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전성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 메디치 2011
김상곤 외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 창비 2011
학교 살리기, 더 치밀한 고민과 모색을
이기정 李基政
창동고 교사 gaedong11@naver.com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독재권력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독재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꿋꿋하게 교육의 가치를 지킨 교육자는 존재한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의 저자 전성은(全聖恩) 전 거창고 교장은 그중 한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자들에겐 독재권력의 심기보다 더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 있다. 무엇인가? 바로 대학입시다. 권력 앞에서 교육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 감옥에 갈 용기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시라는 괴물 앞에서 교육적 가치를 지키는 것은 용기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자기뿐 아니라 학생들의 인생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시를 소홀히하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입시에서 매우 좋은 결과를 내면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는 그 기적 같은 일을 성취한 교육자를 안다. 전성은 교장과 거창고의 교육자들이다.
우리는 위대한 교육자의 감동적 실천사례를 이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교육적 가치를 지키며, 입시를 소홀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인교육의 가치를 실행에 옮긴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중심내용에서는 그 정도의 감동을 받기가 어려웠다. 약간의 허전함마저 느꼈다.
이 책의 제목대로 학교는 불행하다. 교사도 학생도 불행하다. 그런데 저자는 그 불행의 원인으로 국가를 지목한다. “학교교육은 국가가 기획하고 집행하여 생겨난 산물이다.”(24면) 그런데 이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고대부터 지금까지 동서양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와 왕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나 비슷”한 것이 학교 불행의 원인이라면, 대한민국 학교의 불행 역시 특별한 게 아니며 보편적 현상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핀란드, 프랑스, 독일, 미국 등 모든 나라의 학교가 비슷하게 불행하다. 대한민국 학교는 그 정도가 좀 심할 뿐이다. 이런 식의 문제파악은 아무런 실천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불행의 원인이 너무 추상적이다.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조금 덧붙이긴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원인분석이 추상적이기에 저자가 제시한 해결방안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학교교육의 목적이 “국가에 필요한 인재양성”이 아니라 “평화”가 되는 것이다. 평자에게 이런 해결책은 너무 막연하다. 저자의 눈은 너무 높고 고상한 곳을 향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로선 교육의 목적이 국가에 필요한 인재양성이어도 별 상관이 없다.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학교라면 말이다. 욕먹을 얘기일 수 있지만, 나는 이제 학교교육이 입시 위주가 되어도 큰 불만이 없다. 언제부턴가 입시교육이라도 제대로 해보는 것이 소원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떤 수업이냐를 떠나 수업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허덕이는 교사들에게 저자의 진단과 처방은 다소 배부른 소리로 들릴 듯하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서는, 과장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하는 말들이 이미 진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랫동안 여러가지 요인이 쌓이고 쌓여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요인을 꼽자면, 우리나라 학교가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수업이 놀랄 만큼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교실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상당수는 수업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학습능력이 수업의 수준을 넘어서 있어 아무런 지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에게 떠들고 잠자는 학생은 수업의 방해꾼이다. 하지만 그중 많은 학생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어 그러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자질과 노력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학원가의 스타강사도 학교에 오면 어쩔 수 없는 면이 분명히 있다. 이것은 제도개혁으로 해결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엔 학생의 학습 수준과 능력 및 속도 등을 고려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불행히 이런 제도를 가리키는 합의된 용어가 우리에겐 아직 없다. 평자는 이러한 제도를 ‘무학년 학점제-수준별 맞춤형 수업’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수준별이라는 말이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면 단계별 수업이라 해도 좋다.
우리나라 학교는 그 기본 조직과 씨스템이 ‘잡무’라고도 부르는 교육 외적인 업무 위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국어교사가 국어과로, 영어교사가 영어과로 출근하지 않는다. 교육 외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로 출근한다. 그래서 교사의 기본생활이 잡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교무실의 문화가 잡무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승진마저도 잡무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어 교장이 되려는 마음을 갖는 순간 잡무에 영혼을 바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거친 교장과 교감의 영혼에는 교육보다는 교육 외적인 업무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학교의 제도와 씨스템을 교육 위주로 재편성하는 개혁이 절실하다.
물론 이것 말고도 학교붕괴를 불러온 요인은 많다. 이를 바로잡는 구체적인 처방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학교붕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경제학자들이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한 시도를 높이 살 만하다. 무엇보다 초・중・고를 바꿀 담대한 제안을 내놓았다는 것이 그렇다. 물론 이 책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학혁신을 위한 방안이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국립대학 네트워크를 통한 ‘국립대 평준화-국립교양대학 설립’인데, 이는 한편으로 초・중・고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초・중・고 단계에서 벌어지는 과열된 입시경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안인 것이다.
하지만 ‘국립대 평준화-국립교양대학 설립’은 설사 실행의지를 가진 정부가 탄생한다 할지라도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정책이 성공한다고 해서 초・중・고의 교육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초・중・고에 시급히 적용될 정책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시된 고교평준화 유지・강화, 혁신학교 성공, 대학입시 보완(근간을 유지하며 보완),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보인다.
무상급식. 가치있는 정책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학교교육을 살리는 큰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과 실현. 그 자체가 위대한 교육적 성취다. 하지만 그것이 붕괴된 학교를 일으킬 순 없다. 혁신학교. 그 역시 좋은 시도이긴 하지만 아직은 일부 학교에서만 진행되는 몸부림이다. 평준화. 지켜져야 하고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평준화가 유지되고 강화되어도 붕괴된 교실은 그대로일 것이다. 입시제도 개선 또한 마찬가지다. 입시제도야 필요하면 고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개선이 갖는 한계를 오랫동안 보아왔다. 모두 좋은 정책들이지만 이 다섯가지 제안이 동시에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학교를 살리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이 최종적인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서론에서 밝혔듯이 모색의 화두로 제안한 책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우리는 수많은 의미있는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경제학자와 교육의 만남 자체가 위대한 시도 아닌가?
하지만 아쉽게도 교육개혁을 말하는 이런 부류의 책들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 참고서는 물론 공부방법론에 대한 책에 비해서도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나는, 썩 논리적인 생각은 아닐 수 있지만, 이런 책들이 널리 읽히지 않는 한 우리나라 학교는 영원히 이대로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졸저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를 포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