시 K가 다른 쪽 뺨을 때린다. 영준이 탁자 위의 술잔을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유리가 깨지고 술이 튄다. K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뻗으려는데 달려온 경섭이 뒤에서 영준의 양팔을 붙잡는다.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분을 견디지 못해 영준이 펄쩍펄쩍 두 다리를 번갈아 치켜들며 날뛰지만 힘 좋은 경섭에게 붙잡힌 두 팔을 뺄 수가 없다. K만 계속해서 영준에게 두 주먹을 번갈아 날리고 있다.) <제1부 끝>

 

1차 서류심사: 통과

2차 인터뷰 심사: 통과

심사위원: 이연수(감독, 프로듀써) 박성태(씨나리오 작가) 강성희(소설가) 이중혁(만화가) 김류(B문화재단 팀장)

 

심사내용 요약

문: 약력을 보니 예술대학 출신인데, 실제 모델이 있는가.(박성태)

답: 그렇다. 내 경험에 허구를 약간 가미한 것이다.

문: 3부에 나오는 복수도 실화인가.(이중혁)

답: 진행중이다.(웃음)

문: 기성감독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같은 분야에서 이미 성취작이 나왔는데 이런 작업이 아류로 해석될 여지는 없겠는가.(강성희)

답: 내 작업은 리얼리티가 받쳐줘서 유니크하다고 생각한다.

문: 흥행성이 약해서 투자를 받기가 어렵겠다.(이연수)

답: 실제 작가를 캐스팅할 계획이다.(일동 웃음)

 

비고: 최고점과 최하점을 동시에 받음. 상업성에서 취약하나 인물의 개성과 갈등심리가 살아 있다는 데에 점수를 주었음. 특히 제작비의 현실성 차원에서 영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김류 팀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음. 제목 수정 필요.

 

 

4. 다섯 말의 이야기

 

출판사였다가 여행사였다가 술집이 된 그곳은 짐작대로 텅 비어 있었다. 혼자 카운터에 앉아 랩톱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이채의 언니는 여전히 속눈썹을 검게 칠했지만 치렁치렁한 긴 머리는 포니테일로 치켜묶었다. 달라붙는 줄무늬 티셔츠를 입어서인지 얼룩말처럼 보였다. 언니의 친구라는 여자는 곧 도착한다는 이채의 문자를 받은 얼마 뒤에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는 바람에 퇴근하고 없었다.

요셉과 이채가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이채의 언니가 술을 내왔다. 이채는 요셉 옆에 꼭 붙어앉았다. 쟁반에 담긴 맥주병과 마른안주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서 언니가 흘끗 시선을 던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전 정연이라고 해요. 어제 까페에서 인사 못 드려 죄송해요. 어차피 못 알아보실 텐데 귀찮게 해드리는 것 같아서요. 몇년 전 영화제 때……

—내가 다 말씀드렸어.

이채가 정연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정연이 요셉의 잔에 자기 잔을 살짝 부딪치자 얼른 제 잔을 들고 끼어들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이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재미있는 얘기 해드릴게요. 인터넷 유머인데요, 남편이 마누라한테 야단맞는 이유가 뭐게요? 30대, 40대, 50대, 60대가 다 다르거든요. 한번 알아맞혀보세요.

요셉은 ‘반찬이 없다고 말해서’와 ‘숨을 쉬어서’ 두가지나 맞혔다.

—어떻게 맞히신 거예요? 아는 이야기였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채는 신기해했다.

요셉은 식당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때에도 등장인물의 다음 대사를 쉽게 알아맞혔다. 공식대로 따르면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선생님 진짜 똑똑하시다. 아니 쎈스 있으시다.

정연이 약간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그런 다음 이마에 주름을 잡고 이채에게 툭 말을 던졌다.

—너 집에서 내 지갑 봤니? 놓고 나온 것 같은데.

—모르겠는데?

—나 오늘 진짜 일진 안 좋았어. 친구한테 바람맞고, 세 정류장이나 걸어서 가게 나왔거든.

정연은 담배를 꺼내더니 요셉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까딱해 보인 다음 불을 붙였다. 요셉은 연기를 한모금 뱉고 말을 이어가는 정연의 모습이 뭔가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지만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정연은 요셉에게 말하고 있었다.

