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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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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열여섯의 섬』 『꽃의 나라』등이 있음. kkunha@naver.com

 

 

 

그 악사(樂士)의 연애사

 

 

그 친구 집은 바닷가에 있었다. 집은 작았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목수라 해도 화장실과 부엌을 함께 만들어 넣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대신 주변이 넓었다. 문 앞으로 천막 쳐놓은 공간이 있고 그 아래로는 압력솥과 냉장고, 식기 따위가 있었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통으로 쓰는 냉동고와 플라스틱 수납박스 같은 것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너머로는 갈대밭이었다.

나는 산 중턱에 살았다. 섬에는 높은 산이 없어서 친구집까지도, 봉우리까지도 모두 십분 거리였다. 내 거처는 농장을 했던 곳이라 나무가 많았다. 비파나 황칠나무처럼 귀한 것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농장이었던 때는 오래전이었다.

십여년 전 그 땅을 구입한 집안이 있었다. 그 가족은 오로지 호미와 괭이질로 비탈을 일구었다. 파낸 돌은 차곡차곡 기초와 담벼락이 되었다. 십년을 꼬박 채우고 나자 농장은 모습을 갖췄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오렌지와 양다래를 심었다.

그곳은 사람의 수고가 시간과 만나면 어떤 물리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한눈에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긴 시간의 노동이 무슨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지도 증명하고 있었다. 집안의 노인들과 며느리는 중노동으로 인해 병을 얻었고 오렌지와 양다래가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차례대로 눈을 감았다.

그들이 세상을 뜨자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농장을 지어놨다고 해서 나무가 스스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과실은 단맛을 배지 못했고 전원주택 형태로 지어놓은 조립식 집은 형태가 비틀어졌다. 그저 새들만 날아와 부리질 하다가 제 짝을 불렀다. 노고가 폐허로 변한 것이다. 이런 경우 땅을 샀던 게 득인지 독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내가 그곳을 얻게 된 것은 마을에서 빈방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혼자 남은 아들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높은 액수의 사글세를 원했다. 땅의 마지막 역할은 그런 것이었다.

뒷산과 묵정밭, 나무숲이 나의 배경이라면 그 친구에게는 해수욕장과 푸른 바다가 있었다. 파도소리와 갈매기, 바다직박구리도 있었다. 그와 나의 차이는 또 있었다. 내 마당에는 녹슨 바비큐 구이통과 허물어진 닭장과 빈 기름통이 굴러다녔지만 그의 마당에는 색다른 것이 있었다. 야마하 PSR-2100 디지털 키보드, 롤랜드 앰프, 롤랜드 싸운드 모듈, 이퀄라이저 같은 것들. 그것 때문에 천막을 쳐놓았던 것이다.

그런 물건들은 술병 든 여자들이 왔다갔다 하고 우주볼 조명이 돌아가는, 습습하고 퀴퀴한 지하에 있어야 옳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예전에 그런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야간업소 건반주자, 일명 마스터였고 몇년 전까지 그 일을 했다.

그가 악기와 음향기기를 짊어지고 지상으로 올라온 것은 노래방의 번성 때문이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노래방이 생겨나자 악사(樂士) 직업은 퇴색되었다.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섬마을 경로잔치를 끝으로 폐업했던 것이다.

야간업소 마스터라면 마르고 신경질적인 사내를 떠올리기 마련이나 그는 그런 선입견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우선 덩치가 씨름선수를 연상하게 했다. 힘도 셌다. 그런 탓에 직장을 잃은 비참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해수욕장 마을의 자칭 이장이었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그곳의 총 인구는 3.5명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노인 내외가 사는 집이 한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선배가 살았다 말았다 하는 컨테이너가 있었다. 육지의 야간업소에서 기타를 친다는 그 선배는 어쩌다 한번씩 오기에 0.5명으로 쳤다. 그 이상한 셈법대로 하면 나는 그 마을의 4.5명째 주민이었다.

사람 드문 곳에서는 벼슬하기 쉬운 법이다. 그는 단박에 개발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나에게 주었다. 주민들에게 던져준 직함은 여러개였다. 스스로는 이장 겸 어촌계장이며 노부부는 각각 노인회장과 자문위원장, 심지어 0.5명에 해당되는 선배도 마을 운영위원장이었다. 물론 면사무소와 해수욕장이 속한 리사무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아서 우리의 자존심을 조금 상하게 했다.

나에게는 고양이가 한마리 있었다. 정확히는, 나에게 사람이 하나 생겼다,고 고양이가 말하는 게 맞았다.

농장으로 이사를 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해장죽(海藏竹)과 오동나무를 한팔 길이 정도 쳐낸 거였다. 명색이 섬인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서운했다. 일을 마치자 수평선이 나타나고 저 아래 악사 친구의 작은 지붕과 천막도 보였다. 그때 내 발목에 몸을 문지르는 게 있었다. 노란 점이 있는 암컷 고양이였다.

주인 말에 의하면 길고양이 한마리가 스며들어 새끼를 낳았으며 얼마 후 뿔뿔이 흩어졌는데 무녀리 하나가 사람 쪽으로 줄을 섰다는 것이다. 그 녀석은 간혹 찾아오는 집주인에게 의지해 살다가 새로 나타난 나를 자신의 파트너로 정했다.

