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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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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조동관 약전』 『호랑이를 봤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참말로 좋은 날』 『지금 행복해』,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 『도망자 이치도』 『인간의 힘』 등이 있음. songsokze@gmail.com

 

 

 

홀린 영혼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나는 난생처음으로 부반장이 되었다. 이전까지 반장, 부반장은커녕 학급 간부 역할도 해보지 못한 내가 반 아이들의 비밀투표로 선출되는 부반장이 된 데는 담임선생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투표를 하기 전 부반장 후보로 직접 나를 추천하고 노골적으로 내게 투표할 것을 종용했다. 담임이 나를 눈여겨본 이유는 그가 내 아버지의 술친구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4년 동안 반장을 지냈고 5학년이 되어서도 어렵지 않게 반장이 된 정영호는 담임의 비호를 받는 부반장을 대놓고 견제했다. 반장이 있는 한 부반장은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눈치를 보며 지내던 어느날, 종례가 끝나고 반장의 구령에 따라 인사를 마친 뒤에 담임이 “오세호, 이리 나와!” 하고 나를 불렀다. 그는 교탁 속에서 하얀 면보자기로 싼 도시락을 꺼내 내게 주면서 “이거 우리집에 갖다줘라” 하고 말했다. 그게 그가 담임을 맡은 반의 부반장이 할 일인 듯싶었다. 영호는 담임 모르게 내게 한껏 눈을 부라렸다. 나는 담임의 도시락을 책가방에 집어넣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담임은 자전거를 타고 교문을 나서고 있었는데 다른 교사들 두엇도 함께였다. 내 아버지의 단골 술집인 기차역 앞 식당에 가서 술을 마실 게 분명했다.

실상 나는 담임의 집이 정확히 어딘지 몰랐다. 학교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읍내 북쪽, 새로 지은 집이 많은 신흥주택가에 살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는 읍내에서 4킬로미터쯤 떨어진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고 신흥주택가는 물론 기와집이 흔하고 오일장이 열리는 가축시장 거리, 상설시장이 있는 중앙시장 거리도 가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과 학교 사이의 길을 익힌 뒤 4년 내내 그 길만 왔다 갔다 한 셈이었다.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는 읍내 중심부에 있는 극장에 갔다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주머니까지 털리고 온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너무도 실감이 나서 내가 코피로 얼굴을 온통 붉게 칠갑한 채 울면서 저녁 어스름에 돌아오기라도 하는 양 서럽고 가슴이 조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그 무서운 읍내에 되도록 가지 말고, 가야 한다면 세명 이상 무리를 지어 갈 것이며, 읍내에서 우리 마을 근처로 놀러오는 아이들이 있다면 반드시 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읍내에 사는 아이들은 우리 동네 근처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향교마을을 지나 읍내 중심부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중앙시장이 있는 거리로 접어들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읍내 중심부에는 시장 상인들이 설립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물론 중앙시장 거리는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다른 학교 아이들이 통과하는 것을 그냥 보아넘기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바칠 돈이나 물품이 없다면 성의가 없다는 이유로 두들겨맞는 것은 물론이고 들어온 입구까지 발길에 채여 땅바닥을 굴러나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걸어서 시장을 통과하려 했으나 곧바로 사나운 파수견 같은 아이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그들은 이를 드러내고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 달아났다. 다행스럽게도 읍내 아이들은 오래도록 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네 영역 밖으로 내가 물러난 것을 확인한 뒤에 저희끼리 만족스러운 웃음을 주고받으며 돌아가버렸다. 나는 가방을 들고 뛰었으면서도 빈손으로 따라온 그들을 따돌렸다는 데 자긍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무사히 빠져나올 자신이 없었다. 결국 중앙과 동쪽, 서쪽에 있는 다른 학교 아이들이 있을 법한 모든 장소를 우회해 읍내 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걸어서 가야 했다.

초봄이어서 바람이 찼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서 손으로 비벼 닦아내느라 한참을 지체했고 이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걸음이 늦춰졌다. 담임이 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신흥주택가에 도착한 때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농촌과 읍내 신흥주택가 골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골목은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담으로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었고 크든 작든 집집마다 대문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 닫혀 있는 그 문을 두드려 담임의 집이 어디인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대신 저녁을 짓는지 밥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청국장찌개 냄새에 목이 메어왔다. 도시락 심부름만 아니었다면 나는 식구들과 따뜻한 방에 둘러앉아 저녁밥상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었다. 도시락 심부름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한사코 부반장을 마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찌할 줄 모르고 바람 부는 골목에 서 있을 때 자전거를 탄 내 또래의 아이가 나타나 찌릉, 하고 종을 울렸다.

“야, 너 낙남 다니는 놈 아니야? 여기까지 뭐하러 왔냐?”

읍내 아이에게 제대로 걸렸다 싶었다. 도망갈까 생각해봤지만 자전거를 타고 있는 상대라면 몇걸음 가지도 못해 잡힐 게 뻔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도 다리가 땅에 닿을 만큼 키가 컸다. 얼굴은 희었고 상고머리를 했으며 목에 갈색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자전거는 아동용이 아닌 어른들이 타는 날렵한 형태의 새것이면서 세련돼 보였다. 자전거가 아니라도 그 아이는 왕자처럼 귀티가 났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내가 더 거지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인상이 낯익었다.

