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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14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13114

천정완

1981년 문경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서사창작과 졸업. wrongseason@gmail.com

 

 

 

부풀어오르다

 

 

형은 체조선수였다. 그가 은퇴를 결심한 날, 나는 형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을 마셨다. 비가 내리다가 느닷없이 맑게 갠 7월의 어느날이었다. 체육관 앞 포장마차에서 형은 주문한 안주가 나올 때마다 아이처럼 웃었다. 그날 형은 술을 많이 마셨고, 많이 울먹였고, 망가진 손을 주제로 계속 같은 농담을 했다. 그가 체조를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을 때, 철봉에서 사뿐히 내려서는 형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고 불렀다. 당시 형을 가르친 코치의 말을 빌리자면 형은 체조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형이 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그때뿐이었다. 형은 은퇴하는 날까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운이 나빠서 혹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는 위로를 받는 유망주로 남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경쟁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은 사람처럼, 은퇴를 결심하는 순간까지 단 한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누가 내게 형과 형의 체조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고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형은 산을 옮기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치열하게 체조를 했다. 내 생각에 그는 체조를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형에게서 직접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형이 죽었다. 나는 신축한 지 석달도 되지 않은 빌딩의 누수를 탐지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샌 물이 건물 외벽을 타고 흘러 곰팡이가 피어버린 벽을 바라보며 나는, 형수의 담담한 목소리를 통해 형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모든 누수는 징조를 동반한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분명히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분명히 우리가 감지해내지 못한 징조가 있었다. 상조회사에 전화를 하고, 사망진단서를 떼는 동안에도 나는 형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형수가 울고 있었다. 형수는 아직 상복을 채 다 걸치지도 못하고, 위에는 검은색 저고리를 아래에는 무릎이 늘어난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두 손을 정중하게 모으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형수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카는 놀이터에 온 듯 상 아래를 기어다니며 놀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선 나를 발견한 형수가 급하게 눈물을 닦았다. 나는 채 매지 못한 형수의 저고리 고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이에요?

형수는 대답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형수와 그 남자 사이에 단단한 벽이 생긴다.

—사모님께 음식에 관해 말씀을 드렸는데, 식사를 10인분만 주문하셔서요.

직원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친절하지만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말투였다.

—저희는 쉰명이 넘지 않아요.

형수가 반발했다. 형수는 죽음을 감지한 동물처럼 목을 쑥 빼고 씩씩거렸다.

—병원 규정상 한번에 음식이 50인분 단위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까 설명드렸듯……

—저희는 문상객이 쉰명이 넘지 않는다구요. 스무명도 안 올 거야, 아마.

형수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직원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그 순간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내게 찾아와, 자꾸 우는 형수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던, 혼자서만 간직한 비밀을 토해내는 듯하던 그 얼굴. 화가 났다.

—가만히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형수가 잠깐 나를 보더니, 아직 영정도 도착하지 않은 접견실로 들어갔다. 직원은 두 손을 모은 채 형수가 들어간 곳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50인분으로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럼 일단 50인분으로 하겠습니다.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서류들을 내밀었다. 서명을 받은 직원이 돌아가고, 상조회사에서 보냈다는 도우미 여자 두명이 도착했다. 그녀들은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비치된 커피믹스와 종이컵의 포장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장내에선 철 지난 해수욕장같이 몇사람만 천천히 움직였다. 그날 형은 우는 형수가 두렵다고 했다.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형은 고장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형수가 상복을 갖춰입고 나왔다.

—도련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형수는 머뭇거리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숨을 골랐다. 마치 오랜 시간을 달려온 사람처럼.

 

형의 특기는 철봉이었다. 형의 유해는 번데기처럼 수의에 싸여 관에 들어갔다. 관은 어린시절 방학숙제로 만들던 국기함만큼이나 싸구려였다. 형은 체구가 엄청나게 컸으므로, 관도 보통의 그것보다 훨씬 넓어서 꼭 합판으로 만든 벽돌처럼 무뚝뚝했다. 그래도 관은 빈틈없이 꽉 찼다. 장의사가 능숙하게 염을 하는 동안 형수가 곡을 했다. 장의사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처럼, 형수는 딱 그 정도의 곡을 했다. 형의 이마에 형광등 불빛이 고요하게 고여 있었다. 거대한 몸으로 관에 누워 얼굴만 내놓은 형은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보던 그 모습, 침대에서 자고 있던 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흔들어 깨우면 눈을 뜨고는 배가 고프다고, 배가 고파서 못 살 것 같다고 말할 것 같았다. 형은 죽은 지 16시간 만에 형수와 내가 보는 앞에서 관 속으로 들어갔다. 관뚜껑이 닫히고 나무못이 박혔다. 형이 입관하자 형수의 곡이 멈췄다. 여진처럼, 형수가 숨을 골랐다.