그에게는 강아지가 있었다. 진돗개라는데 먹성은 똥개 품성이었다. 그 녀석은 무어든 먹었다. 내가 지나가다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나를 쫓아와서 운동화를 핥곤 했다. 그만 좀 처먹어라, 너는 돼지가 아니고 개야 개. 고함치는 소리가 내 집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름은 번듯했다. 빅토르 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야.”

섬에서 외국 뮤지션 이름을 가진 개는 그 녀석이 유일했다. 하지만 빅토르 최, 네 글자를 연속 발음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는 주로 이인칭으로 불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는 꼬박꼬박 풀네임을 불렀지만 나는 성을 빼고 불렀다. 빅토르. 그의 선배는 그것도 귀찮았는지 토르라 불렀다. 노부부는 백구라고 불렀다. 어떻게 불러도 혀를 빼물고 달려왔다. 모든 주민에게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불린 개도 빅토르가 유일했을 것이다.

개가 음계를 이해한다면서 시범을 보인 적도 있었다. ‘도’를 치고 나서 내려다보면 빅토르는 가만히 있었다. ‘레’를 쳐도 그랬다.

“빅토르 최, 너 ‘미’ 좋아하지?”

‘미’를 치자 엉덩이를 흔들며 앞발을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음계가 아니라 말을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앞의 두번은 주인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니까 저도 그렇게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악사는 빅토르가 ‘미’를 좋아하는 개라고 우겼다.

그는 자식을 가져보지 못한 탓에 강아지에게 자신의 성()까지 물려주었지만 정작 밥 챙겨주는 것은 아주 성가셔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든 아니든 빅토르는 계속 먹어야 하는 개였다. 그래서 내 집에까지 얻어먹으러 올라오곤 했다. 뒷날 듣기로, 그는 목줄을 풀어주며 이런 말을 종종 했단다.

“저 위에 가봐. 지금쯤 밥했을 것이다.”

짐승에게 들볶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고 있으면 고양이가 현관 유리문에 코를 박고 바라보았다. 무언가 먹는 모습을 누가 보고 있는 것도 불편한데 녀석은 앞발로 문을 긁으며 애절하게 울기까지 했다. 나도 아침저녁으로 남의 밥 차려주는 신세가 되었다.

밥 준다는 소문이 고양이 세계에 퍼졌다. 몇몇 놈들이 밥그릇을 거쳐가더니 나중에는 몸집이 크고 인상도 고약한 검정고양이가 나타났다. 몇번 싸움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지붕으로 도망쳤다.

고양이가 자신의 밥을 반 정도 남겨둔 게 그때부터였다. 배가 부르거나 입맛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틀린 짐작이었다. 검둥이가 천연덕스럽게 먹는 사이 고양이는 지붕에 낮게 엎드려 자신의 상납품이 잘 먹히는지 내려다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검둥이가 어슬렁거리며 사라지자 고양이는 비로소 내려와 바닥에 등을 문지르며 한동안의 평화를 만끽했다. 그게 그들만의 질서로 보여 나는 관여하지 않은 채 밥만 넉넉히 퍼담아 주었다.

 

호젓한 곳에 중년남자 둘이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심심한 짓이었다. 사실 섬 자체가 그랬다. 좁은 섬마을에서는 같은 사람을 몇번씩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인사치레가 쉽지 않다. 조금 전 헤어졌는데 십분 뒤 다른 곳에서 스치게 되면 모른 척하기도, 다시 알은척하기도 어색했다. 그래서 생긴 섬마을 인사법이 있다. 두사람이 다시 만나면 먼저 본 사람이 말한다.

“뭐 하는가?”

그럼 남은 사람이 답한다.

“어디 가는가?”

그 정도로 지나가고 두시간 뒤 다른 곳에서 만나면 또 그 인사를 한다. 뭘 하고 있는지, 어디로 걸어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 바꿔서 물어도 상관없다. 그와 나도 그랬다. 내가 내려가면 어디 가는가?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대꾸했다. 뭐 하는가? 차이가 있다면 돌아오다가 만나면 어디 갔다 오는가,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럴 때 대답은 이거였다. 뭐 하고 있었는가?

밤과 술에 관련된 직업이어서 그에게는 수많은 여자가 스쳐갔다. 쉽게 만나 가볍게 헤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깊이 사랑하였으되 끝내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여인도 있었다. 그중 한명에 관해 듣게 된 것은 종일 비가 내리던 초가을 오후였다. 비 탓에 새울음도 멈추어버린 다섯시쯤 저 아래 천막에서 어떤 연주가 들려왔다. 그것은 뜻밖에도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였다.

 

어두운 사막의 하이웨이. 차가운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쳐요.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여요. 여기는 천국 아니면 지옥일 거야. 호텔 캘리포니아에 온 것을 환영해요. 이곳엔 방이 많아요. 아무 때나 찾아올 수 있어요.

 

 

노랫말이 이랬던 곡. 나는 오호, 소리를 내뱉었다. 비록 악사이긴 해도, 비 내리는 바닷가에서 혼자 그런 곡을 연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던 것이다. 이런 비유도 괜찮다면, 택배기사 삼십년에 트럭운전의 달인이 된 사람이 갑자기 스포츠카를 몰고 나타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섬마을 단란주점의 음악이란 철저하게 손님 입맛에 맞게 선곡되는 거 아니겠는가.

경이로운 기분까지 들어버린 나는 우산을 든 채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마당귀에 서서 음악을 들었다. 지하철 같은 데서 파는, 녹음상황이 불확실한 풍의 연주였으나 파도 따라 흘러가듯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그리고 라이브였다.

