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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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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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등이 있음. silverpaperbox@gmail.com

 

 

 장편연재 3

태연한 인생

 

 

제2부 거짓과 상실의 세계:

거짓으로 사랑하였으나 목놓아 울었다*

 

1. 「경천동지」—요셉의 새 소설 제1장

 

그는 이제 정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랫동안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 매일 더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으로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긴 암울에서 벗어난 그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우선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기로 하겠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13월이나 제8요일 같은 것이다. 글이란 일년 내내 잘 안 써지게 돼 있다. 커튼을 내리고 있으면 우울해지기 쉽고 그렇다고 활짝 열어놓으면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환하고 맑은 날엔 산만해지기 쉽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엔 무기력해서 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 기분 좋은 소식이 오는 것도 반길 일이 못된다. 기분 좋은 생각이란 한번 머릿속에 들어오면 좀처럼 다른 생각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반대로 안 좋은 소식이 왔다면 그건 말하나 마나이다. 기분 나쁜 날 글이 잘 써질 정도로 인생에 의외의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 더구나 의외란 건 주로 나쁜 방향에서 찾아온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돌아가는데도 작가에게는 책상 앞을 벗어나는 현명한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다. 죽어라고 책상에 붙어앉아 있어야 한다. 대가(大家)라고 불리는 이들마저 글은 엉덩이로 쓴다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는 말로 작가의 도로(徒勞)를 독려해왔다.

그도 쉽게 책상 앞을 떠나지는 못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그는 평소 말초신경 낭비라고 욕했던 컴퓨터 게임을 하기 위해 참을성을 갖고 규칙을 습득했다. 인터넷 검색의 중요함도 새삼 깨달아 신빙성 없는 견문을 넓히는 데 힘을 기울였다. 실시간 뉴스와 날씨는 물론 걸그룹의 식단이나 졸업앨범 사진, 환율변동에까지 신경을 썼다. 화제의 유튜브 영상이나 인기순위가 높은 유머도 알아두었다. 이 모든 게 언젠가 글을 쓸 때 필요할지 모를 자료였기 때문이다. 그런 취재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목이나 허리에 디스크 증상이 의심되었으므로 새로 건강분야의 검색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에게 당장 진찰을 받아야 할 심각한 증세가 많다는 데 놀라는 거였다. 그것은 병마와 싸우며 창작의지를 불태우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었다. 창작의지란 글이 안 써질 때 사용하는 것이다. 써야 할 소설의 운명에 집중할 수 없을 때는 그 집중력이 자기 내부로 향한다. 그때에는 병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병을 발굴한다.

어느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면 글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찾아오긴 한다. 그러나 텅 빈 채로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때는 상상력이 왕성해지면서 글의 방향을 잃어가는 단계가 되었다. 작가가 되지 못해 원한을 품은 해커가 재능있는 작가만 골라 컴퓨터 파일을 모조리 파괴해버린다는 식의 엉뚱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는 습관을 바꿔서 어떤 작가들처럼 까페에 나가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까페를 서너군데씩 옮겨다니며 그는 종업원들과 드나드는 모든 손님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엿들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탁자 위에 랩톱을 올려놓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마다 실망하곤 했다. 책으로 살짝 덮어놓고 갔을 뿐인데 그것을 훔쳐가지 못한 소심한 도둑들의 패기 부족 때문이었다.

드디어 첫 문장을 시작한 날은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셨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서성이다 되돌아가서 자신이 쓴 것을 되풀이 읽다 보면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날 일어나 보면 그것은 대부분 쓰레기로 변해 있곤 했다. 마음에 안 들어 지워버렸던 그 문장이야말로 최고의 문장이었다는 것을 깨칠 때도 있었다. 그런 깨달음은 늘 지나치게 늦게 찾아왔다. 백방으로 복원 방법을 알아보면서 그는 다시는 그런 문장을 쓸 수 없으리라는 절망에 매번 눈물을 참아야 했다. 창작을 위한 열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술을 서너잔쯤 마시는 일이 어쩔 수 없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숫자를 셀 수 있을 때까지의 셈법이었다. 술은 잠깐 사이에 그를 마취시켜놓고 창작의 열기에 오염된 그의 시간을 전리품처럼 간단히 거두어갔다. 그 시간이 사라질 때 찾아오는 환희를 그는 기꺼이 환영했다. 그때쯤이면 글을 쓰지 못하는 고통은 사라졌다. 대신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고통이 찾아왔는데 묘하게도 그것은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그는 해장국을 든든히 챙겨먹은 뒤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지난밤 축제를 함께했던 위대한 고통도 다시 글이 안 써져 죽을 것 같은 고통의 본모습으로 시무룩하게 복귀했다. 여전히 모니터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이한 생각이었다. 그는 상투적인 의미체계에 의존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 진전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우여곡절과 경천동지의 세상은 결코 간단한 게 아니었다. 이제부터 쓸 소설의 첫 문장이 시작되기만 한다면 세상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2. 아침

 

여느 날과 같이 그날의 일정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켠 요셉은 잠시 날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3월 마지막날. 그 숫자는 요셉의 눈에 아주 익숙한 배열이었다. 1년에 한번밖에 없는 날이니 특별한 날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셉의 일정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뻔한 것이었다.

오전에는 까페에 나가 미뤄왔던 생활설계사들의 수필 심사를 마치고 심사평을 써야 했다. 그런 종류의 산문을 써야 할 때 요셉은 소설 쓸 때와 달리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곤 했다. 너무나 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번에 또 심사를 맡기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응모작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둥 진심에서 우러나온 글만이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 둥 우호적인 평을 적당히 끼워넣어야 하는데,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매번 다르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잡문을 쓰면서까지 타고난 예술혼이 자신도 모르게 동원돼버리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가치없는 일에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응모작들이 결코 아무도 읽어서는 안될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사비가 입금되면 어느덧 그 심사에 우호적이 되어 있곤 했다. 그것은 평론가들이 원고가 쓰기 싫은 나머지 자신이 평을 쓸 작품에 적대적이 되다가 마침내 원고를 완성하면 급히 호의적으로 되돌아가는 메커니즘과 비슷했다.

늦은 오후에는 지역도서관의 자문위원회의가 있었다. 요셉의 생각에 전문가란 한 분야의 정통함을 통해서 세상 전반에 대한 통찰을 갖춰야 옳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분야에만 통하는 전문성을 세상 전반에의 무지에 대한 정통성으로 삼는 게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극히 부분적으로만 정의로웠고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인데, 부분이 전체를 대표할 것 같지도 않았다. 또 지식인으로서는 정의로운 사람도 정서적으로는 편견투성이였으며 평등을 주장하지만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평등해지기는 싫어했다. 많은 기자들은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몇가지 사례만으로 자기의 편견을 일반화할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거기에서 규칙을 발견해내서 자신의 신념체계로 대중을 속이기를 좋아했다. 요셉 스스로의 공정한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은 인간의 개별적 고유성을 단지 하나의 사례로 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날도 요셉은 누가 됐든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그를 향해 맹렬히 고개를 끄덕여줄 작정이었다.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 상대는 으레 공감의 뜻인 줄 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듣기 싫은 말을 빨리 끝내게 하기 위한 행동이다. 또한 끝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시작한 의례적이고 지루한 회의에 임할 때는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졸음을 쫓을 수 있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회의가 빨리 끝나도록 현실개선의 의지를 불태워봤자 결과적으로 그것은 회의 때보다 조금도 나을 것 없는 재미없는 회식시간을 앞당기는 일일 뿐이라는 사실은 부조리이자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따로 갈 데도 없는 요셉은 꼬박꼬박 회식에 참석했으며 그 비극을 잊기 위해 과음해야만 했다. 회식이 끝나 돌아오는 길이면 긴 시간 동안 짜고 마른 음식을 집어먹은 뒤 찬물을 한모금 마시듯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요셉의 머릿속에 불현듯 ‘급정지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술집 이름 엄청 이상하죠, 선생님. 취했을 때 이채는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콧등을 찡그리며 말하는 게 버릇인 모양이었다. 그 모습은 요셉으로 하여금 자신이, 취하면 얼마간 흐트러질 줄 아는 자신감있는 여자를 좋아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급정지가 뭐예요, 그쵸? 교통이 호루라기 불면서 스톱! 이러는 거 같잖아요. 선생님, 그게 아니구요. 이채를 제치고 나서는 정연도 동생 못지않게 취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조건 이 집 앞에서는 급정지를 하고 들어와 마셔야 한다, 그런 뜻이에요. 재미있지 않아요? 그런 뜻이었다구? 이채가 이죽거렸다. 난 또, 교통한테 잡혀서 끌려오는 무슨 수용소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이 까페 수상한 거 많잖아. 미친년, 뭐가 수상한데? 이채가 턱을 내밀며 곧바로 대꾸했다. 주인이 또라이잖아. 그리고 종업원 언니들도 다 또라이. 뭐? 차라리 급커브가 낫겠다. 그럼 야구팬이라도 올 거 아냐. 안 그래요, 선생님? 이채와 정연 자매는 술을 마시는 내내 서로 으르렁거렸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거기에 반박할 점을 찾아냄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상대에게 반대하는 것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았다고나 할까. 아니면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야만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타자란 내 욕망의 수수께끼에 자신을 직면시키는 존재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뻔하고 유치한 대화가 지겨울 때면 으레 그러듯이 요셉은 혼자 자기만의 잡념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요셉이 술자리에서 자주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연의 줄무늬 티셔츠를 보면서 S시의 종마 목장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채가 또라이라고 하는 주인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는 식이었다. 요셉은 술집이 마음에 들긴 했다. 도경 말고도 함께 술 마실 상대가 생겼다는 점에서도 그 자매의 출현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채와 정연은 처음 찻집에 등장했던 도입부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여자란 주변에 많이 둘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므로 자유를 만끽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요셉의 머릿속에 주인공이 될 만한 여자는 언제나 하나였다. 어딘지 석연찮은 과거의 여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정연은 정형화된 이미지의 한계 때문에 조연에 그칠 뿐이었다. 소설로 씌어진다 해도, 남자는 못 믿겠고 일은 하기 싫고 돈은 필요하고 뭐든 직접 부딪치는 건 싫고 특별히 목표도 없고 그러면서도 누구 못지않게 행복하고 잘나가고 싶은 나이브한 캐릭터가 될 것이다. 거기 비하면 이채는 상상의 여지가 많고 스토리를 채워나가고픈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채를 생각하자 요셉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오전중으로 심사일을 마무리한다면 함께 점심을 먹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았다. 이기적이고 차갑다는 말을 밥 먹듯이 들어온 요셉이 그 방면에 무지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행동이 한동네 사람들끼리의 인정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이채와 함께 점심을 먹게 된다면 자전거 동호회에게 자리를 뺏겼던 그 생선구이집에 가서 갈치조림과 고등어구이를 시켜 나눠먹겠다는 결심을 하며 요셉은 천천히 랩톱 가방을 챙겼다. 잠깐 미역국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생일 메뉴로는 너무 상상력이 없는 것 같았다.

