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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2013년 이후 무엇을 먹고살까

 

 

김병 金秉準

국민대 교수, 정책학.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저서로 『높이 나는 연: 성공하는 국가, 성공하는 국민』 『지방자치론』 등이 있음.

 

정대 鄭大永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저서로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 『신위험관리론』 등이 있음.

 

홍종 洪鍾學

가천대 교수, 경제학. 저서로 『한국경제 새판짜기』(공저), 역서로 『성장친화형 진보』 등이 있음.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본지 편집위원. 저서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대화_전체_fmt

 

이일영(사회) 안녕하십니까. 2012년 올해 두번의 선거가 한국사회에 전환점을 만들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큰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집권세력이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어서 오히려 걱정이 되는 상황이죠. 자칫하면 성찰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진보개혁세력이 정치적으로 자만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권이 정책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는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요. 젊은층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좌절과 분노 속에서 사는데, 이들의 말을 간단히 표현하면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복지나 분배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그러다보니 먹고사는 문제의 원천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고민이 소홀해진 것 같아요. 아마 누구든 국정을 책임지게 되면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을 텐데,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일선 현장에서 애써오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위기의 본질은 뭔지,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성장을 기초로 해서 무엇을 먹고살아갈 건지 기탄없이 토론해보려 합니다.

참여정부 임기 내내 정책분야에서 중책을 맡으셨던 김병준 교수님, 한국은행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금융과 실물경제를 다뤄오신 정대영 선생님, 경제전문가로서 학계와 시민운동계에서 활동하시는 홍종학 교수님, 이렇게 세분 모셨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 정부에서 고생이나 안하셨는지,(웃음)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金秉準 국민대 교수, 정책학.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저서로 『높이 나는 연: 성공하는 국가, 성공하는 국민』 『지방자치론』 등이 있음.

金秉準 국민대 교수, 정책학.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저서로 『높이 나는 연: 성공하는 국가, 성공하는 국민』 『지방자치론』 등이 있음.

 

김병준 저는 현정권에 대해 일종의 동병상련 같은 게 있어요. 그들이 안고 있을 고민, 그게 꼭 내가 정부에 몸담았을 때 했던 고민의 연속선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상당히 괴로울 거예요. 어떤 건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건 아예 캄캄한 때가 많거든요. 한편으로는 걱정도 크죠. 이전 정권에 있던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이일영 특별히 고생하신 건 없습니까?

 

김병준 고민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조사한다고 해서,(웃음) 거의 1년 정도 괴로운 시절을 보냈죠. 저 자신보다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 괴로웠죠. 어떻게 보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당혹스럽고 고생스러웠던 건 사실입니다.

 

정대영 저는 운이 좋다면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 참여정부 말기에 독일에 나가서 작년 봄에 들어왔습니다. 해외에 머물면서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수 있었고 우리 경제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덕분에 한국경제에 관한 조그만 책도 하나 썼고요.

 

홍종학 저는 이 정부 내내 너무나 편했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웃음) 조용히 지냈고 다행히 공부도 좀더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정부 출범할 때 이 정부는 틀림없이 실패할 거라고,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아까 김교수님 말씀대로 이전 정부들에서 고민해온 게 있는데 현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이를테면 미국의 보수주의 철학을 그대로 가져왔거든요. 이들은 그동안 보수주의 철학을 구현 안했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희가 보기에는 문제의 본질에서 너무나 벗어난 터무니없는 얘기죠. 가뜩이나 구조적 모순이 있는데 이런 보수주의 정책을 쓰면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요. 불행히도 그 예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게 너무나 안타깝죠.

 

 

2013년체제의 시대적 과제

 

이일영 구체적인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간단히 여쭙고 싶습니다. 어떤 집단이든 정권을 맡으려면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여러 문제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뭐고, 올해와 내년을 거치면서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어야 하는 게 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鄭大永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저서로 『한국경제의 미필적고의』 『신위험관리론』 등이 있음.

鄭大永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저서로 『한국경제의 미필적고의』 『신위험관리론』 등이 있음.

 

정대영 우리 경제는 각 부문의 심각한 양극화와 불균형 등 워낙 고질적인 문제가 많아서 몇가지로 모으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에다 어떤 부분은 과도하게 신자유주의식 경쟁에 노출돼 있는가 하면 다른 부분은 과거와 같이 보호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동시장만 보더라도 전문직이라든가 공공부문은 우리 경제능력에 비해 아주 후한 대우를 받고 있고,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는 마치 허허벌판에 서 있는 상태죠. 금융부문도 은행들은 과보호 상태고, 서민 금융기관은 심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일정한 방향으로 전체가 잘못됐으면 해결이 쉬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균형 때문에 한쪽 방향의 정책만으로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어려움입니다.

 

김병준 쉽게 말해서 제일 큰 과제, 우리가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것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일자리고 일자리를 통해서 오는 수입이죠. 구조적으로 일자리가 잘 생기지 않게 되어 있는데다 노동시장이든 자본시장이든 투자든 소비든 다 왜곡되어 있으니 더 어렵죠. 장년과 중년 고용률은 안정적이거나 좀 올라갔는데, 청년층 고용률은 떨어지고 있어요. 노동이나 수입의 질도 상당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세대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거죠.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이 그 분노에 올라타려 하고, 야당도 다분히 선동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치, 사회, 경제 전체가 다 무너지고 있죠. 이런 것이 청·장년층의 먹고사는 문제, 일자리 문제로 옮아오는 것이고, 이것을 어떻게든 풀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홍종학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는 거죠. 정부는 과거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1980년대의 경우에는 대기업이 성장하면 자연적으로 고용이 늘어났어요. 저희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상당수 대기업이 매년 몇만명씩 인력을 뽑아서 훈련시키고 했단 말이죠. 정부가 대기업에 지원을 해주면 그것이 자연적으로 고용증가로 이어지는 체제였거든요. 지금도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에 실효세율이 10퍼센트밖에 안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투자세액공제를 몇년째 없애자고 하는데 못 없애고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투자가 늘면 고용도 늘어났지만 지금은 투자가 늘어도 더이상 고용이 늘지 않는데, 정부는 엉뚱한 데 신경을 쏟고 있단 말이죠. 민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유주의정책이 들어오니까 민영화를 했죠. 그렇다면 민영화를 하니까 고용이 늘어났느냐, 자본과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니까 고용이 늘어났느냐? 오히려 대기업의 고용은 줄어드는 상황이 됐죠. 시대가 바뀌었는데 정부는 계속 옛날 정책을 고수하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이일영 재벌이 과대하게 커졌는데, 많은 고용을 만들어내지도 못하면서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일터를 빼앗는 형국이에요. 그런데 과거의 정책 프레임은 그대로 작동해서 대기업을 보호해주고 있죠. 이런 과정이 이명박정부 들어 심화되면서 이제는 국민 대중의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서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김교수님께서 아까 동병상련이란 표현을 하셔서 말인데요.