빅토르가 나타난 게 그때였다. 헉헉거리며 나타난 녀석은 푸르르 물기를 털어내고는 곧바로 고양이 밥그릇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붕으로 도망친 고양이는 자신의 밥그릇이 방금 사온 것처럼 반짝반짝 변해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처절하게 울었다. 나는 빅토르의 목줄에 묶여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한잔하러 내려오게. 우리 빅토르 최 밥 좀 주고.’

이렇게 비서를 보내는 초청은 처음 받아보았기에 아니 갈 수가 없었다. 주둥이로 빈 밥그릇을 밀고 있는 녀석에게 심부름값은 챙겨주어야 해서 계란을 부쳐 한그릇 비벼주었다. 빅토르는 몸이 흔들릴 정도로 꼬리를 쳤다.

인적 끊긴 백사장에는 동풍에 떠밀려온 해초 무더기만 무덤처럼 여기저기 쌓여 있고 그 뒤로는 갈매기들이 깃에 부리를 묻고 있었다. 잔파도가 모래 끝에서 부서지고 그 모든 것들 사이사이를 물안개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여름 피서객들의 몸부림이 아득했다.

탁자에는 맥주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잔을 받으며 앙코르를 신청했다. 그는 보란 듯이 썬글라스를 쓰고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음악이 뒤섞이자 물안개가 더욱 부풀어올랐다.

“이 곡을 아주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네.”

연주를 마친 그는 입을 열었다.

“오늘 그 여자 생일이거든.”

 

경기도 어름 출신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랫녘을 향해 도시에서 도시로 일년씩 끊어 건너뛰었고 그게 버릇되다보니 그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다. 마스터와 업소 여자는 불가분의 관계다.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기도 하거니와 딱히 의지할 곳 없는 여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내가 마스터이기도 하다. 많았던 여자들 중에 이 여자가 같이 살고 싶은 1순위였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장사 수완도 좋고 얼굴도 괜찮았고…… 뭣보다도 성격이 인간적으로 좋아서 진상부리는 손님도 잘 다뤘지.”

그런 기억도 기억이지만 이렇게 여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데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영업이 끝나고 악사가 천원짜리 지폐를 세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다가와서 이천원을 내밀었다.

“뭐야?”

“신청곡이 있어.”

“그냥 말하면 되지.”

“아니, 이 곡은 정식으로 듣고 싶어.”

“뭔데?”

“호텔 캘리포니아.”

악사는 귀가 뚫리는 것 같았다. 항구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5인조 밴드를 시작하게 된 것도, 선배 연습실에서 밤이 새도록 연습을 한 것도, 상고 공고 모든 축제를 찾아다니며 무대에 올랐던 것도 다 어느 여고생이 이 곡을 몹시도 좋아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나이 때의 연애는 길 걷다가 만난 꽃밭 같은 거였다. 보고 있으면 좋지만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아도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고생은 트럼펫을 부는 다른 고등학교 밴드부 애한테 가버렸다.

아무튼 그는 그 곡의 기본형이 Bm A#으로 진행된다는 것과 뛰어난 리드기타리스트 한명만 있으면 연주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곡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한 여인을 위해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주했다. 그녀는 벽에 붙어서서 들었다. 좀 알아먹을 수 있는 부분은 입으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나 생일이야. 생일에는 이 음악이 듣고 싶어져.

“심수봉이나 김수희 노래가 아니고 호텔 캘리포니아라니. 그런 팝송을 알고 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르는 여자는 한명도 없었거든. 나 마스터 노릇 하는 동안 이 노래 좋아한 사람은 딱 그 여자 한명이었어.”

나는 동의했다. 같은 곡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것은 학교나 학원, 마을, 회사, 자격증을 공통으로 하는 것보다 오백배는 더 감동적이다. 돈 한푼 안 들이고 마음의 문을 여는 최고의 방법. 더구나 생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엔 기억도 안 나지만 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하루. 그렇기에 다들 일년씩 목 빼며 기다리는 것이다. 가난뱅이가 큰소리칠 수 있는 날이 투표일과 자기 생일인데 선거는 자주 안 돌아오니까.

그래봤자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뭐 하느냐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동료들을 무시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 곡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한번 더 연주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권리 정도긴 했다. 그것도 오래 못할 것이, 아가씨들이 자야 할 시간인데다가 홀 또한 악사 소유가 아니었다. 여자가 말했다.

“우리 이 곡을 녹음해서 나가.”

“어떻게?”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줘. 내가 통화녹음을 할 테니까.”

둘은 그렇게 했다. 선택지가 빈약한 상황이면 그런 방법도 만들어졌다. 둘은 사람들 눈을 피해 바닷가로 갔다. 방파제 끝에 앉아 배터리가 닳도록 연주곡을 들었다. 여자는 예전에 그 곡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악사는 그 곡을 무지 좋아했던 여고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원이 캘리포니아 호텔에 가보는 거였다고 여자가 말했고, 트럼펫을 너무 열심히 불어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와버린 애가 뭐가 좋다고 따라갔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일전에 듣자니 애를 셋이나 낳은 뚱뚱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다더라고 악사가 말했다. 여자가 대꾸했다. 쌤통이다, 더 쪄버려라. 말이 잘 섞이고 시간이 잘 섞이고 입술이 잘 섞였다.

