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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진보개혁진영이 진정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김기원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를 읽고
정태인 鄭泰仁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역임. 저서로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등이 있음. ctain60@gmail.com
1. 참여정부의 한계
김기원(金基元)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의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 2012)는 참여정부 실패의 원인을 찾아나선 책이다. 또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사태에 진보진영은 올바로 개입했는가를 ‘복기’한 책이다. 그가 보기에 진보진영은 여러가지로 실력이 부족한데 특히 대선을 염두에 둘 때 가장 부족한 것은 정치력이다. 심지어 “경제정책에서의 잘못(도) 정치문제에서의 잘못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5면)
좋은 의미로 전형적인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정치와 운동의 매 장면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를 되뇌며 꼼꼼히 들여다본 책이다. 경제사를 전공한 학자가 사료 뒤지듯이 현재를 읽었으니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 보였을 것이다. 이 책은 “진보개혁세력 전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기록이다.”(같은 곳) 그러므로 진보진영에 속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진보의 시대’에 우리는 왜 자멸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나아가서 ‘진보 시즌2’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그가 대선 와중에 이 책을 낸 이유는 명확하다. 민주당, 특히 친노(親盧) 진영이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한 것이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있었다면 총선에서 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선이 이렇게 흐르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국민의정부 때 이런 반성이 있었더라면 필자가 참여했던 참여정부가 그런 실패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즈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문재인(文在寅) 후보와 안철수(安哲秀) 후보가 후보 등록일인 11월 25일 이전에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제 김기원 교수의 의도, “만약에 진보개혁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할 때 어찌해야 통치를 잘할 수 있는지 반성해보려는 것”(16면)이 한층 현실적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 셈이다.
그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經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가 아니라 ‘政포대’에 더 가깝다. 그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데서 자기편을 축소 약화시키고 반대편을 확대 강화시키는 ‘뺄셈의 정치’를 했다. 여기에는 노무현 개인의 문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집단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김교수는 노무현 개인의 문제로 “아웃사이더 정의파로서 불의와 반칙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안고 있었으나 따뜻한 여유는 부족”(30면)했던 점을 든다.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는데 불행히도 이를 보완해야 할 참모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아가서 이것은 노무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문제다. 그들은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가’를 논할 뿐, 그런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선 소홀했다(22~23면). 특히 선거시기가 아닌 통치시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무지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정치력은 필수적이다. 대통령제하에서도 헌법과 법이 부여한 힘 이외에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스템 차원의 개혁을 하고 싶다면 국민의 지지 없이는 지배세력에게 굴복하거나 스스로 포섭되고 말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지지자를 돌려세우는 ‘뺄셈의 정치’를 한다면 소수의 개혁세력이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는가?
김교수는 대연정, 기자실 개혁, 평검사와의 대화,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FTA 등에서 그 사례를 찾았다. 기자실 개혁이나 평검사와의 대화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빼면 흔히 노무현정부의 4대 실정이라고 드는 사건이 모두 이 ‘뺄셈’에 포함되는 것이다. 대북송금 문제에서는 ‘실리를 따지는 행정’(47면)에 매몰되어 호남세력이 떨어져나가게 만들었고(만일 ‘통치행위’라는 명분으로 감쌌다면 호남세력의 지지는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는 북핵과 한미관계에 대한 지나친 우려 때문에(이 경우는 외교력과 홍보의 문제였다) 진보개혁세력을 실망시켰다. 한미FTA 문제에서는 전문관료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경제적 실리주의에 빠져서 뺄셈의 정치를 완성시켰다.
어쩌면 노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지지를 과신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상대 진영을 끌어들여 고비를 돌파하려 했던 건 아닐까? 불행하게도 한미FTA를 빼곤 ‘산토끼’로부터 단호하게 거절당하거나 조롱을 받았고 동시에 ‘집토끼’의 처지도 곤궁하게 만들고 말았다. 특히 노대통령이 의아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를 옹호해야 했던 충성스러운 친노 그룹은 일반시민의 눈에 상식을 벗어난 집단(‘노빠’)으로 비치게 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문재인 후보의 부담이 되고 있다.
