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송진권 宋鎭權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likearoad@hanmail.net

 

 

 

맨드라미 꽃밭

 

 

잘 벼린 칼로 배를 가르자 물컹 피 묻은 내장이 쏟아진다 훈김이 나는 뱃속 이슬 머금은 맨드라미 꽃밭 자욱한 피비린내 아직 살아서 버둥대는 네 다리 겁을 잔뜩 집어먹은 눈매에 뻗치는 살기 숨을 몰아쉬며 울어대는 돼지 멱을 따던 아버지 할머니가 얼른 내 눈을 가린다 쿨럭쿨럭 솟구치는 피를 양동이에 받는 아버지 아버지가 몰래 내 입에 넣어주던 기름소금 찍은 꼬독꼬독 들크무레한 생간 한쪽 잇바디 입술에 피를 묻히고 붉게 붉게 웃으시는 아버지

 

체할라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에- 새끼가 들었구나 새끼 밴 짐승은 잡는 게 아닌데……

 

내장을 한 양동이 얻어 집으로 가는 아버지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칭얼대는 여우새끼들 피 묻은 연장을 물에 닦고 숫돌에 칼을 가는 아버지 아버지가 잘라준 생간 한쪽 들크무레한 고소한 살기 자욱한 저 맨드라미 맨드라미 꽃밭

 

 

 

둠벙의 방

 

 

둠벙이라는 말 좋지

첨.벙.첨.벙.

그의 목소리가 칸막이 미닫이를 건너와 징검다릴 놓던 밤

딱딱 끊어지지도 않고 맺힌 데도 없이

두루뭉술하고 덤벙덤벙해 보이는 말

들을수록 좋아

어수룩하고 어리무던해 보이는 그 말 속에

뽀그르르 물거품이 피더니 하나둘 개구리밥이 떠올랐다

봐, 몸에 벌써 소름이 돋잖아

하늘바라기 논에 그득한 애기모들에게 물을 대주고 있는

논 가장자리 구석에 처박힌 착한 둠벙이라니

더구나 밤이면 그득 달을 담고

숨죽이며 가슴 동당거릴 생각을 하면 말이지

오르가슴까지 느낀다며

부르르 온몸을 떨던 그의 옆에 누운 밤

오래 잊었던 말을 디디며

참방참방 참개구리가 물속으로 뛰어들고

한가마니 별들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별들을 스적이며 올챙이떼가 헤엄치고

하늘하늘 소금쟁이가 공중에 떠다녔다

말풀 같은 애인의 머리카락이

내 몸을 스적이던 방

살이 살에 닿아 스치던

소금쟁이처럼 살짝 손을 얹으면

몸속 피톨의 떨림까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던

방울방울 물거품이 솟구치던 둠벙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