배만 있었으면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로 갔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천국 아니면 지옥인데다가 거기는 빈방도 많다니까. 하지만 선착장에 묶여 있는 저 많은 배들 중에 그들의 것은 없었다. 섬에는 캘리포니아 호텔도 없었다. 그래서 두사람은 낙원장 203호로 갔다.

“같이 살자고 말했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싶었으니까.”

빅토르는 돌아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랫배가 땅에 끌릴 정도였다. 고양이 밥을 안 남겨놨다는 증거였지만 타박할 여유는 없었다.

“한동안 고민을 하더니 결국 싫다더라고.”

“………”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대. 언니 집에 맡겨놨다는데 절대 시집은 안 가겠다고 아들하고 약속을 했다나.”

“저런.”

“그러고 갔어.”

“사랑하자 바로 이별이었군그래.”

“내가 보냈어.”

나는 남은 술을 따르다 말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춤추는 꼴을 날마다 보고 있자니 괴롭더라고.”

그날밤 고양이가 검둥이에게 시달리는 소리가 두번이나 들렸다.

 

날씨가 질기게 궂었다. 이틀거리로 가랑비가 찾아온 탓에 물안개도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여전히 뭐 하는가, 어디 가는가 하는 인사를 했고 뭐 하고 있었는가, 어디 갔다 오는가 하는 인사도 했다. 날씨나 요즘 조업상황,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작전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사이 빅토르는 몸집이 불어났다.

방귀 잦으면 똥 싼다는 말처럼 궂은 날씨는 끝내 폭풍을 끌고 왔다. 파도가 높아지고 갯강구가 자취를 감추더니 초속 22미터 강풍이 몰아쳤다. 풀이 바닥에 드러눕고 나무란 나무는 북서쪽을 향해 고개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6미터짜리 파도는 해수욕장을 거꾸로 뒤집었고 기관단총 탄환처럼 빗방울이 날아왔다. 마당에 고인 물도 현관 안으로 들어오려고 넘실거렸다.

나나니벌도, 동박새도, 비둘기도 어느 구석에 박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육지 쪽으로 날려가버렸는지도 몰랐다. 급기야 집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밧줄로 집을 감싸 바위에 칭칭 묶어놓았는데도 곧 이륙할 것처럼 흔들렸다.

마당으로 파고든 바람은 돌담에 부딪힌 다음 핑그르르 돌았다. 수십년 묵은 백일홍 가지는 빗자루질이라도 하듯 땅바닥에 붙어 회전했다. 저녁에는 무언가 찢어지고 깨지는 굉음이 연달아 들렸다. 지붕 패널이 뜯겨나간 것이다. 거실은 천장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순식간에 흥건해졌다. 나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창문을 누르고 있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밤사이 폭풍은 잦아들었다. 산에서는 흙탕물이 콸콸 내려왔고 거실에 받쳐둔 함지박에도 물이 차고 넘쳤다. 뜯겨나간 지붕의 패널이 여기저기 널브러진데다 아직 붙어 있는 부분 역시 솟구치고 휘어져서 보기에도 참혹했다. 도망칠 곳이 없어져버린 고양이는 오래도록 울었다. 기온도 낮아졌다. 하룻밤 사이에 가을이 끝난 것 같았다. 나는 벗겨진 지붕과 뿌리를 드러낸 채 누워버린 벚나무를 바라보다가 뒷정리를 했다. 마당을 쓸어내고 도랑에 쌓인 나뭇잎을 치우고 함지박을 비운 다음 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럴 때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것 말이다.

뜬금없게도 나는 배호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랑이라면 하지 말 것을, 이렇게 시작하여 아리송한 가사 끝에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으로 끝나는 노래. 이 판국에 뭐가 좋다고 혼자서 흥얼거릴까 싶었는데 입을 다물자 역시나 능선을 따라 노래반주가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의 악사가 이번에는 전형적인 트롯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뭐지, 하는 심사가 되어 나는 걸레질을 멈추었다. 이렇게 되면 청소가 귀찮아지고 방은 아직 빗자루질도 안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배호라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가수 아닌가. 이른바 불꽃처럼 살다 간, 29세에 홀연히 숨을 거둔 사람.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그런 노래를 불렀던 추억이 내겐 있다. 그때도 배호의 가사는 늘 헷갈렸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번번이 ‘돌아가는 삼각지’로 끝났었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악사 집으로 내려가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음악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바꿔버리는 능력도 있다.

그의 집도 바람에 시달린 모습이었다. 양은그릇이 나뒹굴고 있었고 천막도 반 정도 찢겨나간 것을 대충 묶어놓은 형국이었으나 그는 예의 썬글라스를 낀 채 내 손에 들린 술병을 바라보았다.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래 솜씨가 뛰어난 여자가 있었다. 화류계의 아가씨라면 대부분 보통 수준은 넘는다. 같은 노래를 방마다 돌아다니며 매일 불러대니 누군들 안 늘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북한여자들처럼 몇가지 노래를 한가지 창법만으로 부른다는 것인데 그녀는 달랐다. 프로의 창법과 호흡을 가지고 있었다. 가수지망생이었고 그쪽 세계에 몸을 담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녀는 인기를 끌었다. 술도 잘 마셨다. 잘 마셨다기보다는 충동적으로 마셨다. 충동을 넘어서 폭발적으로 마시기도 했다.