 

 

3. <급정지 스튜디오>

 

이안은 세시간째 씨나리오를 붙들고 있었다. C가 등장하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C가 작가와 함께하는 영화제 행사에 참가해서 K선생을 만나는 장면까지는 괜찮았다. 수희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때 K선생이 무심한 척 제자의 안부를 묻는 것도 그런대로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밤새 이어진 술자리가 끝나고 다음날 C가 혼자 바닷가를 걸으며 독백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장황했다. 프린트된 씨나리오를 뒤적거리던 이안은 C의 독백과 K선생이 술자리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장면을 교차해서 편집해보았다.

 

C(독백): 행사 마지막날이라서인지 쫑파티에 빠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K선생은 배낭여행을 마치고 막 돌아왔다는 여대생과 싸인받을 책을 갖고 온 플로리스트를 상대로 얘기를 나누었다. 소설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거나 영화 이야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모인 사람 대부분이 여자였다. 대학생이 많았고 교사와 간호사, 그리고 정연과 나 같은 백수도 있었다. 자신을 작가 지망생이라고만 소개한 여자는 K선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술이 취하자 K선생의 말은 점점 장황해졌다. 강사를 그만두고 틀어박혀 장편소설을 썼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울분이 쌓인 것 같았다.

K선생: 소설에 서사가 실종됐다고 비판하는 평론가들 말야. 그렇게 고정관념에 빠져서 소설을 어떻게 읽겠어? 그건 신간기사 쓸 때 보도자료 보고 줄거리 요약만 하는 기자랑 똑같은 관점이야. 소설에서 줄거리만 보는 거지. 뻔해. 그, 줄거리 먼저 쓰게 돼 있는 독후감 노트 있지? 그거 잘 활용해서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 가서, 그래서 신문사랑 대학원 시험에 붙은 거라구. 분명 둘이 친구 사이일걸. 신문이나 보는 머리에서 뭐가 나오겠냐. 아, 이건 김수영이 한 말이야. 신문이란 건 볼 필요가 없어. 오늘 신문이 1년 전 신문하고 하나도 안 다르거든. 참 그렇지, 어제 신문하고는 조금 다르지.

C(독백): 소설가 지망생이 뭔가 질문을 했다. K선생은 잘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취해서 조금 횡설수설하는 것 같았다.

K선생: 미리 말하지만 난 재미있게는 못 써. 아는 게 많으면 그런 게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아는 척을 못하는 법이야. 조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걸 재미있어하면서 남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마구 써제끼면 재미있다는 평을 듣지. 내 소설에 극적 긴장이 없다고 한 평론가도 나한테 그런 재미를 요구하던데 다들 친구 사이일 거야. 여기 다 영화팬이니까 감독 얘기가 좋겠군. 히치콕 감독의 써스펜스 원리 들어봤지? 휴가객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는 호화로운 유람선에 폭탄이 장치돼 있을 때, 그걸 관객한테 숨겨야 더 긴장이 있을까, 아니면 미리 알게 해야 할까. 어떤 게 더 극적일 것 같아? 멍청한 놈들은 죽어라 숨기겠지. 모르고 있다가 폭탄이 터지는 순간 무지 놀라는 거지. 근데 그건 한번 놀라고 말 뿐이야. 미리 알고 있으면 그 폭탄이 터질 때까지 긴장이 지속되거든. 내 소설이 바로 그래. 그런데 은유와 반어법을 제대로 알아먹는 놈들이 하나가 없어. 슬프다고 제 입으로 일일이 말을 하고 흐느껴 울고 엄살을 부리고 옷을 찢고 울부짖어야 아, 쟤 슬프구나 하고 알아주는 그런 독법밖에 없거든. 밥을 입안에 떠먹여줘야 이거 먹는 거예요?라고 큰 깨달음을 얻는 상태, 인지적 박약상태지. 근데 그런 놈들이 젤 잘나가. 대중이 듣고 싶은 적당히 안전한 비판을 해주니까. 대중도 문제야. 비판을 해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이데올로기를 거스르는 건 싫어하거든. 그럼 자기가 무식해지니까.

C(독백): K선생이 어려운 말을 하자 몇몇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대생과 플로리스트와 작가 지망생, 그리고 옷가게를 한다는 여사장만이 K선생의 강의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이었다. K선생을 제외하면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40대인 여사장은 술값을 쏘겠다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 영화제 기념 티셔츠를 입은 옆자리의 청년과 키득거리고 있는 정연은 좀 취한 것 같았다. 식은 곰장어 안주를 집다 말고 젓가락을 놓아버리는 K선생에게 누군가 질문을 했다.

K선생: 기억에 남는 독자? 많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많아. 근데 작가와의 만남, 이런 데 가서 소설의 주제니 리얼리티니 그런 거 질문 좀 하지 마. 주제는 지가 꼴리는 대로 생각하면 되는 거고, 리얼리티, 그런 건 없어. 사실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걸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는 독법은 줄거리만 파악하는 독법과 한통속이야. 오늘 본 영화에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장면 있지? 아마 그거 보면서 배우가 진짜 하는 건지 대역인지 알아내려고 열심히 본 사람 있을걸. 손가락하고 팔하고 얼굴이 이어지나 안 이어지나 눈 부릅뜨고.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게 맞다고, 그 리얼리티 보여주겠다고 그 영화 만든 줄 알아? 그런 건 리얼리티가 아니야.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리얼리티를 봐야지. 내적 리얼리티 말야. 소설에 나오는 노인이 노인답지 않아서 리얼리티가 없다? 누가 노인문제 다룬다고 했어? 그 노인의 이야기지 노인들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렇게 줄거리만 보는 천박한 독법이니 누군가 노인이 아침에 일어나는 이야기 썼는데 당신 소설에도 노인이 아침에 일어나니 그건 표절이다, 이런 말이 나오지. 그리고 노인답다는 건 누가 정하는데? 노인이라는 개인의 고유성에 대해 뭘 안다고?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작가 중에도 있어.

C(독백): K선생은 잘나가는 작가들을 씹기 시작했다. 모두들 재미있어하며 귀를 기울였다.

K선생: 착하고 바른 소설만 쓰는 사람은 나쁜 놈일 확률이 높아. 그 사람들이 그토록 세상이 너그럽고 따뜻한 곳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뭘 것 같아?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야.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놓으려는 거지. 근데 나쁜 놈인 게 왜 맞냐면, 그 기준이 자기한테만 적용돼. 나쁜 놈이 아닌데도 착한 소설을 줄창 써댄다면 그건 권위에 겁을 먹고 있는 소심한 사람이거나 그 권위에 아부해서 출세하려는 사람이지. 그런 상투적인 인물한테서 예술을 기대하는 건 이 곰장어한테 어서 살아나라고 하는 거나 똑같아.