 

김병준 참여정부도 죄가 많죠.(웃음)

 

이일영 그래서 여쭤보고 싶어요. 재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프레임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거 아닌가,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정부가 뭐가 다른가 하는 질문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김병준 나중에 우리가 길게 논쟁해야 될 대목이기도 하죠. 참여정부 때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경제력 집중 문제에 과연 정답이 있는가. 주요 대기업들이 매출의 80퍼센트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마당에 굳이 쫓아가서 경제력 집중 문제를 물고 늘어져야 되겠는가 하는 시각도 사실 내부에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해답이 있는가. 현대, 삼성이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지배구조지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굴러간다고 하니, 우리 상식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겠느냐, 그런 데에 대해 굳이 교과서대로 해야 되느냐 하는 유보적 의견도 있었죠. 그러나 이견이 전혀 없던 것은 공정거래였어요. 이것만큼은 정말 제대로 하자고 했는데, 결국 그도 쉽지 않았습니다. 출자총액제한도 점차적으로 풀렸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했지만요.

가장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MB정부 들어와서 계열사가 무진장 늘어났다는 겁니다. 이게 사실 참여정부 말부터 시작됐어요. 자기들끼리 내부거래 하고 친인척 회사를 세워 일감 몰아주기 하는 기업들을 공정거래 차원에서 엄격하게 다뤘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단 말이죠. 현대기아차부터요. 참여정부 막판에 이런 부분에 주의를 덜 기울였다는 반성을 합니다. 그때 대기업 계열사 내부거래로 곤란을 겪은 협력업체 종업원들이 저한테도 메일을 보내오거든요, 당신들이 잘못해 회사가 구석에 몰려서 결국 내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그런데 요즘 대기업의 계열사가 몇십퍼센트 늘어났다, 이런 보도를 보면 가슴 아프죠.

 

이일영 정권 말에 그랬다고 하셨는데, 다른 시각도 있죠. 혹자는 참여정부가 초반부터 삼성과 너무 친하게 간 것 아니냐, MB정권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하듯이 참여정부도 대기업과는 상당히 밀착해 있던 것 아니냐고요.

 

김병준 정부에 있는 사람이 기업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삼성경제연구원 보고서를 많이 읽었다며 비판하는데, 정부에 있으면 온갖 보고서를 다 읽습니다. 한국은행이나 삼성경제연구원 것도 읽고 노동조합에서 나온 것도 보죠. 인수위 시절 인사로드맵을 작성할 당시 삼성인사팀이 와서 자문을 한 것이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삼성 출신인 것 등 몇가지만 보고 삼성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오해하는데, 그런 특수관계가 어떻게 있겠습니까.

 

 

사회발전 가로막는 재벌과 관료

 

이일영 오늘 신문을 보니까 이명박 대통령도 빵집, 물티슈 같은 것을 들면서 재벌문제를 거론하더군요. 재벌이 과도하게 시장을 교란하는 행태에 대해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온 것에 대해 홍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洪鍾學 가천대 교수, 경제학. 저서로 『한국경제 새판짜기』(공저), 역서로 『성장친화형 진보』 등이 있음.

洪鍾學 가천대 교수, 경제학. 저서로 『한국경제 새판짜기』(공저), 역서로 『성장친화형 진보』 등이 있음.

 

홍종학 저는 참여정부 때 비판을 많이 한 편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 사회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우선 이념지형과 관련이 있습니다. 10여년 전 유럽에서 ‘리스본 전략’(2000유럽연합 15개국 정상이 합의한 장기발전전편집자)이 나왔는데, 당시 우리에게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어요. 현재 진행중인 ‘EU 2020’도 마찬가지고요. 이게 유럽의 정상들이 합의한 새로운 통합발전전략인데, 우리나라가 성장을 모색한다면 다른 선진국이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게 필수 아니겠습니까. 삼성 쪽 보고서를 뒤져보니까 2006년에 리스본 전략에 대한 보고서가 하나 있긴 합니다만, 내용이 터무니없습니다. 리스본 전략이 2005년에 수정되면서 성장전략을 보강하니까, 봐라 유럽도 성장으로 돈다,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우리의 이념지형을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거죠. 진보적인 학자들이 이런 걸 제대로 소개해줘야 되는데 역량이 부족하죠. 참여정부 입장으로 보면, 재벌에서는 자기네 연구물을 이만큼 가져오는데 개혁진영은 구체적 정책대안이 부족한 이런 상황이 의사결정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두번째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재벌이 강고한 위치를 차지한 데는 87년 민주화가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그전에는 강력한 군사독재로 재벌을 통제했지만,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은 임기 5년이 한계인 반면 재벌권력은 영속적인 형국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관료들도 5년 단임 권력보다는 재벌이라는 영속적 권력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해지고, 이 때문에 재벌이 점점 강고해졌죠.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을 봅시다. 이미 대부분의 산업이 독과점화된 상황에서 담합을 찾아내기도 어렵지만 암묵적 담합도 가능합니다. 공정거래법으로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수준이고, 관료의 입장에서는 재벌에 밉게 비쳐봐야 손해를 보기 때문에 정부 규제도 계속 약화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김병준 정부가 수단이 참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뭐가 끼어들죠. 로펌, 회계법인, 관료조직, 지역 같은 이른바 ‘커뮤니티’입니다. 특히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그 힘이 커지지요. 그래서 저희는 정부가 공정거래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집단소송제’를 생각해냈습니다.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힘을 시민사회에도 주는 거죠. 그런데 막상 정부에 와서 보니 이건 뭐 말을 꺼낼 수조차 없어요. 우선 정책의제로 만드는 일 자체가 국회에서부터 불가능합니다. 남소(濫)의 가능성이 크다는 반발이 바로 들어왔죠. 게다가 정부가 다른 사안들에 치이면서 이 문제는 뒤로 밀렸고, 공정거래법으로 국가 중심의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해간다, 이렇게 정리됐죠. 저는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 논의해야 된다고 봅니다. 공정거래질서를 국가가 독점 관리하는 게 옳은지 따져보고, 정말로 집단소송제로 남소가 된다면 그것이 경제질서를 얼마나 해칠지 객관적이고 면밀한 조사를 해서 시민사회가 재벌을 규제하고 공정거래를 감시하며 소비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본지 편집위원. 저서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본지 편집위원. 저서로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 『중국 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이일영 말하자면 재벌에 대한 통제는 관료나 국가로도 하기 어려우니 시민사회에 그 힘을 넘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재벌의 나라기도 하지만, 또 관료의 나라이기도 한데, 국가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경험하신 정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대영 저는 정치세력이 관료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가 핵심일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관료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국가라고 불리는 일본보다도 우리나라가 관료의 지배력이 훨씬 큽니다. 일본은 관료가 사무차관까지만 승진하지만 우리는 장관은 물론 청와대와 국회 심지어 금융기관 등 민간부문까지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정부나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몇가지 빼고는 결과가 비슷합니다. 그 이유는 경제정책을 실질적으로 수립집행하는 사람이 같은 집단, 즉 관료라는 공동체이자 동일 이익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관료 문제가 재벌 문제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크게 보면 검찰도 사법도 관료이고 이익을 공유하는 면이 많습니다.