그녀는 취하면 손님의 신청곡을 불렀다. 레퍼토리가 다양하고 장르도 풍부했다. 「정선아리랑」도 잘 불렀던 것으로 보아 「창부타령」이나 ‘춘향이 칼 차는 대목’ 같은 것도 한번쯤은 불렀지 싶다. 하지만 더 취하면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오빠 그거, 그러면 배호의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이었다. 남자 키(key)에도, 여자 키에도 다 맞췄다. 그거 말고도 더 있었다. 「누가 울어」 「마지막 잎새」 「당신」 같은 노래들.

배호 노래를 부른 날은 악사 품으로 오거나 손님과 외박을 나갔다. 손님 따라 나갔다가도 뒤늦게 악사를 찾아왔다. 술에서 깨어나면 이렇게 물었다. 나 또 배호 노래 불렀지? 그러면 악사는 준비해둔 술을 꺼내놓았다. 해장술은 여자의 버릇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배호는 그녀가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는 신호나 통로 같은 거였다. 취향에 맞춰 맥주에 소주를 섞어주며 그 노래들이 18번이 된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한잔 마신 다음 몸을 뒤틀었고 뒤틀림이 가라앉자 질문과는 다른 각도로 되물었다.

“배호 노래의 특징이 뭔지 알아?”

“글쎄, 멋진 저음이나 뭐, 건방진 창법?”

“그것도 맞긴 한데 더 중요한 게 있어.”

“………”

“목이 타서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의 창법.”

나무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배호는 사주에 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평생 갈증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저렇게 물기를 찾아 방황하는 목소리를 내는데 그것을 수음(水音)이라고 한다. 수음의 특징은 어둡고 축축하다……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악사 자신은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어떤 놈한테 들은 거야. 그 자식 목소리랑 창법도 그랬거든.”

그는 잠자코 들었다. 과거의 남자 없이 이곳까지 온 여자는 없었다.

“배호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 육십년대 후반이었는데 그때가 우리나라 국민이 뭔가에 갈증을 느끼는 시기였대.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목이 더 마르는 병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다들 배호를 그렇게 좋아한 거지. 남 같지 않으니까. 내 편 같으니까.”

여자는 건배를 하고서 혼자 마셨다. 몸 뒤트는 각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 자식이 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인데, 배호 이미테이션 가수였어. 알지? 몇푼 받고 모창 테이프 녹음해주는 그런 사람. 거기에 배호 사진 붙여서 청계천이나 남대문에 넘기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그 자식이 물기 없는 나무같이 그랬어. 괴팍하고 성질 잘 부리고…… 배호 노래는 정말 잘했는데 아직도 가수로 성공 못했나봐. 전국노래자랑에도 한번 못 나온 거 보니까…… 개새끼.”

그 말대로 하자면 애인을 멀고 먼 섬으로 보내기 전에 죽어버린 배호가 다행이라 해야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해장술의 장점이자 단점은 급속하게 취하는 거였다. 그녀는 불과 이십분 만에 조금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악사는 말리지 않았다. 이 여인네들이 이렇게 과거로 말려들어가버릴 때는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근데 씨발, 뭐가 좋다고 나는 취했다 하면 그 노래를 부르고 자빠지는지 몰라.”

여자는 다시 안기며 울었다.

“이렇게 밸 없는 년 봤어? 내가 미친년 아니고 뭐야?”

악사는 자칭 미친년을 감싸안았다.

“그 새끼, 지금이라도 목졸라 죽여버리고 싶어…… 박선주 노래처럼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했어야지. 우리는 안녕 소리도 못했어. 그러니 한번은 만나겠지? 만나면 사랑한다고 말하고서 회칼로 배때지를 쑤셔버릴 거야.”

여자가 조금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듯이 그들도 조금 전에 했던 것을 되풀이했다. 여자는 전기히터처럼 재차 뜨거워졌다.

 

나는 그 대목에서 저번처럼 앙코르를 신청했다. 그는 연주를 하며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연주와 노래의 차이는 컸다. 노랫말이 끼어들자 히터처럼 뜨거웠다는 여인과 물기 없었다는 사내, 그리고 둘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악사, 이렇게 셋이서 삼위일체 신파극을 완성하고 있었다. 하긴, 신파 아닌 사랑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연애란 갈증과 원망에 의해 촉발된 염증이 같은 부위에서 계속 재발하는 소모성질환 같은 거였다. 그런 게 없는 관계를 우정이라고 따로 부르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는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한 「호텔 캘리포니아」의 노랫말에는 결함이 있었다. 이 곡을 쓴 돈 헨리가 그사이 연애를 몇번 해봤다면, 세상 어디든 짧은 천국 긴 지옥일 뿐,이라고 고쳐놨을 것이다.

나는 오징어포를 빅토르에게 던져준 다음 악사의 잔에 술을 따랐다. 빅토르는 한입에 먹어치우고 그는 천천히 여러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까 전화가 왔었어.”

“지금 그 여자? 전화를 간혹 하나보지?”

“아니, 아주 오랜만에 왔어. 여기 돌풍이 불었다고 뉴스에 나왔대. 다른 섬에서는 배가 깨지고 낚시꾼도 죽고 했나봐.”

나는 지붕을 떠올리면서 담배를 하나 피워물었다.

“괜찮냐고 물어오는데…… 배도 안 타는 나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

“………”

“목소리가 많이 늙었더라구.”

주인과 나는 한바탕 설전을 했다. 나무를 쳐낸 탓에 지붕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여기를 이렇게 뚫어놓았으니 샛바람(동풍)이 들이닥쳐 이렇게 됐지.”

“남동풍이었어요. 저 나무 꺾인 방향을 보세요.”