—태극기, 넣어줄 걸 그랬어요.

형수의 한숨 섞인 말이 들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무슨 생각이든 골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부풀어 터질 것 같았다. 장의사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우리를 봤다.

—염은 마음에 드세요?

장의사가 물었다. 형수가 갈라진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형수가 관을 한번 쓸어보고 손을 거두자 관이 옮겨졌다. 관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형수가 내게 말했다.

—올라가서 점심 먹어요.

형수가 검은 상복을 추스르고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우리는 형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긴 복도를 빠져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고생했어요.

형수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저 관으로 괜찮겠어요?

—화장하는데요, 뭐.

—배고프네요.

내가 마땅한 말을 찾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형수는 내내 울었다.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형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상 1층과 지하 3층 사이, 그 짧은 시간 동안 형수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까지 나는 형수를 위로하지 않았다.

 

—요즘 어때?

형이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대회를 앞둔 어느 저녁, 내가 속옷을 합숙소로 가져다줬을 때 형이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깊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별일 없다고 말했다. 중복이 얼마 지나지 않은 한여름, 나는 형의 속옷이 든 종이가방을 쥔 채로 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형은 어때?

형이 웃었다. 그의 이마에서 굵은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괜찮아. 형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몇걸음 걸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형의 등을 바라봤다. 나는 형이 체조에 열중하느라,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사생활을 한번도 물어보지 못한 데 죄의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은 나를 내버려둔 채로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있다가 합숙소로 들어갔다. 며칠 뒤 형이 불쑥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오랜만에 집에 온 형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별로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형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역시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얼버무리자 형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우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대회가 얼마 안 남았어. 무서워.

—이번에는 우승할 수 있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형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도 대회가 무섭다는 말을 해본 적 없던 형이 그날 잘라놓고 간 말이 도마뱀 꼬리처럼 내 속에 남아 꿈틀거렸다.

 

형수가 국에 밥을 말았다. 빨간 육개장에 새하얀 쌀들이 섞였다. 형수가 숟가락을 들어 밥알들을 천천히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도우미들은 안주로 내놓을 땅콩을 까먹으며 영안실 한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들은 뒤늦게 통보를 받은 파업현장의 인부 같았다. 조카는 젓가락으로 식은 수육을 찢으며 장난을 하고 있었다. 형수가 찢어놓은 고기 한점을 숟가락에 얹어 아이 입 앞에 내밀었다. 조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로 형수 너머에 있는 빈 테이블을 바라봤다. 시간이 하염없이 느렸다. 우리는 이렇게 무료하게 형이 떠난 여백을 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었다. 조카가 형수 옆에서 하품했다. 아이는 장난이 벌써 질린 눈치였다. 길고 느린 하품, 무료한 표정 속에 품고 있는 지루한 눈. 형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린 딸을 바라봤다.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어쩌죠?

도우미 한명이 다가와 말했다. 그녀는 입에 땅콩껍질을 붙이고, 걱정스럽게 서 있었다.

—냉장고에 넣어두세요.

—냉장고도 꽉 차서 그래요. 홍어무침은 아직 한접시도 안 나가서…… 다 상할 텐데.

형수가 먹다 만 육개장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뒀다가 상하면 버리세요.

—아이고, 아까워라.

도우미가 자리로 돌아갔다. 장례식이 끝나면 3킬로그램은 찌겠다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그녀는 육개장을 설거지통에 쏟아버렸다.

