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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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張錫南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등이 있음. sssnnnjjj@hanmail.net

 

 

 

某日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지졌다

 

장마 때 쌓은 국방색 모래자루들

우두커니 삭고

모래는 두리번대며 흘러나온다

모래여

모래여

게으른 평화여

 

말벌들 잉잉대던 유리창에 낮은 자고

대신 뭇 별자리들 잉잉대는데

 

횃대에서 푸드덕이다 떨어지는 닭,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나뭇잎은 물든다

 

 

 

변기를 닦다

 

 

똥이 튀어 변기를 닦았다

나의 윤리

불혹이 넘어 겨우 찾은

생활의 윤리

내 방황의 뿌리가 여기였는가?

그 이후로는

소변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경솔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가난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돈을 성욕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바람 속을 걸어본다

 

엿새째 이어지는 설사를 나는

논어를 공부하듯

복음서를 공부하듯 엄숙히

내면에 들여본다

지린 속것도 몰래 헹구어 내놓고는

윤리를 생각한다

윤리의 무늬를 지우고

윤리가 감춘 죄를 생각한다

설사에 대해서

불현듯 고장난 장에 깃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슬비는 새벽 내내 처마 끝에 모여들어 한방울씩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