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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광명성 3호 발사 이후

‘100주년’의 북한 문제

 

 

개번 매코맥 Gavan McCormack

호주국립대 명예교수, 『아시아퍼시픽 저널』(http://www.japanfocus.org) 책임편집자.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 『일본, 허울뿐인 풍요』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등이 있음.

 

 

봄이 오면 어김없이 한반도에는 두 국가 및 체제의 분리와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데서 비롯하는 항구적 위험을 다시 깨닫게 만드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한쪽에선 남한과 미국이 전쟁 재개에 대비할 목적으로 육・해・공 전군에 걸쳐 대규모 군사훈련(키 리졸브와 독수리 연습)을 실시한다. 북한은 불가피하게 경계와 대비 수위를 높이며 그들의 호전적 어조 역시 강해지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03월 천안함사태가 터졌다. 그러나 2012년 봄 키 리졸브와 독수리 연습에 구축함, 잠수함, 전투기와 수십만명의 병력을 포함하는 대규모 다국적 연합군이 동원되어 북한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서해상의 섬들에서 실제 사격을 실시하고 특히 북한군 후방에 상륙하는 훈련을 감행하는 상황에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한이 지난 316일에 발표한 지구관측 위성 광명성 3호의 발사 계획에 온통 집중되었다.

북한은 4월 광명성 3호 발사가 북한을 건국한 김일성의 100회 생일과 ‘강성대국’ 지위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위성은 중국과 인접한 북쪽 국경지대의 기지에서 남쪽을 향해 발사되며, 1단계 로켓이 남한 변산반도 남서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서해상에, 2단계 로켓이 필리핀 루손섬 동쪽으로 14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태평양으로 낙하할 예정이었다. (동쪽으로 날아가 일본 본토 영공을 가로지르는 종전의 ‘수월’한 길 대신에) 발사체를 남쪽으로 튼 평양의 계획은 실은 남한의 선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09년과 2010년 남한이 〔과학기술 위성 나로호 발사 때옮긴이〕 별다른 문제 없이 일본(오끼나와), 필리핀, 마지막으로 호주 상공을 지나 남극 상공 궤도에 진입하는 경로를 정할 수 있었으므로, 북한 관계자들도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은 임박한 발사 계획을 관련된 해상, 항공, 원거리통신 기구인 국제해사기구(IM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 절차에 맞춰 통보했고, 발사 관찰과 보도를 위해 과학자와 언론인을 초대했다.

기상용 지구관측 위성은 여러 기능을 수행하지만 일기예보에 특히 유용하다. 북한은 광명성 3호가 ‘진보된 정지궤도 기상위성’이 될 것임을 밝혔는데(조선중앙통신 326일자), 이는 그것이 지구를 기준으로 할 때 ‘정지상태로’ 궤도를 따라 돈다는 의미이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설명에 의하면 기상위성은 “날씨 분석과 예보, 기후 연구와 예측, 지구 전역에 걸친 해수면 온도 측정, 대기 온도 및 습도 분석, 해양역학 연구, 화산활동 감시, 산불 탐지, 전지구적 식물 서식상태 분석, 조사 및 구조 활동을 포함하여 육해공에 걸친 다양한 지점에서 일상적으로 전지구적 규모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매년 다수의 군사 및 민간 위성들이 미국, 러시아, 일본, 유럽, 중국, 인도에 의해 발사되고 있다. 일본은 타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위성을 발사하고 있으며, 대북정보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는 몇개의 위성을 쏘아올린 상태다.