“대답해봐, 이 자식아. 낙남 다니는 놈이 여기까지 왜 왔냐고?”

그러고 보니 아이의 높고 갈라지는 목소리 또한 왠지 들어본 것처럼 느껴졌다. 곧 4천명쯤 되는 낙남의 일원일 수 있었다. 내가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는 동안 가능성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너, 귀머거리야 벙어리야?”

아이는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제 귀와 입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게 왜 웃을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낙남 다닌다.”

아이가 말길을 터주고서야 나는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몇학년인데?”

5학년.”

“나도 5학년인데. 여기 살아?”

“그래. 이 동네로 이사온 지 몇달 됐다. 그게 아니라도 나는 원래 매일 읍내를 한바퀴 돈다.”

나는 봄날의 샘물처럼 희망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그런 나의 변화를 눈치챈 듯 내게 몸을 기울였다. 귀가 발갛고 이뻤다.

“나 도시락 심부름 때문에 담임 집 찾고 있는데 어딘지 몰라. 네가 좀 찾아줄래? 담임 이름이 안병수야.”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읍내에 사는 아이에게 뭔가를 부탁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치를 수 없는 어떤 대가를 요구할까봐 긴장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따라와” 하더니 앞장섰다. 아이가 자전거를 천천히 몰긴 했어도 따라가려면 노예처럼 뛰어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 담임의 빈 도시락이 덜거덕덜거덕 소리를 냈다. 내 도시락은 수저를 도시락과 따로 담아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기다.”

아이가 나를 데려다준 곳은 깔끔한 단층주택이었다. 마당 한구석에 양은대야를 얹어서 쓰는 세면대와 수동펌프가 있었다. 아이가 스스럼없이 대문을 밀고 들어가 현관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며 라디오 소리가 새어나왔다. 흰 형광등 불빛 아래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식구들이 보였다. 포마이카 상에 차려진 저녁을 보자 설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집이 아닌데. 안선생은 다음 골목에 살지.”

마른 몸에 흰 얼굴을 한 중년남자가 말했다. 그는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의 교사였다.

“그런데 너는 김사장 아들 아니냐? 요 앞 삼거리 이층집에 이사온?”

남자의 관심은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희 집 건평이 이백평이나 된다는데 정말이야?”

나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어서 당황했고 또한 거기에 계속 있을 이유도 없어서 황급히 그 집에서 물러나왔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몇마디의 대화가 더 오고간 뒤 아이가 따라나와서 나를 보고는 소리쳤다.

“야, 너 운 거냐?”

아이는 내게서 가방을 받아서 자전거 손잡이에 걸었다. 놀리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걸었다.

담임의 집에도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담임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고 옷까지 갈아입고 밥상머리에 앉은 참이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불콰한 그는 나를 보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어? 집이 어딘지 몰랐다고? 그럼 처음부터 물어보지 그랬냐? 너 알고 보니 정말 밥통 같은 놈이구나.”

나는 담임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냥 도시락을 안주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손에 건네주고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야, 니네 담임 정말 나쁜 인간이다. 어떻게 들어와서 앉으라는 이야기도 안하냐?”

아이는 나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 담임을 비난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손을 내밀고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우리 학교 가서 또 만나거든 친하게 지내고 오늘은 인사나 하자.”

이주선은 그때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너 그때 왜 거기에 있었던 거야? 정말 재미로 읍내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나를 만났던 거라고?”

중학교 때 한반이 되었을 때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내가 하루라도 신경을 안 쓰면 읍내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하느라 한 몸뿐인 본인이 대단히 힘들다”라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왕자처럼 보였다고 하자 그는 옛날 중국 황제의 피가 자신의 몸속에도 흐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귀한 혈통 때문에 달라 보인 게 아니라 남다른 아버지 때문에 우리와 구별되었다. 그의 아버지 이상조는 읍내에서 가장 부자였고 가장 비싸고 넓고 호화로운 집에 살았는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가난한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소문의 당사자였다. 내가 신흥주택가에 처음 가기 한두해 전쯤 그의 아버지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개발하다 버리고 떠난 금광의 광권을 헐값으로 인수했다. 소문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총알에 금가루를 넣은 산탄총을 들고 광맥이 끊어진 동굴 안에 들어가 총을 쏴댔고, 대도시의 대학교수와 탐사단을 초빙해서 그 금광이 보기 힘든 규모와 순도의 금맥을 품고 있다는 증명서를 받아냈다. 어쨌든 일제 때 잃어버렸던 엄청난 금맥이 재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지방신문에 실리자 투자자들이 몰려왔다. 그의 아버지는 제발 금광을 넘겨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에게 큰돈을 받고 금광을 팔았고 읍내 신흥주택가에서 가장 비싸고 넓고 호화로운 집을 사들였다. 읍내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의 운과 남들의 불운이 교차했을 뿐이라는 말도 돌았다.