—점심때 친구 만나러 갔는데 걔가 갑자기 못 나온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버스 타려고 차비 챙기는데 지갑이 없는 거예요. 지갑을 집에 두고 온 거죠. 요즘 장사도 안되고, 되는 일이 없어요.

—친구도 있고 집도 있고 집에 지갑도 있고, 그렇게 안되는 사람은 아닌데? 지금 장사도 되고 있고.

—그것 봐.

이채가 정연에게 이제 알았냐는 듯 의기양양한 눈빛을 던진 뒤 요셉에게 말했다.

—작가들은 특이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돼요?

—아니, 게으름이 필요하지. 놀아야 하고. 그런 게 다 예열을 하는 과정이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허비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뒤에 집중력이 생겨나는 거거든.

—맞아요, 긍정 마인드.

—그렇다고 결심 같은 건 하지 마. 결심한 대로는 안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내일 또 결심할 게 생기는 것 외에 더 생기는 건 없을걸.

—멋지다. 선생님 말은 다 적어놓아야 할 것 같아요.

술이 취해갈수록 이채의 연출이 점점 과장되어간다고 요셉은 생각했다. 정연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채의 과장이나 정연의 견제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요셉에게 그런 상황은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선생님, 아까 택시 안에서는 제가 실수한 것 같아요. 실은 저도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하소연하고 싶었나봐요.

—뭔데?

정연이 물었다.

—진짜 짜증나는 손님이 있었어. 손톱을 깎는데 손톱깎이 소독한 거냐고 물어보더라구. 그러더니 손톱 다듬기 시작하니까 일회용 필러를 사용하는지 확인하고 큐티클 밀 때는 또 아프게 하지 말라고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매니큐어 색깔 고르는데 죽는 줄 알았어. 무슨 색이 제일 인기냐고 물어보길래 여름에는 시원해 보이는 원색을 많이 하고 가을에는 차분하게 갈색이나 초콜릿색을 주로 하는데 봄이니까 핑크 계열이 좋겠다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이것저것 대여섯가지를 발라보라고 하더니 결국 다 벗기고 무색으로 해달라는 거야. 그리고 내가 프렌치나 그러데이션도 산뜻해 보일 거라고 추천했는데 그걸 또 트집잡더라. 자기는 기본만 하려고 했는데 자꾸 비싼 걸 권해서 매상만 올리려고 한다나.

—네가 좀 잘하지. 못 참고 성질낸 거 아냐? 네일아트 학원비가 좀 비싸? 이번에는 좀 진득하게 다녀라.

—도구랑 재료 같은 걸 강매해서 비싸진 거지 학원비는 별로 안 비싸. 그리고 내가 왜 성질을 내? 성질은 그 아줌마가 내더구만. 매니큐어 다 하고 손톱 말리고 있는데 계속 전화가 오더라. 남편이 빨리 오라고 재촉하나봐. 자꾸 건조기에서 손을 빼고 전화를 받으면 그럴수록 더 늦어지는 거잖아. 세번째 전화 왔을 때는 막 욕을 퍼붓더라구. 근데 그 아줌마 가고 나니까 조폭 스타일 남자가 발 페디큐어하러 온 거 있지.

—잘해서 단골 잡아.

—그러게, 끝나고 팁까지 주더라. 남자 발톱은 기분도 그렇고 각질이 많아서 시간도 더 걸리긴 하는데 요금이 비싸잖아. 난 차라리 그게 더 좋아. 참, 선생님.

이채가 요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일숍 한번 나오세요. 손톱 다듬어드릴게요.

갑자기 요셉의 손을 끌어당겨 제 무릎 위에 놓고 손톱을 살펴보더니 이채가 깔깔 웃었다.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건 술 탓이었다.

—엄지손톱 정말 못생겼네요. 이런 손톱은 외로움 많이 탄다던데.

이채가 요셉의 손을 놓고 다시 술잔을 들자 정연이 탁자 위로 손을 뻗어 동생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 마셔.

그 목소리가 너무 싸늘해서 요셉은 갑자기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순간 요셉은 이 자리가 지겨워지는 동시에 탁자 위에 남아 있는 술을 다 마시는 일조차 귀찮아졌다. 요셉은 소설창작 시간에 시정마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삼은 적이 있었다. 불현듯 그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이채가 세차게 정연의 팔을 뿌리칠 때 정연의 몸이 흔들리며 머리채가 마치 말 꼬리처럼 허공에 호를 그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매는 팔을 붙잡고 뿌리치고를 서너번쯤 반복했다.