 

김병준 보수정권 들어서면 관료집단과 더 밀착해서 갈 겁니다.

 

정대영 참여정부 때는 노력은 했지만 결과는 차이가 없었던 거죠.

 

김병준 내부에서 마찰이 계속 있었죠. 밖에서 들어간 사람들이 힘을 못 씁니다. 우선 정보 자체에 한계가 있어요. 조세분야만 해도 사실은 관료만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물론 그분들이 애국을 안한다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외부와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생기죠. 또 인센티브 구조가 달라요. 공무원으로서는 대개 연봉 1억이 안되는데 그 직을 그만두고 난 다음에 오히려 재정적으로는 영광이 오는 거예요, 민간부분에서. 당연히 민간부문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죠.

 

정대영 YS정부 이전에는 관료가 통제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군인에 의해서나마 견제는 됐습니다. 지금은 관료를 견제할 세력이 없습니다. 정치권에 그런 얘기를 하면 능력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편한 길을 가는 거예요. 관료와 일하면 그들 세력이 워낙 크니까 지원도 잘되고 일하기 쉽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개혁이나 국민이 바라는 경제구조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요. 관료의 속성은 개혁보다 현상유지가 우선이고 자신의 승진과 출세가 가장 중요하죠.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똑같습니다. 종합부동산세의 예를 봐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안된다고 하거든요. 그럼 관료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인데, 저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어렵고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관료를 통제하면 재벌 문제도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개혁세력의 사람, 가치, 비전

 

홍종학 현재 정관경언(政官經言) 유착구조가 아주 강고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을 혁파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이 험한 길을 뚫고 헤쳐가야 되는데 취약한 정치세력으로서는 힘드니까 타협하는 겁니다. 사실 참여정부 때는 이런 모습을 보였죠. 대통령이 재벌개혁 하려 하면 보수언론이 경제 망친다고 비판하고, 부동산개혁 하려 들면 관료 쪽에서 경제침체 되는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 반발하고요. 사실상 정관경언 유착세력에 휘둘리는 상황이죠. 사실 다음 정부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무기도 많지 않은데 어디를 쳐야 이 유착고리를 부술 수 있을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죠.

 

정대영 저는 선거를 잘하고 관료를 통제할 수 있다면 아주 어렵다고만 보진 않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선진국이 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관료를 통제하는 한가지 방법은 장관 임기를 정권 임기와 같게 하는 겁니다. 대부분 나라가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장관을 1~2년마다 바꿔요. 장관을 많이 빨리 해야 하는 관료의 이해와 딱 맞지요. 그런데 한명의 장관으로 5년 간다, 그러면 관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정보를 안 주고 업무를 대충하고 윽박지르고 하겠지요. 1년 만에 장관이 바뀌면 이렇게 할 수 있지만, 5년이면 그럴 수 없거든요. 조금 문제가 있고 언론에서 떠들어도 대통령이 꿋꿋하게 5년 같이 간다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돼요. 이걸 못하는 데는 관료의 욕구도 있겠지만 정치권의 요구도 있어요. 이 사람 저 사람 시켜줘야 할 사람이 많으니까요. 이것은 자리 나눠먹기지 나라를 제대로 경영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죠.

 

홍종학 저는 그 문제가 좀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국민의정부 시절 최장집(崔章集) 교수에게 정책기획위원장을 맡겼는데 아주 집중포화를 맞고 그만두었죠. 정관경언 유착에 대한 강한 공격으로 받아들인 거죠. 유착을 깰 수 있는 상대가 들어오니까 총력전을 폈던 걸 텐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관료나 재벌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나 국민의정부에 아쉬운 점은 사람을 기르지 못했다는 거예요. 당시 그런 분들이 정부의 중간급 정도에서 국정경험을 쌓았다면 지금쯤 장관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진보적인 연구소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겁니다. 삼성경제연구소나 한국경제연구원이 엄청난 예산을 쓰며 우리나라의 이념구조를 지배하고 있는데, 거기 대항할 수 있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모일 자리가 없다는 거죠. 이런 구조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10, 20년 뒤에도 똑같은 문제가 생길 겁니다.

 

김병준 말하자면 우리가 사람밑천이 적은 거예요. 정치권만 하더라도 각 당은 국가로부터 정책연구비를 수십억에서 수백억씩 받아쓰고 있습니다. 그 돈을 정책연구에 제대로 쓰면 충분히 좋은 연구소, 좋은 보고서, 좋은 대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안 쓰거든요. 정책전문가를 기르지 않습니다. 전부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했던 사람들 자리 마련해주는 정도로 쓰고 있으니 집권한 다음에도 정부에 데려다 쓸 사람이 없는 겁니다. 당의 정책전문가로서 당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청와대의 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으로도 들어와야 하는데 등용할 사람이 없는 거죠. 그런 자리에는 아무나 못 데려다놓습니다. 해당 분야를 진짜 잘 알아야지 관료세력한테 밀리지 않고 뜻을 펼칠 수 있거든요. 실제적인 정보를 잘 알고 있고 제대로 분석할 인재가 필요하죠. 그런데 그런 자리를 다 관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정책실만 하더라도 정부 부처의 대표가 와 있는 기관인지 그 부처를 통제하는 기관인지 잘 모를 정도죠.

한가지 기억나는 게 있는데, 2004년쯤 양극화 문제를 이슈화하기로 했죠. 정부가 앞서서 말이죠. 그런데 정책의제로 삼으려고 하니 자료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의 환경과 실태에 관한 자료가 전혀 없어요. 그제야 우리가 전수조사에 가까운 방대한 조사를 했어요. 하지만 한 6개월쯤 뒤에 이런 자료가 나와봐야 이미 늦은 거죠. 밑천이 부족합니다. 밑천을 쌓아가야죠.

 

홍종 그나마 그때 시작해서 진보진영에서도 양극화 문제에 대해 자료를 많이 축적하게 됐죠. 저희가 볼 만한 관련 보고서가 나온 게 2006년쯤이었죠. 그즈음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요.

 

정대영 각 분야에서 잘 찾아보면 관료 말고도 뛰어난 정책전문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문제의 경우 부동산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해결이 어려운 난제인데요, 얼마 전 현직교사가 쓴 교육개혁에 관한 책을 보고 그 문제도 조금씩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책에는 정치권의 의지만 있으면 시행 가능한 훌륭한 정책대안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 같은 전문가를 찾아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이일영 좀 다른 차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참여정부 시절을 생각해보면 복지를 비롯해 개별적인 정책은 좋은 것들이 많았어요. 국민의정부에서도 기초생활보장의 틀을 만들었고요. 그런데 문제는 우왕좌왕인 거예요. 이런 건 관료를 장악한다거나 사람밑천을 키우는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인 비전이라든지 가치, 철학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는 데서 비롯하는 것 아닐까요. 거시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을 위해 환율을 밀어주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식의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죠. 고환율 정책은 산업별로 보면 내수산업, 중소기업에는 불리하고 대기업, 수출기업에는 유리한 역분배 정책인데, 거기에 매달리게 됩니다.