중학교에서도 주선은 초등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테두리의 제일 바깥에서 딴짓을 하며 겉돌았다. 향교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중학교에는 오래도록 유지 노릇을 하며 살아온 집안의 자식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주선을 사기꾼의 아들, 또는 뿌리 없는 천민의 후예로 멸시했다. 하지만 각자 흩어져 있으면 읍내에서 가장 비싸고 호화롭고 넓은 주선의 집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망을 드러냈다. 주선은 여전히 읍내 순찰을 계속했고 족보나 따지는 등 중학생답지 않은 딴짓으로 어른의 눈으로 보면 별게 아니지만 별게 아니어서 더 저열하고 치열한 중학생끼리의 서열경쟁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었다. 그는 내게 그랬듯 자신의 조상이 지었다는 한시를 읊고 그 조상이 사귀었던 친구의 호와 이름을 주워섬기는 식의, 다른 아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건 나름대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주목받지 않고 싶지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자신이 무해하고 공격적이지 않다는 의미로 실속없는 공상을 담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내내 학교에서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녀석은 읍내 술도가의 외아들 최상규였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재산이라는 배경과 큰 덩치, 큰 주먹, 지도력에 추종자까지 없는 게 없었다. 상규는 주선을 자신의 참모로 삼았다. 졸부나 사기꾼의 아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주선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단 한번도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주선이 중학교 때 다른 아이들보다 나를 특별히 대접한 이유는 내가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유일한 사람이어서라고 했다. 나는 주선에게서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가족을 따라 서울로 가게 되었다. 주선은 지역에서 백킬로미터쯤 떨어진 도청 소재지의 상업고등학교로 갔고 학교 인근에서 하숙을 했다.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됨으로써, 또한 서로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됨으로써 나는 주선이 중학교 때 내게 베풀었던 호의를 실감하게 되었다. 헤어진 지 반년 만인 1학년 여름방학 때 열린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나는 주선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중학교 때 나한테 그렇게 잘해준 이유가 뭐야? 나 같은 애는 우리 동기 중에도 천명이 넘었는데.”

그때 그는 키가 나보다 5쎈티미터쯤 더 컸다. 마른 몸에 얼굴이 희었으며 이목구비가 균형이 잡히고 잘생겨서 여학생들이 좋아할 만했다. 붉고 부드러운 그의 입술과 입술 속 흰 이 사이로 드나들던 날렵한 혀의 움직임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친구니까.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다.”

나 역시 가족을 제외하고 내 눈물을 봐버린 사람은 주선이 처음이었다. 남들에게 들키면 곤란한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에게 남다른 친연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그가 차라리 보이지 않는 곳에 혼자 멀리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그는 외모만큼이나 화려한 화술로 언제나 인기를 끌었고 자신을 좋아하는 그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언제 어떤 자리든 이야기로 좌중을 휘어잡곤 했다. 그건 영호나 상규처럼 한때 그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던 존재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든 그의 입에 오르면 하나의 사실로 정돈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못 만나게 된 지 벌써 사년이나 되었다. 우리가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어린시절의 추억만 끌어안고 우리 앞에 길게 놓인 사춘기를 각자 고독하게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다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약속하자. 이 자리에서 또다시 만나자고. 그동안 우리 서로를 늘 생각하고 그리워하자고. 약속을 지키는 우리, 이제 영원히 외롭지 않다.”

방학중인 초등학교 교실 한칸을 빌려 개최한 동창회에서 그가 한 연설에 많은 아이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동창회 이후 그의 이름은 동기회장 영호나 가장 예쁜 여학생보다도 자주 언급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상해버리는 생선처럼 그가 한 말이 변질되어 그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데 쓰이는 것이었다.

“그 새끼, 여학생들하고 기차 타고 놀러 가는 거 봤어. 동기니 약속이니 뭐니 떠들어댄 건 저만 멋있게 보이려고 그런 거야.”

“동기회 할 때 저는 돈 한푼 안 내고 회비 걷어서 남은 돈은 하숙비 냈다고 자랑하더란다.”

나는 다음 동창회에 나가는 것을 단념한 대신 주선에게 그가 받고 있는 오해에 대해 동창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가 내게 베푼 호의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주선은 곧 답장을 보내왔다. 그 모든 것은 질투에 눈이 먼 몇몇의 일방적인 중상모략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 데는 빌미를 준 자신의 책임도 있다,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준 내가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두번째 동창회가 끝나자 또다른 악의적인 소문과 그의 편지가 비슷하게 당도했다. 편지에서 그는 동창회에서 세세한 해명을 함으로써 모든 오해가 풀렸다고 했으나 소문은 새로운 추문을 담고 있었다.

“그 새끼 자취방에 드나드는 여학생이 몇인 줄 아냐? 동창회에서 걔들끼리 마주쳐서 머리끄덩이까지 잡고 싸웠다더라.”