“샛바람이었어.”

“남동풍이었다니까요. 바람보다도 지붕이 낡아서 그런 거죠. 떨어진 것들 보세요. 속이 삭았잖아요.”

“이 빌어먹을 놈의 집, 바람에 홀랑 날아가버릴 것이지 뭐 한다고 붙어 있고 지랄이야.”

돌아서는 주인의 뒷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새로운 곳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러고 나자 겨울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전날보다 기온이 5도나 더 내려간 날, 뭐 하는가, 인사에 그는 새삼 대답을 했다.

“학꽁치를 좀 낚아보려고 말이야. 근데 채비를 어떻게 만들지?”

구형 낚싯대를 매만지며 배시시 웃는데, 웃는 이유가 학꽁치 낚기에는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너무 큰 낚싯대였던 것이다. 그는 변명을 뒤에 달았다.

“당숙을 졸라서 하나 얻었는데 와서 보니 이렇네.”

나는 마을행을 뒤로 미루고 거처로 올라가 가벼운 낚싯대를 하나 가지고 내려왔다. 채비를 만들어주자 변명을 한번 더 했다.

“섬에 살아도 이런 것을 언제 해봤어야지.”

어기찬 모습으로 바다로 나간 그는 해가 설핏 기울어진다 싶을 때 부들부들 떨면서 돌아왔다. 조황이 궁금했던 나는 마을아낙이 준 김치전을 들고 가 빅토르와 나눠먹고 있었다. 겨울 학꽁치낚시 간 사람은 죄다 얼어서 돌아오는 법이지만, 그는 유난히 불쌍해 보였다. 커다란 쿨러 속에는 고작 일곱마리의 꽁치가 들어 있었다. 들인 시간에 비해 이렇게 비효율적인 낚시도 드물었다. 늙은이도 백여마리씩 낚아오는 게 그 어종이었다.

“제기랄, 더럽게 어렵네.”

사연 많은 여자들이 헤엄치고 있었다면 훨씬 많은 수확물을 가져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역시나 경험 부족이었다. 릴 사용도 어색하고 낚싯대에 스냅 주는 것도 쉽지 않은데다 줄이 엉켜서 그것 풀다가 시간 다 보냈다고 투덜거렸다.

악사는 낚시를 시작하게 된 이유로 심심함을 들었다. 심심하다는 것도 여러 층위가 있어 늙은이의 나른한 권태부터 그럭저럭한 느긋함, 한숨이 나오는 한적함, 짜증이 솟는 무료함, 그리고 조바심나는 무기력한 심정 등이 있는데 그의 경우는 가장 마지막 것으로 보였다. 고백에 의하면 이곳으로 옮겨온 뒤로 손아귀에 들어온 돈이 한푼도 없었다. 결국 느닷없는 출조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다달이 줄어드는 잔고 걱정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생선 손질법도 몰랐다. 비늘을 쳐내고 배를 갈라 칼날로 넓게 편 다음 척추뼈 발라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자 투박한 손으로 연습을 했다. 운이 극히 나빴던 일곱마리는 너덜너덜한 고깃덩이로 변한 다음 고양이의 별식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하면 할수록 느는 게 실력이었다. 다음날 스물다섯마리, 그 다음날엔 예순마리 이렇게 불어났다. 나흘째 되던 날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백마리 가까이 잡아오더니 도움을 청해왔다. 우리는 장작불 피워놓고 앉아 손질을 시작했다. 그의 새 사업 판로는 사촌누나가 하는 슈퍼였다. 누나는 말린 학꽁치를 관광객에게 팔고 있었는데 거기에 납품을 하기로 한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칼질하고 발라내고 씻고 양념 바르다 보니 밤이 깊어갔고 빅토르는 잠이 들었다. 동쪽 바다에 달이 떠서 수면에 은가루가 찰랑거렸다. 우리는 가내수공업자들이 흔히 그러듯,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몇달 전에 있었던 일, 오래전에 있었던 일,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 있는 도시, 낯설었던 길, 한때 가까웠던 친구, 친절하거나 고약했던 이웃, 우연히 스친 사람, 그리고 예의 여인네 몇몇도 그 속에 들어 있었다.

일차 작업을 마치자 그는 일손 접대로 소주를 내왔다. 우리는 한잔씩 마셔가면서 발을 세워놓고 열마리씩 줄맞추어 널었다. 은색 껍질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수면처럼 반짝였다. 마치 키보드의 흰 건반 같다고 말하자 그가 문득 대꾸했다.

“그 시절 거기서 살았다면 데모 많이 했겠는데?”

“툭하면 했지 뭐.”

“혹시 이 노래가 뭔지 알겠어?”

그는 입으로 흥얼거리다가 성에 안 차는지 악기를 켜고 건반을 눌렀다. 연주곡은 「호텔 캘리포니아」 보다 더 뜻밖이었다. 명동 한복판 패션거리에서 뱃노래 듣는 것만큼이나 어색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꽃다지」라는 서정적인 운동가요였던 것이다. 잔잔한 멜로디가 밤바다에 아득하게 퍼져나갔다.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노래를 청해왔고, 나는 술에 취하고 수평선까지 뻗어나가는 달빛 밤바다에 혹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 위에 핀 꽃다지. 나 오늘밤 캄캄한 창살 아래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진정 그리움이 무언지 사랑이 무언지 알 수 없어도. 퀭한 눈 올려다본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 길 꽃다지.