 

 

한미FTA 비준 이후, 무엇을 해야 하나

 

이일영 한미FTA도 이러한 종류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참여정부에서 시작해서 이명박정부에서 매듭짓고 있는 형국인데, 시작부터 큰 흐름을 제대로 잡지 못한 대표적인 예라고 봅니다. FTA가 먹고사는 문제에 도움이 된다더라 하는 프레임에서 덜컥 시작을 해버린 거죠. 지난 5년간 나라 전체가 이 문제로 분열하며 상처를 입었고, 결국 작년 말에 비준이 되었습니다. 야당 쪽에서는 다시 폐지니 재협상이니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어떤 것도 간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진세력이나 반대세력이나 앞으로 새로 감당할 일이 있겠지요. 성장정책으로서의 한미FTA에 대해 평가를 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논의해봤으면 합니다.

 

정대영 저도 실무를 하면서 경제정책의 효과를 미리 계산해본 경우가 많지만 그게 사실 잘 안 맞습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도 대략 말씀드리면 한미FTA로 인한 경제성장 효과는 클 것 같지 않아요. FTA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두가지 경로일 텐데요. 하나는 수출이 늘어나는 것, 다른 하나는 해외로 나간 투자가 돌아오거나 외국인투자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FTA를 하면 수출이 늘어날 뿐 아니라 수입도 늘어납니다. 양쪽이 서로 시장을 열어주는 거니까요. 작년에 발효된 한EU FTA를 보면 수출보다 수입이 더 늘어났습니다. 단기간이니까 이걸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한미FTA도 수출이 더 늘어날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가봐야 아는 거죠. 그리고 국내기업의 해외투자가 국내로 돌아올 것이냐인데 이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해외에 있을 때 한국기업의 유럽법인장들에게 왜 공장을 해외로 옮기느냐를 물어보면 두가지 이유를 듭니다. 시장개척이나 관세는 부차적인 문제고 첫째가 한국의 어려운 노사관계, 둘째는 높은 부동산 가격입니다. 이러한 고비용 구조가 유지되는 한, FTA를 해도 공장이 쉽게 돌아올 것 같지 않아요.

또한 부정적 효과도 반대론자들 말대로 그렇게 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정부에서 발표한 대로 역진방지(ratchet)조항이나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잘 마무리되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잘하면 그럭저럭 수지타산은 맞출 수 있겠다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가 이토록 국력을 들일 만한 것인지, 나라가 이렇게 들끓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김교수님이 참여정부에 계셨지만, 이걸 왜 시작했나 의문입니다. 제가 볼 때는 참여정부 때 손쉬운 경제정책의 하나로 선택을 했던 거 아닐까 해요. 야당인 한나라당도 별로 반대 안할 테니까. 여러 중요한 정책들이 많은데 하기 어려우니 이걸 하면 쉽게 경제가 좋아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나 추측을 해봅니다.(웃음)

 

이일영 FTA 반대진영에서는 비판이 더 매서운 편입니다. 김교수님께서는 참여정부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셨으니 한미FTA 논란을 보며 부담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김병준 할 수 없이 대답을 해야겠네요. 일부러 유도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FTA를 가볍게 생각하고 추진한 건 절대 아니에요. 엄청난 고민을 했죠.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으로 봐도 오래된 얘기입니다. 개방형 통상국가로 가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뿌리깊었습니다. 심지어 농민들 만날 때도 그랬고, TV토론에 나와서도 일관되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걸 신자유주의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데,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개방을 하지 않으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거죠. FTA가 공격적인 부분도 있지만 상당히 방어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실제로 자동차 같은 것은 관세 2.5퍼센트라는 것이 시장에서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든요. 쏘나타급의 중형차는 몇백달러 차이가 시장점유율에 얼마나 크게 작용합니까. 당시 다른 나라들은 FTA를 해나가는데 우리는 다자(多者)협상에만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 다자협상은 농업부문 등으로 인해 계속 정체되어 있었고요. 그래서 우리도 양자협상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방어적인 측면이 있었던 거죠. 이걸 잘못하면 정말 매국노 소리를 듣겠구나 하면서 추진했던 거예요.

FTA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플러스 효과가 나올 수도 있고 마이너스 효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 체력에 달려 있습니다. 문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면 감기가 들 수도 있고, 더 건강해질 수도 있죠. 우리 몸의 면역력에 달렸죠. 그러니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죠. 예컨대 우리나라 행정 수준으로는 현재 개방을 하면 ISD의 피해가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다 고치고 관행을 바꾸고 정책관리를 해야 합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집권하자마자 그걸 다 했어요. ISD만 하더라도 정책과정관리, 품질관리를 전 공무원에게 다 시켰죠. 그게 이명박정부 와서 닫힌 겁니다.

다른 산업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조정해가면서 면역력을 키워갔는데 이제 그러지 않죠. 지금 야당도 문제인 게, 우리 체질을 얼마나 강화했는지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통상교섭본부장 앉혀놓고 협상을 못했네 어쨌네만 따지고 있어요. 그걸로 온 사회가 시끄러울 뿐 실제 체력강화를 위한 준비가 잘 됐는지는 알아볼 길이 없는 거죠.

 

홍종학 개방에 대해 저는 사회통합형 세계화인가 특정 이익단체를 위한 세계화인가를 구별합니다. 아까 노사문제를 거론하셨는데, 우리 대기업들은 한국의 노사관계를 문제삼으면서, 노동을 무력화하고 해체하는 수단으로서 개방을 얘기하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중국기업과 어떻게 경쟁할 것이냐를 놓고, 중국의 임금은 우리의 10분의 1밖에 안되니까 우리 노동자의 임금도 그렇게 낮추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제가 참여정부의 개방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용() 세계화전략’을 표명했는데 이 전략은 세계화를 해서 승자와 패자가 생기면 패자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죠. 이게 상당히 보수적인 논리입니다.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노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임금을 낮추고 노동시장을 더 유연화해야 한다, 이런 논리가 우리나라의 개방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대기업, 재벌의 논리고요. 그런데 유럽에서 얘기하는 개방의 논리는 다르죠. 미국의 전 노동부장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 같은 이들도 세계화라는 개방은 어쩔 수 없지만 국가의 경쟁력은 우수한 노동력에서 나오고, 그러니 국가가 노동에 투자해야 한다고 하죠. 저는 더 나아가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 노동자의 임금을 중국 노동자만큼 10분의 1로 낮추는 것이 대기업이 내세우는 세계화의 논리라면, 우리 노동자의 생산성을 중국 노동자 생산성의 10배로 높여서 경쟁하자는 게 진보진영이 취할 세계화의 전략일 수 있다는 거죠.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개방하면 피해가 크니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도 있지만, 개방을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고 이를 위해 정부 역량을 집중하자는 전략을 택할 수 있어요.