그에게는 언제나 노가리꾼, 뻥쟁이, 거짓말쟁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그에게 호의를 가졌지만 절반은 적이 되었다. 악의는 전염력이 강했다.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 가운데 절반이 다시 적이 되고 절반의 절반이 또 적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가 뼛속까지 거짓말로 차 있는 이기주의자라는 험담을 믿을 수 없었다. 주선은 그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기왕 이야기를 할 바에는 남들의 이목을 끌 만하게 가공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주고받는 편지가 우리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형성했다. 편지는 소문이나 말이 아닌 문장으로 정돈되어 있어서 과격함과 선정성을 누그러뜨리고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문장으로 표현되면서 그의 이야기에는 허점이 이따금 드러났다. 그는 당시 모든 청소년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꿈의 무대인 음악전문 다방 DJ박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고등학생 신분을 숨기기 위해 대학생인 사촌형의 신분증과 가발을 쓴다고 했다. 그의 사촌형이 가발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경로를 통해 얻은 정보로는 그의 사촌형은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가발을 쓴 김에 그는 다방 인근의 폭력조직에 몸을 담게 되었다고도 했다. 물론 직업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전문적인 집단에서는 고등학생은 받지 않는 게 상례였다. 그는 워낙 싸움실력이 뛰어난데다 이미 주변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DJ여서 상례를 깨뜨리고 특별히 조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서울에서의 화려한 연애담과 모험담을 편지마다 늘어놓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에 그가 쓴 편지가 도착했다. “지상과 현세, 우주에서 유일한 나의 친구여, 놀라지 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상고에 다니던 그는 일반전형보다 점수가 낮아도 되는 동일계전형을 통해 경제나 경영 관련 학과로 진학하려는 참이었는데 대입 학력고사의 마지막 과목인 수학시험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0점을 받았다. 평소에 수학을 좋아한다 했었고 수학이 득점과목이었으며, 수학을 좋아하고 득점과목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서울의 국공립대학 중에서도 가장 합격점수가 높은 학과에 진학하게 되어 있었다.

학력고사 시험장에 들어온 시험감독관은 물론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시험장 맨 뒤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은 그가 문제를 다 풀고 답을 옮기는 중에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는 별 생각 없이 뒷자리에서 넘어온 답안지와 문제지를 건네받은 채 답안지에 답을 제대로 옮겼는지 대조하고 있다가 감독관으로부터 뒷사람의 답안지를 베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즉각 엄중하게 항의했다.

“저를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평생 한번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삼년 내내 수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감독관은 그의 답안지에 붉은 유성펜으로 사선을 두줄 그어버렸다.

“내가 컨닝했다고 하면 너는 컨닝한 거다. 억울하면 네가 감독해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쩌면 운명이 내 인생에 올바른 길을 제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눈을 제대로 뜨고 어떤 그늘지고 좁은 흙길을 보고 있다. 길 중간에 머리를 들고 있는 호랑이가 보인다. 너와 내가 가는 길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곧 만날 것이다. 건재하기를. 사랑한다. 현세와 우주, 지상에서 단 하나뿐인 너의 영원한 벗, 주선.”

나는 서울의 평범한 대학에 특차전형으로 합격한 뒤 고향으로 내려갔다. 읍내 거리에는 대학에 가게 된 아이, 대학과는 상관없는 아이, 재수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놀고 있는 아이, 이도저도 아닌 아이들이 뒤섞여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놀이판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장관은 주선이 읍내 중심부의 다방에 마련한 DJ박스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망치고 고향에 돌아온 주선은 곧바로 시내 중심부에 있는 호수다방으로 갔다. 그곳은 흔히 ‘노털다방’으로 일컬어지는, 우리의 아버지 또래 비슷한 나이든 남자들이 단골고객인 가게로 젊은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주선은 대도시 초일류다방의 DJ 출신다운 화려한 언변을 발휘해 다방 여주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호수다방을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선 다방의 인테리어를 젊은이 취향과 대도시의 최신유행에 맞게 바꾸었다. 꼭 필요한 팝송, 샹쏭, 경음악, 가요, 깐쪼네 음반들을 자신이 일하던 대도시의 다방에서 사들이고 레코드 플레이어와 앰프 같은 음향시설을 마련했다.

다방 전면에 유리로 만들어진 DJ박스가 있고 그 안의 선반에는 수천장의 음반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물에 적신 흰 수건으로 닦은 음반을 플레이어에 얹는 DJ가 주선이었다. 흰 피부와 갈색 곱슬머리, 훤칠한 키에 잘생긴 그는 왕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귀공자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주선이 수십통의 편지에서 줄기차게 언급한 초일류다방 고교생 DJ 따위의 이야기에 일말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가 과연 DJ로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줄지 궁금해하며 구석자리에서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그는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았다.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가 음악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흘러나왔다. 그의 손은 음반이 꽂힌 선반과 플레이어, 앰프의 다이얼, 신청곡 쪽지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왕래했다. 분홍빛 조명 속에서 흰 셔츠에 붉은 넥타이 차림인 그는 내가 봐도 반할 만했다. 그가 쪽지를 들고 사연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 탁자에선가 나지막한 신음과 환호가 들려왔고 주스 같은 뇌물, 또는 손수건과 꽃 같은 선물이 연신 배달되었다. 어느순간 그는 손을 들어서 내게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DJ박스 앞으로 멈칫거리며 다가가자 노란 아기오줌 같은 빛깔의 탄산음료가 든 잔을 건네주었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한손으로 마이크를 막은 채 그는 말했다. 오로지 내게만.

“야, 상규가 그러는데 우리 동기 가운데 너 혼자 서울에서 특차 합격했대매? 서울서 온 대삘이라면 환장하는 기깔난 여자애들이 줄을 섰으니까 가지 말고 나 끝날 때까지 기다려.”