 

그렇다면 그 노래를 불렀던 한 여자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걔는 손목을 그었어.”

기억하는 첫번째는 그거였다.

“한번은 손님들하고 싸움이 났어. 거기는 객지 뱃사람이 자주 왔거든. 다들 거칠지. 돈은 잘 쓰지만 무식하고. 외박 나가자는 걸 거부한 거야. 걔들 입장에서는 열받지. 그거 할 생각 하나로 양주를 몇병 마셨는데. 한놈이 뺨을 때렸고 그애가 달려들었던 모양이야. 엎어지고 깨지고 난리가 났어. 그때 그런 거야. 이 개새끼들아 나 죽어버린다, 그러고는 칼로 손목을 그어버렸어. 사과 깎는 칼이긴 했지만 피가 제법 나더라고. 수건으로 둘둘 만 다음 들쳐업고 보건소로 뛰어갔지. 소장이 자다가 불려나와 꿰맸지. 잘하더라고. 지금까지 여기 온 소장 중에 가장 괜찮았어. 보통은 조금만 상처가 깊어도 벌벌 떨면서 헬기 부르거든. 그 녀석 작년 여름에도 식구들 데리고 놀러왔더라고. 어디 대학병원에 있다고 하던데.”

잠에서 깨어난 빅토르는 앞발을 얌전히 모아 제 주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맥이 잘리기 직전이었대. 거기 잘렸으면 죽었지 뭐. 열몇 바늘인가 꿰매고 업소로 돌아왔어. 입원하는 보건소는 없으니까. 홀에 단둘이 있는데 내 건반을 켜달래. 그러면서 금방 그 곡을 부르더라고.”

그게 운동권 중에서도 노동자 관련이며 일반인은 잘 모르는 노래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본다고 그 무엇을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술은 나 혼자 마셨어. 걔는 깨고 내가 취한 거야. 그냥 취하고 싶더라고. 붕대 감은 왼손을 가슴에 붙이고 오른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부르는데 미치겠더라니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그러고 있는 모습이 왜 그렇게 이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동안 들었던 여자들을 떠올리며 다음 수순을 기다렸다.

“못 했어.”

말이 좀 그랬는지 악사는 뒤통수 버짐 들킨 아이처럼 슬그머니 웃었다. 웃으면서 빅토르가 들으면 안된다는 듯, 목소리 낮춰 한마디를 더 했다.

“안으려고 하자 딱 부러지게 싫다는 거야. 자기 몸에 손대지 말래. 무서워서 그냥 놔뒀어. 그 일 하면서 여자한테 거절당한 게 딱 한번 있는데 바로 그때야.”

나는 공연히 안도가 되었다. 악사는 그래도 좀 덜 서운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야. 끝까지 외박 한번도 안 나갔으니까.”

“………”

“뭘 하다가 왔는지 아무도 몰랐어. 가깝게 지내는 애들 말도 다 달라. 운동권 학생 출신이다 아니다, 대학생이었던 오빠가 무슨 사건 때문에 죽었다더라, 공장에서 위장취업 들어온 대학생하고 사귀었는데 배신을 당했다더라, 파출소 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는 것으로 봐서 시국사건으로 도망쳐온 것 같다, 그 정도에서 빙빙 돌았지 뭐. 제 입으로는 한마디도 안하니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빅토르는 여전히 제 주인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니 이 개는 음계나 말보다도 주인 자체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 안 있었어. 그 사건 있고 사장이 내보냈어. 이러다 잘못하면 송장 치우게 생겼다는 게 이유였지만 내용상으로는 외박 안 나간다고 맨날 시비붙는 애들은 골치가 아프거든. 그래서 갔어. 걔는 빚 걸린 것도 없었으니 자유였지. 제 발로 찾아온 애였으니까. 방값하고 밥값 계산 깔끔하게 하고서 떴어.”

나는 이번에는 공연히 서운해졌다.

“나가기 전날 술을 한잔 사더라고. 내가 그래도 그 밤에 업고 뛰어간 사람이잖어.”

그는 뒷머리 버짐자국을 한번 더 들킨 아이처럼 또 웃었다.

“헤어질 때 키스를 하긴 했어. 아주 깊게. 그리고 그게 끝이야.”

“전혀 연락 없고?”

“없어.”

“소식 없는 여자는 더 보고 싶어지지.”

“정말 그래. 건반을 누르던 그 모습과 멜로디가 오랫동안 생각나더라고. 보통 아가씨들 하고는 정말 달랐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 느낌이 꼭 이 노래 같어. 소문은 두어번 들었지. 서울 가는 무궁화호 기차간에서 얼핏 봤다는 사람도 있고 시장에서 애 업고 지나가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자세한 것은 몰라.”

떠들고 놀다보니 일이 더뎠다. 우리는 달려들어 발 작업을 끝냈다. 녹았던 손이 다시 얼었고 달은 남쪽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갔다. 일을 마쳤으니 한잔 더 안할 수 없었다. 초벌 술에 재벌 술이 겹쳤고 감상이 쉬 가라앉지 않았던 나는 노래를 자처했다. 그는 벗어놓은 썬글라스를 다시 썼다.

