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복효근 卜孝根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등이 있음. bokhg62@hanmail.net

 

 

 

덮어준다는 것

 

 

달팽이 두마리가 붙어 있다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놈이 한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였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로 말해질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겠다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다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몇백년이 흘러가고 있다

 

 

 

호박오가리

 

 

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어 먹었다

벌레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들깻물 밭쳐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조렸다

꼬소름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