손님 대부분은 인근의 공장에 다니거나 시골에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대도시 출신의 초일류 DJ를 보러 온 처녀들이었다. 그녀들의 눈과 귀는 오로지 음악박스 안에 있는 주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그를 질투하는 남자아이들이 DJ박스의 음반에 들어 있지 않은, 심야 라디오의 음악전문 프로그램에서나 가끔 나오는 곡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럴 때 그는 일류 DJ들 간에 필사본으로 전해진다는 세권짜리 대학노트에 근거한 설명을 늘어놓음으로써 음악보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데 더 큰 기쁨을 느끼는 여자 손님들을 만족시켰다. 필사본이기 때문에 중간에 누가 잘못 베끼거나 오해한 부분이 있으면 그것도 그대로 전수되게 마련으로 특히 프랑스어 발음에 틀린 게 많았다. 그러나 그 잘못된 발음 때문에 그가 일류 DJ의 계보에 들어 있다는 게 진짜처럼 여겨졌다.

주선이 소개해준 여자, 윤미애는 읍내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고명딸이었으며 그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대도시에 있는 여대에 다니고 있었으나 나이는 우리와 같다고 했다. 주선이 그녀에게 전한 바에 의하면 나는 장차 전세계의 미술계를 이끌어나갈 탁월한 재능을 지닌 예술가였고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져 눕고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집안의 동생 다섯 딸린 장남이었다. 그는 나와 윤미애를 수정다방—마담이 호수다방처럼 만들어달라고 돈을 싸들고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사정했고 그 때문에 비밀리에 DJ박스 설치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한귀퉁이에서 만나게 했고 내 부담으로 쌍화차를 마시고는 마담이 있는 내실로 사라졌다. 자끄 프레베르의 시를 프랑스어로 완벽하게 낭송할 줄 알던 윤미애는 그로부터 내가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열번쯤 만나는 동안 발생한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가난한 예술가가 무슨 돈이 있어요.”

그녀는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내게 존댓말을 썼다. 헤어지는 그날까지.

“우리집, 사실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아. 동생도 둘뿐이고. 내가 미술에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 특차에 합격한 게 아니고 예비고사 성적이 미술 전공하려는 애들보다 훨씬 잘 나와서야. 기껏해야 평범한 정도의 실력이지. 아주 잘돼봐야 내 앞날은 미술교사 정도가 아닐까.”

그녀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주선과 관련되어 내가 만나거나 알게 된 모든 여자가 그랬듯이 주선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알고 보면 그녀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뿐이었다.

한해가 지난 뒤 나는 다시 윤미애를 만났다. 내가 예상한 대로 그녀는 나와 헤어진 뒤 주선과 잤다. 생김새 면에서도 도시 뒷골목의 거지 같은 나보다는 귀공자풍의 주선이 그녀의 취향에 맞았을 것이다. 또한 나의 예상대로 그녀는 주선과의 관계를 지속하려 했지만 주선이 다른 여자들과 스캔들을 일으킴으로써 여름방학이 다 가기 전에 헤어지게 되었다.

“무슨 놈의 여름방학? 재수도 안하는 그 새끼한테는 일년 열두달이 전부 방학일 텐데.”

그녀는 주선이 나와 같은 대학에 다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함께 특차에 합격한 게 아니냐고.

“처음 듣는 이야긴데. 그 자식은 예비고사에서 수학을 망쳤다고 했는데……”

나는 말을 멈추었다. 어차피 헤어진 마당에 서로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문방송학과가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그랬는데요.”

그 말이 내 속을 뒤집어놓았다.

“우리 학교에는 신방과가 없어. 공대하고 인문대, 상경대, 음대, 미대만 있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술학도라서 세상을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자기 학교에 무슨 과가 있는 줄도 몰라요?”

“내 모가지를 걸고 말할 수 있어. 우리 학교에 신방과는 정말 없다고.”

그로부터 이년 뒤 내가 방위근무를 하는 사이에 내가 다니던 대학에 신문방송학과를 포함한 사회과학대학이 생겼다. 내가 알기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던, 혹은 뜻한 바 있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주선은 고향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의 신방과를 다니는 대학생으로 알려져 있다가, 삼수 끝에 상경대에 입학하고는 군에 들어갔다. 나중에 주선을 만나 윤미애와의 사이에 오간 말에 대해 묻자 주선은 그녀가 뭔가 잘못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그 무렵 고시공부를 하러 절에 간 것을 신문사 입사시험 공부를 하러 간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떻게 혼동이 되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미 참과 거짓을 자유자재로 뒤섞고 가공해 거대한 벌집처럼 복잡한 허구의 세계를 거의 완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쓰는 기술에는 시간과 장소의 착종, 오해, 백일몽 같은 게 있었는데 실상 우리 각자의 이해득실과는 상관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이에는 분쟁도 없었다.

주선이 군대에 갈 무렵 그의 아버지는 몰락했다. 윤미애의 아버지에게 집을 판 것으로도 추락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주선이 입대를 하루 앞둔 날, 나는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와 기차역 앞 주택가에 있는 주선의 집에 들렀다. 거기서 러닝셔츠와 짧은 잠옷바지를 입고 방 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던 그의 아버지를 보았다.

“주선이는 요 앞에 막걸리 파는 니나놋집에 갔다. 군대 가는 아들놈한테 친구들하고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용돈도 못 주고. 내가 애비라고 할 수도 없구나.”

멍한 눈을 한 채 앉아 있던 주선의 아버지는 내가 일어서자 벽에 걸려 있던 후줄근한 바지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원짜리를 꺼내 내게 건넸다.