떠오르는 대로 그 시절 운동가요를 부르면 그가 적당히 코드를 맞춰가며 반주를 했다. 꼬이기도 하고 그럭저럭 되기도 했다. 이 부분은 첼로음이 좋겠다, 이 노래는 브라스밴드 풍으로 전주를 시작해야 한다, 잔소리를 하면 악사는 비틀거리면서도 일일이 맞추어주었다. 우리는 늦게까지 망가져갔다. 빅토르와 겨울 달과 씰루엣으로 서 있는 동백과 소나무가 두 사내 노는 꼴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몇번 더 상품을 만들었지만 새 사업은 난관에 부딪혔다. 말릴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자주 곰팡이가 생기는 탓이었다. 겨우내 벌어들인 돈은 고작 십만원 남짓이었다. 과외 벌이로도 갯돌을 뒤져 손가락만한 낙지 열댓마리 잡은 게 다였다.

그는 결국 가난에 손을 들고 말았다. 외해 가두리에 다이버로 취직한 것이다. 외해 가두리는 일이 고되고 이직률도 높았다. 마침 빈자리가 나자 그곳에 있던 친척이 사장에게 추천한 거였다. 건반 누르던 손이 잠시 학꽁치를 만지더니 물고기 밥 주는 쪽으로 간 셈이었다.

낚시는 그랬지만 섬 출신답게 잠수는 잘했다. 그는 단기간에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었고, 아침 일찍 나가서 오후 늦게 돌아왔다. 일이 고달파서 그런지 말수도 줄어들었다. 연주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대신 항구로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여객선을 타고 나갔고 일요일 저녁이나 때에 따라서는 월요일 오전 배로 들어와 현장으로 다시 쫓아나가곤 했다. 갑자기 생긴 돈 때문으로 보였다. 항구의 친구들이 자꾸 불러내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호젓하게 앉아 연주를 듣거나 노래 부르며 술잔을 기울일 기회는 자꾸만 뒤로 미뤄졌다. 낚시를 다녀오면 빅토르는 아예 내 마당에서 죽치고 있었다. 그러면 생선과 밥을 넣고 끓여 개와 고양이에게 한그릇씩 퍼주었다. 아무래도 밥값은 네 주인 월급날 청구해야겠다, 말하면 빅토르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나는 여러날 육지에 다녀왔다. 부두에 내리자 아는 얼굴이 다가왔다.

“이야기 들었어?”

이런 경우 비극적인 소식이기 십상이다. 그 짐작은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나의 악사 친구가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외해 가두리는 보통의 가두리양식장과는 달리 수심 깊은 곳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사업장이다. 수온에 따라 물고기 칸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데 보통 25미터를 유지한다. 병이 없고 폐사율도 낮다. 하지만 보수와 관리유지를 위해 날마다 다이버들이 산소통을 메고 수차례 들어가야 한다. 일은 보통 21조로 진행된다. 문제는 산소. 술을 마신 다음날이나 몸상태가 좋지 않은 누군가 산소를 일찍 써버리면 파트너도 함께 올라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진행이 더디어서 작업에 차질이 생긴다.

악사가 번번이 그랬던 모양이었다. 잔소리를 들은 끝에 예비 산소마저 다 쓸 때까지 참았고 그러다가 정신을 잃었을 것으로 사람들은 추측했다. 동료가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움직임이 없었다. 급히 끌고 올라와 인공호흡을 했지만 되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죽음은 늘 느닷없다. 특히 바다에서는 더 그렇다. 더 그렇다는 이유는 이런 식의 죽음이 증명한다. 그는 항구로 옮겨져 삼일장을 치른 다음 화장되었고 근처에 뿌려졌다. 화장 직전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채 두팔을 앞으로 모으고 눈을 감고 입도 닫고 있었다. 화려하게 연주를 하던 손가락도 그랬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라도 표정이 만들어지는데 그중 가장 담담한 표정이었다.

빈소에는 동료, 친구와 친척 들이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가족과 회사 간에 보상금 문제로 시끄럽기도 했는데, 소복을 입거나 정장을 한 여인네 중에 그의 여자들은 없어 보였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래야 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과거와 추억의 여자란 글쎄, 만나서는 안되는 존재기도 하니까.

돌아오자 빅토르가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내려가다보면 그가 어디 가는가 하고 부를 것 같고 어떤 때는 연주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여러날 그랬다. 그러나 매번 방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만 무성했다. 멀리 가버린 게 맞기는 맞는 모양이었다. 그러자니 아직 남아 있을 연애사마저 멀리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개는 두되 연애사를 앨범처럼 챙겨가버린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나도 마을에 빈방을 얻어 이사했다. 그사이 노부부는 집을 팔고 서울로 갔고 0.5명에 해당되었던 선배도 아예 발길을 끊었다. 우리의 마을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나는 마지막 밥을 주는 것으로 고양이와 빅토르와도 이별했다.

 

내가 그곳에 다시 간 것은 시간이 좀 지난 다음이었다. 천막지붕은 벗겨졌고 살림살이도 함부로 뒹굴고 있었다. 악기와 앰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같이 지냈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의 일 같았다. 이제는 영영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람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 문득 부재가 확인될 때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성견이 된 빅토르는 목이 묶인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악사의 형제들이 먹이를 건성으로 가져다주는지 그릇 속에는 밥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녀석은 내가 준비해간 고기를 받아먹고는 조금 전의 자세로 돌아갔다. 예전의 활기가 전혀 없었다. 방정맞음도 없었다. 대신 눈이 깊어졌다. 개의 눈이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빅토르가 바라보는 곳은 공교롭게도 외해 가두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저 푸른 물만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지만 어쩌면 그가 그곳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모처럼 인사를 했다.

“자네 어디 가 있는가, 거기서 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