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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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劉鍾仁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아껴 먹는 슬픔』『교우록』등이 있음. jongin-yu@hanmail.net

 

 

 

거위 똥

 

 

해묵은 질책처럼

호수 저편에서 거위가 울어댄다

 

안개가 걷혀도 거위의 질책은 쉬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방(四方)이 잘못인 모양이다

약간의 허스키로 중성(中性)의 물에 떠 있다

따지듯이 뭍으로 걸어나오는 아줌마,

이번엔 허스키가 깊고 우렁차서

물가의 중년남녀가 슬그머니 맞잡은 손 놓으며 달아난다

 

마지막 불륜이라면 좀 봐주지 그러냐

좀 물으려 하면, 이도 안 박힐 소리!

거위는 핏대를 세우며 호통치듯 대들어

그때, 날개가 조금 들린다

 

그런 들린 날개 사이로 하늘이 높아 보였다

해도 날아가기는커녕 뒤뚱뒤뚱 호숫가로 걸어가

수초를 헤집는 저 깊은 흰 엉덩이들

 

다른 새들 날거나 우듬지 지붕에서 똥 눌 때도

물가 버드나무 그늘에 웅숭그리고 앉아

생이가래 삭혀낸 듯 풀빛 선똥 같은 뒤를 본다

할 말만 해도 목이 거친 허스키의 아줌마에게

요즘은 꽃핀 사방(四方)도 잘못인 모양이다

 

 

 

고슴도치

 

 

고슴도치 새끼가

상가 지하매장 수족관 한켠에서 팔리길 기다려, 아이들 몰려 있다

무슨 일인가 봐도

 

고작 한철의 애완(愛玩)이라니,

 

가시털이 다 뽑히더라도 불퇴전(不退轉)을 놓아야지

 

하늘이 도사리듯 품어준 사람만 우뚝한 줄 알았지

병신, 육갑 떤다 해도 하늘이

하늘을 품어 도사리는 놈 그 성난 마음에 깊이 찔려주는 걸 몰랐네

 

불여우처럼 건드렸다

겨우 가시털만 털어내며 달아나는 놈은 싱겁다

자충수(自充手) 앞에 아파도 웃고 있는 놈과 몇번은 뼈저린 놈은 몰라도

개털 조상의 그늘 덕에 못 박힌 놈은 싱겁다

 

서늘바람에도 드러눕는 털빛, 달빛에도 지는 오동잎이라니

붓털로도 못 쓰는 이 빳빳함 속에 뼈를 심는데

 

고작 사육(飼育)이라니,

 

내 시간에, 황야와 밀림이 없는 놀음에는 가지 않겠다

민망한 친구 사형(師兄)들, 돌아가신 친척들이여

털을 세우느라 내장을 졸인, 뜻을 기르느라 호강이 없는 스승을 찾다니

시대착오의 미운털만 박혀서라도

하늘도 이젠 살이 돋고 살이 찌는 허공이라면

잔뜩 도사리는 고슴도치들 집어들어

품속 하늘에 깜냥껏 던져봐야지

 

놀란 하늘이, 깨일 수 없는 몽매의 기억 같은 당신이

도사리기 전까지 털이 가시라는 말은 헛되다 고슴도치라면

당신이나 나나 그 뜨거움에 찔려

하늘을 여는, 가시 기름 우는1 번철(燔鐵)을 들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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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하(李賀)의 시 「장진주(將進酒)」 중‘烹龍鍜鳳玉脂泣’이란 구절에서 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