 

과제용 텍스트

이 이야기에는 말 다섯마리와 약간의 인간 스태프들이 등장한다. 배경은 경주마 목장이고 일어나는 사건은 말 한쌍의 짝짓기라고 보면 된다. 제목? 이제부터 지어야지. 이 텍스트에서 뭘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때는 봄. 햇살이 따뜻해지고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암말의 망막을 자극한다. 시신경과 가까운 성선자극호르몬 분비가 촉진된다는 설명은 없어도 그만이고. 어쨌든 암말은 불현듯 마음이 들뜨고 예민해진다. 특히 오줌을 자주 눈다. 몸 밖으로 페로몬을 내보내고, 또 꼬리를 높이 치켜들어 생식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왕성해진 혈액순환 탓에 그곳은 붉고 탐스럽게 충혈돼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면 암말의 흥분은 제풀에 가라앉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주일 뒤 다시 맹렬히 발정한다. 이런 일이 봄철 내내 반복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생태계의 에피쏘드쯤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경주마를 키우는 목장은 수십만평에 이르는 푸른 초원이다. 쾌적한 현대식 마사는 물론 첨단시설을 갖춘 말 전문 병원도 딸려 있다. 경마 시장에서는 막대한 돈의 각축이 벌어진다. 돈을 벌어줄 만한 뛰어난 경주마의 생산은 영웅의 탄생처럼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암말이 몸을 여는 건 봄 한 계절뿐. 공인받은 종마의 정자를 품종 좋은 암말들의 여러 생식기 안에 효율적으로 운반하여 수태를 성공시키는 것이야말로 봄철 목장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종마의 몸값은 수십억원대를 넘나든다. 또 하루 몇차례씩 암말 위에 올라탈 때마다 고액의 돈을 받는다. 어느 먼 나라에 있는 300만 달러짜리 종마는 한번씩 정자를 내쏠 때마다 25천 달러를 받는다고도 한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자연과 자본이라는 주제를 살짝 넘나들게 된다. 돈을 받는 게 말이 아니라 말 주인이기 때문이다. 대신 종마에게는 우리가 그림책에서 흔히 보아온 말다운 생활이 제공된다. 드넓은 목초지를 마음껏 뛰어 돌아다니면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풀을 뜯고 말울음을 울며 유유히 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 고단백 스태미나 사료에 정력보강제를 복용하고 체력단련을 해가면서 봄의 거사에 대비한다.

짝짓기가 초원에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이야기의 맥락을 잡지 못한 것이다. 이야기란 결코 순진하지 않다. 누구나 짐작할 만큼 뻔하게 전개된다면 이야기는 첫날밤 아내에게 왜 처녀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나 읽는 통속물이 된다. 만약 제목으로 ‘나도 종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나 ‘일부다처제의 롤 모델, 종마의 세계’를 떠올렸다면 자신이 어떤 독서 패턴을 갖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짝짓기는 ‘교배소’에서 벌어진다. 넓고 허름한 천막을 상상하면 된다. 구석에 허리 높이의 바가 가로놓여 있고 거기에 암말 한마리가 묶여 있다. 암말은 모든 계절번식동물이 그렇듯 봄이라는 이유로 단단히 발정이 난 상태이다. 꼬리를 흰 붕대로 감아놓은 것은 곧 맞아들일 종마의 소중한 정액을 잡균 따위로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야기가 동물 학대 쪽으로 비약하는 건 난쎈스지만 이 이야기의 내막이 실은 짝짓기가 아니라 교배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암말의 엉덩이 앞쪽에 차려져 있는 제사상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현수막에는 ‘교배 지원을 위한 기원제’라고 씌어 있다. 여기저기에서 인간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 나이 많은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 말의 혈통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귀중한 행사를 맞이하여 기쁘기 그지없다’는 인사말을 하자 모두가 박수를 친다. 이어서 암말의 엉덩이 쪽에 놓인 제사상의 돼지머리와 과일접시에 대고 하나둘 절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상이 치워지고 스태프들 모두가 ‘귀중한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서는 것이다. 암말이 긴 총채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스태프들은 행여 말들의 거사에 방해가 될세라 숨을 죽인 채 일제히 문 쪽을 바라본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것은 작고 볼품없는 조랑말이다.