C(독백): K선생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겠다고 하자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던 여자가 급히 다가와 K선생의 책을 내밀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이 적힌 페이지에 싸인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같았다. 정연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을 보냈다. 작가들의 행사에 빠지지 않고 다니는 좀 이상한 여자가 있다더니 그 여자인 모양이었다. 모든 작가의 행사에 다니면서 열렬한 팬이라며 책에 싸인을 받는데 스토커로 찍혀 경고받은 적도 있다는 거였다. 가는 데마다 나타나고 집까지 따라간다니 그럴 만도 했다. 갑자기 K선생이 여자가 펼쳐놓은 페이지 속의 문장을 큰소리로 읽었다.

K선생: “그는 마지막 술을 마셔버렸다. 술잔을 내려놓고 작별인사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행동이란 그 개인이 가진 고유한 행위예요. 그런데 행동을 하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의미가 규정돼 있다면 그건 경찰사회입니다. 예술은 개인에게 고유성을 찾아주는 겁니다. 어딘가 외딴섬의 누군가 배가 고파 사람을 먹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인류가 사람을 먹기 시작한 거라고 말할 수는 없죠. 한 사람의 죽음을 통계에 반영하는 것으로만 정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C(독백): K선생은 자신이 쓴 문장에 감동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술자리도 파하는 분위기였다. 몇몇은 남고 몇명은 일어났다. 일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차가 있었다. 먼저 K선생에게 택시를 잡아준다고 여사장이 함께 일어났고 배웅하겠다며 배낭여행 여대생과 간호사도 같이 나갔다. 플로리스트는 K선생의 옆자리에서 자신이 선물한 꽃다발을 들고 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작가 지망생은 언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질문이 많던 영화광과 남자들, 다른 여자들 두엇과 정연이었다. 바닷가엔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정연에게 산책을 하자고 했지만 귀찮은지 손을 저었다. 죽어라고 걷기를 싫어하는 정연과 함께했던 짜증스러운 인도여행이 생각나서 나는 더이상 권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새벽의 백사장을 걸으며 K선생과 간격을 두고 그 뒤를 따르는 여자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 중 한명은 K선생의 방까지 따라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얘기를 하면서도 K선생은 자신이 외롭고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암시를 자주 주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라는 말을 할 때면 틀에 얽매여 가까워지지 못하는 남녀관계의 상투성을 자주 예로 들었는데 넘어갈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유혹적인 태도였다.

 

몇군데를 고쳐봤지만 이안은 여전히 이 장면이 늘어진다고 생각했다. 요셉의 장광설에서 더 많이 들어내야 했다. 그날 정오가 안된 시각에 여자와 함께 호텔에서 나오는 K선생과 C가 마주치는 씨퀀스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중이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긴 했지만 우연이 너무 많아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안은 책상 앞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한잔 따라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수희의 이야기는 3부에 본격적으로 나오지만 그것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어제 C의 전화를 받고 든 생각이었다.

C는 수희의 직장시절 친구였다. 이안이 유학을 떠나던 무렵 C가 출판사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수희로부터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수희의 소식을 알기 위해 C를 찾아갔을 때 출판사는 여행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몇달 전 C가 모처럼 전화해 이제 여행사가 아닌 까페가 되었다며 개업 소식을 알려왔다. 한번쯤 얼굴을 내밀어야 할 것 같아서 들러봤던 급정지 스튜디오에서 이안은 C가 요셉을 영화제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안은 곧바로 제목을 떠올렸다. 자신이 요셉에게 붙이고 싶은 이름 그대로 「위기의 작가들」이었다. 기대했던 작품이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못해 절망하던 무렵 갑작스레 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때문인지 그즈음까지 이안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아이템이 없어 초조해하던 이안으로서는 요셉의 위기야말로 구원이었다. 더구나 요셉이 급정지 스튜디오에 나타났다니 신이 애프터 써비스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안과 달리 C는 좀 당황한 모양이었다. 틀림없어. 정연이 동생이 같이 택시 탔다고 전화까지 했다니까. 지금쯤 가게에서 셋이 마시고 있을 거야. 난 배 아프다고 먼저 퇴근했어. 그 장면도 괜찮네. 머릿속에 씬을 떠올리며 이안이 대꾸했다. C의 목소리가 조금 느긋해졌다. 그러게 말야. 무슨 드라마 같겠지? 하긴 날 기억 못할지도 몰라. 궁금하긴 하더라. 이안씨 영화만 아니면 나도 같이 마셔주는 건데. 아 씨, 나 맘 약한 거 알죠? 내가 본 거 안 본 거 다 털어놓고 욕도 많이 했잖아. 설마 그거 영화에 그대로 나오는 거 아니죠? 이안이 픽 웃었다. 그 정도로 해서 위기의 작가가 되겠어? 픽션인데 더 세게 가야지. 몰라. 그건 감독 맘이고 암튼 나는 모르는 거야. 근데 다음에 또 오면 어떡하지? 태연하게 술 마시나? 영화 다 찍을 때까지는 안 마주치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 그렇겠지. 이안이 대답했다. 아직도 꼬시는 중인데, 의심이 많고 워낙 날 안 좋아해서 말야. 그래? 수희 일 때문에? C가 웃었다. 그게 아니고, 아직도 나랑 자기 아내 사이를 의심하고 있더라니까. 이안도 농담으로 받았다.

C는 저녁에 급정지 스튜디오에 들를 수 있는지 물었다. 이안은 가겠다고 약속했다. 정연에게서 요셉이 왔던 이야기를 들으면 씨나리오에 추가할 디테일도 나올지 모른다. 전화를 끊기 전에 C가 말했다. 정연이 동생 고게 보통이 아니긴 해. 언제 또 데리고 올지 몰라. 오면 또 피해야 하나? 점점 재밌어지네. 무슨 범죄영화 찍는 거 같잖아. C는 저녁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커피를 다 마신 이안은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갔다. 오늘은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약속이 세개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이름의 영화제가 있을까 싶지만 ‘대단찮은 영화제’는 올해로 4회를 맞았다. 짐작할 수 있듯이 저예산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기성영화계에서 대단하다고 여기는 점을 갖추지 않아야 상을 준다. 그런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는 다른 인디 영화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몇몇 학교의 영화학과 출신 중에서 수상자가 나왔고 재학생들의 졸업작품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인맥이 없는 이안은 외톨이였다. B문화재단의 트리트먼트 공모전에 당선한 다섯명 중 이안을 빼고는 모두 영화과 출신이었다. 그들 중 한명이 ‘대단찮은 영화제’에 단편영화를 출품했다고 연락이 왔다. 대상을 포기하는 대신 관객 투표로 결정되는 ‘제목상’을 노리고 있으니 꼭 와서 우정의 한표를 던지라고 능청을 부렸다. 이안은 내키지 않았다. 영화도 시시할 게 뻔했고 또 설령 제목상이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상을 타도록 돕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B문화재단에서 모임이 있다는 말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당선된 다섯편의 트리트먼트 중에 김류 팀장을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감독의 프로젝트가 더 빨리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극장에 가서 출품한 영화를 봐주고 B문화재단에 들른 다음 급정지 스튜디오로 가는 것이 그날 이안의 일정이었다.

 

 

4. 옷을 사다

 