EU 2020’이라든가 ‘리스본 조약’이 우리에게 전혀 소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 기업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것만 강조되고 있어요. 그런데 기업이 잘되면 그 과실(果實)이 국민경제의 선순환으로 돌아오느냐? 안 돌아오고 있거든요. 이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거죠. 이 개방은 자본을 위한 개방이에요. 이제는 더이상 국내자본과 국내노동이 이익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이 이익을 공유하고, 그것에 대해 국내노동이 배타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되는 구조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죠. 지금 ISD 등에 대해서 진보진영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겁니다. 재벌이 벌어들인 돈이 우리 내부에서 선순환된다면 굳이 문제삼을 필요가 없을 텐데, 지금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고 오히려 재벌의 이해가 더 강화되는 식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이래서 역진방지조항이 중요한 겁니다. 재벌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권이 바뀐 다음에 있을 재벌개혁이거든요. 그런데 한미FTA를 체결하고 나면 다음 정권에서 재벌을 규제할 때 상당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겁니다.

 

 

조세와 재정 문제, 어떻게 풀까

 

김병준 정부를 운영해본 입장에서 노동시장 문제를 보면 지금 도대체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급선무가 고용안전망, 그 다음에 실업정책, 말하자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고 평생교육체제를 확립하는 겁니다. 이게 안되어 있으니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가 그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버티다가 함께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인 거죠. 이 구조를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데 저는 앞으로도 정부가 쉽게 풀지 못한다고 봐요. 그걸 풀려면 재정 문제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지금 우리 재정이 조세를 더 거두려면 중산층에 손댈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어요. 박정희시대부터 이른바 ‘조세 포퓰리즘’에 따라 서민, 즉 근로소득자의 거의 45퍼센트가 세금을 안 내왔죠. 법인사업자도 50퍼센트 가까이가 법인세를 안 내는 구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조세격차(기업이 부담하는 노동비용과 근로자가 실제 받는 임금의 차이로, 조세나 사회보험 등의 종합적인 부담률을 나타편집자)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거든요. 여기에 손을 안 대면 국민부담률(국민이 세금과 사회보장기금으로 내는 총액수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편집자)30퍼센트까지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해요. 그러면 복지고 평생교육이고 안된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 문제는 누가 풀 것인가? 저는 정부가 못 푼다고 봐요. 궁극적으로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는 노동자와 기업이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거죠. 이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이 일전에 힘은 다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 게 그런 뜻인데, 정부가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메기론’이죠. 연못에 메기를 한마리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어떻게든 살려고 버둥대는데, 그러다 보면 강건해진다는 거죠. 대기업 중심의 노동시장이 지금 상당히 왜곡돼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가면 자본이나 노동이나 다 죽게 되는데, 개방으로 자극을 받아야 정신 차리지 않겠느냐는 거죠.

자본세력도 내수시장이 강화되지 못하면 살아날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까지는 선두그룹을 뒤따르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죠. 그대서 빨리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시장이 해외에 있으니 내수시장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고요. 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먼저 움직이면서 세계시장을 선도해야 하죠. 당연히 창의력이나 실험성이 중요하고요. 그만큼 내수시장이 중요해지는 거죠. 국내시장에서 테스트가 안된다면 세계시장에도 못 나가는 겁니다. 내수시장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결국 노동자와 소비대중이 구매력을 가져야 되는 것 아닙니까? 자본이 이걸 깨달아야 하는데, 이때까지 정부가 과보호해주다 보니까 이런 걸 못 느끼고 있는 거죠. 개방체제가 되면 더 정신 차리지 않겠는가 저는 희망적으로 보는 겁니다.

 

홍종학 제가 참여정부에 계셨던 분들을 만나보니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때는 뭘 해보려고 해도 두드려맞았잖아요. 시민사회에서도 안 도와주고 비판만 하고.(웃음) 요즘 한국판 ‘버핏세’(부유세) 얘기도 나오는데, 그분들은 ‘과연 되겠어?’ 하는 반응이더군요. 종합부동산세 트라우마가 아닐까 싶던데요. 1~2퍼센트밖에 안되는 사람들한테 부과하는 세금이었는데 온 국민이 화를 냈었지요.

 

김병준 제가 종부세의 ‘원흉’인데, 어느날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에게 종부세에 관해 슬쩍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때려죽일 놈들이 왜 자꾸 세금만 거두냐 역정이에요. 그래서 제가, 아저씨가 종부세 내십니까 물으니, 세금은 국민이 다 내야죠 하더군요.(웃음) 세금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문제구나 실감했어요. 주택소유자의 2퍼센트도 안되는 층을 대상으로 하는데, 실제로 대상자가 거의 한명도 없는 지역에서도, 가령 제가 고향에 가면 국민 못살게 하고 세금만 많이 거둔다고 원성이 높았어요. 종부세 세수는 영세 지방정부로 나눠주게 돼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지역에는 좋은 일인데 이걸 반대한단 말입니다. 그만큼 조세저항이라는 게 심각하다는 거죠.

 

홍종학 지금은 분위기가 좀 바뀐 것 같아요. 요즘 진보진영에서도 세금 더 내기 운동 같은 걸 하고 있죠. 조세 문제를 자꾸 야당에 요구만 하지 말고 시민운동 차원에서 여론을 환기시키는 게 중요하겠다 싶어요. 또한 국민에게 먼저 복지를 맛보게 하고 세금이 낭비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겠습니다. 그러려면 과감한 체제 전환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투자세액공제가 1년에 3조쯤 되는데, 아까 말한 대로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의 목표가 고용이라면 돈을 거기다 쓰자는 겁니다. 이른바 고용보조금이죠. 2조원이면 2천만원 월급을 국가가 주는 거예요. 그럼 10만명을 고용할 수 있죠. 20조원이면 100만명쯤 되고요. 지금 이 정부에서 강바닥에다 몇조원씩 쏟아붓는 것을 보자면, 우리는 사람한테 쓸 그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겁니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이렇게 고용을 위해 지출할 때 보수진영에서 반대할 사람은 여당이면서도 재정파탄을 걱정한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아요.(웃음) 이명박정부가 4대강으로 나라를 거덜낼 때는 잠자코 있다가 복지와 고용에 지출한다고 해서 문제를 삼는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죠. 2013년체제에서는 이런 부분에 과감하고 대담하게 지출함으로써 정부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거라는 점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합니다.

 

 

국가 장기생존전략을 고민할 때

 

김병준 이번에 한미FTA 협상국면에서 야권에 아쉬운 게 뭐냐면, 우리 체질을 강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평생교육체제나 실업대책 아닙니까. 안전망 자체를 강화하는 패키지를 대안으로 내놓고 정부나 FTA를 찬성하는 쪽과 ‘거래’를 해야죠. 그리고 조세구조 면에서도 최소한 어느정도의 조세는 목표로 제시하면서, 단순히 기업이 매출액 올려서 세금을 더 내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에게 세율도 이렇게 조정하자고 아픈 부분을 건드려가면서 진행했어야 하거든요. FTA나 개방을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갈 것 같으면 여기서 패키지를 내서 거래를 해야죠. 국민에게 욕먹을 수 있는 부분은 안하고 무조건 못한다며 바리케이드 치고 시위하다가 실제로는 통과가 돼버렸잖아요. 실은 통과될 거라고 다 이야기했거든요. 미국이 비준했는데 한국이 안하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조약을 맺을 때 한국의 위상이 어떻게 됩니까. 국회의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그러면서도 그냥 통과시켜버린 거죠. 이런 논의구조가 참 유감스러워요.