물론 종마일 리는 없다. 시정마라고 불리는 일종의 대리 작업남이다. 시정마 자신은 지금 매력적인 암말을 발견하고 식식거리며 올라타는 상황으로 알고 있지만 각본은 그렇게 돼 있지 않다. 온힘을 다해 유혹하고 애무한 뒤 결정적인 순간 종마에게 다 된 밥을 내주고 물러서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하찮은 시정마가 암말을 수태시키는 사태를 막기 위해 시정마의 배에는 우스꽝스러운 비닐 기저귀가 채워져 있다. 거대한 콘돔인 셈이다.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의 외양을 벗고 급격히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비극이 성립될 기미가 보이며, 풍자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희비극이 될 수도 있다.

죽으라고 암컷을 유혹한 뒤 결정적인 순간 사라져주는 시정마가 생겨난 것은 종마라는 고가품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암말에게 걷어차여 상처라도 생기면 큰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암말이 오르가슴 상태에서 상대를 걷어차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불안정하여 난폭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발정난 동물이라고 아무하고나 짝짓기를 하지는 않는다. 스를 물질로 환원하고 심지어 모욕이나 폭력의 수단으로까지 사용할 수 있는 성기를 가진 건 인간밖에 없다. 시정마가 등장한 또 한가지 이유는 종마의 체력을 아껴서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종마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처럼 돈벌이에 지장을 주는 연애는 금지돼 있다. 사랑에 빠지고 애태우고 접근하고 고백하는 과정, 심지어 만지고 더듬는 전희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단지 사정만을 한다. 이 대목에서는 인간이 자신들의 탐욕의 씨스템을 어떻게 자연에 적용해 그것을 파괴하는가 하는 관점이 생겨날 법도 하다. 인간 고발과 문명비판의 성격을 띠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착취나 계급의식 같은 개념은 상투적이고 지겨우니까 그 틀에서는 벗어나서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암말에게 다가간 시정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의를 끌기 시작한다. 갈기를 휘날리면서 긴 목으로 춤을 추고 귓가에 후욱 입김을 불어넣어가며 마음을 떠본다. 암말은 뒷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살짝 튕기고 있다. 시정마는 작전을 바꿔서 약간의 박력을 실어본다. 혀를 내밀어 암컷의 배와 목덜미를 슬쩍슬쩍 핥아가며 행동에 나선다. 시정마가 키가 작고 왜소한 것은 암말에게 쉽게 올라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암말이 보기에 못생긴 이성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못생긴 수컷이 작업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굉장한 끈기와 요령과 긍정적 사고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암컷을 밝히는 말이어야 한다. 잡종 말로 힘들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오게 된 시정마의 안타까운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암말이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시정마는 오랜 시간 구애를 해야 한다. 몇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말은 믿기 어렵지만 어쨌든 대단한 인내와 열정과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마침내 암말이 꼬리를 들어올려주는 감격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흥분한 시정마는 바야흐로 앞다리를 치켜들고 붉게 충혈된 생식기를 향해 발굽을 세우고 돌진한다. 그 순간 인간 스태프들이 달려들어 억세게 말의 고삐를 잡아챈다. 질질 끌려가는 시정마는 울부짖으며 앞발을 구르고 바닥을 긁는다. 분노와 절망의 울음소리가 교배소 안에 비통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인간 스태프들은 몽둥이를 꺼내 시정마를 후려치기 시작한다. 맞기 싫어서 굴복하고 마는 시정마는 뒷문으로 맥없이 질질 끌려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앞문이 활짝 열리고 보기에도 늠름한 종마가 팽창할 대로 팽창한 성기를 위풍당당하게 치켜든 채 뛰어들어오면서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를 맞이하는 것이다.