요셉은 까페 탁자 위에 심사원고를 펼쳐놓은 채 15분에 한번씩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오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가 되면 곧바로 이채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요셉이 또다시 시간을 보려고 휴대폰을 집어드는 순간 문자수신 알림음이 울렸다. 조금 전 카드회사로부터 생일축하 문자를 받은 이후 오늘 들어 두번째로 받는 문자였다. 요셉은 잠시 액정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것은 요셉에게 필자모임에 꼭 나오라는 확인 전화를 하지 않았던 출판사로부터 단체문자의 형식으로 전달된 J의 부음이었다. 낫지 않을 병을 오래 앓았기 때문에 크게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늘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J는 요셉과 같은 연배이고 등단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J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됐을 때 독자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문단의 반응은 폭발적인 것이었다. 인간이 여전히 오래된 지옥에 살고 있음을 각성시키는 묵시록적 선언이라든가,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 생존의 존엄성을 통찰해낸 휴머니즘의 완성이라는 수사가 동원되었다. 이처럼 심각한 주제를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가적 풍모를 갖춘 작품은 일찍이 한국문학사에 없었다는 뒤표지의 글도 여러 매체에 인용되었다. 그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절반 이상의 글이 그 작품을 분석한 것이었다. J는 그 한권의 장편 이후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요셉이 알기로 그는 평생 한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대신 쉬지 않고 글을 생산해냈다. 자서전 대필도 했고 기업의 사사나 정부기관의 보고서도 썼고 선거 홍보물도 작성했다. 필명 없이 본명만 사용했고 또한 소설가로 대우받기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므로 원고료는 많지 않았다. 수입도 불규칙하고 떼이는 돈 또한 적지 않았다. 또 그 연배의 온순한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이십대 후반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가진 가장이었는데 그가 써야 하는 원고의 양은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속도와 비슷하게 늘어갔다. 첫번째 책의 인연이 출판사로 하여금 단체문자로 부음을 알리게 한 것일 뿐 소설가로 산 것도 아니었다. 단체문자에는 물론 나와 있지 않지만 J의 사인은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 손상일 것이다. 이식수술을 신청해놓고 장기기증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소문이 들려온 게 작년쯤이었다. 살아 있을 때 J의 인생은 누구에게도 중대한 관심사나 지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의 죽음으로써 어쩐지 이 세상의 한가지 중요한 서사가 종결돼버렸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채와 점심을 먹은 다음에 잠깐 문상을 다녀올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도서관 회의는 그 다음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소는 J가 살던 서울의 외곽 동네에 차려져 있었다. 택시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고 부조금까지 내고 나면 적은 지출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어쩌면 하기 싫은 심사를 하나쯤 더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죽은 J가 명백히 원치 않는 일이었다. 다음 순간 요셉은 자신의 좁은 오피스텔엔 상복으로 입을 만한 검은 옷이 없다는 데에도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 생각은 검은 옷뿐 아니라 그의 옷장과 그리고 옷장이 있는 집까지 소유한 아내에 대한 맹렬한 분노로 이어졌는데, 그 분노는 기억해주는 사람 없이 생일 오전이 다 지나간 것과도 관련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와 혼자 지낸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문상을 안 간 것은 아니었다. 격식을 싫어하는 성격인만큼 평상시처럼 청바지 차림으로 빈소에 들렀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어린 애도를 할 만한 자리가 아니어서 그랬을 것이다. J의 빈소에 갈 때만은 반드시 검은 옷을 입어 아내에게 보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솟아났다. 아내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고 또한 법적으로도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 그 집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이 관혼상제를 헤쳐나가는 데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하니 요셉은 어서 옷을 사러 가고 싶었다. 그 옷은 상복이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완전한 독립을 선포하는 예복도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볼 기회조차 주지 않겠지만 아내에게 관계의 종말을 통보하는 복장으로 그처럼 어울리는 옷도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요셉은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만큼 충동적이거나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요셉이 검은 양복을 산 것은 이채와의 약속 장소가 백화점 꼭대기 층의 커피숍이기 때문이었다. 네일숍은 오전 11시에 문을 열었다. 청소당번이 아닌 날 이채는 정오가 다 되어 출근하고 서너시쯤에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배달음식을 점심으로 먹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채는 그냥 전화를 끊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잠깐 커피 마시러 나갈 수는 있어요. 그렇게 할까요, 선생님? 어제처럼 담배를 피우러 가게 밖에 나와 있는지 전화기에서 거리의 소음이 들려왔다. 네일숍 근처는 안되구요. 선생님하고 데이트하는데, 이 동네는 스카이라운지 같은 데는 없죠? 높은 데서 우아하게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고 뭐 그러는 데요. 이채가 농담을 던졌을 때 요셉의 머리에 곧바로 백화점 커피숍이 떠오른 것은 지하의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혼자 밥 먹는 사람에게 마음 편한 장소 중 하나였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커피숍으로 올라가던 요셉은 남성복 매장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자신의 동선이 백화점 설계자의 의도를 따르고 있다는 데 약간의 저항감을 느꼈지만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의심 많은 애인보다도 더한 열정으로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점원들의 고객 사랑은 요셉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안 가 그것은 옷값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그러나 백화점처럼 돈밖에 모르는 장소에서는 정당한 분노가 무능력함이나 물정 모름, 특히나 부러움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판단 덕분에 가까스로 화를 참을 수 있었다. 요셉이 거울 속의 낯선 사내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사이 점원이 입고 가실 거죠?라고 묻더니 대답도 듣기 전에 벗어놓았던 옷들을 개켜 종이봉투에 넣었다. 요셉이 뭔가 한마디 하려고 입을 벌리자 새신랑 같으세요,라며 활짝 웃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포장된 완제품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아마 그것이 백화점이라는 오토매틱 씨스템의 마지막 공정인 것 같았다.

 

 

5. 티타임

 

요셉은 이 커피숍에서 어떤 여자를 두어번 만난 적이 있었다. 신도시가 초행인 데다 길눈이 어두운 그 여자도 백화점만은 찾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얼마 안 있어 이채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채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요셉은 자신이 두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는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청재킷 안에 입은 빨간 반팔 스웨터는 요셉이 까페에서 처음 본 날 입었던 옷이었다. 겨우 사흘 전이었다. 사흘 계속 이채를 만나고 있는 셈이었다. 이채는 앉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눈치가 보여서 겨우 나왔다는 푸념에서 시작하여, 정당하게 주어진 점심시간을 옮겨서 쓰는 것뿐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이 자리에 나온 대신 오후엔 점심시간도 없이 계속 예약손님을 받을 거라는 둥,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고 앉아서만 일하다 보니 살이 찌는 것 같다는 둥, 여자들만 있는 직장은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끝내자 손님에 대한 불평도 털어놓았다. 네일숍이란 데가 실은 스트레스 해소하러 오는 여자들이 많다, 직장상사, 사장, 시댁 욕하는 이야기에 맞장구치고 기분을 최대한 맞춰줘야 하는 게 손톱 손질보다 더 힘들다, 애완동물과 연예인 얘기만 하다 가는 손님이 제일 편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다녀간 손님은 회사에서 진한 색 매니큐어나 긴 손톱을 금지하기 때문에 투명색만 발라야 하는 게 불만이라는 얘기를 한시간 내내 하다 갔다는 거였다.

내용은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의 귀에는 흥미롭게 들렸다. 그런 것이 바로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즐거움이었다. 새로운 여자란 마치 티백 속의 마른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처럼, 말라버린 채 얇은 종이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존재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리하여 손끝까지 따뜻한 기운이 돌고 향기가 온몸을 채우는 것이다. 상대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지는 상대와 같아지려는 동기를 유발하는데 그것을 추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했다. 그처럼 낯섦이 자신에게 옮겨오는 변화야말로 요셉이 원하는 살아 있는 자의 실감이었다. 남녀관계에서 요셉은 그 시작의 느낌을 가장 좋아했다. 그것은 짧기 때문에 더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면 패턴이 되어 지겨워지게 마련이었다. 사랑이 식는 것은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상대가 고유성을 잃고 다른 누구와 다를 것 없는 덤덤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이채가 말을 끊고, 이런 얘기 재미없으실 텐데,라고 말했을 때 요셉은 재미없어지면 딴 생각을 하면 되니까 계속해도 된다고 대답했다.

—사실 대화란 건 해로운 거야.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다 보면, 대화로도 안되는 사이라는 편견만 굳어져. 대화로 풀자는 건 자기 말을 잘 들어보라는 뜻이거든.

—언니가 그래요. 대화하자고 해놓고 항상 자기 맘대로 해요. 못하게 하는 것도 너무 많아요. 되게 샘이 많거든요. 내 건 뭐든지 다 뺏어가요. 네일 학원비를 자기가 보태줬다고 열심히 다니라고 잔소리하는데 솔직히 자기가 얼마나 냈다고. 오빠가 해준 거지. 내가 맨날 최저시급 받고 불쌍하게 사니까. 저희 오빠, 중학교 선생님이거든요.

요셉은 이채의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별로 영민해 보이지 않는 머리에 야구모자를 쓰고 에티오피아 커피에 대해 아는 척하던 남자가 이채의 애인이라고 상상하고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요셉의 상상이 어긋난 것이다.

—무슨 과목인데?

—영어요. 지방에 있는 학교예요. 요즘은 학생도 얼마 없나봐요. 작년부턴가? 학생수가 갑자기 줄더라는데, 오빠 말로는 걔들 태어날 무렵부터 사람들이 결혼을 안한 거래요. 오빠 좀 웃겨요. 학생들을 자식 취급해요. 실은 오빠가 결혼날짜까지 잡았다가 깨졌거든요. 그때 했으면 걔들이 딱 그 나이라나.

—그게 언제지?

—오빠네 학생들 태어날 때요? 아, 오빠 결혼? 내가 중학교 1학년 땐데.

잠시 생각한 다음 요셉이 말했다.

—이채 나이가 스물여섯 아니면 스물일곱이군.

이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은 것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못한 젊은이뿐 아니라 그해에는 온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불행해졌다. 요셉은 그해에 관련된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그다음해부터 출산율이 낮아졌는데 그런 현상은 특히 지방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그해에 중1이었다면 나이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셉은 그 다음 단계를 넘겨짚어보았다.

—오빠가 결혼 못한 건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서였나?

—비슷해요. 아버지가 갑자기 은행을 그만두셔서. 오빠도 막 제대했는데 취직 안되고. 질질 끌다가 결혼이 깨진 거죠 뭐. 아버지는 식당 같은 거 좀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고요. 지금은 택시운전 하세요.

