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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학주 黃學周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사람』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루시』『저녁의 연인들』등이 있음. hakjooh@hanmail.net
발목 지고 가는 코끼리 발목이,
호스 물을 건네주러 가듯 코를 세우고 걷는 코끼리
비가 오기로 한 쪽으로 달리는 마음은
진홍빛 황혼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나는 차를 멈추고 보고 있었다
귀를 펼치고 오는 코끼리
긴 송곳니 하나를 부러뜨리고 오는 코끼리
새가 날아올 수 있는 거리를 알 수 있는 나무는 어디에도 없고
코끼리가 되면서부터 걸은 거리를 코끼리만 어림하고 있을 것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코끼리의
잃어버린 식구들이 발목을 접고 누워 있는 어딘가도
펼친 귀뿌리 주름처럼 구겨져 있으리라
코끝을 대면 땅 위에 깔리는 쉰 목소리
그리움이 누그러질 때까지
붉은 강물에 등이 다 잠기도록 달리는 코끼리
노을은 물 있는 곳을 찾아 도망나온 태양의 불목하니,
물어보랴 흘러내려가는 것들이 풀과 낮달을 키우는 동안
비 개인 어느날 코끼리로 다녀가는
한 수컷과 한 암컷 사이 바다 같은 슬픔으론 무엇이 되느냐고
사라진 풀들의 잠언을 생각해낼 수 없는
발목은 따스하게 이는 흙먼지를 매달고 늦지 않게 가고 있다
연밥 같은 발을 들어 땅을 딛는 영혼을
몸 안으로 불어넣어 밤새 부풀어오르는
달덩이 코끼리,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발목 지고 가는 코끼리 발목이 킬리만자로 아래 있었다
100년을 넘긴 약속이 미뤄지나 보네
3년째 눈디올레는 비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 많이 지나
해 지는 것 마음에 걸리지도 않나 보네
하필이면 순간이었던 말, 붉게 젖어 어디론가 떠나고
오지 않는 구름을 기다리네
보고 싶다는데
술 먹는 게 모래 밟는 게 싫어 대답을 안하는지
그 무렵이라고 했다가 머리칼을 솎아내며 아마도,
아마도,라고
3년이 100년을 넘긴 마음으로 목이 마르네
헐렁하게 입혀놓은 길이
무릎 아래로 내려가 국경을 넘네
익은 모래 속에 발을 담그고서야 어떻게 거짓이 있을까만,
박하게도 사랑은 한번뿐
언젠가 박수치며 내리던 비여
내 속의 무량한 나무, 타는 목소리
지평선이 해를 꺾으니 100년이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