 

나는 전화를 걸고 오겠다는 핑계로 지상으로 올라왔다. 겨우 두층을 올라왔을 뿐인데 모든 것이 완전히 달랐다. 바깥은 바람이 조금 불었고 연약한 나무들이 바람에 휘청였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담배를 물고 재떨이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주차장 너머로는 잘 가꾼 잔디밭이 펼쳐졌고, 가로등 아래로 소리를 죽여가며 웃는 연인들이 보였다. 대학병원만이 가질 수 있는 풍경이었다. 모든 것이 명징해 보였다. 형이 죽었다는 것을 내가 실감할 즈음, 이 풍경은 뚜렷한 기억으로 내게 찾아올 것이다. 형이 수백명의 관중들 앞에서 철봉으로 힘차게 뛰어오르던 그 모습과 함께 불현듯 떠오르겠지. 은퇴 후 형의 몸은 그동안 유지하던 몸무게의 두배로 불어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숨을 쉴 때마다 부풀어오르는 배의 느낌이 좋다고,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형은 느릿한 말투로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수다스럽게 이야기했다. 체조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잊었는데 유일하게 잊히지 않는 느낌이 있다고도 했다. 체조부에 들어 처음 백 덤블링에 성공했을 때, 그는 이것에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일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보이는 것들, 그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좋았다고. 그때 형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어쩌면 점점 뚱뚱해지던 형을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형이 체조를 그만둔 데서 오는 상실감에 대해서만 걱정했다. 그냥 형수에게 형을 다이어트쎈터에 보내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형수는 형의 요구를 차분히 들어줄 뿐이었다. 나 또한 그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형이 잠들고 난 후 나는 형수와 마주앉았다. 그녀는 형이 먹을 것을 점점 더 많이 찾는다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그게 편하죠?

형수는 커피잔을 쥔 채로 소파 끝에 앉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실컷 먹으면 짐승처럼 굴지 않으니까, 차라리 주는 게 편하죠?

—아니에요.

형수가 말했다.

—그럼 왜 저렇게 될 때까지 뒀는지 모르겠어요. 형이 왜 저러는지 아직 모르겠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혹시, 형이 완성한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던가요?

—아니요, 전혀.

—저한테는 늘 그 이야기를 해요.

그녀가, 나는 형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그게 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다음날 오후에 형이 죽었다. 연락을 받고 형의 집으로 갔을 때, 구급대원 네명이 간신히 형을 들것에 얹어놓고, 크레인을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무리가 식장으로 들어섰다. 일행 맨 뒤에 근조 화환을 든 남자가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저, 이거 어디다가 둘까요?

이마가 번들거리는 그가 내게 물었다.

—눈치껏 해, 인마. 보고 적당히 둬.

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형의 선배였다. 내가 가볍게 묵례를 하자 그가 슈트 단추를 채우던 손을 들며 신발을 벗었다. 입구에 모여 있던 나머지 일행은 느리게 신발을 벗으면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표정으로 갈팡질팡했다. 형의 선배는 내 손을 잡았다.

—상심이 크겠네. 몸은 챙겨. 산 사람은 건강해야지.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뒤에 서 있던 나머지가 내 손을 잡아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그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하자 그들은 미팅에 나온 고등학생처럼 내 시선을 피하며 싱겁게 웃었다. 형의 선배가 분향실로 들어서자 그들이 따라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나도 함께 들어가 형수 옆에 섰다. 조카는 분향실 한쪽에서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형의 선배는 영정 앞에 서서 얼굴을 한번 쓰다듬더니 곡을 하기 시작했다. 국화를 들었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영정 앞에 뒀다.

—형 담배 안 피웠어요.

내가 말했다.

—아냐, 담배 좋아했어.

그는 콧물을 삼키며 자신있게 말했다.

—그 사람, 담배는 안 피웠어요.

형수가 끼어들자 그제야 그는 그래요? 하고 무안한 듯 서둘러 담배를 거뒀다. 그가 이미 불을 붙인 담배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동안 분향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종이컵이라도 하나 가져와, 새끼야. 누군가 뒤에서 속삭였다. 우당탕 소리가 나고, 종이컵에 담배를 비벼 끈 후에 그가 다시 슬픈 얼굴을 하고는 곡을 이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 나머지는 뒷짐지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가 돌아보자 한명씩 식권 내듯 국화를 얹고는 몇은 절을 하고 몇은 묵념을 했다. 형의 선배는 형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정 앞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정해진 분량의 대사를 소화하는 배우처럼 명료했다. 형수는 그 앞에서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나머지 일행은 다시 뒷짐을 진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가는지, 무심한 사람.