시시콜콜하고 식상한 가족사가 나오자 슬그머니 지겨워진 요셉은 다시 남녀의 연애 같은 걸로 화제를 돌려보려고 했다. 연애의 초기에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공유하기 위해 외모에 대한 상찬를 보내고 자신의 미혹된 감정을 암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채의 눈시울이 젖어 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저 이런 말 남한테 처음 해요. 친구들한테도 안했어요. 걔들한테도 깊은 고민은 못 털어놔요.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꼭 이용하는 애들이 있더라구요. 고민 다 들어주고 나중에 선생님한테 꼰지르는 애들 있잖아요. 근데 그런 애들이 점수 잘 받고 스펙도 좋고 다 잘나가. 전 왠지 잘못 사는 거 같아요.

이채는 테이블 너머 요셉 쪽으로 몸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써요? 배우면, 작가가 될 수 있어요?

—글쎄.

—전 뭐든 열심히는 해요. 안 풀려서 탈이지. 작가는 돈은 많이 못 벌죠? 근데 유명해지잖아요. 저 솔직히 유명해지고 싶은 꿈 있어요.

—뭘로?

—그걸 모르겠어요. 꿈에 일관성이 좀 없어요. 웃기죠?

—일관성이란 건 원래 없어야 맞아. 세상이 늘 바뀌고 있는데, 사람도 일관될 수는 없어. 남이 볼 때는 일관성 없는 것 같지만 각자 자기 방식대로 그때 그때 이유가 있는 거야.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지, 그게 일관성이야.

—역시! 어느 작가가 한 말이에요? 진짜 맞는 말 같아요. 저는 제가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그런 줄 알았어요.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고, 무언가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야말로 사기의 표시야. 이건 에밀 씨오랑이란 사람이 한 말이야.

요셉으로서는 이채가 세대론 같은 낡은 틀로 파악하기 쉬운 유형이란 게 약간 실망스럽긴 했다. 전쟁과 가난에서 벗어나 점점 잘사는 것만 겪어본 사회에 어느날 총체적인 돈 난리가 닥쳐왔다. 윤택함을 누리던 세대는 결핍에서 시작한 세대보다 훨씬 충격이 컸다. 불안은 가슴에 깊이 새겨지고 끊임없이 욕망을 가동시킨다. 식상한 스토리였다.

—선생님, 제가 말이 너무 많죠. 이상하게 선생님을 만나면 뭔가 속을 털어놓고 싶어져요. 주변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남자애들은 같이 잘 생각밖에 안해요. 명품 가방도 안 사주면서.

마지막 말을 장난스레 덧붙이면서 이채는 설치류 같은 귀여운 앞니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약간 큰 가슴을 여전히 요셉 쪽으로 기울이고 어깨를 살짝 들었다 내려놓았는데 첫날 요셉이 파악했듯 충분히 계산된 포즈였다. 이채가 한쪽 손으로 비스듬히 턱을 괴자 길고 건강해 보이는 핑크빛 손톱이 도톰한 입술에 살짝 닿아 요셉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식을 뻔한 티백에 다시 한번 뜨거운 물이 부어지며 요셉의 몸에 다시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요셉의 입에서 농담이 흘러나왔다.

—명품 가방은 당연히 사줘야지. 어차피 지가 들고 다닐 거잖아.

—네?

—여자 핸드백은 대신 들어주려고 사주는 거 아니었어?

—맞아요. 선생님.

이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여자애들이 다 그런 대접 받으니까, 나만 못 그러면 내가 꼬진 거 같아서 좀 싫어요. 선물은 많이 받으면 좋잖아요.

—자기가 준 것을 다 계산해놓고 그걸 빚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지. 너는 뭘로 갚을 건데 한다면 그게 맡겨놓은 거지 선물이야? 내가 준 거 잘 갖고 있지? 이러는 놈들 조심하라구. 생색내거나 보상받으려 하는 건 진짜 주는 게 아니야.

선물이란 말에 당연히 생일과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에 요셉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선생님, 저 그럴 남자친구 없어요.

—그래? 좋은 소식이군.

—선생님은요? 사모님이랑 이혼하신 게 맞아요? 언니가 그런 것 같다던데.

요셉은 일단 그렇다고 해두었다. 이채와 아내에 대해 길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근데, 저 오늘 왜 이렇게 질문이 많죠?

—인간의 본질은 질문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질문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답이야. 이건 내 말이 아니고.

—어? 근데 이건 진짜 질문인데.

이채가 속눈썹을 깜박이며 요셉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이 차이 많은 상대랑 연애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이 차가 적다거나 많다거나, 그런 구별이 있나? 그냥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겠지. 그 어떤 사람이 나이가 많을 수는 있겠지만.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생님한테는 젊은애들은 좀 유치해 보이겠죠?

—유치한 게 아니라 제멋대로지.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자기가 틀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건 당연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구닥다리 틀에 집어넣으려고 잔소리하는 거 난 질색이야. 난 요즘 젊은이들이 빚이 없어서 좋아. 아버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것 같은 무협지적인 촌스러움 말야. 무거운 걸 끌고다니는 짓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지. 머리도 노랗게 물들이면 얼마나 가벼워져.

말을 마친 뒤 요셉은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끗 보았다. 요셉은 어떤 틀로도 정형화할 수 없는 관계에서 호기심과 에너지를 얻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번번이 새로운 연애에 매혹되는 거였다. 그러나 생겨난 만큼 곧바로 소모되는 게 새 연애의 에너지였다. 그래서 충전이 필요해 자주 만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J의 빈소에 들르려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하는 요셉에게 이채가 말했다.

—선생님, 양복이 잘 어울려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 혹시 데이트?

—데이트는 지금 하고 있고.

—데이트였어요? 근데 이게 다예요?

요셉의 말에 이채가 제법 성숙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요셉의 눈속을 바라보았다. 이채가 커피숍을 나가면서부터 단단히 잡고 있던 요셉의 팔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놓았을 때 요셉은 약간의 허전함을 느꼈다.

 

 

6. 빈소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 낮시간을 택했지만 빈소는 요셉의 예상보다 훨씬 썰렁했다. 대학 신입생이라는 상주의 친구들이 장례절차를 도와주러 왔다가 하릴없이 복도의 의자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디엠비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긴 병의 끝이라 그런지 상가의 분위기에는 슬픔보다는 침통함, 그리고 약간의 사무적인 피곤이 느껴졌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우며 임종을 지켜봤던 J의 아내는 빈소 뒤에 딸린 방에서 밤샘을 대비해 잠을 자두고 있다고 했다. 요셉은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책날개에 붙어 있던 15년 전쯤의 사진이었다. 작가로 산 시간은 짧았지만 결국 J는 산 사람들에 의해 작가로서 그곳에 죽어 있었다. J의 어머니로 보이는 늙은 여인이 다가와 영정으로 쓸 만한 다른 사진이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놀러 가서 찍은 사진도 없을뿐더러 여권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 신분증 하나 없으니 증명사진조차 있을 리 없다는 거였다. 요셉에게는 그 사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J는 아나키스트의 길을 택했고 누군가 말했듯 냉소주의자의 고난을 덜어주는 것은 오만함이었다.