“군인이 휴가 나와서 이쁜 아가씨도 만나고 객고도 풀어야 할 텐데. 이거 가지고 막걸리나 한잔 사먹어라. 우리 주선이 많이 사랑해주고.”

식당에서 만난 주선은 활기차고 명랑했다. 그는 갖가지 연애담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구두와 점퍼가 아버지 것임을 깨닫고 슬그머니 계산대에 만원짜리를 내놓았다.

우리 두사람이 군대에 있는 동안, 고등학교 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얼마간 우정이 담긴 편지가 오갔고 시간 여유가 있는 내가 면회를 다녀오기도 했다. 전방 군사도시의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자는 동안 그는 그 밤 내내 일등병 계급장이 무색하게 장성급이나 갖추었을 법한 정보와 지식, 경험과 의욕을 자랑하며 남북한 국지전의 가능성, 작전의 개념, 전략의 전개방향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 역시 내게는 아무런 이해득실이 없는, 무해무익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아침에 일어나 군화의 끈을 착착, 소리나게 당겨서 매고 난 뒤 그는 내게 이렇게 이별을 고했다.

“야, 똥방위 말년. 이따위 식으로 돈도 여자도 없이 무성의하게 면회올 바에는 다시는 오지 마라. 도대체 몸 바쳐 전방을 지키는 현역을 뭘로 아는 거냐.”

후일 돈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면회를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육군 보병이라는 그의 신분은 위장된 것이고 군 통수권자의 특명으로 창설된 특수기관에서 훈련을 받은 뒤 적지를 무시로 출입했으며 주요 화학무기 생산시설과 미사일기지를 포착, 폭격을 유도함으로써 전쟁을 막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면 내가 20대에 전쟁에 휘말려 죽거나 다치지 않은 것은 그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정말로 그런 일을 했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와 복학을 거쳐 졸업을 하고 나서 나는 백수가 되었다. 남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미술교사 자리가 주어질 리 없었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지 않았으니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많았으므로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결론을 곱씹을 여유 역시 많았다. 그러느라고 바빠 주선과는 다소 소원해졌다. 제대한 후에는 단 한번도 편지를 교환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고시공부를 하러 절에 갔다고 했다. 고시공부를 하러 갔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각각 정보가 달랐다. 사법고시라고 하는 이도 있었고 외무고시, 행정고시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것인 줄 알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이처럼 주선에 대해 우리 각자가 아는 게 달랐다.

주선을 다시 만난 건 서른살이 되어서였다. 운이 좋아 어느 중견기업 홍보실에 디자이너로 취직을 했고 출장을 간 길이었다. 지방공장 가운데 가장 큰 부산공장의 디자인 요소를 점검하는 게 출장의 목적이었다. 공장장의 무성의한 설명을 들은 뒤 전체적인 외관을 보기 위해 트럭을 타고 공장 외곽의 항구를 한바퀴 돌았다. 선체가 벌겋게 녹슨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수리중인 배들을 묶어놓은 팔뚝 굵기의 쇠사슬 또한 녹슬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유행에 뒤처지게 덩치만 큰 검정색 국산 승용차가 천천히 화물선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차 역시 화물선처럼 낡아 보였다. 운전을 하던 공장 직원이 오줌을 눠야겠다면서 차를 세웠다. 나도 차에서 내려서 스러져가는 하루와 녹슬어가는 시간의 삭막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야, 이 새끼, 너 세호 아니냐. 오세호!”

어느새 승용차가 다가왔고 유리창이 내려져 있었다. 각 진 차체에 둘러진 은색 테두리가 곧 떨어질 듯 낡은 차였다. 안에 앉은 사람은 차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젊었고 또 그 젊음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빛깔 정장에 붉은 씰크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가르마를 탄 머리는 기름을 바른 듯 가지런했다. 주선이었다. 날씬하고 균형잡힌 몸매에 검은 양복 차림이어서 조폭의 행동대장이거나 아니면 유능하고 잘생긴 회사원이라 해도 무난할 것 같았고 젊은 사업가쯤에도 해당될 것 같았다.

“너, 여기서 뭐 하는데? 또 어떤 놈 도시락 심부름 하러 왔구만.”

나는 웃었다.

“넌 여기서 뭘 하는데?”

“나? 나는 그냥 순시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북방외교 문제로 살펴봐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너 정말 뭐 해?”

“나는 회사일 때문에 왔는데.”

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오줌을 누고 몸을 떨며 돌아오는 직원을 가리키자 주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 부산서 자고 가냐?”

나는 응, 하고 대답한 뒤 직원에게 주선을 소개했다. 직원은 잘됐다는 듯 주선에게 냉큼 나를 떠맡겼다. 다음날 공장에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공장장의 전언과 함께. 트럭이 떠나고 난 뒤 나는 조수석에 쌓여 있는 러시아어 관련 책자를 뒷좌석으로 넘기고 주선의 옆자리에 앉았다.

“요새 무슨 일을 하니?”

