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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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

197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이 있음. williwilson@hanmail.net

 

 

 

겨울을 나는 방법

 

 

석고로 주먹을 떠서 외투의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는 아주 깊었다.

 

추위를 잠시 잊고

나는 한결 가벼운 손이 된다.

 

가파른 각도로 연필을 잡고

낭떠러지를 떨어져버리는 것처럼

글씨를 쓰게 된다.

 

뼈의 소리를 듣게 된다.

 

골절의 아픔을 딛고 깁스 위에 평생토록

메모를 남기는 일을 맡게 된다.

 

글씨가 조금씩 무너지게 된다.

 

필적 감정을 요구받게 된다.

 

그제서야 나는

동면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주머니는 깊었고

주먹이 잠들어 있었다.

 

곱은 손가락을 펴고

연필을 맡게 될

뒤늦은 시간이 오고 있었다.

 

 

 

분갈이

 

 

영양사의 하얀 가운을 빌려 입고

하필 나는

뿌리가 살아 있는 머리카락을 화분에 심었다.

 

거름도 주었다.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나는 식물의 기운이 솟구쳐오기를 기다린다.

가능하면

둥근 열매도 맺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열매에게 외모가 생기면

영혼을 팔 것이다.

 

내 영혼의 형식으로 무르익게 되면

열매를 따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목이 없는 새에게

모이를 주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살아 있는 머리카락이

그래도 나에게는 아직 많다.

 

단백질로 가득하고

비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