영정 앞에 절을 한 뒤 요셉은 상주의 친구 하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안내해주는 대로 식당으로 갔다. 많지 않은 테이블도 그나마 거의 비어 있었다. 생면부지의 조문객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요셉은 탁자 위에 놓인 소주병으로 팔을 뻗었다. 친척인 듯한 건너편 자리의 노인이 요셉에게 말을 붙였다. 고인하고는 어떻게 되시나. 아 예, 제가 신세진 게 좀 있습니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그 대답은 요셉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요셉은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며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출판사 직원들이 하나같이 무거운 표정을 지은 한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들어왔을 때 요셉은 제법 취해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요셉에게 손을 들어 알은척을 한 게 신호라도 되듯이 그들은 눈을 내리깐 채 줄을 지어 요셉 혼자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거의 눈에 익은 얼굴이었는데 고인보다 젊은 사람은 한명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앉자마자 J의 힘든 투병과정과 가족이 겪은 고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그 때문에 지게 된 적지 않은 빚도 들먹여졌다. 누군가 가족을 돕기 위해 문인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자는 제안을 했고 즉각 적극적인 동의가 따랐다. 요셉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 J는 자신이 소설가라는 사실을 밝히기 싫어했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내세워 원고료를 올리라는 충고를 모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죽은 J에게는 산 사람들이 불우한 소설가에게 주는 호의를 거절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문예지에서 특집을 만들어 재조명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출판사 쪽에서 나왔다. 그게 결정되면 표지 갈이를 해서 J의 책을 다시 시장에 내보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마 J의 암울하고 곤궁했던 삶을 부각시키는 자극적 카피와 느낌표 세개로 띠지를 두를 생각도 같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J의 죽음을 특히 비참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간 손상을 일으킨 술과도 관련이 있었다. J는 술을 마시면서 일하는 습관이 있었고 많은 술을 마셨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열심히 했다는 뜻도 되었다. 그러나 성실한 가장이었던 J는 마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술로 세월을 보낸 폐인처럼 언급되었다. 누군가 빈소가 썰렁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마땅히 그 자리에 와야 하는데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나열되었다. 그것은 J의 죽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문단의 무관심에 대해서 성토할 때 자신들 역시 거기 속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모습이었다. 추모의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J가 사회적 약자이자 불운한 인간으로서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더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삶을 세속적 기준으로 재단하지 말고 사랑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평화, 그런 것과 얼마나 가까웠나로 평가하자고 글을 써대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요셉의 머릿속에는 이 자리야말로 J가 죽임을 당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떤 분야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고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현상적 이분법, 그리고 결과만으로 인간을 재단하는 세속적 패턴은 요셉에게 차라리 익숙했다. 요셉이 역겨운 것은 발언권이 없는 죽은 자를 그런 이분법적 틀에 집어넣어 루저로 만들어놓고 그를 동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공의(公義)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자들의 기만적 패턴이었다. 누군가를 약자로 만드는 것은 강자가 아니라 바로 그처럼 강약을 나누는 틀이고 그리고 그 틀에 스스로 편입되는 자들이다. 요셉이 생각하기로는 산 자가 죽은 자보다 반드시 낫다고 볼 수도 없었다. 이제 죽을 염려를 하지 않게 된 J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결정적으로 승자였다. J는 자신이 누구로 죽을지 알아야 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던 만큼 요셉은 자신이 잊혀진 작가라는 데 대한 자의식이 강했다. 거기에는 늘 요셉이 쓸 말을 모조리 먼저 써버려 세계적 인물이 된 어느 작가에 대한 피해의식이 따라다녔다. 그 작가는 어린 아들의 무덤 앞에 선 주인공 여인에게 이런 독백을 하게 했다. 너를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경멸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란다. 네가 죽음으로써 다행히 나는 다시 이 세상을 마음껏 경멸할 수 있게 되었구나. 요셉은 불현듯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기의 빈소에 와서 자신을 불행하고 비참한 작가로 추모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자 절대로 죽어서는 안된다는 결심과 함께 새삼 울화가 치밀었다. 상복을 입고 빈소에 앉아 자기의 죽음을 상상해야 하는 날에 하필 생일이 찾아온 것도 못마땅했다. 요셉은 아직도 J의 불행에 대한 화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문상객들을 향해 내 생일인데 그만 좀 하지,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요셉은 전화기를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요셉이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이안이었다. 웬일이야. 요셉은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 큰 목소리로, 그리고 이안을 의식한 다소 시큰둥한 어조로 전화를 받았다. 이안이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는 B문화재단 사무실이었다. 팀장님하고 저녁식사 같이 할 것 같은데, 시간 어떠세요? 요셉이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는 데는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전화기를 바짝 귀에 갖다댔다.

이안과의 통화를 끝낸 뒤 요셉은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짐작과 달리 담당자는 요셉의 회의 불참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갑자기 문상을 가게 됐다는 경위 같은 데는 관심도 없었고 ‘네’와 ‘그럼요’를 연발하며 빨리 통화를 끝내고 싶어했다. 전화기를 탁자 밑에 내려놓고 요셉은 상주의 친구에게 손짓을 해서 찬물을 한잔 청해 마셨다. 그리고 자신의 차림새를 살펴보았다. 10년만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날이 마침 새 양복을 입고 외출한 생일날이라는 게 그리 나쁜 징조는 아닌 것 같았다. 술을 깨기 위해 요셉은 찬물을 한잔 더 마셨다.

 

 

7. 불발—류에게 가는 길

 

택시가 강변도로를 달리는 내내 요셉은 강물에 떨어진 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안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질 만하면 그 자리에 아내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고 다시 그것은 J의 상가에 모인 옛 동료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면서 순환을 거듭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게 시들해졌다. 마지막으로 꺼져가는 조그마한 불씨를 자신에 대한 분노에 사용하고 나니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피곤이 찾아왔다.

이안이 아직도 구원이나 예술혼 같은 말을 입에 담는 걸 보고 요셉은 그가 여전히 지루한 사람일 뿐 아니라 출세에 대한 욕망도 버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몇가지 실패가 더욱 이안을 ‘순수’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처음 이안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요셉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날 그렇게 싫어하는 놈이 왜 만나자는 거지?였다. 이안이 수강생들에게 요셉의 험담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한다는 것은 몇몇 여학생들이 전해주어 알고 있었다. 어느 술자리에서인가 이안이 스스로를 정의와 순수의 대표로 임명하고 사사건건 나서서 요셉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요셉이 한창 어이없는 헛소문에 시달릴 때였다. 제자를 임신시켰다거나 사귀던 제자에게 애인이 생기자 등록금에 보태라고 주었던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거나 또는 제자가 읽어봐달라고 가져온 작품의 일부를 베껴서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하는 소문에 더해 요셉의 아내가 남편의 학대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말도 있었다. 소문이 점점 악의적으로 되어갔을 뿐 아니라 일정부분 사실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요셉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질투하거나 적의를 품은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들은 이야기를 부풀릴 수 있을 만큼 요셉의 측근과도 가까운 사이일 거라는 게 무엇보다 불쾌했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술자리에서 요셉의 사생활과 가정문제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안은 의심을 사기에 가장 적임자였다. 매를 벌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요셉은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이안을 한대 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요셉은 그날의 일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 이안의 영화에 협조할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안의 예상 그대로 행동하고 만 것이다.

이안이 B재단 사무실에서 요셉에게 전화를 건 것은 요셉의 짐작처럼 후원사의 팀장인 류와 인사를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그 전화는 요셉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류를 겨냥한 제스처였다. 류의 앞에서 전화를 걸어 요셉과의 통화를 들려줌으로써 캐스팅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요셉은 그것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안의 공손한 말투에는 사무적인 억양이 깃들어 있었다. 요셉은 장례식장이라 긴 통화를 할 수 없다고 대답한 다음 저녁 먹는 장소가 정해지면 다시 연락하라고 말했다. 회의를 취소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안은 더이상 재촉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 태도 또한 바로 전날 B문화재단과의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통사정하던 때와 딴판이었다. 캐스팅을 끝마친 감독의 행동으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요셉이 빈소를 떠날 때까지 이안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J의 죽음과 상관없이 요셉은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라앉히는 동안 꽤 시간이 흘러갔음은 물론이다. 장례식장을 나오기 전 화장실에 들렀고 거울 앞에 서서 또 한차례의 착잡함과 더불어 요동치는 설렘을 다스려야 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일단 택시를 잡아탄 요셉은 B문화재단이 있는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택시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이안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국 자기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었던 요셉은 다짜고짜 어디냐고 물었다. 이안은 음악소리가 시끄러운 술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요셉이 저녁 약속에 대해 묻기도 전에 이안은 되레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류에게 선약이 있었고 퇴근시간이 되어 함께 사무실에서 나오는 즉시 헤어졌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였다. 그것은 이안이 류와 저녁 약속이 잡혀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요셉과의 통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류의 의중을 떠봤다는 뜻이었다. 요셉이 부재중에 온 전화를 확인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랬다 해도 통화가 안되면 여러번 다시 걸었어야 옳았다. 변명은커녕 이안의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진 요셉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생각이 나서 확인해보니 도서관 회의는 끝났을 시각이었다. 이런 기분으로 혼자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요셉이 갈 만한 장소는 뮤직비디오 속의 역동적 춤과 ‘남녀 통속 상열지사’가 펼쳐지는 동네의 인도 음식점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요셉의 머릿속에 급정지 스튜디오가 떠올랐다. 요셉은 다짜고짜 운전기사에게 급정지 스튜디오의 위치를 대며 차를 돌리라고 말했다. 못마땅한 기색으로 룸미러를 흘끗 보던 운전기사는 요셉의 화를 부추기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말없이 핸들을 꺾었다.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었다. 차도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바빴다. 오랜만에 나와보는 서울 한복판의 화려한 불빛과 간판들이 요셉의 망막 위를 흘러지나갔다. 한떼의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뀔 때마다 둑이 터지면서 거대한 물살이 밀려가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대형 전광판이 빠르게 화면을 바꿔가며 뉴스와 광고를 내보냈다. 택시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 동안 요셉은 오늘의 날짜와 시각, 현재기온이 번갈아 표시되는 전광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이 모든 화려한 가짜 세상의 외침에 대해 새삼스럽게 고립감이 느껴졌다. 그러는 한편 한때의 들끓었던 욕망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 또한 엄연히 저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사람에게 운명의 함정이 통하는 것은 모두가 안전한 방향으로 사고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전하다는 것은 상투성과도 통한다. 그러므로 ‘속임수에 빠지지 않는 길은 상징적 질서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 즉 정신병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라는 정언이 성립된다. 미치지 않고는 패턴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패턴대로 행동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거짓 세계의 위력이다. 그 세계를 움직이는 연료는 욕망이고 그것은 연소되면서 또다른 욕망을 불붙이는 식으로 증식을 계속하며 패턴의 흥행에 기여한다.