“북방사업. 북방외교 하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그러나 주선은 그날 끝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는 익숙하게 차를 몰아서 단골이라는 시내 중심가의 국숫집으로 향했고 두어시간 동안 오로지 고향에 있을 때의 이야기만 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막 붐이 일기 시작한 카라오께 바로 나를 데리고 갔다. 원형 바 안에 여종업원이 있었고 둘러앉은 손님들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면 반주음악을 찾아서 틀어주고 마이크를 가져다주었다. 한 손님이 노래할 때 다른 손님들이 잡담을 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분위기여서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카라오께 바를 나올 때쯤 주선은 내게 물었다.

“너 똘똘이 목욕시켜준 지 얼마나 됐냐?”

생소한 은어였지만 나는 즉각 그 뜻을 알아들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인형이 가득한 방 안이었고 작은 분홍빛 전등 아래 흰 토끼를 연상케 하는 털잠옷을 입은 여자가 잠들어 있었다.

북방외교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주선은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관광호텔에 왔다면서 러시아 여자가 춤을 추는 그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이트클럽에는 손님 예닐곱 무리가 앉아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반짝이는 금속 소재 장신구를 온몸에 두른 러시아 여자 둘이 둥근 단 위에 올라가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제대로 배운 춤이 아니라는 게 내 눈에도 표가 났다. 여자들은 춤을 추고 난 뒤 자리를 돌며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주든가 받아마시면서 팁을 받는 것에 열을 올렸다. 주선은 나이트클럽 안의 문 달린 별실에서 나를 맞았다. 거기서 그는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는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기 전부터 중고 전자제품과 과자, 라면 같은 식품이며 소비재를 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낡은 선박을 받아서 고철로 파는 사업을 벌여왔다고 했다.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일반인은 물론 가장 치열한 직업의식을 가졌다는 일본의 상사원조차 가본 적 없는 시베리아 깊은 곳까지 뛰어들어서 목숨을 걸고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했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내 물음에 주선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그의 이야기는 달려나갔다.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러시아가 불황에 빠지면서 순조롭던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수출대금을 받는 일이 어려워지자 러시아 쪽에서는 불법적인 인력송출, 곧 인신매매를 제안해왔고 거기에 러시아 마피아가 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철용으로 수출하는 배의 선창에 수백정의 AK소총까지 실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주선은 자신의 이야기에 토를 달지 않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던 불법적인 사업을 깨끗하게 단념하게 되었노라고도 했다. 나는 그게 뭔지 물어봐주는 게 좋을지 잠시 생각하다 종교에라도 귀의한 듯 환한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 다른 걸 물었다.

“그럼 이제 넌 뭘 할 거야?”

“공부를 해보고 싶다. 모아놓은 돈도 좀 있고 하니 유학을 갈까 해.”

“러시아 마피아 애들이 너를 그냥 놔줄까? 영화 같은 걸 보면 굉장히 잔인하던데. 전세계에 안 가는 데가 없고.”

주선은 러시아 마피아들이 전혀 관심이 없을 분야의 공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갈 곳을 정해둔 눈치였지만 어디인지는 끝내 내게 말하지 않았다.

3년 뒤 그는 일본 오끼나와 어느 대학의 고대교류사 관련 쎄미나장에 통역자로 나타났다고 했다.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탁월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연줄 싸움에 밀려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국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렸다. 일본에는 국민소득의 1퍼쎈트 범위 안에서 세계 최빈국들의 경제개발과 공중위생개선을 지원하는 국가사업이 있는데 일본의 공무원들은 그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을 “공무원 중의 공무원”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국적을 가진 그가 바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세계를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에 관광을 갔던 친구 가운데 하나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가 귀국하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도 섭섭하지 않았다. 아직 러시아 마피아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뒤로도 동창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여러가지로 변주되어 전해졌다. IMF 위기가 닥쳤을 때 해외에 있던 주선이 조지 쏘로스 같은 헤지펀드 운영자들을 초청하는 과정에 관여하며 새로 바뀐 정권의 외교, 경제 분야의 자문역을 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자문위원의 목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약범죄 척결을 위한 정책수립 자문위원, 남아메리카 원유탐사 자문위원, 해적 소탕을 위한 파병 자문위원, 국제적인 컴퓨터 사기범죄 관련 자문위원도 맡았다. 그는 햇빛 아래 그림자 없는 존재가 없듯이 어떤 분야, 어떤 사람이 각광을 받을 때 그림자처럼 그 세계에 있는 듯했다. 그림자가 그러하듯 그의 행적은 어둠의 세계, 그중에서도 흥미롭고 드라마틱한 분야와 연관이 있었다. 그런 건 그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는 사람 대부분의 일상과는 별 상관 없는 것이기도 했다. 동창회에 갈 때마다 그 자리에 없는 주선의 이야기를 하도 전해듣다 보니 지겨워져서, 또 주선에 관한 이야기가 한번 나오면 다른 화젯거리로 옮기는 게 불가능해지는 분위기가 짜증스러워서 나는 삼년 전부터 동창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는 점점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처럼. 그의 이야기가 진실된 것이든 아니든.

그의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졌다. 의외였다. 20대 초반에 내가 본 그의 아버지는 곧 허물어져버릴 헛간처럼 보였다. 아직 그 친구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가. 나는 문자로 부고를 보낸 영호에게 일부러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영호는 낙남초교 21회 재경 동기회장으로서 연락을 받아 전해줄 뿐, 자세한 사항은 관심도 없고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네가 우리보다 훨씬 잘 알 거 아냐? 이주선이가 동창 중에, 아니 고향친구 중에 제일 친한 놈이 너라는데.”