2. 진보세력의 한계
진보세력 일반 역시 정치력 부족이 문제다. 기실 김교수의 정치력이란 구체적인 현실인식과 동의어다. 진정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정치세력 간의 관계도 동시에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세력은 “현실을 우습게 보는데다 알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그러다 막상 현실과 부딪치면 거꾸로 너무 위축되어버린다.”(81면) 그들은 실력 부족, 전선치기의 과오, 특수이익집단화(103면)의 문제를 안고 있다. 즉 “1987년의 비판적 지지파나 오늘날도 잔존하는 단일화 반대 진보파는 큰 판을 읽을 줄 모르든가 아니면 국민 대중보다 당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109면)이며, “주어진 제약조건을 따져보고 그런 속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는 훈련이 잘되어 있지 않은 것”(111면)이다. 비통한 얘기지만 나는 김교수의 진단에 동의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맑스주의 논쟁사와 한국의 정파논쟁에 비춰봤을 때, 세상뿐 아니라 자기 집단의 갈 길조차 자폐적으로 재단한 결과가 오늘날 진보진영의 상황이다. 진보의 시대에 정작 ‘정통 진보진영’은 자멸해버린 것이다.
이 책의 2부는 한진중공업와 쌍용자동차라는 두 사건을 통해 진보진영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평소 온화한 성품의 김교수는 여기서 충격적인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사회주의 체제다.” “요컨대 정리해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 증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132면)다. 물론 이런 주장은 논지를 명확히하기 위한 고육책이며 실제로 김교수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우리의 노동유연화의 핵심은 전체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유연성의 왜곡을 바로잡는 일”이며 “증세와 복지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자 사이의 부당한 격차를 완화하는 수밖에 없다”(143~44면)는 것이다.
그러나 김교수의 말대로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대안까지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런 식의 일방적 매도로 끝나서는 안된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정도의 대기업이라면 세계화와 중국의 도전에 직면해서 장기 경영전략을 올바로 세웠어야 옳고(다양화라든지 고급화), 또 정부는 그런 방향의 산업정책을 제시했어야 옳다(이 점은 김교수가 반대할지도 모르겠다). 뒤에 쓸 테지만, 만일 이해당사자론에 입각한다면 노조가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했고 회사가 파산 지경에 이른다면 노조 등 이해당사자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제도도 갖추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김교수와 장하준(張夏準) 교수 모두 주주자본주의론을 비판하고(물론 그 강도는 사뭇 다르지만) 이해당사자론을 옹호한다. 현재 잘 정립된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해당사자론에 입각한 기업이론이 충분히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보울스(S. Bowles, 매사추세츠대학 명예교수)와 긴티스(H. Gintis, 중앙유럽대학 교수)처럼 기업을 팀생산으로 보고, 애컬로프(G. Akerlof,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처럼 노동과 자본 간의 관계를 선물관계나 (실험/행동경제학에서 나오는) 신뢰게임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해를 더 발전시킨다면 아마도 협동조합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 합리적 기대가설에 입각해서 성립된 현재의 거시경제학도 마찬가지로 현실에 더 가깝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교수가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듯이 현실은 논리의 세계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만일 이해당사자론에 가깝게 형성된 경제라면 김교수의 정리해고에 대한 견해도 마땅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설령 자본주의라는 큰 범주에 속한다 해도 그렇다. 북유럽에서 정리해고가 수용되는 것은 김교수가 적시한 것처럼 유연한 노동시장 옆에 여러 보완적 제도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딸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이나 80년대까지의 일본에서는 정리해고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들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김교수도 지적했듯이 구체적인 제도의 조합이 문제고, 실제 사람들이 전체 기업이나 사회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도 문제가 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제도를 상위에 두고 다른 제도를 여기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그리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제도의 서열을 선험적으로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차원까지 들어간다면 현재의 경제학자들 모두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지 특별히 한국의 진보파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앞의 얘기를 정리하기 위해 약간의 도식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보수, 개혁/수구의 두 차원으로 나눠서 현실을 바라보자는 제안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를 각각 국가와 시장을 강조하는 존재로 구분하는 것이 특히 그러하다. 