대기하는 동안 이미 종마는 자신이 곧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안다. 그 생각만으로 충분히 흥분되는 종마의 몸은 일초의 시간 낭비 없이 곧바로 고음부에서부터 노래할 수 있을 만큼 정력이 넘친다. 그러나 500킬로그램이 넘는 이 정력의 동물이 암말의 등에 올라타 동작하는 시간은 길어야 20초이다. 맹수의 눈에 띄기 전에 볼일을 끝마쳐야 하는 초식동물의 운명이라지만 클라이맥스치고는 싱겁기 짝이 없다. 일종의 반전이라고 생각하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주제에 집착하며 이야기를 따라왔다면 다소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말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솝 이야기를 연상하는 극단적인 단순화도 가능하다. 말이 안된다 싶은 상황 어디다 갖다붙여도 무난한 부조리 같은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는 많은 디테일을 갖고 있는 법이다. 암말의 엉덩이가 아닌 앞쪽으로 돌아가 살펴보기로 하자.

등 뒤에서 짝짓기 동작에 몰입한 종마의 울부짖음이 교배장 안에 울려퍼지는 짧은 순간 암말은 아무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묵묵히 눈앞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이야기의 주조가 감상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암말의 앞에는 작은 우리 하나가 있는데 그 안에서 보기에도 애처로운 망아지 한마리가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망아지는 암말의 새끼이다. 모든 말은 봄에 태어나기 때문에 생일을 갓 지났거나 앞두고 있을 것이다. 한시도 엄마와 떨어질 수 없는 새끼 말은 암말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인간 어린애와 달리 그날 이후 ‘난 어떻게 만들어졌어?’라는 질문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는 새끼 말이 있는 우리를 보여준 뒤 암말이 옆구리에 새끼를 걸리고 뱃속에는 막 수정된 새끼를 품고 퇴장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교배 직후 종마의 정액을 채취하여 현미경으로 정자 활성화 상태를 체크함으로써 인간 스태프도 할 일을 마친다.

시정마에 대해서는 몇가지 디테일이 더 있다. 여자를 밝히고 또 그것이 삶의 밑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정마는 가죽 정조대를 차고 독방에 갇혀 지낸다.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 기운을 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소에는 원천봉쇄하고 가까스로 기회를 얻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 몽둥이로 때려서 떼어놓으니 이 스트레스 때문에 시정마는 수명이 짧다. 어쩌다 시정마에게 잡종 암말을 붙여주어 회포를 풀게 해주는 일도 있지만 혈통 좋은 멋진 암말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걸 수없이 보아온 시정마의 성에 찰지 그것은 모를 일이다. 물론 남녀관계란 워낙 고유성을 지니기 때문에 잡종 암말 또한 할 말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궁녀들처럼 잡종 암말이 종마를 짝사랑하거나 유혹하는 상상을 했다면 드라마와 역사의 나쁜 점만을 학습한 것이다.

15년 경력을 가진 늙은 시정마 한마리를 소개하는 것도 이야기를 귀납적으로 만드는 데 의미가 있을 듯하다. 노련한 시정활동으로 업계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그 시정마는 오래전 한때 경주마였다. 1년을 뛰었지만 15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시정마로 노선을 바꾼 뒤 그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그때부터는 해마다 빠짐없이 시정활동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경주마였을 때는 몸값이 140만원밖에 안되었지만 시정활동으로는 회당 120만원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종마의 조건을 갖추지도 못했고 경주마로서도 실패했지만 그 좌절과 굴욕에 아랑곳없이 가늘고 길게 살기로 작정한 이 시정마를 위해 주인은 가끔 잡종 암말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그 시정마는 보통의 시정마에 비해 장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으로 그만 이 이야기의 대단원을 맺을까 한다.

이번 학기의 과제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짧은 소설을 써보는 것이다. 소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창의적인 글이면 된다. 여기 등장하는 다섯가지 타입의 말, 종마와 암말과 시정마와 새끼 말, 그리고 잡종 암말 가운데 어떤 말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것을 인생의 포착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이게 중요한 건데, 전쟁과 가난보다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는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게 있다.