북한이 3월 발사계획을 발표하자마자 남한은 곧바로 이를 ‘중대한 도발’로 규정했다. 미・일과 한목소리로 남한은 북한의 발사가 위성이라는 미명하에 실은 탄도미사일 발사를 실험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이는 곧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미 국무부 역시 북한의 발사가 2006년 안보리 결의안 1718호와 2009년 안보리 결의안 1874호에 대한 준수 의무를 파기한 것으로 선언했다(이 두 조항은 ‘미사일에 관련된 일체의 행위’나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는’ 발사를 금지함). 오바마 정부의 고위 관료는 호주를 방문하여 ‘대략 호주, 인도네시아, 필리핀 사이에 걸친 지역’이 발사의 영향권에 들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호주 외무장관은 해당 지역과 호주의 안보에 대한 실질적이고 확실한 위협이 엄존한다고 발표했고, 324일자 『씨드니 모닝 헤럴드』(Sydney Morning Herald)에는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일본정부는 패트리어트 고성능(PAC3)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오끼나와 및 그 일대의 외딴 도서(島嶼)지역으로 긴급히 이송했고 방위성 장관은 일본 영토로 진입하는 모든 물체의 격추를 명령했다. 미국과의 한층 긴밀한 군사협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북한의 위협’을 강조해온 일본은 광명성 3호 발사 계획이 발표되자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고 일본 전역에서 효력을 발휘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한 미사일 방어체제를 배치하는 한편, 외딴 도서지역에 대규모 분견대를 파견하는 등 인상적일 만큼 신속한 전시체제를 선보였다. 일본은 또한 이 ‘위협’이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오끼나와 주민의 저항을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하리라 기대도 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이 슬며시 추진해온 군비증강은 너무 오랫동안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는 ‘북한 문제’의 결과물이며 돌이키기 매우 어려운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냉전시기 내내 오끼나와 일대의 외딴 도서지역은 군사화되지 않았음에도, 아니 바로 그랬기 때문에 평화와 안정이 정착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북한의 위성발사 계획을 접한 미국과 우방국들은 북한이 발사한 물체가 무엇이든 그것을 관찰하고 필요한 경우 요격 파괴하기 위해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정찰기, 위성, 대미사일 포대, 그리고 레이더시스템으로 구성된 강력한 무력을 가동했다. 하지만 413일에 일어난 사건은 용두사미식 반전이었다. 발사 후 불과 130여초 만에 기체는 폭발했고 바다로 추락했다. 북한이 이번 시도에서 선보인 역량은 2009년과 2010년 남한이 나로호 발사를 시도했을 때 보여준 것과 대략 비슷한 수준이었다. 20106월, 1단계에서 러시아 기술을, 2단계에서는 자국 기술을 사용했던 남한의 발사체는 대략 2분여의 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한 다음 마찬가지로 폭발한 바 있다. 2009년 실패한 발사 기체조각들은 다윈(호주 노던 테러토리의 주옮긴이) 인근 지역에서 건졌다고 전해진다. 틀림없이 서울은 북한이 실패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성공했다면 자신들의 실패가 한층 더 두드러졌을 테니까.

위성은 진보한 과학수준과 경제발전의 지표에 해당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으로 추정되는 극심한 기상이변을 특히 최근 몇년간 수차례 겪은데다 위성보유국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북한은 자부심과 체면뿐 아니라 과학적・경제적인 이유에서도 그 정예그룹에 들어가는 데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2009년 북한은 (1966년에 체결된)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의 서명국이 되었으며, 그때 이후로 민간기술과 군사기술이 중첩된다는 이유만으로 (안보리라고 해서) 유독 그들에게만 과학적 우주탐사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의 부당성에 항의해왔다.

탄도미사일의 로켓 추진체는 사실상 위성 발사체의 그것과 동일하며 차이점이라곤 탑재물과 궤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북한이 내세우는 비군사적・과학적 목적이 실은 미사일 실험이라는 군사적 목적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는 위성을 발사하는 모든 나라들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평양의 경우를 위장된 미사일 발사로 봐야 한다면 남한과 일본의 위성발사 역시 같은 시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강대국들이 성실하게 핵군축을 추진해야 할 의무를 일관되게 저버리고 핵무기와 미사일의 배타적 보유라는 특권을 고수하는 상황이므로 지구적 체제의 이런 위선에 대한 북한의 비판은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고 있다. 그 체제를 통해 강대국들은 수익성있는 핵발전과 우주 산업을 사실상 지속적으로 독점하고 있는데, 이 두 분야는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파생물에 다름아니다.