진보든 보수든 정상적인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둘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진국 평균에 비춰 한국은 유독 오른쪽으로 기운 이데올로기 지형에 있으므로 진보세력 쪽이 좀더 강화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이 단지 국가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혁과 수구의 구분 역시 의문스럽다. 시장과 국가의 질을 모두 높이는 것이 개혁이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수구라면 대부분의 지식인은 자기가 개혁 편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그 질적 제고의 내용, 또 시장과 국가(나아가서 시민사회)의 조합의 양상에 관해서는 수많은 견해가 속출할 것이다. 예컨대 재벌개혁 문제에 대해서 나는 장하준 교수의 시장만능론/주주자본주의론 비판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국가의 질적 제고나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배격하는 수구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김교수는 우리 정치의 대립구도를 파악하기 위해 또 하나의 축으로 평화 차원을 도입했지만 나라면 생태 차원을 도입할 것이다. 물론 다른 문제, 예컨대 젠더 문제를 또 하나의 차원으로 도입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 기준은 아마도 사람과 자연의 생명일 것이다. 어떤 사회체제에서 생명권이 더 존중받고 마음껏 피어날 수 있을 것인지, 수많은 차원이 동시에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지금 대선에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나는 김교수의 진보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렇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깨끗하고 쉬운 논리로 진보파의 속살을 파헤친 사람이 또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도 그의 책은 현재의 대선캠프, 그리고 차기정권이 귀를 기울여 마땅한 훌륭한 교훈을 준다.
예컨대 “인재 풀의 한계 속에서는 정권이 달성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핵심 포스트의 인사에 힘을 집중하고 (…) 대선과정에서 브라질의 룰라처럼 미리 그림자 내각을 발표해 통치를 준비해가도록 해야 한다.”(77~78면) 진보진영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인사에 관한 금과옥조다. 또한 권력기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민대중을 위해서 권력기관들을 상호견제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해서 “검찰을 사회개혁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어야”(94~95면) 하는데, 법무부 장관의 임기를 보장해서 인사권을 충분히 활용하게 하자는 구체적인 제안도 덧붙였다.
만일 우리가 정권을 교체한다면 우선 국민의 다수가 지지할 정책을 사용하여 거기서 얻은 힘으로 강한 적과 싸워야 한다. 즉 정책의 순서(sequencing) 문제에 대한 지침이다. 참여정부에서 논의됐던 정책의 예로 대규모 신용불량자에 대한 확고한 구제책을 들었지만 새로운 정부에서는 가계부채 대책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내 보기에 이번 대선은 두가지 점에서 과거와 완전히 다른 판이다. 첫째, 2008년에 전면적으로 드러난 세계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점, 따라서 과거의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시장만능주의가 퇴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어마어마한 역사적 변화는 일상을 사는 사람이 실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둘째, 다행히 국민의 생각도 변했다는 사실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의식은 무상급식이라는 작은 화두로부터 보편복지라는 본령으로 급격하게 진화했다. “나와 내 자식은 승리할 수 있다”에서 “모두가 살길을 찾아야 한다”로 변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정권을 바꾸는 것이 곧 시대교체가 될 수 있는 시점이다.
‘시대교체’의 첫 발걸음이었던 총선에서 우리는 패배했다. 민주당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미FTA와 무상급식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 진행 중인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이슈에도 또한 그렇다. 새누리당은 이름을 바꾸고 자기 정체성을 숨기면서까지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변화 자체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몇가지 반성을 했겠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때 이미 우리는 잘 대응하고 있었으니 그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민주당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안철수 대망론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정당도 없고 정치경험도 없는 안철수 또한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미적거림, 안철수의 불안함을 단번에 제거할 길은 없을까? 있다. 김교수의 지적대로 정책에 대한 합의를 하고 내각의 풀을 제시하는 길이다. 그것이 곧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성공 경험이 진보개혁진영을 한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김교수가 주위의 많은 이들이 불편해할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겠는가?