그의 말에는 노골적인 질시가 들어 있었다. 나를 두고 그렇게 말했다는 주선의 저의가 궁금했다.

주선 아버지의 영안실은 강북의 어느 시립 장례식장이었다. 영호는 영안실의 번호만 말했을 뿐 언제 갈 것인지 묻지 않았다. 물론 같이 가자거나 부조를 전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가던 중에 신축한 지 오래지 않은 유명대학 부속병원에 눈이 갔다. 주선은 한때 재계 서열 5위 안에 들었다가 IMF 위기 때 와해된 어떤 재벌그룹의 회장과 자가용 비행기를 같이 타고 다니며 그의 재기를 도왔다고 하는데 그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검찰의 기소를 피하기 위해 그 병원의 특실에 장기입원한 적이 있다. 그 병원 영안실이 아닌,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립 장례식장이라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립 장례식장 입구에 있는 안내 전광판에는 특실 1호를 잡은 주선의 이름이 큼직하게 씌어 있었다. 유건을 쓰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건물 안에서는 간간이 울음소리와 독경소리가 들렸을 뿐 내 발소리가 울릴 정도로 조용했다. 특실 1호 앞에는 다른 영안실에 비해 네댓배는 많은 화환이 세워져 있었고 접수대에는 망자의 친인척이라기보다는 경호전문업체의 직원처럼 느껴지는 남자들 서넛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일반실보다 두배쯤 큰 공간에 주선이 앉아 있었다. 형제도 가족도 친척도 없이 혼자였다. 나는 젊어 보이는 낯선 남자의 흑백사진 앞에서 분향하고 절했다. 맞절을 하고 난 뒤 주선은 내 손을 잡은 채 음식이 차려져 있는 방으로 이끌었다. 거기에도 친인척이라기보다는 상조업체의 직원으로 짐작되는 여자들이 대여섯명 있었을 뿐 손님 하나 없었다.

주선은 마주 보기 민망할 정도로 늙어 있었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고 머리카락은 온통 세었다. 셔츠 속에서 솟아오른 목이며 그 주변에도 주름이 경쟁하듯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영정 속의 남자가 그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그는 주름진 손으로 내 앞에 있는 잔에 맥주를 따랐다. 내가 그의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손을 들어 사양했다. 그가 손짓하자 한 여자가 프랑스산 탄산수가 든 초록색 물병을 가져왔다. 그는 “우리의 남아 있는 청춘을 위해, 건배!” 하고 웃으며 물병을 내 잔에 부딪쳤다.

“애들은? 제수씨는?”

내가 묻자 그는 이마 가득 주름을 만들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없었다는 것인지, 있는데 오지 않았다는 건지, 그런 질문이 적당치 않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할 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접객실 문밖에 내다보이는 화환으로 눈길을 돌렸다. 꽃은 똑같이 흰 국화였고 크기도 한집에서 만든 듯 똑같았다. 리본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나 ‘謹弔’ 같은 글자와 함께 보낸 사람의 직함과 이름이 있었다. 내가 가장 식별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화환은 외교부 장관이 보낸 것이었다. 놓인 순서로 치면 예닐곱번째쯤 되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주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영안실 안에 들어가지 못한 화환들에는 검사장, 경찰청장, 지방법원장, 대기업 회장, 대학 총장 등 다채로운 명목의 리본이 걸려 있었다. 화환 수가 백개는 넘을 것 같았다. 다른 영안실 앞에 으레 있는 교회, 국회의원, 대학이나 중고등학교 동창회 명의의 화환은 없었다. 오로지 초등학교 재경동기회 명의의 화환만 초라하게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영안실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제일 앞에 놓인 화환의 리본을 읽었다. 맨 앞에 있는 것이 전직, 아니 IMF 위기를 초래한 전전전직 대통령의 이름이었다. 뒤를 이은 것은 총리와 부총리 들이었는데 역시 전직이었지만 ‘전’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현직은 분명히 아닌, 생소한 이름의 대법원장, 장관, 검찰총장이 보낸 화환도 있었다.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조작되고 연출된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버지의 몰락, 심지어 죽음조차.

“왜 그렇게 주름이 많아졌어? 요새는 수술 같은 걸로 간단하게 없앨 수도 있잖아.”

나는 자리에 앉은 뒤에 주선에게 물었다.

“너 지하철 타서 애들한테 자리 양보 못 받아봤지? 나는 삼십대 후반부터 양보를 받았다. 뭐, 그렇다고 자리에 앉지는 않았지. 요즘에는 아예 노약자석에 앉은 노인들까지 일어나는 거 있지. 고맙다고, 난 아직 젊어서 괜찮다고 하지. 어쩌다 지하철을 타도 재미있는 일이 많아.”

주선은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의 좋은 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주름은 환상과 이야기라는 흡혈귀에 자신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빨려 생긴 것처럼 보였다.

빈소에는 끊임없이 향이 피어오르도록 상주인지 경호원인지 모를 젊은 사람들이 조절하고 있었다. 굵은 초가 영정 양쪽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타올랐다. 그건 아무도 손대지 않는 것 같았다. 주선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다 하려는 듯 쉴새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향연과 촛불을 배경으로 그 역시 무엇인가를 허공에 피워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