위성 관련 소식은 3월 중순경 나온 평양의 발표에 의해 비로소 세계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북한은 발사 계획을 늦어도 20111215일까지는 이미 미국에 알린 상태였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미국은 어떤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나 항의도 하지 않았고, 대신 베이징에서 일련의 양자회담을 개최한 데 이어 2012229일에 새로운 상호협정을 체결했다. 그 내용은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 핵실험 및 제반 핵 관련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며 협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감시하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재입국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그 댓가로 미국은 24만톤의 식량을 보조하기로 했고 자신들은 ‘적대적인 의도’가 전혀 없으며 ‘주권에 대한 상호존중과 평등의 정신’으로 북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언명했다. 언론보도에서는 존중・주권・평등, 이 세 표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단어들이 핵심이었다. 수십년간 북한 대외정책의 목표는 바로 그같은 토대에서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반세기 이상 그들이 고통받아온 제재조치의 해제를 확고히하며 1953년의 ‘임시적’ 휴전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29일 협정에서 미국은 또한 2005919일자 공동성명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 대목은 표면적으로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매우 중요하다. 919공동성명은 한반도의 문제들을 두루 포괄하여 다루고 있으며 외교 및 경제 정상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점진적・단계적 절차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길을 해결책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어떤 침략 의도도 없음을 선언했고, 모든 당사국(미국・남한・중국・러시아・일본)이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 북한의 평화적 핵에너지 사용권 주장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데 동의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합의문에는 일본이 관계정상화에 필요한 절차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고, 관련 당사국들은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해 협상하며” “상호존중과 평등의 정신으로” 협상에 임하는 데 동의했다.

북한이 줄곧 주장해서 최종 동의안에 포함된 이 표현들은 실제로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 전체에 걸쳐 지속된 중심 주제였다. 회담이 열리는 동안 가장 미온적인 참여국은 다름아닌 미국이었는데, 미 국무성의 고위급 북한 전문가 잭 프리처드(J. Pritchard)가 2005년 “네곳의 우방국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 소수파”로 묘사한 바 있는 미국은 의장국 중국으로부터 합의안에 서명하거나 아니면 합의안 무산의 책임을 지라는 최후통첩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919일 마지못해 서명한 바로 다음날부터 미국은 북한정권을 붕괴시킬 의도로 기획된 일련의 금융제재 조치를 시행했으며 명백히 이는 하루 전에 서명한 합의안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이처럼 속임수와 배신을 저지르는 쪽은 언제나 북한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베이징 다자회담의 무산, 2005년 (그리고 2007년) 베이징합의, 그리고 추정컨대 이제 마찬가지 운명에 처해질 2012년 합의를 교착상태에 빠뜨린 책임은 적어도 북한만큼이나 다른 나라들에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거듭 주장했듯이, 광명성 3호 로켓에 부착된 물체가 통신위성이라는 데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9년 북한의 광명성 2호가 일본 영해를 가로질러 3800킬로미터가량 솟아올랐다가 3단계 추진체가 태평양으로 로켓을 날려보내는 데 실패했을 때도 미 정보기관은 실제로 부착물체가 위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남한 국방부도 발사궤적이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경로와 일치한다는 데 동의했다. 당시 북한은 정확히 자기네가 하겠다고 말한 바를 했거나 혹은 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는 2012년에도 마찬가지였을 공산이 크다.