 

웃는 여자

학생들의 과제물이 요셉을 놀라게 한 것은 정답을 맞히듯 모두 내용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시정마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인간의 욕심이라든지 희생, 착취 등 교훈적이고 단순한 주제를 표면에 내세웠다. 인간을 위해 그런 일을 해주어 고맙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요셉이 예로 제시한 해석 방법을 벗어나는 작품은 한편도 없었다. 이안은 그 강좌의 수강생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줄 텍스트를 복사하다가 흥미를 느꼈다며 소설을 써서 가져왔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걸 자발적으로 썼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재미없는 글이었다. 기억이 안 나는데도 최악이라고 기억하는 건 엄청나게 길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요셉은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위스키 병과 크리스털 잔을 꺼냈다. 요셉은 잠깐 탁자 위의 위스키 병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도경이 선물로 준 물건이 몇가지나 될까. 첫번째 선물은 아마 함께 S시의 종마 목장에 갔던 날의 스일 것이다. 다섯마리의 말과 약간의 인간 스태프. 그리고 거기에 구경꾼들도 있었던 것이다.

요셉과 도경은 ‘교배 지원을 위한 기원제’를 구경한 뒤 곧바로 차를 몰아 바닷가로 갔다. 전망 좋은 횟집에 들어갔고 급하게 낮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삼십대 중반이었던 도경은 그때도 통통한 편이었다. 피부가 희고 숱 많은 검은 눈썹에 또렷한 쌍꺼풀을 갖고 있으며 입술이 도톰하고 붉었다. 어쩐지 곁에 뉘어보고 싶은 여자였다. 무엇보다 요셉이 알아온 적지 않은 여자 중에 단연 가장 잘 웃는 여자였는데 그것은 첫 만남부터 요셉을 어리둥절하거나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부조리극처럼 묘한 이완과 평화를 주었다. 그때 요셉은 중소기업인 단체의 여름휴가를 겸한 워크숍에 강사로 초청되어 S시에 갔다. 워크숍이 열리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컨벤션 룸에서 오전 파트 강연을 마친 뒤 혼자 커피숍에 앉아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도경이 발을 멈추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도경은 워크숍에 참가한 기업인 단체의 가족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강연이 인상깊었다고 의례적으로 말했다. 몇년 전 자신이 한철을 보냈던 S시의 기억에 잠겨 있던 요셉 또한 별 생각 없이 잠깐 앉으라는 말로 답례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경이 소리를 내어 웃는 바람에 요셉은 당황하고 말았다. 첫눈에 흥미를 끌 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애써 웃음을 삼키며 순순히 앞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는 도경의 모습은 묘하게 요셉을 자극했다. 10분 뒤에 요셉은 워크숍에 참석하려 했던 도경의 남편에게 급한 회사일이 생겨서 그녀 혼자 S시에 남게 되었다는 걸 알았고 20분 뒤에는 그녀가 그날의 마지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S시를 둘러보며 약간의 관광을 할 계획이란 걸 알았고 30분 뒤에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런트에 예약해놓은 렌터카도 도착해 있었다.

말은 참 멋진 동물이에요. 요셉의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도경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 행사는 말예요. 교배소의 말들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행복하다고? 요셉이 되물었다. 그렇잖아요. 종마는 암말한테 귀찮게 작업 같은 거 안 걸어도 되니까 좋잖아요. 암말은 새끼를 갖게 됐으니 좋고요. 시정마는 고귀한 암말하고 실컷 연애를 해보잖아요. 꼭 그런 건 아니지. 요셉의 말투는 제법 부드러웠다. 스에는 오르가슴만 있는 게 아니야. 거기로 가기까지 권력도 발생하고 달콤한 좌절도 있고 열망의 에너지 같은 것도 있고 그런 건데, 삽입만 하는 종마는 그걸 다 뺏겼어. 글을 알았다면 상실이나 존재론적 허무에 대한 소설을 썼을지도 모르지. 게다가 스의 댓가로 새끼를 갖는 게 좋다니…… 스 다음날 침대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거면 차라리 낫지, 새끼라는 부산물은 혼자 키워야 하잖아. 시정마 그 녀석은 괜찮더군. 드라마의 과정을 즐길 수 있으니까.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뭐 어때. 그리고 완결이 안돼야 그 아쉬움 때문에 세상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지. 종마처럼 마무리 작업만 하다보면 허무주의자밖에 더 되겠어? 스는 원래 허무한 거 아니에요? 술잔을 기울이며 도경이 말했다. 술기운이 오른 도경의 흰 피부는 꽃이 피듯 붉게 물들어 요셉의 취흥과 욕망을 돋우고 있었다.