 

이일영 한미FTA에 대해서는 긍정적 효과도 불확실하고 부정적 효과도 부정확할 수 있지만, 그간의 과정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가 부각이 되었죠.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를 해가면서 그것을 지렛대 삼아 안전장치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노력을 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병준 앞으로도 이걸 되돌릴 수 없다면 바람직한 체질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정부나 여권에 계속 요구해 받아내고 그걸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이일영 한미FTA 문제가 어려운 것이 협정내용의 범위나 심도가 전무후무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FTA와 비교해보면 이번에는 미국이 방대한 규모의 새로운 FTA 교과서를 쓰고 있는 셈이니까 앞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도 무척 많을 것 같아요. 미리 문제를 다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죠. 그런 측면에서 시민운동계나 정치권에서도 구체적인 쟁점을 계속 발견해가야 할 테고,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종학 경제학 교과서에 나온 대로 하자면, FTA로 누군가 이익을 본다고 한다면 그 수혜자에게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이익 보는 것에서 얼마나 세금으로 낼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FTA세’를 만들어 20조원쯤 거둔다 했을 때 그걸 누군가 낼 만하다면 FTA를 체결하자는 거죠. 20조원이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연봉 2천만원의 월급쟁이를 100만명 만들 수 있거든요.

 

이일영 정책의 큰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에 맞게 정책들을 잘 배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참여정부의 정책들 중에는 성장 원천을 발굴하려는 것도 많이 있었죠. 동북아 협력이나 지역혁신이 그러한데, 여기에는 개방이라는 흐름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협력이라는 측면도 있죠. 유럽통합도 크게 보면 두 축으로 가잖아요. 하나는 시장통합으로 가서 유럽경제공동체(EEC)가 하나의 축이 되고, 또 협력의 차원에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또다른 축이 되는 식으로요. 그런데 참여정부에서는 어느 순간에 시장 위주로 가버렸죠. 앞으로는 협력을 통한 개방의 효과를 강조할 때 성장 원천도 더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동북아가 유럽과 다른 점이, 시장이나 무역 차원에서 보자면 중국 같은 나라와는 관세가 문제가 아니거든요. 미국과도 과연 관세가 문제일까요? 우리 자동차산업을 보면 한미FTA 없을 때도 잘 팔았거든요.

 

홍종학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어요. 첫째는 중국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세계 수출 1위가 중국이에요. 첨단기술에서도 한국을 앞지르고 있고 우리 대기업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죠.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이 강성해지면 한반도는 정치적으로 위험했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경제가 빨리 건실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지금 우리가 2차 세계화과정을 통과하고 있다는 겁니다. 경제사가들이 볼 때 1차 세계화는 1900년대 초기에 있었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세계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었죠. 지금 2차 세계화를 맞고 있는데, 저는 유럽통합도 이에 대한 대응전략이라고 봐요. 일본 같은 경우 그 대응을 잘 못했기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고,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경제가 요동칠 가능성도 높습니다. 즉 격변의 시기로 들어온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FTA를 단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장기 생존전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북아 협력과 통합의 향방

 

김병준 아마 지구상에서 동북아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곳이 없을 겁니다. 어디든 다 블록화되어 있고 공동의 방어막도 형성하는데 동북아만 안되고 있죠. 사실 한일의 지도자들이 다 고민하면서도 협력이 안되는 게 결국 일본의 과거사 문제 때문이에요. 독도 분쟁, 난징학살 등등. 이러다 보니 동북아가 제대로 질서를 못 잡고 늘 우리가 가진 힘을 다 못 발휘하는 거예요. 마찰만 자꾸 생기고.

 

이일영 석유나 식량 같은 자원을 봐도 동북아 3국만큼 큰 고객이 없는데 세계시장에서는 힘을 못 쓰고 있죠.

 

정대영 유럽은 동북아에 비해 경제통합에 유리한 점들이 많습니다. 남유럽과 중유럽의 차이는 좀 있어도 경제구조가 상당히 비슷하고, 무엇보다 2차대전의 전후처리가 잘 끝났거든요. 그후 오랫동안 자원협력과 단일시장을 거쳐 단일통화까지 조금씩 통합을 이룬 결과가 현재인데, 그게 일부 잘못돼서 지금 재정위기를 심하게 겪고 있죠. 이에 비해 동북아 국가들의 사정은 굉장히 불확실합니다. 동북아 협력이 우리 경제에 중요하다는 건 명백한데 문제의 중심에 한반도 분단 문제까지 있죠. 한반도 분단은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의 여러 면을 크게 제약할 뿐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 간의 정상적인 관계 설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요. 예를 들어 우리 은행이나 기업이 경제력에 비해 더 높은 금리를 주어야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이나, 러시아와 에너지 및 철도 협력이 어려운 것이 한반도 분단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요. 또 동북아 국가는 경제력 격차가 대단히 심합니다. 일인당 GDP4만달러부터 몇천달러까지 걸쳐 있고요. 산업구조도 그렇죠. 여기에다 일본이 지금까진 훌륭한 성과를 보였지만 서서히 침몰하고 있어 중국이 독주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요. 이런 묘한 구조 때문에 동북아 경제협력은 어디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나마 3국이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어떻게 외국자본에 덜 흔들릴까 고심하다 통화스왑(currency swap, 양국간 약정된 금액 범위 내에서 필요시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방 국가의 통화나 별도 지정한 통화를 빌릴 수 있는 계편집자) 협약을 맺어서 공동 외환보유고를 만들어놓자는 정도는 이뤘죠.

 

김병준 그것도 참여정부 때 시작한 것이고, 중앙은행 총재들 간에 대화채널이 만들어진 것이 바탕이 된 거예요. 앞으로도 금융위기가 재발할 공산이 큰데 그런 걸 방어할 주요한 장치가 될 겁니다. 이런 면에서부터 조금씩 협조해가야 하죠. 또 하나는 조세협력입니다. 동북아 지역에서만이라도 최소한 조세를 놓고 경쟁을 안했으면 해요. 지금 우리 법인세가 낮으니까 일본이 우리보다 더 내리겠다고 하죠. 목표를 20퍼센트 이하로 잡아서 끌어내리겠다는데, 이렇게 세금을 서로 내리는 건 안했으면 좋겠어요. 주로 직접세를 내리고 있는데,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국 재무장관들이 조세 가이드라인 같은 것에 합의를 볼 수 있죠. 유럽 같은 경우는 EU체제를 통해 서로 규율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매년 재정적자 한도를 국민총생산(GDP)의 3% 이내로 규정하고 있고, 국가부채도 국민총생산의 60%가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금을 마음대로 내리지 못하게 되고 지출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게 하자는 거죠.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이번의 재정위기를 맞기는 했죠. 그러자 다시 재정동맹을 강화해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요. 하여간 이런 식으로 서로 협력해가는 겁니다.