형의 선배가 형수의 손을 잡은 채로 말했다.

—고집이 있었죠? 선수시절부터 그랬어. 대회가 코앞인데 자꾸 어려운 걸 연습하더라고. 체조선수 생명이 얼마나 짧은데.

 

형은 오랜 시간 동안 하루도 운동을 거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상태를 완벽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형의 말대로라면 그의 몸은 복부부터 지방이 덮여 팽창하기 시작해 가슴과 얼굴로 번지고 있었다. 그는 은퇴를 발표한 후 석달 만에 9킬로그램이 불었다. 나도 누수를 탐지하고 차단하는 일을 하면서 어떤 변화 같은 것에 민감한 편이었지만, 형의 몸은 징후를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했다. 형은 나보다 네살이 많았다. 그는 그때까지 운동을 제외한 어떤 일도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나를 찾아와 숙제검사 받는 아이처럼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몸이 변한다는 것,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는 말했다. 나는 걱정스럽게 형의 몸을 봤다. 즐겨 입던 옷들이 몸에 맞지 않아 형은 늘 커다란 운동복을 입고 다녔다. 형은 은퇴 후 넉달이 지나고서야 간신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바라본 것은 온전한 자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뒤늦게 자신이 철봉에서 내려온 것을 실감한 것 같았다. 그제야 그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한 부분을 어딘가에 의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시작한 것이 생활체육을 가르치는 작은 체육관이었다.

—몸이 불어나면 많이 무겁다는 말이 있지? 나는 오히려 가벼운 채로 너무 오래 살았어. 한번 시점을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꽤 기분이 괜찮아.

밥을 먹는 동안 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밥그릇을 일반인보다 훨씬 빠르게 비웠다.

—운동 시작하고 한번도 마음껏 먹은 적이 없어?

—아니, 대회가 끝나면 회식을 해. 합숙하면서 먹고 싶었던 것들을 마구 시켜서 먹지. 합숙할 때는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는 게 낙이거든. 그런데 잔뜩 시켜만놓고 다들 먹는 둥 마는 둥 해.

형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들과 아주 친밀한 기분으로 살았어. 설명하자면 가족적인 분위기로. 하지만 가족적이라는 것도 단순한 경쟁의 일부였어. 거기서 마음껏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포기니까. 곧 동정과 걱정 어린 시선을 받거든.

형은 허풍을 떨면서 자신의 훈련을 과장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식사하는 내내, 입으로 먹을 것을 가져가는 형의 손을 봤다. 하루에 열시간 넘게 철봉에 매달려 있었을 손은 복잡한 굴곡을 가지고 있었다. 물이 새기 전 어떤 징후를 드러내는 천장처럼. 징후는 보통 사실과는 다른 근육을 가지고 있다. 햇살이 맑은 날 굳이 우산을 챙기고 싶은 마음, 혹 적중하지 않더라도 그 당시에는 분명 무엇인가를 예감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징후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 타인에게 이해를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징후를 예감하는 사람은 외롭다. 실제로 형이 내게 전화했을 때, 나는 어떤 징후를 예감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 형의 체육관으로 찾아갔을 때, 형은 두 면이 거울로 된 벽 귀퉁이에 선 채로 천장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내가 체육관에 들어선 줄 전혀 모르고 굳은 얼굴로 몇초에 한번씩 얼굴을 찌푸렸다. 형의 몸은 더욱 부풀어 이제 한눈에 봐도 뚱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저 사람이 한때는 체조선수였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나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형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패턴이 물이 떨어지는 속도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형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은 30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어 보였다. 형의 숨소리가 우리가 사는 여기,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져나왔다. 그 미세한 떨림이 내게 전해졌다. 어디서 무엇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여긴 원래 사무실이었어. 그런데 개조를 해서 아이들을 위한 체육관으로 만든 거야.

입을 아주 작게 벌려 말하는데다 목소리도 작았기에 나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에게서 땀냄새라고 하기에는 조금 복잡한 냄새가 풍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내가 알아볼게.

그는 시선을 천장으로 천천히 옮겼고, 천장에서는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문제가 심각한 걸까?

—오래된 건물에선 자주 생기는 일이야.

사실이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기도 했지만, 누수는 노후한 건물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사무실에 물이 새는 게 특별히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물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형을 안심시켜야 할 것 같았다. 물방울이 고요하게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형이 그 물을 받을 무엇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계시하는 것 같아.

