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박상수 朴相守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후르츠 캔디 버스』가 있음. susangpark@hanmail.net
외동딸
마음, 그건 어디 있는 건가요 흔들리던 속눈썹이 나를 떠나면 가득한 처녀자리 은하단이 곁에 내려와요 낭만적인 테이블은 달그락 달그락 안부를 묻는군요 문이 열리고 거대한 문어군과 악수하죠 당신도 닫힌 성운에서 치료받는 중이군요, 함께 의자에 앉으면 어디 있는 건가요, 내 마음, 모노레일에 실려 닫힌 서랍에 닿았다가 거두어지는 소리, 파산한 장난감 공장에 종일 비 내리는 소리, 별들의 연주가 리본테이프처럼 날 감싸고 흘러요 내 마음속 오래 감춰두었던 광물 샘플들, 앤티크 브로치를 보여주죠, 우주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다르다네 랄랄라, 문어군 사라지는 노래를 들으면 멈춰 있던 케이블카가 다시 움직여요 밤의 궁전에 불이 들어와요 오늘은 여기도 별 같군요 난 왜 없는 세계를 이렇게 떠도는 걸까요, 프릴 원피스 가득 커다란 리본들, 숙녀 가방을 열면 마법이 펼쳐질 것 같은데, 낮엔 햇빛을 모두 흡수하고 밤엔 땅을 덥혀주는 예쁜 내가 되고 싶었죠.
장미 십자회 중창단의 여름
우린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모래의 나라를 세웠어요 손을 잡고 우리들만의 긴 여행을 떠났지요 비브라토, 슈만의 평화, 빛나는 한숨을 건네고 재가 가득한 보석함을 열어 보였어요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걸 믿을 수 없었지만 노래하며 살고 싶었어요
물속으로 들어가 살은 더욱 매끄러워졌지요 그렇게 눈물을 배웠어요 비탈, 소음, 입국 금지령, 세계는 온통 알 수 없는 것뿐이었지요 우린 무척추동물처럼 오그라들었고 우리가 만든 유배지에서 조용한 외침을 작곡했어요
땅과 하늘이 뒤집히고 있었어요 나비넥타이를 매고 허공을 떠도는 진주와 감람석 사이로 날아갔지요 버섯들의 숲속에선 포자를 날리고 스팽글과 깃털이 흩어지는 햇빛 속에 우리가 있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있을 거야, 물에 젖은 이파리를 디딜 때마다 고지식하고 풋내나는 왕들이 되어갔어요
계절이 뒤바뀌고 있었지만 우린 끝내 아침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서쪽으로만 자전할 것 같았거든요 영원히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았지요, 느리게 칸타빌레, 다시 브람스로, 먼 곳에서 웃고 있는 그대들은 어떻구요 장미창으로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가장 아름다운 물감이 흘러내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