혀가 꼬부라진 채 도경이 말을 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는 스가 기절할 정도로 짜릿하고 황홀하게 나오는데, 그런 건 없어요. 광고에 나오는 라면, 맥주…… 막상 먹어보면 광고모델이 보여줄 때같이 그 정도로 기막힌 맛은 아니잖아요? 다 판타지라구요. 근데도 다들 뭐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하고 자면 더 좋을까. 글쎄요, 다른 사람하고 자면 조금이야 다르겠죠. 하지만 엄청난 차이 같은 건 없어요. 김치라면하고 소고기라면 정도예요. 근데 다들 스가 굉장한 거라고 속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못 느껴봤다고들 하는데, 아니라니까요. 그게 원래가 그 정도인 거예요. 저는 알아요.

요셉이 소주병을 들어 도경의 빈 잔을 채운 뒤 자기의 잔도 채웠다. 붉은 뺨에 한손을 갖다대며 도경이 물었다. 근데 선생님, 궁금한 거 있어요. 발기가 안되는 건 욕망이 없는 거잖아요. 욕망이 없으면 안하면 되는데 왜 남자들은 온갖 약을 먹으면서 그걸 기어코 하려고 해요? 왜 그러는 거예요? 요셉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교배소 밖에서 대기중인 종마가 그랬듯이 몸이 팽창해 더이상 앉아 있기 불편했고 얼른 나가 모텔을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가자고 말하자 도경은 말없이 발치에 놓여 있던 가방을 집어들었다. 도경이 계산을 하는 동안 요셉은 화장실에 들렀다 렌터카로 갔다.

술기운 탓에 초점이 잘 맞지 않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요셉은 그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차창을 내리자마자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달려와 뺨에 닿았다. S시는 장마철이 되면 습도가 높아 마치 비닐을 씌운 온실 같았다. 바닷가로 나오면 다른 풍경이 펼쳐졌지만 그러나 하늘 저편에서 어김없이 몰려오는 먹구름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던 요셉은 온몸이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채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도경의 모습이 백미러에 나타나자 천천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

좀 천천히 달려요. 도경이 말했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러나 요셉은 아무 대꾸 없이 가속페달을 밟을 뿐이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바람이 미친 듯이 따라왔다. 춤을 추듯 날리는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누른 채 도경이 소리쳤다. 창문 좀 닫아주세요. 날아가겠어요. 요셉이 창을 반쯤 올렸고 그제서야 차 안이 약간 조용해졌다. 어디로 가냐구요. 가보면 알아. 안 가도 알아요. 그럼 됐네. 안 갈 거예요. 요셉이 다시 가속페달 위에 올린 발에 힘을 주자 도경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안 갈 거예요. 도경은 다시 한번 중얼거리더니 다음 순간 갑자기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음주운전으로 잡았는데 불륜이면 웃길 것 같아요. 속도와 취기 탓에 도경의 목소리는 선풍기 앞에서 지르는 소리처럼 웅웅거렸다. 그리고 경찰서 잡혀갔는데 대학교수다 그건 더 웃겨요. 교수 아니니까 걱정 마. 왜요? 강사거든. 그게 더 웃겨요. 도경의 웃음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제가 왜 수영강사도 아니고 운전강사도 아니고 소설 가르치는 강사하고 자요? 다른 것도 가르칠 수 있거든. 뭔데요? 도저히 웃음을 그칠 수 없는지 도경의 입에서는 꺽꺽 소리가 새어나왔다. 너무 웃겨요. 선생님도 웃기고 자는 것도 강사도 웃겨요. 웃겨서 죽겠어요. 요셉은 다시 차창을 완전히 내리고 차의 속도를 높였다. 바람이 맹렬하게 달려들어 도경의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블라우스를 부풀렸다. 도경이 소리쳤다. 선생님, 안되겠어요. 도경의 말은 발음이 분명하지 않았다. 웃겨서 안되겠다구요. 웃겨서 못할 것 같아요. 도경의 웃음소리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요셉도 웃기 시작했다. 가속페달 위의 발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도경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차는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필사적으로 따라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옷을 미친 듯이 흐트러뜨렸다. 시커멓게 변한 바다도 짐승의 이빨 같은 흰 파도를 일으키며 방파제를 따라왔다. 도경과 요셉은 둘 다 숨이 넘어갈 듯이 웃고 있었다. 차는 먹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다 덮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달려갈 기세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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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의 시 「일요일」 중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