 

이일영 통화스왑이 늘어난 것은 중요한 진전이죠. 먹고사는 문제에는 경제성장 문제도 있고 생존 문제도 있는데, 동북아 협력은 성장과 생존에 모두 필요한 조건입니다. 남북한, 중국, 일본이 만나는 여러 접점에서 여러 산업의 융복합을 시도해보는 것이라든지 에너지나 식량 문제에 대한 협력을 끌어내본다든지 해볼 수 있겠지요. 에너지 협력도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전에 당장 원자력발전 같은 사안은 아주 심각한 생존 문제입니다. 일본에서 대지진과 겹쳐 원전사고가 났는데도 지금 중국에서는 동부 해안을 따라서 원자력 벨트가 생겨나고 있어요.

 

김병준 중국 상황이 심각합니다. 중국이 원전을 대대적으로 짓겠다고 나서고 있죠. 황사만 해도 큰 문제인데 그쪽 원전이 잘못되면 방사능물질이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다 날아올 것 아닙니까. 이에 관해서 대화채널이 필요하고 우리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쟁점화해야지 않나 싶은데, 도리어 그걸 우리가 지어주겠다고 나오는 참이니……

 

이일영 일본은 시민사회 중심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씨 같은 이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반성을 앞장서서 제기하고 있죠. 그런 흐름은 동북아에서 공유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해요.

 

김병준 그렇습니다. 참여정부가 잘한 것 중의 하나가 전기 요금을 세계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대체에너지 쪽으로 관심이 가도록 노력했고요. 그런데 MB정부 들어와 녹색성장을 얘기하면서 대체에너지 쪽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기요금도 어느정도 상대적 수준을 유지할 줄 알았더니 되레 낮춰버렸어요. 그러다가 막판에 올리느라고 큰 욕을 먹고 있죠. 그 바람에 한동안 대체에너지 쪽이 큰 곤란을 겪었어요.

 

 

새로운 성장거점, 지역에서 찾자

 

이일영 어쨌거나 새로운 성장방식을 찾아내는 게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지금의 2차 세계화과정이 전세계적 산업구조 변화와 관련이 있어요. 이른바 ‘빅 비즈니스’가 형성됐던 20세기초와는 달리 포스트-포디즘으로 전환하면서 ‘스몰 비즈니스’와 연계되는 혁신형 기업이 출현하는 동시에, 협동조합 같은 다양한 기업형태가 공존하는 구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전환의 장이 유럽과 미국인데, 가령 미 서부에서는 동부와 달리 씰리콘밸리 같은 지역을 단위로 하는 새로운 혁신모델을 갖고 있어요. 참여정부에서도 이를 참조해 중앙정부 중심의 수도권 발전전략을 수정하려고 했지요. 이렇듯 지역에 새로운 성장거점을 만드는 게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나요?

 

김병준 대단히 어려운 문제예요. 첫째, 인력구조가 안됩니다. 지방대학 육성이나 인력양성 계획이 따라야 하고, 지방정부에 자치권이 훨씬 많이 주어져야 하죠. 도()나 광역정부쯤 되면 산업경제 자치를 한다는 차원에서 기업을 끌어올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하거든요. 지금은 토지이용에 관한 문제부터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문제, 대학을 육성하는 문제 등 모든 걸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상황이에요. 또 인센티브 부여할 때 특혜 시비의 소지도 많고요.

 

이일영 앞으로는 산업구조상 재벌이나 대기업이 고용을 일으키기 어려울 거예요. 과거엔 국민경제 운운하며 재벌에 매달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재벌을 압박해도 고용을 못 일으키죠. 결국 고용을 어디서 창출할지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죠. 자치권이 문제라면 부여하고, 재정이 문제라면 투입하고, 규모가 문제라면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김병준 지금 국가의 인센티브 운영을 보면 엉뚱한 데 쓰는 것이 많죠. 대학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애초에 낭비적 요소를 안고 지원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면, 고용을 어디서 만들어낼까 할 때 서비스산업, 특히 IT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쪽을 주목할 만합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서 고용효과가 높은데 지금 우리 수준은 형편없죠. 또 부품소재산업도 유망한데 이 역시 엉망이죠. 그러면 국가가 거기에 돈을 넣어요. 그런데 뭐가 안 따라오느냐면 바로 인력이에요. 사람이 따라붙으려면 대학이 구조조정을 해줘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자동차에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어 장착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기계공학과와 전자공학과가 결합해줘야 하는데 이 두 학과가 그렇게 안 간단 말입니다. 그러면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기업이 인력을 못 구합니다. 시스템 반도체 같은 건 중소기업이 재빨리 치고 빠지고 하면서 개발하는 거지 대기업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업종이거든요. 독일에서는 이런 부문이 엄청나게 커서 지금의 지멘스가 그렇게 성장한 거예요. 우리는 그게 안되는 겁니다. 인력 못 따라가죠, 자본 못 따라가죠. 그러니까 이런 중소혁신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는 겁니다. 단지 클러스터링 문제뿐 아니라 금융에서 인력공급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자체가 무너져 있는 거죠.

 

홍종학 참여정부에서 시작한 공기업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지금 해당 기업 직원들이 내려가고 있어요. 그런데 상당수가 사표를 낸다고 합니다. 이유가 뭐냐면, 자녀교육 때문이죠. 자녀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역균형은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한 것이 기회균등선발제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입시에서 지역별소득별 할당을 통해 자신과 여건이 유사한 사람들과 경쟁하게 하는 거죠. 사실은 이게 공정한 경쟁이에요. 지금처럼 누구나 같은 시험 보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데, 사실 이 기회균등선발제는 미국 방식이에요. 하바드대학은 미국 전역에서 신입생을 받습니다. 물론 일류고등학교 출신이야 성적이 좋겠지만 하와이나 버진아일랜드 같은 지역의 학생들은 성적이 안 좋아도 받거든요. 몇대에 걸쳐서 대학을 못 가본 가족의 자녀도 우선적으로 선발해주고요. 이런 제도가 사회체제 전환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업이나 정부에서도 지방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중에서 기회균등선발제로 채용하면 되지요. 전국 각지에 있는 고등학생을 직접 뽑는 식으로 선발체제를 바꾸자고 제가 몇년째 제안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게 되겠느냐고 반문하죠. 그런데 사실 미국은 이런 식으로 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몇년 일하다가 야간대학 다니고 비즈니스 스쿨 졸업해서 나중에 좋은 직장으로 옮겨 CEO까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래전부터 우리는 사지선다형의 시험을 치는 방식이 공정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은 하나도 공정한 게 아니거든요. 서울 강남의 학생들은 한달에 몇백만원씩 과외를 받고 농어촌 지역의 아이들은 전혀 못 그러는데, 이들이 같이 시험 보는 게 공정하다고 하는 건 말이 안되죠.

 

이일영 말씀하시는 중에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네요. 재벌, 관료, FTA, 동북아, 지역 등을 얘기해보았는데, 여기 걸린 문제들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명박정부 들어서고 1년 후에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 3대 위기를 거론했죠.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복잡다단한 우리 현실을 참으로 잘 요약한 진단인데요, 이 3대 위기도 또 서로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성장을 제약하는 문제들이 서민경제 위기와 관련이 있고 민주주의나 남북관계의 위기가 새로운 성장을 막는 측면도 있습니다.