그 욕망의 중심에는 류가 있었다. 어디에선가 오랜 시간을 다해 오고 있는 사랑하는 여인의 이미지라서가 아니었다. 요셉은 낭만적인 시인들이 우리 삶 어딘가에 있다고 노래하는 미완의 위대한 사랑 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그것은 거짓 위안일 뿐이다. 하지만 거짓된 세상에서 거짓 위안을 거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한시적인 평화와 사랑에 몸을 던지는 것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기만에 도취하는 게 아니다. 요셉은 류에게 할 말이 남아 있었다. 10년 전 그때 새벽 거리에 몸속의 모든 것을 게워놓고 그 옆에 쓰러진 채, 무엇이 달려와 뭉개버리든 지금보다 비참하진 않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요셉은 중얼거렸다. 류, 왜 떠났어. 왜 그렇게 내게 차가운 거야. 류가 뭐라고 대답하든 상관없었다. 이유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하고 싶었고, 대답하는 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요셉의 대답은 준비돼 있었다.

요셉은 택시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행운이 다한 자신에게 악의가 더 심술을 부리기 전에 그만 그날분의 비관을 마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실패한 모험을 마치고 자신이 믿지 않는 것들 속으로 천연덕스럽게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정해진 일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안전했다. 요셉이 다시 신도시로 가달라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일단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룸미러를 통해 요셉을 향해 사나운 시선을 내쏘는 것이 금방이라도 욕을 퍼부을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자가용을 타라든가 저녁도 굶었는데 그런 장거리를 어떻게 가느냐라든가 처음부터 신도시라고 했으면 태우지도 않았을 거라는 등의 뻔한 말을 듣게 될 게 뻔했으므로 요셉은 얼른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할증요금을 내겠다고 사정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택시 안의 분위기가 안정을 되찾은 걸 보고 다시 시트에 등을 기댔다. 눈을 감은 채 요셉은 중얼거렸다. 알고 있는지, 류. 나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내가 거짓된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8. 생일

 

요셉은 신도시의 상가 앞에서 택시를 내렸다. 오피스텔에 들어가기 전에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다. 출출하긴 했지만 뭔가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3월 마지막 밤의 대기는 약간 싸늘했다. 까페의 야외테이블에 앉아 요셉은 그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한무리의 노랑머리 젊은이들이 욕설을 섞어 떠들며 지나갔다. 도로변에 경찰차가 한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서는 서로 삿대질을 하는 취한 남녀를 형광조끼를 입은 경찰 둘이 떼어 말리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는 여성전용 술집의 오픈행사로 얼굴에 가면을 쓴 남자들이 근육질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전단지를 돌렸다. 골목 안으로 길게 뻗은 술집마다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연기를 피우며 고기를 굽는 중이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은 뒹구는 쓰레기와 토사물을 피해가며 발을 내디뎠다. 어젯밤 이채와 함께 택시를 탔던 정류소에는 빈 택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택시기사들은 차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요란한 차림으로 지나가는 여자들의 허벅지를 흘끔거렸다. 그 풍경을 보며 집에 돌아온 편안한 마음으로 요셉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요셉의 오피스텔 방향에서 한 여자가 택시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타박타박 걷는 통통한 몸매가 영락없는 도경이었다. 요셉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탁자 위의 전화기를 들어 도경의 단축키를 눌러보았다. 도경이 걸음을 멈추었다. 핸드백 안에서 휴대폰을 찾아들고 전화를 받던 도경은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마침내 요셉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른 손에 상자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까지 함께 흔드는 걸로 보아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다. 선생님. 만날 줄 몰랐는데, 진짜 잘됐다. 급한 걸음으로 요셉에게 다가온 도경의 두 뺨에 홍조가 떠올랐다. 손에 들었던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요셉의 앞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으며 도경은 활짝 웃었다. 웬일이야. 또 누가 죽었나? 요셉이 무뚝뚝하게 말을 던졌다. 누구요? 누가 죽었어요? 도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에 그 꼬르동 블뤼 요리사 말야. 신도시로 문상 왔었다고 하지 않았어? 선생님, 진짜로 기억력 좋다. 난 다 까먹었는데. 그럼 겨우 그저께 들은 말인데 벌써 잊어버려? 자신의 말투가 점점 힐난조가 되어가는 걸 느끼고 요셉은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튼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도경은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배달시켰는데, 경비실에서 안 받아주더래요. 냉장보관하는 건 책임 못 진다면서. 참 내, 요새 생크림 아닌 케이크가 어딨다고, 그리고 택시 타면 금방인데 강남이 뭐가 멀다고 제과점에 도로 못 돌려준다는 거야. 그래서? 요셉은 그제야 상자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택배 아저씨가 하도 전화로 화를 내길래 그냥 내가 받으러 와버렸어. 참 시간도 많다. 요셉의 대답은 짧았다. 더 독하게 이죽거리고 싶었지만 날씨도 쌀쌀하고 피곤해서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 시간 많잖아요. 돈도 많고. 선생님, 또 뭐라고 하셨더라? 웃음도 많고? 웃음은 헤프다고 했지. 그게 다른 뜻이에요? 암튼 잘됐어.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고 나 오늘 운좋네? 내 생일도 아닌데. 잘됐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도경은 요셉에게 생일 케이크를 먹어보라고 권했다. 술이나 한잔 사라는 요셉의 말에 도경이 요셉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어머, 생일이라 양복도 입으셨구나. 새옷인가봐. 생일 때문이 아니고, 10년 전 애인 만나려고 입은 거야. 진짜요? 만나셨어요? 아, 맞다. 뜻밖에도 도경의 입에서 류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맞죠? 전에 S시로 함께 여행갔다가 배신하고 가버렸던 그 나쁜년 말예요. 요셉은 도경에게 류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도경이 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뜻밖이었다. 놀랄 줄 알았다는 듯 도경이 덧붙였다. 그렇게 이상한 이름을 어떻게 잊어버려요. 실은 그 감독이 말했을 때 기억이 난 거예요. 이상한 이름이라 귀에 딱 들어오던데? 별걸 다 기억하는군. 그저께 들었는데 벌써 잊었겠어요? 도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며칠 전 이안과 함께 갔던 그 일식집이었다. 사께 한병을 다 마셔갈 때쯤 휴대폰이 울렸다. 며칠 사이 전화가 걸려왔다 하면 액정에 이안의 이름밖에 뜨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요셉은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선생님, 아깐 화가 좀 나신 것 같아서. 어쨌든 죄송해요. 그래도 모레 회식에는 꼭 오시는 거죠? 스태프들하고 재단에서 선생님 오신다고 다들 흥분상태예요. 안 오시면 안돼요. 영화 제목이 뭐라고 했지? 취한 목소리로 요셉이 물었다. 위기의 작가들이요. 알았어, 제목이 마음에 들어. 스태프들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이안이 급히 덧붙였다. 안녕하세요? 맞은편 자리의 도경이 요셉의 전화기 쪽으로 몸을 굽히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짧은 침묵 뒤에 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레학원, 그분이에요? 안부 전해주세요. 도경이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선생님 생일이에요.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전화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은 요셉은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선생님, 정말로 영화에 나가실 거예요? 응. 진짜요? 왜 마음 바뀌셨어요? 위기의 작가라잖아. 위기가 뭔지 좀 보여줘보지. 그게 뭐 어렵다고. 진짜로 영화배우 하시는 거예요? 영화는 안해. 위기만 보여준다니까. 어렵다. 술 마시러 가는 건데 뭐가 어려워. 같이 갈까? 감독하고도 아는 사이잖아. 그럼 저도 영화 출연해요? 그러지 뭐. 싫어요. 도경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작가들한테는 글 잘 쓰는 법 가르쳐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독한테 배우로 써달라고 하는 것은 같이 자겠다는 뜻이라는 거였다. 자면 되잖아. 안 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쓸데없이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거라구. 안 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두 종류야. 자기는 많이 안 자봤기 때문에 남이 많이 자면 억울한 생각이 드는 사람, 그리고 남들을 못 자게 해놓고 그 틈을 이용해서 자기만 더 많이 자고 싶은 사람. 사실 남녀관계에서는 빨리 자버려야 쓸데없는 잡념에서 벗어나 진지한 사랑에 몰두할 수 있지. 수험생들도 잡념을 떨치려면 야동을 많이 봐야 해. 그리고 이게 중요한 건데, 자기에게 오는 일을 피하려고만 하면 안돼. 언제나처럼 요셉은 인용문을 떠올리기 위해 손에 쥔 술잔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 누구나 자신의 나쁜 운명을 알게 되면 피하려고 하지. 그런데 예정된 운명이 실현되는 것은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서야. 이제 알겠어?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도경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위기가 뭔지 보여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알 리가 없지. 요셉이 도경의 잔을 채웠다.