제정신이 아닌 정도로 공격적인 나라이자 “정상적인 국가라기보다는 조직적 범죄를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경우”(『씨드니 모닝 헤럴드』 2012.3.27)로 간주되어온 것 치고 북한은 추구하는 목표에 있어서는 현재까지 인상적이리만큼 일관된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북한이 협상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다른 회담 참여국들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주로 초점을 맞추려 할 경우에는 협상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고, 의제가 포괄적 정상화, 한국전쟁 종전협정, 다자간 경제협력, 식민주의에 대한 일본의 배상을 아우르게 되면 협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식이다. 평등, 존중 같은 도덕적인 목표가 그들에게는 정치적・군사적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관심을 끌어내고 마지못한 존중이라도 받아내는 데 고도의 군사적 준비태세만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완고한 반항, 비열한 협박, 혹은 호전성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위협에 대한 계산된, 현실주의적 반응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명백히 매우 불미스러운 독재국가지만 그들이 국지적 침략의 위협요소가 된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적의 공격을 면할 수 있는 확실한 방책과 안보라는 과제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상황에서 북한은 세를 불리거나 난동을 부리는 식이 아니라 털을 빳빳이 세워 외부 개체에 맞서는 일종의 ‘고슴도치 국가’가 되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기네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한미 군사훈련이 일본과 미국의 입장에서 그들의 4월 발사가 그랬던 것과 최소한 동일한 수위의 도발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한에 대해 고수하는 무자비한 시선은 단순히 합리적인 이유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북한은 어느새 일종의 궁극적인 ‘타자’로 비치게 됐으며 거의 최소한의 국제적 공감이나 연대도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대북 비난에 다른 나라의 동참을 기대하고 있으며 사실상 모든 국가들이 그 기대를 기꺼이 따르는 실정이다. 북한을 비난하는 편이 대규모 침략과 군사력 남용에 대한 세계열강의 책임을 지목하고 추궁하는 것보다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수십년간 한반도 문제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세계를 향한 북한의 외침을 둘러싼 역사적 문맥이나 적법성의 알맹이에 대해 어떤 이해도 보여주지 않던 호주정부가 남한의 거의 동일한 발사 프로젝트에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북한의 임박한 발사 때문에 자기네가 위협당하고 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실은 ‘북한 핵문제’라는 말 자체가 중대한 질문을 피해가고 있다. 이 표현에는 비이성적이고 공격적이며 핵에 집착하는 위험한 쪽은 북한이며, 미국(과 일본)은 이성적이고 지구적으로 책임을 다하며 북한의 지나친 행위에 대응할 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문제의 틀을 이런 식으로 축소하면 핵확산과 위협뿐 아니라 식민주의, 분단, 반세기간의 한국전쟁, 냉전에 이르는 한세기 역사를 빚어낸 주형(鑄型)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이는 한국전쟁, 냉전, 일본제국주의의 미해결 쟁점들을 외면한 채 이른바 ‘북핵 프로그램’에 대처할 수 있다는 발상을 전제하고 있다. 나아가 공격적・군사적 패권주의와 국제법 무시를 가리켜 내가 이름붙인 ‘미국 문제’와, 아시아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어떤 의제도 상정하지 못하는 대미 ‘종속국가’로서의 ‘일본 문제’를 간과하게 한다. 비록 북한정부가 자국민의 인권을 짓밟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지난 50년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한 일은 없으며, 핵무기를 수단으로 이웃 국가를 위협하거나, (자신들의 핵실험은 순전히 방어적인 목적이라는 북한의 설명을 남한은 공허한 주장이라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조약을 파기하거나, 고문 및 암살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적도 없었다.