—계시는 무슨. 누수 징조가 있었을 텐데,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야.

징조라. 징조. 형이 내 말을 되새김했다. 그의 얼굴에 복잡한 것이 지나갔다.

—징조. 기분나쁜 단어네. 사실은……

형은 말을 하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저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무 배가 고파졌어. 허기가 사라지지 않아.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한 몸이 되어가는 거야. 살을 좀 빼.

운동이라, 운동. 그가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도면을 볼 수 있을까.

—건물주에게 부탁해볼게.

이해하기 힘든 점은 있었다. 1층에서 물이 새는 게 흔한 일도 아닌데다 도면의 배관도를 확인해야겠지만 내가 둘러본 바로 물이 떨어지는 곳 바로 위는 화장실이 아니라 일반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

 

화장터는 일곱시 삼십분 개장인데 우리는 여섯시에 도착했다. 서류접수를 하려면 한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므로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약속이나 한 듯 넥타이를 풀었다. 형의 선배는 다리를 꼬고 앉아 가져온 진미포를 씹었다. 그 주변으로 흰 장갑을 낀 일행이 스트레칭을 했다. 하나같이 잠에서 덜깬 얼굴이었다. 언덕을 올라온 차들이 개장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남아 갈 데가 없어진 관들이 어선처럼 정박해 있었다. 차가 벽제에 도착하자마자 형수가 토악질을 했다. 조카가 그런 형수 옆에 서서 울었다. 형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조카를 데리고 자판기 앞으로 갔다. 아이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동전을 넣고 있는 내 바지 한켠을 꼭 붙들고 있었다.

조카에게 오렌지주스를 뽑아주고 다시 버스 근처로 왔다. 아이는 한모금씩 주스를 마실 때마다 나를 보고 웃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손을 머리에 얹어 토끼흉내를 내기도 하고,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아이는 본능인 듯 내 시선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룡, 펭귄, 심지어 자동차까지 모두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 붙은 것들이었다. 조카는 그중 하나를 내게 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꼭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럼 마트에 가요.

조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힘이라고 하기엔 연약한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은 안되니까 내일 가자고 답하자 조카는 그럼 약속을 하라고 했다. 나는 하나둘씩 언덕을 넘어 올라오는 버스들을 바라보며,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찾았니?

형의 체육관에 다녀온 지 사흘 만이었다. 형의 목소리는 비에 젖은 듯 눅눅했다. 나는 그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집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세한 건 공사팀을 데리고 가서 어느정도 조사를 해봐야 알아.

수화기 건너편에서 잠시 침묵이 전해졌다.

—어떤 계시가 있는 것 같아.

—그런 게 아니야. 단지 건물이 오래돼서 생기는 흔한 현상이야.

흔한 현상. 형이 내 말을 따라 했다.

—체육관 원생이 다 그만뒀어. 물이 흘러서 바닥이 모두 썩었거든.

나는 체육관 마룻바닥에 고이던 물방울을 생각했다. 더하고 더해져서 흘러넘치는 형 같은, 그것들.

—덕호 알지? 덕호가 그러더라. 같이 연습을 하다가 자기는 못할 것 같다고 그랬어. 어느날인가, 자기가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덕호형의 장례식장에서 말없이 울고만 있던 형을 떠올렸다. 그때 형은 접견실 한구석에, 버려진 화분처럼 우두커니 앉아 테이블 위에 휴지조각을 찢어놓고 있었다.

—네가 그랬잖아. 어떤 일이든 반드시 무슨 징조가 있다고. 이게 징조일까?

—형, 취했지?

—모르겠어. 마음속 어딘가가 부풀고 있는 느낌이야.

—그만 들어가 자.

형이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일곱시 사십분, 화덕으로 관이 들어갔다. 카쎄트에서 회심가(回心歌)가 나왔다. 나는 카쎄트 소리보다 작게, 옆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울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유리 건너로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형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막을 내린 공연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조카를 데리고 지하식당으로 밥을 먹는다고 내려갔다. 형수는 캔커피를 두개 들고 들어왔다. 그녀가 내 맞은편에 앉아 내게 커피를 내밀었다.

—고생했어요.

—형수님이 고생하셨죠.