특히 남북관계를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시켜서 좀더 논의해보고 싶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논의를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향후에 우리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때 무엇을 먹고살까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텐데요. 여러가지 논점이 있겠지만 우선순위를 매겨보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같은 목록 만들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2013년 이후 새로운 성장을 위해 절실한 일들을 짚어주시면서 대화를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성장을 원하는가

 

정대영 진보진영은 성장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콤플렉스가 두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하나는 성장은 별로고 분배만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유럽의 사례를 보면 성장과 분배는 충분히 같이 갈 수 있거든요. 장기적으로는 같이 가야 하고요. 성장도 더 하고 분배도 더 잘하면 국민의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지는 거니까요. 다른 하나는 성장은 우리가 잘 모르니까 이른바 성장론자에게 맡겨보자는 생각이지요. 이때의 성장론자는 금리 내리고 환율 올리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건 집만 지어서 계속 성장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오늘 대화에서도 확인되었고요. 우선 성장과 성장정책에 대해 인식을 바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성장전략을 택할 것인가입니다. 우리 경제는 대외여건이 아주 나쁘지 않고 이상한 정책만 안 쓰면 기업의 경쟁력이 있으니 성장률 자체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장이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거죠. 결국 국민이 느끼는 성장전략의 핵심은 일자리 정책입니다. 일자리 늘리기는 과거 모든 정권이 목표로 했지만 실제 성과는 거의 없었죠.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먼저 일자리 늘리기를 막거나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을 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이런 정책이 많아요. 대표적으로 금융 쪽에서 은행 설립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웬만한 나라들은 은행법상 설립요건을 갖추어 신청하면 설립을 허용하는 준칙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은행이 새로 생기면 기업투자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죠. 또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의 하나는 건전 은행 간의 합병을 너무 쉽게 허용해준다는 겁니다. 건전 은행간 합병은 경영층과 주주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좋은 일자리가 몇천개 없어지고 금융산업이 발전하는 것도 수출이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찾아 시행하는 것인데 그중의 하나가 중소기업 대표이사에 대한 연대보증제를 폐지하는 것이에요. 이 제도가 있는 나라는 별로 없어요. 연대보증제 폐지는 강력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이고 일자리 창출정책이에요. 기업을 경영하다 잘못하면 자신과 가족의 재산까지 다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 창업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죠. 이렇게 일자리 늘리는 정책들은 찾아보면 또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경제의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훌륭한 분들이 너무 거대담론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문제가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닌가 해요. 지금 우리 경제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찌 보면 어렵다는 게 핑계인 듯해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는 핑계지 해결이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관료의 통제도 그렇고, FTA 때문에 더 시급한 재정개혁, 교육개혁 등이 뒤로 미루어지고 농업과 금융산업이 계속 낙후되어 있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에서 꼭 필요한 정책을 찾아내고 잘 디자인해서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이 2013년에 들어설 정권이 성공하기 위한 승부처가 될 겁니다.

 

홍종학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습니다. MB정부 들어서는 외환위기 때의 경제관료를 다시 고용하고 있어요. 올해가 굉장히 불안한데, 옛날의 성공신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실 그래서 뽑은 거죠. 그런데 세상은 바뀌었거든요.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재벌은 더이상 국민기업이 아님을 인식해야죠. 지난 몇년간 우리 국민이 고통스러울 때도 재벌은 국민경제에 기여하기보다는 자기 이익 늘리기에 혈안이었죠. 골목까지 파고들어와 슈퍼마켓과 빵집과 떡볶이집까지 확장하는 식으로요. 고용도 안하고요. 또 상당수 재벌은 외국인 주주들이 들어와 있어서 국민기업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외국기업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L.A.를 점령하라!’(Occupy L.A.) 시위에서 연설하는 것을 보니 이분 이야기가, 그동안 보수주의 철학자들은 어떤 노동자나 실업자가 가난하다면 그 개인이 못나서 그렇게 됐다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수백만이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와 국가의 문제라는 거죠. 미국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지금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1년에 수조원씩 이익을 내고 있고,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도 우리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의 눈높이를 낮춰라, ‘내가 해봐서 아는데’ 열심히 하면 된다고 되풀이 얘기하죠.(웃음) 우리 현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순간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안됐지만 지금은 가능하다고 보는 게,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신화가 무너졌거든요. 전세계 사람들이 기업이 성공하고 부자가 잘살면 자신도 잘살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데 나서고 있어요. 답은 이미 있습니다. 일단 보수주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특히 우리 사회는 정관경언 유착 탓에 이념지형이 수구보수 일색인데,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2013년체제를 만드는 시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병준 제 생각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핵심입니다. 두가지 중요한 것이, 우선 성장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권을 잡겠다는 사람은 이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곧 나올 책에도 썼습니다만, 실제로 진보진영의 누구든 대통령이 된 그날 밤부터는 성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지속 가능한 동시에 부가 한쪽에 편중되거나 반쪽짜리가 되면 절대 안된다는 거죠. 또 내수기반이 강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소비를 해주고 그 소비를 통해서 시장에서 혁신이 일어날 때 사회가 안정적으로 상생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보개혁을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무엇으로 성장을 할지 고민하다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그 고민이 없기 때문에 개방정책이나 서비스산업에 대해 무조건 제동을 걸지 않나 싶어요. 보수진영 역시 재정이나 복지에 대해 새로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세금을 더 내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나도 살아남고 너도 살아남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나 정치권 모두 서로 분노를 일으키고 그 분노 위에서 권력을 획득하려고 애쓴다는 거죠. 분노를 일으켜서 그걸 타고 집권한 정권은 반드시 분노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젊은층을 자극해서 네가 일자리 없는 것이 대통령 때문이라고 그러는데, 그렇다면 자기는 대안이 있느냐는 거죠. 대안이 없는 상태로 집권해서 1년 지나고 2년이 지나면 더 큰 분노가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겁니다. 국가는 더욱 불안해지고요.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떻게 가능할지 양쪽 모두 깊이 고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정치권은 이런 고민을 덜 할 겁니다. 내일 당장 표를 얻어야 되는데 분노를 일으키는 것만큼 쉬운 방법이 없죠. 결국 지식인집단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모델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 새로운 담론을 내놓을 때 정치권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 토론이 그런 생각의 실마리가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일영 오늘 대화에서는 2013년 이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때 부딪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국제정세 차원에서 큰 변화가 있고 우리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권력교체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냉전질서나 분단체제가 새로운 질서로 넘어가는 이때 새로운 성장모델이 무엇일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의 한국사회가 박정희모델과 신자유주의모델이 어지럽게 혼합된 상태였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용을 핵심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 대화에서 공감했습니다. 또 성장의 지속성을 저해하는 사회적 격차를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통제할 방안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대화를 시작하며 무엇을 먹고살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정작 새로운 생산력의 원천에 대해 많이 논의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2012.1.26 세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