선생님, 저 돈 많잖아요. 이번에는 도경이 요셉의 잔에 술을 따랐다. 왜 많은 줄 아세요? 남편이 주겠지. 맞아요. 회사일이 너무 바쁘니까 같이 못 놀아준다고 대신 돈이나 쓰래요. 집에 못 들어온 날은 더 줘요. 애가 안 생기는 것도 자기가 바빠서 그런 거라고 미안하다면서. 근데 난 그게 더 좋아요. 자는 것보다 돈으로 받는 게? 그게 아니구요. 스는 귀찮은데 돈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좋다는 거예요. 손목시계를 본 뒤 도경이 말했다. 어머, 선생님 생일 이제 30분밖에 안 남았어요. 불현듯 요셉은 48년 전 오늘, 온몸이 오물로 범벅이 된 채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발버둥쳤을 벌거벗은 자신을 상상했다. 그날 아버지가 무얼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한 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들을 낳고 있었다. 도경이 한손으로 장난스럽게 케이크상자를 건드렸다. 케이크에 불 켜고 소원 비세요. 내 소원은 아무도 안 들어줘. 왜요? 그동안 소원 들어달라고 귀찮게 한 신이 하도 많아서 사이가 안 좋아. 그럼 제가 들어드릴게요. 도경이 무심히 다시 한번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 모습은 도경이 시계를 차고 스한다는 사실을 떠오르게 했다. 아버지가 48년 전 오늘 뭘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로부터 열달 전에는 스를 하고 있었다. 요셉은 생일이라는 게 비로소 실감났다.

 

 

9. 상실의 세계: 류의 이야기

 

어머니의 결혼식은 새 남편이 사는 바닷가 도시에서 치러졌다. 금색으로 빛나는 다리와 빅토리아식 건물들이 모인 가파른 언덕으로 유명한 그 도시에 류는 세번쯤 간 기억이 있다. 어릴 때 가족여행을 갔었고 하이스쿨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자동차여행을 했다. 어머니의 휴가에 동행했던 게 마지막이다. 그때 류는 다른 도시의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어머니와는 몇달 만에 만났지만 그다지 달라 보이는 점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는 재혼할 남자가 공항에 마중나와 있을 거라고 말했다. 결혼식은 다섯달 뒤로 예정돼 있었다. 대학에서 테뉴어(tenure, 종신재직권)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할 때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래서인지 인생을 바꾼 게 아니라 인증을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시험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류는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 잘생기고 친절하고 고리타분해 보였던 어머니의 새 남편이 아주 오래전 대학생이던 어머니가 학교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었던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류와 어머니를 바닷가의 낭만적인 레스또랑으로 데려갔다. 고급 기성복 매장에서 마주칠 법한 무난하고 상식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오랜 이민생활 덕분인지 낯선 사람이나 상황을 대하는 태도에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류와 어머니와 그 남자, 이 셋은 오랜 세월을 사랑 속에 살아온 가족으로 오해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가재 요리를 먹었다. 여행 가이드를 자처했지만 가이드보다는 후견인에 가까운 자상한 태도로 그는 류와 어머니의 접시를 가져다가 가재의 속살을 발라주었다. 그 남자에게서 류는 어머니의 첫사랑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 남자는 지금과 다른 어떤 모습으로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류는 어머니에게 관심을 갖는 남자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그러나 류의 머릿속에 어머니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미지로 어울리는 것은 아버지 한사람뿐이었다. 젊은 날 아버지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전화부스 밖에서 보고 곧바로 몽유병이나 맹목과도 같은 매혹에 사로잡혔었다. 17년간 고독과 고통을 나눠가지며 결혼을 지속한 것이 일종의 선택이었듯이 새삼스레 이혼을 결정한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에게 뭔가 다른 선택이었을 거라고 류는 생각했다. 어머니의 재혼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남자가 이민사회에 떠도는 소식을 추적해서 어머니를 대학으로 찾아온 것은 오래전이었다.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몇번인가 더 다녀갔다는 건 류도 아는 일이었다. 류는 어머니의 결혼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어머니가 왜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는 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로서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어릴 때 류는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 아버지에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류를 사랑하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친아버지는 아닐 수도 있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아버지가 류를 목욕시켜주는 일이 있었다. 어머니의 공부가 밀렸거나 파트타임 일을 하러 나가 있을 때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비누칠을 꼼꼼하게 하거나 샴푸를 깨끗이 헹궈내는 데는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류의 발가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간지럼을 태웠고 머리를 말릴 때는 수건과 함께 휘파람의 바람을 사용했다. 목욕을 마친 뒤에는 손님 초대 파티 때나 쓰는 비싼 와인잔 두개를 가져와 하나에는 차가운 맥주를 다른 하나에는 류가 마실 우유를 따랐다. 류는 아버지와 잔을 마주칠 때 나는 맑은 소리가 좋았다. 어머니라면 언제나처럼 바구니 속에 고양이 세마리가 잠들어 있는 그림이 그려진 어린이용 멜라민 컵을 꺼냈을 것이다. 류의 어머니는 집안일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가족이 각자 자기 소유의 물건을 구분해서 가졌고 개인 공간의 프라이버시도 지키도록 했다. 어머니는 늘 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먼저 살폈지만 아버지는 류가 무엇을 좋아할지 알아내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류를 목욕시키다가도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수건을 던져주고 서둘러 외출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베이비씨터를 보내야 했을 때도 아버지는 시간을 어기기 일쑤였다. 베이비씨터의 독촉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온 어머니는 화가 나 있었지만 그러나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류, 아빠에게는 더 급한 일들이 있는 것뿐이야. 어머니는 류가 불행이나 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썼지만 그것은 그다지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뿐 아니라 류와의 약속도 자주 어겼다. 프리스쿨 학예회 때는 카드게임이 끝나지 않아서였고, 교외학습에 참가한 류를 태우러 가기로 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낚시를 떠나기도 했다. 류와 함께 방을 정리하다 말고 모자란 박스와 류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서 다음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우연히 친구를 만나 폭음했고 그의 집에서 정신을 잃었다는 거였다. 류가 보기에 아버지는 다른 친아버지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한때 류는 친아버지를 찾아내기 위해 집안에 드나드는 남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게 생각되는 사람은 몇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 그 누구라도 아버지의 자리에 갖다놓으면 어색해져버리는 거였다. 그곳은 오직 아버지 한사람의 자리였다. 류의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과 달랐지만 그렇다고 그 점이 아버지로서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린 류로서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친아버지 같지 않았던 게 아니라 단지 일반적인 아버지 같지 않았던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먼 훗날에야 머리에 떠올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류는 한국에서 외국문화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 많은 경우 한국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의 빈소를 혼자 빠져나온 류는 병원 뒷마당의 커다란 미루나무 아래 나무벤치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초여름이라서 바람이 조용히 불어왔고 나무덤불과 풀밭 위로 어둑어둑 땅거미가 드리워지는 시각이었다.

오래된 그 병원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담장 밖으로 8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시내 중심가였지만 뒷마당은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조용했다. 유난히 큰 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창마다 불을 밝힌 병동 건물들이 아니라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고즈넉한 장소 같았다. 멀리서 차소리가 들려왔고 바람이 나뭇가지에 물살을 일으킬 때마다 마당의 그림자가 부드럽게 출렁였다. 그리고 시간의 그림자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류가 아까부터 바라보던 것은 건너편 나무 아래의 늙은 부부였다. 할머니 혼자 환자복 차림인 걸로 봐서 할아버지가 병든 아내를 면회온 모양이었다. 두사람은 손을 잡고 느린 걸음으로 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다. 마치 저녁을 먹고 공원으로 산책이라도 나온 듯 다정하고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평화와 따뜻함과 안전함의 온기가 느껴졌다. 함께한 시간의 위엄도 있었다. 노인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저편으로는 병원의 굴뚝이 보였다. 거기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날의 영원한 작별을 앞두었을 노인들의 저녁산책 뒤로 그것은 불길하고 암울한 배경을 이루었다. 어느 병원에나 있는 그 시멘트 원통은 실제와는 관계없이 죽은 이의 몸이 연소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류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불길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굴뚝을 배경으로 저녁산책을 하는 노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인들의 스러져가는 평화가 곧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거라는 사실이 류의 눈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허무 때문이 아니었다. 류는 사라지는 것들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갖지 못한 평화 때문에 우는 것도 아니었다.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었듯 모든 점에서 일반적이지 않았던 한사람의 일생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욱 아니었다. 어머니가 적국에 부역하는 포로처럼 이데올로기의 딜레마 속에 살았다면 아버지는 남의 나라에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곳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며 그것을 상실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상실의 세계였던 것이다. 류의 오열은 그 세계의 한사람으로서의 깊은 애도였다. 아버지가 듣던 오페라 속에서 누군가가 노래하고 있었다. 이제 그 이름을 알겠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오. 아버지는 왜 류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그리고, 사랑은 누구의 이름이었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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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모래밭에 던져진 당신의 반지가 태양 아래 C, 노래하듯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