형수가 신발을 벗었다. 벗어놓은 구두의 뒤축이 많이 낡아 있었다.

—저 요사이 많이 울었죠? 내가 형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늘 그것밖에 없었어요. 잘해주지는 못해도 많이 해주는 것.

얼마 전 형이 말했던 기억이 뼈아프게 떠올랐다. 마지막 저녁, 형은 누수가 시작되기 전에 천장에서 물이 몇방울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는 대수롭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때 조치를 취했으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하기 얼마 전이었나? 평생 연습한 기술이 거의 다 완성되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예, 알아요. 형은 대학 때부터 그 기술을 해보고 싶어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기술에 대해 생각했다. 형수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덕호씨 기억하죠?

—예, 형이랑 제일 친했잖아요.

—둘이 그 기술에 미쳐 있었던 것도 알죠?

—알고 있어요.

—덕호씨가 먼저 그 기술을 시도했었나봐요, 큰 대회에서. 거의 성공했는데 아무도 몰랐대요.

옆방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어요.

형수가 말했다.

—무서웠다 그러더라고요.

—뭐가요?

—완성되고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요.

내가 형의 전화를 받고 체육관으로 갔을 때, 체육관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깊은 밤의 실내체육관은 잔잔하면서도 서글펐다. 그 적막 속에 앉아 있는 형이, 정확하게는 형의 등이 보였다. 형은 노을이라도 구경하는 사람처럼 마룻바닥에 앉아 철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복잡한 생각을 하면 저런 등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형에게 걸어가며 생각했다. 내가 형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진동이 느껴졌다. 폭우가 내리는 들판의 나뭇가지처럼, 형은 흔들리고 있었다.

—왔니?

형이 얼굴을 부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여줄 게 있어.

형은 내게 앉으라고 말하고 철봉 앞에 섰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숙연한 얼굴로, 그는 힘껏 뛰어 철봉에 매달렸다. 철봉에 매달린 형은 입을 꽉 다물었다. 그의 팔은 겨울을 견디고 있는 고목같이 단단하고 고단해 보였다. 형이 몸을 몇번 흔들다가 철봉과 수직으로 섰다. 그리고 몇바퀴 돌더니, 양팔을 꼬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모든 동작들이 정교하고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다. 숨막히게 고요한 체육관엔 형이 매달린 철봉이 진동하는 소리로 작은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형은 몇초에 한번씩 자세를 바꾸며 철봉에 매달려 있었다. 형이 괴로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번도 지상에 발이 닿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철봉을 오가던 형이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그러더니 사뿐히 철봉에서 손을 놓고 바닥에 내려섰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에 묻은 송진가루를 떨어냈다. 그러곤 말없이 나를 지나쳐 라커룸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샤워도구를 챙겨 라커룸에서 나온 형은 내게 현관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얼마 후 형은 샤워를 마치고 로비에서 기다리는 내게 다가왔다. 그가 조용히 내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의 그 손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오랜 가뭄을 겪은 땅처럼 곳곳이 갈라진, 단단해서 더 연약해 보이는 손이었다. 내가 좋았다고 말했을 때 그의 미간이 움직였다. 찰나, 내가 형의 동생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포착하지 못할 어떤 것이 지나갔다.

 

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무렵 형이 입을 열었다. 그날 내가 본 것이 십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시간씩 연습한 기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이 마침내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그 기술을 처음 해낸 날이라는 것을. 깊을 대로 깊은 여름밤,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차 안에서 형은 단 한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다. 형은 그의 인생 한가운데 세워진 철봉에 매달려 있다가 이제 막 내려왔다고, 자신이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에 다시는 매달리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형은 그날 내게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대답을 찾지도 못한 사이, 그래, 정말 해야겠어,라고 형이 다짐하듯 말했다. 나는 열어놓은 차창으로 눅눅한 바람이 들어오던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포장마차에서 취한 형을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현관 앞에서 나는 정말 은퇴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낡은 구두를 벗었다. 자고 싶다는 말과 함께.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문을 닫지도 않은 채로 뚜벅뚜벅 거실로 걸어들어갔다.

 

형수는 팔짱을 끼고 분골을 구경했다. 유리창 너머에서는 도자기를 빚듯 신중하게 형의 유골을 차곡차곡 유골함에 담았다. 형의 선배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한숨을 쉬며 되새김질하듯 껌을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