1948년 건국 이래 북한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피폐하게 만들어 결국은 무너뜨리려는 세계 최강국(그리고 그 국가의 동아시아 최측근 우방)의 결집된 노력에 직면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그러나 북한이 처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은 자신들이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니었다. 주요 세계기구에서 따돌림당하고 재정적・경제적 제재를 겪으며, (구원받지 못할 정도로) ‘사악한’ 존재라는 식의 근본주의적 용어로 비난받는 상황에서 어쩌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것 외에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의심과 두려움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경우에도 호전성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북한의 경우에 정말 독특한 점은 그들이 반세기 이상 핵에 의한 절멸이라는 위협에 직면해왔다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를 광기로 몰아가고, 일체감과 생존에, 그리고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로서 핵무기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게 있다면 북한의 경험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의 요구는 의심할 바 없이 정당하지만, 지구공동체는 그 요구를 계속해서 묵살했고, 결국 북한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순전히 북한을 핵이나 미사일 위협의 견지에서 보고 있지만 북한은 자신을 더 크고 강한 상대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과 위협을 당하는 약소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안보에 대한 북한의 과도한 집착은 그런 경험의 산물이며, 공식적 평화의 정착과 외교적 정상화가 보장되기 전까지 그들이 핵이나 미사일 카드를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북한이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출 경우 이 지역의 매우 심각한 다른 위협을 지나치기 쉽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동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에서 비롯되는데, 민간 핵프로그램이 명백히 보여주듯 핵에 대한 일본의 과도한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20113월 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무너진 후꾸시마 다이이찌(福島第一) 핵발전단지는 그때 이후로 계속 육지・바다・대기에 방사성 물질을 퍼뜨려왔다. 또한 현재 반쯤 무너진 발전소 건물들은 향후 일어나리라 예견되는 지진충격에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간신히 가둬놓은 방사성 폐기물과 추출된 플루토늄 농축물질로 인해 훨씬 무서운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20125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일본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노다(野田) 총리는 (다른 나라를 포함해) 일본에 가해질 수 있는 핵 싸보타주나 테러 위협만을 거론했다. 정상회의는 ‘핵군축, 핵확산 방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관한 모호한 결의를 마련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고, 일본이 플루토늄을 산더미처럼 꾸준히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나(그 양은 50톤에 육박하는데 이는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20~30킬로그램의 2천배에 해당함),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에 지속적인 ‘후꾸시마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현재 노다 정부는 핵산업을 새롭게 일으키는 한편 안보리로 하여금 일련의 새로운 대북 제재조치와 비난 결의안을 채택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진짜 북한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한반도에 지속되어온 ‘일시적’ 휴전상태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로 인해 두려움과 적의의 태도가 조성되고 지역 차원의 협력은 가로막힌 한편 대미의존과 이 지역에 형성된 군사블록 간의 대치상태가 심화되었다. ‘국제사회’(즉 미국과 그 우방국들)가 북한을 강제로 굴복시키려 목을 조일수록 북한정권은 더욱 요지부동이 될 것이고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강력한 연합체를 지목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다. 지금은 공중으로 위성을 발사시켜 애국적 정치선전 노래들을 지상으로 쏘아보내고자 하는 북한의 엇나간 시도를 저지하는 데 주의가 쏠려 있지만, 정작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남북관계 및 북한과 그들의 과거 식민통치국 일본, 그리고 62년 동안이나 그들의 철천지 원수였던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을 고립의 냉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일이다.

남북 및 북미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북한은 자국민의 필요에 부응함으로써 스스로를 합법적 존재로 만드는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반세기의 제재와 극심한 국제적 고립을 겪으면서도 우주와 핵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해올 수 있었던 북한은 분명 충분한 역량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는 길은 협상을 통해 북한의 안보를 실효성있게 국제적으로 보장하고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일이며, 아울러 북한의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협력을 심화하는 한편 국제적으로 승인된 지역 발사센터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번역 | 권영서울시립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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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제는 “North Koreas 100thCelebrations Gone Awry”로, 『아시아퍼시픽 저널』 2012년 4월 2일자 기고문을 본지 요청에 따라 개고하고 부제를 새로 단 최종본(2012.4.24)을 옮긴 것이다. ⓒ Gavan McCormack 2012/한국어판 ⓒ 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